「실례합니다, 슌 씨」
검은 양복이 힘없이 힘없이 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일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무슨 볼일이냐며 되물었다.
「지하실에 계신 분에 대한 보고입니다」
「말해」
「내드린 식사는 얌전히 전부 드셨다고 합니다」
「그런가」
「이상입니다. 그럼, 이만」
문이 닫히고 나서, 나도 펜을 내려놓았다.
콘노 텟페이.
일단 데리고 돌아온 건 좋았지만, 어디에 쓸까나. 바보와 가위는 쓰기 나름 이랬나.
「아직은 모르겠군」
녀석은 단순한 일반인이다. 자동차 운전과, 짐을 빠르게 배달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런건 아무 짝에도 쓸모 없고.
일단 경찰 한 마리에, 어쩌다 저지른 짓이라 해도 참가자 하나를 죽인 배짱과 운을 높이 사서 데리고 왔건만, 용도까진 자세히 생각해 두지 않았다.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쥰이 들어왔다.
아아,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지하실 입주민에 대해 얘기하러 하러 온걸려나.
귀찮다….
쥰이 지니고 있는 비장의 카드, 『차기 총재』라는 단어. 그게 나오면 이길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노골적으로 민폐란 표정 짓지 말아줘, 슌」
「어이어이어이, 트집잡지 말라구. 이제와 민폐니 뭐니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딨어. 똑같은 얼굴 주제에」
「후훗. 그럼 말을 바꿀게…. 뭔가 뒤가 켕키는게 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
「………」
「하지만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 번에. 오늘은 다른 건으로 온 거야」
「일 이야기?」
「내일 아버지께서 돌아오셔」
「하아? 다음달까지 돌아올 예정 없었잖아」
「그래. 아버지가 예정 변경이라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지도 모르겠네」
「아니, 진짜 놀랬다구. 펜 떨어 트렸잖아」
떨어진 펜은 쥰이 주워 주었다.
「좋은 만년필이네. 소중히 써」
「그건 됐고. 뭣 때문에 돌아 오신대?」
「아아, 그게 말야. 자세한 건 못 들었어. 바빴던 건지 바로 전화가 끊겼거든」
「인정머리 없기는. 차기 총재를 상대로」
「그 사람이 부하를 대하는 태도는 항상 그렇잖아? 하물며 자기 자식이 상대니까…. 그럼 난 슬슬 가볼게. 일하는거 방해해서 미안」
쥰이 나간 다음,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예정을 변경해 가면서까지 돌아와?
우리들이 아버지를 보고 『돌아온다』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귀국의 의미가 아니다.
예정을 변경해 가면서까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일 귀신이. 의심 덩어리가. 스케쥴을 위해서라면. 사업을 위해서라면 부모조차 버릴 남자가.
고용인들에게 아버지가 내일 돌아오신다는 얘길 전하자, 검은 양복들의 배치니 경비니 식사 준비니 방 준비니 청소니 뭐니, 집안은 일시적으로 분주해졌다.
그 때문에 나는 한낮이 지날 때까지 지하실에 놔뒀던 개를 까먹고 있어서, 빵과 물을 던져 넣어 준 다음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대로 일을 하며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다.
밖에서 차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검은 양복이 부르러 왔다. 그리고 복도에서 마주친 쥰과 함께 현관까지 나간다.
「어서 오십시오」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고용인들과 검은 양복의 무리를 바라본 뒤, 아버지는 안쪽으로 걸어간다. 아버지가 귀가한 경우엔 바로 식사가 시작되는 것이 디폴트니까, 우리들도 이어 식당으로 향해, 각자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섭식(攝食)이란 이름의 작업을 시작했다.
일 이야기든, 개인적 이야기든, 식사 중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엄금. 아버지조차 좀처럼 떠들지 않는다. 여기에는 접시나 식기가 내는 자그마한 소리밖에 없다.
그러니까 얼추 식사를 다 마쳤을 무렵, 아무도 화제를 제공 하지 않으면 해방.
그것이 평상시의 흐름이였다.
식후, 우선 일 이야기로 입을 연 것은 아버지였다. 그리고 우리들 차례. 뭐어, 상례다.
「각자, 보고할 일은 있나?」
「없습니다」
딱히 알릴 일도 없고, 묻고 싶은 일도 없다. 빨리 끝내고 싶어서, 나는 즉답한다.
솔직히 지금은, 지하실에 놔둔 개 쪽이 더 신경 쓰인다.
「질문이 있습니다」
망할, 쥰 자식. 성가신 얘기만은 하지마, 하고 사념을 보내가며 입을 다문다.
「어째서 오늘, 갑자기 돌아오신 겁니까?」
나와 쥰은,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
「………」
쥰이 어라?하는 시선을 보내온다.
하지만 나도 알 리가 없다. 아버지의 수수께끼의 침묵의 이유 같은거.
「오늘 돌아올 수 있게끔, 스케쥴을 조정 했다」
「그, 그러십니까」
전혀 대답이 아닌 답변에, 쥰이 곤혹스러운 듯 내게 시선을 보낸다. 이 이상 물어도 될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모양인데, 이런거 나라도 마찬가지다.
표면에 서는 건 차기 총재의 일이니까 말이지. 동정하지. 힘내.
「결혼 기념일이다」
쥰은 순간 굳은 다음, 뭔가 말을 끄집어 내려 하고 있다. 나는 귀를 좀 의심했다.
「아……, 그러십니까」
「이제부터 지하로 간다. 둘 다 따라 와라」
자리에서 일어선 아버지를 따라, 우리들도 일어났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그 뒤를 따른다.
계단을 내려가며, 일부러 아버지한테서 거리를 벌린 쥰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 옆에 서서 속삭인다.
「이거 무슨 일이지?」
「전혀, 모르겠어」
「겨, 결혼 기념일이래」
「거야, 나도 들었는데….. 지금까지 이런 적 있었나」
함께 기억의 수첩을 넘겨 본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이 날, 전부 일 있지 않았어?」
「응……. 있었던 것 같아」
「아버지는 우리들 예정에는 기본 노터치였으니까. 우연히 우리한테 일이 있었던 것 뿐인가」
즉 오늘, 나와 쥰이 나란히 집에 있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고. 아버지는 그걸 알고 나서 서둘러 돌아왔단 건가?
급히 돌아올 수 있도록, 스케쥴을 조정해 가면서?
그러면 일단 조리는 맞지만, 도저히 믿기 힘든 얘기다.
지하로 내려가, 복도를 걷는다.
예의 개의 방이 눈에 들어올 무렵. 그 근처에 대기해 있던 검은 양복에게 눈짓해, 개가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방으로 이어진 문이 열린다.
검은 양복들은 양 쪽 끝으로 물러나고, 우리들만이 그 앞으로 나아간다.
발걸음이 무겁다.
철들 무렵 딱 한 번 들어가 본게 끝인 방.
이제부터 거길 가야 한다고 하자, 답지도 않게 긴장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
「슌……」
옆에 있던 쥰이 몸을 붙인다.
「뭐야」
「걱정할 필요 없어」
「안 해. 걱정 같은거」
「실은 나, 남몰래 가끔 오고 있어」
「뭐 어때……. 차기 총재님의 특권, 안 쓰면 손해잖아」
「하지만 나, 좀처럼 익숙해 지지가 않아. 이 복도」
그 방까지 이어져 있는 복도를 둘러보며, 쥰의 눈썹이 축 쳐진다.
「몇 번을 지나가도, 냉정하게 있을 수가 없어」
「뭐어, 동감이야……」
「아버지는 어떠실 것 같아?」
멀리 앞서 걸어가는 아버지의 등을 바라봤지만, 잘 모르겠다.
원래부터 감정의 기복을 읽기 힘든 인간이고.
「글세. 의외로 우리들이 모르는 곳에서, 이따금 다니는거 아냐? 그러면 그냥 가볍게 넘길 일 아닌가?」
「그건 아냐…….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반드시 나한테 연락이 오는걸」
「……」
「말해 두겠지만, 내가 모르는 비밀통로 같은건 존재하지 않아」
「그렇겠지……」
방 앞에 먼저 도착한 아버지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 그것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란걸 깨닫고, 서둘러 합류한 다음, 쥰이 문을 연다.
나는 문이 열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쥰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꽃 향기로 가득찬 방. 천개가 달려 있는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있던 어머니가, 멍청히 뒤돌아본다.
「어라, 어머…」
쥰은 표정을 풀고서 뛰쳐 나가려 했지만, 단념한 모양이였다.
그리고 총재의 얼굴을 하고, 내 옆에 섰다.
「아가야. 무슨 일이니? 이런 곳까지 오고……」
우리들은 그저 나란히, 아버지가 어머니께 다가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어째서 안 갔어?」
「자숙했어」
자숙? 하고 시선으로 묻자, 쥰은 작게 웃는다.
「두 분의 기념일인걸」
웃을 수 있을 정도로 차분히 선 그 모습에 감탄한다. 과연 몇 번이고 와 봤다 그건가.
나는 자칫 방심하면 지금 당장에라도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할 것만 같은데.
하지만, 쥰의 어깨도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말 없이, 그 등을 가볍게 쳤다.
쥰은 흔들리는 초점을 필사적으로 내게 맞춘뒤, 어색하게 웃었다.
「고마워……. 정신, 단단히 먹어야하는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 두 사람에게 우리들은 아이가 아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우리들을 지켜주지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방관자로서, 우리들은 두 사람의 기념일을 축하하러 왔다.
그런 입장으로 여기에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의무다.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날거야」
부친의 뒷모습에 가려진, 긴 머리칼이 흔들린다.
「혼나지 않아」
아버지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나는 뭘 해도 혼나지 않아」
「굉장하네. 뭐든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래, 맞아」
아버지가 손을 뻗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어머니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널 위해, 그렇게 됐어」
어머니의 눈가가 부드러워지더니, 약간 빨개졌다.
「기뻐라…」
아버지가, 갑자기 이쪽을 보았다.
「둘 다, 이쪽으로」
우리들은 감전이라도 된 것마냥 고개를 들었다.
「네, 넷」
내밀어진 커다란 손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로 우릴 불러 들인다.
「우후훗. 귀여워」
「우………」
가는 손이, 내 머리를 쓰다 듬는다. 옆에서 쥰도 쓰다듬어 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행복한 듯 미소짓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올려다 본 아버지의 얼굴은, 생애 처음 보는 듯한 다정한 표정이였다.
하룻밤, 꿈이라고 생각하는게 좋다.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냉엄한 현실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아무리 이런 식으로, 평온한 시간이 있는 척 굴어도. 그렇게 위장한다 해도.
집은, 오래전 파탄나 있잖아.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가정은 붕괴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웃고 있대도.
쥰도 그걸 깨닫고 있기 때문에, 이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시스템의 잔해다.
그렇기에 이 광경은, 꿈과 같은 환상이다.
개의 훈육을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가자, 서류의 산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대체 언제……」
분명 쥰이, 내가 없는 동안 두고 간 거겠지. 불평을 흘려봤자 별 수 없으니, 마지못해 착수한다. 「우리」쪽에도 남은 일이 있지만,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순 없으니 해치울 수 밖에 없다.
착착, 무심히 서류를 처리한다.
몇 시간 뒤. 기지개를 키는 김에, 홍차라도 부탁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을 때, 쥰이 들어왔다.
「아, 미안. 일단 노크는 했어」
그 손에는 대량의 서류가 들려 있어서, 나는 힘없이 수화기를 놓았다.
「또 추가야?」
「눈치가 빠르네. 아버님이 직접, 슌보고 처리하라고 하라며 맡긴거야」
「알겠어. 줘」
서류를 내려놓은 쥰은, 멋대로 쇼파에 앉았다.
「어이, 남의 일을 방해하지마」
「내가 있는 것 정도로 정신이 흐트러져?」
「차 갖고 오라고 할테니까…, 그거 마시면 돌아가」
「다즐링이 좋아」
「그래그래」
뭔가 하고 싶은 얘기라도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해 희망대로 다즐링을 대접한다. 나는 카페오레.
우리들은 가끔 이렇게 서로의 방을 찾아가,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보내는 일이 있었다.
최근 쥰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왠지 모르게 알게 됐다.
이 방을 찾은 이유도, 대강은.
「요 전의 일 말인데…」
「관 둬」
쥰이 두 손으로 컵을 움켜쥔다.
「어머니는 죽었어. 아버지는 일이고. 우리들은 우리들이야. 아냐?」
「응……. 맞아」
「이제 잊어버리는게 좋아」
쥰을 바라봤다.
그 다음 말을, 꺼내게 하지 말라는 바람을 담아.
나는, 옛날로 되돌리려 하지 말라는, 바람을 담아.
「후우…. 뭐어, 나도 딱히 말하고 싶은 얘기인 건 아닌데…」
「동감이야」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어서」
「허식이였던 거 아냐?」
「그 사람이 그렇게 비효율적인 짓을 할려나」
「인간인 이상은」
쥰은 어깨를 으쓱인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어른이란 참 큰일이구나」
「이럴때만 어린애인척?」
「나이는 특권이니까 말야」
쥰은 남아 있던 홍차를 단 번에 들이킨 다음 일어나, 방을 나가려 하다, 멈춰섰다.
「나, 슌이 있어줘서 행복해」
「아아」
「나 혼자였더라면, 견뎌내지 못 했을 거라 생각해」
「뭘?」
「기만을」
뒤돌아본 쥰의 어두운 눈동자는, 분명 내 것과 같겠지.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의 바람대로, 우리들은 손이 가지 않는 아이들의 귀감같은 인간이 되었어.
앞으로도 순조롭게, 사뭇 훌륭한 인간으로 자라가게 되겠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완벽한 어른이 되겠지.
우리들은 미래만을 보고 있다.
그러니까, 쓸데 없이 간섭하려 들지마.
붕괴되어 그 기능을 잃어버린 시스템 속으로, 우릴 다시 끌어 들이려 하지마.
너희들이 그리는 행복한 가정은, 이제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으니까.
과거의 빛에만 매달려 있는, 측은한 녀석들.
「나도야」
그렇게 대답하자, 안심한 듯 숨을 한 번 내쉬고서, 쥰은 문을 닫았다.
컵 바닥에, 덜 녹아 남아 있는 각설탕이 2개 있었다.
갈 곳 없이 남겨진 그것은, 마치 우리들처럼.
혹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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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와 첨언이지만, 쥰의 "기만"발언 사이에 슌의 독백이 들어간 것은 "기만을 참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동의이면서도, 미묘하게 "과거에 사로 잡혀 있는 것"에 대한 자기 동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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