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역의 쓰레기들이 모이는 VIP룸.
오늘은 정치가 쪽 중진이 온다느니뭐니하며 호위 때문에 나까지 이 방으로 끌려 나왔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런 일을 해왔지만, 나는 이런 부류들이 특히나 질색이였다.
애당초 사이키 가문의 일 중에서 좋아하는 일이란건 하나도 없었지만.
밖에서 일했던 시절이 훨 더 맘 편했다.
오늘치 도박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놈들은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 녀석들 전원이 귀가할 때까지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냉큼 귀가해 씻은 다음, 젓갈을 안주 삼아 따끈하게 데운 술을 한 잔하고 싶다. 배고프다.
아직 점심조차 못 먹었다. 새우튀김이 먹고 싶다.
사이키 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없는 일따윈, 그야말로 쓰레기다.
겨우 업무가 끝난 것은 몇 시간 뒤.
성가신 것한테 붙잡히기 전에 귀가하려던 그 때, 떡하니 슌과 마주쳤다. 마음의 눈을 감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라며 체념한다.
「몇 시간 뒤에 높으신 분이 출두할테니까, 네 놈도 따라와」
「알겠다」
생각대로 되었다.
그럼 다음은, 그 때까지 어디서 시간을 때울지를 생각하자.
근육 트레이닝일까. 아니, 일단은 밥이다. 분명 이 주위에 늦게까지 영업하는 맛난 소바가게가 있었을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려 했으나, 슌이 불러세운다.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그 때까지 뭐하고 있을 셈이야?」
「근처에서 시간을 때울 거다」
「그럼 우리집으로 돌아가서 목욕이라도 해」
「……」
「앙? 뭐야? 너 영감탱이 급으로 목욕 좋아하잖아」
「부정은 않겠지만」
내 식사가.
「일단 노고를 치하해 주는 거라구. 오늘은 사뭇 어깨가 뻐근했겠지?」
「배고파……」
「아? 아아. 그러고보니 너 낮에도 안 쉬었지. 식사 정도는 했을 줄 알았는데」
「아직이다」
「아, 그래. 그거 미안하군. 그럼 집으로 돌아가서, 쥰보고 뭔가 만들게 해」
「아니. 근처에서 적당히 먹을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렇겐 못하지. 이제부터 길어질텐데. 확실하게 몸에 좋은걸 먹어둬. 어차피 넌 냅두면 근처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려 들잖아? 아, 쥰한텐 내가 연락해 뒀으니까 착실하게 가. 뭐해…. 얼른 가」
별 수 없이 차에 올라타, 사이키 가로 향한다.
성실히 로비에서 일을 하고 있던 쥰이 나를 보자마자 일어선다.
「슌한테서 이시마츠한테 식사를 차려주라는 연락이 있었는데. 무슨 일 있어? 몸이라도 안 좋아?」
「별로……」
그 녀석이 드물게 별난 짓을 하니까 뭔가 이상해 하고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배려보다는 우선 밥이 필요하다.
내리깐 시선을 들자, 염려 어린 얼굴이 있었다.
「이번 일, 상당히 피곤한거구나」
의미심장한 대사였으나 대답은 하지 않는다. 쥰이「우리」에 대해 눈치챘다 하더라도 지금으로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상관이 생기는 것은『기회』가 뭉개질 때 뿐이다.
「알겠어. 기력이 붙는 음식을 준비시키도록 할게. 이시마츠는 그때까지 목욕하고 있어」
어째서 형제 나란히 입을 모아 목욕 목욕일까.
「간단한 거라도 좋아. 바로 저쪽으로 돌아가야 되고」
「그럼 더 더욱 든든하게 먹어야지. 이시마츠의 몸이 안 좋아지면 곤란한건 네 주인이야」
「………」
「가능한 한 서두르도록 할테니까, 준비가 되면 부를게」
따라오려하는 검은 양복을 제지하고, 욕실로 향한다. 방금 전엔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목욕이 이제는 밉다.
공복 때문에, 호화로운 욕실 구조도 불쾌해진다.
「……」
몸을 씻고 욕조에 들어가 언제나처럼 눈을 감아본다.
하지만 위가 비어 있는게 괜히 더 신경 쓰일 뿐이였다. 위산이 위를 태우고, 이어 서서히 내 정신을 좀 먹어간다. 남들보다 약간 큰 덩치가, 지금은 다소 저주스럽다.
더 이상은 무리다.
욕조를 나와 근처에 있는 검은 양복을 부르려 했으나, 망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 탓인지 아무도 없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크게 외쳤다.
「어이!」
복도 저쪽에서 튀어온 검은 양복에게 뭐든 좋으니까 당장 먹을 수 있을 만한 것을 부탁하고, 다시 욕조로 돌아간다.
뭐든 좋다.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자리만 넘기면 된다. 검은 양복이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이 몹시나 길게 느껴졌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욕실 문을 열고 검은 양복이 들어온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내게 카레빵을 건네주고, 즉시 퇴실한다.
확실히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이긴 하나, 왜 무수한 빵 중에서 하필 이 빵을 선택한 걸까.
하지만 지금은 배를 채울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욕조에 몸을 담군채, 카레빵 봉지를 뜯었다.
「……」
온기로 좁아진 식도에 빵가루가 들러붙는다. 입 안의 수분이, 빵을 씹으면 씹을수록 사라져간다.
기침하며, 내일 일정을 생각했다.
내일은 이번 「우리」가 시작된 이래 제일 가는 구경거리가 될테니까, 높으신 분들이 평소보다 많이 회장을 방문할 것이다.
참가자가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으레 갤러리는 만원이 되며, 경우에 따라선 일어선 채로 구경하는 자들까지 나온다. 나는 그때마다 VIP룸에 배치되어왔다.
악취미한 뭔가를 위해 여길 찾아온 녀석들의 천박한 웃음을 가까이서 봐왔다. 생명의 존속이 경각에 달려 있는 자들의 궁지에 몰린 표정이나, 극한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인간의 모양새 등등, 포커스를 맞추는 부분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구역질이 난다.
슌의 말에 따르자면 가난하든 부유하든, 타인의 불행은 어떤 시절이든 꿀맛이라는 모양이다.
자아, 내일의 주역인 콘노 텟페이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 죽임 당할 것인가.
이제까지의 참가자들 중에서도, 똑같은 선택을 강요당한 녀석들은 있었지만, 의외로 대답은 다양하지 않았다.
대개는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타인을 죽인다.
그 답에 이를 때까지 얼마만큼 갈등했다 하더라도, 막다른 순간에서 도망치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분명 같은 결말에 이르겠지.
그 남자에게, 가족을 버리는 것은 우선 무리다.
「이시마츠 씨」
「아아, 곧 나가지」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목욕을 끝마쳤다.
풀코스 급 식사를 마치고, 나는 다시 쿠마자와로 되돌아갔다.
커다란 모니터에 영상이 비쳐진다.
2개로 분할된 화면에는 제각기 위치 관개 등등, 전체 영상을 둘러 볼 수 있도록 암시야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것과, 가능한 한 가까이서 찍고는 있지만 다소 보정을 가한 영상 두 종류.
초점은 언제나 콘노 텟페이에게 맞춰져 있다.
군중은 그에 못 박혀 있다.
『아아……, 동생이 누군가가 미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건 언제 이야기 입니까? 저기, 형님?』
방 안의 공기가 후끈해진 기분이 들었다.
엣흠, 하고 누군가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딘가의 노인이 가래낀 목소리로, 죽여…하고 중얼거렸다.
비릿한 입냄새가 뒤섞여, 피부에 달라붙는다.
『아니, 그. 이쪽은 대체 어떻게 되어 있나 해서』
『아, 그쪽은 안 됩니다. 자자, 형님』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을 관뒀다. 화면 속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콘노 텟페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허나, 끝까지 지켜봐 주겠다는 선의가 아니라.
언젠가 나처럼 될 이 남자에게, 자신을 겹쳐보고 있는 것 뿐이였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혐오하고, 그럼에도 책임을 지기 위해 발버둥친다.
누구를 향하고 있었던 것인지조차 잊어버린 분노나 증오에 몸을 맡겨, 백치처럼 칼을 휘두르던 모습은 대체 어떤 식으로 비치는 걸까.
내가 과거에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혹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너어―…!』
콘노 텟페이는, 찰나.
그 어디도 보고 있지 않았다.
야차의 얼굴도, 수라의 얼굴도 아니라.
거울이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일상에 있는 표정이였다.
「………」
아무리 거창한 이상을 내세운다해도.
아무리 요란한 신념을 관철하려 한다해도.
결국엔 그런 얼빠진 얼굴인건가.
살짝 우스워졌다.
분명 나도 마찬가지 일 테니까.
커다란 모니터 화면이 꺼지고 나서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살찐 돼지들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나는 입구 근처의 벽면에 서서 바라보고 있다.
「그건 그렇고, 정말 해낼 줄은 생각도 못했군」
「네, 네에. 저도 설마 정말로 할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껜 당할 수 없는걸요. 정말이지 정확한 판단입니다. 실로 냉정하시군요. 대체 어떻게 읽으신겁니까? 저는 오늘 크게 졌습니다」
「이거, 거야 게임이니까 걸어 본 겁니다만. 단순한 우연입니다. 그렇게 후하게 평가해 주셔도 곤란한걸요, 하하하하」
「아아, 정말이지. 최근의 젊은이들은……, 그런걸 이성이 끊긴다고 합니까? 정말이지 요즘 세대는 오타쿠니 뭔지 모르겠지만, 무섭군요」
「동감입니다. 그, 택배업자…였었죠? 뭐어, 결국엔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화물 운송을 직업으로 삼는 젊은이들이란」
「경찰까지 죽이고, 다시 또 한 명입니까. 이거이거, 무섭군요. 우리 손자는 저렇게 되지 않기를 빌 수밖에 없겠군요」
「아아. 거기, 자네. 금발. 방금전의 그 아이, 이름은 뭐라고 하지?」
「콘노 텟페이입니다」
「아아, 그래. 그랬지. 콘노 군이였어」
「어이」
슌이 턱짓해 나를 부른다.
「무슨 일이지」
「그 녀석의 친우군 있지? 그 녀석을 죽여야겠어」
슌의 얼굴은 매섭다. 스케쥴이 어긋났다는 표정이다.
콘노 텟페이가 괜한 소릴 떠들었다거나, 불의의 사태가 생겼다는 것을 바로 깨닫는다.
인생 첫 살인에 이어, 친구까지 죽임당하는 건가.
나는 무심코 얼굴을 찌푸렸다.
바보놈.
이쯤이면 동정을 금치 않을 수가 없다.
「언제지」
「바로. 벌써 데려와 놨으니까, 너도 준비해」
내가 이제부터 해야할 일은, 대략 예상이 간다.
오오히라 유우키를 죽이거나, 그 뒤처리겠지.
어느쪽이든, 언제나처럼 일로서 행할 뿐이다.
그리고 향한 폐유원지에서, 우리들은 만났다.
콘노 텟페이는 뇌장을 쏟아낸채 죽은 친우의 사체 옆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충혈된 눈, 콧물과 눈물로 찌든 더러운 낮짝이였다.
나도 어린 시절, 자주 이런 얼굴을 했었다고 생각한다.
할망한테 처음 엉덩이를 얻어 맞았을 때가 그랬다.
할망은 네 인생을 죽은 사람을 위해 쓰지 말라고,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면 그 마음을 조금 알겠다.
「못 죽여」
「우욱!」
위에 꽂아 넣은 주먹을 다시 비틀어 올린다.
그리고 몇 번이나 걷어 찬다.
「그만큼 기세 좋게 떠들어 댔으니, 조금 쯤은 저항해 보는게 어때」
「………」
저항다운 저항이 한 번도 없는 것은, 필경 참회의 의도겠지.
자신이 죽인 녀석, 자기 때문에 죽은 친구에 대한.
하찮다.
인간의 목숨을 빼앗은 죄를, 그 정도로 용서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건가.
용서받고 싶어 하는 것은 바보들 뿐이다.
우리들은 그 누구한테도, 용서 받을 수 없다.
「그럴 기력도 없나」
서라, 콘노.
너도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다.
「너는 못 죽여」
그러니까, 당하는 대로 당하지 마.
걷어 차일 것 같으면 반격해라.
저항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거다.
뭐가 튀어 나올지 모를 짐승길이래도, 앞으로 나아갈 각오가 있다면 싸워.
이것은 신념의 얘기가 아니다.
네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도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나는 생각하고 있다.
사이키 진을 죽인다. 나아가 사이키 가문 전부를 뭉개준다.
내 부모가 받은 처사와 같은 벌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진 않는다.
가만히 참기만 하는 너와는 다르게.
「내가 있는 한, 그러지는 못할 거다」
겁쟁이는 가만히, 썩어 버려.
우리들은 외도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용서 받을 수 없다.
이상이나 복수, 각오를 이야기 하는 것은 주제 넘은 짓이다.
그런 인간같은 감정은, 행동은.
깨끗한 인간들에게 맡겨두면 된다.
이 녀석은 오늘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겠지.
가족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친우가 죽고.
영문도 모르게 얻어 맞은 오늘 이 일을.
그리고 나 역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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