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이츠카. 연상의 여자 말야."
"도련님, 어머님이나 야마부키님을 연상의 여자라고 말해선 안됩니다. 혼나실거에요."
"아님다."
나는 마루 끄트머리에 앉아 발을 흔들흔들 흔들며 대답했다. 이츠카는 부엌 안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여우한테 차인 나는 저택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후는 아직 이르다. 창문 안으로 새어들어오는 금색의 빛이, 쪽문 흙마루를 비추고 있었다.
이츠카는 내 귀가를 깨달자 방긋 웃었지만, 그대로 빙글빙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저녁 준비다.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거절 당했다.
요리는 잘 못하니까, 그건 별 수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봉당으로 내려서는 쪽문 근처에 걸터 앉아, 이츠카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아냐. 꼬시는 말좀 가르쳐 달라고."
"꼬셔요?!"
이츠카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이쪽을 본다.
당근과 식칼을 들고 있다. 됐으니까, 이쪽으로 기울이는건 귀만으로도 됐으니까.
"하, 하아아?! 도련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이츠카라도 그런건 잘 몰라요."
맥이 빠진듯 다시 요리에 착수하는 이츠카에게 나는 말을 건다.
"아니, 그치만 말야. 이츠카도 항상 밥이니 빨래니 청소니, 전부해주잖아?"
"하아. 그렇네요."
"그러니까, 뭐랄까 말야. 그런 나이 든 여인의 심리에 자세하지 않을까해서."
"네, 네엣?! 도련님 무슨 말씀을! 이래봬도 이츠카, 나이 십우물우물한 소녀라구요?!"
십우물우물인건가.
손짓발짓으로 이거저거 설명해주는 이츠카의 모습에 나는 "에"하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애당초 나는, 여성의 연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쪽은 1주일만으로도 키가 쭉쭉 자라는 일족이다. 그런데다가, 복숭아 꽃에서 태어나 100년은 그 모습 그대로 라는 천녀한테 키워졌다.
도읍에 보통 인간여인을 만난다해도, 5살인지 20세인지, 50세인지 전혀 모르겠다.
귀엽다던가, 다정하다던가, 아름답다던가는 안다. 그 쪽 기준은 엄격해서. 나는 확실하게 말해서 얼굴을 밝힌다. 허나 보통 인간은 연상면 연상일수록 아름다운 것도 아니니까, 그쪽과 관련 섭리는 전혀 모르겠다.
덧붙여 이츠카는 미인은 아니다. 따지자면 귀여운 쪽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코안경은 너구리 풍이고, 키도 원복만 지나면 분명 내 쪽이 더 커지겠지.
그러니까 이츠카에게 반하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좋고 싫고를 따지자면 좋아하는 부류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세이지씨는 이츠카와의 사이가 나쁘지만, 그쪽의 곡절도 잘 모르겠다. 이츠카는 바지런하고 사려 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제 말 안듣고 계신 모양이네요."
멍청히 있자니, 눈 앞으로 이츠카가 크게 다가와 있었다.
뭔가 설교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련님의 저녁에서 호박조림은 빼도 된다 그 말씀이시죠?"
"이츠카의 조림은 맛있어."
나는 다급히 이츠카에게 대답한다. 일단, 이 저택의 식사는 이츠카가 전부 도맡고 있다. 야마부키 누님이 만드는 것은 유우오우 형 거 정도 뿐이고, 내 어머니는 전혀 요리 불가능.
항상 나갈 때마다 유부초밥을 부탁하고 있는 나는, 이츠카에게 거역할 수 없는 입장이다.
언제나 식량의 품질은 중요하다. 오들오들.
"진짜~. 정말이지 아오타케 도련님은 항상 그러신다니깐요. 너무 맘 놓고 계시면 토벌에 지장이 생기실 거에요."
"이츠카까지 와카구사 엄마 같은 소릴 하면 안 어울려."
"그런가요……?"
"응응, 그래."
"그런가아. 기합이 파앗 안 하나요??"
"응. 기합이 부족해."
"하아. 이젠 말 안하겠습니다만…. 도읍 사람들한테 너무 폐끼치시면 안되요."
그렇게 납득한건지 기가 막힌건지 모를 이츠카는 다시 식사 준비로 돌아갔다.
아궁에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아궁이 불이, 솥을 흔든다. 그 안에는 방금 썰은 당근이나, 무 야채 등등이 들어가 있겠지.
이렇게 얘기하고 있자니 역시 세이지씨와 이츠카의 사이가 안 좋은게 이해가 잘 안간다. 어째서일까.
"저기, 이츠카."
"뭔가요, 아오타케 도련님."
"나 어린애일까?"
"도련님은 아직 원복 전이니까, 거야 어린애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3개월 정도면 원복일테니, 곧이에요. 안심해주세요."
안심같은거 전혀 불가능하다.
거야 3개월같은거 눈깜짝할 사이일지도 모르지만. 3개월이 눈깜짝할 사이라면, 2년도 눈깜짝할 사이가 되잖아.
뭔가를 뒤쫓으며 손에 넣기에는, 시간 부족이라 늦고 만다.
스스로 말해 놓고서도, 실로 괴롭다.
그러면 2년이면 손에 들어오는걸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찾는 것만으로도 2년이 지나가 버릴것 같다.
세이지씨는, 엄마는, 형이나 누나는 불안하지 않는걸까.
나는 안 된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일족으로 태어나 싸우다 죽는 건 좋지만,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다 끝날거라 생각하면 왠지 잘은 모르겠지만, 분하고 슬픈 그런 기분이 가슴을 가득 메운다.
"원복이 지나면 어른이 되?"
"물론이고요. 신주도 실컷 마실 수 있답니다. 받은 술이야 있지만. 저희 가문은 당주님을 비롯해서 마시는 사람이 적어서. 좀처럼 줄지가 않아요."
이츠카는 그렇게 말하며 봉당에 놓여져 있는 통이나 병을 가리켰다. 그게 전부 신주(神酒)인 모양이다.
받은거라면 야채랑 똑같은걸까. 우리 일족은 형식상으로는 도읍을 수호하고 있으니까, 그런 류의 공물이랄까 선물이 있다.
그 술을 한술 떠서, 이츠카는 조림 안에 넣는다. 으음, 맛을 내는데 술을 쓰는건가.
그러고 보니 이츠카의 조림은 어딘지 술의 향내가 났었다.
유부 초밥, 맛있지.
나는 무릎위로 턱을 괸채, 이츠카가 빙글빙글 부산스레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련님도 원복이 지나면 교신이겠네요."
"으음"
"그렇게 걱정하실거 없어요. 아마 당주님이 좋은 신부신님을 찾아주실거에요."
"하아. 왜 그런 걸 하는데."
"헤?"
"신부 정도는 스스로 찾을건데."
"에, 아…. 그치만……. 단종(斷種)의 저주로……."
그 말에 나는 겨우 많은 것들을 납득했다.
미사사기 일족은 단종의 저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이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신과 정을 나누면 남길 수 있다고 하지만, 보통사람 사이에선 무리다. 하지만 그건 딱히 우리 잘못이 아니다.
잘못한게 없는 우리들이 왜 그렇게 풀 죽지 않으면 안되는 거냐.
이츠카는 왜 이렇게나 면목 없어 하는 소리를 내야만 하는 걸까.
풀 죽는 이유는 아이가 갖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각한다.
오직 아이를 갖기 위해서 신부를 찾는단건 틀려있다. 내 쪽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뭔가 이상하다. 어딘가가 비틀려 있다.
아마, 이것이 세이지씨와 이츠카의ㅡ 즉 우리 일족과 이츠카 사이에 있는 벽이겠지. 이츠카에겐 저주가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츠카가 면목 없어 하는 것.
"교신 꼭 해야하는거야?"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네."
이츠카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런 이츠카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여기에는 뭔가 커다란 잘못이 있는 기분이다.
이츠카를 달래, 그 잘못에서 눈을 돌리는건 왠지 싫었다.
"이츠카는 말야."
"네, 네?"
"파앗하고"
"네. 파앗!하고"
"교신 안해?"
"하아!?"
그러니까 그렇게 웃어 농을 던지자, 이번엔 눈을 크게 뜨더니 나를 쏘아보며 서서히, 새빨갛게 물든다. 아가씨니까, 안 하려나? 원복은 지났을텐데. 그러니까 아이를 낳으면 된다. 이츠카도.
"이, 이츠카는 감기에 안 걸리는 것만이 장점이니까요! 그런건 됐어요"
"됐어? 그럼 나도 됐어."
"안돼요. 도련님은 일족이시니까. 팍팍! 교신해서, 우르르 아가씨를 얻어서, 그래서… 슈텐을 물리쳐 주시지 않으면."
"그런가."
이츠카는 작게 웃었지만, 왠지 그건 평상시의 이츠카보다도 아름다워서 울컥했다. 이츠카는 그렇지 않다. 주먹밥을 입안 가득 우물우물 거리고 있는게 훨씬 더 이츠카 다운 것이다.
그것은 오콘이 뚱하니 입을 다물고 있어도, 그럼에도 그 쪽이 더 그녀 답고 아름다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
그 이후로 1개월이 지났다.
원복은 아직이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미사사기 일문의 일원이다. 나기나타 실력은 이제 엄마한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원정에도 나선다.
이번에 나선 것은 토리이텐만궁(鳥居千万宮)이였다.
그러니까 세이지씨와 둘이서 나갔던 한달동안 꽤나 수련도 했고, 이것저것 알았다.
나는 오래간만인 억새 들판을 내달려, 작은 산을 향한다.
그 잡목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게 보였다. 그건 그럴지도 모른다. 토리이천만궁에 비하면 실로 쬐끄마한 숲이다.
어쩌면 키가 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개월동안 또 약간 키가 컸다. 눈 높이가 달라진 탓에, 풍경이 신선하게 보인다.
억새 들판도,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도, 전보다 부드러워서, 그래서인지 슬프게 보였다. 어쨌든, 나같은게 슬퍼해봤자 별 수야 없지만.
"어이, 여봐라, 어이이이~!!"
나는 경내 안쪽에 말을 걸어가며 들어간다.
요 1개월의 싸움 탓인지, 바람에 색이 입혀진것처럼 기척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아, 오늘도 역시 뒤쪽 마루에 있는구나하고, 혼자 맘대로 결론을 내리며 나아가자, 아무래도 여우 누님은 자고 있는 모양이다.
부드러운 햇살 속에서, 천녀보다도 호화로운 보라색 예복 소매로, 몇여개의 하얀 꼬리가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다.
요괴나 유령도 자는걸까. 그런 생각을 한다.
달콤한 향내가 꼬리에서 나는 거란걸 깨달았다. 유부 초밥 냄새를 좀 닮았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샌다.
"어이. 어차피 깨어나 있잖아."
"……"
나는 눈을 감고 반쯤 엎어져 있는 오콘에게 그리 말했다.
감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오콘의 모습은 분하지만 정말로 그림이 되고 아름답다. 이래놓고 입이 그렇게 험하니 정말로 질이 나쁘다. 이쪽의 기척을 살피고 있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꼬리를 베개삼아 같이 낮잠을 잤을텐데.
몇번 정도 쓰다듬어 봤던 그 여우의 꼬리는 정말로 결이 좋아서, 아직 1개월이 좀 지난 것 뿐인데도 그리워진다.
"꼬리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다구. 일어나 있다면 상대해."
"시끄러운 얘네 진짜……."
"입 험한 아, 아니…. 유부초밥 갖고 왔어 먹…자…."
나는 예정했던 말을 늘어놓는다.
지금은 다소나마 오콘에 대해 알고 있다. 토리이천만궁의 주인이라는 것도, 그래놓고 이런데서 빠져나와 낮잠을 자고 있다는 것도. 일족 사람들은 모르지만, 난 알고 있는 것이다.
"왠지 묘하게 얌전하네. 감기 기운이 머리쪽으로 돌기라도 했어?"
오콘은 스윽하고 일어나자, 흐트러지지도 않은 가슴께에 손을 얹고, 옷매무새를 가볍게 고쳤다. 목을 기울인 그 표정은 매끄럽고 윤기 있어서, 마치 새벽무렵 보이는 달님 같았다.
"응"
나는 반론도 않고 유부 초밥을 내민뒤, 오콘이 손을 대는 것을 기다렸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왔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생각해오긴 했지만 이렇게 찾아와보자 전혀 생각나지 않으니까 곤란하기 짝이 없다.
원래부터 머리쪽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술을 익히는 것은 다른 가족들에게 맡기고 있을 정도다.
"저기."
"뭐니, 애야."
"그 애 발언, 언제 그만둬 줄거야?"
"………."
"키도 컸는데."
"내가 보면 아직 한참 애야."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결국 토리이 천만궁도 중반 정도밖에 못 갔으니까. 사람을 현혹하듯 무수히 늘어선 토리이의 미궁 속에서, 세이지씨와 나는 한달 내내 요괴들과 싸움을 거듭했으나 결국엔 도달할 수 없었다.
"그건 오콘이 있는데까지 못 가서 그래?"
"그렇게 될려나."
오콘의 대답에 기력이 빠졌다. 토해낸 숨이 커져서, 깨닫고보니 그건 한숨이였다. 거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왜냐면 나는, 이런 식으로 실망해본 적이 태어나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저기 말야, 오콘."
"안 들을거야."
"나, 오콘이 좋은데."
"………."
오콘은 반쯤 베어 문 유부 초밥을 입 앞에 든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바늘로 내 입을 꿰맬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로, 빤히.
나는 꾹 참고 되쏘아봐 주었다. 시선을 돌리면 머리를 깨물린다던가,곰을 만났을때의 얘기 같은 거에 쫄은게 아니라, 눈을 돌리면 오콘은 달아나 두 번 다시 여기로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질린건지, 기쁜건지 모를 미묘한 표정을 한 오콘은, 쓸쓸한 듯 하기도 했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반쯤 남은 유부초밥을 마저 먹고서, 한숨을 내쉰 뒤,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뭔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구슬릴 셈이였겠지, 나는 한층 더 오콘을 쏘아봐 주었다.
곤혹한듯 오콘은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고, 저녁놀을 바라보며, 그리고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한탄하는 오콘은, 훨씬 더, 훨씬 더 아름다웠다.
샛별이 서서히 떠오르는 하늘에, 오콘은 작은 목소리로 울었다.
"나는 어린애가, 갖고 싶었어."
"………."
"갖고 싶고, 갖고 싶고, 갖고 싶어서 견딜 수 없던 때가 있었어. 아아, 꽤나 예전 일이야. 지금에 와선 바보같은 얘기지. 난 말야, 애를 못 낳는 몸이 였거든"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무렵, 나와 오콘은 신사의 마루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등을 쭉 편 오콘은,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얄미운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표정이였다.
"그래. 석녀라고 불렸어. 애를 낳는것은 여자의 의무라고, 그리 생각되던 장소였으니까."
"그런일 없는데."
"그럴지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곳이였어. 특히나 내 주위는 더 더욱. 그래서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오콘의 웃음은 몹시나 가늘고 쓸쓸해 보였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얘기 같았으니까 나는 그걸 방해할 수 없었다.
"내 남편은 말야, 지금 생각해보면 최악인 남자였어. 술 밝히고, 노름 밝히고, 여자를 밝혔지. 특히나 미인에 가슴 큰 여자를. 아하핫."
"오콘도 그렇잖아."
"뭐어, 고마워. 애한테 칭찬받아 봤자 기쁘진 않지만. 일단 고맙단 말 정도는 해줄까나."
입술 끝을 살짝 끌어올린 여우는, 몹시 다정한 얼굴로 웃는다.
그런 식으로 구니까,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을 전부 잃고, 불만스레 입술을 앙 다무는 수 밖에 없었다.
오콘은 옛날에 일어난 뭔가에 귀를 기울이듯 몇 번 호흡한 다음, 이어 다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세간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너는『마누라와 다다미는 새 것이 좋다』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아아, 없어? 그거 좋네. 별로 좋은 말은 아니니까 말야. 사내란건 말야, 젊은 여자를 좋아해. 이왕 예쁘다면, 더 젊고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여자가 제일로 귀엽다. 마누라도 다다미도, 해 묵은 것보단 신선한게 더 좋다. 그런 말이야."
나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간이 이상한건지, 내가 이상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건 싫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모처럼 고백한 여자가 있는데, 같이 있고 싶어하는게 당연하잖아. 굳이 새 여자를 꼬시다니 바보같다.
고작 2년 밖에 없는데. 설령 하루라고 해도, 장가든 여인이 있는 곳 이외의 장소로 돌아갈 틈같은거 있을리 없다.
그러니까, 폭신폭신한 꼬리를 축 늘어트리는 오콘의 마음이,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말야. 내 남편은 새 여자를 만들었다 그거야. 주위의 친척들도 딱히 비난하진 않았어. 왜냐면 내가 나쁜거니까 말야. 내가 애를 낳을 수 있었더라면 이런게 되지 않았을텐데. 그런 말을 확실히 들었던 적이 있어. 왜일까. 그 시절엔. 그게 몹시나 괴로워서, 매일 울면서 지냈어. 아직 어렸으니까 말야.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도 제대로 못해서, 왠지 매일 매일 계속되는 흑승지옥(黑繩地獄)[각주:1]같은 느낌이였던가……. 그래서 난 생각했어. 아이. 애만 생기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텐데. 내가 얘를 가질 수만 있다면, 이런 비참함과 괴로움을 맛볼 일은 없었을텐데ㅡ하고 말이야."
오콘은 왠지 투명했지만, 나는 점점 무겁고 괴로워져간다.
"아이는 부부 사이를 이어준다고 하잖아? 아이만 생기면, 나를 나쁘다고 매도했던 친척들도 날 다시 볼테고. 남편도 마음을 바꿔 줄거라고. 딱히 벌이가 나쁜 남자가 아니였어. 작지만 집도 갖고 있었고. 애만 생기면. 나는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었지……."
밤하늘에는 샛별에 이끌린듯 별 몇몇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바람 속에서 오콘은 이야기 하고, 나는 묵묵히 오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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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승 지옥 : 팔열 지옥의 제 2지옥. 벌겋게 달군 사슬로 죄인을 결박하여, 역시 벌겋게 달군 쇠도끼로 그를 찍어 죽이는 형벌(刑罰)을 준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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