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체를 넘어서 가라]
기념 노벨라이즈.
게임 공식홈
작자 : 토노 마마레(공식홈)
노벨라이즈 발매는 제반사정으로 인해 미뤄짐
일어나 저택의 일을 처리하고, 주술을 받아 쓴다. 오후가 되면 아버님을 쫓아 강가로 가서, 나기나타(薙刀) 훈련을 한다. 운이 좋으면 아버님과 두 세마디 대화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와 목욕 준비. 저녁식사. 취침.
그게 내 생활이였다.
아버님의 등을 떠밀듯 귀가 하면 이츠카는 언제나 즐거운듯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분"하고 항상 손을 씻을 물을 준비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이츠카의 웃음도 아버님이 아무 말씀도 않고 스쳐지나가면 형태는 그대로나 색이 바랜다.
그걸 볼때마다 나는 아버님과 이츠카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걸까 싶어 가슴이 아팠다.
이츠카는 언제나 끝없이 명랑하고, 오지랖이 넓고, 천궁의 천녀 언니들과는 다른 의미로 나를 귀여워해줬다. 이츠카는 손가락을 흔들어 가며 말버릇처럼 "파앗하고!"하고 "기운 차게 사셔야해요~"하고 말해줬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매일의 가사조차 "쓰러트려야할 적", 잘 되지 않는 재봉도 "넘어야할 난관"이라고 한다. 의기양양히 고개를 들고 살라는 것이 그녀의 신조인 것이다.
이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 천궁에서 입고 온 무명옷은 눈깜짝할 사이에 해지고 더러워졌다. 하늘에선 모든 의상은 청정해서, 복숭아 꽃잎이 뒤섞인 바람이 불 때마다 깨끗해지고 기워져서 새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나는 이 저택에 올때까지 "새 것"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다.
천궁은 다이쇼텐 히루코(太照天昼子) 님의 힘에 의해, 모든 것이 청결하고 영원하기에, 뭔가가 낡는다거나 더렵혀지는 일은 없는 것이다. 부끄럽긴하나, 나는 이츠카가 가르쳐주기전까지 세탁이라는 행위를 몰랐다.
천녀 언니들이 준 무명옷이 더러워져서 울고 있던 물정 모를 나를, 이츠카는 웃으면서 달래 주었다.
"더러워지면 씻으면 되요. 그러면 원래대로 깨끗해진답니다. 이 이츠카에게 맡겨주시기를! 이렇게 보여도 저는 세탁에 있어서는 조금 자신이 있으니깐요!"
유감이지만 이츠카의 말처럼 무명옷은 원래대로 깨끗해지진 않았다. 이츠카는 의욕은 있으나 덜렁이다. 세탁했던 무명옷은 약간 헤졌다.
몇 번이나 세탁을 거듭했던 그것은 이어 색이 바랬지만, 그럼에도 내게 있어선 기쁜 마음씀씅이였다.
하지만 어느 날 방심해서 무명옷에 진창이 묻은데다가 그도 모자라 살짝 틑기고 말아서, 옷은 이츠카의 "세탁"으로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슬퍼 얼굴을 찌푸리는 내게, 이츠카는 말했다. "작별이 온 모양이네요"하고.
그랬다. 이 저택에 온지 1주일. 내 키는 3치 이상이나 자랐다. 진창이 묻지 않았더래도 트이지 않았더라도, 내 몸에 맞지 않게 될 거란건 명백했다.
이츠카가 새롭게 준비해준 옷은 소박하며, 하늘의 옷과 같은 복숭아 향이 아니라 대나무숲 같은 상쾌한 냄새가 났다.
"잘 어울리셔요"
그런 이츠카의 말에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숭아향이 나는 옷은 그리우나, 그것은 하늘의 의복이다. 요괴를 베기위해 도읍으로 내려선 내게는 이츠카가 준비해준 이 옷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런 식으로, 이츠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해뜨기 전에 일어나, 해지기전까지 한군데에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일의 몇 할은 이츠카가 덤벙거린 탓에 생긴 사건사고의 뒷처리 측면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츠카가 일을 열심히 하며, 명랑하고, 언제나 방긋방긋 웃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츠카와 아버님 사이엔 뭔가가 있다.
내게도 말수가 적고, 언제나 어딘지 졸려보이는 아버님이지만, 이츠카의 앞에서는 더더욱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님이 이츠카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츠카가 아버님에게 말을 걸고, 아버님이 거기에 대답하는 게 끝이다.
항상 터무니없이 명랑해서 내 등을 세게 후려치고 그러는 이츠카지만, 아버님 앞에서 짓는 그 웃는 얼굴은 웃음의 형태만 띄고 있을뿐 어둡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표정이였다.
애당초 아버님은 그게 이유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날이 밝을땐 집을 비우는 일이 잦다. 강가에서 낮잠을 자는 일도 많지만, 어디에 있는지 소재 불명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까 아버님과 이츠카 사이의 공기는 저녁식사 때 느끼는것이 고작이였다. 나는 그 분위기를 깨닫고 있긴 했으나, 어찌 말해야할지 잘 모른채 처음 몇주간을 보냈다.
어느날, 나는 이츠카에게 물어보았다.
아버님이랑 무슨 일 있었어? 하고.
이츠카는 턱끝에 손가락을 대고 우웅하고 고민한다음, "뭐가 있었을까요."하고 작게 웃으며 "아가씨께 걱정을 끼치다니 이츠카도 아직 멀었네요~"하고 낙담한 다름, "그런 것보다 지금은 몸을 단련하셔하죠~"하고 나를 격려한다음 "정말로 어째야 할까요"하고 내 앞에서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 당주님께 미움받고 있답니다, 저"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나를 앞에 두고 이츠카는 마침내 그렇게 고백했다.
"어째서? 왜 아버님은 이츠카를 싫어하는 건가요?"
"어째설까요"
이츠카는 곤란한 듯, 데헤헷 하고 웃었다.
웃고 있는 주제에 그 얼굴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님은 심술 궂지 않은데"
아니, 그런가? 사실은 심술 궂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츠카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 수행은 아직도 혼자일때가 많다. 아버님이 드물게 걸어주시는 말은 짧고, 단편적이고,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그, 으으음, 심술궂을지도 모르지만, 아버님이잖아요"
말한 순간 아차했다. 이래선 아버님의 변호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이츠카에겐 전해졌는지, 그녀는 손끝으로 내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네, 알고 있고 말고요. 당주님은~ 와카구사님의 아버님되세요. 하지만, 그래서 그럴까……"
"……?"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주님이 싫어하시는건 부조리함 이에요"
이츠카는 그리 말했다.
부조리란 사물의 올바른 도리, 혹은 인간으로서 행해야할 옳은 길에 맞지 않는 것. 그 모습. 합리적이고 올발라야할 모습이, 뒤틀려 있는 모습.
"하지만 그건 누구든 싫어하잖아요"
나는 대답한다.
그런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리란 올바른 이치에 맞는 것이다.
햇님이 떠서 날이 밝아지는 것처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처럼
사람들이 상냥하게 웃는 것처럼.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란 없다. 하물며 그것이 뒤틀어 지거나, 부정당하는 것을 누구도 바라진 않는다
아니, 아니다. 나는 덧붙였다.
"잘못 말했습니다. 누구든은 아니였습니다. 요괴는 부조리하고, 부조리함을 좋아합니다. 사물의 도리를 업신 여기는 것이 요괴입니다."
내 말에 이츠카는 잠시 침묵하더니, 시선을 돌렸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앞쪽 죽림에서 새 소리가 잠시 울러퍼졌다.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을까. 내가 불안해질 즈음에, 이츠카는 겨우 입을 열었다.
"와카구사님."
이츠카는 무릎을 접어 내 앞에서 자세를 낮추며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츠카와 내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 다갈색 눈동자 속에, 곤란해하고 있는 내가 비치고 있다.
"요괴는 부조리를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부조리함을 싫어하고 있는거에요. 부조리를 싫어하고 미워해서, 그 증오의 불꽃을 견디지 못해, 너무나도 부조리를 용서치 못한 나머지 부조리째로 모든 것을 불태우려하는 마음을 먹은 것이 요괴인겁니다."
……….
이츠카의 말은 어려워서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할 순 없었다.
그보다 나는 이츠카에게 가득 찬 신묘한 분위기에 눌렸다.
"그리고 부조리를 혐오하면서도 부조리가 다할리 없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끝이라고 깨달은 자. 그 부조리함을 속죄하기 위해 부조리의 이름을 걸치게 된 자가 신인 겁니다."
요괴와 신.
"당주님은 따스하고 다정하신 분이니까, 이츠카를 멀리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치만 그렇잖아.
더러운 것을 깨끗해지도록.
저녁무렵엔 식사가 나오도록.
펼쳐 놓은 이불이 따뜻해지도록.
이츠카는 이 저택의 도리다. 이츠카가 이 저택을 보살펴 주지 않으면, 이 저택의 도리는 엉망이 되고 만다.
게다가 이츠카가 이 저택의 만사를 도맡아주지 않는다해도, 이츠카의 웃는 얼굴이나 그 명랑함은 주위를 비쳐준다. 이츠카는 햇님같은 사람인 것이다. 웃는 얼굴이 밝은 미래를 부르는 것이 도리라고, 천녀 언니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츠카의 응원은 도리 그 자체다.
도우미라고 해도, 미사사키 일문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임엔 틀림없다. 아니, 미사사기 일문의 도리 담당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이츠카를 격려하려했으나, 말이라는 것은 어려워서 왠지 횡설수설이 되어버리는게 고작이였다.
그런 내게, 부드러운 분위기로 돌아간 이츠카가 명랑하게 웃어주었다.
"이런 말씀을, 보자, 누군가가 했다고 생각해요. 덤벙거리는 사람이요. 와카구사님도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마세요."
슬픈 얼굴을 한 기억이 없는 나는, 그럼에도 이츠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앞으로 1개월만 지나면, 와카구사님도 실전 부대네요. 오늘도 파앗!!하고! 단련해요!"
천궁에는 유리거울이라는 것이 있다.
내 허리 정도까지 오는 높이의 커다란 거울이다. 투명한 유리를 모아 수정 가루로 갈아낸 고마운 보물이라고 한다. 천녀 언니들은 그 유리거울로 지상의 모양새를 비쳐보여 주었다. 아직 어린 아이였던 내게 지상이나 요괴에 대해 가르쳐주기 위해 원견(遠見)의 보물을 사용해 준 것이다.
그 유리거울로 나는 도읍 쿄의 모양새를 몇번이나 봐왔다.
도읍을 관통하는 대로, 도읍 사방을 지키는 거대한 문, 도읍을 지키는 위사들, 그 대로를 오가는 사람들. 나라를 다스리며 정치를 행하는 대궐도 봤고, 거기에 살고 있다는 천자님도 보았다.
밝고 아름다운 것만 봤던건 아니다.
도읍을 덥치는 야적들을 보았다. 밤마다 나타나는 괴이에 요괴의 그림자. 기근에 허덕이는 사람들. 다리 밑에 무리지어 모인 유민들을 보았다. 역병에 시달리다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 괴로움은 요괴가 초래한 것이라고, 천녀 언니들은 가르쳐 주었다.
슈텐동자가 도읍이 역병과 기아를 뿌렸다. 도읍에 사는 사람들은 밤의 어둠을 두려워하며, 천자를 지키는 음양료의 박사들고, 지금은 도읍 내부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어쨌든, 나는 도읍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굳이 상세히 둘러볼 생각은 없었다.
하계로 온지 한달 하고도 조금.
나는 아버님이 데려가 주지 않아 요괴 토벌 출진에 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듯, 밤의 도읍을 순찰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이츠카의 허가를 얻은 외출이 아니였다.
저녁식사를 마친 나는 이츠카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며, 내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각여 뒤, 조용해진 저택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몸에 걸친 것은 창고 속에서 발견한 주황에 보라색 옷. 볏짚을 묶은 나기나타. 겨우 어린애라고 웃음을 사지 않을 키가 된 나다. 나기나타를 잡아도, 그 크기에 휘둘리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도읍 구경이 아니라, 나는 요괴와 싸우기 위해 도읍의 밤을 배회했다.
이 도읍에는 음양료라는 조직이 있다고 한다. 자세한 이치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술자들이 모여, 그 술로서 밤낮을 가리지않고 도읍을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도읍의 중심부, 천자가 사는 궁궐에는 요괴가 나타나지 않는다. 궁궐을 중심으로 한 도읍의 중심부 역시 또한 안전하다. 그리고 거기서 멀어짐에 따라 보다 많고 강한 요괴가 나타난다.
도읍의 이 일대는, 아직 그 수호술의 힘이 강한 탓에, 큰 요괴는 나오지 않는다.
허나, 그렇기에 그물망을 벗어난 자잔한 물고기가 있듯이, 어둠에 감싸인 이 도읍에도 자그만한 요괴가 나다니는 일이 있다. 테메보우즈(手目坊主)와 오니와라(鬼ワラ)라고 하는 저급 요괴가 주택 그림자나 다리밑에서 불쑥하니 기어 나와서는 바보같은 차림새로 춤추며 도읍을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것 자체는 바로 큰 피해를 부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약한 요괴에겐 집을 무너트릴만한 힘은 없고, 도읍의 사람들은 밤이 되면 문을 꼭 닫고서 결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침해가 뜨면, 테메보우즈같은건 모래처럼 사라지고, 오니와라는 잡동사니가 되겠지.
도읍을 지키기위한 위사들도 순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친것 마냥 개를 울부짖게 만들 수도 있고, 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정뱅이를 죽일 수도 있다. 방치해두면 뭉쳐서 보다 강한 요괴를 불러들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도읍의 야음 속에서, 위사와 함께 나기나타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였다.
밤의 도읍으로 향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천왕도 요괴의 출현에 팔짱만 끼고 있는건 아니였다. 병사나 위사들로 대오를 짜서 도읍을 순회시키는 것 말고도,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검사나 술사를 널리 모아, 도읍 방어로 돌리고 있다. 수도 사방에 나뉘어진 마을에는 각자 자경단이 조직되어 교대로 밤 순찰을 돌고 있다.
나도 그런 무사의 하나라고 생각되고 있는 모양이였다.
아직 키도 그리 크지도 않고, 몸도 말랐지만, 지금의 도읍에서는 치료술(お地母)만 쓸 수 있으면 최저한의 실력이 있는 술사라고 생각되는 모양이였다.
가면으로 얼굴을 감춘 내가 밤의 도읍에서 싸우기엔 아무런 부자유가 없었다.
요괴라고 해도 그 실력은 천차만별. 오오에 산에 있다고 하는 그 수괴, 슈텐동자에 비교하면 이 도읍의 밤에 나타나는 것은 피래미나 마찬가지다. 아직 한참 어린 나라도 싸울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부상을 입는다해도, 내 졸렬한 치유술로 어찌할 수 있는 정도.
오니와라나 테메보우즈는 기합을 넣은 한번의 휘두름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로쿠로 고젠(ろくろ御前)은 그보다는 다소 버겁지만, 다소다.
인기척이 사라진 도읍의 대로를, 나는 커다란 나기나타를 질질 끌듯이 달려나간다. 달리고, 가속하여, 요괴의 눈 앞까지 가서 그 공격 아래를 파고 들어 몸을 뒤집는다. 그러면그 뒤엔 원심력이 실린 나기나타의 칼날이 대개의 적을 양단해 준다.
요괴의 기를 받아 내 나기나타는 서서히 더 날카로워져 가는 것 같았다.
아버님이 출진한 것은 엇그제였다.
구중루(九重楼)라고 불리는 요괴의 소굴로 떠나셨다. 저택에 혼자 남겨지는 것은 몹시 괴롭다. 그것은 밤의 도읍으로 나가, 약간이나마 싸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내게는 더더욱.
그러니까 그날의 나는 평소보다 날이 선 상태로, 틀림없이 굉장히 무방비했다.
몇 십마리가 넘는 요괴를 사냥했다.
도읍의 결과는 확실해서, 나약한 요괴밖에 없단 것을 알고 있던 나지만, 그럼에도 약간이나마 우쭐해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백귀야행이라는 말이 있다 시피, 요괴의 특성은 무리를 지어 강해지는 것. 한데 뭉쳐 보다 상위의 요괴가 되는 것인데, 나는 무리를 벗어난 요괴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그들의 피를 뒤집어 썼다.
요괴를 쓰러트리기 위해 도읍으로 보내졌건만, 아버님은 나를 토벌에 데려가주지 않으셨다.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그것은 전에도 들었던 그 말이였다.
뭐가 이른걸까. 이 도읍에 내려선지 벌써 1개월 하고 반. 때는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부조리한 처사가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요괴를 토벌하기 위한 일족인데, 요괴를 토벌하는 것을 금하다니.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은 나같은 것을 일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한심하게도 다리가 떨리고, 눈물이 번졌다. 동료취급 받지 않는건, 싫다.
어머님한테서 떼놓고, 천녀 언니들한테도 떼놓여져, 지금 이렇게 아버님한테서도 떼놓여진다면 대체 뭣떼문에 태어났는지 모르게 되지 않은가. 부조리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횃불의 불빛이 가까워지는 것을 깨달은 나는, 능왕(陵王)의 가면을 썼다.
이 가면은 창고에서 발견한 걸 남몰래 빌려온 것이다. 낡은 깃털장식이 붙어있는 이 가면은, 용의 머리를 본땄으나 척 보기엔 용이라기보단 새의 일종으로 보인다. 상자에 담겨져 있던 책자에 따르자면, 외국의 무장이 뒤집어 쓴 가면을 참고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무장은 여성과도 같은 면면을 지니고 있었기에, 검 솜씨는 달인이였으나 적군들의 놀림을 받아 싸움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용모를 감추기 위해, 용의 모습을 딴 가면을 쓰고 싸웠다고 한다.
이어 횃불 일행은 내게로 다가와 "여어"하고 강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위사들과 평무사 집단이다. 순찰을 도는 거겠지.
"오늘도 무사수행이야? 댁도 열심이로군."
수염을 대강대강 기른 위사가 그렇게 말했다. 그 얼굴은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안심했으나 그들에게 그닥 접근하지 않도록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마음이 풀리자, 급작스레 부끄러워졌다. 오늘밤의 나는 화풀이 기미로, 아직 1각도 싸우지 않았건만 먹물 같은 피와 먼지 투성이였다.
"오늘은 요괴가 많은걸."
그렇게말하며 그 위사단의 두목은 내게 물통과 젖은 수건을 건네주었다.
나는 감사히 그걸 받아 들고, 목이나 손을 닦는다. 그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반성하고 있었다. 요괴와 싸우는 것은 좋으나, 이런 추태를 보여서야 미사사기 일문의 이름에 흠이 간다. 물론 나는 이렇게 가면을 쓰고 있고, 정체를 밝힌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젊은 처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부터는 가슴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아가씨답게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끄덕하고 고개를 끄덕인 내게서 물통을 받아든 두목은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크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였다. "어린애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게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능왕(陵王)의 가면 뒤에서 겁에 질려 있던 내게 "그만큼 싸우면 여기선 어엿한 어른이야"하고 말해주었다.
내가, 이 수염 두목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다.
"불을 켜자구. 어이"
두령의 목소리에 위사 하나가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대로 옆에 나있는 버들나무 아래에는 위사가 숙직에 쓰기 위해 설치된 조잡한 대기소와, 봉화대가 있었다. 횃불로 불을 붙이자, 송진이라도 배여놓았을까, 얼마 되지 않아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흥미깊게 지켜보고 있자니, 위사 하나가 호리병을 내밀어온다. 나는 그것을 목을 어저 사절했다. 그 안에는 기분을 북돋우기 위한 술이 들어 있다. 지난번에 모르고 마시려다가 크게 사레가 들렸다.(물론 가면 안쪽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침하던 나를 보며, 수염 두령을 비록해 위사 일동이 대 폭소 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가씨는 아직 술은 안됐었지"
"아깝게 시리"
"뭐어, 됐어. 머잖아 마실 수 있을거야."
"너는 자기 몫이 주는게 싫은 거 뿐이잖아."
"맞아"
넉살 가득한 젊은 위사의 대답에 웃음 소리가 터졌다.
그렇게 웃으며, 난폭하게 내 머리를 휘젓는다. 거친 동작에, 마음이 반쯤 울컥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미묘한 기쁨에 쌓였다.
여기에 모인 것은, 순수한 인간이다. 위사나 병사로서 전투 훈련을 받았으나, 그 힘은 신의 피를 잇는 나에 비하면 모자라다. 실로 일행을 거느리고 있는 두령역시 정면으로 싸운다면 아직 꼬마계집에 불과한 내게도 미치지 못하겟지.
하지만 반면, 도읍을 지키는 동료로서 나를 봐주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이 가면을 벗으면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아버님이 전장에 데려가주지 않아 혼자인 내게 있어서, 두령과 위사들은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동료와도 같았다.
천궁에 있던 무렵부터, 도읍의 사람들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처럼 천녀 언니로부터 그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도읍을 수호하고, 요괴를 무찌르는 것은 우리들 일문의 사명.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위사들은 쾌활하고 강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유리거울로 하계를 살피며, 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럽다. 이 도읍에는 이처럼 활기찬 사람들이 몇천명이나 살고 있는 것이다.
따뜻하게 뎁힌 밥이 배급되자, 약간 입에 댄 뒤, 도읍의 풍문을 하나둘 듣고 있을때, 저 멀리 희미한 바람이 우는 소리 같은게 들렸다. 흐릿하게 늑대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는듯, 기분나쁜 바람이였다.
우리들은 대화를 끊고, 귀를 기울였다.
모닥불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타올랐으나, 그 주황색 불빛은 고작 돌멩이 하나밖에 비추지 않는 범위다. 멀리 있는것은 밤하늘을 떼어낸듯한 어둠의 능선이였다. 그리고 그 능선을 찢어 가르듯 우뚝 선 그림자.
"구중루야."
"그렇군."
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의 울부짖음은 그쪽에서 들려온 기분이다.
"요괴들도 술렁 대겠지."
두령은 호리병에서 술을 한 입 들이킨뒤, 소매로 입가를 비볐다.
"어째섭니까?
나는 의문스럽게 생각해서, 그쪽을 향해 물었다.
"미사사기가 출진했으니까."
무심코 질문한 내 가는 목소리에, 두령은 별 수 없다는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주위 위사들은 숨을 삼키며 역시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한다.
나는 가족 이외의 사람으로부터 처음 들은 미사사기의 이름에 흥미진진한 상태였다
"미사사기라아…."
"도읍 외곽에 살고 있는 요괴의 일족이라는 그거?"
요괴?
"흉흉한 소릴. 요괴처럼 강할지도 모르지만, 요괴는 아니잖아."
"아니, 요괴지. 알아? 미사사기의 검사는 혼자서 귀계의 요새로 향했다는 모양이라구?"
"헤에? 그럼, 이번에도?"
"아아, 그런 모양이야."
그건 사실이다. 아버님은 홀로 구중루로 향했다.
"나는 미사사기 공의 검을 본 적이 있어. 마치 나무잎이라도 썰듯이 쉽사리 호리(狐狸) 요괴를 베더군. 그건 달인이란 말로도 부족해."
"그 쪽은 텐도 히루코님의 신탁이 내리신 일족이라고 하니까 말야."
나는 자신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날 두고 출진하신 것에 불평을 흘리고 있던 나였건만, 이렇게 아버님의 무명을 칭찬하는 말이 기뻐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구중루에 사는 어중이 떠중이 요괴들은 미사사기 공의 검을 두려워하며 달아나겠지. 그래서 오늘밤은 소란스럽다 그거다. 아가씨도 베었나?"
나는 두령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칫, 분한걸. 우리들은 도읍에서 집보기인건가."
"그런말 하지마. 재능이 다르다구."
"그래, 역할분담이지. 미사사기 공은 귀계의 요새를 공략하고 우리들은 그 동안 도읍을 지키며 힘을 비축한다."
두령의 목소리에 일행은 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나는 안개가 개이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랬다. 실력이 다르다면 다른 역할을 짊어지고 싸우면 된다. 지금 이렇게, 아버지가 놓치신 요괴를 우리들이 도읍에서 물리친 것 처럼. 만약 아버님과 함께 출진했다해도, 아버님을 보조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그렇게 싸우면 된다. 그 새로운 생각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음양사들도 새로운 력(暦)으로 별을 샌다고 하더군."
"새로운 술법인가."
"년이 달라지면 동쪽 나라에 가있던 병사들도 돌아오겠지. 그러면 조금 풍향도 달라질거야."
자신의 생각에 열중해있던 나는, 아무래도 화제를 몇개 놓쳐버린 모양이다. 위사들은 아무래도 전력의 보급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새로운 술이라고 하면, 나도 아직 습득하지 못한 술법이 몇개 있다. 미사사기 일문이 지니고 있는 오의나, 술법에 대한 서적은 전부 봤으나, 몸에 익힐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나 하기 나름이다. 이츠카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안, 좀 더 정진하겠습니다."하고 마음 속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건 그렇고, 연초에 병사들이 돌아온다니, 꽤나 태평하고 느긋한 얘기다. 무슨 소릴 하는건지 모르겠다.
아직 봄이고. 평생 요괴와 싸우며 보낼셈도 아닐텐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슈텐동자를 쓰러트리고 끝이다.
그러지 않으면, 늦고 마는데.
"그렇지. 우리 아이는 아직 5살이야. 그녀석이 크게 자랐을 무렵쯤에는 조금이라도 요괴를 줄어 있도록 해야겠지."
아니, 그건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두령은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싸늘한 냉기를 느꼈다.
어째서 냉기를 느끼는 걸까. 이 감각은 뭘까?
이 질문을 생각해선 안된다. 흘러넘겨야한다는 비명같은 조언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그 조언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두령의 말을 떠올렸다.
ㅡ 우리 아이는 아직 5살이야.
균열은 커지고, 질척하고 차가운 물이 나음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차가운 물은, 밤의 계곡처럼 차갑고, 검게, 내 발치를 휘감는다.
좀 전까지의 밝은 기분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5살이라니, 죽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 자라날 5살이라니, 도리에 어긋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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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각주등은 챙길 여력이 없네요^^ 나중에 시간되면. 등장하는 요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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