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체를 넘어서 가라]
기념 노벨라이즈
게임 공식홈
작자 : 토노 마마레(공식홈)
노벨라이즈 발매는 제반사정으로 인해 미뤄짐
아무것도 않고 보내기엔 조금 길고 지루하다.
뭔가를 뒤쫓으며 그를 손에 넣기에는 시간 부족으로 늦고 만다.
스님 말씀이 그런 느낌인 모양인데, 그거 꽤나 태평한 얘기 아닌가? 50년이나 있으면 손에 넣지 못할건 없겠지.
50년 정도나 있으면 모래사장의 모래갯수도 셀 수 있고, 당천축(唐天竺)에도 갈 수 있잖아.
그러니까 녀석들은 너무 느긋하고 태평해서 틀려먹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억새들판을 빠져나가, 길은 천천히 구부러지면서도 이어 작은 산쪽으로 이어져있다.
나는 그 안을 종종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짐 안에는 선물이 있다.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 공기 속에는 빛이 넘쳐고 있답니다~라고 한다. 왠지 모르게 괜히 기분이 좋아서, 달리고 싶어진다.
도읍은 사방이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에 있지만, 그 분지가 평평한 것은 아니다. 몇 줄기의 강이 흐르고, 여기저기에 패인 지형이나 솟은 지형이 있다. 못에는 개구리가 살고, 솟은 지역은 나무가 우거진 잡목림이다.
도읍이라고 해도, 큰 대로가 뻗어있는 것은 한가운데 뿐.
그 주위는 전부 야산이다.
그 안을 나는 기분 좋게 걸어 간다.
요괴가 나타나니 보통 녀석들에겐 무리겠지만, 일족인 내게는 아무 문제 없다.
슈텐이 나타나고 나서 이쪽, 도읍 인근은 점점 더 위험해져 가고 있다던가? 뭐, 나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야산의 괴이는 요괴라기보다는 손발이 달린 연기같은 것이다. 요괴의 요새로 쳐들어 가는게 아니라면 나기나타를 들 필요조차 없다.
그런 내가 걸어가는 곳에, 울창한 나무 숲이 보인다.
이 일대는 언덕처럼 되어 있고, 나무들 사이로는 참배길이 숨어 있다. 그래, 신사다.
내 주위 일대에는 억새들판에 강가, 도읍과 셋츠(摂津)를 잇는 길. 주위에 있는 것은 그런 풍경이기에, 이 참배길은 완전히 황폐해져 있다.
황토 속에서 고개를 내민 가로대들은 산길을 올라가기 쉽게 만들 요량으로 심어둔 모양이지만, 축축한 탓에 발치가 불안정해진다. 짚신 엄지 발가락에 힘을 싣고 나는 올라간다.
산이라고 말할 정도로 크진 않다. 고작 울창한 잡목림 정도다.
하지만 참배길에 들어서고 나서부턴 확실하게 온도가 내려간다. 이것도 신기라고 하는 려나.
일단 썩어도 신사라 그거겠지.
경내로 들어서자 두텁게 깔린 자갈밭이다. 이것 덕분에 부지 안이 잡초로 무성해 지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토리이는 칠이 벗겨져 있지, 중요한 건물 쪽도 두고 볼 수 없이 신사는 참담하지, 그 주위를 에워싼 수풀도 엄청났다. 낮인데도 신사는 어딘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이곳은 버림받은 폐 신사다.
나는 그 신사 안으로 척척 들어갔다.
일단 살고 있는걸로 보이는 사람과는 아는 사이니까, 더 이상 긴장 같은건 안 한다. 할 여유도 없으니까, 그런건 옛저녁에 포기했다.
어깨에 짐을 매고, 꾸물꾸물 참배전으로 다가간다.
이유는 둘. 첫째로는, 부근은 이미 바닥이 망가져서 위험하니까. 둘째로는, 너무 흥을 내다가 신난 발걸음을 들킬지도 모르니까.
비교적 손상이 적은 뒤쪽으로 빙 돌자, 예상대로 거기에 목적으로 했던 여우가 있었다.
"아아, 뭐야. 또 그 어린애가 왔네."
"시꺼."
"다짜고짜 시끄럽다는 말이 나왔네. 아아, 싫어라. 시누이같은 어린애야."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할망구."
"큭. 이 아이, 무시해도 될까? 아니아니, 가여운 아이를 무시하는건 안 좋을지도 모르겠네. 뒤틀린 근성이 바로 잡힐지도 모르고."
나는 그 여우ㅡ 여자의 옆에 걸터 앉았다.
마을의 풍경은 거짓말처럼 끊겼으나, 그 일대만은 반짝반짝한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그 빛 속에 투명하게 빛나는 요괴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자청색의 예복에, 주황색의 띠, 소매의 문양은 등나무일까, 매화일까.
억새밭 같은 황금색 머리칼이 강물처럼 흘러내려와 탐스럽고 부드럽고 커다란 꼬리와 이어져있다.
커다란 여우귀와 황금색 머리장식, 거기에 비색의 비녀.
그런 선명한 의상을 두른 몸은 가늘고도 부드러워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 얼굴 역시 늠름한 눈가를 붉게 칠한 미인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미적 감각이란건 있다.
이래봬도 출생은 천궁. 말하자면 고귀한 태생이라 그거다.
천녀들의 보살핌 아래 자라왔으니 미인 내성은 있다. 하지만 그 천녀에 비교해도 미인이라고 생각되는게 이 입 더러운 여우 누님인 것이다.
안 좋게도, 여우 요괴에다가 유령이지만.
"어이."
"……."
"어이~"
"……"
"뭘 무시하는 거야."
"갑작스럽게 나타나놓고 말버릇 안 좋기는. 이쪽은 어른의 태도로 무시를 하거나, 아니면 머리 나쁜 어린애를 박애적인 태도로 좀 더 무시해줄까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결국엔 무시야?"
"어라, 불만이야?"
"보통 싫지."
"그럼 내가 참하게~ 말 걸어 줄게. 그 대신 바늘로 입을 꿰매도 돼?"
재봉질을 하듯이 손가락을 휙휙 움직이면서, 오콘은 그런 소릴 한다.
오늘은 꽤나 기분이 안 좋은듯, 입술을 깨죽이면서 아아, 싫다 싫어. 요샌 참 예의도 모르는 애들이 많이 늘었어. 옛날엔 이러지 않았는데 등등, 비아냥을 흘리고 있다.
이건 그건가.
할망구라고 말한게 잘못이였던건가.
그렇지만 별 수 없잖아.
오콘은 분명 나보다 아득히 연상이다. 아마, 어머니보다 몇십배나.
가는 손가락같은걸 뺨에 대고, "아아~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둡네~ 이러니까 나도 목을 매지~"라고 말하는 오콘은 이렇게 보여도 분명 50세 이상.
어머님보다 연상이면서 이런 미인이라니 너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저기 말야.
"날이 부쩍 추워졌네."
"……"
대화가 전혀 이어지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났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냈다. 유부 초밥이다.
이츠카가 점심밥이라며 만들어 준거다.
이츠카의 유부 초밥은 오콘이 좋아하는 거니까, 이걸로 기분을 풀어 주겠지.
그러니까, 나는 대나무 잎으로 싼 유부 초밥을 오콘쪽으로 내밀었다.
오콘은 귀를 실룩실룩 거리며 이쪽을 보려하지 않으려 하지만, 쥘부채로 미묘하게 입가를 가리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분명 유부 초밥을 눈치챈거다.
"저 말야."
"오콘씨"
"네이네이. 오콘씨, 오콘씨."
자신한테 왜 "씨"를 붙이게 하려 드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항상 신세 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담아서, 오늘은 유부 초밥을 가지고 왔습니다. 맛을 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콘은 책 읽는 말투로 그렇게 말한다.
이건 그거다.
나보고 따라하란 말이지? 시선을 뜰 쪽으로 던지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나는 그것을 확신했다.
나는 말하고 싶다.
왜 찬을 갖고 온 내가 "맛을 봐 주시지 않겠습니까?"같은 바보같은 소리를 해야하는건데. 그것도 "오늘은"이 아니다. "오늘도"다.
애당초 따지고 든다면, 나는 한번도 오콘에게 신세를 진 적이 없다.
"뭐야, 말하는 법 까먹었어? 방금전까진 시끄러웠던 주제에."
모자란 아이네~,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오콘은 어깨를 으쓱인다.
이 여우, 정말 열받기는.
"아니. 이건 내 점심 식사야."
"헤에."
그리고 말이 없어진다.
오콘은 그 이후로, 등을 쭉 펴고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내리 깐뒤, 얼어붙은듯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매끄러운 얼굴선이 정말로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상태 그대로 멈춰있다.
열받는다. 이렇게 나오면 난 정말 곤란하다.
왠지 가슴이 불안하고, 울고 싶어지고, 시답잖고, 곤란하고 또 불안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나는 결단코 잘못한게 없는데, 왠지 사과하게 되고 마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열이 받지만, 그런것보다 오콘이 기쁨도 분노도 아닌 그저 얼어 붙은 듯 아름다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게 몹시 싫은 것이다.
그건 잘못 되어 있는 기분이 든다.
"먹어."
여우는 그 말에, 시선을 내리깐채로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숙하다고 하면 되려나? 눈꼬리에 바른 붉은 색이 아름다워서, 살짝 넋을 놓을 뻔 했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무표정하고 인형같은 모습으로 내 말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나는 왠지 불편해져서, 신음처럼 말을 쥐어 짜낸다.
"항상 신세 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담아서, 오늘은 유부 초밥을 가지고 왔습니다. 맛을 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알고는 있지만 딱 잘라낼 수 있는건 아니다.
아아, 열받아.
마음 속으로 여우를 실컷 욕해줬으나, 오콘은 들은채도 않았다.
"그럼 먹어 줘 볼까나."
정말로 얄미운 소리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금 전 보단 훨씬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내기에도 너무 긴 그 시간은, 이미 끝나버린 듯한 얼굴을 한 여우를 보며 지내기에도 너무나 긴 것이다.
그럼에도 유부 초밥 하나를 두 손으로 쥐어 들고 입가로 가져가는 여우를 보며, 나는 말했다.
"일도 안 하고 먹는 초밥은 맛있습니까?
"나는 이래봬도 열심히 일해. 과거 얘기지만……."
흐응.
유령이 되면 일하고 말고도 없지.
"눈매 더러운 어린애네~. 기분 나빠지니까, 내가 초밥을 먹고 있는 동안 경내를 청소하고 와도 되는데?"
"왜 청소해야 되는 건데."
"그런 얼굴 하고 있어서."
"청소 하고 싶은 기분 아냐."
"청소하고 싶어하는 얼굴이 아니라, 청소에 딱인 얼굴을 했다 그 말이야."
자그마한 입으로 초밥을 먹는 여우는, 행복한듯 눈을 가늘게 뜨며 그리 말했다.
정말이지 변변찮은 여자다. 얼굴이 아무리 미인이래도, 이런 여우는 제일로 틀려먹었다. 시집도 못간다는 말, 분명 딱이다. 뭐어, 옛날에 결혼했던건 알고 있지만.
뭐어 애당초, 이쪽도 지지는 않고, 받아친다. 햇볕을 쬐는 것 밖에 못하는 늙어 빠져 살날도 얼마 안 되는 여우랑 달리 이쪽은 활기발랄하니까, 청소같은거 할 여유같은건 없다고.
"식사 중인데 참 시끄럽네. 무시해 버리자."
"어이."
그렇다곤 하나, 이 여우 누님은 항상 그랬다.
"으음…"
여우 오콘은 입가를 소매로 가려가며 초밥을 먹는다.
매우 맛나게 먹는 것이다.
그녀는 미녀지만, 어느쪽이냐고 한다면 조금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눈꼬리는 올라가있지, 표정도 옅다. 눈가를 붉게 칠하는 화장이 몹시 어울려서 아름답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다가가기가 어렵다.
그런데 유부 초밥을 먹고 있을때에 한해서는 눈을 실처럼 가늘게 뜨고 황홀한 표정을 하는게 비겁하다.
"맛있나 보네."
"그냥저냥해."
오콘이 그렇게 말하니까, 끄트머리에 있는 유부 초밥이라도 먹을까 싶어 슬쩍 손을 뻗었지만, 검은 쥘부채가 극히 자연스럽게 내 손을 내리치더니 초밥을 갖고 가버린다.
"그냥저냥" 한거라면 그렇게 열낼 필요 없잖아.
하지만 오콘은 이쪽의 생각같은건 전혀 게의치 않고, 몹시나 만족스러운듯 초밥을 계속 먹는 것이다.
"애당초 유령 주제에 초밥을 먹는게 말이지."
"난 유령이 아니야."
"아아, 그래? 요괴랬지?"
"역시 입을 꿰매 줄까?"
오콘은 다다미라도 깁는 듯한 동작을 해보인다. 그렇게 손을 들자, 옷소매 자락 아래로 새하얀 팔이 힐끔 보였다. 순간 당황해서, 나는 입가를 꾹 다물었다.
그것은 좀 득 본 듯한 기분이 들지만, 잘 모르겠다.
미인은 좋아하니까 좋긴 하지만.
천궁에 있을때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미인인 천궁의 여관들이 나를 키웠다.
여자친구로 삼을 거라면 머리가 긴 여자아이라고 정해놨다.
유우오우(雄黄) 형한텐 아직 이른 나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런게 어딨어. 유우오우 형은 너무 태평하다.
애당초 우리 일족은 2년도 못가 수명으로 죽어버리잖아.
그 태반을 요괴와 싸우며 보내는 거다.
여자친구를 만들거라면 서둘러야지.
나처럼 원복(元服) 전이라 하나 미인한테 침을 바르며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 아오타케는 도읍이 온 이후로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큰 가게, 직인의 딸, 마을 외곽의 과자 가게, 위사의 셋째딸. 여기저기 꼬시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여자아이는 좋다. 상냥하고 귀엽고, 웃으면 깔깔 소리를 내지, 보드랍지, 좋은 냄새가 나지, 따뜻하지, 달라붙으면 행복해진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인기 있다. 왜냐면 도읍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것 처럼 보이는 미사사기(御陵) 일족의 도련님인 것이다. 소바가게에 가면 파를 꼽배기로 얹어줄 정도로 유명하다.
상냥하게, 그럼에도 좀 멋진척 말을 걸고, 단 것 같은걸 선물하면 여자아이들과 앗 하는 사이에 화기애애해진다. 그 쪽에 대해선 확실히 학습완료다. 딱딱한 유우오우 형과는 다르다.
잘 되지 않는 것은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여우 유령 상대 뿐.
하필이면 그 잘 안풀리는 상대가 제일 미인이고, 탐나는 상대라는것이 한심하다. 이런거 부끄러워서 아무한테도 말 못한다.
"잠깐, 어린애. 너."
"뭐야."
"목 안 말라?"
"그러고 보니."
"자."
나는 오콘이 내민 죽통에서 물을 한모금 마신다.
왜 오콘이 그런걸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령이라도 목이 마르는 건가?
나는 순순히 한모금 마신다. 여유는 사람을 속인다고 하니까, 이것도 말오줌인가 싶어서 내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니, 오콘은 유부 초밥을 또 하나 더 가져갔다. 딱히 빼앗고 그러지 않을텐데. 이런 잔꾀 부릴거없이 전부 먹으면 될텐데.
그러고보니 오콘과 내가 처음 만난 것도 이 신사였다.
초진을 끝마친 나는 도읍 여기저기를 걷고 있었다. 신기했고, 누님을 꼬시고 싶기도 했고, 자백하자면 저택에 있기가 좀 불편했다.
아무래도 나는 일족 중에서도 좀 무책임하고 실없는 존재인 모양이다.
엄마인 와카구사(若草)는 수행자같은 사람으로, 수행을 몹시 좋아한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나기나타 훈련. 나도 나기나타 잡이니까, 억지로 거기에 붙잡혀 큰일이였다. 말수가 적으니까, 우리 엄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애당초 말이지.
나는 하늘에서 자랐고. 길러준 것은 천녀고.
느닷없이 어머니입니다, 잘 오셨군요. 고마워요ㅡ라니. 그런 소리 들어도 곤란하다. 조금만 더 거리감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와카구사 엄마는 썩 요령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랑 얘기할때도 말이지, 긴장해서 말야. 그렇게 굳을거 없는데. 일단 자기 자식인데. 물론 싫어하진 않는다. 와카구사 엄마는 미인이고, 엄마인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뭔가가 그걸 가르쳐준다. 하지만 하늘에서 자란 나는 그런 부분이 좀 어렵다. 그쪽이 어른이니까, 그 부분의 공기, 좀 잘 읽어주면 좋겠는데.
야마부키(山吹) 누나와 유우오우 형은 쌍둥이다.
성격은 정반대면서 화내는 타이밍은 거의 일치. 무척 좋아하고 그 둘과의 사이는 좋지만, 진지하니까 좀 답답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자기네들끼리 너무 사이가 좋잖아.
그리고, 우리 일족의 당주. 그것은 세이지(青磁)씨. 일단 당주님이라고 말하는게 좋으려나.
내 할아버지에 해당 되는 분으로, 요컨데 와카구사 엄마의 아버지다. 그렇다곤 하나, 우리 일족이니까 외모만큼은 젊은 무사 그대로. 기이한 사람이다. 별로 말도 안하고, 항상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
하지만, 강하다. 터무니없이. 사기(邪氣) 속에서도 검을 휘둘러 적을 찢어 가른다. 굉장한 것은, 그럼에도 별로 기합이 들어가 있지 않은 구석이다.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때와 거의 같은 걸음 걸이, 같은 호흡으로 요괴를 벤다. 그런 걸 달인이라고 말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세이지씨는 좋아한다. 나를 귀여워해준다고도 생각한다.
가끔 대련을 할때면, 엄마와 함께 수행하는 것보다도 즐겁다. 강해진 기분도 들고.
뭐, 그래도 마냥 좋기만한 것도 아니다.
세이지씨는 우리 일족의 또 하나의 중요 인물, 이츠카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싸움을 하고 그러는건 아니지만, 이츠카가 있으면 말수가 줄고, 공기가 팽팽한 느낌이 든다. 이츠카는 년중 저택에 있으니까, 자연히 세이지씨는 밖으로 나돌게 된다. 원정에 나가지 않을때엔, 강가에서 낮잠이다. 나도 따라 저택을 나서는 일이 잦다.
하지만, 낮잠 상대만 하는 것은 도리여 피곤하다. 왜냐면 난 아직 젊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고, 이것저것 사먹고 싶고, 즐거운 일도 하고 싶다.
많은 것들을 보고 싶다.
뭐어, 우리들은 숙명의 일족이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보고 돌아다닐 시간같은거 없다는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눈을 감는단건 실로 사양이다. 음식을 물고 도읍을 걷는 거라면, 하루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은, 설령 잠자리의 생명이라해도 조금 길고도 너무나 지루한 것이다. 어라, 무슨 얘길 했더라.
그래그래. 내가 일족 중에서는 떠 있다는 얘기.
우리 일족은 내가 이런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내향적인 일족이다. 도읍 외곽, 빙 죽림으로 둘러쌓인 커다란 저택에서 살고 있다. 놀랍게도 천황에게 인정을 받은 듯, 다소나마 이름이 알려진 명예로운 무가의 일족이면서.
그런데도 이웃과 친하게 지낸다던가, 도읍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있다해도 이츠카가 심부름 삼아 단골 상인한테 좀 들린다거나, 근처에 사는 아저씨 아줌마가 야채를 갖다주는 것 정도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현관 앞에 야채를 슬쩍 놓고서, 문에 절을 한뒤 돌아간다구? 나무아미타불이라니, 우리들은 부처가 아냐.
물론 그것과 이것과는 얘기가 별개니까, 야채는 먹지만. 야채는 맛있습니다.
일족의 일은 요괴사냥이다. 원정대를 짜서, 달초에 요괴들의 터전으로 외출, 20일 정도 싸움을 거듭하다 돌아온다. 아니면 그 달을 넘어가며 싸운다. 그리고 되면 휴식도 없고, 가혹한 책무가 된다. 그것은 일족의 일이니까, 알겠다.
하지만, 저택에서 휴양을 취하고 있는 동안에도, 일족은 그닥 저택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항상 저택을 빠져나가는 당주 세이지씨조차, 갈데라곤 카모강 근처다. 도읍으로 나가진 않는다.
우리 일족은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을, 왠지 마음 깊이 새겨둔 모양이다.
이유는 모를 것도 없지만.
분명 귀찮은 일이 될거란걸, 마음 속 어디론가 알고 있다.
이쪽은 2년도 못가 죽고 말고. 이상하게 지인같은거 만들어 봤자 왜 그런거냐는 질문이라도 해오면, 뭐라 할 말이 없다. 상대한테도 이쪽한테도 응어리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고작 2년이면 사라질텐데 친구가 된다던가, 연인을 만든다던가. 불성실한거 아냐? 그런 소릴 들으면 "미안합니다"하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틀어 박히는 것도 좀 말이지.
그거 왠지 "졌습니다, 죄송합니다."같지 않나?
왜냐면 이쪽은 2년이면 죽는 거고, 그 책임이 나한테 있는건 아니다. 그러면 다소 찜찜한 기분을 맛보는 거 정도야, 도읍 사람들이 좀 참아달라 그거지.
이쪽도 어차피 찜찜한 기분이니까.
난 잘 알고 있다.
내가 사라질 때, 나랑 친한 사람들 앞에서 나란 인간이 하나 사라진다.
하지만 내 쪽에서 보자면 그건 내 앞에서 나랑 친하게 지내준 사람이 전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1인분 정도의 딱지, 정말 미안하지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그쪽은 50년 정도 쯤은 살 수 있잖아.
그래놓고, 실컷 여기저기 돌아다녀본 결과, 매일 만나러 오는 것이 이 요괴 누님이라서 우습다. 거의 동족같은 존재다.
"뭘까나, 이 어린애는. 뭘 히죽히죽 거리는 거니, 기분 나빠."
"기분 안 나빠. 상쾌하게 미소한것 뿐이잖아."
"스스로 상쾌하다느니 미소라느니 떠드는 어린애, 난 기분나쁘다고 생각해."
"큭"
깨닫고 보니, 오콘 누님은 유부 초밥을 전부 다 먹어치우던 참이였다.
"혼자 다 먹은거야?"
"나한테 주는거 였잖아?"
그렇긴 한데.
"나한테, 주는 거였잖아?"
의미심장히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하는 여우를 보며 나는 고개를 그떡인다. 왠지 적당히 얕잡히는 것 같아서 불쾌했지만, 그건 뭐 사실이니까 별 수 없다.
"후우"
햇살 속에서, 여우의 꼬리가 흔들흔들 흔들린다. 억새처럼 마른 풀색을 한 복슬복슬하고 훌륭한 꼬리다. 오콘 누님은 여우의 권속이니까 여우 꼬리를 갖고 있다. 그녀는 그대로 눈을 가늘게 뜬채, 경내의 뜰 쪽을 보고 있다. 배가 부른 건지 졸린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쪽은 완전 무시다.
"아아, 초밥도 다 먹었는데. 이 짜증나는 어린애 얼른 안 돌아가려나."
나한테 다 들리도록 중얼거리는 것은 성격이 나쁘다는 증거지만, 표정만은 부드럽다.
오콘 누님은 유부 초밥을 먹은 다음엔, 기분이 좋아진다.
이쪽에는 시선조차 주진 않지만, 꼬리만큼은 유혹하듯 흔들흔들 흔들리다 몇번 정도 내 뺨을 쓸고 그런다. 어딘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그 꼬리 하나를 잡아, 베개로 삼아 털썩 누었다.
여우는 불평하지 않는다.
항상 그랬다.
"아아, 좋은 바람이네."
반쯤 투명한 유령주제에, 꼬리만큼은 복슬복슬 따스해서, 잠이 몰려든다.
"너, 내가 어정쩡한 상태라 다행이네. 이래봬도 나는 무서운 재앙신(祟神)이니까 말야. 그런 존재의 꼬리를 베개로 삼다니, 진짜라면 적지옥(赤地獄)에서 불타고 있었을껄."
그 밉살스런 말도 말투는 몹시 부드러우니까, 나는 그만 말하고 말았다.
"저기저기. 당신, 내 여자친구가 되어주지 않을래?"하고.
"난 어린애, 딱 질색이야."
대답은 정말이지 가차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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