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체를 넘어서 가라]
기념 노벨라이즈
게임 공식홈
작자 : 토노 마마레(공식홈)
노벨라이즈 발매는 제반사정으로 인해 미뤄짐
왠지 모르게 알고는 있었다.
신의 피를 잇는, 선택받은 일족.
선택받았다는 것은 즉 다르다는 의미다.
인간의 아이와는 다르다는 의미.
슈텐동자의 저주라는 말도 들은적 있었다.
천녀 언니들은 내게 다정했지만, 그건 어딘지 도가 지나쳐서, 항상 격려하는 느낌, 항상 과하게 신을 내고 있는 듯한 기미가 있지 않았던가.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츠카가 신중히 피하는 화제가 있다는 것을.
그 저택안에서는 내년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아직 이르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내겐 시간이 없다.
평범한 아이들은, 3개월이나 4개월 갖고 싸울 수 있게 되지 않는다.
평범한 아이들은 태어나 반년만에 어른이 되고 그러진 않는 것이다.
나는 아마, 3년을 살 일은 없겠지. 분명 아버님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자라날 5살 어린애가, 커다란 입으로 웃는 그 위사 두령의 갓난 아이가, 도리에 어긋나 있는게 아니다.
내가 도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어느샌가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내리퍼붓는 호우속을 나는 달리고 있엇다.
전신을 차갑게 두드리는 억수같은 빗줄기도 나를 붙잡을 순 없었다. 어둠 속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퍼붓는 빗속에 섞여, 나는 달렸다.
질척한 발치에서 튀어오르는 진흙에 나는 바로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어디에서 입은건지도 모를 상처에서 흐르는 끈적한 피는, 그 진흙과 뒤섞여, 나는 자신의 몸이 진창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밤중의 비를 흡수한 옷은 몸에 들러붙어 불쾌했으나, 그 차가움 그 자체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아무리 퍼올려도 끝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열기에 내몰려 나는 달렸다.
울면서 겨우 나는 이해햇다.
내게는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를 지탱하는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요괴를 퇴치하는 검.
신의 피를 이은 일족.
한치의 흔들림 없이 도읍을 지키는 수호자.
그런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호탕한 위사대장이나, 만난 적 없는 그 5살짜리 어린아이가 보면, 나 역시 요괴인 것이다. 어둠 속에 나타나 어둠속에서 요괴들과 싸우며, 그리고 바로 사라져간다.
그건 됐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해주길 바랬다.
천녀들에게. 이츠카에게. 아버님께. 그리고 그 누구보다, 한번도 뵌 적 없던 어머님께.
그러면 뭔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나는 거칠게 울부짖는 폭풍 속을 달렸다.
지면은 발밑에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멀리 뒤쪽으로 멀어져갔다.
길이 끊긴걸까, 어느샌가 나는 낭떠러지를 헛디디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려,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덤불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거진 덤불을, 미친듯 나기나타로 베어 넘기며 내달렸다.
굉음이 울러퍼지는 밤의 폭풍을, 헤엄치듯 내달렸다.
고작 3일만에 일어서고, 10일이면 말하며, 1개월만에 산수를 익혔다.
천녀들의 격찬을 받은 나는, 자신을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엉터리다.
그 증거로, 방금전부터 쫓아오고 있는 어린아이의 울음 소리는 뭐냐.
내 목이 울부 짖고 있는게 아닌가.
격정이 명하는 대로 나는『풍차(風車)』를 썼다. 강력하게 압축된 바람이 전방에 퍼지고, 덤불을 베어넘긴다. 나기나타를 휘둘르며 그 안으로 뛰쳐들어, 어둠을 가르며 달린다.
술은 익힐 수도 있겠지.
잘하면『타치카제(太刀風)』를, 어쩌면『바쇼란(芭蕉嵐)』도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나기나타 실력도 올라가겠지. 지금 쓰러트릴 수 없는 적도, 언젠가는 쓰러트릴 수 있게 되겠지.
하지만, 그게 뭐란 말인가.
그렇다고 해도 누구도 날 칭찬해주지 않는다.
요괴를 쓰러트리면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 구원받는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 증거로 나는 이츠카를 모른다.
이츠카가 왜 우리 저택에 있는지, 뭘 괴로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명랑하고 다정한 이츠카는, 결국――인간인 것이다. 이츠카는 몇년만에 죽고 그러진 않는다.
아버님도 모르겠다.
왜 아버님이 매일 그렇게 느긋히 지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며칠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제일로 모르겠다.
왜 신의 피를 이은 건지, 모르겠다.
내 몸은 특별하다. 바보같은 이야기라고 웃을 수 밖엔 없으나, 쏟아져 내리는 빗 속의 먹물보다 검은 어둠에서조차 주위가 보이는 것이다. 내 다리는 가시덩쿨로 뒤덮인 산의 사면조차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몸과 달리 전혀 신의 힘을 얻지 못했다.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것조차 견디지 못해, 나뒹구는 꼴사나운 꼬마계집 하나가 있는 것 뿐이다.
왜 나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 선택받은 존재,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들떴던걸까. 괴로웠다. 아팠다. 피가 흘러 식어가는 몸 보다도, 더욱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마음 속에 있었다. 내게는 그 피를 이어받을 자격같은거 없는데.
목소리가 쉬고, 뜨거운 호흡만이 목을 떨게하는게 고작이 되었을때, 나는 겨우 깨달았다.
미사사기는, 신의 피뿐만이 아니라 저주를 잇는 일족이기도 하다는 것을.
어둠속에 웅크려 앉아, 질척질척 젖은 풀을 쥐어뜯으며 나는 겨우 깨달았다.
나는 그저 시답잖은 꼬마 계집이고, 아무리 애써봐야 도읍의 암운을 혼자서 걷어내지 못한채,
틀림없이, 내달리고, 힘이 다하고, 끝난다.
내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아무 것도 없다. 지금가지는 이츠카나 아버님을, 아주 약간이나마 원망하기도 했었다. 나는 신의 아이인데 왜 그 사람들은 자신의 괴로움을 밝혀주지 않는 걸까하고. 나를 쏙 빼놓고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였다.
입안에 번지는 피와 진흙의 맛이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쇠처럼 삐걱이는 가슴이 가르쳐주었다. 이런 기분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리 없다. 바로 알겠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혼자 맛보고 집어 삼키지 않으면 안되는, 독배였다.
한번 부르짖고 나기나타를 휘둘렀다.
내 안의 질척질척한 마음을 빨아들인 나기나타는 맹렬한 울음소리를 내며 요괴를 베었다. 아마노쟈쿠(天邪鬼) 한 무리가 횡으로 갈라져 빗속에 사라진다.
너무나도 바보같게도, 저주를 받은 내 기술은 극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의미모를 오열을 흘리며 휘두른 나기나타는 전에 없을 정도의 날카로움으로 조우한 요괴를 양단하는 것이다.
도읍에서 달려나온건 얼마만큼이였을까.
며칠은 넘게 달린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밤은 한번도 밝아오지 않았다.
밤이 오면 아침이 온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그런 도리조차도 미사사기 일족을 싫어하는 것일가. 여명이 오지 않는 어둠속을 달리고 달리고, 날듯이 달려서.
붉게 칠해진 거대한 문 앞에서 나는 아버님께 따라잡았다.
"아버님."
"이 바보 딸이."
그리고 크게 맞았다.
맞은 나는, 아버님의 옷자락에 매달려, 울음을 터트렸다.
이것저것 해야할 말들이 있었을텐데 나는 무엇하나 입에 담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쿨쩍거릴 수 밖에 없었다.
뭔가 말하려고 할대마다 코 안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흘러넘치고, 두 눈이 눈물로 한가득이 된다. 자신이 이렇게나 흐트러질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나는, 자기자신에게 질리면서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거대한 문 밑으로 들어선 나와 아버님은, 그럼에도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다. 옷에서 뚝뚝 흘러떨어지는 물방울이 내 발치에 물웅덩이를 만든다.
나는 아버님께, 죽는다는 말을 몇번인가 전하려고 했다.
오열이 그치지 않던 나는, 듣기도 어려운 훌쩍거림같은 소리밖에 낼 수 없었지만, 아버님은 알아주셨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손이 내 머리 위에 얹히자 깨달았다.
내가 죽는 것도, 아버님이 죽는 것도, 그리고 그걸 분명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것도, 아버님은 알고 있다.
우리들은 죽는다.
결국은 그 뿐이였다.
슈텐동자를 쓰러트리면 저주는 풀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천녀 언니나 이츠카, 슈텐동자가 한 말. 즉 미사사기 일족 이외의 존재가 미사사기 일족에게 설명하며 떠넘기는 것.
ㅡ 저주도, 신의 힘도, 밖에서 온 것.
그것은 부조리인 것이다. 우리들은 부조리에게 목숨을 빼앗긴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에 내리 퍼붓는 이 폭우처럼, 우리들의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겨우 눈을 뜬건가."
그것은 몹시나 다정한 목소리엿다.
"겨우 일어나, 걸어서"
코를 훌적이며 올려다보니 앞머리를 휘젓는 아버님의 따스한 손바닥 너머로, 아버님의 얼굴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구나."
아버님의 얼굴은 강가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때보다도 훨씬 더 다정했다.
"너는 이제 겨우 선택할 수 있게 되었어."
그 목소리는 강하고, 문의 차양을 때리는 빗소리보다도 더 선명하게 내 귀에 닿았다.
기이한 음악이 들려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안에는 요괴가 있다. 나는 요괴를 무찌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갈거다. 와카구사는 어찌할래?"
처음 들은 아버님의 질문은, 몹시나 따스하며 기이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엇다.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몹시 가벼워진다.
몸 안쪽에 빛이 켜지고, 싸늘하게 식은 피가 따스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가지 좁고 어둡고 참담한 장소에 틀어박혀 있던 마음이, 불연듯 커다란 장소로 나왔다.
아버님의 질문의 의미가, 겨우 내 마음 위로 내려 앉는다.
요괴를 무찌르는 미사사기인 내가 요괴를 무찌르는 것은 당연한 것. 사명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참한 사명이다. 내게 기대하는 것은 그것 뿐이고, 그것외엔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요괴를 무찌르는 것은 내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것은 피인 것이다. 피와 저주의 노예로서, 요괴와 싸워, 그 끝에 쓰러진다. 죽는다. 그것은 괴롭고도 슬프다.
하지만, 요괴는 물리치지 않아도 좋다.
무찌르지 않아도 된다. 아버님의 질문이 그것을 말해오고 있다.
내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아버님은 허락해주신다.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선택의 순간을 얻었다.
그 물음이 나를 차갑고 참담한 장소에서 꺼내주었다.
나는 요괴를 물리치지 않겠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한, 요괴를 물리치는 것은 저주가 아니고, 일족의 숙명이 아니라 내 뜻이 되는 것이다.
내가 요괴를 물리치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는 한, 나는 요괴를 칠 필요가 없다.
나 하나만은 나를 버리지 않게 된다.
그 이유는 마치 화톳불처럼 나를 비췄다. 주위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나는 비로소 내 모습을 본 것만 같앗다.
키도 덜 자란채, 소박한 방어구를 입은 소녀 하나. 미사사기의 일족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그 의미를 깨달은, 보잘것없는 한 사람의 수호자다.
"가겠습니다."
"좋아."
아버님은 걸음을 돌려 문을 빠져나가, 요괴들의 요새중의 하나인 구중루로 향한다.
나는 미사사기의 일족이며 인간은 아닌거겠지.
수명이라는 의미로 보면 이형이고, 싸움 속에서 태어나 분명 싸움 속에서 다 한다.
신의 힘도, 요괴의 저주도, 내 지식을 넘은 부조리다. 항거할 수는 있어도 그걸 없는걸로 만들 순 없다. 아버님에 대해서도 모르겠고, 이츠카에 대해서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만나러 와주시지 않았던 어머님을 떠올리면, 코 끝이 시큰해지는 기분을 몇번이나 맛본다.
하지만 자신이 목숨을 걸 장소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비로소 깨달았다.
죽을 장소는 선택할 수 있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도 아니라, 신의 피를 이었기 때문도 아니며, 천녀에게 그리 배워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 선택의 이유는 오직 나만의 것이다. 그 이유 하에 나는 나기나타를 휘두를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은 내 마음과 마찬가지로, 문 안족 구중루의 앞뜰은 화창했다.
안개에 감싸인 무거운 분위기는 귀계의 것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비 그쳐 옅은 보랏색 빛이 괴여있는 앞뜰은 아침의 기척을 머금고 있었다.
아침의 냄새 속에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키고, 눈을 치켜 떴다.
뇌명과 함께 나타난 땅딸막한 그림자는 지금까지의 요괴들과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척을 풍기고 있다. 이 크기는 틀림없이 이름있는 요괴. 이 탑 입구를 수호하는 문지기 요괴인 거겠지.
"이제는 이르지 않구나."
"네."
나는 아버님의 말에 응하며, 그 등을 뒤쫓는다.
요괴와 싸울 준비가 아니라, 선택할 준비가 된 것이다.
뛰쳐 나가는 내 앞으로,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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