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신사에 기도를 드리러 다녔어. 산 위의 오래된 신사말야. 남몰래 비밀로. 놀란 얼굴 하지마. 그런 참배는 말이야, 비밀로 다녀야하는 법이야. 추운 밤, 실처럼 가는 달빛을 받으며. 돌바닥 위를, 맨발로 다녔어. 거야, 아팠지. 게다가 추웠어. 하지만 그게 좋았던거야. 다리도 손도 쩍쩍 벌어져서, 얼어붙은 듯이 차가워질때마다, 자그마한 불길이 내 마음 속에서 타올랐어. 그 젊은 것 빼곤 아무런 장점도 없는 시시한 계집의 의기양양한 웃는 얼굴이 말야. 나를 살려 준거야."
"손발이 얼어붙을 때마다 생각했어. 나는 이렇게나 고생하고 있다고. 나는 이렇게나 올바르다고. 이런 내 바람이 신에게 통하지 않을리가 없다고. 50발짝 지났을 무렵엔 그리 생각했어. 70발짝 지날 무렵에는, 배가 부푼듯한 기분마저 들었어. 그래서 일까."
나는 기이한 기분이였다.
오콘의 남편 이야기를 듣고, 그의 첩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거니까 좀 더 싫은 기분이 들어도 될텐데. 나는 오콘으로 하기로 정했지만, 그런 오콘에게는 이 남자로 하기로하자고 마음으로 정한 누군가가 있어서ㅡ.
오콘이 요괴 유령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 예상만으로도 짜증과 답답함을 느꼈는데, 지금 이렇게 오콘의 옛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질투하는 기분같은건 하나도 솟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오콘이, 그치지 않는 피를 계속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것이 괴로울 뿐이였다.
"101발짝 지나, 토리이 밑에서 그 어린애를 주웠을땐, 생각했어. 그래, 깜짝 놀랐어? 내게도 말야, 아이가 있었어. 물론 주운 아이였지만. 하지만 이건 내 자식이야. 내 애라고 생각했어. 그치만, 이상하잖아? 달리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데? 그렇게 얼어붙어, 사람도 안 다니는 산골 신사에, 심지어 내가 신사에 들어간 뒤, 토리이로 돌아올때까지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에 그런 조그마한 어린애를 누가 대체 놓고 갔다는 거야?"
"그건 내 거야. 내 아이야. 그렇게 생각했어. 이걸로 구원받는다고. 이걸로 모든게 잘 될거라고…. 바보같은 착각이였을지도. 후후후훗. 정말 그래.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됐어. 내 곁에는 행운이 찾아왔다. 아기를 아이를 내려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답례라고 생각하며 샀던 제비가 1천냥에 당첨됐던거야! 그리고 또 당첨됐어. 그리고 다시 또 한번. 내 곁에는 3천냥의 황금이 날아 들어왔어."
쿡쿡 웃는 오콘은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빼앗겨 한겨울 하늘아래 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오콘에게 걸어줄 말, 내게는 없다.
"정말 큰일이였지. 친척들 일동이 나한테 납작 엎드렸어. 남편도 돌아왔고. 아기에 대한 질문은 받았지만, 내 애라고 하니까 별다른 트집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줬어. 생각해보면 그 뒤 2주 동안이 인생에서 제일로 행복했던 시간이였을지도 모르겠네. 왠지 둥둥 떠 있어서, 부질없는 일들 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매화를, 보러 갔어. 홍매(紅梅)와 백매(白梅)를. 동자처럼 머리를 깎은 쌍둥이가 정말 귀엽다면서 내 애의 자그마한 손을 잡아 줬어."
어두운 밤 속에서 그리움을 더듬는듯 했던 오콘의 꼬리는 수중에 들어오자마자, 결별의 말을 내밀었다.
"하지만 말야, 거기서 끝."
***
깨닫고보니, 오콘의 꼬리 하나가 내 옆구리를 파고 들어와 있었다.
마치 따뜻한 이불처럼 몸을 감싸주는 꼬리 속에서, 나는 오콘의 다음 얘기를 기다렸다. 들어봤자 전혀 즐겁지 않은 얘기였지만, 듣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얘기란 것은, 왠지 알기 때문이였다.
"남편이 말야, 돈을 전부 날치기 해서, 대기시켜뒀던 여자한테로 달아난거야. 나한테는 어느샌가 남편이 져뒀던 빚 문서만 남았어. 내 남편은 말야, 나한테 말했어. 너같은 석녀가 어디서 애를 훔쳐 온거야? 하고. 그 애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말했어. 뭐어, 거야 그렇겠지. 왜냐면 내 손발은 바짝 튼대다, 매일 울며 지낸 탓에 앙상하게 야위어서, 오랜 기간 동안 남편한테 안긴적이 없었으니까 말야."
오콘은 내게 시선을 떨군뒤, 곤란한듯 웃었다.
나는 그것이 싫어 손을 뻗어, 오콘의 뺨에 손을 얹었다.
"손발 매끈매끈 하잖아."
"거야, 여자라면 그정도 기술은 쓰는 법이지. 이세 백분(伊勢白粉)에 침실의 불빛같은거. 머, 너처럼 입만 산 어린애는 모르는 비술이야. 게다가 지금의 나는 요괴야. 평범한 여자가 쓰는 술을 못쓸리 없잖아? 뭐어, 이것도 차후에 얻은 지식이고. 그때는 몰랐어. 왜냐면 나는 그런 저질한테나 걸리는 저급한 여자였으니까."
간지러운듯이 미소짓는 오콘은, 역시 이상했다.
평소 이런 식으로 손 대면, 엄격하게 매도당한다. 실력 행사로 묵사발 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내가 뺨을 쓸어 내려도, 부드럽게 눈을 약간 내리깔다니, 역시 이상하다. 만질 수 있는건 기쁘지만, 그게 나를 굉장히 괴롭게 만든다.
"남편은 말이지. 그 여자를 임신시켰던거야.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저 옥같은 어린애라고 소문으로 들었을 뿐. 분했어. 미웠어. 원망스러웠어…. 결국은 그건가. 그 정도 일 때문에 나는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건가. 나는 빚투성이가 되었어. 이래봬도 상가의 여식이였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 작은 집에서 쫓겨나 단칸방으로 굴러 들어가, 삯바느질로 벌어들인 몇 안 되는 돈도 빼앗긴채, 고계(苦界)[각주:1]로 굴러 떨어질 수 밖에."
"고계?"
"아, 아아. 어린애는 몰라도 될 말이야. 특히 너같은 멍청한 애들은."
뭐가 우스운지 깔깔 웃는 여우는, 그런건 됐다면서 말을 계속한다.
"내가 몸을 맡긴 곳은, 그렇게까지 나쁜 곳은 아니였어. 재주를 파는 정도로 그쳤으니까. 뭐어, 저녁 대개는 말이야. 밤은 잔치자리에서, 낮에는 송사리들의 잠자리에서 나는 매일처럼 녹초가 되었어. 남편이 싫었어. 그 여자가 싫었어. 세상이 싫었어. 거기서 숨쉬고 있는 녀석들 전부가 싫었어. 특히나 싫었던게, 내ㅡ 아이였어."
"기이한 옅은 색 눈을 한 얘였어. 주웠던 날 밤부터, 계속. 나는 한번도 고생해 본적이 없어. 자그마한 어린애면서 한 번도 울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울기는 커녕, 떼를 쓴 적도 없었어. 항상 신비한, 그러면서도 현명해 보이는 호박색 눈으로 말야,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거야. 행복할 무렵엔 좋았어. 어쩜 이리 똑똑한 아이일까. 미래에는 박사나 대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내 아이니까, 그리 거창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안했지만, 때가 되면 서당 한군데라도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 했었어."
오콘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잘 알겠다.
왜냐면 약 반년 정도 전에는, 나 역시 강보에 쌓인 어린애였던 것이다. 천궁의 아이용 침대 위에서, 혹은 천녀의 품에 안긴채, 아직 말도 재대로 못했으니까, 온갖 것들을 그저 한결같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모든게 반짝반짝 빛나고, 신기했다. 나는 모를 기이함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뭘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내게는 손에 잡힐 듯이 아는 것이다.
"하지만, 고계(苦界)에 몸을 던진 다음엔 안됐어. 피곤에 지쳐 돌아오면, 예의 그 현명하고 신비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거야. 이쪽을 빤히 살피듯이. 마치, 나를 품평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번 그렇게 생각했더니, 그 이후론 막을 수 없었어. 나를 보고 비웃는다니, 우스운 소리지. 넌 날 실컷 바보취급해왔었지만, 맞아. 내 머리가 이상해져 버렸던 걸지도 모르겠어."
"눈 앞이 새빨개졌어. 석녀가 낳은 돌덩어리라는 험담을 들은 적도 있었으니까. 나는 그 아이의 뺨을…, 새하얗고 매끈매끈, 떡같이 말랑한 그 뺨을 말야…, 때렸어. 몇번이나. 몇번이나."
그래서 나는 괴로웠다. 그 아이 대신 오콘에게 뺨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겠지. 때린 오콘은, 맞은 아이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언제나 차가울 정도로 단정한 표정이면서, 입술을 깨물고 딱할 정도로 일그러진 눈썹 아래의 눈동자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이렇게 한가득 후회하고 있는데, 오콘에겐 사과할 상대조차 이젠 없는 것이다.
"울잖아? 그게 보통이잖아? 어린애니까. 아무일 없어도 매일 울어도 될 정돈데. 그런데, 그 얘는 울지 않았어.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 바보 취급 당했다고 생각했어. 그 여자는 옥같은 아가를 얻었는데. 나한테 온 것은 울지도 않은 망가진 돌덩어리 같은 애인건가 싶어서. 세상 전부가 나를 무너트리려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울음을 터트리지 않는 아이를 때리고, 때리고……. 동료가 힘으로 나를 저지하니까, 그 동료조차 밀쳐내고, 나는 밤 거리를 달렸어. 겉보기만 호화로운 기녀의 옷을 휘날리며, 억새풀 들판을 달렸어. 달리고 달리고, 울고 신음하며, 저주에 저주를 거듭한 내가 도달한곳은 산에 있는 신사였어."
"바보같은 여자지? 최저인 여자야. 그만큼 심한 꼴을 당해 놓고서 나는 하나도 배운게 없었어.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기는게 신이라니. 아아, 우스워라. 구제불능이란 이런거겠지. 뭘 기도하면 좋을까, 조금이나마 그렇게 생각해버린 난 정말 구제불능이야. 정말로. 아아, 뭐야. 나는 최저인 내가 싫어던 거구나. 그 여자도, 그 여자의 아이도 아니라. 물론 남편도 그 여자도 싫어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돌덩어리 같던 그 얘보다 훨씬 더. 내가 제일 싫어했던 건."
나는 오콘의 꼬리를 꼬옥 끌어 안았다.
떨리는 오콘의 목소리를 부정해주고 싶어서, 한층 더 굳센 말이 나왔다.
"난 좋아해."
"너 말이지. 어린애가 무슨 소릴 하는거야."
"어린애라도 갖고 싶은거 한 둘 쯤은 있어."
"네가 날? 하앙. 질 나쁜 농담은 관둬. 말했잖아? 난 애는 질색이라고."
오콘에게 질색이라는 말을 들을때에는 확실해진다.
나는 역시 오콘을 좋아하고, 오콘이 행복하지 않으면 싫다고.
오콘의 행복은 아마, 햇살 속에서 유부 초밥을 먹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원복전의 내 꿈이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딱히 괴롭힘당하는걸 기뻐하는 성격은 없으니까, 오콘이 나한테 차갑게 구는건 좋아하지 않는다. 미사사기의 사내로서 가슴을 펴고 말하는 것도 부끄럽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를 어르고 응석을 받아주는 쪽이 기쁘다.
하지만, 자신같은거 냅둘 수 있을 정도로, 오콘이 불행한 것은 싫다.
오콘이 인형같은 표정을 짓는거, 보고싶지 않다. 자신을 억누르는 오콘은 싫다. 하물며 자신을 미워하고, 세상을 저주하는 오콘이라니, 절대 그렇게 되는거 보고 싶지 않다.
오콘이 요괴란걸 알고 나서 엄청 고민했지만, 역시 나는 미인이 좋은 것이였다. 요괴라도 미인이라면 바로 반해 버리는 것이 나니까, 정말로 그 부분은 한심하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런 고백을 들어도, 뭐라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자신도다. 그러니까 그 말은 생각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온 언령이였다.
"그런거 바꾸면 되잖아."
"하아?"
"자신을, 좋아하게 되면 되잖아."
"무슨 소리야. 너 못 들었어? 내 이야기."
"그치만 그건 옛날 이야기잖아? 옛날 일은 변하지 않지만, 계속 그래야할 이유같은거 있어? 한번 넘어졌다고 다시 일어서지 말라는 법, 없잖아."
한번 불행해지면 그걸로 끝이라니, 말도 안된다.
그제까지 아무리 행복했더라도, 한번의 불운으로 지옥에 떨어지다니, 그런거 용납할 수 없다.
아니, 설령 지옥에 떨어졌다해도, 한번의 불운으로 떨어진거라면 한번의 행운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옳다.
그러한 울분을 담아, 나는 소리를 높였다.
"그치만, 애를 못 낳으니까 불행해진거라니. 그런걸 어떻게 넘어가."
오콘은 의미를 모르겠지.
하지만 만약,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까. 아이를 가질 수 없으니까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한다면, 미사사기 일문은 누구하나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너무 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처음부터 불행해 지기 위해서 지상에 내려온 것 같잖아.
그런거, 말도 안된다.
"너같은 어린애가,"
"어린애가 아니면 말 못 하잖아."
"……"
"어린애가 아니라면, 이런 바보같은 소리 안해. 제대로 상대조차 안 해주는 여자를 좋아하다니, 바보같잖아. 그런거 됐어. 이유같은거 없어도. 우연이니, 뭐니 그냥 됐어. 어차피 끝난다는건 알고 있어. 어차피 난 좀 두꺼운 촛불을 20개 정도로 빙 둘러 원을 만들어 놓고, 그게 다 꺼지면 끝나는 목숨같은거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알아. 저주받은 일족에 대해서."
그 이후로는 가는 말에 오는 말이였다.
머리 나쁜 어린애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 벽창호라고 대꾸한다.
엉덩이 새파란 병아리라는 말을 들으면, 세상 다 산 아줌마라고 대꾸한다.
달이 높이 떠올라도 나는 전혀 포기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면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거다. 그런거, 나는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여자와 말다툼을 나눌 수 있다니, 그런 기회가 앞으로 몇 번 있을까?
있을리 없다. 매일이, 태어나서 단 한번 뿐인 호기다.
그리고, 매일이 최후다. 그러니까 꼴사나워도 괜찮은 거다.
"그렇게, 그렇게나 신부로 삼고 싶어? 이런 중고가."
"응!"
"왜?"
"미인이니까."
"읏~~! 그거 말고 뭔가 더 없어?"
"으음…. 꼬리가 푹신푹신해서 낮잠 자면 기분 좋아."
"그거 말고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나."
"다음."
"손톱이 분홍조개 같아."
"안됏, 다음."
"목소리가 예뻐서, 듣고 있으면 안심이 돼."
"너 말야."
"좋아한다고 말하잖아. 참 눈치 없는 여우같으니."
"어디서 그런 야쿠자같은 말을 배워 온걸까나. 이 시끄러운 꼬맹이는."
몇 번이나 요청했으나, 몇번이나 거절당했다.
되겠다 싶었는데, 이쯤 되자 나도 쓸 수 있는 수단이 다하고 말았다.
이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즐겁지만, 고개를 끄덕여 줄지 말지는, 오콘 나름인 것이다.
"포기가 느린 어린애네."
"그럼, 됐어."
"이제 겨우? 아아, 진짜. 정말로. 널 상대하다가 밤이 새면 어쩌나 싶어서 진심으로 걱정했잖아. 정말 안절부절했어. 이쪽이 그만큼 꼼꼼히 설명해줬는데. 말귀도 못 알아 듣는 바보 같은 어린애."
"아무래도 안 되겠으면, 날 낳아줘."
놀라 멍청해진 오콘에게, 나는 이번에야 말로 진심으로 부탁했다.
"힘내서 윤회를 속공으로 빠져나 올테니까, 오콘누님이 날 낳아줘. 그러면 나, 힘껏 울게. 그런 것도 숙련이 필요하겠지만, 뭐어, 난 2번째고 말야. 걱정할 필요 없어."
"너……."
"그러면 오콘 누님한테도 제대로 된 애가 생길거야. 나는 좀 못났거든. 무책임하거든. 바로 울고, 보채고. 폐도 잔뜩 끼칠 거야. 수치를 참아가며 남몰래 기저귀 안에다 오줌도 싸줄게. 오콘누님한테 혼나서, 왜 혼났는지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울어 줄게."
"그런ㅡ…"
"피가 어떻게 나올진 모르겠지만 꽤나 난폭한 애로 자랄거라고 생각해. 기는걸 배우면 막지 않는한 여기저기 온갖 곳에 출몰해줄테니까. 부엌에서 뜰앞까지 신나서 어정거릴걸. 밥상을 뒤엎거나, 헛간을 부숴트리거나, 온갖 쓸데없는 짓은 다 저질러서 오콘누님한테 혼나 줄께."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건지, 처음엔 몰랐던 거겠지.
오콘은 아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곧 입술을 깨물고 미간을 모으며, 울음을 터트릴것같은 표정이 되었다.
오콘은 바보취급하고 있다고 화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오콘이 신부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적어도 오콘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러면 오콘은 혼자가 아니게 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니, 거짓말인게 된다.
어린애 같은거 성가시고 시끄럽기만하고 전혀 대단한거 아니라고. 따뜻하고 손이 많이 가고, 부조리하고 떼만 쓰고, 하지만 작고, 필사적으로 오콘에게 매달려 오는 거라고, 가르쳐주고 싶다.
너무나도 불공평했던 오콘의 인생을, 아주 약간이래도 좋으니까 물려주고 싶다. 할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약간이나마 오콘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좀 길고 너무 한가로운 내 시간을, 아마 모자라단걸 알면서도 걸어 보는건 아깝지 않다.
"그리고 배가 고프면 바로 삐질거야."
"쿡."
못 참겠다는 듯, 오콘이 웃었다.
보라색 소매자락으로 입가를 가리듯. 그리고 얼굴을 파묻으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어가며 웃어주었다.
"아아! 아앗. 진짜 바보같아. 그러네. 상대는 애인걸. 어린애 취급하며 신부로는 못 가주겠다고 바보 취급하니까, 어린애로 삼아줘, 낳아줘하는 바보 같은 소릴 듣지. 정말 별 수 없네."
한 차례 웃은 오콘 누님은, 소매자락 사이로 뻗은 손끝을 내게 댄다.
몹시도 투명한 그 눈동자. 새벽녘의 빛 속에서, 나는 그제야 겨우 오콘누님과 시선을 나눌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내 아이가 되어 줄거야?"
"응."
"그리고, 신부로도 삼아 줄거야?"
"오옷"
"요괴인데."
"그건 정해진 거 아니잖아."
오콘은 작게 웃었다.
그 표정은 부드러워서, 역시나 새하얀 달과 닮아 있다.
"그럼 나기나타를 들어. 아오타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에 사로잡힌 혼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사력을 다한 싸움과, 그 끝에 있는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해방하며, 그들의 흘러 넘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리 미사사기 일문의 사명인 것이다.
분명 요괴가 된 요콘과 우리 일족의 저주도 마찬가지일거다.
그러니까 만약 기적이 일어나면, 나와 오콘은 다시 만날 수 있다.
"나는 죄를 저질렀어. 원한을 품고 목을 맸어. 이 몸에는 흑승의 불꽃이 흐르고 있어. 너같은 어린애의 요구에,「네이,그러십니까」하고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하지만 딱 하나 약속할게. 네게 딱 하나만 약속해 줄게. 난 계속 기다리고 있을게. 이번엔 신께 빌진 않을거야. 바보였지만, 네가 찾아 와줬던 날들은 확실히 따스했어. 너는 시끄러웠지만, 나한테는 너같은게 딱 맞을지도 모르겠어. 토리이텐만궁(鳥居千万宮) 안쪽 깊은 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 그러니까. ㅡ 맛나는 유부를 갖고, 내게 구애하러 와."
그 보라색 옷자락은 아침해에 녹아 새하얗게 물들고, 반투명해진 몸은 새벽녘의 공기에 녹아간다.
역시 오콘은 천녀보다도 천녀같았다.
뭔가를 뒤쫓으며 그를 손에 넣기에는 시간 부족으로 늦고 만다.
늦는다면, 거듭한다.
약속을 다할때까지 몇번이고.
나는 발치를 구르는 붉은머리장식을 주워들고 귀로에 든다.
오늘 나는 원복을 맞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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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타케와 오콘이야기가 끝났네요^^ 오콘도 귀엽고 아오타케도 귀여워.
XXX의 어머니로만 생각했던 오콘이 이렇게 귀엽다니..^^.
- 창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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