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본편을 클리어하신 분들만 가급적이면. *
* 이단 접이식 *
요청이 많아서 올립니다. 정부ver이 마도카무쌍이라면
유심회 버전은 토라노스케무쌍...
【Cocktail party 유심회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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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야?」
「오, 왔나. 어이, 카에데. 술 좀 추가로 갖고와.」
「옙.」
감시역인 카에데에게 이끌려, 유심회의 어느 방의 문을 연 나데시코는 시야에 펼쳐진 광경에 눈썹을 찌푸렸다.
「뭐, 앉으라구, 아가씨. 오늘밤은 예의 안 따지는걸로, 여러모로 눈감아주지.」
「저기말야, 그러니까 대체 뭐야? 슈야한테 편지를 받았는데…….」
사건의 발단은 오늘 오후. 평소때처럼 인질로서 간소한 방에 틀어박혀 무익하게 시간이 가는걸 기다리기만 했던 나데시코에게 감시역인 카에데가 말을 걸더니, 복잡한 얼굴로 편지를 건네주었다.
편지를 가장 처음 장식한것은 “간담회 고지”라고 쓰여진 크나큰 표제였다. 편지에 적혀진대로 밤에 방밖으로 나가는걸 허락받아 지금에 이른다.
「편지? 슈야, 너……. 그런걸 쓴거야?」
「대사 음? 오오, 그렇지. 초대장을 보내는건 마땅한 예의다. 그대가 잊은 모양이니까, 대신 내가 보내줬다.」
「내가 실수한것처럼 말하지말라고. 필요없지, 그런건.」
「뭣? 그대, 전혀 모르는군. 여자아이를 불러내기 위해선 순서가 피료한 법이다. 덧붙여 지금것은 오타가 아니다. 내 혀가 잘 안돌아서 그런것 뿐이다.」
「아, 됐어. 뭐, 그러니. 알겠어, 아가씨?」
「설명한건 아무 것도 없고, 전혀 모르겠어.」
일단 잔치자리란건 알겠다.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술병에 혀가 꼬인듯한 슈야. 왜인지 평상시보다 즐거워보이는 토라. 그리고…….
「리이치로……?」
슈야와 토라노스케가 함께 있는 곳을 본적은 많지만, 리이치로는 단독행동이 많다고 들었다. 명색이 소꿉친구가 인질로 잡혀있는데, 그는 언제나 소재지 불명상태로 어디로 가있는 일이 많은 것이다.
뭔가 목적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을 말해주지않는것에 다소 불만을 느끼고 있던 나데시코는 무심코 그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고 싶어졌지만―…, 그의 모습에 역시 안도하기도 했다.
그렇다곤하나…, 지금의 그는 뭔가 상태가 이상하다. 리이치로가 빤히 바라보자 나데시코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이치로, 왜…?」
「유심회에는 정기적으로 술이 들어온다. 그 시기에는 축제를 열지. 기분전환이라도 될까해서 슈야가 널 부른거다. 나도 초대를 받았고.」
「에? 아아……, 그렇구나.」
「그렇지. 그러니까 사양말고 앉으라구, 아가씨.」
리이치로의 갑작스런 설명과 토라노스케의 재차 이어지는 앉으란 말에 아직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나데시코는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고, 확실히 기분전환은 될 듯하다.
「나데시코. 그쪽이 아니라 내 옆으로 와.」
「에?」
자리에 앉으려 했더니 리이치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저지했다.
「왜 내 옆에 안 앉는거지? 네 지정석은 여기잖아.」
「???? 아, 알겠어.」
재촉하듯 팡팡 다다미를 두드리는 리이치로의 모습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나데시코는 리이치로의 말대로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아냐.」
「하아? 뭐가……, 아니, 잠깐, 리이치로. 혹시 취했어?」
「거기가 아냐. 좀 더 내 옆에.」
「취했지……?」
「취하지 않았어. 뭐야, 너. 내 옆자린 싫어?」
「그게 아니라…, 앗, 잠깐, 리이치로. 왜 그렇게 가까운건데?」
「가까워……? 그런가?」
숨결이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깝다. 얼굴을 들여다보는 리이치로의 시선에 나데시코는 조바심을 느꼈다. 이 리이치로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아니, 그의 존재에는 아무리 얼버무리려해도 그러할수 없는 안정감과 그리움을 느끼긴하지만.
(그치만, 왠지……, 남자인걸)
긴 앞머리 사이로 엿보이는 눈꼬리가 길게 째진 눈. 술이 들어간 탓인지 발갛게 물든 눈가. 형용키어려운 이성의 색향을 의식하고 마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이, 거기 불쌍남. 느닷없이 여자를 꼬시는건 관둬. 아직 시간도 이르다구.」
「꼬시다니. 나한텐 이게 당연해. 그렇지, 나데시코?」
「그렇냔 소릴 해도……, 전혀 당연하지 않아. 대체 어떻게된거야, 리이치로.」
「어떻게 된 적 없어. 응…, 나데시코? 부탁이니까 여기 있어줘. 내 곁에……」
「그녀석, 놀랄 정도로 약해.」
「에엣?」
역시, 취한 모양이다. 응석을 부리듯 리이치로의 머리가 어깨를 비벼와서, 떡하니 굳었다.
「저기, 잠깐. 이거 어떻게 좀 해줘…….」
「소꿉친구한테 “이거”라니 너무한거 아냐?」
「그치만, 그…….」
「댁이 있는 만큼 조용하고 해는 없으니까 그대로 좀 참아줘.」
「뭐야 그건……?」
「음? 보통 리이치로는 술이 들어가면 나데시코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하니까. 마치 날뛰는 황소처럼.」
「에에엣?」
고양이처럼 어깨를 비벼오는 리이치로에게도 곤혹을 느끼지만, 슈야가 말하는 그 모습은 뭐랄까…, 그… 부끄럽단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왜 내 이름을 외치는건데?」
「그런건 본인한테 물으라구.」
「그치만……, 이 상태론……, 아 잠깐, 리이치로.」
「음? 뭐야? 이름을 불러달란건가, 나데시코. 나데시코나데시코나데Si―……」
「그런 말 한적 없어! 진짜! 부끄러우니까 입다물어, 리이치로!」
「하하핫! 재밌는걸. 진짜 이녀석, 아가씨바보로군.」
웃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크게 호통친 탓인지 리이치로가 뚝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왠지 눈썹이 축 처져있다.
(엣? 뭐야? 풀죽은거야? 울고싶은건 이쪽인데)
「리이치로……?」
「괜찮다, 나데시코. 리이치로는 그렇게 있을수있는것만으로도 행복할테니까.」
「의미를 모르겠는데…….」
「음. 잔치란 대개 의미를 모르는 법이다. 나는 잔치때마다 의미모를 상태에 빠지지. 세계는 돌지, 사람들은 분신술을 구사하지. 실로 기이해.」
「저기……, 그건 완전히 취한거지?」
「그대도 마시도록해라. 오늘밤은 체면치례없이……. 세계를 돌려보는 것이다!」
「엣, 난 됐어. 마신적도 없고…….」
「뭐…라고……?! 그대, 설마 이 몸의 술을……, 술을 마실 수 없다고. 마실 수 없다고…… 말하는건가……?!! 거짓말이다! 난 믿지 않아! 이런 잔혹한 결말, 믿을 수 없다……!」
「이젠 진짜 의미를 모르겠어, 슈야. 믿느니 안 믿느니 그런게 아니라……. 잠깐, 토라. 웃지만말고 좀 어떻게 해줘.」
「재밌으니까 뭐 어때?」
「어떻지 않아! 당신 평소땐 슈야한테 제대로 딴지 걸잖아.」
「내가 그녀석 엄마도 아니고. 술자리란건 보통 이성을 놓는 법이지. 나한테 해가 없는 한, 뭘하든 관대하게 봐줄거라구.」
(무, 무쓸모해……!!)
주인공으로서 있어선 안될 딴지를 넣어버린 나데시코는 핫하고 제정신을 되찾았다.
(이 상황…… 위험한거 아냐?)
성인 남성 셋이 나란히 술에 취해있는 중에, 여성이 하나. 자신이 그러한 대상이 되지 않을거란 자각이 있는 나데시코조차, 이 상황에는 초조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의 위험은 없어도 뭔가에 말려들법은 하다.
「모처럼 권해줬는데 미안하긴하지만…, 그, 나……」
「소두령~. 술 갖고 왔습니다. 응? 뭡니까?」
나데시코가 일어나려하던 찰나, 기세좋은 목소리와 함께 드륵하고 문이 열린다.
「뭐야, 아가씨. 모처럼 소두령과 대인 선생이 불러내줬는데, 사양말고 마셔.」
「아니, 난……」
「어이, 카에데. 너도 마셔.」
「엣? 그래도 되는검까?!」
「그렇지. 여러모로 준비해준건 너고. 아, 다른 녀석들한텐 비밀로. 나중에 시끄럽게 구니까.」
「이얏호! 고맙슴다, 소두령. 자자, 아가씨. 여자인 댁한텐 강한 술은 안되니까 약한걸 갖고왔어.」
「에……. 고, 고마워.」
슬며시 퇴실하려했는데 카에데의 쾌활함을 앞에두고 다시 앉고 말았다. 아니, 그전에.
(엄청 들떠있네……?)
감시역인 카에데는 일상적으로 장지너머로 서로 교류를 나누는 사이다. 하루종일 방에 갇혀있을 뿐인 나데시코에게 대화를 나누는게가장 많은것도 실은 카에데였다.
당초에는 거친 청년이란 인상밖에 없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의외로 사람좋은 청년이란걸 알게됐다. 토라노스케나 간부의 눈을 훔쳐가며 이러니저러니해도 신세를 돌봐주지, 일에는 충실하니까 차가운 태도를 취하는 일도 있지만 그때는 언제나 항상, 껄끄러운 얼굴을 한다.
그렇다곤하나 감시역과 인질의 관계에 불과했으니까, 이렇게나 밝은 얼굴을 할줄은 몰랐다.
「좋아, 마시자구.」
「카에데. 마시는건 좋지만, 뒷정리 해.」
「우. 히, 힘내겠슴다.」
「카에데에겐 무리겠지. 몇시간뒤에는 엎어져있을테니. 평소때처럼 토라노스케가 하면 될것을.」
「왜 내가 항상 뒷정리 담당이야? 너희들이 하라구.」
「토라노스케……, 나도 정리는 무리다. 미안.」
「왜 너도 지금부터 단언인데. 게다가 뜬금없이 사과하지마. 기분 나쁘게.」
「……………….」
(뭐……, 조금정도라면 괜찮겠지.)
불안을 느낄정도로 떠들썩하긴하지만, 갇혀 있을때보단 훨씬 낫다.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고, 카에데한테서 받은 잔에 입을 대었다.
***
(어라…? 토라가 없네)
잔치도 절정에 올라, 각자 제각기 들떠오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시고 있던 나데시코는 문득 깨달았다. 방을 둘러봐도, 붉은 머리의 그만을 찾을 수 없다.
토라는 어디로…….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누구 하나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이 없나. 아니, 대답은 해주겠지만 제대로된 대답이 돌아올것같지가 않다.
딱히 볼일이 있는것도 아니니, 신경쓸것도 없나 싶어 나데시코는 잔을 기울였다. 허나, 그때.
「시노미야 카에데, 20세! 벗겠습니다!」
「?!」
갑작스러운 큰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든다. 입에 머금고 있던 액체를 자칫 뿜을 뻔했다. 소리의 발원지, 완전히 들떠오른 카에데는, 왜인지 즐거운듯 다다미위를 빙빙 돌고 있다.
「좋아, 옷벗기 게임이란 이름의 사투인가. 실력이 우는군.」
「이번에야말로 대인 선생한테 지지않을겁니다. 내 미려한 기술에 놀라지 말아주십쇼.」
「후……, 카에데. 그대야말로 내 힘을 깔보지마라.」
「나데시코……. 나는, 너를 손에 넣기위해 반드시 이긴다.」
「자, 잠깐만! 왜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리이치로까지 참가하는건데?! 것보다 당신은 대체 뭘 할 셈이야……?!」
「유심회의 유서있는 의식, 옷벗기 게임이다.」
「그런거에 유서가 대체 어딨어?!」
(앗차, 나도 대체 뭘…?! 조금전부터 딴지만 걸고 있잖아.)
「나, 난. 잠깐 밖으로 나가도 될까?」
「나데시코……? 어딜가는거지? 내 손을 놓고……, 어딜 가겠단 거야……?」
「잠깐 바람을 쬐고오는것 뿐이야. 그렇게 비장한 얼굴 하지마.」
「나데시코, 밖은 위험하다. 어떤 거대 로봇이 언제 습격해올지 몰라.」
「저기말야, 슈야. 이 방에 있는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건 나뿐일까……?」
「뭐야, 아가씨. 밖에 나가고싶어? 별수없지. 이 카에데님께서! 허락해 주지!!」
「당신도 엄청 쾌활해졌네……. 하지만 고마워. 그 말 감사히 들을게.」
「오오~ 가 가. 나중에 소두령한테 뭔소리 들어도, 신경안쓸테니. 소두령같은거 나한테 걸리면 꿔다논 보리자루 같으니까 말야. 」
「카에데……, 그 발언 괜찮아?」
「으음? 응, 괜찮아괜찮아.」
「그래……. 그럼 잠깐 갔다올게. 모두들, 너무 마시지는 말고.」
「오오~.」
껄껄 웃으며 카에데가 손을 흔든다.
「나데시코………!! 날 두고 가지마!!」
리이치로가 비장한 얼굴로 손을 뻗는다.
「괜찮다, 리이치로. 한때의 작별일 뿐이다. 나데시코는 반드시 이 자리로 돌아올거다. 그녀는 믿는거다.」
슈야가 이야기를 장대하게 만들고 있다…….
(하아………………)
방을 나설때까진 한숨을 꾹 삼키고, 나데시코는 머리를 싸맸다.
***
「후우………」
상쾌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긴머리를 나부끼며 나데시코는 문득 숨을 토해냈다. 밤공기와 맞닿은 숨결은 약간 뜨겁다. 굉장히 가볍다곤하지만 알콜은 역시 알콜인 모양으로, 머릿속이 멍하니 흐릿하다.
(어제까진 생각조차 못해볼 정도로 소란스러웠고…… )
이건 이걸로 몹시 좋은 기분전환이긴하지만, 괜히 피로가 쌓일것같아서 곤란하다. 이 조직에 붙잡히고 나서 잠시. 구성원 하나하나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란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나 자신의 입장이 변하지않는한 결코 서로 양립할 수 없단 것도 슬플 정도로 사실이지만.
(하지만……, 뭘까 이 느낌. CZ 멤버와 함께 있던 때와 닮았어.)
떠들썩하고 소란스럽고 의미불명. 머리를 싸맬 정도로 깊은 한숨을 쉬는 일도 셀수 없을 정도긴했지만, 어딘지 따스하고 그립다. 모두 제각기, 아첨이나 타산따윈 생각조차 없고 자유롭고 제멋대로 굴고 있는데도 타인의 상처에는 민감한…… 상냥했던 동료들.
(모두들……)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들의 웃는 얼굴이 있다. 지금은 감상에 젖을때가 아니란건 알고 있지만, 숨이 막힐것만 같다. 나데시코는 쑤시는 가슴을 꾹 움켜쥐었다.
「음? 어이, 아가씨. 뭘 멋대로 나오고그래」
「에」
목소리에 끌려 마루쪽으로 시선을 기울이자, 상상했던 대로 거기엔 술병을 한손에 든 토라노스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도망치고 말것도 없잖아. 게다가 말은 제대로 해놓고 왔어.」
「칫, 그녀석들…….」
「도망치게 냅두고 싶지 않으면 열쇠든 뭐든 걸어두면 되잖아.」
「거야, 그렇지. 정론이군. 뭐, 밖엔 파수도 있고. 댁이 도망칠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안하지만.」
「토라는…, 날 싫어하는구나.」
가시돋친 토라노스케의 말에 비아냥 삼아 말했더니 왠지 그는 놀라 눈을 끔뻑이더니 히죽 웃었다.
「핫, 좋으니 싫으니……. 의외로 태평한걸, 당신. 아니, 귀염성 있단 말이 더 나을까?」
「………!」
바보취급 당했다. 그걸 바로 깨달은 나데시코는 말없이 등을 돌린다.
「어이, 잠깐. 미안. 바보취급한건 아냐.」
「바보취급 당했단 생각밖에 안들었는데…………?」
「놀린것 뿐이래두. 애당초, 댁이 이상한 소릴 하니까 그러지. 난 댁을 미워하거나 증오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맘에 들어하진 않잖아.」
「응………? 아니, 어느쪽이냐고하면 맘에 들어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도무지……, 그렇게는 안보이는데.」
「뭐, 어쨌든 이쪽에 와서 앉아. 열 식히러 온거지? 오늘은 뭐든 관대히 봐준다고 말한건 나니까.」
「………」
아직, 망설임은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시간은 나름 흘렀지만, 나데시코와 주위의 관계는 진전이 없다. 그들을 신용하는 것, 그들의 신용을 얻는것. 둘 중 하나도 이룬게 없다.
본디라면 대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어야할지 모르지만, 그―……, 이 토라노스케와의 대화는 아무래도 긴장이 된다.
「왜……, 방에서 안 마시는거야?」
하지만, 여기서 얘기하든 말든, 자신이 놓여진 상황이 달라지는것도 아니다. 인질로서 방에 가둬져있을 뿐인 나날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지않으면 뭐라고 하리.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나데시코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방안이 시끄럽잖아. 당신도 그래서 나온거지? 떠들썩한 술자리는 싫진않지만, 조용히 마시고 싶을 때도 있어.」
「그래…….」
「술이란건 신기하지. 일상이나 이성같은거, 아무래도 좋아져버리니까.」
「그건 위험한거아냐……?」
「뭐. 하지만, 그런 거잖아.」
「이 세계에도 술은 구할 수 있구나.」
「조금이지만. 술이 생기는 시기가 있어. 뭐……, 금방 다 사라지고 말지만.」
「그러네…….」
슈야나 토라노스케, 카에데가 마시는것만봐도 알겠지만, 이 조직은 애주가 집단같다.
(의외로 차분하게 얘길 나눌수있구나…)
띄엄띄엄 나누는 대화의 편안함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금 이 때만큼은 성가신 존재로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건 분명 술의 힘도 있겠지. 토라노스케는 조직의 인간으로 조직성향이 강해보이는 인상이니까, 평소에는 인질에게 이렇게 온후한 대응을 해주지 않는다.
(난폭한 주제에 의외로 상식인인 점은……, 역시 토라구나.)
문득 나데시코는 올려다본 밤하늘에, 드문 것을 발견했다.
「달…….」
「아?」
「봐봐. 달이 떴어. 이 세계에서…… 처음 봤어.」
그렇다곤하나, 밤 시간에 밖을 볼 일이란게 손 꼽을 정도뿐이긴했다.
원래 세계에 있었을 무렵, 이 세계를 꿈꾸었을때는 달 같은거 도무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한 하늘이였는데.
「아……, 때때로 볼 수 있어. 진짜 손꼽을 정도로 드물긴하지만.」
「그렇구나……. 그치만, 예쁘네.」
「그래……?」
「응. 하늘이 탁해서 그런걸까…… 괜히 더 아름다워. 게다가―…」
뭔가, 나데시코의 뇌리를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게 있었다. 달을 보고 있으면 뭔가를 떠올린다. 금색으로 빛나는 월광. 낯익은데 있는, 가슴을 찌르는 기억의 색…….
「토라….」
「뭐야, 허물없이 부르지마.」
「아냐. 저 색…. 당신의, 눈이야.」
「―……………」
달에서 눈을 때 눈앞의 남자를 빤히 바라보자, 쏘아보는 듯한 시선이 돌아왔다. 날카로운 안광에 움찔했지만, 거기에서 발견해낸 색에 눈을 깜빡인다.
「어라…? 어째서……? 당신 눈―…」
기억에 있는 색과, 다르다. 그렇게 고하려 했던 말은, 불완전히 끊겼다.
「꺄악……!?!」
갑작스레 뻗어져온 손이 팔을 붙잡아, 강하게 끌어당겼기 때문이였다.
「뭐, 뭐야……?!」
「그냥 두고보면 예쁜거라해도, 다른것과 섞으면 이상하게 보이는게 있지.」
「에……?」
토라노스케의 팔에 끌어안긴듯한 형태에, 나데시코는 몹시 초조해졌다. 초조해졌긴했지만, 토라노스케의 목소리가 예상보다 작고 가늘어서, 왠지 사고가 굳어버린다.
「저 달도 마찬가지야. 탁한 하늘 속에 있으니까 이상하게만 보이지. 꺼림측하고.」
「…………? 잘은, 모르겠는데. 이상하고 꺼름칙한게 뭐?」
「아름답게 보이는건…, 댁의 착각이란 거야.」
「그렇지 않아. 예쁜건 예쁜걸. 상황이 이상이라해도, 느끼는건 사실이야.」
「……………」
「아얏……, 잠, 깐, 토라. 아파.」
왜인지 토라가 괴로울 정도로 끌어 안는다.
손목에 토라노스케의 숨결이 닿아서, 긴장했다.
(취한거야……?)
수치심에 날뛰고 싶건만 드센 힘이 그것을 용납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왠지 분위기가 다른 그를 매도하는것도 불가능했다.
「이 망가진 세계에서도 당신은 달이 예쁘다느니 뭐니, 태평한 소릴 할수 있는건가.」
「물론이야……. 주위의 눈이 달라졌대도 달 자체가 달라진건 아닌걸. 아무것도 변한건 없잖아.」
「하…….」
바보취급한듯한 낮은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틀린 말을 한건 아니다. 물정모르는 소리를 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사실이다.
나데시코는 왜인지 울컥해졌다. 자신의 신조 어쩌고 그런게 아니라 토라노스케의 사고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던걸지도 모른다. 마치, 세계에 깨끗하고 아름다운것따윈 없다는듯, 더럽혀지지 않는것따윈 없다는 듯―… 마치,『변하지 않는 것』따윈 없다는듯, 조소하고 있는것만 같아서.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나야. 이런 상황이 되어도, 주위도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된데다, 모습도 변해버렸지만―….」
남들이 보면『이상』이라해도, 꼴사납고 추하대도, 자신이 자신이란 사실이 변하지 않으면 뭐든상관없다. 어쩌면 자신이 모르는것 뿐, 내용까지 변해버렸다해도. 그렇게 믿지 않으면 무너져 버릴것 같으니까.
「난 아무것도, 변치 않았어.」
문득, 구속이 느슨해진다. 안도의 한숨을 토할새도 없이, 고개를 들자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남자의 얼굴이 있다.
(가까워……)
순간 도망치려드는 사고와는 반대로, 왜인지 시선을 움직일 수 없다. 토라노스케는 화난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왠지 미간을 찌푸리고서 기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 이상한 녀석이군. 보통이 아냐.」
「칭찬으로 받아둘게…….」
「물론, 칭찬한 거라구? 바보처럼 한결같은 그런 구석……. 녀석들을 닮았군.」
「녀석들?」
「슈야나……, 리이치로라던가.」
「그래……?」
잘, 모르겠다.
어디가?하고 물어보기에는 그들과 자신에겐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다.
「제멋대로? 남의 안색을 살피지 않는 점. 자신이 하고싶은 걸 하는 그거.」
「확실히 슈야도 리이치로도…… 뭐, 나도. 협조성은 그닥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반론같은거 신경안쓰잖아.」
「왠지 비상식적인 인간같지않아?」
「그래 그거.」
억센 구속은 풀지 않은채, 토라노스케는 평온히 고한다. 왠지 형용하기 힘든 불안감이 나데시코를 엄습했다. 이 세계는 망가져있다. 그것은 토지 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자신이 알고 있는 12세의 그들과 달리, 지금 여기에 있는『그들』도 망가져버린게 아닐까. 왠지 문득 그런걸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그래.」
「하?」
「당신은……, 내가 아는 『토라노스케』가 아닐지도 몰라. 그건 나도 잘 모르니까. 하지만.」
「내가 모르는 내 얘기? 시답잖긴.」
「그게 아니라, 당신의 눈.」
「……………」
「내가 아는 토라와 색이 달라. 하지만……, 둘다 예쁘다고 생각해.」
「하……….」
「예쁘니 추하느니하는건 주관에 지나지않잖아? 어느쪽이 좋고 나쁜게 아냐.」
「이상주의라 좋으시겠군. 어린애니까 떠들고 다닐 수 있는 철모를 소리? 보통은 관철해내지 못해. 댁도 언젠가 알게 될거야.」
「그럼……, 난 어린애인 채로도 좋아.」
「뭐……. 흔해빠진 어린애랑은 같은 취급하는건 도저히 무리지만.」
「에?」
「물정모를 소리를 지껄이는 그 입…, 막아주고싶은걸. 무의식인걸지도 모르겠지만…, 댁 남자를 돋구기 쉬워. 조심하는게 좋지 않겠어?」
「하아?!」
갑작스레. 미덥잖았던 토라노스케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히죽하고 입술끝을 틀어올린 그의 눈동자는 종전의 쓸쓸하게 흔들리는 색이 사라져, 대신 맹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자, 잠깐. 떨어져.」
「싫어. 말했잖아. 술이란건 일상이니 이성이니 아무래도 좋아진다고.」
「그러니까 그게 뭐……?!」
「그러니까. 보통땐 신경도 안쓸 여자라도 신경쓰고 싶어진단 거지.」
「…………읏….」
최저. 그렇게 쏘아보자 토라는 왠지 즐거운듯 웃는다. 놀리고 있는거겠지. 그건 알고 있다. 아니면 좀전의 화제를 흘려넘기고 싶었다던가. 그 둘다라던가.
「난 당신의 신경, 필요없어.」
「흐응……. 거야 아직 이성이 남아있기 때문이잖아?」
「뭐……?」
「내가 당신의 일상을, 이성을…. 망가트려줄까?」
「……………!!」
조용한 속삭임과 함께 토라노스케의 얼굴이 다가온다.
위험하다. 이건 위험하다. 소리가 나오지않아서, 혼신의 힘을 다해 밀쳐내려했다.
하지만―………
「우갸아아아아아아악! 저, 저주 받는다아아아아아아! 마, 마마마마마물이있어!!!!!」
귀를 찌르는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발원지는 한창 잔치중일 방이다.
「「……………………」」
기괴한 외침이 울러퍼지고, 토라노스케와 나데시코는 동시에 침묵한다음, 얼굴을 맞댔다. 좀전의 기묘한 공기는 단숨에 흩어져 사라졌다.
(가슴 졸였네……. 방심했어)
술기운이 빠진건지 토라노스케도 팟하고 몸을 때고,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마루에 걸터앉아 술병을 들이킨다.
『흥이 가셨다』, 그렇게 눈으로 고하는듯한 동작에 다소 울컥하면서도, 나데시코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조금 고동이 빨라졌던것은 분명 알콜 탓이다.
「좀전의 목소리. 슈야, 였지.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참나……. 뒷정리하는게 누군줄 아는거야. 이러니까 저녀석들이랑 같이 마시는건 귀찮다니깐.」
「하지만 마시는걸 관두진 않네.」
「뭐……, 난 술을 좋아하니까.」
「후훗, 그래.」
「앙? 뭘 웃는거야. 기어오르지마.」
「기어오르다니. 그저……」
아직, 이 세계에 대해선 잘 모른다. 망가진 세계란 것밖엔 아는게 없다. 하지만 무기질하기만한 세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확실히 살아있다. 망가졌으면서도, 사람은 살아있었다.
두통이 날 정도로 떠들썩한 그 소란스러움이, 원래 세계에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건 이 세계의 그들『분명히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기분나빠하는 토라노스케를 곁눈질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빛이 소근대는 밤하늘은, 짙고도 탁한 빛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내가 아는 하늘』이다.
「그저, 변치않는 달이 아름다워서, 기쁜것 뿐이야.」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마음에 변함은 없지만, 나데시코의 마음엔 한가지 욕구가 생겼다.『이 세계를, 알고 싶다.』 이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좀 더 알고, 그리고 판단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앞을 향하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인질 주제에, 스스로도 건방지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생각하는것만은 자유다.
변화는 언제나 찾아오니까.
「이상한 여자.」
「당신도 마찬가지야.」
말과는 반대로 즐거운듯한 음색이 어딘지 모르게 기뻐서. 나데시코는 어제보다도 조금 더 가벼운 기분으로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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