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본편을 클리어하신 분들만 가급적이면. *
* 이단 접이식 *
【Cocktail party 정부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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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방에서 끌려 나온 것이 십여분전.
불쾌한 오라를 숨기려들지도 않는 비숍, 마도카에게 나데시코는 불평이라도 한마디 해줄까했지만, 그는 그 나름 휘말려든것 뿐이란 생각이 들자 그런 맘도 사그라들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타카토가 이상한 발상을 한 모양이다. 이 세계로 막 억지로 끌려왔을땐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채 기력을 잃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과 교류를 나눌 정도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지니게 됐다.
어린애처럼 떼를 써봤자 별수없다. 지금 나데시코의 보호자는 정부의 간부, 나아가선 타카토다. 그를 거슬러봤자 좋은 일이 없을거란건 명백했다.
ㅡ 그렇다고 나데시코가 타카토를 『거스른』단들 그가 그녀에게 벌이나 해를 가한다는건 천지가 뒤집어져도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어서와, 나데시코.」
「나데시코, 와줘서 고마워. 앉아앉아.」
타카토가 부르고 있다. 그렇게 말한건 마도카인데 왜인지 끌려온곳은 마도카의 방이였다. 나데시코한테 주어진 방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다.
「미안. 갑자기 불러내서… 괜찮아?」
「딱히 뭔갈 하고 있던것도 아니고, 괜찮아. 슬슬 잘 생각이긴했지만. 타카토. 나한테 뭔가 볼일이 있어?」
「응. 볼일이라고 할 정도로 별다른 일은 아니지만 나데시코와 함께 밤을 새고 싶어서.」
「밤을 새…?」
「킹의 오랜꿈이랍니다.」
「???」
묘하게 쾌활한 타카토와 레인이 각자 나데시코를 에스코트하듯이 양 옆에서 손을 잡는다. 타카토는 보통때랑 마찬가지긴하지만, 레인은 왜 이런걸까.
(보통때는 타카토를 생각해서 좀 몸을 빼곤했는데…)
「꿈이라니 너무 호들갑이야. 오늘밤 파티에 초대한것 뿐인걸.」
「뭐, 즉, 술자리? 아니 간담회입니다. 당신도 심심하셨죠?」
「아… 뭐야, 그런거구나.」
「킹은 당신과 밤을 함께 보내는게 꿈이니까요. 의욕 충만해서, 차암~」
「하아?!」
「잠깐, 레인. 나데시코를 혼란시킬만한 소린 안돼.」
「어라라, 죄송합니다. 그치만 좋아하는 아이와 밤을 새는건 로망이시죠?」
「응. 뭐… 그렇긴한데, 왠지, 좀 부끄러워…」
「…………」
확실히 변함없이 부끄럽다. 행동이 부끄럽다기보단 그걸 입에 담아버리는 구석이.
어쨌든 지루함을 달래기위해 불러준 것은 기뻐서, 나데시코는 고맙다고 말하며 그들이 이끄는대로 소파에 앉았다.
「그래서…, 어째서 제 방을 쓰시는겁니까. 자기 방이나 식당을 빌리면 되는거 아닙니까.」
「어라? 왜였더라, 레인.」
「왜였을까요. 분명 비숍이 비장의 술을 숨겨놔서 그런거 아닐까요?」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런거.」
「비숍군은 밤에 불러내도 일이니 뭐니 상대를 잘 안해주잖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쳐들어오게 된겁니다. 킹의 요망에 응하지 않다니, 부하 실격입니다.」
「실격으로 충분합니다. 것보다 실제로 일이 남아 있고요. 저같은것보다 당신들쪽이 훨씬 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텐데요. 술자리 같은 태평한 소릴해도 괜찮은겁니까?」
「기분전환은 중요해, 마도카.」
「그렇죠. 게다가 저도 킹도, 이런 일이 있는편이 능률적으로도 더 도움이 되고요.」
「정말 말도 안되는 상사로군요.」
「저기… 미안. 마도카도 일이 있는거구나. 역시 오래 있는건…」
「솔직히 민폐입니다. 그렇다곤하나 당신은 끌려온것 뿐이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기분전환이라며 날 불러낸거니까 내게도 책임이 있잖아.」
「그리 생각하신다면 킹을 접대해주십시오. 덤으로 레인씨도. 제게 해가 되지않을정도로 분발해주세요.」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빈정거림이 돌아오자 반사적으로 울컥했다. 마도카의 이 말투에도 익숙해졌고, 신경서서 말을 걸어주는데도 카운터를 먹는것도 언제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라, 그래. 그럼 그 말에 기대어 즐기기로 할게. 마도카의 방이지만, 느긋히, 푹 쉬기로 할게, 응?」
익숙해졌기 때문에 되받아치는 방법도 제법 배웠다. 마도카가 가는 눈을 뜨고 차갑게 쏘아본다.
「좋은 배짱이로군요, 나데시코씨…」
「무슨 일이야? 마도카, 나데시코. 왠지 즐거워보이는데. 두 사람 사이가 좋구나.」
「아뇨, 킹. 사이가 나빠서 피차 시선에 들어오는것조차 역겨울 정도입니다. 어딜 봐서 사이가 좋아 보이는겁니까. 안과가는 김에 그 사람도 데리고 가주세요.」
「잠깐만, 마도카. 그런 말투는 아니지.」
「? 마도카와 싸운거야, 나데시코?」
「아니…. 아무것도 아냐. 타카토는 왜?」
「아, 그게 말야. 나데시코는 뭘 마실래? 그다지 강하지 않은게 좋겠지?」
「에…」
타카토가 가리킨 장소로 시선을 옮기자, 거기엔 술병의 산. 언제 준비한걸까. 게다가 척보기에 도수가 높아보이는것 뿐이다. 나데시코에게 주류의 지식은 원래의 세계에서 아버지가 마셨던 것 정도 밖에 없는 뿐이지만. 그것들은 성인 남성들이 마시는 알콜 도수가 상당히 높은 것이라고 들어 알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브랜드의 술병들이 가득 쌓여 있다.
「아니, 난 안 마셔.」
「에? 술 싫어해? 칵테일도 준비되있어」
「그게 아니라, 마신적 없는걸.」
「거야 그렇겠죠. 오히려 여기서 와인이니 위스키니 말하면 곤란한걸요.」
「아, 그런가…」
「그치만 연령이라고해야하나, 이론상으론 세이브니까, 마셔보는게 어떠신가요?」
「돼, 됐어. 아니, 애당초 권하지마. 난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말고.」
조금 축 쳐져 울상을 짓는 타카토, 왠지 모르게 안심한듯한 마도카, 미소짓고 있지만 시시하다는듯 눈을 가늘게 뜬 레인에게 둘러쌓였다.
「하지만 모처럼이니까 파티는 즐겁게 맛볼게. 모두는 사양하지마.」
모처럼 자신을 위해 열어준 자리니까.
ㅡ 레인이나 마도카에겐 불가항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데시코는 다급히 미소했다.
그때 자비를 베푼것을 몇시간 뒤, 후회하게 되리라건 추호도 모른채로.
**
「국민에게 부자유를 강요하는 정부가 술자리라니 완전히 썩었군요.」
「루크, 부자유가 아니라 안전이야.」
「선배…. 왠지 속내가 줄줄 새고 있지 않습니까? 취하셨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쵸, 나데시코군?」
「에? 으음, 그렇…지?」
「보세요. 나데시코군이 이렇게 말하잖습니까. 아, 비숍, 술이 떨어졌습니다」
「직접 갖고와 주세요. 그런건.」
「에, 너무해라. 얼마전 토지개척 설계, 비숍의 미스를 커버한건 누구였더라?」
「네네……」
간담회이란 명목의 술자리가 시작되고 약 1시간. 평온한 담소는 이어졌고, 원래 세계의 “술자리” 이미지를 떠올리며, 어쩌면 폭주하게 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도중에 안색이 새파래졌었지만 그들은 역시 어른이였다.
텔레비전같은데서 보았던 병째로 나발불기라던가 여러종류의 술을 섞는 폭탄주라던가, 그런 터무니없는 짓은 일절 않는다. 도수가 높아 보이는 술을 조금씩, 하지만 빠른 페이스로 편안히 마시고 있다.
(왠지 조금 의외네……)
썩어도 정부의 톱이 모여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감탄할 정도로 우아한 술자리였다.
(하지만, 레인은 뭐랄까…… 보통때랑 달라.)
안색하나 달라지지않는 셋중에서 평상시보다 3배 정도 쾌활하게 보인다. 타카토의 발언에도 3배 정도 사정없고, 마도카의 취급에도 4배 정도 가차없다. 평상시의 레인은 부하의 미수를 이런 일로 끄집어내진 않을텐데.
「뭐…… 취했으니 조금정도 쾌활해질수도 있지. 취한 아버지도 굉장했었으니까. 응……?」
문득, 개구리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던 레인, 술을 가지러 간 마도카를 바라본 다음, 곁에 있는 타카토에게 시선을 돌린 나데시코는 깜짝 놀랐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서 비통한 공기를 띄우고 있었다.
「타카토……?! 무슨 일이야?! 혹시 취했어? 기분 나빠?」
「나데시코……, 어쩌지……?」
잠긴 목소리가 새어나오자 나데시코는 진심으로 당혹했다. 타카토가 이렇게나 약해진 모습, 좀처럼 본적이 없었다.
「물 갖고 올게. 그리고 젖은 타올을……. 일단 눕는게 좋겠어.」
「잠깐만, 가지말아줘.」
「에?」
「몸은 괜찮아. 하지만…… 다른 일 때문에 어찌하나 해서……」
「에………?」
타카토가 고개를 든다. 몸은 나쁘지 않다. 본인이 그리 말한대로 안색은 극히 평범했다. 아니, 조금 눈가가 붉다. 그건 취해서 그렇겠지. 하지만 그 눈동자엔, 숨겨지지 않는 열.
「저기, 타카토?」
「네가 너무 좋아서……… 어째야할까……」
「하아?」
「평상시보다 더 마음을 억누를수가 없어. 네가 곁에 있는것만큼 가슴이 두근거려서 멈추지 않아. 저기……, 나데시코. 좀 더, 날 봐줘.」
「자, 잠깐만!! 타카토?!」
꽉하고 나데시코의 두 손을 잡고 타카토는 그녀를 직시한다. 구멍이 뚫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인한 시선이, 그저 한결같이 그녀만을.
농밀한 열기를 띈 시선에서 눈을 땔래야 땔 수 없었다.
「좋아해…………, 나데시코……」
「타카……」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입술을 가까이해온다. 어쩌지, 그렇게 생각할 틈도 없이 뜨거운 숨결이 나데시코의 입술을 스쳤다.
찰나,
「킹. 잠깐 와주십시오.」
「에?」
닿는다 싶은 순간, 고양이다루듯 타카토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당긴것은 마도카였다. 언제 돌아온걸까, 마도카는 불쾌함을 감추려들지도 않고 두 사람을 내려다본다.
「뭐야…, 마도카?」
그런 타카토도 입가엔 웃음을 띄곤 있지만, 눈이 전혀 웃지 않고 있다. 방해를 받은 것에 원한을 품은듯 평상시보다 낮은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당신 또 이상한 짓 저지르셨습니까? 세컨드들이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이런 밤중인데도 불구하고.」
「루크………」
「아, 저도 처리 불가능합니다. 지금 통신으로 자세한 얘길 듣고 왔지만 아직 저한테 내려오지 않은 프로젝트라서요.」
「정무의 9할을 파악하고 있는 네게 내려오지 않은 프로젝트라니…… 아아, 그래. 그건가?」
「짚이는게 있으십니까…… 어차피 취미로 시작하신거겠죠.」
「실용성도 제대로 사려해뒀지만, 레인에게 이행시키기엔 아직 빠르다고 생각했어. 별수없나.」
타카토가 탄식하는듯한 모습으로 일어선다. 나데시코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는 웃음 띈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안아 당겼다.
「에?」
「잠깐 갔다올게. 바로 돌아올테니까…… 다음은 나중에.」
그리고 살짝 관자놀이에 닿는 열. 그것이 타카토의 입술이란걸 이해하기까지 수초. 닿아온 상냥한 키스에 동요할 시간조차 주지않고 마도카와 타카토는 다급히 방을 나갔다.
「뭐, 뭐야……?!」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나데시코는 순간 화악하고 달아오른 뺨을 내리눌렀다. 얼굴이 뜨겁다. 목에서 시작해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가는 감각이 너무나 부끄러워 반응이 늦은 것에 외려 감사하고 싶어졌다. 이런 얼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취해있구만, 저거…… 완전 평상시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렇군요. 킹은 안색이 바뀌지않긴하지만, 그리 강하지도 않으니 말이죠. 취하면 성가시답니다.」
「레인……」
그걸 알고 있는데 어째서 술자리같은걸……… 그리 말하려하다, 그만뒀다. 레인은 그런 남자다. 알고 있어도 막지 않는다. 타카토가 하는 일을 막는 레인이라니 본적이 없다.
「그런데, 요. 나데시코군.」
「뭐야?」
「상당히 두근거리고 계시네요?」
「다……, 당연하지. 왠지 타카토 평상시와 다른걸.」
타카토는 언제나 다정하고, 나데시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걸 꺼리끼지 않는다. 호의는 말이든 행동이든 직구로 표현해오고, 부끄러워하는 구석도 없다. 그건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결정적으로 어딘가가 달랐다.
「술이란건 자제를 날려버리는 거니까요. 일단 저래뵈도 킹은 애써 억누르고 있는겁니다.」
「저래뵈도……?」
「저래뵈도, 말이에요. 한시간만 더 지나면 진정한 킹을 보실 수 있을겁니다.」
「보고싶지않아……. 그럼 난 전력으로 방으로 돌아갈거야.」
「하핫, 킹도 가엽군요. 그렇지……. 그럼, 나데시코군.」
「?」
문득 레인의 모습을 놓친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에 놀랄 틈도 없었다.
「저와…… 빠지나가시는건 어떠신가요? 둘이서.」
깨닫고보니 레인이 뜨거운 숨결과 함께 귓가에서 속삭여온다.
나데시코의 체온은 또 다시 상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인……. 당신도 취했지?」
「취하지 않았습니다만…? 자, 안색도 다르지 않잖아요.」
「그, 그치만…… 왠지」
「전 평상시 그대로랍니다…….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서… 당신쪽이 취한거 아닙니까?」「난 술같은거 안 마셨대두……!!」
「후훗, 정말일까요?」
나데시코의 머리칼에 레인의 오른손가락이 얽힌다. 그리고 왼손은 그녀의 손가락에.
(………?!)
언제나 개구리 인형을 끼고 있을 왼손엔 아무것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만다. 그뿐만이 아니다. 레인이 이런식으로 접촉해온적, 단 한번도 없었다. 그녀를 보살피는 담당의로서 진찰을 받았을때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온도.
취해있을텐데, 차가운 손끝.
「레인, 놀리지마.」
「어라, 너무하네요. 전 진심입니다만? 술만 마시면 질리니까, 둘이 살짝 자릴 빠져나가 단 거라도 어떨까해서,」
「그럼……, 단걸 여기로 갖고 오면 되잖아.」
「안됩니다. 여기선 만끽할 수 없으니까요..」
「어째서?」
「그치만 갖고 오는게 아니니까요. 제게 있어서 단건,『여기』있으니까요.」
살짝 나데시코의 입술에 그의 손가락이 닿았다. 명확하게 말하진 않아도 의미를 깨닫자 그녀는 할말을 잃었다.
「!!!!!!!!! 레이―…」
「레인……?」
그리고, 뻐끔뻐끔 말조차 나오지않는 그녀를 대신해, 낮은…… 마치 지저에서 울려오는듯한 낮은 음색이 들려왔다. 바로 그걸 깨닫은 나데시코가 새파래진 얼굴로 돌아보자, 거기엔 역시 예상대로 웃고 있는 타카토가 있었다. 왜인지…… 그 왼손엔 개구리가 끼워져있다.
『켁, 이녀석의 왼손, 진정이 안돼! 진짜 기분 나빠!!』하고 개구리군이 큰소리로 소란을 피웠지만 저 멀리서 들려오는것만 같다.
「다녀왔어, 나데시코.」
타카토는 차분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어, 어서와, 타카토.」
「어라어라. 타임리미트입니까. 어서오시죠, 킹.」
「레인, 뭘 하고 있었던걸까?」
「그녀와 놀고 있었습니다. 단 둘이서. 한가했던지라.」
「그래……」
둘다 이 이상 없으리만큼 온후하고, 사이 좋은 상사부하의 대화다. 그뿐이다. 그뿐일텐데, 왠지 검은 안개가 등 뒤에 보이는건 기분 탓일까. 기분 탓이다. 그리 생각하고 싶어서 냉전을 펼치고 있는 두사람의 곁에서 슬쩍 거리를 둔다.
(아니 것보다…… 레인은, 저거, 취한건가?? 평상시처럼 보이는데 어딘가 다르다고 해야하나……)
「뭘하시는겁니까, 당신.」
차라리 포복전진이라도 할까하며 낮은 자세로 남몰래 방을 빠져나가려했던 나데시코의 팔을 누군가가 움켜쥐었다.
「아무말 없이 사라지는건 관둬주십시오. 제게 폐가 됩니다.」
「왜 당신이 곤란한데.」
「『방으로 돌아간거라면 괜찮지만, 아아, 하지만 혼자 제대로 돌아갔을까나. 비숍. 잠깐 보러 갔다와줄래?』같은 소릴, 킹이 꺼내기 때문입니다.」
「그래………….」
즉시 납득해버리는것도 왠지 허무하다.
한숨을 내쉴것같아지자, 문득 마도카가 대량의 짐을 들고 있는걸 깨달았다.
「마도카, 그거 뭐야?」
「요리를 비롯한 기타등등입니다.」
「그래. 큰일이겠네……. 레인과 타카토는 얘기 중인것같은데…… 마도카도 앉는게 어때?」
마도카의 얼굴을 들어다보며 그리 말하자, 그는 조금 허를 찔린듯이 눈을 깜빡이고나서『그러죠』하고 짐을 내렸다. 그도 극히 마이페이스한 성질이라 그런지 평상시엔 그다지 고생하는걸론 보이지 않는다. 타카토나 레인에게 휘둘리고 있는단건 알기쉽지만, 그는 그 나름 적당히 흘려내거나, 흥미 없다, 관계없다는 입장을 계속 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성실히 일을 한다는건 지금까지 나눠온 교류를 통해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다만 표면상은 어디까지나 마이페이스기 때문에 때때로 걱정도 된다. 제대로 기분전환 하고 있는걸까.
「그러니까 싫었던겁니다. 저 사람을 술자리를 상대하면 제가 뒤처리를 하는게 눈에 뻔해서. 」
「마도카는 술 세구나. 타카토나 레인과 비스하게 마셨는데, 전혀 취하지 않는걸.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상상이 안가지만…….」
「확실히 강한 쪽이지만, 그 이상으로 저 사람들이 약한겁니다. 왜 약한 사람일수록 마시고싶어하시는걸까요.」
「타카토도 레인도 주정으론 보이진않지만…, 취해있는거지.」
「당신 시력 이상한거 아닙니까? 아무리봐도 주정이잖습니까. 성가심이 당사에 비교해 20% 늘어나있습니다.」
「그, 그건 알지만. 언제나 저런 느낌이잖아. 타카토도 레인도.」
「아아……. 그건 그렇군요. 듣고 보니. 평상시에도 언제나 저런 느낌입니다. 당신도 가차없이 말하는군요.」
「뭐. 특히 레인은, 평상시와 다르다는걸 알겠어.」
「그렇게 말해도 킹도 루크도 내일이 되면 잊어버릴것같지만요.」
「그렇게나 약해……?」
「아마. 지금도 자신이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를겁니다. 그렇기에 본심이 나오는거겠죠.」
「겉보기엔 멀쩡해보이는데, 신기하네.」
「그렇군요. 아아……, 하지만 선배는 어떨까요. 전부 취한척인걸수도 있겠군요.」
「에, 무슨 소리 했어?」
「아뇨, 아무것도. 이제 됐습니다……, 저도 멋대로 마시겠습니다. 이대로는 디메리트밖에 없으니까요.」
털썩하고 소파에 걸터앉아, 마도카는 병에 든 액체를 자기 잔에 따른뒤 입에 댔다.
왠지……, 마시는 모양새가 그럴싸하다. 자연스럽다고할까, 멋이 나는 분위기가 한층 더 강해진 인상.
(아직도, 이 사람이 마도카라고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네……. 아니, 생각할때마다 놀라고 싶어져)
「안 앉으시는겁니까. 그런 곳에서 서 계셔봤자 저 둘의 냉전, 끝나지 않습니다.」
「아, 응……」
조금 거리를 두고, 나데시코도 마도카 옆에 걸터 앉았다.
「타카토랑 레인, 사이가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뭐, 사이는 좋지 않습니까. 서로 비슷한 부류니까요, 저 둘」
「비슷해……? 타입은 다른것같은데.」
「기분 나쁜 구석이 똑같잖습니까. 비상식이라고해야하나, 비범하다고 해야하나. 평범하지 않은건 분명합니다.」
「둘 밑에서 일하는 마도카가 그런소리하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정부에 몸을 두게 두게 되었던 당초, 이 세사람의 기이한 관계에 얼마간 익숙해지지 못했다. 물론 킹, 비숍, 루크의 대 간부 말고도 간부는 무수하고, 그들의 직속 스탭도 정치, 연구를 떠받치고 있는 귀중한 요소다. 하지만 역시 이 셋은 격이 달랐다. 진정한 의미로 정부의 중심. 그것은 능력적인 의미로도, 인품적인 의미로도 그렇다. 킹은 말할것도 없지만, 그 비상식적인 지능과 발상, 효율좋은 계산력이나 지도력을 통해 스탭의 동경이나 심취, 신뢰와는 또 다른 경의를 받고 있고, 오만한 태도도 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숍은 킹보다도 스탭과 거리가 가깝다는 의미로 실무적인 일은 대부분 맡고 있고, 행동력도 있다. 부하들의 절대적인 신뢰의 중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인. 루크라는 이름이 드려내듯이, 정치의 핵심. 킹의 신뢰가 두터운 그는 표면상으론 표표히 집무에 의욕을 보이진 않지만 그 수십배 이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전에 한번 나데시코는 마도카한테『일을 떠맡아서 큰일인거 아냐』하는 질문을 한적이 있어서, 그때 들어 알았다. 확실히 루크는 귀찮은 일을 떠맡기는데다, 남을 난폭하게 부리는데다, 할 필요가 있는 지조차 물어보고싶어지는 잡무까지 던져오지만, 실질적으로『루크』의 작업량은『비숍』과는 비교조차 되지않는다, 하고.
그걸 얘기할때의 마도카는 조금, 정말로 조금 분해보였다. 그건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의 눈이다. 정부의 모든 사람들은 적당히 제멋대로 사는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노력가인 모양이다. 비숍이 루크에 대해 지닌 동경과 공포를, 루크 역시 마찬가지로 킹에게 품고 있다. 그렇기에 정부는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마도카도 그랬다.
나데시코는 옆자리의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독재정권이라해도, 조직은 조직이고, 일은 일이다. 자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뇌도 있겠지. 가끔은 술이라도 마시며 숨을 돌리고 싶은건 나데시코가 아니라 그들이 아닐까. 문득 그런걸 생각하는 나데시코의 시선을 깨닫고, 마도카가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
「뭡니까……?」
「취한단건 어떤 느낌인게 싶어서. 게다가 술 그렇게나 맛있어?」
「마셔보시겠습니까?」
「에?」
「한모금 정도라면 괜찮겠죠. 연령적으로도 문제없으니까요.」
「문제 없는걸까……?」
「네. 여기.」
(에, 이대로?)
마도카가 마시던 잔을 그대로 건네받아, 약간 당홍했지만, 여기서 동요하는것도 화가나니까. 들키지 않게끔 잔을 건네 받았다. 덤으로 호박색의 액체를 들여다본다음, 뜻을 굳히고 입을 댄다. 마신다기보다는 핥는다는 느낌 정도로 액체가 목젖을 타고 흘러갔다.
「써……. 쓰다고해야하나……, 괴로워.」
「위스키니까요. 달진 않겠죠. 일단 그것도 단 맛도 있지만요.」
한모금으론 모를지도, 이번엔 큰맘먹고 세모금정도 마셔본다. 목이 아픈 느낌, 뜨거워지는 듯한 감각에 나데시코는 크게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재밌는 얼굴 하시는겁니가.」
「이런게 맛있어?」
「맛을 모른다는건 당신이 어린애라서 그런겁니다.」
이걸로 끝, 그리 말하듯 잔을 빼앗아가는 마도카의 모습에 나데시코는 웃하고 입술을 뾰족였다.
「맛취향과 연령은 상관없어. 게다가 익숙해지면 맛있게 느껴지는거잖아? 마도카도 처음부터 맛있다고 느낀건 아니잖아.」
「정론이지만……, 뭡니까, 그 손. 더 이상 마시게 해줄 맘 없습니다. 당신까지 취하면 귀찮습니다.」
「안 취했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마신적도 없는데. 아니……, 설마 이미 취한거 아니시겠죠?」
「안 취했어.」
「……………………」
하아, 작은 한숨소리가 들린다. 마도카가 잔을 테이블 위에 놓자 무심코 나데시코는 그걸 눈으로 쫓았다. 취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열이 있고, 머리는 어질어질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데시코의 주관상으론 취하지 않았다.
「안됩니다. 당신까지 이상해지면, 제가 킹에게 혼나게 되니까. 아니……, 킹은 기뻐하려나. 뭐, 아무래도 좋나.」
나데시코가 잔에 손을 뻗으려 하는걸 마도카가 머리를 눌러 저지한다. 몸을 팡팡때리며 버둥이다가, 이내 우하고 떼를 쓰는듯한 소리를 흘리는 모습에 마도카는 무심코 웃음을 참았다.
뭐냐, 이 이상한 생물같은건.
「당신, 절대로 술 마시지 않는편이 좋습니다. 쿠쿡……」
「어째서」
「재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빈틈 투성이. 보통남자라면 당장에 함락당했을겁니다.」
「잠깐……, 마도카, 얼굴, 가까워.」
「아아, 죄송합니다. 버릇이라.」
「어린애한텐 흥미 없잖아……?」
깨닫고보니, 문득 서로의 얼굴이 눈 앞에 있다. 취해있는건 대체 어느쪽이였던걸까.
가벼운 농담을 던지면서도, 취기가 기분 좋아서.
피부의 열기가 그걸 가속시켰다.
「흥미없습니다. 하지만……, 술의 맛을 안다면 어린애는 아니죠. 술은 맛있었습니까?」
「뭐……, 뭐야, 그 억지……. 맛없다고 말하면 어린애 취급할거잖아.」
「당신이 나쁜겁니다……. 그렇게 간단히 취해서, 틈 있는 얼굴 보이니까.」
「그러니까, 취하지 않았다니깐. 아직 이성은 있어.」
「이성있는 주제에, 밀쳐내지않는 겁니까?」
「취한건 당신쪽이잖아. 이성이 있으면 나같은건 상대하지 않겠지?」
「이거, 성가시군요……. 전 어떻게 되도, 모릅니다………」
마도카의 손가락이 앞머리를 쓸어올린다. 낮은 열이 담긴 목소리의 속삭임에 흐릿해져있던 사고가 조금 깨끗해진 나데시코는 그제야 조바심을 느꼈다.
(어, 어라? 왜 이렇게……?!)
「어라, 비숍군. 혼자서만 그러깁니까?」
「비숍……. 어찌된 일일까?」
순간 마도카의 몸이 굳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눈앞의 피부에서 순식간에 열기가 사라진다. 순간 마치 가면처럼 시들한 표정으로 돌아가는게 엄청나게 빨랐다. 역시 마도카 자체는 술에 먹히는 일이 없는 모양이다.
「당신들이 퀸을 내버려두니까 대신 상대해드렸던것뿐입니다. 놀려서 죄송합니다, 나데시코씨.」
「아냐……. 나도 놀려서 미안, 마도카.」
일방적으로 놀림받기만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웃는 얼굴로 반박한다. 마도카의 관자놀이에 새파란 혈관이 튀어나오는게 보였다.
(하아……)
자신이 토해낸 숨이 조금 뜨겁다. 장난이 지나쳤던 모양이다.
이 세계로 오고나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걸까. 아직도 생경하기도하고,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다. 자신의 목적은 막 왔을 무렵과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다. 그들을 받아들인다는 선택지는 아무래도 간단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 떠들썩함에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건 거짓이 아냐…)
죄악감을 동반하는 마음. 하지만 기이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 셋의 모습에 기막혀하면서도 왜인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각이 이율배반적으로 나데시코를 엄습한다. 그건, 그들이 어딘가 인간미를 지니고 있는 증거이기도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그들』과 같은 것을 어딘가에 지니고 있단 증거이기도하니까.
「나데시코. 심심하지않아? 미안, 소란피워서」
「에. 아냐……. 난 괜찮은데……」
「정말? 난 네가 심심하지 않았으면해. 조금이라도 즐거운 기분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어떻게해야 좀 더 널……,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그거라면 제게 맡겨주세요. 킹보다도 훨씬 더 즐거운걸 가르쳐드릴 수 있답니다.」
「자, 잠깐. 레인? 안지마!」
「아하하. 레인……. 그건 좀, 교활한걸.」
「저기, 저는 이제 일하러 돌아가도 되는겁니까?」
「안됩니다, 비숍. 당신도 퀸을 즐겁게하기 위해선 필요하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럼 사양 않고,」
「?! 마도카까지 무슨 소리야?! 자, 잠깐만……. 그, 그만……」
그들의 떠들썩함에 마음이 편해진단건 거짓이 아니라니…….
자신이 조금전 생각했던 내용을 지금 당장 취소하고 싶다.
프리덤한데다 남의 의사나 인권같은거 전혀 아랑곳않는 제멋대로인 종자들.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리기만할뿐인 미래라니, 절대 참을 수 없다. 결의를 새로이 다지고, 나데시코는 외쳤다.
「이, 이제 좀 적당히해해해해해해해!!!!!!」
심야까지 잔업을 처리하고 있던 정부의 스탭은 그 목소리를 듣고 동시에 생각했다고 한다.
『이 조직, 역시 이상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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