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릭하면 원래 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럼, 재회를 기념하며, 건배!」
실내를 가득 채운 그 호령은 차분하면서도 들뜬 명랑함이 함유되어 있다. 치켜든 7개의 잔이 제각기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크으……! 최고다!」
「토라씨, 아저씨냄새가 납니다.」
「시꺼. 너희들이 이상한거라구. 왜 처음부터 소주니 청주니 와인이니 하는거냐고. 보통은 맥주잖아. 협조성없긴.」
「아하하. 우리들도 사이온지군한테 협조성운운하는 소릴 듣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어. 시대는 변하는거구나.」
「타카토……. 바보취급하는거냐.」
「음. 외견만으로 판단할게 아니다, 타카토. 무엇을 숨기리. 토라노스케는 지금은 제대로된 인간이 된것이다. 그거다. 발을 씼었다, 고 하는 그것이다.」
「어이, 오해를 초래할 표현하지말라구. 내가 뭐 전직 양아치같잖아.」
「음? 아닌건가?」
「전직 양아치……. 비슷한거였죠. 토라씨에겐 딱 알맞은 표현 아닙니까.」
「아하하하」
「네놈들……」
「자아자아, 나는 토라군에게 동의해. 모두『답다면』답지만말야. 뭐랄까…… 역시, 전혀 변함이 없네.」
질린듯해 보이면서도 매우 즐거운듯.
나카바가 그리 말하며 웃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일 모시각.
도내에 있는 이 술집에선 작은 동창회가 열렸다. 동창회라기엔 다소 드문 집단이긴하다. 왜냐면 그들은 학생시대를 함께 보냈다곤하나 학년이나 반이 달랐고, 위원회도 부활동도 달라서 본디라면 접점이 전혀 없었을 멤버기 때문이였다.
「어라. 이 안주 맛있다. 자, 리이치로.」
「너, 편식하지않고 제대로 먹어. 어린애도 아니잖아.」
「머, 먹고 있어.」
「그럼, 왜 새우만 넘기는거야.」
「리이치로……, 안먹을거야?」
「혼자서 먹어. 어이……, 접시 밀어넘기지마.」
당연히 쿠죠 나데시코도 카노 리이치로도 이 모임에 참가했다. 그들이 초등학교 6학년때, 그래, 10년전의 일이다. 특별수업을 칭하며 모여 1개월을 함께 보낸 시절에 확실한『유대』가 싹텄던 그들.
이 날은 통칭『과제 멤버』 동창회였다.
「그러고보니 이 가게 TV에서 본적있어. 굉장히 인기있는 가게라던데……」
「그래, 평상시엔 제법 예약이 밀려있다고 들었어.」
「아? 그랬나? 예약한건 마도카였지?」
「이 가게는 하야부사 계열입니다. 당연히 나카바의 얼굴은 알려져있으니 그 사실을 이용해서 더러운 어른의 특권을 남용했습니다.」
「잠깐만, 마도카. 형의 이미지를 그리 쉽게 망가트리지 말아줄래?」
「괜찮다, 나카바. 그야말로 이미지 그대로다. 우리들을 위해 스스로 악역을 맡아준거로구나…….」
「그, 뭐냐, 대인. 뭔가 얘기가 장절해지지않았어?」
「후후. 그치만 정말 분위기 좋은 가게구나. 고마워, 나카바.」
「아니아니. 타카토군한테 고맙단말 들으면 부끄러운걸. 뭐, 어쨌든 오늘은 오래간만이랄까. 이 멤버가 전부 모여 마신건 처음에 가깝지? 모처럼이니까 즐기자.」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인 나카바의 모습에 다른 모두의 표정도 부드러워진다. 10년전엔 트러블 메이커로 요란스러움의 상징이였던 하야부사 나카바도 지금은 나이에 걸맞게 침착한 청년이며, 멤버를 한데 모을 수 있을 정도로 리더 기질이다.
(정말…… 감개무량하네)
옛날과는 너무 다른 갭을 보며 시간이 흘렀단 실감이 끓어올라온다. 신선하면서도 그립기도하지만 약간 쓸쓸하기도하다. 작게 미소하자, 문득 슈야와 눈이 마주쳤다.
「음? 그대도 스위트를 먹고싶은건가. 뭐가 좋지? 주문해주마. 나는 이 카토 쇼콜라가 좋다고 생각한다만.」
「에? 아니, 난 딱히……. 것보다 슈야, 디저트 주문할거야?」
「자, 잠깐 너……. 오늘은 코스지. 단품 주문하는건 상관없지만 왜 갑자기 디저튼데?」
「디저트는 마지막에 나오지 않을까?」
「음. 분명히 그럴거라 생각은 한다. 허나……, 미안하군. 나는, 지금, 실로 지금. 달콤한 것을 먹고 싶어진것이다. 이 마음…… 억누를수가 없다.」
「어째서 그렇게 시리어스에다 거드름 피우는 얼굴로 말하는건데, 너.」
「아하하. 뭐 어때. 슈야잖아. 난, 슈야다워서 왠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야.」
「타카토씨는 나이를 먹으며 태평함에 박차가 가해지셨군요.」
「에? 진짜? 나 이래뵈도 최근엔 야무지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마도카는……, 왠지 굉장히 어른이 됐네. 피곤에 찌든 샐러리맨같은 느낌이 들어.」
「왜 그렇게 기쁜 표정입니까, 당신. 그만두세요. 그 뜨뜻미지근하게 지켜보는 듯한 눈.」
시끌벅적, 온후하게 환담은 흥이 오른걸로 보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이들은 처음엔 약간 긴장한듯했지만 역시 이 멤버다. 죄다 마이페이스로 어린시절부터 협조성이 없다는 소릴 질리도록 들어온 그들은, 각자 자기 좋을대로 행동하면서 모두 이 모임을 기쁘게 여겨줬다. 그렇기에 떠들썩, 때때로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이가 안맞는 대화도 기시감을 느낄 정도로 변함없었다.
(그치만……, 굉장히 즐거워. 모두와 이렇게 만나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데시코는 이때, 정다운 그들의 분위기를 쬐며 다소 태평해져 있었다. 잊었던건 아니지만 10년을 지났다곤 해도 그들은 역시 그들이다. 그것을 실감하며 정말로 고생하게 된것은 약 1시간이 흐른 다음이였다.
**
(머리가 어질어질해………)
지나치게 마신탓일까. 하지만 아직 칵테일을 2잔 입에 댄것 뿐이다. 페이스는 그리 빠르지 않다.
나데시코는 술이 강한편은 아니다. 3잔째를 넘으면 기억이 애매해지고 이성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단 자각이 있는 그녀는, 물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문득 시선을 멈췄다.
「………? 뭐야, 리이치로?」
옆자리에 앉은 소꿉친구가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다. 발갛게 물든 눈가나 평상시보다 괴이쩍은 눈이 그녀를 빤히 바라다보고 있는 모습에 나데시코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보니 리이치로도 나랑 마찬가지로 별반 술이 강한게 아니였지)
「취했어? 리이치로, 물 마실래?」
「너……」
「응……?」
「너, 예뻐졌구나.」
「하아?!?!?」
소꿉친구의 갑작스런 말에, 나데시코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뺨을 붉혔다. 당황했다. 이 나이가 되고도 서로 얄꿎은 말밖에 나누지 않았던 그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리이치로, 취했지?」
「취하지 않았어. 생각대로 말한것 뿐이다.」
「저기말야…. 그러니까, 그게 취한거라니깐.」
「어이…, 나데시코.」
「왜, 그래?」
「오늘밤은…… 돌아가지 못할지도 몰라. 같이 있어줄래?」
「리이치로? 너 정말 취했어!!」
「왜그래, 나데시코?」
「아, 타카토…. 저기, 리이치로가 취한 모양이야.」
「에, 빠르네. 그러고보니 술 약했었지. 리이치로, 물 마실래?」
「난 취하지 않았어. 타카토, 끼어들지마. 난 지금 나데시코와 얘기하고 있어.」
「잠깐……」
「음~. 이거 취했는걸. 나데시코, 위험하니까 나랑 자리 바꿀래?」
「멋대로 굴지마. 내 옆자리는 이 녀석으로 정해져 있어.」
「헤에. 진귀하네. 진심이 나왔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이제와 널 상대로 숨길 맘은 없으니까.」
「그런가……. 그럼 나도 진심으로 상대할까나. 리이치로와는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부딪혀봐야한다고 생각했어.」
「에? 타카토? 왜 그렇게 호전적이야? 것보다 리이치로는 왜 그렇게 취한거야. 요전엔 괜찮았잖아.」
「그러고보니 그렇네. 그치만 그땐 확실히 다음 날 일이 있다고 리이치로는 전혀 마시지 않았으니까.」
「어이, 타카토. 나데시코를 독점하지마.」
「응. 오늘은 엄청 취한것같네. 말이 전부 삐뚤어져있을 정도야. 하핫.」
「웃을 일이야?! 리이치로가 이러는거 이상해.」
「미안미안. 안색이 나쁜것도 아니니까 괜찮을거야. 저기…, 나데시코. 역시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안올래?」
「어이, 타카토.」
「자, 잠깐만. 대체 뭐야?!」
**
「나데시코짱도 취했네……. 저거, 괜찮을려나. 타카토군이 있으니까 괜찮을까나?」
「아뇨. 저거. 타카토씨도 취했습니다. 얼굴에 나오지않아서 알기 힘들지만,」
「에, 정말? 굉장하다 마도카. 잘도 아네.」
「저녀석들, 술 약하긴. 것보다 카노 캐릭터 바뀐거 아냐? 어이, 슈야. 너도…… 이런, 글렀어. 자잖아. 이녀석 금방 잔다니깐…」
「날뛰지 않으니 그만큼 낫잖습니까.」
「아니. 처음엔 바로 퍼질러졌다가, 일어나면 날뛴다구, 이녀석.」
「과연, 대인…. 토라씨는 역시 술이 강하시군요.」
「뭐, 일 때문에 여럿 자리잡아 마시는 일도 제법 있거든. 것보다, 너도 제법 쎈 편이지?」
「평상시는 별로 없지만, 나도 일관계로 마시는 일이 많아. 그치만 술내성은 유전일려나. 부모님도 강한 편이고.」
「하지만, 나카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무렵 술자리에서 역으로 술에 먹혀 쓰러졌다 큰 소란이 되지 않았습니까.」
「큭……. 마도카. 그건 내 흑역사야……. 그건, 그 젊음의 극치랄까, 지금은 마시는법 아니까, 그런일 없어.」
「하하. 뭐 취중 추태담은 누구한테나 있지. 것보다 유전이라면 이해가 되는군. 동생인 너도 어렸을땔 생각하면 전혀 상상도 못하겠는걸. 술에 강하다던가, 그런건.」
「저말입니까……?」
토라노스케가 화제를 휘둘러오자,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던 마도카는 눈을 빛냈다. 그가 건넨 단어의 위화감에 조금 고개를 갸웃이다가「아아」하고 자기완결한다. 그런가, 이 사람은 몰랐던건가. 그렇게.
「저도 원래부터 세긴하지만, 나카바가 센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피가 이어진 사이가 아니니까요.」
「아, 그런가. ……에, 에엑?! 잠깐만. 뭐, 뭐라고……? 피가 이어진 사이가 아니라고?」
「어라? 토라군은 몰랐었나? 우리들 딱히 숨기진 않았는데. 그치, 마도카?」
「그렇죠. 알고 있는 사람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사람은 제대로 학교에 오지도 않았는데다 과제 멤버끼리 모일때엔 그런 얘긴 안했었으니까요.」
「아니………, 반응 가볍지 않아? 전혀 몰랐어. 그치만, 뭐…… 듣고보니…… 그렇게 된거였군.」
「뭐말입니까……?」
한쪽 눈썹을 꿈틀 치켜들고, 약간 도전적인 눈으로 마도카가 토라노스케를 바라본다.
마도카에게 이 사실은 진실이며, 숨긴적은 없다. 굳이 떠들고 다닐만한 일도 아니긴 했지만, 어린시절엔 굳이 숨긴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너, 어린시절. 이상할 정도로 형님형님 맹신했잖아. 그게 좀 위화감이 있다 싶었거든.」
「……………」
솔직히 하고싶은 말을 하는 그에게, 마도카는 분노하지 않았다. 어린시절이였더라면 부조리한 분노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은 그렇게 말해주는것 자체가 왠지 기쁘기도 했다.
「지금도 제게 제일은 나카바와 양친입니다.」
「그치만 지금은 가족 말고도 다른걸 소중히 여기지, 마도카?」
「그건, 뭐. 이 나이쯤 되니 아무래도 어른이 되었습니다.」
「헤에……. 뭐, 놀랬긴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니 그런걸지도. 진짜 피가 이어졌대도 서로 미워하는 가족도 있을 정도니. 거기에 비하면 너희들쪽이 훨씬 더 진짜야」
「토라씨…….」
「응? 뭐야?」
「댁, 의외로 좋은 사람이로군요.」
「하아? 뭐야 갑자기. 기분나쁘게시리.」
「하핫. 토라군은 좋은 사람이야. 옛날부터 오지랖도 넓었고.」
「그건 너희들이 너무 손이 많이 가서 그렇지. 특히나 이 녀석이.」
딱하고 아파보이는 소리와 함게 토라노스케의 옆에서 편안히 자고 있던 슈야가 눈썹을 찌푸린다. 잠꼬대를 하면서 성가신걸 뿌리치듯이 손이 한번 허공을 젓고나서 이내 다시 깊은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였다.
「음냐…. 토라노스케. 그 인질을 해방하는 거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서 울고 계셔…….」
「토라군과 대인은 이러니저러니해도 오래 교우가 기네. 과제멤버들도 수험이니 취직이니 다소 소원해지긴했었지만 결국 다른 사람한테 들어들어 상황같은건 알고 있었고.」
「뭐어. 고등학교정도때까진 전원 모이는 일도 많았지만, 각자 엮이는 멤머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도하고. 제법 오랫동안 알고 지냈죠.」
「토라군과 대인은 같이 있는일이 많았고, 타카토군과 릿땅, 나데시코짱도 셋이서 계속 사이가 좋은걸. 나는 타카토군과 릿땅과 함께 있는적 의외로 많았지. 역시 학년이 같아서.」
「그러고보니 중학교 때, 너희들 타카토랑 제법 사이가 좋았지. 방과후엔 언제나 뭔가 같이 했었잖아.」
「아아. 나보다도 마도카가. 한때 나데시코짱이랑 마도카가 타카토군한테 요리를 가르쳐준적 있었어.」
「그닥 떠올리고싶진않지만요……」
「어째서 네가 안가르쳐주고? 요리하면 너잖아.」
「나도 그 무렵부터 제법 바빠져서. 방과후엔 그닥 시간을 뺄수가 없었어.」
「아, 그러고보니 너. 그 무렵 잡지같은데에 실리고 그랬지.」
「하핫, 옛날 생각나네.」
따끈따끈 미소가 담소가 이어지는 와중, 나카바는 문득 옛일과 함께 토라노스케와 침착하니 대화를 나눌 수 있단 것에 감개무량을 느꼈다.
― 어린 시절, 토라노스케에게 공포나 두려움을 지닌적은 없지만 자신으로선 도무지 그 마음에 접근할 수 없을거라며 어딘가 슬퍼했던 적도 있었다. 그의 근본이 나쁘지 않단걸 알고 있으니까 단순한『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 허나 과제멤버로의 인연은 있어도, 개인적으론 결국 이룰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그는 달라졌다. 어디냐고 물어보면 조금 고개를 갸웃하고 말지만, 무언가가 확실히 변했다. 그게 세월탓인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인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지금, 옛 지인사이로서 술을 나눌 수 있을 수 있는건 솔직히 기쁘다. 자신은 지금, 세상속에 행복한 인간의 부류에 들겠지. 나카바는 그리 생각하며 조금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저쪽, 안말려도 되는겁니까? 카오스가 되어있습니다만.」
「에?」
***
「아니, 절대로 타카토쪽이 컸어. 명백했어, 그거.」
「그렇지 않아. 게다가 리이치로는 그 다음 집에서 케이크를 얻어 먹었다고 들었는데?」
「이녀석의 부친한테 불려갔던것 뿐이야.」
「헤에. 그렇구나. 가족끼리 사이가 좋구나. 부럽다.」
「잘도 말하는군. 그건 그거나름 여러모로 고생이 많다구.」
「잠깐, 타카토. 리이치로? 무슨 얘기야?」
「나데시코한테 받은 발렌타인 쵸콜렛 크기 얘기야.」
「너, 이녀석한데 진심 담아 보냈지? 중학교 시절.」
「하아?! 그, 그런거 없어. 리이치로한테도 제대로 줬었잖아. 것보다, 진심이라니……」
「응. 맞아. 나데시코는 매년 나와 리이치로한테 주는걸. 하지만……, 슬슬 나한테만 주지않을래?」
「엣……, 타카토!?」
「농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고 말하면 곤란할까……?」
「어이, 타카토. 이녀석한테 손 대지마.」
「어라? 리이치로. 예전엔『나데시코를 맡길수 있는건 너 뿐이다』라고 말했었잖아?」
「옛날 이야기야. 어린시절엔 나데시코가 널 좋아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저기말야, 멋대로 얘기 진행하지말래? 그건 어린애시절 이야기잖아.」
「진심이야?」
「……」
「나데시코라면 알지? 우리들의 마음. 만약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나 제대로 전해지도록 노력할셈이야.」
「타카토, 리이치로. 어, 어째서 그런 소릴…… 지금 여기서 하는거야…… 우우…….」
「아, 미, 미안. 울지마. 곤란하게 하고싶어서 한 말이 아냐.」
「판단하는건 너지만, 난 포기안해.」
「리이치로…….」
**
「뭔가 깨닫고보니 수라장이 됐네……. 저거 괜찮은건가?」
「뭐 어떻습니까. 나데시코씨도 취한탓인지 판단력이 둔해진 모양이고, 분명 내일이 되면 셋다 새빨간 얼굴로『일단 어제 일은 잊고, 다음기회에.』하는 전개가 될겁니다.」
「중학생 시절에 말야……」
「아?」
「나, 나데시코는 저 둘 중 하나랑 사귀겠지 했는데말야.」
「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결국 승부는 안난 모양인데. 아니, 한번 승부해봤다거나?」
「혹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물을래야 물을 수 없는 분위기로군요.」
「그러고보니 하야부사. 언제였더라, 너와 내기했었지. 저녀석들 일갖고.」
「아, 기억나 기억나. 확실히 토라군이 릿땅이였지? 난 타카토 군한테 건 기억이 있어.」
「내기하셨던겁니까……. 어떻습니까, 그거.」
「어린시절 얘기잖아. 뭐, 그래도 리얼한 얘기로 너희들도 녀석한테 반했던거 아냐?」「뭐어……, 솔직히 모두 동경했었지.」
「전 흥미없었습니다만.」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릴……. 토라군도 역시 나데시코짱은 특별했지않아?」
「아―…, 뭐. 그렇지만…… 타카토와 카노는 명백했다해도, 너희들이 어떤진 모르겠는데, 난……, 아마 슈야도 조금은 달라.」
「달라?」
「연애니 뭐니하는 그런게 아닌 특별이라고해야하나. 여자로서 보지 않았단건 아니지만.일단은 감사하고 있어, 녀석에겐.」
「토라씨, 열이 있으면 술은 삼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꺼. 농지거리말고. 이런 자리니까 가끔은 진심을 말하고 있구만.」
손에 든 잔을 흔들며 토라노세스케는 뭔가 생각에 잠기며 단숨에 내용물을 들이마셨다. 식도를 넘어가는 알콜의 감각을 기분 좋게 느끼며, 작게 입끄트머리를 들어올린다.
「너희들과의 관계……, 맺어준건 저녀석이니까.」
「에……?」
토라노스케가 온후한 목소리로 불쑥 한마디 뱉어낸 말에 형제가 눈을 깜빡인다. 약간 부끄러운 구석도 있었지만, 알콜의 힘을빌려 토라노스케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그가 10대 시절.
분명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분기점이라 불릴만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좀 과장이긴하지만. 그치만……, 왠지 잊을수가 없어)
모두가 적으로 보였던 소년 시절.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던 동급생도, 교사도, 이『과제 멤버』도 솔직히 성가시고 짜증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결코 그 짜증의 예외는 아니였던 그녀, 한결같은 눈을 하고 늠름히 선 소녀의 등이, 묘하게 눈부시게 보이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래, 언제였을까.
그건 복잡한 가정환경의 폐해속에 토라노스케가 가장 날카롭고 뾰족했던 시기로, 중학교 2학년이란 나이탓에 주위의 시선도 지금이상으로 엄격했던 무렵의 이야기였다.
**
그 날도 별거아닌일도 짜증이 나 있어서, 언제나처럼 말을 걸어온 나데시코를 불가항력이라해도 상처입혀버린적이 있었다. 손을 뿌리칠셈이였지만, 손톱에 긁힌건지 그녀의 뺨에 작은 흠이 났었다. 도망치듯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후, 누구봐도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어서, 날이 저물때까지 혼자 교실에 있던 토라노스케에 다가온건, 토키타 슈야였다.
『지금…, 나한테 접근하지마. 짜증난다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토라노스케.』
『허물없이 이름 부르지마! 너도! 너도…, 그 아가씨도 대체 뭐야. 남을 바보취급하며 깔보는것뿐이잖아?! 질색이라고, 그 위선자낯짝!!』
『뭘 짜증내고 있는거지……?』
『나한테 신경쓰지말라잖아. 어때서 넌…… 그런식으로 남을 안단듯한 낮짝으로 파고드는건데. 짜증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런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하아……?』
『내가 아는 그대는…… 바로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뚤어진 소년시대를 보냈다. 분명 지그의 그대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였겠지. 그럼에도 동료를 얻어 조직을 위해…… 우리들을 지키기위해 위세 서있었다. 인간으로서 잘못된 영역에 서있었던걸지도 모른다. 허나 그녀석에겐 그녀석나름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허나 지금의 그대는 뭐냐. 완전히 어중간하지 않느냐.』
『너……! 무슨 영문모를 소릴 지껄이는거야!』
『때리고 싶으면 때려라. 나데시코에게 그리했던것처럼.』
『………! 너, 보고 있었던거냐.』
『그대에게 잘못은 없다. 허나……, 토라노스케. 나데시코는 내일도 그대에게 말을 걸거다.』
『……? 뭐야,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나도 그렇다. 여기서 그대에게 맞는데도, 매도를 듣는다해도, 벗으로 여기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
『……. 뭐야, 대체. 어째서 너희는…… 의미를 모르겠어. 난 너희를 친구라고 생각안해. 기분나쁘다고. 어째서 그런 친구놀음에 집착하는건데!』
『친구놀음이 아니다. 그저……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은것 뿐이다.』
그 올곧은 시선에 토라노스케는 작게 숨을 죽였다. 그무렵의 토라노스케에겐 슈야가 또 전파발언을 하고 있는걸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여기서 녀석을 때리고 끝내선 안된다며 뇌가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이녀석은 지금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소릴 하고 있다.
『그녀는 나와 같은 기억을 지니고 있진 않겠지만, 그런건 관계가 없다. 나도, 그저 눈앞의 그대를 벗으로 여기는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있는것 뿐이다. 그대와 닮은 누군가가 아니라, 지금, 눈앞의 그대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믿는 것을 관철해, 내 고집을 부리고 있는것 뿐이다.』
『…………』
『그렇지 않으면 나는 후회한다. 본디…… 그대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그대가 싫어하기때문에 우리는 그대를 멀리해야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그대에게 필요치않다면 거리를 두어야하겠지.』
『그럼, 어째서―…』
『말했을텐데. 이것은 내 고집인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것 뿐이다.』
『네놈……, 그러다 맞아도 좋단거냐?』
『상관없다. 불합리한 폭력은 좋아하지않지만, 나는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진짜 영문 모르겠군……. 어째서 너도……, 녀석도 포기를 안하는건데……?』
『분명……, 나도 나데시코가 없으면 그대와 같았을거라 생각한다.』
『나랑 같아? 하, 불량이 됐단 소리야?』
『비슷할지도 모르지. 즉, 기대하지않고 포기하고 있었을거란 뜻이다.』
『………큭.』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후회에 시달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변함없이 나를 대해주었다. 평상시와 다를바없이 상냥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그대도 마찬가지다. 입으론 나나 다른 사람을 번거롭다하면서도, 곤란해하면 신경을 써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구원을 얻었다. 경위가 어찌됐든, 시간이 흘러 환경속에 자신이 변한다해도 근본은 변치 않는다. 나는 나 나름 앞으로 바라보며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글렀어……. 역시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어. 난 네 전파발언을 상대해줄 여유같은거 없다고.』
더 이상 듣고싶지 않다. 도망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대화가 계속되면 자신이 필사적으로 쌓아올린 허세가 무너질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언제까지나 그대의 짜증을 상대해줄 여유는 없다……. 여기서 묻지, 토라노스케.』
허나 슈야는 전혀 포기하지 않는 눈으로 그리 고했다.
여유가 없다같은 상반되는 말을 꺼내며.
『뭐야…….』
『우리는 그대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그때, 토라노스케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슈야나 나데시코, 과제멤버가 필요한가 아닌가하는 질문이라면, 솔직히 없어도 살 수 있다. 혼자라도 살아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자신이라면 슈야에게 그리 외치고 끝냈을 거였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토라노스케는, 그날밤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면 자신이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이다. 그런데도 적어도 슈야나 나데시코, 과제 멤버는『토라노스케』를 필요하다고, 그리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녀석들에게 뭔가 해준 기억이 없다. 그런 소릴 들을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슈야의 지론을 빌리면, 그런 타산적인 일이 아닌 것이다.
그저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건가. 함께 있으면 즐겁고, 다음날에도 만날 수 있으면 즐거울지도 모른다. 없어지면 신경 쓰인다, 성가시다도 생각한적도 있고, 싫은 부분도 꼽아보면 산더미처럼 있다.
그런데도 가능하다면 이『관계』를 없애고 싶진 않다.
그걸 삶속에서『필요』하다고, 친구라고 부르는거라면.
그건 지금까지 토라노스케가 살아오며 가장 바래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날, 슈야도 나데시코도 마치 어제의 일은 없었던 것처럼 토라노스케에게 말을 걸어왔다. 토라노스케는 그 자리에서 슈야와 나데시코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짜증이 솟는 것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것도 변치 않는다. 하지만 이 관계를 전부 없애고 싶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토라노스케는 그 때 확실히『달라진』것이다.
**
「너희들도 솔직히 짜증이라고 생각했어. 친하게 구는것도 귀찮았고. 하지만……, 같이 있는게 싫진 않았어. 너희들은 내 의견같은건 무시하고 내가 어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말하면서도 날 냅두지 않았으니까. 」
「토라군……. 위험해. 왠지 나 좀 눈물날 것 같은데.」
「하아? 하야부사, 너……, 얼마만큼 눈물샘 물러터진거야?」
「나카바는 영화 예고편을 보며 울수 있는 남자입니다. 그런 저도,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아니, 넌 뻥이지. 아니아니, 취해있으니 눈물샘 방어라인이 취약해진거 아냐?」
「하아……. 그렇구나……. 확실히 토라노스케는 돌보길 좋아하는 구석도 있었지만, 그래도 남들과 친하게 지내는거 좋아하지 않아서 조금 이상했어. 아직도 대인과 교류를 지니고 있는 거.」
「왠지…… 좀 부끄러워졌습니다만,」
「시꺼. 나도 내가 쓸데없는 소릴 했다고 생각한다고.」
「하핫, 뭐어때. 이런것도 동창회의 묘미지. 응. 역시 난 이 멤버 너무 좋아. 나도……, 너희들 만나 여러모로 변했다고 생각해. 나라기보단, 마도카가.」
「나카바…….」
「마도카가 변했으니까 나도 정신차려야겠다고 생각해. 그래서, 역시 그 계기를 만들어준게 그녀였었지.」
셋이 나란히, 아직까지 사랑의 트러블(?)을 계속하고 있는 나데시코일행을 바라본다. 변한것도 있고 변치않는것도 있다. 그건 너무나도 기쁜일로, 셋은 자연히 서로 웃음을 나누었다.
「그래서 결국 두사람의 대결, 어떻게 될거라고 봐?」
「오. 또 내기?」
「좋아. 아무래도 어른이 되면 적당이란건 없잖아? 그렇지…, 그치만 난 가능하다면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
「하지만 그건 무리겠지. 우리는 어른이 됐다고 하지만, 세간에서 보면 아직도 한참 어린애고, 사회경험도 옅고, 앞으로 진짜 의미로 인생에 대해 고민할 때가 올거야.」
「그렇겠죠. 어른들이 보면 여기서 이렇게 놀고 있는 저희들은 속편해 보이겠지요.」
「세상, 그리 쉽진 않고 말야.」
「응. 그러니까 분명 관계는 달라지겠지만…… 계속되는 것도 있을 거야. 이 자리라던가, 말야. 만나자고 생각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어. 하지만, 그건 뒤집 어보면 만나려고 생각하면 만날 수 있단 뜻인걸.」
「어이, 왠지 우리들 엄청 좋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핫, 정말로. 뭐, 토라군이 시작했잖아?」
「술 탓이야, 술 탓…. 참나, 완벽하게 변치 않는건 말도 안돼지, 환경이나 경험으로 인간은 달라지니까. 하지만……, 모든게 변하는것도 아냐.」
「그렇습니다. 분명 만남이 달라도 여기에 도달하리라 생각합니다. 모두 나란히 자기 주장이 격한 사람들이니까요. 별 거 아닌 경험으로 자신을 굽히진 않겠죠.」
「하핫, 확실히.」
쨍그랑하고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창회란건 곧잘 옛 이야기에 젖는 법이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머나먼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란건 조금 간지럽다. 내일의 즐거움이 늘어나는 모임이라고 불러야할까.)을 가지게 되는 자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리 사색하는 나카바의 뇌리에 문득 어떤 말이 되살아난다.
「소중한건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이라…」
「뭐야, 너. 아직도 센티멘탈에 젖어 있는 거야?」
「토라군한텐 지지 않지만. 그치만, 이거 누가했던 말이더라?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서 기억하곤 있는데.」
「저명한 사람의 명언같은게 아닐까요?」
「아냐. 그런게 아니라… 좀더 친근했어. 분명 학교 선생님이였던 것 같은데.」
「아, 그러고보니 어떤 선생이 그런 바람직한 소릴 했었지.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수 있다던가 뭐라던가. 」
「아아…,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지금을 살아 있는 자신을,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자』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어. 무슨 일이 일어날진 누구도 몰라. 결코 헛된 일이란건 없어.』
그건 기이한 감각이였다. 셋이 동시에 기억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그 말은, 계속 마음속 어딘가에 뿌리박혀 있었지만, 방금 금전까진해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마도카가 안단 건……, 우리 담임은 아닌거네.」
「그럼 그거 아냐? 과제 시작한 교사.」
「카가 선생……이였지?」
『카가 선생』에 관한 추억은 사실 그들에겐 기이한 것이 되어 있었다. 이름은 기억난다. 하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10년이나 된 옛 이야기니 기억도 애매해지겠지만, 그런데도 그들에게 커다란 계기를 준 교사의 얼굴이나 목소리, 분위기조차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단건 기이했다, 아니 부자연스럽단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교를 찾았을때 다른 교사들에게 물어봤지만, 그들도 똑같았다. 의심스러워서 교원명부를 찾아봤는데 이름은 제대로 실려 있었다. 허나 거기에 적힌 연락처와 연결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기이한건, 다른 교사들이 누구하나『특별수업』에 대해 모른단 것이였다. 그 무렵 슈린학원에선 특정 학생을 모아『특별수업』을 행한다는 교육방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단 말조차 들었다.
「이상한 얘기로군요……」
「뭐 ,이상한 녀석이였던건 기억나. 이 멤버를 모으려고 생각한 시점에서 정상이 아니고. 」
「그렇지. 그래도 감사를 드리고 싶었어. 언젠가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글른거다!!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을때 만나러 가지 않으면, 남녀의 사랑은 식어버리고 만다!!」
「하?」
갑작스레. 돌연히. 그런 비유가 꼭 맞을 정도로 엉뚱한 말이 들려와서 셋은 동시에 당황했다.
「그대는 모른다. 상대가 아무리 연락불능이라해도 보스턴백에 필요한 것을 채워넣고 비가 내리는 와중에 연인의 집 문을 두드려『와버렸어……★』라고 말할 정도의 기개를 보이지 못하겠나!」
「아니, 너. 의미를 모르겠거든. 뭐야 그 옛날 드라마같은 전개. 것보다 남의 멱살 잡고 흔들지마.」
「음. 뭐냐, 토라노스케냐. 리이치로인줄 알았다.」
「요컨대 지금건 릿땅한테 한 말이셨습니까?」
「푸핫, 푸후훗……, 위험해. 지금, 릿땅이 보스턴백을 들고 빗속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광경이 보였어.」
「하야부사……. 너, 만만찮다랄까, 악랄해졌는걸. 여러모로.」
「어쨌든, 토라노스케!」
「결국 나냐. 좀 물이라도 마시고 진정하라고, 너.」
「음……, 알겠다.」
「오, 솔직하네. 과연 주정뱅이.」
건전하게 잠들어 있을 그가 느닷없이 일어났으니 그 다음은 불보듯 뻔했다.
슈야는 느릿하게 눈앞의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으익?! 어이, 슈야. 그건 일본주야.」
「괜찮다, 토라노스케. 전부 말할 필욘 없다. 알rh있다.」
「아니, 모르지. 오타가 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혀가 꼬여 있다고.」
끄덕. 토라노스케의 제지도 덧없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슈야는 그대로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꿀꺽…… 꿀꺽꿀꿀꺽꺽……… 후련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자, 잠깐, 대인?! 너무 마시는거 아냐?! 아니 그걸 나발로………!!」
「굉장하군요. 사실은 강한거 아닙니까?」
「아니아니아니……」
「푸핫………. 음, 맛있군.」
「어이어이, 괜찮아? 너, 취하는것치곤 그렇게 약한 편이 아니란건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 병, 실은 물이니까요」
「에? 마도카? 언제 바꿔친 거야?」
「이런 사람이 있는걸 상정해 뒀습니다.」
「좋아, 리이치로! 그대도 마시는 거다!!」
「이런, 완전 취했네. 대인, 자기 전부터 제법 마셨었지……」
더더욱 들떠오른 대인, 슈야가 리이치로에게 물을 건넨다.
더 이상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아니, 막는게 귀찮다. 토라노스케는 순간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하아? 마시라고? 뭐 상관은 없지만…….」
「아뇨, 좋지 않지? 릿땅은 약하잖아?」
「약하지않아. 난 약한 척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데시코, 그렇지?」
「모, 몰라. 리이치로 같은 건 나 이제 몰라!」
「저기, 저희들이 얘길 나누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겁니까. 나데시코씨, 반쯤 울고 계신데.」
「나데시코……, 울지마. 리이치로라면 내가 쓰러트릴테니까.」
「타카토……, 네가 날 쓰러트릴 수 있단거냐?」
「둘 다 싫어.」
「엣……?! 나, 나데시코?!」
「뭐……라고……? 나데시코, 내가 싫단 거냐?」
「슈야, 나도 마실게!」
「오옷, 과연. 나데시코, 그대는 강한 여아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당신들. 약한 사람들이 가벼이 마실만한게 아닙니다. 몰수입니다.」
「에, 마도카, 너무해~」
「너무하는군.」
「너무해.」
「마도카……, 너무하게……」
「아니, 왜 제가 악역이 되어 있는 겁니까. 매달리지 마세요.」
타카토, 리이치로, 슈야, 나데시코가 마치 눈사태처럼 마도카를 엄습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카바는 잠시 먼눈을 했다.
「위험한걸.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좋아, 마도카. 힘내라.」
「어째서 토라씨와 나카바는 방관 기미이신 겁니까. 그쪽이야말로 의미를 모르겠습니다만.」
「뭐어, 네가 제일 강해보이니까, 적임 아닐까? 나한텐 짐이 너무 무거워.」
「잠………,」
나잇살먹은 어른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술주정.
자리는 평탄치 않은 열기를 보였다.
(굉장한 광경이네……)
그렇다지만 모두 과하게 마신건 아니고(슈야도 리이치로나 나데시코만큼 술이 약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마도카가 세이브해주겠지. 그런 부분에 있어선 전원 교육이 잘되어있는 부류에 속한다. 자신이나 곁에 있는 토라노스케도 마시는 법에 대해선 숙지하고 있고.
(이것도 동창회의 묘미, 란걸로)
나카바는 자신의 잔을 기울이며 남몰래 웃었다.
「저기, 토라군」
「응?」
「변한건 아무것도 없네.」
「그렇군……」
이 독특한 풍취를 기분좋게 즐기며, 두사람은 조용히 말을 나누었다.
『내일』은 오늘이 있기에 온다. 과거는 미래를 위해 존재하며, 미래는 지금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게 말한건, 대체 어디의 누구였을까.
『변하는 것』도『변치 않는것』도 본질은 마찬가지. 변해서 길이 열릴 때가 있듯이, 변치않는 신념이 미래의 주춧돌이 되기도 하니까.
우리들에게 필요한건 과거를 기억하고, 지금을 즐기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
동료들의 떠들썩한 목소리를 들으며 하야부사 나카바는 눈을 감는다. 가져왔을땐 차가웠던 얼음이 어느덧 녹아, 다시 작게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성향 > 클락제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락제로/SS] 백지의 꿈 (0) | 2015.05.03 |
---|---|
[클락제로/SS] Cocktail party 유심회Ver. (4) | 2012.06.21 |
[클락제로/SS] Cocktail party 정부Ver. (4) | 2012.03.26 |
[클락제로/SS]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1) | 2012.03.04 |
[클락제로/SS] 어느 가을의 꽃하늘 (0) | 201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