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P 공식홈
[PS2/아멘 느와르 발매기념 SS]
제 5편 크림슨편
* PSP 공식홈에 게재된 SS와 동일*
「이건 또 심하네. 잘도 여기까지 살아있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크림슨은 남자의 상의를 벗겨 침대에 눕혔다. 남자는 창백한 얼굴로, 이제까지 유지하고 있던 의식조차 몽롱해진 상태다. 크림슨의 말은 자연스럽게 혼잣말이 되었다.
「상처는 완전히 내장까지 달해있어. 장은 아웃이지만, 간장이 다치지않은건 다행일려나. 복압(腹壓) 때문에 튀쳐나오지않은것도 다행이고. 그렇다곤해도……, 낙관할 순 없지만.」
크림슨의 곁에서 남자의 CA로 추정되는 검은 방패가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계약파기가 아니라 소환종료다. 그것을 본 크림슨은 의외인듯 눈썹을 치켜든다.
「주인이 이렇게까지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는데도 계약을 파기하지않는건가. 상냥한 CA네. 어지간히 신뢰하고 있는걸려나.」
「선생, 응급 환자야?!」
쾅하고 문이 열리며, 크림슨의 조수, 샹타오가 진료실로 뛰쳐들어왔다.
샹타오는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간호사로서의 실력은 충분하다. 이미 수술복을 입고 있는것이 믿음직스럽다.
「응. 응급환자. 샹타오, 마취와 수혈 준비를. 수술실은 쓸 수 있어?」
「그건 문제없어. 마취라면 전신?」
「전신. 제법 대수술이 될것같아.」
지시대로 척척 움직이며 샹타오는 진료대위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쇄골이 꺼져있는것은 부러졌기 때문이다.
팔과 손끝도 몇군대 변색되어 부은 구석이 있다. 이것도 뼈가 상했겠지. 특히 심한것은 등에서 옆구리 까지 걸쳐져있는 상처로, 찢겨져 나갔다기보단 패여 도려져 나갔다는 표현이 옳아 보인다. 예리하지만 두터운 형태의 날붙이에 당한거겠지. 상처는 무참하기 짝이없었다.
「무슨 CA일까……. 이상한 상처네.」
「이건 추측이지만, 첨단이 창같은 무기겠지. 검이라면 좀 더 날카로운 상처가 됐을거야.」
「날카로운 상처라면 손상이 더 적을텐데. 마취와 수혈 준비끝났어. 됐어?」
「그럼 수술실로 이동하자. 쇼크사로 죽어도 곤란하니까, 조심히.」
두사람은 간이 침대를 밀어 간이 수술실로 들어간다. 남자는 완전히 의식을 잃어, 신음소리 하나 흘리지 않았다.
***
수술이 완료된것은 몇시간이 지난 후였다.
밤이 깊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둘은 간신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아……, 피곤해라!! 그리고 배고파……!」
거실 겸 주방에 놓인 소파에 뛰쳐들듯 몸을 내던지며 샹타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크림슨은 쓴웃음을 지으며 냉장고를 열었다.
「냉동식품이라도 괜찮으면 오늘은 내가 저녁을 준비할게.」
「아, 안돼. 그건 관둬. 선생의 밥은 싫어. 꼭 이상한거 내오는걸.」
「샹타오, 이상하다니, 너무하지않아?」
「대량으로 구운 소세지만 갖고 나오거나, 그냥 파스타 데친것만 나오는걸. 게다가 부엌도 엉망이 되고. 싫어.」
「부엌쪽은 그렇다치고…, 야채 쥬스도 준비하니까 영양적으론 딱히 문제없잖아.」
「맛이 똑같은 것을 대량으로 섭취하는게 싫어. 됐어, 내가 간단히 만들게. 하지만 먼저 30분 휴식하고나서.」
「알겠어. 그럼 나도 휴식. 아무래도 피곤하네.」
크림슨은 웃으며 샹타오의 건너편에 걸터 앉았다. 그러자 샹타오가 울컥하는 얼굴을 한다.
「선생! 잊은거 있어.」
「잊다니, 뭘?」
「어째서 모르는건데……. 냉장고문 열어놨잖아!」
「어라? 아……, 진짜다. 미안미안.」
「정말, 진짜로 눈을 못때겠다니깐. 됐어……, 뭔가 마실걸 갖고 올게.」
샹타오는 일어나, 냉장고에서 차가운 차를 꺼내 잔에 따른다. 2개를 준비해, 한쪽을 크림슨앞에 내려놓았다.
「고마워, 샹타오.」
「천만에. 그래서, 선생. 좀전의 환자 살것같아?」
「글쎄…….」
샹타오의 물음에 크림슨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답했다.
「솔직히, 상당히 위험한 상태야. 출혈이 많고, 상처도 심해. 쇄골쪽은 뭐, 살아있기만하면 어찌되겠지만, 만약 목숨이 부지한데도 팔은 틀렸어. 한쪽팔은 절단하는게 더 빠를지도 몰라.」
「괴사한거야?」
「신경계가 완전히 아웃. 남겨봤자 움직이지않을거야. 그쪽은 봉 형태의 CA한테 당한게 아닐까? 상당한 솜씨야. 어딜 어떻게 하면 인체를 못 쓰게 되는지, 잘 아는 자의 실력.」
「흐응……. 그런가.」
샹타오는 작게 숨을 내뱉고서 크림슨의 이야기를 흘렸다. 너무하다곤 생각하지만, 환자에게 일일이 감정을 하고 있을 순 없다. 팜으로 오고나서 몇여년,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그저, 가엽네,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 나중에 사람의 카르테 만들어야지. 선생, 본인한테 이름같은거 들어뒀어?」
「이름은 못 들었지만 예상은 가. 그는 아마『스톤 골드 크레이지』가 아닐까나. 그런 유쾌한 연미복을 입은 현상범, 달리없는걸. 옷으로 자기소갤 하는거나 마찬가지네.」
「연미복……?」
샹타오의 얼굴에서 표정이 가셨다. 크림슨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건지, 쓴웃음을 띄우며 말을 잇는다.
「옷은 내가 벗겼으니까 샹타오는 못봤겠네. 신사인양 구는걸까, 굉장히 우스운 복장이였어. 자기과시욕이 강한 사람일려나.」
「선생, 그녀석 구할 필요 없어.」
「샹타오……?」
굳은 목소리로 말하는 샹타오의 모습에 크림슨은 고개를 들었다. 샹타오는 잔을 든채 무표정히 크림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석, 살인범이야. 나, 그녀석이 남을 죽이는 모습을 본적 있어.」
「샹타오…….」
「벌써 몇 년전 일이긴하지만, 최하층에서 연속살인사건이 있었잖아? 그 범인이 그 녀석. 내가 아직 스트리트생활을 하고 있을때, 밤중에 비명소리가 들려서 대로를 엿봤더니, 농담처럼 새카만 턱시도남이 유쾌한듯 남을 죽이는 모습을 봤어.
턱시도는 연미복이지? 상대는 큰 체구의 남자였지만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죽이지말아달라고 외쳤어. 나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어. 그래서 더 이상 거기 있을 수 없단 생각에 주거지를 바꿨어. 난 그런 녀석의 목숨같은거 구하고 싶지않아.」
샹타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림슨은 손안에 든 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작은 소리가 났다.
「여기는 현상범을 위해 있는 진료소야, 샹타오. 현상범은 범죄자야. 당연히 사람을 죽인자도 있어. 하지만 그래도 팜은 그들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해주고 돌봐줘. 여긴 그런 범죄자들을 받아들이는 곳이란거,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런건 알아! 알지만, 싫어! 생떼란 소릴 들어도 상관없어, 그래도 난 녀석을 구하고싶진않아! 살인자한텐 도와줄 가치따위 없잖아!!」
「샹타오……, 그렇진 않아. 그 말을 꺼내면, 팜의 존재의의가 이상해져. 애당초 여기서 스톤을 못본척하는것도 살인이야.」
「읏……」
샹타오의 얼굴에 핏기가 치솟는다. 말을 잘못했다, 크림슨은 그리 생각했지만 늦었다. 샹타오의 분노는 보다 더 격화되었다.
「살인? 내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틀려! 녀석은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죽였어. 나는 그저 돕지않는것 뿐이잖아! 선생은 상냥하니까 범죄자든 살인자든 상관없이 구해주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상냥하지 않아!! 그 날 밤, 목숨을 구걸했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샹타오는 탕하고 테이블위에 잔을 내려놓고서 그대로 팜의 거실을 빠져나간다.
「샹타오, 잠깐. 밤에 밖에 나가선 안돼.」
「선생의 말같은거 듣고 싶지 않아!」
뛰쳐나가는 샹타오에게 아무말도 않고, 크림슨은 한숨을 쉬었다.
현명하긴하나 샹타오는 아직 어린애로, 게다가 묘하게 완고한 구석이 있다.
샹타오를 구슬리는건 함께 사는 크림슨에게도 어려운 일이였다.
정말로 밖으로 뛰쳐나간거라면 힘을 써서라도 막아야하겠지만, 현관문은 이미 채워뒀고, 열쇠는 이 방에 있다. 그걸 갖고 가지 않았다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크림슨은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피로감이 늘었다.
「살인범은 이제까지 제법 왔긴한데……」
그래도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본 상대와, 죄목밖에 모르는 상대는 감각이 다른거겠지. 생생한 현실에 샹타오가 혼란스러워하는것도 별수없는 일이다.
「상냥하다……, 라……」
비난처럼 내던져진 말이 귀에 남아있다.
상냥하단 말은 본디 칭찬의 말일텐데, 오늘밤은 달랐다. 명백하게 샹타오는 크림슨을 책하고 있었다.
어째서 살인자를 용서하는 거냐고.
남을 죽인 인간이 남에게 죽임당하는건 인과응보가 아니냐고.
「하지만말야……, 난 전혀 상냥하지않아, 샹타오. 이런 말을 하면 분명 네게 미움받겠지만…」
크림슨은 무릎위에서 깍지를 꼈다.
각진 손가락에선 소독약 냄새가 떠돌았다.
「남을 죽이는게 나쁜지 아닌지, 난 잘 모르겠어. 생명을 빼앗아선 안된다고 이해는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실감이 가지않는걸.」
곤란한듯 그리 말하며, 크림슨은 눈을 감았다.
***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샹타오는 고개를 들었다.
크림슨에게 폭언을 내뱉고 방에 틀어박히고 나서 2시간. 생각해보면 얼마나 유치한 행동이였을까. 시간이 지나 냉정해지자 부끄러워졌다.
「선생……?」
찾아올 상대는 크림슨밖에 없단걸 알면서도 샹타오는 되물었다. 그에 응하듯 샹타오의 방이 찬찬히 열린다.
「샹타오, 잠깐 괜찮을까?」
사과해야한단건 알지만, 솔직하게 그리할 수 없다.
아직도 납득이 안가는척 해야할까 말까, 샹타오가 망설이는 동안, 문 틈새로 크림슨이 얼굴을 내비쳤다.
「화났어……?」
쭈뻣쭈뻣 질문하는 크림슨의 얼굴은 몹시 난처해보였다.
그걸 보자 독기가 빠져서, 샹타오는 무심코 쓰게 웃었다.
「화 안났어. 나보다 선생은 화 안나?」
「아니……. 그, 나는 혼나는건 익숙하지만 화내는건 익숙해진적없고. 게다가, 역시 사실은 샹타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자신의 뜻을 접을순 없는 곤혹스러움을 얼굴에 드려내며 크림슨은 머리를 긁고 있다.
샹타오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내가 잘못했어. 그런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구해야하는게 맞아. 미안..」
「…….」
크림슨은 말없이 샹타오를 바라봤다. 그것이 부모의 상태를 엿보는 어린아이같아서, 샹타오는 웃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약을 바꾸는게 좋을까?」
「그 건이라면……, 좀전에 죽었어. 아침까지 버티지 못했어.」
샹타오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는다. 시선만을 아래로 내리고서, 그런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럼 장의사를 불러야겠네……. 아침이 될 때까진 기다려야겠지만.」
평상시와 다름 없는 말투로 돌아온 샹타오의 모습에 안도한건지 크림슨근 그제야 웃었다.
「응. 수고는 들겠지만 잘 부탁해. 그리고……, 저녁밥 말인데,」
「아, 미안. 배고프지? 바로 만들게」
「아니, 내가 준비했으니까 괜찮아. 제대로…」
「에, 준비했어…?」
샹타오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웃음을 띄우고 있던 크림슨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괘, 괜찮대두! 딱히 이상한건 아냐! 냉동포장된 스튜를 뎁히고 빵을 구운것 뿐이,」 「안된다니깐! 그래도 최악의 사태를 일으키는게 선생이잖아?! 앗, 이상한 냄새!!」
「에? 이상한 냄새? 나?」
「나! 이거, 과학약품이 눌어붙는 냄새야! 선생, 시츄 뎁히는데 뭘썼어?!」
「뭐냐니, 그냥 렌지에 팩을 넣고, 띵하고,」
「알루미눔 팩을 그대로 전자렌지에?! 마, 말도 안돼!!」
타이밍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크림슨의 등뒤, 주방쪽에서 펑하는 파열음이 울러퍼졌다. 크림슨의 미소가 삽시간에 새파래져간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만두라고 했잖아!! 바보, 왕바보!! 벌써 몇 대째야?! 빵은 어떻게 됐어?!」
「저, 저기, 악의는 전혀 없어, 없긴한데, 결과적으로 렌지는 다시 바꿔야하나……?」
「전자렌지는 1회용이 아냐!! 이래선 장의사보다 수리공을 먼저 불러야잖아!」
크림슨의 백의를 잡아당기며 샹타오는 식당으로 내달렸다.
호통을 치면서도 평상시와 다름없는 민폐스런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안도하며.
'여성향 > 아멘느와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멘 느와르/SS] 제 6회 젝스편 (0) | 2012.04.24 |
---|---|
[아멘 느와르/SS] 제 4회 엘편 (0) | 2012.04.23 |
[아멘 느와르/SS] 제 3회 레인편 (0) | 2012.04.23 |
[아멘 느와르/SS] 제 2회 나이브스편 (0) | 2012.04.22 |
[아멘 느와르/SS] 제 1회 소드편 (0) | 2012.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