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P 공식홈
[PS2/아멘 느와르 발매기념 SS]
제 3편 레인편
* PSP 공식홈에 게재된 SS와 동일*
집 대신 잡아둔 호텔로 돌아가던 도중, 레인은 고가 아래서 사체를 발견했다.
최하층에서 사체란 그리 드물지도 않다.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객사하거나 병사하는 자들이 많은데다, 지금은 아침. 모종의 이유로 밤중에 바깥을 어정이다, 헌터와 현상범의 싸움에 말려들어 버렸다는 결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무시하고 지나쳐가려하다 걸음을 멈춘것은 그 사체가 신음 소리를 흘렸기때문이였다.
사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토한 피가 레인의 구두끄트머리를 미약하게 더럽혔다.
예상외로 아직 살아있다.
목숨이 남아있다.
허나, 살아있으니까 그게 뭐란거냐. 상관할 맘따윈 없고, 어차피 죽어가고 있는 참이니, 편안히 죽게 내버려두면 되지. 애당초 길가에서 죽어가는 남자에게 관심따윈 없다. 레인은 한번 멈췄던 걸음을 재차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
문득, 조금전 팜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넘버 나인 나이브스라던 남자가 하는 짓.
바보같고 하찮기짝이없게 목숨을 걸고 남을 돕는 그 행위.
「칫…….」
그런 걸 마음에 담아뒀던 자신에게 짜증이 나 레인은 혀를 찼다.
나이브스란 남자를 만난 적도 없고, 감화되다니 구토가 치밀 정도다. 허나…….
「아……, 아―……」
끊어져가는 생명을 쥐어짜내듯 남자가 소리를 올린다. 상상했던것보다 젊어보인다.
이미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아직 필사적으로 살아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혼자 죽고 싶지 않다, 최후의 최후까지 버둥이고 있다.
그 것이 몹시 거슬렸다. 가날픈 신음도 떨리는 어깨도 마치 레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듯해서 짜증이 난다. 이런건 무시하고 스쳐지나가는게 제일이란걸 알곤 있지만, 스쳐 지나간다해서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행동하는것도 어렵단걸 레인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아무리 익숙해진 풍경이라해도 봐버린이상 기억에 남는다.
「귀찮게시리…….」
생각하는것도, 멈춰버린 다리를 움직이는것도 귀찮아서, 레인은 일생 단 한번뿐인 변덕을 부리기로 했다. 어차피 이 남자가 죽을때까진 그닥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도울 맘은 없다. 고작 몇분 상대해주는 것 뿐이다.
「어이, 무슨일이야.」
레인의 목소리에 반응해서 남자의 눈이 열린다. 초점이 안맞는 시선이 멍하니 레인을 바라본다.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어딘가의 노동자인 모양이다.
「사고라도 있었나?」
남자는 쓰러진채 고개를 끄덕이려했지만, 그러지못한채 흐느꼈다. 부상탓에 호흡이 거친줄알았지만 원래부터 그닥 산소를 들이마시지 못하는걸지도 모른다. 이것은 분명 늑골이 부러져있다. 레인은 그리 냉정하게 판단했다.
부러진 뼈가 폐에 꽂혔거나, 폐 자체에 외적 손상이 있는거겠지.
본인에게 자각이 있는지 없는진 모르겠지만, 입에서 토해낸 선명한 선혈이 그것을 전해주고 있다.
「나…, 는……,」
레인의 물음에 남자는 꺼질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장, 일, 와중에, 떨어진 자재에, 깔려서. 다쳐서, 그래서, 여기에……」
말을 하는걸로 의식이 조금은 선명해진건지 남자의 눈에 희미한 이성의 빛이 깃들었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레인은 가벼이 숨을 내뱉는다.
「그래서? 여기서 자면 어쩌잔건데. 다쳤으면 의사한테 가라구, 의사. 최하층이래도 의사는 있잖아.」
「아, 니……, 난, 상류계급층에서, 다, 쳐서,」
「상류계급층…….」
그 단어에 레인의 얼굴이 격하게 일그러졌다.
다른 계층에서 부상을 입은 노동자가 최하층에 버려진다.
그것은 극히 알기쉬운 메비우스의 구조다.
메비우스의 계층은 다섯.
특권계급층, 통칭「헤븐」
상류계급층, 통칭「소사이어티」
중류계급층, 통칭「커먼」
노동자계급층, 통칭「C층」
그리고 최하층, 빈곤층이라고도 불리는 이름없는 계층.
계층이란 단어 그대로, 각각의 생활 영역은 단계적으로 분획되어, 각계층의 주민이 교체되거나 뒤섞이는 일은 거의 없다.
계층간의 이동은 가능해도, 삶을 바꿀순 없으며, 설령 같은 계층에 산다해도 상위 계급출신의 인간은 하위계층 출생의 인간을 차별하고, 업신여긴다.
그것은 특권계급층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강해지는 감정이며, 차별받는 인간의 자질같은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건 어디 출생이냐하는 것, 그 뿐이다.
그것이 레인이 사는 메비우스였다.
「아아……, 그래서 죽어갔던거군, 너.『위』에서 사고를 당해서 여기에 버려진건가.」
벌써 10여년 이상 가슴속에 들러붙어있던 짜증이 다시 피어올라, 레인의 목소리가 낮아진다. 남자의 턱이 작게 움직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이였다.
「계속, 상류 계급층,에서, 일하다가, 그래서……, 오늘 아침, 어제, 인가. 다쳤, 더니, 쓸데 없다고,」
중류층 이상의 계층에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없다.
상위 계층은 하위계층이 지탱한다. 따라서 더러운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하층에서 상층으로 일하러나가는 일이 잦다. 그것 자체가 메비우스를 지탱하는 경제활동이며 급료는 제대로 지불하지만 작업이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하위계층 인간이 쓰이며, 사고가 발생해도 별다른 보장을 해주지않는다.
특히, 그것이 최하층 출신의 인간이라면 보다 더 심하게 취급했다.
「최하층 녀석은……,『사원』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좋다. 돌봐줄 의무도 없다. 못쓰게 됐으니 원래있던 곳에 버리고 와라, 그런 뜻인가.」
「………」
남자는 대답조차 않고 그저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 먼 눈을 했다.
아무렇지도않게 내다버린 상위층의 인간을 원망하고 있는건지, 인간취급받지 않을거란걸 알면서도 굳이 최하층을 떠난 자신을 후회하고 있는건지.
레인으로선 알 수 없었지만, 남자의 표정엔 체념쪽이 더 강해 보였다.
애당초, 최하층에서 태어난 자신이 나쁘다고.
나아가서는, 메비우스에서 태어난 자신이 나쁘다고.
「돌아가고……, 싶어…….」
피냄새 나는 숨을 내뱉으며, 남자가 중얼거렸다.
「집으로?」
「집…….」
레인의 질문을 남자가 멍하니 반추한다.
「집……이, 아냐. 집은, 없어. 가족이 없으니까. 하지만, 돌아가고 싶어.」
「집이 없는데 어디로 돌아갈 셈이야. 네 출신지는 여기잖아.」
「아냐……. 아니…, 맞아. 하지만……, 여기는, 이런 장소는, 싫어…….」
다시 의식이 혼탁해진걸까, 남자의 말이 불명확해졌다. 남자의 눈이 감겼다. 눈꺼풀이 떨린다.
「이런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누구나가 당연스레 여기는 것을, 이제와 깨달은 진실처럼 입에 담으며 남자가 말을 이었다.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아. 이런 곳에서, 이렇게―…. 보고싶어, 무서워, 나, 나, 는……」
남자의 눈꼬리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뺨을 타고 흘러 떨어졌다.
「망할……….」
레인은 무릎을 꿇었다. 무릎과 옷이 더렵혀지는건 아무래도 좋았다. 난폭하게, 아니 주의를 기울여 남자의 어깨에 손을 댄다.
「죽지말라고, 바보. 바로 근처에 진료소가 있어. 거기까진 버텨.」
「…….」
다시 남자의 눈꺼풀이 떨리더니, 레인을 바라본다.
레인은 그 시선을 개의치않고, 상처입은 내장이 상하지않게 어깨죽지사이로 손을 넣어, 들쳐일으켰다. 고통이 있을텐데도 남자는 전혀 소릴 내지않았다.
「누굴 보고싶은지, 어딜 가고싶은진 모르겠지만, 시답잖게 죽진 말라구. 들개라면 들개답게 진득하게 살아. 포기하고 받아들이지마. 넌 죽기위해 태어난게 아니잖아.」
「…….」
남자는 무언가 말하려하는 모양이였다.
「뭐야, 너―…」
그것을 되물으려했을때, 풀썩, 갑작스레 남자의 몸이 무거워졌다.
레인은 놀라 남자를 재차 바라봤다.
아직 따뜻하다, 힘이 빠진것뿐으로, 좀전과 하등 다를바가 없다. 그저.
「…………」
숨이, 끊어져있단 그 사실하나를 제외하고.
「아아……, 너도 참, 바보로군.」
일순 눈을 내리깔고, 레인은 탄식했다.
들쳐 올린 몸을 천천히 다시 원래대로 땅에 내린다.
사체는 처음부터 거기서 죽어있었던것처럼 극히 자연스럽게 붉게 더럽혀진 지면과 하나됐다.
이런 일은 드물지도 않은 얘기.
메비우스에선, 특히 이 최하층에서는 극히 진부하고 일상적인 풍경.
그것을 신경쓰며 염려해봤자 뭐가 된단 걸까.
일어선 레인은 남자를 내려다봤다.
「아니지……. 바보는 나인가. 신경쓴 쪽이 나쁘지. 어차피……, 이리 될거란건 알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마천루의 틈새에서 해가 떠올라 세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태양빛에 놓인 사체는 조금전까지 살아 대화를 나눴던것이 거짓말같아서, 백일몽이라도 꾼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미 죽어있던 남자와, 아직 살아있는 레인.
혼자 남겨졌다. 그리 생각해버리는건 죄악감 때문일까.
「그럼,」
레인은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그 자리를 뒤로했다.
구두에 묻은 피는 마르기 시작했었다.
***
「상류 계급층에서 사고가 있었다.」
네임리스의 보고서를 바라보던 바운티어 CEO, 젝스는 불러들인 엘과 클론을 향해 그리 말했다.
「특권계급층과 이어진 도관이 파괴되어, 특권계급층으로 가는 구멍이 뚫렸다. 아마 아니라곤 생각하지만 이건 컷스로트 리퍼 스냅퍼(Cutthroat ripper snapper)의 범행일 가능성이 있다. 클론, 엘. 둘이서 현지를 조사하고 와라.」
「현지조사라니, 상류계급층입니까?」
「특권계급층이다. 녀석이라면 특권계급층을 노리겠지. 얘긴 해두지. 한시간뒤에 여길 나서라.」
「진심입니까……」
「알겠습니다.」
게엑하고 굉장히 싫은 표정을 하는 클론과, 그에 반해 무표정하게 대답한 엘 두사람이 사장실을 나간다.
그것을 배웅하며 젝스는 다시 한번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죽었군, 이건…….」
사망보고는 되어있지 않았지만, 사고규모로 보아 인적재해가 없을리 없다.
그저 최하층 인간이 죽어도 메비우스의 운용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에 보고서엔 기재되지않는 것이다.
「……」
작게 눈을 내리감은 젝스는, 보고서를 책상에 놓고 일어섰다.
「느와르가 돌아올 시간이군. 갈까.」
그 말을 중얼거리며 사장실을 나선다.
펄럭이는 코트 자락이 일으키는 바람에 보고서는 바닥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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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자체는 괜찮고 재밌는데 정작 게임은 미묘할것같은 이 미묘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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