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쥬네 대수해(大樹海)의 북쪽을 걷던 리리스 일행.
그 머리으론 별이 깜빡이며, 달이 형형히 빛나고 있다.
인공적인 빛이 일절 보이지 않는 황야. 자신들 이외엔 인적도 없이, 누군가 지나가는 기척도 없다. 낮부터 쭉 걷기만 했던 일행은 근처에서 강을 발견하자 야영을 하기로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숲도 있어서 결코 안전하다곤 할 수 없었지만, 밤도 제법 깊어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건 내일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리리스 일행은 야영 준비를 하는 자와, 주위 순찰에 나서는 자로 나뉘었다.
야영 준비엔 다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주변 순찰을 돌 사람은 둘.
순찰조로 뽑힌 네이트와 니코는 바로 야영 장소에서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네이트와 니코의 귀에 닿는다.
네이트는 주위를 둘러보며 코를 실룩였다.
「딱히 이렇다할 냄새도 없고, 기척도 없구만. 니코……, 당신 뭔가 느껴지는거 있어?」
「아뇨. 게다가 그런건 저보다 인랑인 네이트군쪽이 특기잖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마도사잖아? 잘 모르겠지만, 그 힘으로 조사같은거 못해?」
「가능하지만, 귀찮잖습니까.」
「귀찮다니 당신………」
그럼, 뭘 위한 순찰인데.
그렇게 대꾸하고싶었지만, 니코의 태연한 태도에 헛수고란걸 깨달은 네이트는 어깨를 추욱 늘어트린다.
두사람은 아직 만난지 얼마 안돼서, 상대의 성격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니코는 자유분방하고 타인의 언동에 얽매이지 않는다. 리리스의 지시를 따르고 있긴했지만, 기본적으론 자신을 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한다.
네이트가 한숨을 쉬자, 니코가 노골적으로 고개를 향해온다.
「네이트군. 적재적소란 단어 알고 계십니까?」
「하아? 갑자기, 뭐야.」
「적재적소란 그 자의 능력이나 특성에 걸맞는 지위나 일을 맡기는걸 가키리는겁니다. 즉 네이트군의 능력을 사려해본 결과 지금은 저보다 그대의 힘이 적절하단 겁니다.」
「그거랑 당신이 순찰 안하는거랑은 다르지 않아?」
「저는 헛된일은 하지않는 주의입니다.」
「그런가………」
니코와 얘기한 것만으로도 갑자기 피곤이 밀려든다.
네이트는 귀를 접고 꼬리를 추욱 늘어트렸다.
그럼에도 순찰은 계속됐고, 특히 이렇다할 일은 없었다.
이어 두사람의 앞에 야영지에서 보았던 숲이 모습을 보인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울창한 숲안은 새카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래? 몬스터의 기척은 안나지만 만약을 위해 조사해둘까?」
「그렇군요……. 시간도 아직 있고, 조금 들어가봅시다.」
「조사한다고 딱히 문제도 없을테고…, 게다가,」
「게다가?」
갑자기 많을 끊으며, 니코가 숲을 빤히 바라본다.
혹시 이 숲에 뭔가가 있는건가.
자신이 깨닫지 못한 무언가를 마도사인 니코는 깨달은걸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네이트는 마도사란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모른다기보단 몰랐다. 니코 이외의 마도사를 만난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보긴했지만, 죄다 기이한것 뿐으로 리리스나 나유타가 쓰는것과는 달랐다.
네이트가 긴장하며 니코의 다음 말을 기다리자,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어쩌면 신종 생물이나 식물같은걸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렇지, 유적이 있다면 최고겠지만요. 그러면 제 마음은 흥분으로 불타오를겁니다!」
니코는 더할나위없이 들뜬 목소리로 눈을 반짝였다.
「그, 그쪽이 본심인가……?」
「물론입니다! 아니, 아니죠. 덤입니다. 덤. 메인은 어디까지나 순찰입니다. 네이트군역시 성녀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싫죠?」
「거야 그렇긴한데…」
「그러니, 당장, 탐색입니다! 자아, 가시죠!」
「어이, 지금 완전 탐색이라고 했잖아?! 우와악?!」
니코는 네이트의 딴지를 무시하고, 그의 셔츠 옷깃을 움켜쥐었다. 니코쪽이 10센티 정도 컸기 때문에 네이트의 발치가 작게 들린다. 네이트는 두 팔을 뒤로 빼서 니코의 팔을 때내기위해 버둥였다.
「어, 어이! 잡아당기지마! 그만해!! 아~~ 알겠으니까! 갈께! 갈테니까 놔!! 알아서 걸을 수 있어!」
네이트를 질질 끌어당기며 니코는 척척 걸어 나아갔다.
움켜쥐인 니코의 손을 때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생각외로 힘이 세다.
결국 네이트는 니코에게 이끌려 숲으로 들어갔다.
◆ ◇ ◆ ◇ ◆
숲속에 즐거운듯한 발걸음과 질질 지면을 끄는 소리가 난다.
희미하게 패인 지면엔 두 개의 삐뚤어진 선이 숲 입구에서부터 쭉 이어져 있다.
의기양양히 앞을 나아가는것은 니코고, 발꿈치로 지면을 끄는건 네이트다.
네이트는 이미 포기의 경지에 이르러, 니코에게 끌려가는 상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쭉 목덜미를 붙잡힌 상태라서 약간 괴롭다.
네이트는 니코를 바라보며 으르렁댔다.
「어이, 이제 좀 놔주지 않겠어?」
「아아,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실례.」
「우왁」
니코가 네이트의 목덜미에서 손을 땐다.
느닷없는 사태에 네이트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네이트는 바지에 뭍은 흙을 털며 일어선뒤 니코를 노려봤다.
「니코, 너……」
「아하하핫, 네이트군은 덤벙이로군요.」
「누가 덤벙대! 내가 반듯이 선 다음에 손을 놨어야지!」
「그렇게 억지 쓰셔도도 곤란합니다.」
「요만큼도 곤란하지 않은 주제에 그런 소리 말라구! 참나……, 당신이랑 같이 순찰하는건 이걸로 끝이면 좋겠군.」
오늘 하루 종일 걸어온 탓에 생긴 피로보다 지금 니코와 함께 순찰을 도는쪽이 몇배나 피곤한 기분이 든다. 네이트는 깊이 한숨을 쉬고 맘을 새로 고쳐먹은뒤 앞서 나아가는 니코와 나란히 섰다.
「니코, 당신이 말했던 신종 생물같은게 있나?」
「유감스럽지만 그런 종류는 없는 모양이로군요. 실로 극히 평범하고 아무것도 없는 숲인 모양입니다.」
「그런것치곤 그닥 풀이 죽은것같지 않은걸. 좀전엔 그렇게 기대하는 눈치였으면서」
「신종 생물이란 그리 쉬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발견했을때의 기쁨과 고양감은 잴수 없을 정도지만요……!」
「헤, 헤에……」
황홀한 표정을 띄우고 존재치도 않는 환희에 몸을 떠는 니코의 모습에 네이트가 얼굴을 실룩인다. 그때 네이트의 귀에 작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닿았다.
「뭐지……?」
「네이트군? 무슨일 있습니까?」
미간을 찌푸리는 네이트를 보며 니코도 괴이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저 멀리 어디서 들리는지 잘 몰랐던 소리가 분명히 들려왔다.
네이트가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 빛의 그물같은것이 니코를 향해 덥쳐왔다.
「니코!!」
순간 니코를 차날린다.
니코는 걷어차인 충격으로 옆 나무에 부딪혀 작게 신음했다.
「갑자기 너무하는군요, 네이트군……」
등뒤의 나무에 기대며 자세를 고친다.
니코가 걷어차인 복부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네이트의 원망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짓이란건가? 그거 미안하군.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안할걸 그랬어.」
자신의 오른팔에 들러붙은 빛의 그물을 내려다보며 분한듯 독설을 내뱉는다.
니코를 걷어찬 직후 네이트도 바로 물러섰지만 한발짝 늦어 하늘에서 내려온 기이한 빛의 그물망 일부가 팔에 걸리고 말았다.
빛의 그물은 마치 의사를 지닌듯 꿈틀대며 네이트의 오른팔을 조이고 있었다.
「칫…, 이래선 활을 못써먹겠군.」
「어라……?」
「뭐야? 니코, 이게 뭔지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게 말하려했을때, 두 사람의 머리위, 빛의 그물이 내려온 곳에서 목소리가 울러퍼졌다.
「하하하하하하핫!! 마침내 발견했다, 니코 벨벳나인!!」
그 직후 목소리의 주인이 나무위에서 뛰어내려 네이트와 니코 앞에 내려선다.
달빛을 받는 그 인물은 굵은 목소리와 체형으로 보건데 성별은 남자.
챙이 긴 모자를 뒤집어 쓰고 어깨엔 망토를 걸치고 있다.
손에는 30cm정도의 짧은 지팡이를 지니고 있으며 목이나 손목, 허리엔 두개골 모양을 한 기묘한 악세사리같은걸 몇 개씩 달고 있었다.
입고 있는건 니코와 거의 다를바 없고, 키는 네이트보다도 조금 작은 정도였지만, 그 폭은 그들의 2, 3배는 되었다.
「어이. 뭐야 저 뚱땡이. 당신 지인?」
「설마. 제겐 저런 저런 추악한 지인없습니다.」
「그치만 지금 당신 풀네임 불렀잖아. 게다가 옷도 왠지 당신이랑 비슷하고.」
「실례로군요. 저를 저런 기분나쁜 생물과 같이 취급하지말아주세요. 뭐, 저쯤 되는 대현자라면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대도 이상할건 없으니 절 동경하고 숭배하며 흉내 내 보려하는 마음은 모를 바도 아닙니다. 허나, 저건 결코 비슷하지 않습니다.」
「윽………………」
네이트와 니코의 대화에 남자가 전신을 부들부들 떤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눈을 치켜뜬 남자의 관자놀이에 핏줄기가 몇 개 떠있다.
허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둘은 말을 잇는다.
「그래……? 난 당신이나 저녀석이나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저를 저런거랑 같은 취급 말아주세요. 굉장히 섭섭합니다.」
「뭐, 저런 체형으로 저런 옷은 좀……. 아니, 상당히 엄하긴한데.」
「그렇군요. 저 뒤룩뒤룩 살찐 몸. 보기만해도 유해하군요.」
니코가 명백하게 얼굴을 찌푸린다.
네이트도 니코만큼 곁으로 드려내진 않았지만, 확실히 눈앞의 남자를 보지않으려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가차없는 폭언과 태도에 남자의 분노는 마침내 폭발했다.
「적당히, 해!!!!!!!!! 잘 들어라!! 나는 마도사 레이반!! 니코 오늘에야말로 그 날의 원한을 갚고 말겠다!!」
레이반가 니코를 가리키며 거칠게 콧김을 내뿜는다.
그걸 들은 네이트가 니코를 올려다보며 레이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도사라는군. 역시 동류잖아.」
「아닙니다. 저런것과 같은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아니야!!!그런 녀석 같은 취급하지마!!」
니코가 레이븐이 목소리를 나란히하며 부정한다.
두사람이 보내오는 무언의 시선에 네이트는 긁적긁적 뺨을 긁었다.
「뭐, 그건 냅두고……. 당신 니코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건데?」
「그녀석은 내가 소중히 여겼던 매직아이템을 빼앗아갔어! 몇 번이나 돌려달라고 말했는데도 무시하다가 결국엔 그 아이템을 망가트렸어!!」
「이렇게 말하는데, 기억나?」
「전혀 안 납니다. 사람 잘못본게 아닐까요?」
「아냐! 난 이 눈으로 똑똑히 봤어! 그건 분명 네놈이였어!!」
「그리 말씀하셔도…… 전 아무래도 좋은일은 금방 잊는 주의라서. 설령 제가 그 매직 아이템을 망가트렸다고해도 그리 귀중한 아이템은 아니였던거겠죠. 전 희소가치가 있는건 설령 그 무엇이든 섬세히 다루니까요.」
「네, 이놈……!!」
니코의 발언이 레이반의 분노를 보다 부추긴다.
네이트는 어깨를 으쓱인뒤, 오른팔을 레이반쪽으로 내밀어보였다.
빛의 그물은 아직도 네이트의 오른팔의 자유를 빼앗고 있었다.
「어이, 이거 때내주지않겠어? 엄청 짜증나는데. 난 상관없잖아?」
「거절한다! 네놈은 니코의 동료잖아?! 그럼 네놈도 같은 죄다!!」
「같은 죄라니……」
순간, 동료가 아니란 소릴 꺼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런 소릴해도 상대는 들어줄맘이 없겠지.
이미 분노로 침착함을 잃고, 네이트에게도 살기를 세우고 있다. 금방이라도 공격해올 기세다. 허나 네이트는 부풀어오르는 살기에 압박당하지 않고 살기를 흘러 넘기며, 니코에게 물었다.
「니코는 이거 어찌 좀 못해? 당신이 쓰는 마법과 같은거잖아?」
「네, 쓰이고 있는 마법은 같군요. 허나 그 마법을 건 장본인이 아니면 풀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제겐 불가능합니다.」
「그럼………, 당신이 저 녀석한테 솔직히 사과하는건? 당신이 저 녀석한테 무슨 짓을 저지른진 모르겠지만, 그럼 해결되잖아?」
「제가? 사과를? 잠꼬대는 이불을 덮고서 부탁드립니다, 네이트군. 제가 저런것한테 사과하다니, 백억년이 지나도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사과한다고 누가 순순히 용서할까보냐! 난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말겠어!!」
니코가 무슨 말을 할때마다 레이반의 신경을 거스르는 형국이다.
이 이상 얘기해도 끝이 없다. 네이트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칼집에서 뽑아, 왼쪽 손에 쥐고 레이반에게 겨누었다.
「니코……. 당신은 좀 조용히해줘. 이 녀석 상대는 내가 맡지.」
「그렇습니까……. 그럼 그쪽은 그대에게 맡기죠.」
몸을 돌려 네이트와 등을 맞대며 니코는 두 손에 마총을 쥐었다.
그리고 네이트의 사각지대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총구 끝에는 무성한 나뭇잎뿐. 하지만 니코는 거기에 있단 확실을 지니고 있었다.
네이트는 목을 돌리며 입술 끝을 끌어올렸다.
「당신도 눈치챘던건가.」
「그만한 살기가 이쪽을 향하니 당연합니다. 게다가 기척을 숨기는것도 네이트군만큼 능숙하진 않은 모양이니……. 아무래도 그도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마도사와 마찬가지로 덜떨어진 모양이로군요.」
짐짓 일부러 그러는양 굴러다니는 마도사와 ‘덜떨어진’이란 말을 강조한다.
그 말에 레이반이 격앙했고, 니코가 총구를 겨누고 있는 나무 잎들이 작게 흔들렸다.
상대를 동정할 맘은 전혀 없지만 그 말엔 네이트도 기막혀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남 아픈 곳을 찌르는거야……」
「네이트군도 조금전 가차없이 말하셨잖습니까. 뚱땡이니 바보니, 기분나쁘다느니.」
「그렇게까진 말 안했어.」
「하지만 내심 그리 생각했겠죠? 저쪽에 숨어있는 엄청난 얼간이씨한테도.」
다음 순간 레이반의 지팡이가 빛을 쏘아낸다.
동시에 나뭇잎이 크게 흔들리더니 거기서 검은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손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나이프.
네이트와 니코를 노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죽어어어어어어어억!!」
지팡이가 쏘아낸 광구를 재빨리 피한다.
레이반은 연거푸 공격해왔지만 네이트가 지닌 발군의 반사신경은 그것들을 쉽사리 피했다. 네이트는 상대의 틈을 노려 레이반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때 네이트의 코가 숲 먼곳에서 나는 어떤 냄새를 맡아, 움직임을 멈춘다.
「이 냄샌……. 리리스? 왜 이 숲에……, 게다가 이쪽을 향해오고 있잖아……?」
리리스의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린다.
귀를 세우자 발소리는 점점 더 커져왔다.
「네이트……? 니코?」
곧 이어 리리스가 두사람을 찾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늘려오자 네이트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녀석… 하필 이럴 때……」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고 떫은 표정을 짓는 네이트를 레이반은 수상쩍이 여겼다.
네이트의 시선 끝을 더듬어도 보이는건 그저 숲의 나무.
하지만 레이반에게도 리리스의 목소리는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방향에서 계속 눈을 때지 않는 네이트를 보며 레이반은 히죽 웃었다.
「크크크큭……. 아무래도 좀전의 목소리가 상당히 신경쓰이는 모양이로군.」
레이반의 말에 네이트가 그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그 반응을 보아하니…… 이쪽으로 안 왔으면 하는것같은데……」
「무슨 말이 하고 싶지……?」
조금전까진 표표했던 분위기는 싹 가셨다.
내뱉는 목소리도 낮았고, 크게 뜨인 동공도 가늘고 뾰족했다.
레이반은 그런 네이트를 눈치채지 못한채 리리스가 있는 쪽을 흘긋 바라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글쎄…. 저 여자를 죽이면 네놈들은 어떨려나……? 니코 벨벳나인도 아무래도 저 여자가 신경쓰이는 모양이고.」
네이트의 뒤에서 니코가 힐끔힐끔 리리스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레이반의 웃음이 짙어졌다. 나이프를 쥔 네이트의 손에 자연히 힘이 실린다.
「리리스를…… 저녀석을 죽인다고?」
「하하하핫! 역시 저 여자가 죽으면 곤란한 모양이군! 그럼 더더욱 그래야지. 네놈들을 괴롭힐수 있다면 뭐든 해주마!!」
레이반이 지팡이를 지켜들어 마력을 담고 리리스를 표적으로 설정했다.
아직 모습을 확인할순 없었지만, 리리스는 상당히 이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레이반의 지팡이가 발하는 빛은 컸다. 공격의 위력도 조금전보단 강하겠지.
그런걸 리리스가 맞으면 거리가 있다해도 무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팡이에서 광구를 발사하는 일은 없었다.
「크, 우윽……」
레이반이 신음 소릴 낸다.
네이트가 그의 품사이로 파고들어 나이프로 그 심장에 찔러넣었다.
이어 천천히 레이반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지면에 쓰러진 다음 움직이지 않게 됐다.
「미안하군. 당신한테 원한같은건 없지만, 녀석을 노린다면 얘긴 다르지. 녀석에게 위해를 가하려드는 놈들은…… 누구든 내 적이야.」
나이프에 묻은 피를 떨쳐낸뒤 칼집에 담는다.
그러자 레이반이 걸었던 빛의 그물이 사라진다.
네이트는 안도하며 해방된 팔을 빙빙 돌렸다.
「아, 다행이군. 이녀석이 죽어도 남으면 어찌하나 싶었는데. 그러고보니…… 저쪽은 어찌됐지?」
한편 니코도 주눅드는일 없이 상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좀전엔 리리스의 존재에 의식을 빼앗겼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적에만 집중하고 있다. 적의 움직임은 빠르다. 허나 네이트에 비하면 별볼일 없었다.
「역시 그대는 덜떨어진 모양이로군요. 게다가 슬슬 성녀가 이쪽으로 올것같으니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니코는 여유롭게 미소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마총에서 발사된 두 개의 광탄이 나이프를 휘두르려하는 남자에게 명중한다.
「크아아아아악!!」
광탄을 맞은 남자의 전신이 푸른 불꽃에 둘러쌓이더니 단숨에 불타오른다.
남자의 몸이 검은 잿덩어리로 변해가는걸 바라보고 있자니 뒤에서 네이트가 말을 걸어왔다.
「그쪽도 끝난 모양이군.」
「네. 그도 그대에게 보복할 셈으로 와있던 모양이로군요.」
「그런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설마 서로의 뒤를 닦아주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허나 이걸로 일단은 안심입니다. 성녀에게 걱정을 끼친 모양이로군요.」
「이러니저러니 시간 좀 잡아먹었으니까.」
「네이트, 니코? 어디 있어? 벌써 밥 다 됐어~」
태평한 리리스의 목소리에 네이트와 니코는 쓴 웃음을 지었다.
나무들 사이로 모습도 보였지만, 리리스는 주위를 두리번 거릴뿐 이쪽을 발견하진 못한 모양이다. 두사람은 리리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문득 네이트가 한숨을 쉬었다.
「날 원망하는 녀석은 썩을 정도로 있으니까…… 또 이런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진저리나는군…… 당신도 기억만 안나지 나랑 마찬가지일것같고.」
「그건 부정하지않겠습니다만, 그땐 또 이렇게 퇴치하면 되죠. 저와 네이트군이라면 낙승입니다.」
자신만만히 웃는 니코의 모습에 네이트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렇군……」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며, 꽉 쥔 주먹을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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