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기
습한 여름의 냄새가 밤공기에 스며들어왔다.
달력은 아직 여름을 가리키고 있지만, 가을은 이미 류큐의 코 앞까지 다가와있다.
계절이 변해가는 밤은 왠지 황망하다.
그런 밤에 나는 타쿠토쿤과 요스케군을 양 옆에 두고 여자 기숙사까지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파티 엄청 즐거웠어!」
오늘밤은 타쿠토군의 생일 파티. 분위기가 너무 좋아 완전히 늦어져버린지라 두 사람의 배웅을 받게 됐다.
「카즈키와 히지리의 듀엣곡『포(泡) (our) 히어로 타쿠토』는 걸작이었지」
요스케군이 그걸 떠올리며 웃음을 참는다.
「가사를 바꾸면 걸작이라 인정 못해줄 것도 없어.」
침울한 표정으로 타쿠토가 말한다. 요란법석 왁자지끌한 와중 쯧코미를 너무 많이 넣어서 타쿠토군의 목소리는 다소 갈라져 있다.
확실히 굉장한 명곡이었다.
노래의 후렴구에서 타쿠토군의 이름을 연호하는게 아직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로 웃고 떠들고 있을 때, 나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저기……, 말하긴 좀 어려운 얘긴데……」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온후한 분위기는 단칼에 종막을 고하고 말겠지. 그러나 말해야한다.
「무슨 일이지, 아키라?」
타쿠토군이 괴이쩍은 표정을 짓는다.
「요스케군의 T 셔츠 말인데……」
「이 녀석이 묘한 T셔츠를 입고 있는건 알고 있어.」
요스케군은 언제나 기이한 T셔츠를 애용한다. 오늘은 해삼이 그려진 T셔츠다.
「저기… T셔츠에 해삼 무늬가 그려진게 아니라…, 진짜 해삼이 달라 붙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하는 말이긴하지만 정말 이상한 소리다. 하지만 확실히 요스케군의 T셔츠엔 진짜 해삼이 들러붙어있다.
요스케군이 미간을 찌푸린다.
「아무리 그렇대도 T셔츠 무늬와 해삼을 착각하진 않………!」
요스케군이 느닷없이 뒤돌아선다.
「보여봐, 요스케.」
「칫, 거절한다.」
타쿠토군이 뻗은 손을 요스케군이 걷어낸다. 명백하게 수상쩍은 거부다.
「급한 볼일이 생각났어. 너희들은 먼저 가.」
그리고 내달리는 요스케군.
「무슨……, 어이, 잠깐!」
「아키라를 부탁한다, 타쿠토. 난 이 녀석을 바다로 돌려보…… 아니지, 갑자기 헤엄이 치고 싶어져서, 이만.」
그렇게 말하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요스케군. 상당히 멀어진 거리에서 갑자기 빙글 뒤돌아섰다.
「타쿠토, 가다가 늑대만은 되지 마라.」
「안 돼!」
해삼을 손에 들고, 요스케군은 바다로 달려가버렸다…….
「늑대가 되다니, 무슨 소리야?」
요스케군이 말했던 의미불명의 말을 물어봤다. 또 물정 모른다고 화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타쿠토 군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모모모모모, 몰라도 돼. 그런건.」
그 리액션을 보아하니 이상한 의미란건 알겠다.
「그, 그런 눈으로 보지마!」
상기된 목소리로 타쿠토군이 말했다.
「농담이야, 가자.」
「그, 그러지……」
타쿠토군과 달빛 아래를 걷는다.
머리위에 뜬 커다란 붉은 달의 빛. 작금의 달은 나이트플라이오노트의 전선기지다.
나이트플라이오노트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웃고 떠들고 즐거워할때라도 그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울적해진다.
모처럼의 즐거운 마음이 점점, 점점 시들어 그 대신 불안이 흘러넘친다.
타쿠토군이 살짝 등 뒤에 손을 얹었다.
「떨고 있 는건가……?」
타쿠토군의 상냥한 목소리.
「응. 그치만 괜찮아…… 꺅」
타쿠토군에게 웃은 얼굴을 보이기위해 몸을 튼 순간 발치의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위험해……」
타쿠토군이 어깨를 받쳐 막아준다. 자연스럽게 그 팔에 안긴다.
선이 가는 인생이 있던 타쿠토군이지만, 어깨를 안아 받쳐준 그 팔은 든든하고 사내답다. 딱딱한 근육의 감각이 믿음직스럽다.
「고, 고마워……」
그렇게 말하다말고 심장이 멈출 뻔했다.
바로 곁에 타쿠토군의 얼굴이 있었다.
타쿠토군이 날 직시하고 있다.
어, 어쩌지.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아. 이렇게 두근대면 타쿠토군도 알아버릴텐데. 밀착한채 두사람모두 움직이지 않고 있다. 찬찬히 타쿠토군의 체온이 전해져온다.
어쩌지……, 이대로 가만 있으면 타쿠토군이 이상하다고 생각할텐데…….
갑자기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깜짝 놀라 심장이 멈출 뻔했다. 난폭하게 수풀을 헤집으며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뭐, 뭐지…?」
「이쪽으로,」
타쿠토군이 내 팔을 당기며 달린다. 그대로 정원수들 뒤로 몸을 숨겼다.
「어라? 이상하네. 이 근처에 있는 것 같았는데?」
이 얼빠진 목소리는 틀림없이 서브스탠스 페르난데스다.
「목소리가 크잖아, 페르난데스! 두 사람한테 들린다구.」
작은 목소리로 그리 말한건 레스폴. 그쪽도 완전히 다 들리고 있는데…….
「귀염둥이랑 타쿠토가 해삼 때문에 엄청난 꼴이란걸 놓칠 수 없지. 해삼이잖아? 전혀 상상이 안가는데 왠지 엄청날것같잖아.」
크흐흐하고 웃는 페르를 레스가 딱하고 때렸다.
「해삼은 어디까지나 계기라니깐. 살짜기 지켜봐주는게 재밌는거라구. 그런데 그렇게 큰 목소릴 내서 들키면 완전 헛수고잖아. 하아, 이런건 페르한텐 좀 레벨이 높았으려나?」
「높은거라면 점프하면 되는거 아냐? 우럅!!」
뿅뿅 점프하는 페르한테 레스가 박치기를 먹인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바보난데스!!」
「아프잖아! 어이, 거기서 레스!!」
「안 설 거 거든~? 별 수 없으니까 페르나 갖고 놀아 볼까.」
페르와 레스는 나타났던때처럼 소란을 피우며 멀어져 갔다.
「변함없이 시끄러운 녀석들이다.」
타쿠토군이 쓴웃음을 짓는다.
「아하핫. 저 두사람은 언제봐도 사이가 좋네……」
「요컨대…… 요스케의 해삼은 레스폴의 장난이었단 말인가.」
「다행이야. 요스케군이 그렇게까지 둔한게 아니라서……」
「아니, 요스케도 한패라고 봐야겠지.」
「그랬어? 난 전혀 몰랐는데.」
「당신이란 사람은…… 의심을 몰라. 하지만 다행이야. 좀전의 그걸 레스가 봤다면 이 다음 어떤 소리를 들을지……. 아, 아니 나는 교관과 단 둘인 장면을 목격당하는게 싫은게 아니라, 솔직히 적극적으로 기정사실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시집가기전의 여성에게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면 면목이 없다고 해야할까………」
타쿠토군이 굉장히 빠른 말투로 중얼중얼 중얼거리고 있다.
「타쿠토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냐. 신경쓰지마. 자, 갈까」
다시 둘이서 밤길을 걷는다.
「서브스탠스들은 전부 재밌어.」
「그래. 하지만 서브스탠스들은 명백히 나이트플라이오노트의 일종이다.」
타쿠토군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에?」
하지만, 서브스탠스들은 우리들의 적과는 전혀 달라……. 그 말을 꺼내는것보다 빠르게 타쿠토군이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이트플라이오노트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들과 서브스탠스들이 서로를 이해한것처럼.」
「그런 발상…… 생각도 못해봤어.」
「카즈키의 말을 따라한것뿐이야. 나는 나이트플라이오 노트를 좀 더 알고 싶어. 싸움이 끝나려면 어느 한쪽이 멸망해야만 하는건…… 너무 비극적이니까. 이쪽이 이기느냐 저쪽이 이기느냐하는게 아닌 제 3의 길이 있을거야.」
타쿠토군은 여러모로 궁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네. 그렇게 되면 좋겠다.」
마음 깊이 그리 생각한다.
타쿠토군이 머리위의 붉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 옆얼굴이 갑작스레 덧없게 느껴졌다. 문득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왜 그렇게 느낀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불안이 치밀어 올랐다.
「타쿠토군.」
손을 꽉하고 움켜쥐자, 타쿠토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그러지?」
「왠지 모르겠지만 타쿠토군이 멀리멀리 가버릴 것 같아서……. 나도 참, 이상하지?」
타쿠토군은 굉장히 상냥한 얼굴로 내 손을 맞잡아 주었다. 머리위에 뜬 붉은 달빛이 좀전보다 훨씬 더 상냥하게 느껴졌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