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아의 손에 끌려, 루카는 마을 외곽에 있던 공장 지대까지 뛰었다. 다행히 휴일이다. 공장은 지금 휴업중이었다. 주위에 인적도 없이 그저 조용했다. 루카와 이리아는 첩첩히 쌓인 석탄상자 뒤에 몸을 숨기고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시간의 여유 따윈 없다.
에디와 니노가 공원에서 있었던 일 전부를, 지인이 이능자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할 때까지 유예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마을에서 꾸물거릴 순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진정한 상태로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
그걸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머리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정리할 틈도 없이 상황은 점점 기괴하게 뒤틀린다. 루카는 움찔했다. 이리아가 권총 두자루를 꺼내 익숙한 모습을 두 손에 거며쥐었다.
그렇게 이리아는 주위 상황을 살피더니, 이어 확인을 마치고서 빙글 총을 돌려 홀스터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멍청히 입을 벌린 루카에게 설명을 했다.
"이것은 부모님이 준 호신용이야.'
설명.
그래, 설명이 필요했다.
"어쨌든 전부 이야기할게. 당신은 나와 같은 처지일지도 모르니까."
"부탁할게."
루카는 힘없이 대답했다.
완전히 지쳤다. 이젠 무슨 말을 들어도 놀랄 기력도 없었다.
루카와 이리아는 돌층계에 나란히 걸터 앉았다.
이리아는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지 약간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말을 꺼냈다.
"나한텐 어릴때부터 기이한 힘이 있었어. 그리고 그 힘 덕분이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꿨어. 우리 고향, 서남부에 위치한 사니아 마을에는 그런 아이들이 달리 몇 명 더 있었어. 하지만 기이한 힘을 남들앞에서 쓰거나, 그를 이야기 하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굳게 타일러 왔어. 그러다가 마티우스가 아르카라고 하는 종교 집단을 거느리고 찾아왔지."
"조금 전의 그 녀석 말이지…? 그래서……?"
"마티우스는 내게 <창세력>이 어디있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 나는 그게 뭔지 전혀 몰라. 하지만 그쪽은 내가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것과, 힘, <천술>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천술……."
과거 교회는 천상신들의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켰다. 학교 수업에서 그렇게 배웠다. 상처를 아물게하고, 병을 치유하며, 사나운 짐승들을 타도하는 빛의 위업 그것을 <천술>이라 칭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교회는 어느새 신의 가호를 잃고, 세계는 <무혜(無惠)>라 불리는 천술 없는 시대로 돌입했다……
천술은……, 이리아는 말을 이었다.
"천술은 이 지상이 아닌 천상에 사는 신들이 지닌 힘. 과거 교회의 승려들만이 쓸 수 있었던 힘. 그리고 지금 현재, 이곳 지상에서는 기피시 되는 존재로 규정된 이능자의 힘이야. 마티우스는 나를 잡기 위해 마을을 습격했어.
"이능자 포획 적응법 때문에?"
"아니. 이능의 힘을 사냥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에게 협력하도록 만들기 위해 온 거였어."
"즉 마티우스는 그…… <창세력>을 얻기 위하여 이리아를 노리는 거야?"
"그런 것 같아. 그게 뭔지는 전혀 모르지만. 전세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낯선 단어가 다시 나왔다.
"저, 전세?"
루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다. 이 세계애 태어나기 전에 보냈던 다른 인생. 그것을 전세라고 한다.
점이나 주술 같은 이야기다. 믿는 자도 있고, 그렇지 않는 자도 있다. 루카는 후자다. 승려의 기적을 잃고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지금 이 시대에, 전생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전세라면 설마……."
"꿈속의 내용 말이야."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듯, 이리아의 어조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마티우스가 말했어. 그 꿈은 전세의 기억이라고. 즉 이난나는 그 청세력 근처에 있었던 게 아닐까?"
"뭐, 뭐라고오오오?"
루카는 무심코 펄떡 뛰어올랐다.
루카의 꿈속에서만 존재해야할 이난나의 이름을, 이리아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즉 루카아 이리아가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리아는, 자신들이 꾸는 꿈이 전세의 기억이라고 했다…….
전세.
그것이 실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그러면 여러가지가 설명이 된다. 마티우스라 자신을 밝힌 수수께끼의 여자가 아스라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도, 루카가 기묘한 꿈을 꿔왔던 것도, 그리고 루카가 아스라의 기술인 마신검을 썼던 것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네, 네가 이난나야?"
의심스러운 듯한 루카의 목소리에 이리아는 뿌하고 뺨을 부풀렸다.
"그런데 뭐? 못 믿겠어? 마티우스도 그랬다 뭐."
"아니, 그렇지만! 그…… 나는 꿈속에선 아스라야!! 신들의 세계, 생사스의 장군이고… 이난나라는 아름다운 사람과 나는……."
연인 사이였다.
루카는 이리아의 얼굴을 곰곰히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보았던 이난나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
얼굴이 다르다.
뭣보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이난나는 차분한 성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뺨을 부풀리고 있는 이리아는 아무리 봐도…….
"그랬지. 꿈속의 아스라는 어어엄청 멋있었지."
루카의 마음을 읽은 걸까, 이리아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그런 사람과 연인이었던 이난나는 분명 행복했을 거야."
"우……."
전세와 하나도 닮지 않은 것은 피차일반이란 걸까.
"어쨌든."
그렇게 말하고서 이리아는 화제를 바꾸었다.
"일단 창세력이 뭔지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녀석들이 마을 하나를 습격해가면서까지 손에 넣고 싶어하는 그게 대체 뭘까 싶지 않아?" "하지만 조금 전 습격해온 녀석이 말했잖아. <창세력이 있으면 낙원을 창조할 수 있다.>고."
"우리 마을을 희생해서 낙원을 만들자고? 그런 거 용서 못해!"
"응… 맞아……. 전생자 중에는 억지로 협력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이리아 씨처럼."
이리아 씨라는 호칭이 왠지 묘하게 친하게 들려서, 루카는 순간 당황해 말을 고쳤다.
"아니, 아니미 양처럼."
"저기, 이런 건 어때?"
이리아는 쭉 몸을 내밀었다. 커다란 눈이 보다더 커져서, 장난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둘이서 먼저 창세력을 손에 넣는 거야! 창세력은 전세에 있는 이야기잖아? 많은 사람들을 만나, 전세에 대해 물어보는 거지."
"응. 전세의 기억을 지닌 사람은 달리도 있을 테니까. 나랑 너처럼."
"그리고 전세의 힘도 있을 테니 이능자 포획 적응법에 의해 붙잡힐 가능성이 있어. 서두르지 않으면 다 붙잡힐지도 몰라. 아니, 우리도 붙잡힐지도?"
"…….!"
루카는 에디와 니노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응……. 그렇네…. 나도 도울게."
"오케이! 일단은 서쪽에 있는 오나스로 향하자. 중병이나 부상을 순식간에 치유하는 힘을 지닌 사람이 있데. '성녀'라 불린다던데. 분명 전생자일거야."
"분명? 그렇게 불확실한 정보라도 될까…."
"별수 없잖아? 그럼 이렇게 말해주지. <반드시 전생자일거야! 아마>. 일단 다른 단서도 없고. 만약 동료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꽤나 적당한 계획이긴 했으나 루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 이리아의 막무가내는 마음 든든했다.
그리고 천진하게 빛나는 이리아의 눈을 보고 있자니, 동료를 찾는 여행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전세의 인연. 기이한 운명을 공유하는 동료들. 아직 만나지 못한 그들을 생각하니, 어두운 기분이 가시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