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는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숙지하고 있었다. 요컨데, 최대한 볼이 안 오는 위치에 선다. 동시에 볼을 피하고 있는 것을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시합 중에서도 시합 뒤에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둘다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으나, 매번 나름대로 공교롭게 행해왔다.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운이 안 좋은 모양이다.
공은 자석에 빨려들듯, 몇번이고 몇 번이고 루카한테 굴러들어왔다.
다급히 걷어차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종래엔 자기편 골대로 굴러갔다.
(우우~ 이러면 나중에 에디랑 니노한테 무슨 소리 들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앞에 무지개색 불똥이 튀었다.
"나이스 안면 블록!"
들려온 것은 에디의 목소리일까, 니노의 목소리일까.
그것을 멀리 들으며, 루카는 생각했다.
(아아… 그 꿈속처럼 민첩하고 강했더라면 좋을 텐데….)
루카가 <아스라의 꿈>을 꾸게 된 것은 2주전의 일이었다.
등장인물은 언제나 같다.
그리고 거기에는 계속되는 스토리가 존재했다.
말하자면 연속으로 상연되는 꿈이라고 해야할까.
꽤나 불친절한 연속 상영이긴 했다. 등장인물은 아무런 사전 고지없이 나타나고, 사건들은 정해진 순서도 없이 흘러간다. 마치 매듭 풀린 그림책을 읽는 것 같았다.
억지로 관객석에 앉아 있는 루카의 입장에선 "좀 더 알기 쉽게 보여줘도 좋잖아."하는 불평 한 마디 쯤 날리고 싶었으나, 꿈이라서 별수 없다. 스스로 불평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래도 계속 꿔보니 이해가 간다.
나타나 사라지는 정보의 파편을 퍼즐처럼 짜맞춰서, 루카는 이 꿈이야기가 어떠한 줄거리를 갖고 있는지를 완전히 다 분석했다.
이것은 이런 이야기였다.
천상에 <생사스>라는 나라가 있었다.
<라티오>라 불리는 이웃 나라와 전쟁 중이다.
그리고 생사스에는 아스라와 이난나라고 하는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가 있다.
***
"아스라, 이거 봐."
이난나가 말했다. 대지 끄트머리에 서서, 지표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긴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흔들고 있었다.
"여기선 지상이 잘 보여. 녹음이 많네. 작은 마을이 있어……"
아스라는 살짝, 이난나를 바라보았다.
이난나의 옆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우울의 색이 보였다.
지상을 이야기할 때의 이난나는 언제나 그랬다.
깊은 슬픔이 안개처럼 이난나를 감싸안는다. 이난나의 모습은 흐릿하고 덧없게 보였다. 손 대면 문득 사라져버리는게 아닐까. 아스라는 그런 생각에, 너무나 불안했다.
아스라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난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아스라의 심층을 크게 흔들었다.
이난나는 그런 아스라를 눈치채고서, 미안한 듯 웃었다.
이난나는 그런 표정조차 아름다웠다.
"지상은 원래부터 천상의 일부."
아스라는 말했다.
"나는 갈라진 지상을 다시 천상과 하나로 만들 생각이다."
"지상은 천상계를 어지럽히려 했던 무뢰배들의 지옥이야. 천상의 신으로서의 힘을 빼앗기고, 추락한 자들. 그게 인간…."
"하지만 그러한 무뢰배들이야말로 천상의 조화에 필수불가결했다. 지금의 천상계는 인간의 기도 없이는 유지조차 되지 않아."
아스라는 금이간 대지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해. 지상의 인간들의 혼을 사냥해, 이 천상에 환원시킴으로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지상으로 추락한 자들이 천상으로 돌아오면, 분명 우리들 천상인들에게 이를 들이밀거야. 그거야말로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되겠지."
몇 번이고 거듭된 대화였다.
종착점 없는 대화였다.
나비가 날개짓하듯, 이난나는 긴 속눈썹을 살며시 감았다. 백옥같은 뺨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린다.
아스라는 그런 이난나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유리 세공을 건드리듯, 살포시 감싸안았다.
"내가 끝내도록 하겠어. 라티오 놈들을 무력으로 설득해주지."
라티오라는 말에 이난나의 몸이 희미하게 딱딱해졌다.
마음의 떨림이 아스라의 손으로 전해진다.
아스라는 생각했다.
이난나가 라티오에서 망명한지 얼마만한 세월이 지났을까.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난나는 역시 변함없이 라티오의 백성이었다. 지상인에 대한 견해가 아스라와 일치하지 않았다.
라티오의 백성은 지상의 인간들을 경멸하며 두려워했다. 인간의 기도와 사냥해온 혼으로 천상을 유지하는 것을 옳게 여겼다. 천상과 지상을 융합하고자하는 아스라와 상충하기만 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스라는 심려했다.
나와 이난나 또한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사랑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 되지 못하는가.
수차례 이야기 나눴다.
그래도 엇갈렸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사랑함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이난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서워. 그러한 무뢰배들이 다시 이 천상으로 돌아오다니…."
"세계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면 좀 더 제대로 된 세상이 될 테지.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너는 내 비호 하에 있으니까."
"아스라…."
"네 곁에는 무쌍의 무장이 있다.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아스라는 이난나를 안은 손에 힘을 넣었다.
"나를 따라오면 돼. 믿어. 믿는 거다, 이난나."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합 종료 휘슬이 울렸다.
"루카, 루카여. 너 뭘 멍하니 선 채 잠 든 거야? 너 때문에 졌잖아!"
니노가 따졌다. 머리에서 김이 솟을 듯한 기세다.
"무, 무슨 소리야. 나 운동 못하는 거 알잖아~?"
루카는 새파래진 얼굴로 해명했다.
"그냥 인원 채우기라며… 서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고개 숙이는 루카에게 에디가 호통쳤다.
"어엉?! 자라는 말은 안 했잖아!"
"루카 주제에 말대꾸 하지 마!"
"좋아. 벌칙이다! 전속력으로 뛰어서 핫도그 사와!"
"도망치기 없기야!"
냉큼 뛰라는 말에 튕기듯 루카는 뛰었다.
(아아, 그 꿈 속에서처럼 민첩하고 강했더라면 좋을 텐데.)
루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로서 2번째. 최근 1주일 동안 몇 번을 했을지 모르는 마음속 중얼거림.
아스라를 꿈꾸게 된 이후로, 루카는 거듭 이렇게 탄식했다. 자신이 아스라였다면 이런 식으로 심부름꾼 취급 당하지 않았을 텐데. 에디와 니노가 "숙제 보여줘"라고 말하면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