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치즈 수프가 김을 피워올리고 있다. 달고 부드러운 향기를 들이키자, 꼬륵하고 배가 소리를 냈다. 아버지가 다시 한 번 신문에서 눈을 떼자, 루카는 다급히 "잘 먹겠습니다."하는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한입 마시고, 힐끔 상태를 엿본다. 아버지의 흥미는 이미 신문으로 돌아가 있는 모양이다. 루카는 후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가 읽는 신문은 <왕국군 서부 전선에서 압도적 승리>, <가람군은 괴멸 상태>라는 문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아마… 전쟁 때문일 거야….)
치즈 수프를 마시며, 루카는 <아스라의 꿈>을 꾼 이유를 그렇게 결론 지었다.
이웃 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된지 6개월.
산적을 가장한 왕국군이 가람 광물 운송대를 습격한 것이 발단이라 들었다.
전화는 다행히 왕도에까지 이르진 못하고, 국경 근처를 다투는 싸움으로 고착되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전쟁의 기척은 루카의 세계에 차가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신문을 읽는 아버지의 얼굴은 항상 괴로웠고, 어머니는 루카에게 징집 명령이 오지 않을까 싶어 항상 걱정했다.
루카는 이제 15세다.
전장에서 병사로서 검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실제로 가난한 집 아이들은 보상금을 얻기 위해 지원 입대해 전장으로 나간다고 한다. 왕도에서 손꼽히는 상인 가문 출신인 루카와는 인연이 없는 이야기지만….
전쟁이 시작되도 변함없이 학교에 가고, 반듯하게 다림질된 옷을 입고, 책을 읽으며, 따스한 침대 안에서 잠들고, 아침엔 이렇게 치즈 수프를 마신다.
루카는 그런 축복받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전쟁 이야기 뿐이군."
신문 기사를 읽으며 아버지가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두운 목소리로 어머니가 답했다.
"정말로 싫어지네요. 정말 이젠 지긋지긋해요."
"신문에는 듣기 좋은 정보만 적어 놓지만, 서쪽이나 북쪽 전장은 실제로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야."
"머잖아 징집 명령이 떨어지고 그러지 않으면 좋을텐데…."
또 으레하는 걱정이다.
"루카가…… 만약… 징집이라도 당하면……"
"뭐… 그렇게 될때까지 이 왕도의 전황이 불리해질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루카, 너는 안심하고 공부에 힘쓰도록 해라. 나를 뛰어넘는 상인이 되어줘."
이것도 으레 듣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이 무렵, 입버릇처럼 공부에 힘써서 훌륭히 자라 집안을 이으라고 말한다.
당연하다는 양 그리 말한다.
루카의 의사따윈 상관없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자기 자식은 가업을 이어 상인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버지의 무신경함을 루카는 언제나처럼 지겨워했으나,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달리 할 일이나, 되고 싶은 직업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주판을 튕기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만, 배에 타는 루카 미르다를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운동은 잼병이다. 항구에 무리지은 선원들처럼 두터운 로프를 쉬이 다룬다거나, 커다란 통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것도 무리다.
그렇게 가능성을 뺄셈해가면 결국 아버지의 뒤를 잇는 다는 무난한 미래만 남는다.
애초에.
(나는 진심으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지 않은 걸까?)
그것조차 분명치 않아서 한심하다.
무심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들은 걸까, 아버지가 스윽 화제를 돌렸다.
"<왕도, 이능자 포획 적응법 가결>이라. 치안 유지를 위해선 별수 없지."
신문을 넘기며 아버지는 말했다. 어머니가 다시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능자라면… 그 비인간적인 힘을 지닌 사람들이죠? 무서워라…."
"그래. 세계에서 신의 가호가 사라진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 교회는 신의 가호를 받지 못하고, 세계는 황폐해지기만 하고 있어. 신이 떠나고 지상에 이능(異能)의 힘을 지닌 영문모를 자들이 태어나기까지하는 형국이야…."
"그러고 보니 요전에대로에서 젊은 남자애가 경비병한테 끌려가는 것을 봤어요. 발치에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잔뜩 쓰러져 있던데…. 이능자들은 분명 악마일거에요. 아아…. 교회가 좀 더 제대로 된 곳이라면…. 그리고 전쟁이 벌어진 이후로 병사들이 거들먹거리는게 무섭기도 하고…. 떠돌이 같은 사람들이 마을에 몰려들어서 치안도 나빠지고…."
"흥. 기분 나쁜 세상이 되었어."
계속되는 어머니의 말을 아버지는 끊어냈다.
어머니는 몸을 내밀며, 루카의 두 뺨을 양손으로 감싸안듯이 어루만지며 말했다.
"루카. 너는 이능자나 병사 같은 사람들이랑은 결코 엮이면 안 돼? 그리고 슬슬 친구들이 오겠다. 손수건. 자아, 머리도 정리하고."
"됐어. 내가 할 수 있다니깐…."
루카는 머리를 향해 뻗어져 오는 어머니의 손을 느릿히 밀어냈다. 결코 매정한 느낌이 들지 않게, 충분히 조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