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터드는 필요하냐는 주인의 물음에 루카는 머뭇거리고 말았다. 에디와 니노의 취향을 알 리 없었다. 맨 처음 확인했어야 할까. 만약 그 두 사람이 머스터드를 싫어하면 다시 한 번 심부름을 해야하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모든 게 싫어졌다.
(아………. 어째서 나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고개 숙여 걷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야!"
정면 충돌할 때까지 루카는 그 소녀를 눈치채지 못했다. 소녀는 허리가 빠진 듯한 자세로 힘없이 길바닥에 쓰러졌다. 미안 하고 다급히 말하려던 루카는 깨달았다.
소녀의 안색이 이상하다.
핏기가 사라져 창백했다.
부딪친 데가 잘못 되기라도 한 걸까? 나 때문일가? 루카의 표정도 소녀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새파래졌다.
"잠깐만 너.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응?!" "이젠 틀렸어…."
말을 걸자, 모기 소리 같은 소리로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추욱 고개를 떨구었다.
"우와아아앗!! 틀렸다니…! 정신 차려! 죽으면 안 돼!!"
그때였다.
"너무한 녀석이구나, 그런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숨을 삼키자, 철푸덕 주저 앉은 소녀의 뒤에서 한마리의 작은 생물이 나타났다.
원숭이인가…?
하지만 사람의 말을 하는 원숭이 같은 거 들어본 적 없다. 건방지게도 옷을 입고 있고, 헤어 스타일도 나름 단정하다. 꼬물꼬물 좌우로 움직이는 꼬리는 생쥐같기도 했다.
"너, 너는 뭐야?"
"코다는 코다라고 한다."
겁에 질린 루카의 얼굴을 보고, 그 생물은 그리 답했다. 아무런 설명도 되지 않았다.
"그보다 너, 너무한 녀석이다. 어떻게 책임 질 거냐, 그런데?"
책임? 작은 몸집에 비해 꽤나 흉흉한 소리를 한다.
혼란에 빠진 루카의 귀에, 소녀의 목소리가 뛰쳐들어왔다.
"배고파……." "어……?"
무슨 소리?하는 루카의 말을 먼저 읽은 듯이 '꼬르르르륵'하고 소녀의 배가 크게 울렸다.
아연히 사태를 지켜보는 루카에게 코다라 이름밝힌 동물이 말했다.
"배고프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코다도 같은 기분이다. 너, 뭔가 줘라."
"핫도그라면…… 있어."
루카는 머뭇머뭇, 방금 막 구매한 포장지를 내밀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던 소녀가 튕기듯이 일어섰다. 덤벼들듯한 기세로.
"정말이야? 줘!"
그렇게 외치나 싶더니, 답도 기다리지 않고 핫도그를 2개 앗아가, 입안 가득 우물거린다. 핫도그는 삽시간에 소녀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배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오. 다오. 코다도 먹게, 그런데."
코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녀는 하나 남은 핫도그를 덥석 절반으로 뜯어 단번에 집어 삼킨 다음, 남은 절반을 던져줬다. 그에 받아 문 코다도 소녀에게 뒤지지 않는 기세다. 돌을 바수는 기계 안에 집어 넣은 돌멩이처럼 안타까운 핫도그는 루카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에디랑 니노, 화내겠지.)
겨우 그런 감상이 떠오르게 되었을 무렵, 소녀가 입을 열었다.
"후우, 살았다. 너 꽤나 편리한 녀석이네."
꺼흑하는 소리가 한 번 흘러나온다. 그 목소리는 완전히 생기를 되찾았다. 더는 틀렸다고 말했던 좀 전의 소녀와 동일인물이라는 생각마저 들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편리한 녀석이라니.
"보통은 고맙다고 해야하는 거 아냐? 그런 것보다 그 핫도그 심부름 부탁 받은 건데."
루카는 기가 막혀 사소한 항의를 시도했다.
"째째한 소리 없기. 그리고 나 지금 무일푼이야. 즉, 사례할래야 할 수 없는 몸이거든~♪"
전혀 미안해하는 기미가 없다. 루카는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됐어……. 또 사면 되지."
그리고 소녀한테서 등을 돌려 잡화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운이 안 좋은 걸까. 무슨 질 나쁜 저주라도 걸려있느 ㄴ걸까?
그 추욱 쳐진 어깨에 당황한 걸가, 소녀는 종종히 루카를 향해 뛰어왔다.
"참~, 농담이야. 농담! 무일푼이란 건 농담이 아니지만. 적어도 고맙단 말 정도는 해줄게."
마치 해바라기처럼 밝은 웃음이었다.
루카는 두근했다.
그 웃음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루카는 다시 한 번 소녀를 관찰했다.
어깨에 닿는 짧은 머리카락. 아몬드 같은 모양의 커다란 눈. 옷은 여자아이치고는 꽤 심플했다. 쟈켓애, 바지를 입고 있다. 목에 감고 있는 빨간 스커프가 유일하게 멋을 부린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 이 근처에서 유행하는 패션이 아니다. 어딘가 먼 곳, 아마 서쪽 지역의 옷일까.
왕도에서 나고 자란 루카에게 서쪽 지역 출신의 지인은 없었다.
학교 동급생 중에 비슷한 얼굴이 있었나?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런 세세한 기억에 이렇게까지 가슴 두근 거릴까? 하지만 동시에, 그 정도로 대단한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렸다는 것도 기묘했다.
루카의 당혹 따위 알바아니라는 듯, 소녀는 일방적으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이리아. 이리아 아니미야. 먹을 걸 줘서 고마워. 그리고 이 녀석은 뮤즈족인 코다라고 해. 억지로 따라왔어."
코다가 소녀, 이리아의 발치에서 빙글하고 돌았다. 뮤즈족이라는 생물 특유의 인사법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맘 편안하게 춤추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도저히 모르겠다.
핫도그를 먹어치운 것은 화가 났지만, 이렇게 자기 소개를 한 이상 험악하게 대하는 것은 실례일지도 모른다.(곱게 자란 성격이 이런 데에서도 엿보였다). 루카는 소녀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 저기 나는 루카 미르다라고 해…."
그때였다.
"아, 위험해!"
이리아가 작게 외치더니, 루카의 뒤로 그 몸을 숨겼다. 그렇다고 해도 서로 체격 차이가 큰 것도 아니다. 숨을래야 숨을 수도 없으나, 그래도 이리아는 몸을 움츠려, 루카에게 매달리는 형색으로 섰다.
"왜 그래?"
"지금 막 볼일이 생각났거든. 물건 사야할 게 있어."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형색으로 이리아는 말했다.
"무일푼이라고 안 했어?" "너 진짜 까다롭네!"
루카의 지적에 이리아가 언성을 높였다.
(혹시…….)
루카도 겨우 사정을 파악했다.
이리아의 시선을 따라가보다, 저 앞 부두 근처에 몇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로브를 둘러 썼다. 승병일까? 선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양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