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왜 일부러 그 말을 저한테 하시는 겁니까…?"
"너만 슈텐 군의 표정을 좋게 해줄 수 있으니까.
우리는 보고 있을 테니까, 네가 여러 표정을 짓게 해 줘."
"네…? 어?"
"우리는 그늘에서 지켜볼 테니까…. 그러니까 부탁하러 온 거야."
"그런 거지. 그럼 할 말은 다했다."
여자들은 멍청히 있던 나를 두고 이 뒤 어디 놀러갈지를 상담하며 떠났다.
(슈텐 군의 좋은 표정을… 그녀들에게 보여줘…?)
그걸 부탁하러 나를 부른 건가.
여자아이들의 생각은 정말 잘 모르겠다.
슈텐 군에겐 여자들의 호출을 받은 것을 비밀로 하고
볼일이 있다는 말을 한 다음 먼저 돌려보냈다.
집합실로 향하자, 슈텐 군은 오늘도 창가에서 책을 읽다가
내 존재를 눈치채자 책을 닫고서 고개를 들었다.
"어서 와."
"다녀왔어…."
"볼일 끝났어?"
"아, 응…."
'너랑 같이 있을 때만 묘하게 즐거워 보이는 걸."
좀 전에 들은 말을 떠올리고서, 빤히 슈텐 군의 얼굴을 본다.
"? 왜 그래?"
(확실히… 전보다 표정은 풍부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나 한정이라고 하면… 그런가……? 싶어진단 말이지….)
"일단 앉는게 어때? 차라도 마실까? 타마모가 진귀한 찻잎을 두고 갔어."
"아, 내가 탈 수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
슈텐 군의 부드러운 표정에 무심코 가슴이 고동친다.
"고, 고마워…."
(그런 말을 들으면 의식하게 된단 말이지….)
심지어 여자에게는 흥미가 없다고 확실히 들었던 것을, 이럴 때 떠올렸다.
제대로 물어 보려다가 못 물어 봤던 것도.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타마모 씨가 들어왔다.
"슈텐 군 있어?"
"무슨 일이야?"
"세이메이가 좀 부르더라."
"그래? 알겠어…, 지금 갈게. 쿠사카, 차 나왔어. 분명 맛있을 테니 마셔."
"으, 응…."
슈텐 군의 미소가 묘하게 눈부시다.
의식했더니 묘하게 귀엽게 보인달까…. 너무 미인이라 어질어질한다.
타내준 차를 소중히 마시고 있자니,
슈텐 군의 등을 바라보던 타마모 씨가 내 건너편에 앉았다.
"슈텐 군이 저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봤어."
"하지만 여기 주민들에겐 항상 표정이 부드럽지 않아요?"
"뭐, 학교 애들이나 여자애들한테 보내는 표정보다야 부드럽지.
자상한 표정으로 대해준다는 생각은 해…. 일단 동료니까."
"하지만 나도 쿠라마도, 세이메이도 분명 슈텐 군의 웃는 얼굴은 본 적 없어."
"엣…. 그래요…?"
"철가면이잖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표정 같은 거 거의 본 적 없어.
분명 슈텐 군에게 료 군은 특별한 존재인 거야."
(특별…….)
또 슈텐 군이 여자를 싫어하는 것을 떠올리고서
혼자 새빨개져 있자니, 타마모 씨가 소리내 웃었다.
내게만 보여주는 슈텐 군의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심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무슨 볼일이야…?"
"그렇게 딱딱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편하게 생각해.
좀 전엔 그렇게 즐거워 보였으면서."
"……?"
"어라, 자각 없어? 료 군과 함께 있을 때는 평소랑 표정이 굉장히 달라, 너."
"……."
"조금은 짚이는 게 있지?
뭐, 좋아. 그 아이를 네가 특별히 여기는 건 아무 문제도 없지만.
조금 주위가 불온해."
"불온……?"
"그래. 이걸 봐.
료 군의 방에 붙여둔 부적인데, 보다시피 불타버렸어.
요괴장에는 오니가 들어오지 못하게 특별한 결계를 쳐놨는데
어쩌면 무슨 수를 써서 쳐들어 온 걸지도.
아니면 <그 아이>가 움직인 걸지도 몰라."
"설마……."
"료 군을 통해 너한테 접근할 가능성도 있어. 조심해."
"알겠어……"
다음 날. 평소처럼 슈텐 군과 함께 등교했다.
그의 추종자들이 거리를 두게 된 이후로, 슈텐 군의 발걸음은 가벼워진 듯 했다.
"어제, 아베 씨가 불렀다며?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거 아닌 일이었어."
"그래……?"
슈텐 군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제 타마모 씨한테 들은 말을 떠올렸다.
<분명 슈텐 군에게 료 군은 특별한 존재인 거야.>
"……."
얼굴이 뜨겁다…….
너무 의식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슈텐 군은 거북해 입을 다무는 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추궁하진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도착해, 각자 교실로 향하기 위해 인사를 나눈 뒤 헤어지려던 그때.
슈텐 군이 불현 듯 나를 불러 세웠다.
"최근 무슨 이상한 일 없어?"
"으음……"
슈텐 군이 진지하게 묻는 것 같아서, 최근 일을 떠올리며 대답한다.
"아베 씨가 아파트에 쳐준 결계나, 슈텐 군이 항상 곁에 있어준 덕분에 오니한테 습격당하는 일도 없고.
별달리 이상한 일 없어."
"그렇군……."
슈텐 군은 안도한 듯 표정을 풀고서, 꽉 표정을 다잡았다.
"만약 이상한 일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가르쳐 줘. 알겠지…?"
"응…. 알겠어."
오늘 강의가 끝났다.
슈텐 군을 데리러 가고자 자리에서 일어서자, 근처에 있던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저기, 잠깐만~."
"응? 나 말이야? 무슨 일이야?"
"부탁할 게 있는데…, 이거 슈텐 군한테 건네주지 않을래…?"
건네받은 것은 한 통의 편지.
(러브레터인가…? 요즘 시대에 고풍스럽네.)
하지만 슈텐 군이 모두에게 가볍게 메일 주소를 가르쳐 줄 것 같진 않으니.
어쨌든 마음을 전할 수단은 이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재차 들었다.
"전해주는 건 상관없지만, 모처럼이니까 스스로 건네주는 게 좋지 않을까?"
"……."
"아, 잠깐…."
여자아이는 종종히 떠나갔다.
내 손안에는 편지만 남겨졌다.
"어쩌지. 돌려줄 기회를 놓쳤어."
(받았는데 건네주지 않는 것도 가엽고….)
분명 편지를 전해달라는 말을 하는 것도 고작이라, 부끄러워서 도망간 거겠지.
그런 수줍음 많은 그녀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마음을 전해주자.
(오늘은 슈텐 군과 놀러 갈 예정이었고. 그 때 주거나, 아파트로 돌아간 다음에 건네주자.)
그건 그렇고 좀 전의 그 애….
슈텐 군의 추종자 중엔 없었던 것 같은데.
만약 있었더라면 분명 본 적이 있었겠지.
슈텐 군과 친구가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편지를 줄까말까 망설이다―
1. 나중에 주자.
2. 건네주지 말까?
3. 지금 건네주자.
친구도 있지 말고, 지금은 때가 아니지.
그리 생각하며 편지를 가방 안에 넣었다.
"지금 갈게…. 그래서 오늘은 어디 놀러 갈 거야?"
"오늘은 영화관에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재밌어 보이는 걸 하고 있거든."
태평히 그런 대화를 나누며, 셋이서 대학을 뒤로 했다.
가방 안의 편지가, 나와 슈텐 군의 관계를 크게 바꿔 놓을 거라는 것을, 이때의 나는 전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