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커튼 너머로 아침햇살이 비쳐들어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관자놀이가 욱씬거려서 멈춰섰다.
(어라? 나 왜 이런 데 있는 거지…?)
맞다. 어제 환영회가 있어서….
그래서 다들 엄청 술을 마신 탓에 점점 취해서…
방에 술냄새가 너무 심해서 내가 환기를 했다가…
(모두를 챙긴다고 피곤해서 어느샌가 자버렸던가.)
새삼 방을 둘러보니, 술병의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나있었다.
심지어 정신을 차리고 나서 깨달았는데, 술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코를 막고 환기한 다음, 뒤엉켜 잠들어 있는 주민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아…, 슈텐 군. 그런 차림으로 가는 거야…. 응?"
슈텐 군은 책을 베개 삼아 바로 누워 자고 있다.
하지만 그 이마에 묘한게 얹혀 있었다.
응? 나있어…?
"술에 취한 건가, 나."
한 방울도 안 마셨는데.
스스로 딴죽을 넣으며 눈을 비빈 다음, 다시 한 번 살핀다.
나있다…. 뿔 같은 게.
슈텐 군의 이마에 검은 뿔 같은 게.
심지어 옷도 이상하다.
기모노 같은, 히나 인형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이상한 걸…."
다른 사람도 봤지만, 역시 묘했다.
쿠라마 씨의 머리카락은 새하얗지, 타마모 씨한테는 꼬리가 나있다.
아무래도 나는 엄청 졸린 모양이다.
"방으로 돌아가 자는 게 나을려나."
하지만 이 방의 참상을 방치하고 혼자 돌아가는 건 미안하다.
역시 정리하는 건 돕고 싶다.
"어라, 좋은 아침. 료 군."
"다행이다…. 아베 씨는 보통이네요."
"보통이라니 뭐….. 아."
아베씨는 잠든 세 사람을 내려다보며 그리 중얼거린 다음,
잠시 입을 다문 다음 웃음을 지었다.
"이거 설명이 필요하겠네. 지금 전부 깨울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줄래?"
아베 씨는 가차 없이 모두를 두들겨 깨웠다.
그리고 눈을 뜬 사람은 왜인지
머리색도 옷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뭐야…. 졸리다고…."
"맞아. 조금만 더 자자…."
"우웅……."
"잠이 덜깬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 료 군한테 들켰습니다."
"뭘."
"너희들이 요괴라는 거."
요괴라는 말이 들렸지만, 아마 졸려서 환청을 들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
"잔뜩 먹고 마시다가 힘이 다해 잠들어 버린 다음,
어느샌가 요괴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아.
료 군이 똑똑하게 확인해 버렸어."
타마모 씨와 쿠라마 씨는 얼굴을 맞댄 다음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입술을 비죽였고,
슈텐 군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아, 어쩔래. 슈텐 군. 내가 그한테 설명할까?"
"……."
아베 씨는 대답 없는 슈텐 군에게 고개를 으쓱인 다음 나한테 시선을 던졌다.
"자아, 지금까지 너는 믿기지 않는 것을 봤겠지만, 전부 꿈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이라고 해둘게."
"제가 잠에 취해서 환각을 봤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들의 머리카락 색이나 옷이 바뀐 건 현실이야. 너는 잠이 덜 깬 게 아니라 제대로 사물을 보고 있어.
그들은 요괴야. 아, 덧붙이자면 나는 반요지만.
어머니는 쿠즈노하라는 이름의 여우인데…. 알아?"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가 분명 그거랑 같은 출신이었던 게 생각나네요."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그게 나야."
아, 현기증 난다.
머리를 싸매고 고개 숙이는 나를 내버려두고, 아베 씨는 말을 이었다.
"쿠라마 군은 쿠라마 텐구.
타마모 군은 타마모마에…. 구미호야.
그리고 슈텐 군은……."
"내가 말할게."
청명한 목소리에 내 머리도 깨끗해졌다.
눈 앞에 선 슈텐 씨는 대학에서 봤던 것 같은 올곧은 눈을 하고 있었다.
"미안. 너를 속일 마음은 없었어. 나는 인간이 아니라 슈텐 동자라는 오니야."
슈텐 동자.
나조차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다.
"슈텐 동자라면 오오에 산에 살았던……."
식인 요괴라는 말은 집어 삼켰다.
슈텐 군은 그를 헤아린 듯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쿄토에서 악행을 저지르다 미나모토 요리미츠한테 퇴치 당했던 식인 요괴야."
"……."
"하지만 그것도 몇 천년 전 이야기야."
"맞아."
어느샌가 슈텐 군의 옆에 쿠라마 씨와 타마모 씨가 있었다.
"슈텐 군은 이제 사람을 먹지 않아.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나도 옛날엔 먹은 적 있어.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우리들 요괴 사정 밖에 모르는 변명이긴 하지만…."
타마모 씨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슈텐 군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뭐라 할 말도 없이 덧없이 입을 다물었다.
"뭐 그 이야기는 제쳐두고.
우리는 요괴지만 지금은 이렇게 인간계에서 느긋히 살고 있어.
평소에는 인간으로 변신해 있지만, 감정이 격해지거나 무방비한 상태가 되면 지금처럼 요괴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지."
"평소땐 취하는 것 정도론 돌아가지 않았는데…. 어제는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슈텐 군이 요괴라니 좀처럼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오니라면 오니를 퇴치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이 있을 때 습격당하지 않았던 이유도 납득이 갔다.
어쩌면 그가 오니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질문있는데요……
저를 습격했던 오니도 슈텐 군과 같은 오니인가요?"
"옛날에 내가 거느렸던 오니들의 동족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거야."
아베 씨한테 한 질문인데 슈텐 씨가 답해줬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생각했다.
"그러니까… 오니가 습격해오지 않았던 건가…. 같은 오니로서 슈텐 군이 더 강해서."
"맞아…."
"여기 있는 쿠라마 텐구도, 타마모마에도, 나도 어린 오니들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힘을 갖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들 중 누구 한 명과 같이 있으면 료 군이 습격당하는 일은 일단 없을 테니
앞으로도 안심하고 살면 돼."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슈텐 군이 한 발짝 다가온다.
"쿠사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진지한 표정을 한 슈텐 군의 얼굴이 있었다.
"우리가 무서워?
기분 바쁘고 무서워? 그렇게 생각해?"
"지금까지… 인간이 아닌 것을 봐왔는데다…
어린 시절부터 오니한테 습격 당해왔으니… 요괴가 있다는 말에 조금 기뻤어.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것은 실존 했던 거였구나.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착각이 아니었구나."
"……."
슈텐 군이 미묘한 표정임을 깨닫고서
나는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그러니까 생각만큼 충격 받진 않았어."
"그럼 질문을 바꾸지….
내가 무서워?"
1. 굉장히 무섭다.
2. 무섭지 않을 리 없다.
3. 전혀 무섭지 않다.
사실은 조금 무섭다.
하지만 그대로 대답하면
분명 성실한 슈텐 군은 낙담하겠지.
"무섭지 않냐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