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기로 결정한 나는, 집으로 돌아가 바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좀 전에는 아베 씨의 말에 넘어가 이사하기로 했던 것 같았지만
혼자 집에 있자니 역시 느껴지는 기척.
창밖, 옷장, 현관의 인터폰 구멍.
마음만 먹으면 '오니'는 어디서든 들어올 수 있는 거다.
(우…. 생각하지 말자….)
실제로 이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아파트로 가면 슈텐 씨도 있고.
(나도 참. 왜 슈텐 씨의 보호를 받으려 하는 건데.
내가 그렇게 기대려 들면 민폐잖아.
내 몸을 지킬 방법 정도는 배워야 해.
오니의 퇴치법…. 슈텐 씨는 어떻게 배운 걸까.)
박스에 짐을 잔뜩 채운 다음
갈아 입을 옷 며칠 치나, 당장 써야할 것들은 손에 들어 챙겼다.
다급히 집을 나와 향한 곳은 아베 씨의 아파트로
앞으로 내 집이 될 장소다.
아파트 앞까지 오자, 어깨에서 힘이 쭉 빠졌다.
여기 올때까지 오니를 몇 번이나 봤다.
운이 좋았는지 덮쳐오는 녀석들은 한 마리도 없었지만 역시 무서운 건 무섭다.
아베 씨의 방으로 인사하려 다가가자,
눈 앞에서 문이 열려 놀랐다.
"안녕. 의외로 빨랐네."
아베 씨의 신출귀몰함에는 항상 놀란다.
이것도 언젠가는 익숙해질까…?
"저기… 오늘부터 신세지겠습니다!"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스스로 이상한 타이밍에 하는 인사라고 생각하지만, 때를 놓치는 것보단 낫다.
아베 씨는 가볍게 웃은 다음, 다정한 말을 걸어줬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 같이 사는 동료니까 맘 편하게 대해 줘.
료 군의 방은 이쪽이야. 따라 와."
걸음을 옮기는 아베 씨의 뒤를 따른다.
내 방은 1층이었다.
1층에는 방이 3개 있고, 왼쪽이 아베 시, 오른쪽이 내 방인 것 같다.
한 가운데 방은 누가 사는 걸까…?
"그럼 열쇠는 여기."
"네. 고맙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텅 빈 방에 짐을 내려 놓았다.
여기가 앞으로 살게 될 방이다.
(감개에 젖지 말고 짐을 정리하자….
대부분의 물건은 내일 올 거니까 서두를 것도 없지만.)
짐을 펼친 다음, 어떠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집에는 오니의 기척이 없다.
(아베 씨가 말했던 결계 덕분인가?
그러고 보니 슈텐 씨와 같이 있을 때도 오니를 못 봤어.
슈텐 씨한테도 역시 힘 같은 게 있나?)
그때 방에 있는 인터폰이 울렸다.
뭔가 할 말을 깜빡하신 걸지도. 아베씨가.
문을 열자, 거기에는 슈텐 씨가 서 있었다.
"아, 슈텐 씨. 나 지금 왔어."
"그래. 세이메이한테 들었어. 들어가도 되나?"
기꺼이 슈텐 씨를 안으로 들인다.
단 둘이 방에 있는 것도 왠지 묘한 기분이었다.
슈텐 씨 같은 꽃미남과 같이 있으면 압도당한다고 해야하나….
"왜 그래…?"
"아, 아니. 아무 것도. 방석 같은 건 없지만 편한 곳에 앉아."
"그래. 그렇게 하지."
슈텐 씨가 앉은 것은 창문 앞.
아베 씨의 방에 있을 때도 같은 장소에 앉았었다.
저기를 좋아하는 걸까…?
저 장소에서 책을 읽는 슈텐 씨는 멋지다.
나도 나중에 앉아 볼까….
"세이메이가 이사하는 걸 도와주라길래 와봤는데… 짐은 그리 안 많은 모양이군."
"내일 올 거라서 오늘은 얼마 없어."
"뭐 도울 만한 일은…?"
"음…. 슈텐 씨가 도와줄만한 건 딱히……. 오늘 갖고 온 것은 혼자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말하자 슈텐 씨의 표정이 다소 흐려졌다.
무슨 안 될 말이라도 한 걸까….
딱히 나를 돕고 싶진 않을 텐데.
"쿠사카….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네…."
조금 쫄아서 존댓말이 나왔다.
"말은 놓았는데 왜 아직 슈텐 <씨>야?"
(그게 걸렸던 거야?!)
슈텐 씨의 질문하는 듯한 눈동자에 왜인지 움찔했다.
그건 그렇고
설마 갑자기 호칭에 대해 지적받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슈텐 씨는 연상이고…."
"슈텐 군으로 불러. 세이메이도 그리 부르고 있고."
"슈, 슈텐 군…?!"
솔직히 말해서 엄청 부끄럽다.
반말도 조금 긴장되는데…
"슈텐 씨론 안 돼?"
"됐으니까 슈텐 군이라고 불러 봐."
"슈…, 슈텐 군…."
얼굴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슈텐 씨는 어딘지 만족스러운 듯.
"앞으론 그렇게 불러."
아무래도 결정된 듯 했다.
(우우…, 슈텐 군이라니…. 의식 되서…,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
"쿠사카는 지금부터 무슨 예정 있어?"
슈텐 ㅆ… 아니 군은 아무래도 그 질문을 하러 온 모양이다.
"음…. 정리가 끝나면 딱히 없어."
"그럼 잘 됐군. 오늘은 이곳 주민들이 네 환영회를 하기로 했어."
"환영회?! 날 위해서 그런 걸 해주는 거야?!"
솔직히 기뻐서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내 얼굴을 본 슈텐 군이 작게 웃음을 띠웠다.
그게 실로 자연스러웠지만.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미소였다.
"웃는 거 처음 봤어…."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연히 그 말이 입밖으로 나왔다.
"그래…?"
"응…. 지금까지 표정 풀렸던 적이 없었잖아. 학교에선 항상 지루해 보였고…."
"내가 웃으면 이상해…?"
1. 좀 더 웃는 게 좋아
2. 쿨한 게 좋아.
3. 하나도 안 이상해.
"하나도 안 이상해!"
슈텐 군의 웃음이 이상하다는 사람은 없겠지.
"쿠사카가 그리 말한다면 그렇겠지…."
슈텐 군은 학교에서도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조금 득 본 기분이 들었다.
"슈텐 군. 학교에서도 항상 재미없어 보였어."
"안 즐거워서."
"웃을 이유가 없잖아."
"아, 그럼 지금은 즐거웠어?"
"즐겁다기보다는…. 네 반응이 솔직해서 재밌어."
"내가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했나?"
되짚어 보지만 딱히 없다.
"아니…. 너무 신경 쓰지 마.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는 의미야."
슈텐 군은 어느새 평소와 다름없는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조금 신경 쓰였지만
슈텐 군의 웃는 얼굴을 봤으니 이제 됐어.
"환영회 말인데. 그때 여기 사는 사람들도 소개할 수 있을 거야."
"그렇구나 아베 씨랑 슈텐 군 말고 다른 사람도 살았구나."
"2층에 날 포함해 세 명이 살고 있어."
"무서운 사람 있어?"
"그건 너하기 나름이겠지…."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조금 무서워지잖아….
"앗, 선물용 과자 같은 거 갖고 올 걸."
처음 만나는데 선물도 없이 인사라니…!
고개를 싸매는 나를, 자리에서 일어선 슈텐 씨가 내려다 본다.
"그런 건 됐어. 그럼 밤에 보자."
"앗, 슈텐 군!"
현관으로 향하는 슈텐 군을 붙잡는다.
"말하는 걸 잊었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슈텐 군은 다시 웃어 주었다.
좀 전보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무심코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슈텐 군은 작게 손을 들고서 나갔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사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히 가슴이 고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