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텐 군, 오늘은 다 같이 돌아가자."
"우리, 줄곧 기다렸다구?"
"오늘은 함께 카라오케 가자!"
"응응. 슈텐 군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듣고 싶어! 분명 노래 잘 부를 테지!"
"그 뒤엔 다 같이 식사하러 가자."
"요전번에 슈텐 군이 좋아할 것같은 가게를 찾았어!"
"분명 마음에 들 걸!"
"……."
뭐랄까, 여자들의 행동력은 굉장하구나.
방금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 더러워진 옷의 먼지를 털어내며
슈텐 씨를 중심으로 생긴 여자들의 덩어리를 바라본다.
(그건 그렇고… 슈텐 씨. 저렇게들 말을 거는데….
거의 대답도 안 하시네.)
그러자 또 슈텐 씨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정말로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건가?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좀 전에 도움도 받았고,
사소한 감사를 담아 도와 보기로 했다.
(뭐 필요 없으면 필요없다고 하시겠지. 분명.)
마음 편하게 생각하며, 나는 여자아이들 틈새로 들어섰다.
"네, 죄송합니다. 슈텐 씨는 저와 약속이 있어요.
데이트는 다음 기회로 해주시길."
"잠깐만. 뭐야, 이 녀석."
"1학년인 쿠사카 입니다. 잘 부탁하고요.
자, 슈텐 씨. 가요."
"아, 응…."
"뭐야?! 잠깐만, 슈텐 군!!"
여자아이 하나가 슈텐 씨의 팔을 잡을 했다.
"읏…."
"슈텐 씨. 자, 이쪽이에요."
"슈텐 군은 우리랑 놀러 갈 거야!"
"1학년 주제에 방해하지 마!"
제일 드세 보이는 여자아이가
터벅터벅 내게로 다가와 손을 치켜든다.
(음. 뺨을 때리게?)
하지만 여자아이한테 맞는 것 쯤이야 괜찮다.
오히려 나를 한방 때리고 냉정해진다면 좋겠는 걸.
정면으로 뺨을 맞을 각오로, 가슴을 편다.
"!!"
찰싹!
"말도 안 돼…."
뺨을 맞은 것은 슈텐 씨였다.
나를 밀쳐내고, 스스로 여자 앞에 서서는
오른쪽 뺨을 맞았다.
뺨을 땔니 본인은 휘두른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 보다가,
몇 초뒤 괴성을 지르며 떨기 시작했다.
"시, 싫어! 슈텐 군의 얼굴에 사, 상처가!!
싫어어어어어!!"
"슈텐 군의 얼굴이 부, 부었어!!"
"너 대체 무슨 짓이야!? 슈텐 군의 얼굴을 때리다니…!!"
여자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에 슈텐 씨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
대학을 나와, 역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을 무렵.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 것은 확인하고서, 우리는 보폭을 줄였다.
"저기…, 감싸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자아이가 뺨을 때리는 걸 감싸 준 것에 감사한다.
남자로서, 정말 이래도 되나 싶어서 무심코 말꼬리는 올라갔지만.
"신경 쓰지 마. 원인은 자업자득이었으니까.
애초에 민폐라는 말 한마디 못하는… 내가 한심해…."
"아뇨.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몰려 있으면
저도 압도 당해서, 황망했을 겁니다.
아, 도움이 안 되는 말이네요."
조금 익살을 떨어 보았으나, 슈텐 씨는 역시 진지한 표정이었다.
"너는 좀 전에 나를 도우려 했었지? 고마워."
"아뇨. 힘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보다 뺨이 새빨개졌는데…, 아프지 않으십니까?"
"우유부단한 내게 내리는 훈계로 생각하고 있어.
애초에 여자의 힘이니까, 대수롭지도 않고."
(멋지다….)
시원시원한 외모와, 담백한 언동이 맞물려
슈텐 씨에 대한 내 인상은 하드 보일드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 뒤에 볼일 있으십니까?"
"딱히 없는데…, 왜?"
"괜찮으시다면 적당한 곳으로 차라도 마시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뛴데다가, 뺨까지 맞았으니 슈텐 씨도 피곤하실가 싶어서."
"………"
웃어주자, 슈텐 씨는 왜인지 놀란 듯이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런 기분이 아니시라면 억지로는…."
"가자."
"괜찮겠습니까?"
"남자는 두말하지 않아."
(멋지다…….)
늠름한 슈텐 씨의 옆얼굴을 넋놓고 바라보며
근처에 있던 카페 문을 넘었다.
카운터 자리에 앉아, 커피를 2개 주문했다.
또 뭔가 있을 까 싶어 메뉴를 펼치자, 슈텐 씨가 다급한리로 말을 꺼냈다.
"새삼 미안한데."
"네?"
"네 이름은… 쿠사카가 맞나?"
"어라? 죄송합니다. 아직 말씀 드리지 않았나요…?"
"방금 전, 여자아이들한테 말했던 것을 들었어."
"아…. 선배보다 먼저 상관 없는 사람들한테 소개를 했었구나, 나……."
그러자 슈텐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었다.
(응?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선배…."
"?? 아…."
방금 자신이 슈텐 씨를 선배라고 부른 것을 떠올렸다.
"혹시 선배라고 부르는 건 싫으십니까? 슈텐 씨가 상급생이라는 말을 들어서.
무심코 선배라고 불렀는데.
껄끄러웠다면 부르지 않도록 조심…"
"아니, 괜찮아.
남자한테 그렇게 불렸던 적이 없어서 신선했어.
그게 뜻밖에 좋았던 것뿐이고."
슈텐 씨는 고개를 숙이며 그리 중얼거렸지만,
'예상 외로 좋았던 것뿐'이라니, 뭐가…?
물어야할까말까 고민하고 있자니, 슈텐 씨가 커피에 입을 대면서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잠시 이걸 맡아줬으면 좋겠어."
"회중 시계인가요…?"
"그래. 그리고 내일 돌려줘."
"네…?"
슈텐 씨는 내 의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내리 깔고서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회중시계를 맡길테니 내일 돌려달라고…?)
의미를 모르겠다.
지금은 꼭 품에서 떼놓아야할 이유가 있다던가?
틀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1. 받아든다.
2. 거절한다.
3. 생각한다
어떤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슈텐 씨의 부탁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이자.
나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귀가길이 반대 방향이라는 슈텐 씨와 도중에 헤어진 다음
나는 혼자 역으로 향한다.
전차 안에서 부탁 받은 회중 시계를 바라보니
골동품인 듯 움직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탁 받은 것이니까 소중히 가방안에 챙겨 넣었다.
아베 씨 한테는 내일 들리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