ペルソナ3ポ-タブル ベルベットブル-
藤原健市 저 |
* 예스에서 싸게 팔길래 떨이로 구매한 P3p 소설. 백합물인가? ㅋ 하고 웃습니다. 아 원작이 ㅋ
12월 26일의 <쉐도 타임> 이래, <특별 과외 활동부>는 몇 번이고 <타르타로스>를 탐색하러 왔다.
그 탐색 횟수와 같은 일수가, 그.쪽.에서는 지났다는 의미다.
지금도 엘리자베스는 이고르의 대각선 뒤에 서서,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그대로 입을 연다.
「주인님.」
「뭡니까, 엘리자베스.」
「제 계산에 착각이 없다면, 그.쪽에서는 오늘 설날이라고 하는 특별한 날로 사료됩니다.」
「듣고 보니 확실히. 정월이라는 것에 흥미라도 있으십니까?」
「네. 전해 들은 유희로, 하네츠키. 전해들은 전통 예능으로 사자춤. 전해들은 음식으로 떡국. 전해들은 풍습, 오토시다마(お年玉). 전해들은 관습으로 새해 참배. 그것들은 대체 어떠한 것일지 상상 해볼 정도로 흥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고 한 마디 말한 다음, 엘리자베스는 보자기 한 보퉁이를 꺼내, 테이블을 향해 갖고 왔다.
「제 창의력과 공작 능력, 지혜와 노력을 다하여 설 음식이라는 것을 제조해 보았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스윽 보퉁이 매듭을 풀자, 금색의 세공이 들어간 칠기 찬합이 나타났다. 호사스러운 3단 찬합이다.
들어간 세공은 <잭 프로스트>라고 하는 <페르소나>다.
영국에 전해지는 서리의 요정으로, 그 모습은 눈사람을 닮아 귀엽다.
무수한 페르소나 중에서도 엘리자베스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페르소나다.
엘리자베스는 잭 프로스트의 인형을 감상용, 보관용, 만약을 위한 포교용으로 같은 것을 3개씩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잭 프로스트를 좋아했다.
「이 찬합도 제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이고르가 감탄한 듯 묻는다.
「호오. 찬합까지 직접 만드셨다니 몰랍습니다. 훌륭한 칠기입니다만, 타르타로스에서 옻을 채취할 수 있습니까?」
엘리자베스는 후하고 의미 심장한 미소를 띠웠다.
「옻은 어떠한 것으로 대용했습니다.」
「어떠한 것이라니?」
「세상에는 모르는 게 좋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과연. 모르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이고르가 왠지 남일 같은 어조로 말했다.
이미 설 요리를 보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이고르에게 감돌았으나, 엘리자베스는 개의치 않고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찬합을 열어 테이블 위에 내려 놓는다.
3개 나란히 나열된 찬합 안에는 갖가지 요리들이 깔끔하게 담겨 있었다.
「첫 번째에는 이와이자카나(祝いざかな)로 안주 거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멸치조림, 소금에 절인 청어알, 검은콩 조림…… 비슷한 것을 준비했습니다.」
원래부터 부라리고 있던 이고르의 눈이 한층 더 커진다.
「비슷한 것이라니 대체……….」
개의치 않고 엘리자베스는 설명을 계속한다.
「또한 어묵, 다테마키, 쿠리킨돈(栗きんとん), 다시마 말이… 로 보이는 것입니다. 2번째 찬합에는 초무침과 구이를. 초무침은 황금색 일색인 나마스 뿐입니다.」
「황금색인 것은 나마스 뿐이 아닌 모양입니다만.」
이고르의 말을 흘러 넘기고, 엘리자베스는 거듭 말을 잇는다.
「이어 구이입니다만, 비늘의 재현에 고생한 돔 모양을 한 것과,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껍질처럼 보이게끔 고생한 새우로 보일지도 모르는 것,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은 음식입니다만, 아무래도 귀찮아져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황금색의 향기나는 삶은 음식입니다. 삶지는 않았지만요.」
찬합 안은 모두 같은 색, 황금색이었다.
「또한 모든 요리 재료는 키나 가루만으로 되어 잇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는 다시 어디선가 꺼낸 칠기 젓가락과 자기 접시를 이고르에게 건네주었다.
「좋아하는 것부터 드셔 주십시오, 주인님. 자아, 부디.」
이고르는 한손에 젓가락을, 다른 한손으론 접시를 든 채로 경직되었다. 입만이 작게 움직인다.
「엘리자베스.」
「뭡니까.」
「반드시 먹어야 합니까?」
「무슨 일이 있어라도 드셔 주셨으면 합니다. 전부 자신작입니다. 이렇게까지 키나 가루를 자유롭게 사용해내는 요리인, 동서고금. 아뇨, 전시공에 걸쳐 저 밖에 없다고 자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두 손을 펼쳐,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이것도 전부 저의, 키나 가루에 대한 흔들림 없는 사랑이 있기에!」
키나 가루. 그것은 엘리자베스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건 그렇다쳐도……. 이게 전부 키나 가루로 만들어져 있을 줄이야…….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다랄까. 오히려 믿고 싶지 않다랄까……. 이거야 과연 어찌해야할지.」
이고르의 커다란 눈에 떠오른 감정의 빛은 곤혹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이고르의 젓가락이 다테마키 비슷한 것을 향했다.
다테마키의 주된 재료는 본디 달걀. 이 요리 중에서는 쿠리킨돈과 나란히, 키나 가루와 가장 가까운 색을 한 요리다. 비슷한 것은 색뿐이지만.
이고르의 젓가락이 원통형으로 썰려 있는 다테마키를 하나 집었다.
키나 가루로 만들어져 있는 것치고는 딱딱해서, 집은 것 같고는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보자…….」
이고르는 키나 가루제 다테마키 비슷한 것을 입가로 가져갔다.
한 입에 삼키고, 흠칫 떨었다.
이고르는 품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 종이를 테이블 위에 놓고 글자를 적었다.
차를 내주실 수 없겠습니까. 입안이 텁텁해서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또 어딘가에서 티셋트를 꺼냈다.
녹차용이 아니라 홍차용 티세트다. 티 포트에서는 이미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찻잔 받침에 얹힌 컵도, 제대로 데워져 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엘리자베스는 홍차를 컵에 따랐다.
「자아, 여기. 오늘의 찻잎은 아삼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이고리의 앞에 찻잔 받침에 얹은 컵을 내려놓았다.
이고르가 수저와 접시를 놓고, 컵을 쥔다. 쩍쩍 열심히 뭔가를 씹는 소리를 내며, 두 세 모금 더 차를 들이키자 겨우 입 안의 것을 집어 삼킬 수 있었다.
「다테마키 비슷한 것의 맛은 어떠했습니까?」
「키나 가루 였습니다. 엘리자베스.」
「당연한 말씀입니다. 키나 가루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대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이고르는 두 번 다시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잠시 뒤, 이고르가 이야기를 바꾸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무엇입니까.」
「말해 두겠습니다만, 오토시다마(お年玉)[각주:1]란 구슬을 떨어트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어머, 하고 엘리자베스는 탄성을 흘렸다.
「그러했습니까. 오토시다마(お年玉)는 많은 게 좋다고 하기에, 쓰러트리기 쉬운 <핸들 애니멀>의 철구를 모아 어딘가에 떨어트리는 수를 다투는 행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핸드 애니멀은 타르타로스 하층에 출현하는 <쉐도우>다.
모습이나 크기는 사자와 비슷하고, 허공에 뜨는 철구가 사슬로 몸에 묶여 있다.
「엘리자베스. 저.쪽 측에서는 모아 수를 다툴 수 있을 정도로 핸들 애니멀이 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그.쪽에 출현하는 쉐도우는 이레귤러. 희소한 존재이기에 그리 불리는 것이었지요. 저는 그것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핸들 애니멀이 없다면 대체 무엇의 구슬을 떨어트리는 걸까요.」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세뱃돈은 구슬을 사냥하는 것도, 떨어트리는 것도 아닙니다. 애당초 오토시다마라는 것은.」
이고르가 어딘지 의기양양하게 해설을 시작하려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가로 막듯이 재빠른 어조로 말했다.
「오토시다마(お年玉)에 대한 설명입니다만, 새해에 풍작을 비는 신을 맞이하기 위한 공물로 바친 떡을, 축제 뒤에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유래라는 설을 저는 지지하고 있습니다. 새해[新年]에 윗사람으로 하사(下賜)받는 것, 그를 줄여서 토시다마(年賜). 그 것이 변해서 토시다마(年玉)라는 말장난 같은 설도 있습니다만.」
이고르는 눈을 게슴츠레 감고서 몇 초 정도 굳었다.
「…………알고 계시다면 그렇다고 말씀하십시오. 주인에게 괜한 창피를 주는 게 아닙니다.」
「실로 실례합니다. 주인님이 조금 지루해 보였기에, 세련된 죠크로 즐겁게 해들 생각이었습니다만. 마음에 드시지 않으셨던 모양이군요. 거듭된 실수, 사과 드리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이고르를 보지도 않고 사과했다.
이고르도 엘리자베스를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지루한 것은 제가 아니라 엘리자베스가 아닙니까. 테오도어나 마가렛처럼 <모나드>로 나갔다 와도 상관 없습니다.」
테도도어는 펫을 돌보기 위하여, 타르타로스와 모나드를 오가고 있다. 마가렛은 자신이 생각한 특별 과외 활동부의 시련, <비전 퀘스트>를 준비하면서, 테오도어와 마찬가지로 펫을 돌보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둘 다 최근 <벨벳룸>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고르에게는 그 행동을 비난할 맘이 없는 듯, “특별 과외 활동부의 멤버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하는 주의를 줬을 뿐이다.
「특히 테오도어. 펫을 보살피는 게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즐거운 모양이더군요.」
「저는 그 펫의 어디가 좋은지 잘 모르겠는지라, 사양 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를 만나면 펫트에게 열중하는 것도 적당히 해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테오도어의 펫트……. 조금 신경 쓰이는 군요, 그것은…….」
뭔가를 말하려하던 이고르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엘리자베스도 작게 몸을 떨었다. 문 너머로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쪽은 쉐도 타임이 아니라, 문은 지금 폴로니안 몰의 뒷골목에 연결되어 있다.
「찾아오신 모양이시군요.」
직후, 천천히 문이 열리고, 새파란 방에 붕 떠올라 보이는 화려한 후리소데 차림이 나타났다.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 그녀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녀는 문을 닫은 뒤, 꾸벅하고 고개를 숙여 기운차게 인사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고르와 엘리자베스는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을뿐이었다.
그녀의 후리소데 차림은 두 사람에게 실로 신선했다.
엘리자베스의 입술에서 감탄의 한숨이 흐른다.
「……하아…………. 그야말로 눈에 복입니다……. 아름답고, 그리고도 기품 흘러넘치면서, 그저 사랑스럽다니. 그저 거기에 존재하시는 것만으로 세계에 행복을 가져다 주시는 듯 합니다.」
화악하고 그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아니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님도 그리 느끼실 거라고.」
이고르가 끔뻑하고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네. 실로 훌륭합니다. 나잇값도 못하고 흥분을 느꼈습니다. 부끄럽군요.」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진다.
「부, 부끄러운 건 나일지도.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 주실래요?」
「주인님. 그녀가 곤란해하는 모양입니다. 그 무의미하게 커다란 눈알을 다른 곳으로 돌려 주시는 것이 그녀를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이고르가 빙글하고 고개를 틀어 옆을 바라본다.
후, 하고 그녀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뺨의 붉기도 조금 가셨다.
「자아. 오늘은 어떠한 용건이십니까?」
그녀가 기모노 소매를 흐트러트리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걸음 걸이로 테이블로 다가왔다. 버선에 조리를 신고 있는 것도, 걷기 힘든 원인인 모양이다.
「아.」
갑자기 그녀가 고꾸라졌다.
「위험, 합니다!」
휙하고 엘리자베스가 반사적으로 움직여, 쓰러질뻔한 그녀를 붙잡았다.
머리카락을 묶어 올린 그녀의 목덜미가 눈에 들어오고, 부드럽고 달콤한 꽃 같은 향기가 떠돌았다.
마음 편안해지는 방향이다. 엘리자베스는 잠시 황홀한 기분을 맛보았다.
「저기……. 이제 놔줘도 괜찮아.」
곤혹스러워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엘리자베스는 퍼득 이성을 되찾았다.
「실로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당신의 멋진 향기에 취하고 말았습니다.」
화끈하고 다시 그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그러니까. 너무 그런 소리 하지 말아줘. 부끄러워.」
「실례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한테서 몸을 뗐다. 그녀의 눈이 테이블 위의 찬합을 향한다.
「그거, 설 요리야?」
「제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드셔 주십시오.」
그녀가 커다란 눈을 끔뻑였다.
「…………전부 같은 색이네. 뭔가 키나 가루 같아.」
「정확하십니다. 전부 키나 가루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녀가 미묘하게 곤혹스러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으으음……. 보다시피 기모노는 띠로 배를 조이고 있잖아? 그러니까 별로 식욕이 없어.」
꾸며 입으려면 다소 불편해도 참을 수밖에 없겠지요.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납득했다.
「그러 하십니까. 그러면 다음 기회에 제 키나 가루 요리를 대접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고하고, 엘리자베스는 이고르의 대각선 뒤 위치로 돌아갔다.
「그럼 다시 한 번. 오늘은 어떠한 용건이십니까.」
「새해 참배 안 갈래?」
그녀가 뺨을 붉게 물들인 채 “어때”하고 말하는 듯이 고개를 가볍게 기울였다.
「새해 참배……라고 하시면. 전에도 함께 동행했던 나가나키 신사입니까?」
「응. 전에 갔던 때와는 달리 화려하고 즐거울 거야. 신사.」
엘리자베스는 전에 그녀와 함께 신사 경내를 방문했던 것을 떠올렸다.
참배객의 모습도, 경내 구석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노는 인영도 없이, 그저 정숙만이 경내에 가득차 있었다. 그 정숙에 뭔가 엄숙한 것을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다.
「화려하다는 말씀이십니까.」
흥미를 품은 자신의 모습에 퍼득 정신을 차리고,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 됩니다. 그.쪽을 방문하는 것은 지난 번을 마지막으로 했습니다.」
「도저히 안 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기대와 낙담이 뒤섞여 있다.
엘리자베스는 시선을 내리 깔았다.
「저도 괴롭게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 너무 저.쪽을 접하면 정말로 저는 제가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힘을 관장하는 자>에게, 그것은 허락되어선 안 될 일.
벨벳룸에 정숙이 찾아왔다.
방에 흐르는 피아노 소리와 노랫소리를, 이고르가 가로 막는다.
「다녀 오도록 하십시오, 엘리자베스.」
「하지만, 주인님.」
「이 역시 언젠가 도달할 대답으로 가는 길일 겁니다. 아니면, 권유를 고사해서 언젠가 후회하고 싶으신 겁니까?」
이고르가 빙글 고개를 움직여 엘리자베스를 돌아보았다.
아무 것도 보지 않는, 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이고르의 거대한 눈말에,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비친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어야 할텐데, 도저히 자신의 얼굴 같지 않은 쓸쓸한 그림자가 느껴졌다.
― 저는 이러한 표정도 지을 수 있었습니까.
후회. 그 단어가 엘리자베스의 가슴 속에 무겁게 내려 앉았다.
「…………주인님. 잠시 이 자리를 벗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빈 자리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
특별 과외 활동부의 그녀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네. 했던 말을 철회하다니 실로 꼴사나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번에 한해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응!」
그녀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테이블을 돌아 엘리자베스의 옆으로 왔다.
그리고는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고서, 후리소데를 나풀거리며 빙글 몸을 돌린다.
「바깥은 이제 곧 저녁이니까, 어두워 지기 전에 가자.」
다소 억지로, 그녀는 엘리자베스를 문쪽으로 잡아 당겼다.
엘리자베스는 힐끔 이고르를 뒤돌아 보았다.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이고르는 쿡쿡하고 유쾌한 듯 웃었다.
「즐겁게 보내고 오십시오.」
엘리자베스와 특별 과외 활동부의 그녀를 배웅한 다음, 이고르는 테이블 위를 내려다 보았다. 엘리자베스가 직접 만든 설음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생각하기를 잠시. 이고르는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선 일단, 테오도어에게 전부 먹이도록 하지요. 그게 제일 풍파가 적을 테니까.」
모나드 9층. 바닥에 쭈그려 앉아 펫을 돌보고 있던 테오도어는 부들부들 크게 몸을 떨었다.
갑자기 강렬한 오한이 등줄기를 내달렸기 때문이었다.
「뭐, 뭡니까, 대체…….」
포치에게 먹이를 주던 손을 멈추고, 주위를 확인한다.
장소는 통로 막다른 곳. 바로 앞은 막혀 있고, 양 만한 크기까지 자라난 포치 밖에 없었다. 배후는 그저 어둡기만할 뿐 적대 쉐도우의 기척도 없다.
주위에 적의를 발하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한을 느꼈다.
― 대체 나는 무얼 불안하게 생각한 걸까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안의 정체를 몰라 섬뜩함만이 는다.
「테오도어. 왜 그래.」
포치의 가면에서 어린애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통째로 먹는다 등등의 말을 했던 시절보다 훨씬 더 지성이 느껴지는 어조다.
테오도어는 경련하는 얼굴로 웃음을 띠우고, 포치의 가면을 어루만졌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밥.」
포치가 먹이를 조른다. 테오도어는 옆에 펼쳐준 보퉁이 위의 먹이의 산에서 적당한 것을 쥐고, 휙하고 포치의 검은 점막질 몸 속에 집어 던진다.
포치가 출렁하는 점액을 촉수 형태로 뻗어 먹이를 캐치한 다음, 몸 안으로 집어 넣었다.
꿈틀꿈틀 몸을 움직이며 먹이를 씹는 포치를 바라보는 테오도어의 눈이, 손자를 보는 노인처럼 가늘어진다.
「변함없이 잘 먹는군요. 잔뜩 먹고 크는 겁니다.」
테오도어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휙휙 포치에게 먹이를 던져주었다.
텁하고 손이 허공을 쥔다. 음? 하고 테오도어는 보퉁이를 바라보았다.
「어라……. 먹이가 다 없어졌습니까.」
테오도어는 타르타로스에서 상당한 숫자의 쉐도우를 사냥, 보퉁이 한 가득 먹이를 갖고 왔으나, 어느새 보퉁이 위는 텅 비어 있었다.
포치는 아직도 먹이가 모자란 듯, 몸에서 뻗어져 나온 몇 여개의 촉수를 꿈틀대고 있다.
「그거. 먹을 수 있다.」
포치가 테오도어가 안고 있던 페르소나 전서를 향해 촉수 하나를 뻗었다.
「잠깐. 이건 먹을 게 아닙니다.」
「먹을 수 있다. 먹어 본다.」
포치가 페르소나 전서에 촉수를 얽어, 휙휙 잡아 당긴다.
「그러니까 이건 먹을 수 없대두요!」
테오도어는 페르소나 전서를 빼앗길 것 같은 상황에 초조해졌다.
다급히 일어서, 줄다리기처럼 포치와 페르소나 전서를 잡아 당긴다.
「적당히 하지 않으면 <메기도라온>입니다!!」
화가 치민 테오도어는 포치에게 호통쳤다.
움찔하며, 포치가 페르소나 전서를 놓았다. 스스슥하고 기어서 테오도어와 거리를 벌인 다음, 벽가에서 덜덜 떤다.
포치를 겁먹게 만들었다는 것을 바로 깨달은 테오도어는, 쓰린 표정을 지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포치. 딱히 겁먹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화해를 하기 위해선 역시 먹이가 좋을까…. 그렇게 생각한 테오도어가 보퉁이를 바라보았으나, 없는 것은 없다.
「뭔가 줄 수 있는 것은……. 그렇지!」
테오도어가 손을 탁 쳤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누님한테서 도시락을 받았습니다!」
테오도어가 벨벳룸을 나설 때, 엘리자베스가 「가끔 씩은 괜찮을 것 같아서, 도시락을 만들어 보았습니다」하고 냅킨으로 싼 보시락을 건네 주었다.
나중에 먹을 생각으로 테오도어는 도시락을 포치한테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놔뒀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테오도어는 도시락을 가지러 갔다. 바닥에 놔둔 도시락을 들어, 포치한테로 되돌아본다. 바로 먹이 대신 도시락 내용물을 주기 위해 페르소나 전서를 옆구리에 끼고, 냅킨을 풀려 했다.
그 도중, 촤악하고 민첩한 동작으로 포치가 도시락을 촉수로 낚아채갔다.
「자, 잠깐만요!」
테오도어의 저지는 늦어, 포치가 도시락을 몸 속에 집어 넣었다.
포치의 점액질 몸이 출렁출렁 꿈틀대더니, 으득으득 플라스틱 도시락이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포치의 움직임이 뚝하고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테오도어가 물은 지, 몇 초 뒤.
「………이거. 안 돼. 몸. 말라.」
푸혹하는 소리를 내며, 포치의 몸 일부가 폭발했다.
「뭐, 뭡니까?!」
어리둥절해하는 테오도어의 시선이, 샛노란 연기로 가로막힌다.
「이, 이건………. 푸엣취!!」
잔잔한 가루가 코의 점막을 자극해, 테오도어를 재취기를 했다.
「푸엣, 푸엣취. 엣취. 에에에엣취. 히, 히익. 히끅.」
재취기가 그치지 않아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다.
주위 일대를 진하게 채운 분진의 정체를, 테오도어는 바로 깨달았다.
키나 가루.
엘리자베스의 도시락에 그녀가 특기라고 주장하는 키나 가루 요리가 들어있었던 것은,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것을 먹으려 했던 포치가, 참지 못하고 전부 토해냈다. 그런 뜻.
― 누님. 또 무시무시한 것을…….
테오도어는 엘리자베스의 키나 가루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있다.
한 입 물었을 때, 입안의 수분을 모조리 빼앗겨서, 무시무시한 꼴을 달했다.
테오도어는 자신의 멍청함에 기막혀 했다. 그. 엘리자베스가 준비해준 도시락이다. 키나 가루 요리가 들어 있으리란 것을 가장 먼저 의심했어야 했다.
테오도어는 샛노란 분진 속에서 한결같이 재취기를 거듭하 하며, 맹세했다.
앞으로 평생, 키나 가루 요리는 먹지 않겠다고.
이후 이고르가「이 키나 가루 요리를 전부 먹으세요.」하는 명령을 내리게 되고, 그 명령에 의해 맹세가 바로 깨지게 되리란 것을, 지금의 테오도어는 알 리가 없었다.
벨벳룸의 문이 있는 뒷골목에서, 엘리자베스와 특별 과외 활동부의 소녀는 폴로니안 몰로 나왔다.
길에는 빨강과 하얀 장식이 눈에 띄고, 정월 장식이나 카도마츠를 놔둔 가게도 있어서 신선해 보였다.
「이것이 새해의 떠들썩함입니까.」
「크리스마스 무렵의 화려함도 좋지만, 정원은 또 각별하지.」
「네. 그것을 실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합ㄴ디ㅏ.」
둥실하고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낀 엘리자베스는, 꼬옥 페르소나 전서를 든 손에 힘을 넣었다.
― 자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이.쪽에 오면, 무심코 들뜨고 맙니다.
「자아, 가자.」
엘리자베스는 의도적으로 평소보다도 등을 쭉 펴며, 시원시원 걸었다.
모델 같은 그 걸음 걸이에 오가는 사람들이 힐끔힐금 엘리자베스를 신경 쓰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모든 시선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나란히 걷는 특별 과외 활동부의 그녀가 곤혹 어린 쓴웃음을 띠우고 있으나, 엘리자베스는 그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부터 가야할 길을, 엘리자베스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거듭 시뮬레이션 하고 있었다.
― 목적지인 나가나키 신사에 가기 위해서는 공공 교통 기관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 폴로니안 몰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타츠미 포트 아일랜드 역.
― 이와토다이 역앞 상점가에 갔을 때와, 나가나키 신사에 갔을 때.
― 더욱이 그녀의 방에 초대 받았을 때. 왕복으로 약 6번. 모노레일을 이용했습니다.
「신도시 교통 아네하츠루.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노레일의 정식 명칭을 입에 담는 엘리자베스를, 옆에 선 소녀가 의아한 듯 바라본다.
「아네하츠루가 왜? 아, 혹시 실은 전철 타는 건 거북해? 멀미라던가?」
「아뇨.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자아, 타츠미 포트 아일랜드 역이 보입니다. 오늘은 제가 에스코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관이나 플라워 샵이 있는 역앞 광장을 빠르게 빠져나가, 계단을 올라 개찰구로 향한다.
통학용 정기권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 「표를 사 오겠습니다.」하고 말한 다음 발권기로 다가가, 솜씨좋게 이와토다이 역까지 가는 티켓을 샀다.
초조해하면 갈 곳을 가로막는 기괴한 설비, 자동개찰을 간신히 빠져나와 홈으로 향했다.
정월이라서 그런가, 평소 출퇴근 시간 정도만큼은 아니지만 홈은 혼잡했다.
「놓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엘리자베스는 무의식 중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전차가 가벼운 브레이크 소리를 내면서 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타츠미 포트 아일랜드 역은 신도시 교통 아네하츠루의 포트 아일랜드 측 종착역이다.
전차는 여기서 모든 승객을 내리고, 반환해 이와토다이 행으로 바뀐다.
도착한 전차는 승객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였다.
― 이런 인파에 끼여 버리면 그녀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지고 맙니다.
엘리자베스는 열리는 문 앞에서, 눈을 크게 떴다. 페르소나의 힘이 없는 일반인조차 눈치채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렬한 살기를, 전신에서 피어 올린다.
「이, 이런 데서 왜 그래?」
그녀가 당황해했다. 엘리자베스는 태연히 대답했다.
「당신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문에서 내린 손님들의 흐름은 엘리자베스의 뜻대로 움직였다.
바위를 피하는 물줄기처럼, 엘리자베스와 그녀를 피해 인파가 흐른다.
누구나가 대체 이 여자애들인 뭔가 싶어하는 눈을 하고 있다.
전원, 엘리자베스의 살기에 겁먹어 진로를 변경했던 것이다.
하핫, 하고 그녀가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왠지 이상한 도시 전설이 될 것 같아.」
홈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던 손님들까지 엘리자베스를 피해 멀어진다.
「차량이 비었습니다. 발치를 주의하며 걸어 주십시오.」
엘리자베스는 살기를 지우고서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 텅 빈 차 안에 올라탔다.
이어 속속들이 손님들이 올라타지만, 엘리자베스와 그녀 주위 1m 이내로 다가오진 않는다.
조금 전 발한 살기의 효과다.
혼잡한 차량 안에서 엘리자베스와 그녀만이 비좁은 기분을 맛보지 않고, 이와토다이 역에 도착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개찰구를 빠져 나왔다.
이와토다이 역은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해야하는 높은 곳에 플랫폼이 위치해 있다.
엘리자베스는 망설임 없이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저기, 잠깐만.」
그녀의 곤혹스러운 목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엘리자베스는 속도를 높인다.
「<앞길을 거스르며 거꾸로 흘러가는 계단>으로, 지금부터 돌입합니다. 단단히 따라와 주십시오.」
엘리자베스는 전에 그녀와 함께 이 역을 방문했을 때에도,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렸다. 에스컬레이터란 진행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통해 손님을 단련시키는 시련의 도구.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이 착각임은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도 총총 걸음으로,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단번에 뛰어 내려갔다.
다 내린 그 자리에서 멈춰서, 후우하고 숨을 내쉰다.
「오늘도 얕볼 수 없는 시련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무모한 행동에 억지로 참가해야했던 그녀가, 곤혹을 넘어 즐거운 듯 아하핫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 겹쳐지듯,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진다.
「손님 여러분. 에스컬레이터를 역주행하는 것은 몹시 위험합니다.」
마침 그 타이밍에, 유치원생 정도의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성이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려 했다.
「저기, 여보세요. 위험합니다.」
엘리자베스가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주의를 받은 것이 이 사람들이라 생각한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전에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갔던 때에도, 지금과 같이 안내 방송으로 주의를 받았으나, 엘리자베스에게는 잘못을 했다는 인식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자신에게 주어진 주의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다.
「위험하다니…. 뭐가요?」
여성이 뒤돌아본다.
「에스컬레이터의 정당한 사용 방법은…….」
그때 그녀가 여전히 이어져 있던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아 당겼다.
「돼, 됐으니까 가자. 이런 식으로 타도 위험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방송에서는….」
「신경 쓸 거 없으니까. 응?」
「그렇습니까.」
그 자리를 애매하게 흘러 넘기며, 엘리자베스와 그녀는 이와토다이 역을 나왔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동쪽 하늘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일멀까지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듯 했다.
「서두르자.」
그녀가 앞서 종종히 뛰어 나갔다.
그에 이끌리며, 엘리자베스고 따라간다.
자연스럽게 인파의 흐름을 타고 움직이자, 이어 신사의 돌계단이 보였다.
경내로 이어지는 참배로에는 초롱등불이 켜져, 황혼녘에 옅은 빛을 발하고 있다.
참배를 하러 가는 사람들 사이로, 엘리자베스와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끼어 들었다.
계단을 올라, 경내에 들어선다. 왼쪽에 노점들이 몇 개 줄지어 서있다.
「이런 데에서도 장사를 하는 겁니까?」
「정원인 걸. 게다가 노점은 여름 축제에도 있어.」
이전 엘리자베스가 방문했을 때에는 한산했던 경내가, 참배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굉장히 번잡해서, 도저히 같은 신사 같지가 않았다.
세전함 앞의 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엘리자베스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이것이 새해 참배인 거로군요.」
「좋지? 다들 희망에 넘쳐서.」
그녀의 말대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품을 듯한, 그런 분위기다.
문득 엘리자베스는 떠올렸다.
그녀한테서 들은 <뉵스>라고 하는 존재를.
머지 않아 이 세계로 찾아올, 피할 수 없는 멸망이라는 것을.
이들 참배객들은 아무도, 찾아올 멸망에 대해 모르고 있겠지.
안다면 이렇게 희망찬 표정은 도저히 지을 수 없을 테니까.
꾸욱, 그녀가 붙잡은 손에 힘을 넣는 것을 엘리자베스는 느꼈다.
힐끔 그녀의 옆얼굴을 본다. 그녀의 입술에 작게 움직이는 것을 엘리자베스는 보았다.
이 세계를, 지켜 보이겠어.
그녀는 그렇게, 소리내지 않고 고한 듯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로부터 강한 힘을 느꼈다.
근래의 타르타로스 탐색을 통해, 그녀는 한층 더 강한 페르소나의 힘을 얻은 듯 했다.
― 지금의 그녀라면, 어쩌면.
― <거둬 들이는 자>마저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둬 들이는 자를 쓰러트린다. 그것은 <페르소나 사용자>로써, 힘의 한 도달점이다.
거둬 들이는 자를 쓰러트릴 수 없어서야,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할 순 없다.
― 근 시일내로 그녀에게 거둬 들이는 자의 토벌을 의뢰해 보지요.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결심했다.
― 그녀가 거둬 들이는 자를 쓰러트린, 그 때에는.
「응? 왜 그래?」
그녀가 엘리자베스의 시선을 눈치챘다.
「아뇨. 딱히.」
엘리자베스는 “그녀라면 분명 괜찮을 겁니다”하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며, 작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참배 순서가 왔다.
엘리자베스는 지갑을 꺼내려고 하다가, 타츠미 포트 아일랜드 때부터 내내 그녀와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계속 손을 빌린 상태였습니까. 실로 죄송합니다.」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후훗, 하고 그녀가 명랑하게 미소 짓는다.
엘리자베스는 뺨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럼――. 세전을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엘리자베스는 스커트의 숨겨진 주머니에서 터져 나올 정도로 부풀어 오른, 지갑을 꺼냈다.
지갑을 열어, 세전함 위에서 뒤집는다.
촤르르르륵하고 지갑의 용적을 명백히 웃도는 대량의 잔돈이 세전함 위로 쏟아졌다.
지난번 참배때도, 엘리자베스는 같은 짓을 했다.
영험은 세전함에 던진 금액에 비례한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찰랑하고 최후의 잔돈이 떨어졌을 때, 세전함은 이미 흘러넘치고 있었다.
주위가 무슨 일인가 싶어 술렁였으나, 엘리자베스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만큼 넣었으니, 그 어떤 소원도 이룰 수 있겠지요. 자아, 소원을 비십시오.」
「그럼 같이 빌자.」
흘러넘치는 세전함에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와 나란히 합장했다.
― 원컨대 그녀가 가는 길 앞에, 그녀가 후회하지 않을 대답이 있기를.
엘리자베스가 빈 것은 그저 곁에 있는 그녀의 일이었다.
2번 고개 숙이고, 2번 박수,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참배를 마친 다음, 세전함 앞을 떠난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제비를 엄청 뽑았잖아? 오늘도 뽑을래?」
엘리자베스는 전에 참배 후, 제비를 뽑았다. 그것도 전 종류를 풀 컴플리트할 때까지 철저하게.
「오늘은 괜찮습니다. 이쪽의 제비는 이미 전부 다 모았는지라.」
「제비는 그런 게 아닌데 말이지…….」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왼쪽 손목의 시계를 힐끔 본다.
밴드가 가는 가죽제 손목 시계다.
「훌륭한 시계로군요.」
「응……. 굉장히 소중한 거야.」
꼬옥 오른손으로 손목 시계를 감싸 쥐는 그녀의 표정을 통해, 엘리자베스는 깨달았다.
― 그 시계는 누군가와의 인연의 증거인 거겠죠.
그녀는 시계에서 손을 떼고, 문자판을 바라보았다.
「시계는 시간을 새기는 것―. 순간 순간의 지금을 확인하고, 미래로 움직여 나가는 것. 설령 무엇이 찾아 온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이 움직임을 관두지 않을 꺼야.」
그녀의 눈동자에 확고한 결의의 빛이 깃들어 있다.
그 눈동자가 응시하고 있는 것은, 미래.
고여 있던 시간 속에서 지금만을 살아가고 있는 벨벳룸의 주인들과는 다르다.
― 그래. 저와 이 분은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엘리자베스는 시선을 내려 깔았다.
― 그것은 바라선 안 될 일.
― 역시 이.쪽 세계를 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니까요. 그것을 엘리자베스는 재확인했다.
이 이상, 여기에 머무르는 것은 좋지 않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귀중한 체험,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이 쯤에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에? 언제나처럼 벨벳룸까지 바래다 줄게.」
「아뇨. 벌써 해도 저물었고, 그 기숙사에 모두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모두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 주십시오. 저와는 벨벳룸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요.」
으음, 하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웃음을 띠웠다.
「그러면 그 말에 기대어 오늘은 여기서. 실은 저녁 무렵엔 꽤나 춥거든. 이 차림.」
「어머. 그러면 점점 더 서두르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시기라도 한다면 큰일입니다!」
「그렇네.」
고개를 끄덕인 그녀와 나란히 경내를 벗어난다.
계단을 다 내려온 곳에서 멈춰서,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눈다.
「내년에도 또 같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약속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역시, 별로 이.쪽으로 와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조금 유감이다.」
그렇게 그녀가 중얼거리며, 애절하게 미소 지었다.
― 그런 얼굴 하지 말아 주십시오.
순간 페르소나 전서를 떨어트려 버릴 뻔 했을 정도로 엘리자베스는 동요했다. 손이 떨렸다. 그럼에도, 말해 버리면 괜히 더 아쉬워 져버리니까…, 꾸욱 입술을 다물고 굳이 무뚝뚝한 태도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그럼, 여기서.」
「그럼…, 다음에 봐. 응…?」
그녀가 문득 엘리자베스의 발치를 내려다 보았다. 기모노 자락을 누르며 몸을 웅크려, 뭔가를 주워 들고서 일어났다.
「이거. 지금 떨어트린 거 아니야?」
그녀가 엘리자베스에게 내민 것은, 정교하게 오려 붙여 도안을 넣은, 얇은 은색의 판이었다.
엘리자베스가 페르소나 전서에 사용하고 있는, 백은 세공의 책갈피다.
방금 전 동요했을 때, 페르소나 전서 사이로 미끌어져 떨어져 버린 모양이다.
「네. 제 것입니다. 잃어버렸다가 고생할 뻔 했습니다.」
「멋지네, 이거. 소중한 거야?」
「소중……. 글쎄요. 어떨련지요. 애착은 느끼고 있습니다만.」
엘리자베스는 그녀한테서 백금 세공 책갈피를 건네 받아, 페르소나 전서에 끼워 넣었다.
「주워 주셔서 실로 고맙습니다. 그럼, 이번에야말로 실례하겠습니다.」
「응. 그럼 다음에 봐~.」
그녀는 작게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역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인파 속으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순간 그녀는 뒤돌아 다시 손을 흔든 다음, 그대로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졌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어도,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서쪽 하늘의 붉은 기미가 가시고, 하늘 꼭대이에 별이 반짝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겨우, 엘리자베스는 발걸음을 돌렸다.
엘리자베스가 벨벳룸으로 돌아오자, 그 곳에는 빈 자리를 부탁했던 이고르 뿐만이 아니라 마가렛의 모습도 있었다.
「엘리자베스. 하나 부탁할 수 있을까?」
「뭡니까?」
「비전 퀘스트가 완성 됐어. 특별 과외 활동부의 그녀에게, 도전해달라고 전해 줄래? 타르타로스의 엔트런스에 문을 만들어 뒀어. 나는 그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기대되네, 하고 마가렛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오싹, 하고 엘리자베스는 오한을 느꼈다.
힘을 관장하는 자로써의 역량으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언니에게 미치지 못함을 자각하고 있었다.
동시에 언니의 취미도 이해하고 있다.
새디스틱. 그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쓰러지면 안 돼.」그렇게 말하며, 방어를 뭉개고 즉사가 확실한 공격을 적에게 쑤셔 넣는다.
언니와 몇 번 정도 겨뤄 본 적은 있지만, 궁지에 몰리는 것은 언제나 엘리자베스 쪽이었다.
그런 마가렛이 준비한 시련이다.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겠지.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레벨임에 틀림없다.
그런 것을 그녀에게 추천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자기에게 물음과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새해 참배 때 본 그녀의 옆 얼굴에 깃들어 있는 결의를 떠올렸다.
― 분명 괜한 걱정이겠지요.
말없이, 엘리자베스는 자문자답을 마무리했다.
「왜 그래?」
「아니오.」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고르에게 물었다.
「주인님. 전화를 사용해도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럼, 바로 실례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테이블로 다가가, 아무 것도 없는 장소로 손을 뻗었다.
순간 거기에 황동과 목재로 만들어진, 클래시컬한 디자인의 다이얼형 전화기가 나타났다.
수화기를 들고, 엘리자베스는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는 전화 번호를 다이얼했다.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 그녀의 휴대 전화 번호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기다리길 잠시.
콜 음이 10회에 달아기 전에,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엘리자베스입니다.」
『아, 좋은 밤! 벌써 벨벳룸에 도착했어?』
「네. 오늘은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은 괜찮으십니까?」
『시간이라면 괜찮아. 무슨 일이야? 또 실종자라도 나왔어?』
실종자란 드물게 헤매다 타르타로스에 들어서, 나갈 수 없게 되어버린 일반인이다.
일반인을 구해야할 의무 따위, 벨벳룸의 주민에게는 없다.
하지만 모른척 내버려 두는 것도 가엽기에, 특별 과외 활동부에게 연락해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실종자는 대개 경찰쪽에 수색 요청이 들어와 있는지라, 구하면 다소나마 사례를 받을 수 있기에 특별 과외 활동부로써도 무보수 노동이나 봉사활동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아니오. 다른 용무입니다. 실은. 언니가…… 와 있습니다.」
『언니? 헤에. 언니가 있었구나.』
그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명백하게 흥미가 느껴지는 목소리다.
마가렛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엘리자베스는 질문해 오는 것보다 빨리, 입을 열었다.
「그 언니가 당신들 특별 과외 활동부에 흥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타르타로스의 엔트런스에 새로운 문을 설치해 두었으니, 수고스럽겠지만 그쪽을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응. 알겠어. 거기로 가면 언니를 만날 수 있는 거지?』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하고 한 마디를 덧붙이며 엘리자베스가 말을 잇는다.
「제 쪽에서도 의뢰가 하나 있습니다.」
『의뢰?』
「최고 난이도의 의뢰입니다. 거둬 들이는 자를 쓰러트려, <피에 젖은 단추>를 하나 가져다 주십시오. 그 난이도에 걸맞는 보수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둬 들이는 자라니……. 한 플로어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으면 등장하는, 그 사신 타입?』
「그렇습니다. 강적임은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의 당신과 당신의 동료라면 결코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침묵했다.
『……………응. 받아 들일게. 그렇지. 그 정도 쯤 간단히 쓰러트릴 수 없다면, 우리들이 싸우려 하는 것한테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걸.』
그녀와 그 동료들은 뉵스에게 도전, 완고한 결의로 승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별 과외 활동부는 멸망의 운명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할 셈인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새삼 그것을 깨닫고,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 당신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고하고, 엘리자베스는 작별의 말을 입에 담는다.
「용건은 이상입니다. 그럼 벨벳룸에 들려 주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 다음에 봐. 그럼 잘 자고.』
전화가 끊겼다. “잘자”라는 인사를 통해, 엘리자베스는 특별 과외 활동부가 오늘밤 쉐도 타임에는 타르타로스 탐사를 하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다.
엘리자베스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스윽하고 전화기의 모습이 허공의 어둠속에 녹아 사라진다.
「주인님. 힘의 연마를 위해 모나드로 가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거둬 들이는 자를 쓰러트리기로 약속해준 그녀에게, 엘리자베스는 가벼운 대항심을 품고 있었다.
그.때를 위하여, 그녀를 낙담시키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힘을 갈고 닦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자,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자연히 단단해진다.
이고르가 유쾌한 것을 보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한 번 고개 숙인 다음, 마가렛을 바라보았다.
「함께 하시겠습니까?」
「나는 됐어.」
마가렛의 대꾸에 엘리자베스는 “그렇습니까.”하고 대답한 다음, 혼자 벨벳룸에서 타르타로스 엔트런스로 나왔다.
타르타로스의 미궁으로 통하는 기나긴 계단을 힐끔 보고, 시선을 왼쪽으로 돌린다.
마가렛이 말했던 비전 퀘스트로 이어진 문이다.
「비전 퀘스트….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이 행했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의식이 그와 같은 이름이었지요. 분명히.」
뭔가의 서적에서 얻은 지식을, 엘리자베스는 짧게 떠올렸다.
마가렛이 내리는 시련의 이름이 그 의식에서 유래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마가렛의 시련을 받는 특별 과외 활동부의 무사를 기도할 뿐이다.
「테오는 모나드일까요. 아니면 타르타로스일까요.」
엘리자베스는 모나드의 문과 타르타로스의 계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끔은 타르타로스에 가볼까요? 하는 생각이 힐끔 들었으나, 다리는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모나드를 향하고 있었다.
모나드의 문을 넘어, 미궁에 들어선다.
들어가서 바로 멈춰서, 좌우를 확인한다. 시야가 몇 미터 밖에 되지 않는 것은 평소 대로다. 일단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대수롭지 않게 걸음을 ㅇ롬겼다.
적당히 미궁을 걷고 있자니, 쉐도우와 조우하지도 않은 채 계단이 보였다.
「정말이지 싸움 하나 없이 위층으로 가는 것도 재밌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다른 곳을 걸어보도록 하죠.」
엘리자베스는 혼잣말을 입에 담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한 발짝 내딛으려 하다, 멈춘다.
정면. 어둠 속에 기척을 느꼈다.
「이 느낌……. 쉐도우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쉐도우 특유의 적의,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힘은 느껴지지만, 어딘지 모르게 흐릿해서 강한지 약한건지 분명치 않다.
어둠 속에서 흐릿히, 작은 인영이 떠올랐다.
그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나온다.
「좋은 밤……이라고 하면 되려나?」
열 살도 채 되지 않는, 어린아이였다.
단정한 얼굴이지만 사나이 답다. 얼굴과 손목 끝 밖에 피부가 보이지 않는 새카만 옷을 입고 있는 탓에, 새하얀 얼굴이 유달리 도드라져 보인다.
인간 소년.
이 괴이의 소굴에서, 가장 있을 수 없는 존재다.
소년은 겁에 질린 모양새도, 초조한 모양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위화감을 부추긴다.
― 막 헤매어 든 탓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미아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특별히 이곳 밖으로 꺼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만.」
「미아? 으음―….」
소년이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짓는다. 잠시 생각한 다음, 어린아이 답지 않는 어른스런 쓴웃음을 띠웠다.
「그렇네. 미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있어야할 모습을 잃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아직 자
신이 해야할 일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고.」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년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다시금 위화감을 느꼈다.
― 이 아이. 외관 대로의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딱히 몰라도 상관 없어. 그냥, 친구가 되어 준다면.」
소년이 천진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 작은 손과, 소년의 얼굴을 엘리자베스는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싹하고 등줄기로 오한이 일었다.
신경이 멋대로 경계 신호를 보낸 것처럼.
힘을 관장하는 자인 자신이, 그닥 힘이 느껴지지 않는 이런 아이를 경계하다니, 엘리자베스 자신도 믿겨지지 않았다.
경계심을 표출하진 않고, 엘리자베스는 웃음을 띠웠다.
「친구, 입니까. 공교롭게도 친구는 이미 충분합니다.」
엘리자베스에게 있어 친구라는 단어는 오직 한 사람을 가리킨다.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 그녀 이외의 친구는 필요 없다.
「그런가. 유감이네.」
소년은 작게 쓴웃음을 짓는다.
「그.는 친구가 되어 줬는데.」
「그?」
「이번에는 이만 실례할게. 왠지 너는 무서우니까.」
스윽, 하고 발걸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소년이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이 어둠속에 녹아 든다.
놓쳐선 안 된다. 왜인지 그런 생각에, 엘리자베스를 소리를 높였다.
「기다리세요!」
또 봐. 그런 목소리인지 사념인지 모를 인사만을 남기고, 소년의 기척은 사라졌다.
「대체……, 지금의 아이는……?」
소년이 말한 그.
누구일까 생각하던 엘리자베스의 뇌리로,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테오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테오도어는 최근 벨벳룸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모나드에서 기르고 있는 펫을 돌보는 데 빠진 상태다.
테오도어의 펫, <마야> 형태의 쉐도우 포치가 있는 곳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면 모나드 9층이다.
엘리자베스는 9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딴 데로 눈길 돌리는 일도 없이, 곧장 9층을 향한다.
도중 몇 번인가 조우한 쉐도우들을 죄다 일격으로 물리치고, 목적했던 층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면 찾는 것보다 부르는 게 더 빠르다는 생각에, 엘리자베스는 전방의 어둠을 향해 크게 외쳤다.
「테오! 있으면 대답하세요!!」
소리가 크게 메아리치며, 미궁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답이 없다. 안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귀를 기울이자, 딱딱한 것을 씹어 빠수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걸어감에 따라, 씹는 소리로 추정되는 소리가 커진다.
이어 봉긋하니 새카만 물체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푸른 복장의 청년이 보였다. 테오도어다.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각양각색의 쉐도우 아이템을, 테오는 바지런히 검은 물체에게 주고 있었다.
검은 물체. 그것이 커다래진 포치라는 것을 깨닫는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전에 봤을 때는 대형견만한 크기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송아지 만하다.
통상의 마야 형 쉐도우의 배 이상 되는 크기였다.
「꽤나 많이 컸군요, 테오…….」
테오도어는 돌아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포치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테오? 잠깐 테오! 저를 무시하는 겁니까?!」
엘리자베스는 덥석 테오의 어깨를 잡아, 억지로 뒤돌아 보게 했다.
「아아. 와 계셨습니까, 누님.」
뺨이 조금 홀쭉해지고, 눈 밑에는 다크 서클이 져있다. 어딘지 모르게 눈빛도 이상하다.
테오도어는 아무래도 펫을 돌보는 데 열중해서, 별로 쉬지도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동생의 이 변모에, 엘리자베스라도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 어쩜 이렇게 심한 얼굴을. 이런 비실비실한 동생을 가진 기억은 없습니다.」
「저 같은 것 보다, 누님. 어떻습니까. 점점 더 귀엽고 자랑스럽게 자랐지요? 제 펫. 아아, 정말 포치.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겁니까.」
테오도어가 하얀 가면이 붙어 있는 포치의 머리를 끌어 안았다.
역시나 엘리자베스는 포치가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이미 테오도어의 머리보다 커다래진 하얀 가면이, 으스스하게 느껴질 정도다.
― 이것이 귀엽다니,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동생이 정신을 의심하면서, 엘리자베스는 묻는다.
「그런 것보다 테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런 것보다라니, 뭡니까! 누님도 포치의 귀여움을 칭찬해야 합니다!!」
욱해진 테오도어가 그렇게 주장했다.
엘리자베스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깃든다.
「그런 것입니다.」
테오도어의 눈에 빛나던 이상한 빛이 약해진다.
「무, 묻고 싶은 것이란…… 뭡니까?」
「모나드 안에서 남자 아이를 본 적 있습니까?」
「남자 아이 말입니까? 인간의?」
「네. 모습은 인간의 아이 같았습니다.」
「못 보았습니다. 애당초에 누님. 타르타로스라면 몰라도 인간 어린 아이가 모나드에 들어섰다간, 바로 불운한 최후를 맞이하는 게 아닙니까?」
테오도어는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아무래도 그 말에 거짓은 없는 모양이다.
「그 남자 아이가 대체 어쨌단 말입니까?」
「아니오. 모른다면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펫을 돌보는 것도 적당히 하고, 가끔은 벨벳룸으로 돌아오세요. 주인님도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주인님,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이 먹이를 다 준 다음 한 번 돌아가겠습니다.」
테오도어가 엘리자베스한테서 등을 돌려, 포치에게 다시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저도 한 번, 벨벳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동생으로부터 등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엘리자베스가 돌아온 벨벳룸에는 마가렛의 모습이 없었다.
「그녀라면 앞으로는 비전 퀘스트의 방에 있을 거라고 합니다.」
이고르의 말에 “그렇습니까”하고 엘리자베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지금, 언니 일보다도 물어야 하는 것은, 모나드에서 본 소년이다.
이고르라면 뭔가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엘리자베스는 물었다.
「주인님. 모나드에서 인간의 남자 아이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만, 뭔가 알고 계십니까?」
「인간의 남자아이……. 글쎄요, 그런 게 모나드에……?」
이고르가 생각에 잠긴다. 이어, 떠올린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니,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만.」
뭔가 자문자답 같은 이고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님?」
「아니오, 신경 쓰지 말아 주십시오. 엘리자베스.」
이고르는 그렇게 고했을 뿐, 소년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년이라는 존재에 대해 뭔가 짚이는 것은 있으나, 확신이 없기에 굳이 말하지 않는다.
이고르의 그 애매한 태도를 엘리자베스는 그리 판단했다.
― 그리 된다면… 제 자신이 직접 조사할 수 밖에 없겠군요.
엘리자베스는 가벼운 술렁임을 느꼈다.
직감적으로 그리 생각한다. 그 어린 아이가, 언젠가 특별 과외 활동부에 방해가 될 것 같다고.
「그 때는, 제가.」
무찌를 뿐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존재라 하더라도.
작게 엘리자베스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말 하셨습니까?」
그렇게 묻는 이고르에게,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뇨, 아무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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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로 세뱃돈은 お年玉(おとしだま)로 구슬을 떨어트리다(落し+玉)와 발음이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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