ペルソナ3ポ-タブル ベルベットブル-
藤原健市 저 |
* 예스에서 싸게 팔길래 떨이로 구매한 P3p 소설. 할인폭이 컸어도 살까말까 고민했었는데.
이거 은근히 재밌는데다 번역이 술술 되네요...
1챕터 씩 통으로 옮기고 있어서 나오는 텀이 좀 길...기는 개뿔이지만 여튼 텀은 좀 있을 것 같습니다. 총 6챕터, 250페이지 정도입니다. 여기까지가 한 90페이지 까지고.
서쪽하늘이 황혼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온갖 것들의 그림자가 그 길이를 더해간다.
12월 중반의 황혼녘은 짧다. 태양은 바로 서쪽의 지평 너머로 사라지겠지.
그런 시간, 엘리자베스는 이.쪽, 현실 세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옆에 있는 것은 월광관 학원의 교복을 입은 소녀.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이며, <벨벳룸>의 손님이다.
그녀는 예전부터 바래온 엘리자베스의 소원을 이루어 준 것이다.
그녀의 방에 들려 보고 싶다. 엘리자베스는 그녀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그녀는 월광관 학원 이와토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 방에 초대 받아, 그녀와 함께 한때를 보냈다. 지금은 기숙사에서 돌아가는 길이다.
전구로 장식된 쇼핑몰을, 그녀와 엘리자베스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고 있다.
월광관 학원에 있는 인공섬 제일가는 번화가인 폴로니안 몰은 크리스마스가 2주 뒤로 다가와 있는 탓일까, 화려했다.
엘리자베스의 걸음 걸이가 가벼운 것은, 풍경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방을 방문한 것에 흥분해 있기 때문이다. 상기된 뺨에 12월의 차가운 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도 기분이 고양되어 있다.
벨벳룸의 주민들에게 있어, 세계의 대부분은 그 푸른 방이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그것을 추구하기 위하여, 영원과도 같은 시간 속에 몸을 둔다.
그 삶은 도저히 변화란 것이 없다. 자극이 없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운이 좋게도, 특별과외 활동부의 리더인 그녀와 알게 되어, 이렇게 가끔씩이긴 하지만, 이.쪽으로 올 수가 있게 되었다.
책이나 이고르의 말을 통해서만 들어 알고 있던 인간의 세계.
모든 것이 신선하고, 가슴 두근거린다.
자칫하면 자신의 역할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 그 방이 이 분이 있을 곳. 조금이라도 체험할 수 있어서 정말로 황송한 일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부탁해서 여러 장소를 안내 받았다.
지금 걷고 있는 이 폴로니안 몰. 여기서 엘리자베스는 처음으로 분수라는 시설을 접하고, 이고르에게 벨벳 룸에도 분수가 있으면 좋겠다고 청원했으나, 각하 당해 유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타코야키를 만난 이와토다이 역앞 상점가. 상점가의 음식점을 몇 군데 돌아다니며, “단 것이 들어가는 배는 달리 있다”라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와토다이 역에서는 <앞길을 거스르며 거꾸로 흘러가는 계단>, 에스컬레이터라고 하는 익숙하지 못한 시련에도 도전해 보았고, 그것을 클리어했다.
전종 컴플리트 할 때까지 제비를 뽑았던 나가나키 신사. 신사 경내 구석에 있는 정글짐이나, 미끄럼틀같은 장난감으로「얏호」 하고 이성을 잊고 놀았다가, 나중에 조금 부끄러운 기분을 맛본 것도, 바래지 않는 소중한 기억이다.
그리고 그녀의 학교, 월광관 학원. 고등부 건물의 매점에서 빵을 사고, 교실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하는 흉내를 내보고, 음악실에서는 주인 이고르의 노래를 특별 과외 활동부인 그녀에게 선보였다.
월광관 학원 고등부 건물은 <쉐도 타임>에 <타르타로스>로 변화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그 밝고 활기찬 장소가 괴이의 소굴로 화한다니, 아직도 엘리자베스는 믿기지 않았다.
월광관 학원 방문을 통해, 엘리자베스는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그 이상의 흥분은 있을까.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늘의 체험은 월광관 학원을 방문했을 때의 그 흥분을 간단하게 능가했다.
말로 하자면 간단하다. 그저 그녀의 방에 갔다 온 것뿐이다.
고작 그뿐인데도, 왜 이렇게나 흥분 되는 걸까.
엘리자베스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녀의 방이, 가장 그녀를 깊이 알 수 있는 장소기 때문에.
방에 들어섰을 때,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마음에 닿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뿐일지도 모른다.
굳이 더 말하자면,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방을 방문하고 얻은 실감은 틀림없이 진짜였다.
그녀는 방에서, 엘리자베스를 이렇게 불러주었다.
친구라고.
그때, 엘리자베스는 「이것이…… 친구……인 거군요.」하고 자연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누나나 동생에 대한 것과는 다른, 그녀에 대한 특별한 마음.
그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우정임을, 엘리자베스는 알았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연을 얻은, 그런 기분이 든다.
― 이것이 친구….
마음 속으로 확인하듯 중얼거리고서, 엘리자베스는 옆에서 걷고 있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말았다. 그녀와 보낸 시간이,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질 때조차 있다.
자칫 잘못하자면 <힘을 관장하는 자>로써의 사명을 잊어버릴 정도로.
이 행복에 젖어 있으면, 정말로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 그것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일.
그녀와의 외출은 이걸로 마지막으로 하자고. 엘리자베스는 결의했다.
― 역시 이 분은. 제게 있어 특별한 존재….
엘리자베스의 열기 어린 시선을 눈치채고, 그녀가 밤색 머리카락을 흔들려 이쪽을 보았다.
「미안. 별 다른 대접도 못해 줘서.」
「아니오.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최상급의 체험이었습니다. 제 과거의 체험이 전부 색이 바랠 정도로 선명한 말씀도 들었고요. 이 이상은 뭘 더 바래야할지, 저는 이제 모르겠습니다.」
「무, 무슨 호들갑은. 근데 나, 뭔가 그렇게 인상에 남을 만한 말을 했었나?」
그녀가 쑥스러워하며 뺨을 붉힌다.
― 분명. 그녀에게 있어 친구라는 말은, 그정도로 특별하진 않은 거겠지요.
특별하지 않다. 그것이 도리어 기쁘다.
자신이 그녀의,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증거니까.
「이.쪽 세계를 보고 싶다는 제 호기심을 끝까지 상대해 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사례는 후일 정식으로 해드릴 테니, 시간이 있을 때 벨벳룸에 들려 주십시오.」
엘리자베스는 그녀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때마다, 감사의 인사 말고도 금품으로 감사를 뜻했다.
그 금품은 특별 과외 활동부가 쉐도우와 싸우기 위한 자금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아냐. 항상 고마워.」
「아뇨. 감사를 드려야할 것은 이쪽입니다. 언제나, 항상, 정말로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제 세계는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이 기분은 도저히 그런 사소한 금품을 가지고는 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멈춰서, 소리 높여 선언한다.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우주! 무한과도 같은 감사를 저를 품고 있습니다! 」
몰을 오가는 사람들이 난데 없는 큰 소리에 놀라 멈춰선다.
뭐야 저거 하는 시선이, 주위로부터 무수히 쏟아진다.
그녀가 점점 더 뺨을 붉히며, 황송하다는 듯 어찌할바 몰라했다.
「무, 무슨…. 너무 호들갑이래두.」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로 실례했습니다. 아직 흥분이 다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으, 응. 괜찮으니까 가자.」
그녀의 재촉에, 엘리자베스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폴로니안 몰 한 모퉁이에 있는 뒷골목에,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푸른 문이 있다.
이.쪽 측에 나있는, 벨벳 룸의 문이다.
쉐도 타임이 아닐 때, 그녀가 벨벳룸을 방문할 때 사용하는 문이다.
그 문 앞까지, 그녀는 엘리자베스를 바래다 주었다.
「그럼 다음에 봐.」
「네. 그럼 이만.」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서로 등을 돌리던 그 직후.
엘리자베스는 이번을 끝으로 외출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지금 여기서 그녀에게 전하기 위해, 뒤돌아 보았다.
「저기……. 만약.」
「잠깐 괜찮을까……?」
동시에 그녀가 멈춰서, 뒤돌아 보았다. 그녀도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뭡니까?」
「무슨 일이야…?」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의문의 목소리가 겹쳐지고, 둘이 나란히 가볍게 놀란뒤,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한 발 앞서, 엘리자베스가 재차 입을 연다.
「당신부터 먼저 이야기해 주십시오. 벨벳룸에서 여쭐까요?」
「아냐. 여기서도 충분해. 긴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들려 주십시오.」
「그럼 일단 나부터 이야기할게. 예를 들자면, 말이야?」
그렇게 사전에 말을 꺼내놓고, 말하기 힘든 듯 그녀는 다시 입을 연다.
「만약 바로 세계에 <뉵스>가…. 아니, 피할 수 없는 멸망이 찾아온다면.」
세계가 멸망한다, 입니까. 그거 갑작스러운 이야기로군요.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뉵스.
그 단어도 신경 쓰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부러트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 엘리자베스는 캐묻지 않고 가만히 듣기로 했다.
그녀가 불분명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그래서 말이야……. 어느 사람을 희생으로 하면, 멸망해 버린다는 운명만큼은 잊어버릴 수 있어. 멸망이 찾아오는 그 날까지, 누구나가 두려움도 불안도 품지 않고, 평온하게 지금의 일생을 보낼 수 있어…. 그런 건 어떨까….」
뭔지 모를 이야기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왠지 모르게 이해가 갔다.
「누군가를 희생해 일시적으로 운명을 잊고, 멸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가 아닌가…….」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물으면서 그녀가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붉은 기 어린 눈동자에는 강한 빛이 깃들어 있다.
절망을 감수하는 인간의 눈은 결코 아니다.
후, 하고 엘리자베스는 작게 웃었다.
「당신이 하고 싶으신 대로, 행하도록 하십시오.」
엣, 하고 그녀가 중얼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지금의 말은 예상 외였던 모양이다.
엘리자베스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여 말했다.
「실로 주제넘으나마, 제게는 이미 당신이 문제의 답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게 상담하신 것은 그저 등을 떠밀어 주시기를 바라는 게 아닙니까?」
「답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내리 깔았다. 기나긴 속눈썹이, 어딘지 근심을 띠고 있어 보인다.
기나긴 침묵 끝에, 그녀는 쓸쓸한 웃음을 띠웠다.
「응………. 그렇네. 고마워. 이야기를 들어 줘서.」
「아니오. 별다른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작게 고개를 숙이는 엘리자베스에게, 그녀가 묻는다.
「그럼 다음에는 내가 이야기를 들을 차례네. 뭐야?」
엘리자베스는 쭉 등을 펴고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그럴 수가……. 새삼 갑자기 왜?」
「이쪽 세계를 방문하는 것은 이걸로 마지막으로 할 생각입니다.」
「에?」
그녀가 놀란 얼굴로 눈을 끔뻑인다.
「아직 이쪽에서 안내해 주고 싶은 곳이 많은데. 혹시나 내 가이드가 시시했어?」
「아뇨. 결코 그러한 일은…….」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저는 처음 이.쪽 세계로 왔을 무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자신이 있는 기분이 듭니다. 이 이상 당신과 함께 이.쪽 세계를 접해서는 자기 본래의 역할을 잊어 버릴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서도 손해가 되는 일. 그러니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오늘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습니다.」
「그런가.」
그녀는 옅은 쓴웃음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벨벳룸에서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지?」
「네. 저는 언제나 주인님과 함께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녀는 어딘지 안도한 얼굴로, 작게 손을 저었다.
「응. 그럼 다음에 봐.」
그리고 그녀는 뒷골목을 떠나, 번잡한 폴로니안 몰 속으로 사라졌다.
몰에 흐르는 크리스마스 송이, 뒷골목까지 울려 퍼진다.
엘리자베스는 항상 소지하고 있는 <페르소나 전서>를 꼬옥 가슴에 끌어 안았다.
문득 생각한다.
오늘의 일을, 그녀는 언제까지 기억해 줄까.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벨벳룸의 주민들은 잔잔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사라져 가는 인간과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만났을 때. 엘리자베스에게 있어 선명한 그 추억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색 바래져 있다 하더라도, 그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체 뭘까요, 이 기분은.」
불쑥 엘리자베스는 한마디 중얼거렸다.
오늘은 확실히 즐거웠다.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럴 텐데, 자기 안에 뭔가가 크게 결락되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이 쓸쓸함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서, 엘리자베스는 벨벳룸으로 돌아갔다.
그 뒤의 벨벳룸. 현실 세계는 쉐도 타임이 되었으나 그녀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 푸른 방의 정체된 시간을 표현하는 것처럼, 피아노 선율과 노랫소리가 흐를 뿐이다.
「오늘 밤, 손님은 찾아오지 않으실 모양입니다.」
의자에 앉은 이고르가, 언제나처럼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한 모양입니다, 주인님.」
엘리자베스는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엘리자베스……….」
「무엇입니까.」
「오늘 밤은 제게 트집을 잡지 않는 군요.」
「그러한 짓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요전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오지 않는 건 제 눈때문이니, 코때문이니.」
얼마전에 엘리자베스가 했던 말을, 이고르는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일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엘리자베스는 그때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것은 트집 같은 게 아닙니다. 단순한 사실입니다.」
「………그렇습니까. 그거 곤란하군요. 그럼 앞으로는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고르가 빙글하고 목만 움직여 엘리자베스를 뒤돌아보았다. 눈은 감고 있다. 번들거리는 눈을 덮은 눈꺼풀이, 안구의 형태로 부풀어 올라와 있는 것이 기분나쁘다.
「주제 넘은 말씀이지만, 그 얼굴을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게 좋을 거라 사료됩니다.」
눈을 감은 채, 이고르가 묻는다.
「호오. 어째서입니까?」
「최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로, 레알 말도 안 됩니다. 완전 기분 나쁨, 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노력해 봤습니다만, 유감이군요.」
이고르는 평소대로 눈알이 굴러 떨어질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앞으로 돌았다.
이번에는 엘리자베스가 이고르에게 묻는다.
「코를 쭉 뻗어 보는 노력은, 시험해보시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다음 기회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도록 하지요.」
「그렇습니까.」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다시 피아노와 노랫소리만이 흐른다.
잠시 뒤 엘리자베스는 입을 열었다.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뉵스라는 존재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시다면 가르침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앞을 바라보고 있던 이고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어디서 그 이름을 들으셨습니까?」
「그녀와의 대화 중에. 확실하진 않으나 피.할.수.없.는. 멸.망.이라고.」
흐음, 하고 이고르가 의미심장한 한숨을 내뱉었다. 짧은 침묵을 사이에 두더니, 입을 연다.
「뉵스. 과연. 피할 수 없는 멸망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그리 멀지않은 미래에 찾아옵니다. 뉵스의 내방을 거부할 방법은 없습니다. 고로 멸망은 피할 수 없다. 그런 뜻이겠지요.」
이상한 말을 한다고,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힘을 관장하는 자로써 말하자면, 피할 수 없는 것 따윈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뉵스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 찾아온다 하더라도, 저는 그를 제거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쿡쿡쿡 이고르가 불분명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렸다.
「뉵스는 쓰러트릴 수 있나 없나를 논하는 것도 소용없는 존재. 그것을 제거하려 들다니, 과연 힘을 관장하는 자로군요. 뭐 특별 과외 활동부의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현실을 모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행복하군요.」
그 이고르의 어조에, 엘리자베스는 조금 빠직했다.
「주제 넘는 말씀입니다만, 주인님. 한마디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쓰러트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뤄 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고르는 재밌다는 듯이, 다시 웃었다.
「확실히 뉵스는 쓰러트릴 리 없는 존재입니다만, 인간 역시 인연의 힘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 특히 그녀에게는 희소한 힘이 있습니다. 자아, 과연 어찌 될련지.」
「호들갑스럽게 말씀은 하시지만, 요는 잘 모르겠다는 소리시로군요.」
또르ㅡ륵, 이고르의 뺨을 타고 한 줄기 땀이 흘러 내렸다.
「그렇게 노골적인 표현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뉵스에 대해 별로 유익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을 것 같군요.」하고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동생과 언니의 기척을 느낄 수 없습니다만.」
테오도어와 마가렛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평소 대로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 근처에 있어서 기척이 있을 때가 많다. 그 기척조차, 지금은 없다.
「마가렛은 특별 과외 활동부의 소녀의 기억을 이용해 시련의 방을 만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비전 퀘스트>라고 이름을 붙인다던가……. 준비가 되는 대로 타르타로스의 엔트런스에 그와 이어지는 문을 준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억을 이용하는 겁니까. 어떠한 것이 되련지……. 그 언니의 일이니까 사뭇 새디스틱한 여흥을 준비하겠지요. 제 언니지만 실로 기가 막힙니다.」
새디스틱. 당신이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작게 이고르가 중얼거렸다.
「주인님. 무슨 말씀 하셨습니까?」
「아니오. 딱히는. 그건 그렇고, 테오도어 입니다만. 그는 타르타로스나 <모나드>에서 훈련을 하고 오겠다고 말하며 나갔습니다.」
「또 입니까. 최근 모나드에 틀어 박혀서…. 잘도 질리지도 않고. 제 어리석은 동생이지만 그 정도로 <쉐도우>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할 줄이야. 잔학 취미는 적당히 하는 쪽이 더 좋다고 봅니다.」
잔학 취미. 당신이 남 말할 처지인가.
슬그머니 이고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는 그 정도로 쉐도우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이, 이거야. 엘리자베스. 들렸더라면 굳이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주인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만.」
이고르의 그 목소리는 희미한 동요를 띠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그러합니까. 실례했습니다. 이후 조심하도록 하지요.」
건성 어린 대답이었다. 의식은 이미 다른 화제로 날아가 있었다.
마가렛이 준비하는 비전 퀘스트.
언니가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인 그녀의 희소한 힘에 흥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마가렛의 행동은 단순한 흥미 본위일까요.
작게 고개를 기울인다. 아닌 것 같다. 설마…하고 생각한다.
― 언니는 그녀의 힘이 되려 하고 있는 걸까.
힘을 관장하는 자인 마가렛이 준비하는 시련이다. 당연히 행해지는 것은 전투다.
전투를 준비해 싸우게 하는 것을 통해, 특별 과외 활동부의 힘을 한층 더 키우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는 그리 생각했다.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반면, 자신도 그녀를 위해 뭔가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새로운 고민이 발생했다.
― 제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
순간. 그녀와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싹하고 등줄기에 전류가 인다. 후우하고 조금 열기 섞인 숨이 새어 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엘리자베스. 조금 얼굴이 빨간 모양입니다만.」
이고르가 뒤돌아, 이쪽을 보고 있다.
「그렇습니까.」
엘리자베스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쳤을 뿐, 이고르에게 들은 말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와의 싸움.
그것이 어떠한 것이 될련지, 그를 상상하는데 자연히 의식을 집중하고 있었다.
― 과거 체험해 본 적 없는, 극상의 충실함을 얻을 수 있을 터.
고동이 빨라지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엘리자베스는 도취감에 젖었다.
모나드 9층에 테오도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벨벳벨벳, 벨벳~, 나의 주인님, 기나긴 코~.」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런 테오도어의 팔에는 커다란 보퉁이가 안겨져 있다.
내용물은 <갑충의 뿔>, <흑뱀의 비늘>, <우상의 파편> 등등. 타르타로스에서 사냥한 쉐도우들이 남긴 갖가지 아이템이다. 이것들은 테오도어의 펫, 포치의 먹이다.
테오도어는 모나드에 숨어 있는 포치에게 먹이를 주러 온 것이다.
보호한 이래로 내내, 테오도어는 과격하리만큼 포치를 보살피고 있었다.
타르타로스나 모나드는 들어갈 때마다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포치가 숨어 있는 장소도 항상 변화하지만 테오도어는 대략 그 위치를 감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근처에 있을 것 같다고 느낀 통로 모퉁이에서, 테오도어는 어둠을 향해 외쳤다.
「포치! 왔습니다!」
꾸물하고 전방의 어둠에서 뭔가가 꿈틀대더니, 철그럭하는 둔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즈즉하는 소리를 내며, 사슬을 끌고 그.것이 어둠 속에서 기어 나왔다.
새하얀 뼈와 같은 가면에, 검은 콜타르를 닮은 점액의 몸.
포치다. 하지만 테오도어가 주웠던 때와는 크기가 달랐다.
주먹만한 사이즈였던 몸이 지금은 대형견 정도다. 목걸이 수준이었던 사슬은 흉기만한 크기로 변해있다. 엄지손가락 만했던 가면의 사이즈도, 인간의 얼굴만한 크기였다.
포치가 테오도어의 발치에 얽혀, 쭈욱하고 고개를 뻗었다.
테오도어는 포치의 가면을 어루만졌다.
「옳지 옳지. 배가 고프시지요? 지금 먹이를 드리겠습니다.」
테오도어는 끌어안은 채로 그 보퉁이를 풀려고 했다.
순간 쭈욱 포치가 커다랗게 몸을 뻗어, 보퉁이를 빼앗았다. 그대로 몸 속으로 잡아 넣고, 꾸물꾸물 전신을 꿈틀댔다.
와작. 으적. 꿀렁.
사냥감을 씹는 짐승 같은 소리가 포치의 몸에서 들려온다.
먹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몇 번이고, 쉐도우의 파편을 집어 삼켜가며, 포치는 크게 성장해 왔다.
포치의 식사하는 모습을, 테오도어는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아서, 무심코 계속 먹이를 갖고 오고 만다.
「맛있습니까?」
테오도어는 상냥하게 웃으며 포치의 가면을 향해 손을 뻗어, 다시 어루만졌다.
옛날처럼 가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으나, 아무래도 기뻐하는 모양인 듯 테오도어의 손에 가면을 갖다대온다.
「오오. 옳지옳지. 귀엽군요. 당신은.」
꿀렁하고 유달리 큰 소리를 낸 뒤, 포치의 몸은 움직임을 멈췄다. 식사가 끝난 모양이다.
대형개가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듯한 동작으로, 포치가 점액성의 몸을 테오도어한테로 뻗어, 가면을 테오도어의 어깨에 얹었다.
겉보기 이상으로 포치는 무겁다. 테오도어는 쓴웃음을 지으며 버티고 섰다.
「이 몸. 너. 통째로 먹는다.」
포치의 가면에서 더듬더듬 목소리가 들렸다.
성장과 함께, 포치는 다소긴 하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는 먹이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 몸이라니 관둡시다. 자신은 “나”라고 말하세요. 게다가 “너”라는 표현도 지저분한 표현입니다. 당신이라고 합시다.」
「나. 당신. 통째로 먹는다.」
「그래도 통째로 먹는 겁니까. 아무래도 먹이가 부족했던 모양이로군요…….」
테오도어는 짓눌러오는 포치를 밀쳐내고 몸을 뗐다.
두 주먹을 허리에 얹고, 엄격한 어조로 포치에게 고한다.
「기다려!! 앉아!!」
포치가 그 자리에서 뚝하고 멈췄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뻗은 고개 뿐이다.
「좋아. 손!」
테오도어는 포치의 앞에 쭈구리고서 한손을 내밀었다. 포치의 몸에서 촉수같은 것이 뻗어져 나오더니, 테오도어의 손바닥에 닿는다. 그야말로 개 같은 움직임이다.
「착한 아이로군요. 그럼 또 기다리고 있어 주십시오. 타르타로스에 가서, 조금만 더 먹이를 갖고 오겠습니다.」
테오도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일어나, 포치로부터 등을 돌렸다.
스스슥 포치가 꿈틀대는 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본다.
등뒤에서 들러 붙으려 했던 걸까, 포치가 바닥에서 몸을 뻗고 있었다.
「기다리라고 했잖습니까.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겁니까?」
테오도어는 포치를 질타했다. 힘을 관장하는 자로써의 위압감이, 조금 팽창한다.
겁에 질린 듯 포치가 뒤로 물러섰다. 풀죽어 바닥에 웅크린다.
「옳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며, 테오도어는 생각한다.
― 포치도 꽤나 커졌습니다. 언제까지 누님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을지…….
아직 들키지 않은 이때 뭔가 변명을 생각해 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가슴 속으로 중얼거린 테오도어는 아직 모른다.
자신이 키우고 있는 것의, 무시무시한 정체를.
불꽃에 휘말린 3구의 쉐도우가 단말마를 지르며,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린다.
등에 커다란 손이 나 있는, 어릿광대 같은 복장이 특징적인 <그랜드 마구스>라고 하는 쉐도우다.
모나드에 출현하는 쉐도우 중에서는 비교적 약하지만, 통상의 <페르소나 사용자>라면 모나드의 문이 보일만한 힘을 지니고 있대도 고전을 금치 못할 상대다.
그 그랜드 마구스 3마리를, 엘리자베스는 일격으로 문자 그대로 재로 만들었다.
화면 마법으로 주위의 기온이 올라가 있지만, 엘리자베스는 이마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탁하고 페르소나 전서를 닫는다.
「오늘은 이 쯤으로 하고…… 돌아가기로 할까요.」
엘리자베스는 혼자서 힘을 연마하기 위해 모나드에 와있다.
지금 있는 것은 9층. 최상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보이는 장소다.
이 층에서 엘리자베스는 이미 가볍개 십 단위 이상의 전투를 행했다.
머물러 있는 시간은 나름 길다.
슬슬 <거둬 들이는 자>가 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즈음이다.
「이왕이라면 거둬 들이는 자를 하나 사냥하고 나서 돌아가기로 할까요.」
맘을 다잡고, 엘리자베스는 상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등졌다.
경계심 없는 발걸음으로 통로를 걷는다.
가장 가까운 갈림길에 도착해, 어느쪽으로 갈까하고 주위를 살피던 그때였다.
오른쪽 통로 안쪽에서, 차륵하는 사슬 소리가 들렸다.
사슬 소리. 거둬 들이는 자의 특징이다.
엘리자베스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제 공격을 받아도 별 다른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걷는다.
몇 미터 앞의 어둠에서 뭔가가 습격해 왔다.
천박하고도 어리석은 돌격이다. 무방비하게 당하고 있을 엘리자베스가 아니다.
「분수를 아십시오.」
습격자의 하얀 가면을 향해, 엘리자베스는 페르소나 전서를 휘둘렀다.
척봐도 대강 휘두른 것 같은 공격이지만, 힘을 관장하는 자의 일격이다.
습격자가 빌딩을 해체하는 공성추로 얻어 맞은 것처럼 벽을 향해 날려간다.
쿠웅하는 격돌음이 크게 울려 퍼지고, 그 진동으로 천장에서 자잔한 파편이 흘러 내린다.
벽에 부딪친 습격자는 크게 함목될 벽에 반쯤 파묻힌 상태다.
「어머…?」
습격자의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이거라도 일단, 거둬 들이는 자일까요?」
거둬 들이는 자라고 하면, 그 특징은 하얀 가면과 인간과 비슷한 몸, 거기에 얽힌 사슬. 그리고 두 손에 쥔 총신이 긴 권총.
그들 조건은 다 갖춰져 있다. 다만 그게 어딘지 자그마하다.
거둬 들이는 자의 키는 엘리자베스보다 머리 하나 이상은 여유로 컸으나, 눈 앞의 그.것은 엘리자베스보다 작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체구다.
몸에 만 사슬도 가늘고, 총은 총신이 어중간하게 짧아 어딘지 모르게 장난감처럼 보인다.
얻어 맞은 데미지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겁에 질려 있는 걸까.
그.것은 보고 있기 애처로울 정도로 전신을 덜덜 떨고 있었다.
「거둬 들이는 자 중에서도 뭔가 모자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그렇다고 해도…. 이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약한 자를 괴롭히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엘리자베스는 곤혹스러워했다.
적의를 드러내놓고 덥쳐오는 쉐도우와 달리, 아무래도 공격하기가 힘들다.
허나 지금은 겁에 질려 있지만, 먼저 습격해온 것은 이 쉐도우다.
싸움을 걸어왔으니 죽임 당한대도 불평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한 각오가 없는 자는, 애당초 싸움에 임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이 엘리자베스의 신조다.
따라서 전투 때는 반드시 상대를 죽일 각오로 임하고, 결코 봐주지 않는다.
상대를 봐준다는 것은, 적과 동시에 자신마저도 폄하하는 최악의 모독 행위인 것이다.
문득 엘리자베스는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았다.
「그 다정하신 분이라면 여기선 분명 눈감아 드리겠지요.」
응응 하고 엘리자베스는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덜 되 먹은 “거둬 들이는 자”로 추정되는 쉐도우를 손가락질 했다.
「오늘만큼은 놓아 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만났을 때에는 용서하지 않을 테니, 훌륭한 거둬 들이는 자가 되도록 하세요. 아시겠습니까?」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은 덜덜 떨면서 스윽 모습을 감췄다. 어둠 속에 녹아 들어, 이 자리에서 도망친 것이다.
선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들어, 엘리자베스는 훗하고 미소했다.
직후. 갑작스럽게 강렬한 냉기의 직격을 받았다.
빙결계 최고위 마법, <마하부흐다인>. 냉기가 약점인 쉐도우라면 즉사마저 가능한 위력이다.
단순에 엘리자베스의 전신이 얼어붙는다. 이어 얼음은 두텁게 성장해, 얼음 기둥이 된다.
그 얼음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눈을 크게 떴다.
그저 그 단순한 동작에 얼음은 깨지고, 튀었다.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곁눈질로 쏘아보자, 거기에는 예상 밖의 모습이 있었다.
「테오. 거기서 뭘하고 있는 겁니까.」
한 손에 펼쳐진 페르소나 전서를 든 테오도어가 거기에 있었다.
페르소나를 소환해 엘리자베스에게 빙결 마법을 날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테오도어 밖에 없다.
「아뇨! 그! 그게 말이죠!! 그렇지! 누님이 쉐도우한테 습격당할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초조한 탓에 겨냥이 빗나가 버려서! 결코 누님을 노린 게 아닙니다! 페르소나 소환이 조금 미끄러져서!!」
엘리자베스는 테오도어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테오도어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러니까, 그! 어쨌든 고의는!!」
이 동생은 뭘 그렇게 초조해 하는 걸까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엘리자베스는 기분이 좋았다. 고작 마하부흐다인을 맞은 것 정도로 보복할 기분이 아니다.
하지만 테오도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테오도어가 이마가 무릎에 붙을 듯한 기세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누님, 이렇게 빕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여기는 저를 봐서, 부디!」
고개를 숙인 테오도어의 등은, 좀 전의 쉐도우와 마찬가지로 떨리고 있었다.
테오도어는 뭔가 겁에 질려 있는 듯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테오도어의 옆을 터벅터벅 스쳐 지나간다. 모처럼 기분이 좋은데, 이 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위층의 전송 장치를 향한다.
엘리자베스가 떠나간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테오도어는 그대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몇 분 뒤. 스스슥, 근처에서 뭔가가 기어오는 소리를 듣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던 테오도오가 등을 폈다.
겨우 엘리자베스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 하아~하고 기나긴 한숨을 쉰다.
한 때는 어찌 되나 싶어 진심으로 초조해했으나, 아무래도 별 일 없이 해결 된 모양이다.
테오도어의 얼굴을, 쭈욱하고 검은 점액의 몸을 뻗은 새하얀 가면의 쉐도우가 들어다 본다.
<마야>를 닮은 수수께끼의 쉐도우. 테오도어의 펫, 포치다.
「오오! 무사했습니까, 당신!! 누님에게 사냥당할 뻔 했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푸른 옷의 여자한테는 접근하지 말라고 그렇게나 말했을 텐데요!!」
혼나는 것을 안 건지, 포치가 맥없이 목을 움츠린다.
테오도어는 몸을 웅크려, 포치의 새하얀 가면을 어루만졌다.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어라?하고 테오도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님이 날려 보낸 것은, 혹시 포치. 당신이 아니었던 겁니까?」
새하얀 가면과 사슬. 그것을 본 순간, 테오도어는 엘리자베스의 상대가 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것은 총을 들고 있었다.
포치는 총 같은 거 없고, 애당초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모자란 거둬 들이는 자”라고 불렀다.
그것은 포치가 아니었다.
그렇게 확신한 순간, 테오도어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는 포치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라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엘리자베스에게 하필이면 공격 마법을 직격시킨 것이다.
테도오어는 지금의 자신이 무사한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모나드로 온 누님을 은밀히 미행한 것만으로도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포치가 엘리자베스에게 들키지 않을까 싶어 걱정되어서, 테오도어는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만약 미행 도중 들통나기라도 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었겠지.
비밀로 하고 있는 포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미행한 이유를 적당히 날조해 엘리자베스를 납득시키다니, 테오도어에게는 도저히 무리다.
새삼스래 새파래진 테오도어를 걱정한 걸까, 포치가 가면을 테오도어에게 갖다댔다. 작게 고개를 갸웃하는 그 동작이, 실로 귀엽다.
딱콩하고 테오도어는 가면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알고 계십니까? 절반 정도는 당신 때문입니다. 어쨌든, 앞으로도 푸른 옷의 여자들에게는 절대로 들키지 않도록. 아시겠습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 더듬더듬한 포치의 말이, 괜히 더 테오도어의 보호욕을 부추겼다.
「타르타로스에 가서 먹이를 사냥해 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테오도어는 포치의 가면을 다시 어루만지며 허리를 들었다.
포치의 가면은 매끈할 뿐 눈도 코도 입도 없지만,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면이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 바로 돌아올 테니까.」
아쉬움을 느끼며, 테오도어는 포치의 곁을 떠났다.
몇 발짝도 가지 않은 곳에서 멈춰서, 뒤돌아 본다.
빠안히, 포치는 테오도어를 보고 있었다. 포치에게 눈은 없으니, 테오도어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지만.
가지마. 그렇게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테오도어는 포치의 앞으로 뛰어 돌아갔다.
「어쩔 수 없는 아이로군요. 그럼 조금만 더 함께 있다가, 쉐도우를 사냥하러 가기로 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보면 「어머, 테오. 어쩜 그리 칠칠 맞은 표정을.」하고 기가 막혀 할 표정으로, 테오도어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포치의 가면을 어루만졌다.
엘리자베스가 벨벳룸으로 돌아오고 나서 잠시 뒤, 테오도어가 돌아왔다.
이번 쉐도 타임에도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는 벨벳룸을 방문하지 않을 듯 하다.
손님을 맞이하는 원탁 의자에 앉은 이고르는, 가구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힘을 관장하는 자는 주인의 등 뒤에 원을 이뤄 서있다.
「비전 퀘스트라는 것의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엘리자베스는 마가렛에게 물었다.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그.쪽. 시간으로 새해를 맞이할 쯔음에는 준비를 끝내고 싶은데.」
「그녀의 기억을 이용한 시련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그녀들은 지금까지 달이 차오를 때마다 특별한 쉐도우와 싸워왔어. 그 쉐도우의 기록을 토대로 지금의 그녀들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는 적을 준비, 싸우게 할 생각이야. 그 시련을 그녀들이 극복하면, 다음엔 내가 준비한 적과 싸우도록 할 생각이고. 그것조차 쓰러트리면…….」
마가렛은 거기서 말꼬리를 흐렸다. 엘리자베스가 알고 싶은 것은 시련의 내용이 아니라 동기다. 뒷 내용은 건드리지 않고, 질문한다.
「어째서 그러한 시련을 내릴 생각을 하셨습니까?」
「순수한 흥미야. 다른 뜻은, 없어.」
순간, 마가렛은 시선을 돌렸다.
다른 뜻은 없다. 그 말은 아무래도 허언인 모양이다. 즉, 흥미 이외의 이유가 달리 있다.
그걸 안 것만으로도 엘리자베스는 만족했다. 촌스럽게 자세한 이유까지 캐묻고 싶진 않다.
「설명 고맙습니다.」
감사를 한 다음 화제를 끝낸 뒤, 엘리자베스는 테오도어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님들의 대화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동생은, 기묘하게 주책맞은 표정을 하고 있다.
들떠 있다. 테오도어는 그런 표정이다.
「테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엘리자베스이 물음에 어딘지 딴 세상을 헤매고 있는 표정으로 테오가 대답한다.
「생명을 키우는 훌륭함, 그 기쁨에 눈을 뜬지라…….」
테오도어가 순간 표정을 바꾸었다. 냉수라도 끼얹은 것처럼 얼굴이 새파래진다.
「벼, 별로 아무 것도!」
테오도어의 당황한 모습에, 엘리자베스는 점점 더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테오. 제게도 그 생명을 키우는 훌륭함이란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아, 아뇨. 그러니까. 누, 누님! 그런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테오도어의 노골적인 허둥거림은 뭔가 감추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
「이거 사랑의 채찍이 필요하겠군요.」
엘리자베스는 페르소나 전서를 펼치려 했다.
데굴하고 이고르가 눈알만을 굴려 엘리자베스를 본다.
「엘리자베스. 벨벳룸에서 페르소나를 부르는 것은 그만두십시오. 남매 싸움을 할 거라면 다른 곳에서 하세요.」
「하지만, 주인님.」
반론하려 하는 엘리자베스를 마가렛이 제지한다.
「엘리자베스. 주인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그럼 안 돼지.」
마가렛과 엘리자베스의 시선이 교차된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를 수십초.
드높아지는 긴장감에 테오도어가 움찔 몸을 굳히고, 이고르가 식은 땀을 흘렸다.
「실례했습니다…. 주인님. 아무쪼록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탁하고 엘리자베스는 펼치려 하던 페르소나 전서를 닫았다.
테오도어가 후우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테오도어의 방심을 유도한 것 마냥, 즉시 마가렛이 질타한다.
「테오, 뭘 안심한 얼굴이야. 비밀이라니, 그건 나 역시 좋지않다고 생각해.」
「엣?」
테오도어의 표정이 얼어 붙는다.
「저희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것, 숨김없이 이야기 하세요.」
스윽 마가렛이 소리도 없이 테오도어에게로 다가갔다.
그 거리만큼 테오도어가 뒤로 물러선다.
「그, 그럴수가. 설마. 제가 누님들에게 비, 비밀이라뇨.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그럼 왜 그렇게나 당황하는 거야? 이유를 말해봐.」
「비밀이 없다면 당황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봅니다만.」
「그, 그건…….」
마가렛과 엘리자베스의 추궁에 테오도어의 시선이 허공을 방황한다.
곧 이어 그 시선이 보호를 갈구하는 길잃은 강아지처럼 이고르를 향했다.
이고르가 테오도어한테서 시선을 돌린다.
테오도어의 눈동자에 절망의 색이 떠올랐다.
시선을 따른 데로 돌린 이고르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정도로 해주시겠습니까, 두 사람 다. 누구에게나 비밀 한 둘 쯤은 흉중에 감춰두고 있는 법. 아닙니까?」
이고르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자인지, 제 3자가 들으면 알 수 없을 것 같은 어조로 테오도어를 비호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만 이것은 저희 남매의 문제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주인님. 이것은 저희들 남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가렛과 엘리자베스가 한데 입을 모았다.
이고르가 부들하고 크게 떨더니, 의자에 앉은 자세 그대로 몇 센치 뛰어 올랐다.
「아무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는 모양입니다.」
「그, 그럴수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른 테오도어를 엘리자베스와 마가렛이 날카롭게 몰아세운다.
체념한 듯, 테오도어가 힘 없이 고개 숙였다.
그리고 2시간 짜리 서스펜스 드라마에서 나오는 절벽가에 내몰린 범죄자 같은 모습으로 자백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끝마친 테오도어가 바닥 위로 무너져 내렸다. 두 손을 바닥에 짚고 고개를 숙인다.
이 세계의 종말이 찾아온 것처럼 낙담한 모양새였다.
엘리자베스는 동생에 왜 이렇게까지 격하게 풀이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운 쉐도우에게 먹이를 주고 키우고 있다.
고작 그런 이야기다.
엘리자베스와 마가렛은 순간 시선을 나눈 다음, 제각기 감상을 논했다.
「그건 그렇고. 쉐도우를 펫으로 삼다니 또 이상한 짓을 시작했군요.」
「확실히 이상하긴 하지만, 숨길 만한 일은 아니네.」
테오도어가 느릿히 고개를 들었다.
「그, 그렇습니까? 그럼, 이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기로…….」
엘리자베스는 테오도어의 앞에 몸을 굽혔다.
「그 펫. 테오가 저희들에게 비밀로 하고 독점할 정도라니, 어딘가의 펫 쇼에 참가 시킨다면 온갖 상을 휩쓸 수 있을 정도로 사랑스럽겠지요. 부디 보고 싶습니다.」
마가렛이 선 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보고 싶네. 그 살벌한 모나드에 테오가 푹 빠질만한 가련한 펫이 있다니, 생각도 못해봤어.」
누나 둘의 과격한 기대감을 느낀 걸까, 테오도어는 초조한 얼굴로 일어섰다.
「아, 아뇨. 그렇게 귀여운 모습은……. 결코 누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닙니다.」
엘리자베스는 몸을 일으켰다. 옷이 닿을 정도로 바짝 테오에게 몸을 붙이고서, 키가 큰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만족할지 말지는 저희가 결정할 일입니다. 됐으니까 보여 주세요.」
「그러게. 모든 건 본 다음 이야기 하기로 하자.」
마가렛도 테오도어를 응시하고 있다.
도저히 보여줄 수 없다고 주장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테오도어가 고개를 숙였다. 재차 체념한 모양이다.
「주인님…. 잠시 누님들과 함께 나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부디,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실로 안도한 목소리로, 이고르가 허가를 내렸다.
「자아, 갈까요.」
기쁜 모양새로 엘리자베스가 문으로 향한다. 마가렛의 걸음걸이도 어딘지 가볍다.
마지막으로 테오도어가, 발을 질질 끄는 듯한 걸음 걸이로 벨벳룸을 나섰다.
남겨진 이고르가, 작게 중얼거린다.
「이거 참……. 언젠가 성가신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만.」
테오도어의 안내를 받아, 엘리자베스 일행은 모나드 9층을 찾았다.
테오도어 뿐만이 아니라 엘리자베스도 마가렛도, 페르소나 전서를 들지 않은 쪽 손에 커다란 보퉁이를 들고 있다.
내용물은 타르타로스에서 사냥해온 쉐도우의 아이템이다.
테오도어에게 펫의 어디가 귀여운지 물어봤더니, 먹이를 먹는 모습이 특히나 귀엽다는 대답을 들은 것이다. 그렇기에 먹이를 갖고 가자는 말을 꺼냈고, 다같이 조달해 왔다.
「이 부근에 있을 것 같습니다.」
테오도어가 멈춰서더니, 전방의 어둠을 향해 말을 건다.
「먹이입니다!!」
스슥하고 통로 앞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기척이 있었다.
뭔가가 있는 것은 틀림 없는 모양이지만,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미는 없다.
「어째서 그러는 겁니까? 괜찮……. 아.」
테오도어는 뭔가를 떠올린 듯,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푸른 옷의 여자들에게는 접근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푸른 옷의 여자. 자신들을 뜻하는 것임을 바로 알았다.
「어째서 그러한 것을 가르친 걸까요.」
「알고 싶네. 모쪼록.」
「누님들의 그, 지나치다라는 말 밖에 안 나오는 공격 마법 연발 쉐도우 토벌에 말려 들기라도 한다면, 제 펫은 일초도 못 버틸테니까요.」
테오도어가 진지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그 말에 엘리자베스는 조금 울컥했다.
「그 말은 마치 제가 항상 생각 없이 공격 마법을 연발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아닙니까?」
「실례네. 나는 그런 짓 안 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조금 말이 지나친 동생에게 마땅한 벌을 내릴 요량으로, 보퉁이를 발치에 내려놓고서 페르소나 전서를 펼쳤다. 테오도어의 얼굴이 가볍게 경련하더니, 초조한 기색을 띈다.
「페르소나 같은 걸 쓰면 괜히 더 겁에 질려서 안 나오게 될 겁니다!」
「과연. 그건 일리가 있는 말씀이군요.」
엘리자베스는 페르소나 전서를 닫았다. 마가렛이 테오도어에게 묻는다.
「네 펫이잖아? 네가 이름을 부르면 다가오는 거 아냐?」
「해보겠습니다.」
테오도어가 과하게 진지한 얼굴로, 전방의 어둠을 향해 몸을 돌린다.
「포치. 나와도 괜찮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심한 짓을 하지 않습니다!」
스스슥하고 어둠 속에서 펫, 포치가 다시 꿈틀거렸다.
주저하고 있는 기척은 있지만,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소리가 다가왔다.
「어머. 마치 심한 짓을 할테니까 접근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것 같지 않습니까.」
「나한테도 그렇게 들렸어.」
엘리자베스와 마가렛이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움찔 테오도어의 등이 떨린다. 아에 막나가기로 한 걸까. 누님들을 무시하듯, 보퉁이를 든 채 몇 발짝 어둠을 향해 다가간다.
테오도어가 몸을 웅크려, 보퉁이를 열었다. 어른의 팔뚝만한 크기의 갑충의 뿔을 꺼내, 바톤처럼 끝을 들고 위아래로 흔든다.
「자아, 먹이입니다. 막 잡아 와서 맛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슥하고 포치가 움직이는 소리가 좀 전 보다 가까워졌다.
어둠 속에서 나오는가 싶더니, 포치는 점액질의 몸의 일부를 촉수로 뻗어, 테오도어의 손에서 먹이만을 앗아채갔다.
우득우득 딱딱한 갑충의 뿔을 씹어 으깨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린다.
엘리자베스는 페르소나 전서를 옆구리에 끼고, 탁하고 손바닥을 쳤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 자리에 몸을 굽혀, 놓아뒀던 보퉁이를 펼쳤다. 잡다하게 채워진 갖가지 쉐도우 아이템 중에서, 기나긴 은발의 머리채를 끄집어 낸다.
<소리치는 티아라>라고 하는, 하늘을 나는 가발 같은 쉐도우한테서 얻어낸 <티아라의 은발>이라는 아이템이다.
엘리자베스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티아라의 은발에 손을 가한다. 이어, 길고 가는 밧줄 같은 게 완성 된다.
밧줄 끝에, 테오도어가 준 것과 같은 갑충의 뿔을 묶는다.
「잠깐만. 누님. 대체 무엇을 할 생각이십니까.」
「얌전히 보고 있으세요.」
엘리자베스는 밧줄 끄트머리를 움켜쥐고서, 갑충의 뿔을 어둠을 향해 던졌다.
순간 스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팽하고 밧줄이 당겨졌다.
포치가 먹이를 문 것이다.
「에잇.」
그 즉시 엘리자베스는 밧줄을 잡아 당겼다. 묵직한 감촉이 느껴진다.
밧줄 끝에서 포치가 버티고 있다. 그게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엘리자베스는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며, 옅게 웃었다.
「건방지군요. 힘을 관장하는 자에게 힘으로 대항하려 들다니… 헛수고입니다.」
읏챠하고 평탄한 어조로 기업을 넣고, 엘리자베스는 힘껏 밧줄을 잡아 당겼다.
바닥에서 떼어져 나온 포치가, 휙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철퍽하고 엘리자베스의 앞에 새카맣고 커다란 덩어리가 떨어진다.
흠칫흠칫 새하얀 가면이 엘리자베스를 올려다보았다.
직후. 포치는 먹다 만 갑충의 뿔을 몸에서 토해낸 다음, 스스스스스슥하고 커다랗게 기는 소리를 내며 테오도어의 등뒤로 달아났다.
포치는 부들부들 전신을 격하게 떨고 있다. 명백하게 겁에 질린 모양새다.
「누님!」
테오도어가 거칠게 외쳤다.
「난폭한 짓을 하시니까 포치가 겁을 먹지 않았습니까!」
「어머, 테오. 제 탓이라는 겁니까?」
「당연합니다! 아아, 정말이지. 정말로 가엽게도. 이렇게 겁에 질리다니….」
테오도어가 포치의 가면을 어루만지며, 펼쳐진 보퉁이에서 적당하게 쉐도우 아이템을 주워, 휙휙 포치의 몸에 집어 넣는다.
포치가 덜덜 떨면서도 아이템을 집어 삼키고, 으적으적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든다.
마가렛이 자신의 보퉁이에서도 아이템을 꺼내, 휙하고 포치를 향해 던졌다.
가면은 테오도어를 향한 채, 포치는 몸의 일부를 촉수로 바꾸어 아이템을 허공에서 낚아채 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재차, 삼차, 마가렛은 아이템을 던졌다.
한 번도 떨어트리지 않고 포치가 촉수를 뻗어 허공에서 캐치, 그리고 먹는다.
「이거 재밌네.」
자극이 적은 생활을 보내고 있는 마가렛에게, 포치의 식사는 아무래도 신선한 경험인 모양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하지만 즐거운 듯 휙휙 아이템을 포치에게 던져준다.
누나와 동생이 포치에게 먹이를 주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가만히 포치를 응시하고 있었다.
새하얀 가면. 점액질 몸에 얽혀있는 사슬.
<마야> 형의 쉐도우라고는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뭔기 묘한 위화감이 있다.
「누님?」
테오도어가 침묵하는 엘리자베스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래?」
마가렛도 역시 엘리자베스의 침묵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 기분 탓일까요. 이 위화감은.
엘리자베스는 마가렛과 테오도어가 즐기고 있는 것에 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그저 작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펫의 이름. 네이밍 센스가 최악이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그런가. 나는 귀엽다고 생각해.」
마가렛이 엘리자베스한테서 시선을 때고 먹이 주기로 돌아간다.
「그렇죠? 저도 좋은 이름을 붙였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테오도어가 의기양양히 말했다. 그런 동생의 옆얼굴에도 엘리자베스는 위화감을 느꼈다.
「테오?」
테오도어는 대답하지 않고, 바지런히 포치에게 먹이를 준다.
「아아.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요. 포치, 너는 제가 반드시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네. 약한 것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되지.」
마가렛한테도 기묘한 기척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눈빛이 어딘지 수상하다.
포치에게 매료된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빠질 만한 귀여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돌아갈 텐데, 당신들은 어쩌 시겠습니까?」
마가렛이 먹이를 다 준 다음, 텅 빈 보자기를 접으며 일어섰다.
「타르타로스에 가서 먹이를 사냥해 올래. 좀 더 먹이를 주고 싶은 기분이야.」
「저도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자아, 가시죠. 이 아이는 금방 금방 배고파 합니다.」
테오도어도 몸을 일으켰다. 한손을 포치의 가면을 향해 뻗어, 그를 어루만진다.
「다녀 올테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 누님, 저희는 급해서 미안. 결코 포치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이 아이는 이렇게 보여도 섬세하니까요.」
「그래. 서두르자.」
마가렛과 테오도어는 엘리자베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떠나가 버렸다.
남겨진 엘리자베스는 천천히 포치와 마주섰다.
스슥, 하고 포치가 뒤로 물러선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갖고 온 먹이를 주기 위해, 적당히 아이템 하나를 손에 뒤었다.
「옳치옳치옳치. 먹이입니다.」
쭈그려 앉아 먹이를 흔든다. 달려 들어 물 줄 알았으나, 포치는 빙글 방향을 바꾸어 겉보기로는 상상조차 가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어둠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엘리자베스는 손에 들고 있던 먹이를 힐끔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이건 싫어하는 걸까요. 어라. <더럽혀진 톱니바퀴>입니까. 이건 확실히 딱딱해서 못 먹을지도 모르겠군요.」
더럽혀진 톱니바퀴는 <와일드 드라이브>라고 하는 기계 장치 쉐도우로부터 습득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엘리자베스가 봐도, 도저히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런 거라해도 빵가루를 묻혀 튀김으로 만들면, 맛있게 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먹이를 바꿔 보죠.」
다른 것을 주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어둠을 향해 말을 건다.
「포치. 나오세요.」
반응은 없다. 전방의 어둠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을뿐.
「미움 받아 버린 걸까요. 저.」
별 수 없군요, 하고 엘리자베스는 몸을 일으켰다. 혼자서 먼저 벨벳룸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그 자리에 남은 먹이가 든 보퉁이를 내려놓고 등을 돌렸다.
「!」
엘리자베스는 순간, 등 뒤에서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명백한 악의, 적의였다.
경계하며, 언제든 페르소나 전서를 펼칠 수 있도록 자세를 잡는다.
하지만 아무 것도 습격해 오지 않는다.
「……착각, 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엘리자베스는 석연치 않은 뭔가를 느끼며, 경계 태세를 풀었다.
「대체 뭐였던 걸까요. 이건 한 번, 모나드 전역을 철저하게 조사해 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체 모를 뭔가가 어둠 속에 숨어 이쪽을 보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타르타로스의 엔트런스로 돌아온 엘리자베스는, 벨벳룸의 문을 향해 손을 뻗던 그때 뚝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죠………. 이걸로……….」
문 너머에서 듣기 좋은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별 과외 활동부의 리더의 목소리다.
엘리자베스치고는 드물게 다급한 모양새로 문을 열어, 벨벳룸으로 들어갔다.
원탁 앞에 앉아 있던 소녀가 뒤돌아 본다. 눈에 익은 교복 차림이다. 그녀는 이고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돌아 왔다!」
기쁜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엘리자베스는 정중한 인사로 답했다.
「마중도 제대로 못해, 실로 실례했습니다. 모쪼록 용서해 주십시오.」
「따, 딱히 신경 안 써.」
그런 그녀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들어, 이고르의 대각선 뒤, 정해진 자리로 돌아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오늘은 어떠한 용건이십니까?」
그녀가 웃는 얼굴로 작게 고개를 기울인다.
「딱히 볼일은 없어.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왠지 모르게 얼굴을 보러 온 건데. 민폐였어?」
「아니오.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별반 재미도 없는 이런 얼굴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마음 내키실 때까지 보고 가주십시오.」
그녀의 웃는 얼굴에 희미한 괴로움이 뒤섞였다. 질린 듯한 느낌이다.
엘리자베스는 퍼득 정신을 차렸다.
「과연. 보러 온 것은 제 재미도 없는 얼굴이 아니라,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주인님의 얼굴이셨습니까. 자의식 과잉하게도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잇달아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거이거, 엘리자베스. 사람을 구경거리처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주인님. 벨벳룸에는 달리 그녀의 눈을 즐겁게 해줄 만한 게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유쾌한 나체춤을…….」
「괘, 괜찮아. 그런 짓 안 해도!!」
페르소나 전서를 옆구리에 낀 채 능숙히 옷을 벗기 시작하는 엘리자베스를,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저지했다.
엘리자베스는 어깨를 드러내놓은 상태로, 옷을 벗던 손을 멈췄다.
「하지만 벨벳룸의 주민으로써 손님을 지루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딱히 지루한 거 아니니까, 괜찮아. 어쨌든 옷은 제대로 입고.」
「알겠습니다.」
총총히 엘리자베스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그녀가 안도한 표정을 짓는다.
「슬슬 돌아갈게. 쉐도 타임이 되면 또 올 거야.」
「또 얼굴을 보러 와 주시는 겁니까. 그럼 다음에야말로 뭔가 여흥을….」
「오늘은 타르타로스를 수색할 거야. 이제 크리스마스도 끝났고. 다 같이 기합을 재충전할 생각이거든. 그래서.」
다 같이.
특별 과외 활동부의 동료들을 뜻함을 엘리자베스는 알았다.
그와는 별개로, 지금의 그녀의 대사에는 신경 쓰이는 단어가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끝이 났습니까? 지장이 없으시다면 오늘이 며칠인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오늘? 26일. 내일부터 학원도 겨울 방학이야.」
「그렇……습니까.」
그녀의 방을 방문한 것이 12월 중반. 그 이후로 저.쪽 측에서는 이미 2주일이 지나 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감각으로, 그것은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좋든 싫든, 자신과 그녀가 살고 있는 시간의 흐름의 차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언젠가.
― 이 분은 제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버리실지도 모릅니다.
바로 곁에 그녀는 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녀와의 거리가 갑자기 벌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 속에서 밀려나온 불안이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나온 걸까, 그녀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왜 그래……? 뭔가……. 그. 슬퍼 보이는데.」
「아니오. 괜찮습니다. 걱정, 감사드립니다.」
「그래. 하지만,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줘. 상담 정도는 들어 줄 수 있을 테니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그럼 나중에 쉐도 타임에 봐.」
그녀는 벨벳룸을 떠났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엘리자베스는 생각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그녀를 이 방에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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