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본편]

파라다이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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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마]
“화재의 원인은 뭐였을까.”

내 의문에 대답한 것은 혼고 씨다. 대답이 됐는지 아닌지는 별개로 치고.


[혼고]
“불씨가 된 것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제일 심하게 불탄 곳이 첫 발화 지점이라고 보는 게 보통이겠지요.”


[혼고]
“아마추어의 눈으론 그런 장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슬렸다는 말밖에 할 수 없겠군요.”

 




사태가 일단 수습되어 진정하자, 모두의 관심은 화재 원인으로 쏠렸다.

돌아온 다음, 스포츠 머리는
혼자 있고 싶다면서 방에 틀어 박혔고, 장발남과 안경남은 아직 로그 하우스 앞에 있었다.


[아즈마]
“뭐, 아마추어니까 알 수 없지.”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연기에, 헛수고가 될거란걸
알면서도, 남은 멤버끼리
바닷물을 퍼담아 불을 끄려 애쓰다가 포기한 다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완전 진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C동에 들어간 혼고 씨가 목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혼고]
“네….”

묶은 머리카락이 풀려서, 그슬린 뺨에 떨어졌다.

그는 최근 며칠동안 단번에 야윈 것처럼 보였다.


[혼고]
“역시… 경찰이 없으면 무리인 거 같습니다.”




[미츠기]
“뭐, 그건 그렇지.”

[미츠기]
“다들 불조심한다. 이걸로 이야기는 끝이잖아.”

 


미츠기가 어깨를 으쓱였다.



[혼고]
‘네. 원인을 규명하고 싶으나, 현재로선 수단이 없습니다.”


[혼고]
“일단 이 건은 제쳐두고, 이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아즈마]
“나도 그게 좋다고 생…….”



[시마다]
“만약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였다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느긋하게… 허나 날카로운 한마디를 던진 것은 시마타 씨였다.



[아즈마]
“그건…..”


[시마다]
“…….”

다들 침묵한다.



[타카라]
“그런 거라면… 이대로 괜찮을까…?”

 



불안해하는 목소리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후. 내 방을 살피러 갔으나 탄 내가 너무 심해서 일단 타카라의 방에 신세지기로 했다.


죽을 뻔했던 거치고는 후유증 같은 것도 없이, 푹자고 평범하게 깨어나보니 이른 아침이었다.


버릇처럼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찾다가, 타버려서 망가진 것을 때올린 다음,

시간 확인을 뒤로하고 일단 이불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 침대에 있을 타카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즈마]
“타카라? 화장실이야? 씻어?”

욕실이나 화장실 쪽에 말을 걸어 봤으나, 대답은 없었다.



[아즈마]
“산책 갔나…?”

아니면 배가 왔는지 확인하려고 모래사장까지 갔나?



[아즈마]
“하아….”

배…. 배라….

정말로 오나?

차가운 손끝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제, 태어나 처음으로 직접 시체를 봤다.

뭔가 타버린 건지, 달작한건지 모를 양고기 같은… 그런 특유의 냄새가 아직도 코에 남아있었다.

혐오감은 없었지만, 제 자리를 잃은 몸이 너무나 가련해보였다.

나는 정말로 배가 오길 바라는 건가?
안 와도 상관 없나?

 


원래는 망설일 필요조차 없는 선택지인데, 오늘은 어느 한쪽을 택할 기분이 아니었다.


오늘로서 7일째.
여행 일정은 어제까지였다.

오늘, 이변을 깨달은 관계자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늘 중으로 구조가 올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나의 절반은 ‘구조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곤란한걸. 죽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울적해졌다.

 

 


[아즈마]
“어제 불이 나서 그래….”

자조가 스며나왔다.

 


최근 몇년 동안, 이런 기분 안 들었는데.

거야 돈은 없고, 불현 듯 허무해지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밝은 삶을 보내 왔을 텐데.

시체를 본 것, 나 자신이 화재에 휩쓸린 게 방아쇠가 된 거겠지.



 

 

[아즈마]
“…….”

 



아직 해가 않아 어두운 방 때문에 괜히 더 가슴 안쪽이 술렁였다.

불을 켜기 위해 일어나, 벽에 있는 스위치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즈마]
“응?”

불이 안 켜졌다.

내 로그 하우스랑 구조가 다른가? 전구가 다 됐나? 등등을 생각했다.



스위치를 몇 번이고 꼈다 켜봤으나, 불은 전혀 켜지지 않았다.


방 밖으로 나오자, 항상 모이는 광장에 마츠다와 미츠기의 모습이 있었다.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꽤 일직 일어났네.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으니, 마음이 불안한 것도 당연하겠지.

광장으로 향하며 힐끗 바라본 C동의 잔해에선 더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하룻 밤 사이에 완전 불길이 잡힌 거겠지.

 

 



[마츠다]
“여어, 아즈마. 좋은…… 아침.”

처음 나를 발견한 마츠다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아즈마]
“좋은 아침.”



[미츠기]
“…….”

옆에 있던 미츠기도 돌아보더니,
눈을 가늘게 뜬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곁눈질로 타카라를 찾으며 마츠다 옆에 서자, 마츠다가 내 얼굴을 들여다 봤다.



[마츠다]
“안색이 장난 아닌데. 몸 안 좋아?”

배려하는 음색에 퍼뜩 눈꺼풀을 내려 깔았다.

기분이 표정으로 드러난건가.
얼른 기분을 전환해야지.



[아즈마]
“괜찮아. 잠은 평범하게 잤고, 어디 나쁜 데도 없어.
…다들 일찍 일어났네?”



[마츠다]
“그래? 당분간은 무리하지 마…. 좀처럼 제대로 잘 순 없겠지만.”


[미츠기]
“뭐, 오늘이 터닝 포인트가 될 테고.”


 


[미츠기]
“애초에 평범하게 잘 수 있는 거 자체가 대단한거지. 일단 너 불탈 뻔한 몸이잖아.”


[아즈마]
“난 안 탔어. 아, 맞다. 마츠다.”

 


[마츠다]
“응?”

 



[아즈마]
“어제는…… 고마웠어. 그리고….”

 


[아즈마]
“날 구하러 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마츠다는 자세를 바로하듯 옷깃에 손을 얹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츠다]
“그렇게 예의차려서 말하니까 뭔가 어색하네. 그만둬.”

그렇게 말하며 웃는 마츠다는 내 어깨를 가볍게 찔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미츠기가, 나 원참하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미츠기]
“…그러고 보니.”


[미츠기]
“네 방…, 아니 그 꼬맹이의 방인데. 가전 제품 켜지나?”


[아즈마]
“아, 맞다. 생각났다.
조금 전에 방에 불이 안 켜졌어.”


[마츠다]
“…흠, 그렇단 건 역시 전부인가.”



조금 전의 대화로 부드러워지던 분위기가 단번에 칙칙해졌다.



[아즈마]
“…또 무슨 일 있어?”


[미츠기]
“전기 공급이 끊겼어.”


[아즈마]
“뭐라고…?!”




[마츠다]
“불은 커녕, 냉장고나 전자 렌지도, 전기 밥솥도 못 써. 다들 그런 거 같으니, 끊겼다고 봐도 문제없겠지.”



[마츠다]
“지금 다른 녀석들이 발전기 상황을 보러 갔어. 이제 슬슬 돌아올 무렵인데…. 아, 마침 왔군.”




숲속에서 혼고 씨를 필두로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이 전부 나타났다.

다들 침통한 얼굴이었다.


드물게 맨 뒷줄에 있던 스포츠 머리도, 언제나 활달한 타카라조차.


타카라는 날 보자 순간 표정을 폈으나, 뛰어오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혼고 씨도 안심한 듯 눈꼬리가 내려갔으나,

바로 마츠다를 보더니 말하기 힘든 듯 입술을 깨물고서 고했다.




[혼고]
“발전기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마 고장난 것 같습니다.”


[아즈마]
“………….”


[혼고]
“……공구가 있어서 수리를 시도해 보겠습니다만…
어떻게 고장났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서.”


[혼고]
“회복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즈마]
“진짜냐고….”


마츠다는 놀란 기미도 없이, 그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마츠다]
“…그럴 줄 알았는데, 역시나….”



[미츠기]
“…….”

미츠기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마츠다]
“다들 확인하고 와줘서 고마워.
혼고 씨한테도 부담만 늘려서 정말 미안….”



[혼고]
“아뇨, 당연한 일이죠.”

불현듯 혼고 씨가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아즈마]
“뭐야…? 왜 그래?”


[시마다]
“음…….”

[시마다]
“혼고 씨, 말 안 해?”


카메라 캡을 꼈다 뺐다 하면서, 시마다가 옆에 있는 벤치에 걸터 앉았다.



[혼고]
“…….”


[마츠다]
“? 또 뭔가 있어?”

마츠다는 입술을 다문 혼고 씨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시마다 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마다]
“말하기 힘들면 내가 말할게.”



캡을 끼웠다 뺏다하던 소리가 멈췄다.



[아즈마]
“…말하기 힘든 소리란 게 대체 뭐야?”


[시마다]
“흠.”

시마다 씨는 혼고 씨의 태도를 잠시 기다린 다음, 대답이 없을 거란 것을 깨닫고서,

그들이 나온 숲을 가리키듯 고개를 뻗었다.

[아즈마]
“………….”

어딜 보는 건가 싶어 시선을 살피자,
안절부절 못하며 입술을 만지작거리는 안경남이 있었다.



[시마다]
“발전기를 보러 가는 김에 저수조도 보고 왔어.
가는 길에 있으니까.”


[시마다]
“확인해보니 남은 물이 별로 없더라고.”


[시마다]
“어제 열심히 물을 끄려고 수도에서 물을…. 즉 저수조에의 물을 잔뜩 쓴 사람이 있어.”



[아즈마]
“……그래?”

혼고 씨가 망설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기]
“물낭비. 다 함께 그런 결론을 내렸어…. 뭐, 조금 늦긴 했지만….
그러니까 지금은 불이 진화되는 걸 기다리는 중. 애초에 할 수 있는 것도 그것 뿐이고.”

 

 


그때 그거 말인가…?

그리고 안경남이 물을 낭비했다고? 시선의 의미는 그런 거겠지.



[마츠다]
“별수 없었지. 그건 뭐.”


[미츠기]
“…….”


각오하고 있던 일일까, 마츠다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미츠기는 안경남을 힐끗 본 다음, 바로 시선을 돌렸다.



[안경남]
“……내 탓이 아닐 수도 있잖아.”

원망어린 그 딱딱한 목소리에도, 시마다는 굴하지 않았다.



[시마다]
“흠.”



[아즈마]
“왜 굳이 그렇게 말해.
책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시마다]
“아즈마 군의 말이 맞아.”


 

[시마다]
“혼고 씨는 매일 저수조를 확인하고 있어. 남은 양은 언제나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물이 줄어든 원인은 어제의 화재야.”


[시마다]
“너는 불을 끄려고 했어. 그 마음은 알아.”


[시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실 줄이 줄어든 건 사실이야.”


안경남을 감싸듯이, 장발남이 앞으로 나왔다.


[장발남]
“그런 상황에선 별수 없잖잖아.
불이 나고 있는데, 그냥 가만히 두고 보라고?”



[미츠기]
“마음은 알겠다고 했잖아.
망할 애송이가 말했다시피, 책망하는 거 아냐.”



[미츠기]
“그냥 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라고.”


[아즈마]
“…….”

미츠기가 드물게 남을 변호한다.
이 이상 이야기가 성가셔지면 곤란했기에, 내심 안도했다.


[안경남]
“큭…….”



[시마다]
“고마워. 미츠기 군, 아즈마 군.
그 말을 하고 싶었어. 알기 쉽게 말해서 딱 그거야.”


[시마다]
“먹을 거뿐만 아니라 물도 위험해. 이제 슬슬.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아즈마]
“………….”

다시 카메라 캡을 만지작거리는 시마다의 내리깐 눈은,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평온했다.



[시마다]
“그래서 어때? 결국 오늘도 배는 안 온 거야?”


[혼고]
“……네.”


[시마다]
“그렇구나. 그럴 거 같았어.”

 

시마다 씨는 놀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딱히 놀라는 기미가 없었다.

어쩌면 다들 ‘배는 오지 않을 거라고’ 체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증거로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그저 무거운 침묵만을 자아내고 있었다.

 





[혼고]
“죄송합니다….”

[아즈마]
“혼고 씨 잘못이 아니라니깐.”


[타카라]
“맞다! 오늘로 7일째잖아.
우리가 돌아오지 않는 걸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아즈마]
“응. 오늘은 안 와도 내일은 올지도 모르잖아.”


[미츠기]
“…….”

 


나와 타카라가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으나, 모두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마츠다]
“두 사람의 말이 맞아. 하지만 낙관적으로 있을 순 없지.”


[마츠다]
“지금 이대로는 곤란한 상황이란 건 잘 알겠어.”


[마츠다]
“일단 지금 남아있는 식량을 어떻게 해야하는가가 문제겠군. 냉장고가 안 돌아가면 썩을 거야”



[아즈마]
“썩기 전에 구워서 조금이라도 보존 기간을 늘리는 건?”


[미츠기]
“구워봤자 끽해야 1~2일 정도 밖에야.”


[아즈마]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하루나, 이틀이라도.”




그때, 타카라가 머뭇머뭇 손을 들었다.
두 눈을 굴리며 우리의 표정을 살피더니, 말을 하기 시작했다.


[타카라]
“그거 말인데….”


[타카라]
“실은 나, 오늘 아침에 뭔가 없을까 싶어서 그 폐허에 갔거든.”


[아즈마]
“뭐?!”

 

[마츠다]
“……혼자서?”


[타카라]
“미, 미안…. 다들 바빠보이길래….”

 



[마츠다]
“위험하니까, 다음엔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
…그래서?”



[타카라]
“응…. 그래서, 그때 발견했어. 저장고 같은 거.”



[아즈마]
“저장고…….”


[타카라]
“응, 응.
저장고라고 해도 냉장고 같은 건 아니고, 창고 같은 거였어.”



[타카라]
“지하에 있어서, 지금 시기에도 약간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였어.

일단 거기에 먹을 걸 놔두면 조금이나마 낫지 않을까?”


[아즈마]
“……!!”

지금 당장 타카라한테 달려가서, 머리를 슥슥 만져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츠다도 나와 같은 기분인듯, 활짝 웃으며 엄지를 척하고 들었다.



[마츠다]
나이스, 타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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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Paradise/본편]파라다이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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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111243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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