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본편]
파라다이스 (18)

타카라의 발견 덕분에
다 같이 바로 식량을 운반하기로 했다.
하지만 각자에게 맡겨진 식량의 양은, 배급제로 전환할 때 보았던 총량보다 압도적으로 줄어 있어서—
아직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던 녀석들의 불안을 단번에 자극했다.

[아즈마]
“…….”
걸으면서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스포츠 헤어남]
“…….”
묵묵히 박스를 옮기는 스포츠 머리는 오늘도 외따로 맨 뒷줄에 서있었다.

[장발남]
“이렇게 많이 줄었을 줄이야….”
[안경남]
“사람이 이만큼 있으니. 하루 한 끼만 먹어도 나눠주면 상당한 양이야.”
항상 같이 다니던 그 두 사람은 줄 중간 쯤에 있었다.
스포츠 머리 녀석, 화재 때문에 왕따당하는 건가?

[아즈마]
“……”
그런 거라면 불쌍하긴 한데, 나도 말을 걸어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즈마]
“머…, 저 사람은 딱히 인상도 안 좋았고….”
장발도 그랬지만, 스포츠 머리는 특히 거침없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방화 건.
스포츠 머리에 대한 의심은 아직 깔끔하게 걷히지 않았다.

그 증거로——

[혼고]
“마츠다 씨, 지금 손전등 예비 갖고 계십니까?”
[마츠다]
“아, 있어. 도착하면 줄게.”

[미츠기]
“그보다 아직이야? 팔 빠지겠다….”
[타카라]
“팔은 그렇게 간단히 안 빠져.
이제 곧 도착하니까 힘내! 파이팅!”
이 상황을 눈치챈 녀석도 분명 있을 텐데, 아무도 뭐라 말하지 않고, 대응하지 않았다.

[아즈마]
“…….”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즈마]
“미안.”
스포츠 머리한텐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중얼거린 다음, 뒤돌아보는 걸 관뒀다.
불쌍하지만, 지금은 내버려두자.

[아즈마]
“……시마다 씨, 오늘도 사진 찍어?”
[시마다]
“응. 한손으로 짐을 드는 건 좀 힘들지만.”

[아즈마]
“카메라맨의 귀감이네.”
그렇게 말하면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시체 사진도 찍었다….

[아즈마]
“…….”
솔직히 좀 세심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카메라맨이 되면 어디서든 셔터를 누르게 되는 버릇이 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안내 받은 대로 도착한 곳은
우리가 봤던 폐가의 무리를 빠져 나와—

지주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저택 앞을 지난 곳에 있었다.

[아즈마]
“…척봐도 창고란 느낌이네.”
꾸민데라곤 전혀 없는 것이 마치 감옥 같은 건물이었다.
주위에 집이라곤 없고, 반쯤 숲에 파묻혀 있었다.
벽 여기저기에 녹색이나 갈색 덤불이 붙어 있고, 주위는 질척거리고, 햇빛도 잘 안 들어서 어쨌든 축축하고 어두웠다.
버려져 있는 의문의 썩은 밧줄이나,
나무판자들이 아무렇게나 버러져 있는 것이, 솔직히 기분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마츠다]
“…잘도 이런 곳에 들어가볼 생각을 했군, 너.”
선두에 서있던 마츠다가 감탄인지 기막힘인지 모를 미묘한 어조로 그것을 올려다 보았다.

[타카라]
“에헤헷. 간은 남들 배로 크거든.”
[아즈마]
“너 그런 캐릭터였냐?”
[타카라]
“어! 지금 알았어?”
[마츠다]
“그런 걸 무대포라고 한다구. 하지만 너무 무린하지 마.”
딱딱한 목소리에 타카가의 어깨가 축 쳐졌다.

[타카라]
“하지만…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단 말이야.”
[아즈마]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나보다는….

[타카라]
“정말?! 아즈마, 너무 좋아!”
[아즈마]
“우왁…. 그, 그만! 짐 놓치겠다!”

[시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이런 데에 짐을 놓을 순 없고…, 손이 미끄러져서 쏟을 거 같아.”
[미츠기]
“목장갑 찢어졌어, 나.”
[타카라]
“뭐? 시마다 씨랑 미츠기는 연약하네. 카메라랑 펜보다 무거운 거, 들어본 적 없는 거 아냐?”

[시마다]
“아니, 지금 들고 있잖아….”
[미츠기]
“펜보다 천배는 무거워.”

[타카라]
“아, 그랬지…. 뭐, 응….
맞다. 이 근처에 입구가… 앗, 여기야.”
타카라가 앞에 선 녹슨 철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살짝 열려 있었다.

[아즈마]
“헤에…. 뭔가 묵직한 느낌인걸.”
[타카라]
“안이 새카마니까 불을 켜고 싶은데… 어쩔래? 내가 안내할까?”
[마츠다]
“그렇군. 그럼 타카라는 일단 짐을 내려놓고…, 손전등… 이걸로 안내해줘.”
[타카라]
“옛써.”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아즈마]
“……….”
전에 폐가의 문을 열었을 때 놀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움찔했으나, 이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곰팡내… 정도인가?
[미츠기]
“이쪽은 아무렇지도 않군….”
심히 맥이 빠진 듯 몸을 웅크린 것은 미츠기였다. 전에 그게 엄청 힘들었던 모양이다.

[타카라]
“그럼 갑니다~. 다들 따라오세요~.”

손전등을 머리 위로 흔들면서, 짐을 내려놓은 타카라가 기운차게 앞서갔다.
내부는 단순한 구조로,
문 안쪽에는 바로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타카라]
“단차가 있으니까 다들 발치 조심해.”
계단을 내려감에 따라,
발치로 싸늘한 공기가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래층으로 다가갈 수록 계단 표면은 젖어 색이 진해졌고, 벽 틈새로 이끼가 낀게 늘어났다.

[아즈마]
“정말로 좀 춥네.
더울 때 피난와도 되겠어.”
[시마다]
“그러게. 그건 그렇고 꽤 깊은걸….”
[타카라]
“그렇지? 그래도 계단 폭이 넓어서 걷기 쉽지 않아?"

계단을 내려가니 바로 탁 트인 장소가 나왔다.
서늘하고 넓은 방이었다.

[아즈마]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 드네….”
[마츠다]
“확실히 저장고였을 지도 모르겠군. 이거라면 충분히 냉장고를 대신할 수 있을 거 같아.”

구석에 놓여있는 긴 통이나, 선반 같은 것을 바라보며, 마츠다는 묵직한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들 따라서 짐을 내려놓은 다음,
자유롭게 허리를 펴거나 팔을 돌렸다.
나는 싸늘함에 팔을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본 다음, 안쪽에 또 다른 입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등 뒤에서 마츠다와 혼고 씨가 어디에 뭘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시마다 씨는 사진 촬영, 다른 멤버들은 쉬거나 짐 안의 내용물을 체크하고 그랬다.

[아즈마]
“오히려 저쪽이 저장고 아냐? 선반 같은 게 쭉 늘어서 있는데.”

흥미 본위로 가본다.
가까이 가보고 나서야 알게 된 거지만, 입구라 해도 문은 없었고… 가는 통로가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손전등의 불빛도 안까진 닿지 않아서, 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즈마]
“음….”
입구 벽에 손을 짚고, 문을 내밀어 자세히 살펴 보자니——
통로 안쪽에 격자가 쳐져 있었다.

[아즈마]
“……?”
신중히 입구를 넘어, 좁은 길을 몇 미터 정도 걸어가보니, 막다른 곳에 방이 하나 있었다.

머리를 집어 넣을 수 없는 간격으로 쳐진 격자에,
형사 드라마 같은 데서 봤던 감옥보다 조금 넓었다.

철거 된 것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변소나 침실 같은 것은 없었고,
가늘고 긴 나무 판자가 깔린 바닥에, 작은 출입문이 있을 뿐이었다.
[아즈마]
“……….”

‘이거’를 어디에 쓰는 지 정도는 알고 있다.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다.
남을 가둬두는 것 말고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든가, 평범한 감옥과 뭐가 어떻게 다르다든가…
그런 자세한 건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살던 인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만으로, 나는 충분했다.
눈앞에 쳐진 쇠로 된 격자를 향해 손을 뻗자, 축축한 녹이 묘하게 손에 스몄다.
얼굴을 갖다대고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즈마]
“…….”
재색으로 덧칠된 공간에는 기척이라곤 없었다. 그저 차가워진 먼지만이 벽 구석에 쌓여있을 뿐.
냄새도 나지 않았다.
청결하진 않지만, 오물은 없었다.
시체도 없었다.

[아즈마]
“그렇구나….”

무의식 중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여기에 있던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
자유로워진 것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모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마츠다]
“뭐야? 뭔가 있었어?”
마츠다의 목소리가 관자놀이에 울려퍼졌다.

[아즈마]
“아니, 그게….”
[미츠기]
“창고라면 뭔가 재고가 있을 지도 몰라.
여기에 없으면 저쪽에 뭔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미츠기의 시선이 머리를 찔렀다.

[아즈마]
“…….”
잠시 눈도 깜빡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고서…
나는 의식적으로 눈꺼풀을 열었다 닫은 다음, 내게 박히는 시선을 튕겨냈다.

[아즈마]
“감옥이 있었어.”

[마츠다]
“……뭐? 감옥?”

[미츠기]
“흐응.”
[미츠기]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메이지 시대의 건축물이라면. 그 시절엔 정신 이상자를 집에 가둬놓는 제도가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타카라]
“그런 게 왜 있는 거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 나 좀 무서워…….”
[시마다]
“그게 거기 안쪽에 있었어?
이거~ 이 섬은 정말로 촬영 포인트의 보물창고네.”

[혼고]
“즉 이 창고는 역시 창고가 아니란 의미일까요…?”
[아즈마]
“…….”

나는 모두의 목소리를 어딘지 모르게 먼 곳으로 들으며…
눈꺼풀 뒤에 새겨진 감옥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실에는 그 외에도 방이 몇개 더 있었으나
식량 운반만으로 귀중한 하루를 낭비할 순 없어서, 그 이상의 수색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 제일 넓은 방 한 구석에 식량을 모아둔다.
앞으로 마츠다는 배급할 때마다 이 저장고까지 와야하게 됐지만.
식량을 썩히는 것보다는 낫다며, 흔쾌히 받아들인 모양이다.

[마츠다]
“식량 관리를 메인으로 할 거라면, 차라리 이쪽으로 잠자리를 옮길까?”
[아즈마]
“뭐? 진짜?”
[마츠다]
“침대나 연료, 기자재를 옮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지금까지처럼 로그 하우스를 거점 삼겠지만,
이후의 사정에 따라선 이사하는 것도 시야에 넣어둬야겠어.”
그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폐허에서 돌아자마자 바로 배급이 있었다.
지금까지랑 같은 양이었으나 조리하는 게 귀찮아서, 과일로 떼웠다.

남은 건… 고기랑 야채가 조금 씩.
하루에 한끼 재료밖에 배급되지 않으니까, 다들 자동적으로 재료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먹고 있다.
사과는 약간 물렁해진 것이, 신선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즈마]
“저녁 땐 뭔가 요리라도 할까나….
아니, 잠깐만. 가스 버너 불이 켜지나?
버너는 전기식이 아니니까 문제 없나?
좋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식량을 찾았으나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채, 밤을 맞이했다.

—결국, 구조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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