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의 한 방—
[미츠미네 유카리]
(나미 씨…. 나와 같은 장소에 같은 반점이 있었어.
역시 이건 나미 씨를 뜻하는 표식이구나.)
[미츠미네 유카리]
(나기 씨는 이 표식을 갖고 있는 내가
나미 씨가 아니란 사실에 절망한 걸지도 몰라….)
[미츠미네 유카리]
(확실히 내 안엔 나미 씨가 있어….
하지만 나는 나기 씨가 바라는 나미 씨가 될 순 없어….)
[미츠미네 유카리]
(게다가 나미 씨도
세계의 멸망을 바라지 않으시는걸….)
[미츠미네 유카리]
(이런 시간에 대체 누구지…?)
[미츠미네 유카리]
누구세요?
[야부키 신고]
저, 접니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미츠미네 유카리]
신고 군…. 응, 들어와.
[야부키 신고]
실례하겠습니다.
[미츠미네 유카리]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야부키 신고]
불이 켜져 있길래, 잠이 안 오시나 싶어서…
핫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와봤습니다. 같이 드실래요?
[야부키 신고]
잠이 안 오면 보통 핫 밀크겠지만….
제가 우유 냄새를 싫어해서….
[미츠미네 유카리]
그래서 핫 레모네이드구나.
고마워, 잘 마실게.
[미츠미네 유카리]
시고, 달콤한 맛이… 왠지 마음이 편해지네.
[야부키 신고]
…무슨 일 있으셨나요?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않을 테니, 저한텐 뭐든 말해주세요.
[야부키 신고]
최근의 미츠미네 씨는, 줄곧 혼자 뭔가 고민하고 계신 거 같아서….
보고 있자니 너무 걱정이에요….
[미츠미네 유카리]
신고 군…. 고마워, 걱정해줘서.
[미츠미네 유카리]
(신고 군한테는 반점도 들켰으니까….
상담할 거면 신고 군이 제일 좋을 지도 몰라.)
[미츠미네 유카리]
저기 말이지…, 나기 씨의 꿈을 꿔.
[야부키 신고]
나기 씨의 꿈요?
[미츠미네 유카리]
꿈이라고 해야하나…? 전생의 일일지도 몰라.
[미츠미네 유카리]
나기 씨는 아주 아주 오랫동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긴 시간
오로지 혼자서 나미 씨를 기다려왔어.
[야부키 신고]
나미 씨…?
그 사람이 누군데요?
[미츠미네 유카리]
(아마 전생의 나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말하긴 힘들겠지….)
[미츠미네 유카리]
나기 씨의 소중한 사람.
나기 씨는 그 사람을 잃고,
몇 천년 동안 줄곧 혼자 지냈던 모양이야.
[야부키 신고]
몇 천년…. 어마어마한 시간이네요….
[미츠미네 유카리]
응. 상상만으로도 미쳐버릴 것만 같은 시간.
그런 긴 시간을 나기 씨는 혼자 지내왔어.
[미츠미네 유카리]
…그렇게 생각하면, 나기 씨의 마음도
조금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야부키 신고]
확실히 괴로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게 세계를 멸망시켜도 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츠미네 유카리]
응. 그것도 알아.
그저 나기 씨에게도 사정이 있었구나 싶은 것뿐….
[야부키 신고]
……잘은 모르겠지만요.
요컨데 미츠미네 씨는 나기 씨를 동정하시는 건가요?
[미츠미네 유카리]
동정이랄까….
[미츠미네 유카리]
(이 감정은….)
[야부키 신고]
나기 씨가 쓸쓸하셨던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쓸쓸하니까 세계를 멸망시킨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야부키 신고]
세계를 멸망시키겠다고 말한 이상, 나기 씨는 적입니다.
[미츠미네 유카리]
(지금까지 자각하진 못했지만,
내 안에 나미 씨가 있음을 확신한 지금….)
[미츠미네 유카리]
(이 이야기는 모두에게 확실하게 말해야 해….)
[미츠미네 유카리]
(하지만… 신고 군의 말대로
나기 씨는 세계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적.)
[미츠미네 유카리]
(내 전생이 그런 나기 씨의 파트너였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반응할까…?)
[야부키 신고]
왜 그러세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미츠미네 유카리]
저기 말이야…, 나….
[미츠미네 유카리]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야부키 신고]
말씀하시기 힘든 말이신가요?
[미츠미네 유카리]
응.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말할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지금은 나 자신도 잘 모르겠어.
[야부키 신고]
그럼 그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혼자 너무 고민하진 말아주세요.
[야부키 신고]
말할 수 있는 일부터,
조금 씩 말해주셔도 완전 문제없으니까요!
[미츠미네 유카리]
응. 고마워, 신고 군.
[야부키 신고]
저, 생각해 봤는데요.
[미츠미네 유카리]
응?
[야부키 신고]
나기 씨 말인데요. 쓸쓸하신 거면
새로운 친구나 연인이라도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요?
[야부키 신고]
딱히 만들 마음은 없어 보이시지만,
나기 씨가 이런 터무니 없는 짓을 그만두신다면
나기 씨랑 친구가 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야부키 신고]
…아, 갑자기 친구라고 하면 너무 뻔뻔할까요?
[미츠미네 유카리]
아냐. 그렇지 않아.
멋진 생각이네.
[미츠미네 유카리]
나기 씨가 들어주실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거 같아.
[야부키 신고]
그렇죠?! 미츠미네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기 씨도 조금은 알아 주실지도 몰라요!
[미츠미네 유카리]
(새로운 친구나, 연인이라….
나기 씨의 새로운 연인…)
[미츠미네 유카리]
(나미 씨처럼 나기 씨와 함께 웃고,
나기 씨의 마음에 응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미츠미네 유카리]
(오랫동안 괴로워해온 나기 씨의 마음을
연인으로서 달래줄 수 있다면….)
[야부키 신고]
미츠미네 씨는 뭘 해보고 싶으세요?
[미츠미네 유카리]
응?
[야부키 신고]
만약 나기 씨랑 친구가 된다면,
뭘 해보고 싶으신가 해서요.
[야부키 신고]
전 같이 수행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기 씨의 싸움, 조금 흥미가 있거든요.
[미츠미네 유카리]
나는… 같이 밥을 먹어 보고 싶어.
[야부키 신고]
과연. 좋은 거 같아요!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나기 씨를 설득해봐요!
[야부키 신고]
뭐어, 잘 풀릴진 모르겠지만요….
[미츠미네 유카리]
(나는… 나기 씨를 구하고 싶어. 오랫동안,
외로움에 고통스러워 해온 그를 구해주고 싶어.)
[미츠미네 유카리]
(그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모두를 배신해
모두의 적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게 무섭지만….)
[미츠미네 유카리]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