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기둥에 있는 시계를 본다. 바늘은 홍백가합전의 열기가 슬슬 절정에 이르렀을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우, 젠장! 늦었다…」
그 날의 일을 끝마치고, 사이키의 저택으로 돌아온 것은 밤늦은 시간. 뭐, 이번 주 중에서는 제일로 빠른 귀가 시간이지만.
넥타이를 풀면서, 비틀비틀 계단을 오른다.
사이키에게 고용 당해, 이 최악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몇 개월. 기가 팍팍 죽어 나가는 일을 매 번 강요당해서, 정신이 닳아 헤져가고 있었다.
이제 이런 생활은 싫다.
대리석 계단을 한 단 오를때마다 슬픔이 솟구쳐와서, 난간에 매달린다.
뭐가 슬프냐면, 오늘이 올 한해 마지막 날이라는 점.
지금끔 가족들은 전부 즐겁게 지내고 있겠지.
낮에 시즈카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정도 쯤은 돌아올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무리라고 대답했다.
내 방으로 향하던 도중, 불현 듯 걸음을 멈춘다.
이대로 방으로 돌아가면 분명 홍백 가합전을 보면서 잔다. 분명 전다.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거야 내일도 일이 있지만, 이제까지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연례행사 만큼은 꼭꼭 챙겨왔다.
그런가. 그게 내 최후의 보루인 거다. 분명.
에에에잇!! 졸음이여, 사라저라!!
자신의 뺨을 쫙하고 치고서, 금방이라도 내려 앉을 뻔한 눈꺼풀에 기합을 넣는다.
그리고 씩씩하게 몸을 돌려, 왔던 길을 게걸음으로 돌아간다.
편의점에서 술과 안주, 떡국, 소바를 산다.
절대 못 자지.
두고봐라. 새해를 전력으로 즐겨주마!! 나 혼자서라도!!!
전사의 마음으로 로비를 횡단하고 있는 와중, 사이키가 현관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움찔한다.
성스러운 축제를 방해하려 한다면 용서 못해.
설령 악마의 자식이 상대라 하더라도!! 나의 지하드(성전)를 보여주마!!
사이키는 내 눈 앞에서 멈추더니, 거지라도 보는 듯한 시선을 던진다.
「상판이 그게 뭐야, 너…. 기분 나빠」
「엣」
「죽은 생선같이 썩어 빠진 눈 하지 말랬잖아!!」
「아얏」
엉덩이를 걷어 차여서, 나를 순간 튀어 올랐다.
「가, 갑자기 차지마…!!! 아프잖아!!」
「하앙? 아프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됐고, 좀 따라 와」
「하아?」
「오라잖아. 두 번 말 시키지 말라고, 이 돼지」
끌려간 곳은 1층의 홀로, 나도 들어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문을 열자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요리를 먹는다거나, 술을 마시다거나, 제각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척봐도 부자인 녀석도 있고, 잘난 사람같은 것도 있다.
하지만 방 구석에는 검은 양복도 있고, 자기들끼리 은밀히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야?
나는 이 태평한 분위기에 곤혹스러워했다.
항상 철저하게 일에 임하는 검은 양복들이 조심스럽긴 하나, 잔치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은 사이키 진이든 사이키 슌이든 허가를 했다는 소리다.
사이키 나름의, 부하들에 대한 배려구나, 이거.
아니, 아닌가? 야 씨들의 길흉화복에 집착하는 거랑 마찬가지?
「네 놈도 적당히 먹고 똥이라도 싸고 있어」
「똥이라니, 너」
「X이라도 싸고 있어」
머리를 싸매는 내게 그리 말하고서, 사이키는 떠나갔다. 진짜, 말투가 너무 지저분한 거 아닌가. 사이키.
하지만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준 것이 조금 기쁘다.
그건 어쨌든, 사이키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땐다.
테이블 위에는 테이블이 좁아 보일 정도로 각양 각색의 요리들이 놓여져 있다.
일단, 먹을까.
꿀꺽하고 멋대로 목젖이 울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나서, 시선을 요리 쪽으로 돌린다.
기본적으로 셀러브리티는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왠지 파티장의 분위기가 가볍다. 분명 그런 걸 따지지 않는 자리인 거다. 아마, 분명.
좋아하는 것만 잽싸게 접시에 채워 답고서, 바로 다음 테이블로.
내 접시 위는 누가봐도 용량 오버다. 알고 있다. 꼴사납지. 저질이지. 안다.
그래도 좋다. 공짜니까.
그렇게 누군가에게 변명하면서, 다시 식욕에 주위를 배회하고 있자니, 내 접시의 메인인 치킨이 사라졌다.
「……」
마키 씨가, 눈 앞에서 내 치킨의 다리를 집어 들고서, 즉시 입 안으로 집어 넣는걸 보았다.
「앗, 내 고기가!!」
「새 고기지」
「그게 마지막이었슴다!! 뭘 멋대로 드시는 겁니까!! 최악!! 이 까까머리!!」
「또 만들게 하면 되지. 그보다 입을 열자마자 하는 말이 먹거리 얘기라니, 저질이로군. 달리 할 말은 없는 건가?」
입가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동작이 실로 근사해서, 또 욱했다.
「뭡니까. 새해 인사라도 하면 되는 겁니까」
「왜 여기에 검은 양복들이 있는지 아나?」
「모릅니다」
「아무래도 정말로 음식에 대한 원한은 무서운 모양이야」
내 무뚝뚝한 대답에 마키씨는 웃고서, 방 구석을 턱짓했다.
호화로운 소파 세트가 놓여있지만, 샴페인과 잔이 놓여져 있을 뿐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매일 열심히 일해주는 사원들에 대한 사소한 감사의 마음이라는 모양이야. 확실히, 그랬었지, 이시마츠?」
「에?」
마키씨가 시선을 돌린 방향을 보자, 조금 떨어진 장소에 이시마츠가 있었다.
「왜 놀라지……」
「아, 아니. 대체 언제 있었나 싶어서」
커다란 주제에 기척을 숨기니까 그렇지, 이 녀석….
완전 겁나 쫄았다. 망할.
이시마츠는 잔 만을 든 채로, 따분한 듯 우뚝 서 있다.
「오늘 잔치는 사이키 가문이 주최하는 대접이라는 명목이다」
「하지만 사이키 진은 없군」
「변함없이 바쁜 모양이야. 자식도 마찬가지로」
이시마츠가 턱으로 가리킨 곳에는, 사이키가 열심히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날까지 큰일이구나.
상사가 돈을 넘겨주며『이걸로 맛난 거라도 먹어』라고 말하는 그런 건가. 모르겠다.
「그보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지」
「다음 회장으로 갈 때까지 조금 시간이 비어서 말이야」
마키씨와 이치마츠 사이에 떠도는 공기의 온도가 조금 내려간 것을 느끼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내가 말릴 일도 아니고. 마키씨는 방으로 들어온 누군가를 보더니,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동시에 이시마츠도 인파 속으로 사라져서, 나는 다시 혼자 심심한 상태가 된다.
먹기만 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것도 좀 무미하고.
누구 아는 사람은 없나 싶어 방을 둘러 보고 있자니, 있었다.
저거, 쿠루스랑 오오히라다.
요리를 손에 든채로 뛰어 간다.
「어이」
「앗, 콘노 아냐」
「오오히라는 초대?」
「그래. 일단 차기 사장이니까」
쫙 정장을 차려입은 오오히라는 평소보다 훨씬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소릴 하면 분명히 뭔가 찝쩍댈 것 같으니까 말 하지 말자. 이 녀석, 술에 취하면 들러 붙는 기질도 있고.
「해피 뉴 이어 이브☆ 어때? 재밌게 놀고 있어?」
「아니, 그보다 왜 둘이 같이 있는 거야? 너희들 그렇게 사이가 좋았나?」
「아아, 저기서 술잔을 들 때 딱 부딪친 것 뿐이야. 바로 흩어질 맘이었으니까 괜찮아」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은 오오히라다.
하지만 쿠루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맞아, 맞아. 이 녀석이랑 같이 밥? 밥맛만 떨어질 뿐 아무런 득도 없으니까」
「아…, 그래」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 같이 빠져 나가지 않을래? 검은 양복 녀석들, 다른 방에서 술 마시고 있어」
「하아? 콘노가 이런 데 오래 눌러 붙어 있을 리가 없잖아. 밖으로 나가자구, 밖」
「하아아? 웃기지마, 멍청 도령」
「그쪽이야말로 웃기지 말라고, 새침 눈썹」
아아, 또 시작이다. 이 녀석들 꽤나 사이가 좋구나. 성질이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걸지도.
말다툼을 나누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다른 테이블로 다가가, 일단 식사를 계속했다.
많은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엔 항상 평소와 마찬가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말만 하는 녀석이 있고. 나처럼 밥만 먹는 녀석도 있고. 일에 쫓겨 그럴 겨를 조차 없는 녀석이 있다.
죄다 자기 나름의 한 해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거다.
「뭐어, 모두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 상태라면 나도, 내년에도 별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내년에야말로 진짜 직장 바꾸고 싶다………」
올해 최후의 한숨을 쉬며, 나는 술을 들이켰다.
안녕하세요, 러브 데스입니다.
오래간만의 구데구데 시리즈입니다.
태평한 CAGE로 논다!를 취지로 이번에는 한해 말 편입니다. 즐겨 주셨다면 감사합니다.
** 구데구데4를 구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익명 처리)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들 즐거운 한 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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