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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여성향 게임
발매예정일 2013년 2월 22일 4월 26일
cool-b 2013년 3월호(Vol.48) 게재 SS
새하얀 비단을 한 땀 한 땀 바느질 한다.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였다.
원래부터 도안이 있던게 아닌지라, 나는 그저 자신의 손가락이 가는 대로(어쩌면 머나먼 옛 기억 속에서 이 도안을 알고 있었던 지도 모르지만) 담담히 바늘을 옮겼다.
옅은 분홍색 벚꽃잎. 담백하고 덧없는 자수가 완성되어 간다.
사쿠씨는 곁에서 내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않고, 내내. 지금과 같은 일이 불과 며칠전에도 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방을 방문해……, 의상을 맞췄다. 그 시절에는 아직 하나리에 시간이 남아 있었고, 나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당연하지만 아이를 다루듯이 나를 대했고, 다소 누나처럼 굴었다. 하지만 미소를 지으며 의상을 고치는 것에 시간을 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장도 딱 알맞아서, 내가 그녀의 방을 찾은 것은 그걸로 끝이였지만.
그 때도 이렇게, 그녀는 가만히 시침질을 하는 내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 「………」 「저기………, 사쿠씨?」 「……………」 「그렇게 바라보셔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숨 죽여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나는 무심코 말을 걸고 말았다.
「그렇게 숨죽일 필요 없어요. 날아가고 그러진 않을테니까.」 「엣」
그 말에 비로서 깨달은 모양이다. 푸핫하고 크게 숨을 내쉬며, 그녀는 다시 똑같은 자세로 돌아갔다.
「그치만, 타루히군의 손끝. 마법같은걸. 눈을 땠다가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아깝잖아.」 「그런일 없으니까.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저는 단순한 반딧불이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빛을 발하는 것 정도입니다.」 「그건…, 알고는 있지만.」
알고는 있어도,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날것같은 예감이 드는걸. 그녀는 그리 매달렸다.
「그런가요?」 「응.」 「하지만 뭐. 눈깜짝할 사이에 완성되는 마법이 있다면 저도 고생은 안 하겠는데.」 「나한텐 충분히 빨라 보이는데…….」
납득이 안가는 얼굴로 그녀는 작게 고개를 갸웃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찰랑찰랑한 밤색 머리칼이, 유카타의 하얀 천 위로 매끄럽게 내려앉았다. 각별히 소녀스럽게 보이는 동작에 비해, 이마로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손끝은 몹시 농염해서, 순간 심장이 튀었다.
지금 내 손 끝에 있는 비단천과는 다른 맛이 있는, 꾸밈 없는 면 유카타의 새하얌. 그 천이 감싸 안은 다소 불그스름한 건강한 피부.
(안돼……)
시선을 돌려야한다고 의식하자 괜히 더 눈을 땔 수 없게 되는 기분이였다. 말괄량이면서, 소매 아래로 쭉 뻗은 가늘고 하얀 팔이나, 작은 손, 익숙치 않은 기모노 차림에 다소 허물어진 목깃까지. 안된다며 자기자신을 자제시키려 하면서도, 자신의 시선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손, 대고 싶다. 머리칼, 뺨에, 피부에. 자신이 꼴사나울 정도로, 원하고 만다.
그녀에게 들키면. 분명 경멸 당하겠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이성을 다잡는다.
그녀는 벚꽃 신부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존재.
내가 지금, 바느질을 하고 있는 새하얀 신부의상도 그녀의 혼인을 위한 것. 벚꽃에게 시집가기 위해 준비하는 의복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단장시키기 위하여………. 최소한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싶기에 손을 움직이고 있다.
마음을 품어선 안된다. 자기 자신이 싫어질 정도로, 내내 자신을 타일러 왔으면서. 적어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이 마음은 그저 자신의 내면에 담아두지 않으면….
「타루히군, 무슨 일이야?」
나,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했어? 그녀는 그렇게 묻는다.
아뇨, 아무 것도. 나는 그렇게 웃으며, 다시 바늘을 움직이는 일에 전념했다. 무수한 연분홍색 꽃잎들이 새하얀 비단 천위에 꽃피어 오른다. 그것과 동시에, 내 내면에 쌓이는 이 마음도, 점점 더 그 존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 아이의 모습이여야 했을까.
아이의 모습 그대로, 당신과 하나리가 끝날 그 날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그러면 당신은 분명 나 같은걸 신경 쓸 일 없이, 천진난만하게 나를 어린애 취급했을텐데. 내 마음같은거, 깨달지도 않았을텐데.
그러면 분명 편할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욱씬하고 통증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조차 헛수고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하나리가 끝나는 것보다 먼저, 나는 당신을 잊고 만다. 아무리 당신에게 마음을 품는데도, 때가 오면 찰나의 꿈처럼 나 스스로 당신을 떠나보내고 마는 것이다.
벌레의 수명은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렇게, 느긋이 하나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조차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사쿠씨와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 것조차―….
「앞으로 얼마정도……. 지금처럼 있을 수 있어?」
반딧불빛이 비추는 방 안. 내 손끝을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마음 속을 읽힌줄만 알았다. 나는 당혹감을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글쎄요,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아마, 이 신부의상 수선을 끝낼까 말까……. 그정도일려나요.」
그렇게 말했지만, 싸구려 위안같은 소리다. 벚꽃에 희롱 당하고, 하나리(花裏)에 희롱 당한 내가 마음 기댈 곳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이다.
당신을 사모하는 것 정도 뿐이다….
사쿠씨는 가는 눈썹을 꾹 모아 찌푸리며, 왠지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한다.
「그럴수가…….」
꺼져들 듯 가는 목소리다. 끌어 안고 싶다. 그런 충동이, 내 안에서 솟아 올랐다. 당차게 행동하지만 실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아직 천진함이 남아있는 이 사람을.
끌어 안아,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그 충동을, 꾹 참으며 나는 웃는다.
「반딧불은 성장해 어른이 되고, 자손을 남긴 다음 죽는다. 그렇게 숙명지어져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가엽게 여겨준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하다. 이것이 행복이 아닐 리가 없다. 그녀는 눈물을 참고 있다. 속눈썹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는게 보였다.
― 이 이상, 무얼 바랄게 있을까…….
「이것을 입은 당신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의 내게도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무섭지 않아? 기억을 전부 잃는다니. 지금의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거잖아.」 「그런 존재인 겁니다, 저는. 그것은 당신이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리고 딱 한번, 윤기있는 밤색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손 끝에 닿는 감촉은 명주실같았다.
「그러니까, 무섭지도 괴롭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잘, 웃을 수 있었을까. 손 끝을 바라보자, 새하얀 신부 의상에는 연홍색 벚꽃이 활짝 피여 있었다.
Mead : 이번에는 타루히 이야기입니다. 아이와 어른, 두가지 모습을 지닌 타루히에게는 인간이 아니기에 생기는 슬픈 사정이. 게임 본편의 한 부분을 타루히 시점으로 보내드렸습니다. 본편과 맞춰서 즐겨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