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를 입은 사내가 뻗어온 손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아사쿠라 타에는 도쿄역 남쪽 출입구로 발을 내딛었다. 천정을 높고, 몇 개나 되는 오란다풍 기둥이 줄을 지어 있었다. 기둥과 기둥은 츠타하 문양을 새긴 철골로 이어져 있다. 남쪽 출구는 승차전용이며, 경사면 안쪽에 일등과 이등 개표소가 보였다. 밤이 되어도 사람은 많아서 게다에 조리, 구두, 몇종류가 넘는 발걸음소리가 기둥과 레리프 벽에 울러퍼지고 있다. 머리위에 혼연일체가 되어 흘러내리는 음향은 지금부터 여정을 떠날 사람들의 무사를, 또 돌아온 이들의 무사를 축하하고 있는 보이지않는 오케스트라의 수가처럼 느껴지기도했다. 턱시도와 나란히 걷는 타에를 앞질러 연미복과 드레스차림의 남녀가 짐을 맡기는 곳으로 향한다. 그 드레스 뒷모습을 바라보며, 타에는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보았다. 평상시와 다를바없는 취재용 정장이지만, 이 슈트는 거리에서도 세련된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대로 파티에 출석해도 틀림없이 그리 손색은 없으며, 극단적으로 실례되는 일도 아니겠지. 원래부터 즐기기 위해 온것도 아니고. 「그치만…」 최소한 목걸이 정도는 준비했어야했을지도 모른다. 카메라는 그래도, 검은 백은 물품 보관소에 맡기고 가는게 좋겠지. 여자의 자유와 장소를 신경쓰는건 별개의 문제다. 파티 회장에서 커대란 백에 카메라, 그 두갤 다 늘어트리고 있는 여자는 너무나도 꼴불견이고, 주위에도 큰 실례다. 떠도는 안개가 역안으로도 옅게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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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뒤집어쓰고 있던 더비 햇을 문득 깨달은듯 바라본다. 짧게 휘파람을 불고, 더비햇을 삐친 머리위에 얹었다. 「난 진짜 멋진 남잔데.」 두 사람이 사라져간 ,벽돌로 쌓은 터널같은 아치를 바라본다. 「오라비일리 없잖아.」 애당초 오빠가 ‘키쿠에짱’하고 부르겠냐. 남자라면 보통 동생같은건 그냥 막 부르잖아. 그리고 말이다. 여동생이 자기 오빠를 ‘카즈마씨’하고 부를리 없지. 이상하잖아, 그런거. 뭐야 그 호칭들. 게다가 두손 꼭 잡고. 허리까지 맞대고, 뭐하는 남맨데. 얼굴도 전혀 안 닮았어. 「내 추리로 보자면 소꿉친구면서 연인이겠지」 물론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두 사람이 가짜 남매란걸 3년은 간파할 수 없을 것이다. 명탐정의 날카로운 매의 눈이 낳은 간파다. 두뇌와 감이 너무 좋으면 자주 인생의 진실 이면을 직시해버리고 만다. 「멋진 남자인데… 내쪽이 더….」 나루미는 이탈리아제 구두 끝으로 시선을 떨군다. 「뭐, 처음부터 돌아갈땐 혼자갈 예정이였어. 오빠를 배웅하러 간다고 했었으니까.」 「오빠가 아니잖아!!」 바로 주먹을 감싸쥔다. 「아, 아야, 아야야야.」 포스터 끝이 팔랑이며, 쓰여져 있던 문구「문화생활을 위해선 수도를 사용하는게 가장 편합니다」가 눈앞에서 파도친다. 「괜찮아. 손 정도쯤 잡고 있어도.」 총총걸음으로 아치를 나아가는 메이센과 캉캉모를 곁눈질하며, 나루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그런 시대가 오겠지. 마을 안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는건 물론이고, 어깨를 안거나, 남들 눈같은건 신경도 안 쓰고 접문한다거나…. 아, 접문은 역시 좀 그런가…」 아치 너머에는 로터리다. 완전히 어둑어둑하지만 이 시간이라면 그닥 기다릴 필요없이 택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루미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라이도우한테 늦는다고 말했는데 자정도 안되서 돌아갈순없지.」 키쿠에가 오빠랬던 남자를 마중나갔던 방향으로 돌아간다. 떠도는 안개에 떠밀리듯, 나루미의 발걸음은 도쿄역 북쪽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밤이 되면 남녀로 근무교대하는 모양이다. 그건 분명 여자는 밤이되면 일하지말라는 차별이 아니라, 밤에 일하는 여자가 세간에 별달리 좋은 인식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걸의 귀택시간을 사려한 교대겠지. 다음번에 취재해 봐야지. 「호호, 그럼 가장 큰 연회장이로군요.」 「오늘 주최자는 이 호텔에 장기투숙해 계시는 화족(華族) 분이시라던가…」 「뭐야, 불만은 없을텐데?」 「마마와 함께라 좋겠네.」 「아, 아니에요…. 전 아직 엄마가…」 요시오가 손을 잡아 당겼다. 천장에 휘황찬란한 샹데리아가 매달려 있고, 전채와 와인잔이 놓여진 원형 테이블이 몇 개나 줄지어 서있으며, 잘 차려입은 사람들 안쪽에는 거대한 스테이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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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엔 칼피스가 들어있다.」 도쿄역 2층, 그 안쪽에 구분되어있는 1등 귀부인 대합실이였다. 1등석 여성손님 전용이기 때문에 문을 열지 않는한 통로쪽에선 안을 볼 수 없다. 벽면은 절반이 나무결이고, 그 위쪽부터 천장까지 새하얗게 칠해져 있다. 방 중앙에는 다리가 짧은 대형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그걸 중심으로 좌우에 긴 소파가 있다. 그 의자 끝에 앉은 네에가 테이블 위의 물통을 보며 웃었다. 「칼피스는 콜레라 균을 죽이는 거지?」 「물은 저쪽이다. 측간도 있다.」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외투는 무릎을 폈다. 네에까지 도쿄역에 데려올 맘은 없었지만, 혼자 절로 돌려보낼수도 없었고, 언제 나루미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무실에 둘수도 없었다. 「쿠즈노하의 결계를 펼쳤다.」 네에가 의아한듯 고개를 든다. 「마물은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 사이가는 강하다. 야타가라스와 동등한 힘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휘하의 아르카드는 불사신이며, 쿠라마텐구를 중심으로한 병력은 족히 백을 웃도는 대 군세다. 그에 비해 이쪽의 수족은 “관”안의 세 마리 뿐이며, 사이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줄만한 수단도 결여되어있다. 그 하얀 턱시도의 남자를 어떻게 쓰러트리면 좋지? 길게 이어진 2층 통로, 남쪽 입구 호텔 방향으로 걸으며 라이도우는 팔을 휘둘러 동료 악마들을 소환했다. 「괜찮나?」 **
「이제 됐어. 손놔줘.」 「서양식 입식 파티니까 맘껏 골라먹어도돼. 자, 다녀와. 라이도우군이 파티에 참가하라고 했잖아? 제대로 안 먹으면 파티에 참가했다고 할 수 없어..」 「서양 술은 약하네.」 다른 보이의 트레이에 빈잔을 놓고, 새로이 사워 글래스를 손에 쥔다. 「뭐야, 라이도우군도 참. 저런 어린애한테 에스코트를 받고 싶었던게 아냐. 그런 의뢰를 할 리가 없잖아. 아, 진짜 화나네.」 이어 손에 든 와인잔, 고블릿, 콜린스잔의 내용물도 목에 흘려넣고, 스트레이트 리큐르로 입안을 적신뒤에야 타에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도 덜 마신감이 있었다. 앞으로 다섯잔 정도는 더 마셔서 작업에 착수하기위해 기분을 일신할 참이였다. 정면 테이블 근처의 오라가빌 병을 쥐고 직접 잔에 들이붓는다. 「뭐야, 여자가 술을 마시는게 그렇게 신기해? 다이쇼 걸이라면 보통이잖아.」 취한게 아니다. 원래부터 알콜엔 강하다. 누구와 함께 마셔도 언제나 상대방이 먼저 취해 뻗어버린다. 「아직도 보고 있어.」 중년남성의 시선을 등뒤로 하고, 타에는 회장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본래의 목적은 그거다. 『그런데도 워싱턴 군비축소 회의에 의해 군비를 축소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병력감소가,』 타에는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우리 국가를, 제도를 지킬 병력은 감소된채, 지금 이 상황은,』 옆쪽 대각선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와서 타에는 차렷 자세를 풀었다. 회장을 둘러본다. 손님의 태반은 제각기 담소를 나누느라 바쁜 모양이다. 군복 차림 남자의 목소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착실히 듣는자는 적어 보였다. 타에의 입술이 극히 옅은 미소를 띈다. 군인이 단상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직립 부동으로 듣는 사람도 없고, 있기는 커녕 웃으며 술이나 요리를 먹고 마시고 있다. 뭔가 나쁜 농담이나 어딘가 다른 세계로 헤매어든 것 같다. 소학교에서도 그 위인 고등 소학교에서도 식전 행사에 군인이 찾아왔을 땐 천황의 조서가 아니더라도 부동자세로 이야기를 듣게끔 배우며 자라왔다. 여기에 와있는 사람들은 아닌건가? 글래스와 글래스가 부딪히는 소리. 웃음 소리. 담배연기. 사람들의 낮은 발자국소리가 겹쳐진다. 「자유………」 타에는 중얼거렸다. 기분 좋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호응해 막 타에에게 길을 열어준 연미복의 남자가 웃었다. 「와하하핫, 물론. 난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질 생각이외다.」 연미복의 남자와 마주한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미소한다. 「아니아니, 여기있는 누구나 같은 기분이겠죠. 호국초혼. 그를 위한 모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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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도쿄역은 익숙하지만, 작년 동쪽에 새로이 야에스 방면 입구가 생기고 나서는 통로도 계단도 늘어서, 약간 당황한다. 어쨌든 북쪽에서 들어와 호텔이 있는 남쪽으로 향하려면 증축된 동쪽 입구를 빠져 나가야만했다. 「야에스 방면이라면 에도 시대엔 키마타치 봉행소가 있던 곳이지. 안쪽에 강처럼 긴 해자가 아직도 남아있고. 그치만 밤엔 어두우니까 나가봐야 선로가 몇 개 이어져있을뿐 아무것도 없지.」 계단 위에 있는 문을 열자 주색의 반사광이 시야에 뛰어 들어왔다. 「오케이. 과연 나는 명탐정이야. 지름길 멋지게 정답.」 통로 좌우로 간격을 두고, 중후한 나뭇결 무늬가 쭉 이어져 있다. 스테이션 호텔은 지금까지 최대급 호텔이였던 제국 호텔의 객실수를 웃도는, 총 72실을 보유하고 있다. 「뭐야. 이런 통로에서 쑥덕공론인가?」 「저기 다시한번 점등해 주실 수 없나요?」 「어때요, 좀. 저희는 손님이에요. 보여주세요.」 별수 없단 표정으로 종업원이 라이트를 조작한다. 「집이나 호텔의 전등보다 몇배는 밝네요.」 「마치 태양같군요.」 종업원의 목소리를 옆에 두고, 나루미는 계단을 올려다본다. 「뭐야, 파티를 하는건가.」 클래식 연주와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낮게 흘러 내린다. 「그러고보니 배가 고프군.」 스테이션 호텔의 요리는 츠키치 세이요켄이 맡고 있다. 제도 호텔을 웃도는 맛이라는게 세간의 평판이다. 「자아, 눈앞에 공짜밥, 공짜술이 있는데」 붉은 주단 통로를 침착히 걸으며 파티회장으로 추측되는 거대한 입구를 관찰한다. 「호사스러워보이는 파티로군. 흐음, 초대장이 없으면 못들어가는건가.」 통로 앞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저 뚱땡이가 찾는것. 내 감으론…」 빠른 걸음으로 복도 틈안으로 몸을 숨긴다. 남자용 화장실로 통하는 가늘고 짧은 통로다. 캬멜제 양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는다. 「뭐, 뭐냐, 자넨!」 튕겨나가 벽가에서 태세가 무너진 남자가 외치자, 나루미는 다급이 그 몸을 떠받쳤다. 「이런, 죄송합니다. 서두르고 있던지라.」 손수건을 한손에 쥔채, 턱시도의 품 안쪽을 재빠르게 훔쳤다. 그리고 동시에 비만의 사내를 정중히 끌어 올렸다. 「괘, 괜찮다.」 손수건으로 턱시도의 먼지를 털며 말을 잇는다. 화장실 문을 여는 남자의 등을 향해, 나루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식은죽 먹기구만.」 더비햇을 다시 쓰며 웃는다. 「그 뚱뚱한 아저씨한텐 제대로 참회도 했고.」 초대장을 팔랑팔랑 흔들며, 나루미는 가벼운 걸음으로 “호우라이실”로 향했다. 「나도 참 솔직한데다 예의바르고 사나이답다니깐. 파티엔 귀여운 여급들이 있겠지. 있으면 나를 가만 둘리 없어. 어쩔거냐, 나. 뭐, 이것도 제도방위지만. 여급들의 안전을 확인한다. 훌륭한 일이야. 하지만 나도 너무 열심히 일하는걸. 야타가라스한테 보너스를 받아야해. 줄려나, 주겠지. 돈은 제도 방위에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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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며 앞서가는 잭 랜턴이 곤란한듯 고개를 돌렸다. 「라이도우?」 후방의 도아마스도 랜턴과 마찬가지로 당혹의 소리를 흘린다. 「히호?」 하지만 당면한 문제는 죽은 자들의 행진이 아니였다. 「또 같은 통로인가.」 라이도우는 확인하듯 중얼거렸다. 「이걸로 두 번째야.」 배후를 경계하고 있던 도아마스가 말한다. 이계(異界)로 날아간게 아니다. 바닥은 확실히 현실의 것으로 높은 벽도, 천장도, 실제의 건축자재 그 자체다. 틀림없이 도쿄역 안에 있다. 「진귀한 결계다.」 「앞에 있는건 언제나 돔이다. 여.기.로 오.란. 뜻이겠지.」 되돌아가도 그저 반복될 뿐이다. 돔을 등지고 걸었을텐데 계속 걷다보면 어느새 반드시 앞쪽에 북쪽 돔입구가 보인다. 그렇다면 언제나 진행방향쪽에 위치한 그 장소로 갈 수 밖에 없다. 「도아마스. 무슨 냄새 나는거 있나?」 라이도우와 두 마리의 사역마들은 북쪽 돔에 발을 들이 넣었다. 도쿄 역 북쪽 돔은 독수리가 지키고 남쪽 돔은 사성수가 수호하고 있다. 야에스 방면의 창문만이 조금 열려있는건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용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겠지. 도쿄역은 제도의 수호문이며, 팔각마법식, 풍수, 사신상성등 몇겹이나 되는 마법경계가 깔려져 있다. 라이도우는 고개를 들었다.
『워싱턴 군비 축소 회의에 의해 파기처분된 전함 토사가 여기에 되살아납니다.』 단상 중앙에 놓여져 있던 하얀 천이 벗겨지더니, 그 좌우로 배치된 접사다리형의 조명에 불이 들어온다. 『전함 토사, 순금제 모형입니다.』 대리석 카운터에 어깨와 팔꿈치를 괴고 있던 나루미는 자칫 위스키 잔을 떨어트릴뻔했다. 「수, 순금?」 단상을 살피기 위해 몸을 뻗으려다말고, 바로 더비햇으로 얼굴을 가린다. 「왜 이렇게 군관계자가 많은거야.」 이미 몇사람 정도 ‘과거’에 면식이 있는 얼굴을 확인했다. 「위험해.」 위스키를 핥으며 인파의 그늘 틈에서 단상을 살핀다. 「그건 그렇고… 순금이라니. 1m이상은 됨직한 모형이잖아. 대체 얼마 정도인거야, 저건. 보통 재산으론 무리지.」 그 연단위에는 하얀 턱시도에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인사하고 있었다. 『이 전함 토사는 군에 기증하려 합니다.』 성대한 박수가 터지고, 나루미는 위스키를 뿜을뻔했다. 『실제 토사는 비열한 외압에 의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렸습니다만』 어째서 그렇게 선심을 쓰는거야. 그럼 나한테도 돈을 줘. 그 포탑만이라도. 아니, 대포 하나만이라도 좋으니까. 『이 토사의 처분은 신경쓸 필요 없이 군의 뜻대로하시길. 장식하시든 굽든. 굳이 일부러 구워 형태를 망가트리지 않아도 순금으로서의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웃음 소리와 박수가 겹쳐진다. 나루미는 손에 든 위스키를 핥았다. 「뭐, 저만한 순금덩어리를 받을 수 있다면 거야 상급장교라고해도 휙휙 찾아오겠지. 스테이션 홀에서 파티를 한다고 하면 부잣집 귀부인들도 크게 기뻐하겠고.」 나루미는 코웃음쳤다. 이어 눈을 깜빡인다. 모두가 단상위의 신비로운 빛에 시선을 빼앗겼다. 조명을 쬐어 빛나는 금색 전함 옆에는 하얀 턱시도의 남자와 장교 군복을 입은 남자가 굳게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막대한 증여, 사이가 후(侯)의 애국심은 만리밖의 적조차 물리칠수 있을 겁니다.』 회장에 있는 전원이 잔을 들자, 나루미도 다급히 그에 맞췄다. 『건배 전에 여러분께 단순한 질문을 하나.』 하얀 턱시도가 이어 마이크를 잡는다. 『무수한 선인들이 목숨을 내던져 제도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께선 지금 실로 그때가 왔다고 한다면 제도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계십니까?』 나루미의 중얼거림을 완전히 파묻을 정도로 회장안에 일제히 동의의 소리가 퍼졌다. 「뭐, 뭐야…. 라이도우 같은 녀석이 이렇게나 있는거야?」
물론 세계는 안온했으면 좋겠고, 제도도 언제나 무사했으면 좋겠다. 나서서 죽고 싶진 않지만 친한 이들을 돕거나 구하기 위해선 목숨을 걸일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상위의 남자의 어조는 그런 긴박한 경우를 가정하고 있는게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제도를 위해 몸을 내던지라는 말을 하고 있는것처럼 들린다. 기분 탓일까. 「응.」 타에는 혼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건배!』 해일같은 주위의 호응에 이끌려 타에도 잔을 들었다. 『제도 수호를 위하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붉은 와인을 기울인다. 식도를 애무하며 흘러떨어지는 액체가 잊고 있던것을 일깨워줬다. 이 모임의 명목은 “호국초혼 부흥 5기 축하”였다. 지키기 위해 싸우고, 죽어간 사람들이란 곧 두 번에 이른 대지진의 희생자를 표현하고 있는 거겠지. 잘 형용할 순 없지만 제 1차 관동대지진 10만인 강(强), 제 2차 대지진 3만인 약(弱)의 희생위에 빌딩이 줄지어 서있는건 사실이다. 단상의 남자가 말하고 싶은건, 결코 희생자들을 추도하는걸 잊지 말라는 의미로… 『제도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칠 분들을 위하여』 마이크 너머의 목소리에 타에는 입술에 대고 있던 잔을 기울이던걸 멈.췄.다. 내가 신문기자니까 어구 표현이나 어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걸까. 「……?」 바로 옆에 작은 체구의 인영이 서있다. 게다가 타에가 당혹했던건 그 목면 기모노와 옛 추억이 겹쳐진단 것이였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화살깃 무늬다. 그것도 머리는 달마가에시로, 세련된 메이지 여성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것도 할머니와 마찬가지였다. 의식도 못한채 와인을 들이켰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그 임종을 지켜보진 못했다. 사랑했던 할머니는 타에가 고등소학교 소풍에 나가있는 동안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의기양양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언제나 가장 먼저 반겨주던 화살깃 무늬의 기모노가 없었다. 보고할게, 얘기할게 잔뜩 있었는데…. 소풍같은거 가지말걸 그랬다……. 나는 웃고 구르며 들떠 있었다. 할머니가 죽었다는데…! 「타에.」 옆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되잖니, 타에. 여자가 그렇게 거칠게 술을 마시면.」
「히호!」 머리를 감싸며 새하얀 잭 랜턴의 눈이 도아마스를 노려보았다. 「불평하지마. 그 호박머리가 꼬챙이에 꿰뚫리는거랑 그냥 나한테 맞는거랑, 어느게 더 낫겠어?」 들이댄 창끝의 근본, 수실에 검은 손톱을 얽으며 말했다. 「아아아아아―…」 하얀 연기 속에서 창대를 쥔 쿠라마 텐구가 두 팔을 수직으로 쳐들고 있다. 도아마스는 이를 악물었다. 돔의 천장에서 날개 소리가 강하한다. 허공에서 몸을 버둥이는 도아마스의 아래쪽 돔 바닥엔 이미 쓰러진 야마부시 옷차림의 쿠라마 텐구들이 점점히 구르고 있고, 라이도우가 남은 세 마리의 텐구들과 격하게 검을 나누고 있다. 나부끼는 검은 외투의 등에서 잭 랜턴이 떠오른다. 「이 바보. 나보다 라이도우를 보조해!」 「아앗!」 벽돌 파편이 우르르 무너져내린다. 「아, 안 아파. 이런건!」 손목을 얽어매는 수실을 물어뜯는다. 다가오는 쿠라마 텐구의 안면에 발차기를 날리고 발끝의 발톱으로 안구를 짓이긴다. 견갑골에 칼날이 파고든다. 천장의 독수리 조각은 8개. 거기서 증원으로 출연한 야마부시 차림의 쿠라마텐구도 여덟. 그 중 둘은 중상은 입었지만 남은 여섯은 무사했다. 반이 공중에서 창두를 내밀며, 남은 이들은 바닥으로 향한다. 한쪽 날개를 잃은 쿠라마 텐구도 아직 움직일 수 있다. 녀석은 날 수 없게 된 것뿐이다. 라이도우의 적이 늘었다. 라이도우를 원호해야만했다. 라이도우!! 소환주의 이름을 부르려했지만 도아마스의 입안은 무너진 건물 파편으로 가득했다. 안면이 벽에 격돌해버린 개 악마의 등뒤로 홰를 치며 날아드는 쿠라마 텐구들의 칼날이 차례차례 박힌다.
***
나루미는 군관계자로부터 얼굴을 숨기기 위해 깊이 눌러쓰고 있던 더비햇의 차양을 손끝으로 밀어올렸다. 「뭐야, 이건.」 「흠?」 취한건가? 난 원래부터 마음이 섬세하고 너무 상냥해. 말주변이 없고, 괜찮은데라면 얼굴, 머리, 패션센스 정도뿐인 남자로 난폭함과는 담을 쌓은 남자라서… 언성을 높이는일도, 날뛰는 일도 없지. 키쿠에 양에 대한 상심을 이렇게 홀로 조용히 술로 풀려하고…… 뭐, 파티니까 주위가 소란스럽고 사람도 많긴하지만… 무심코 너무 마셨다. 몇잔이나 마시고 만건 “공짜술”이라서가 아니다. 그런 째째한 남자가 아니다. 난 마음도 넓다. 남녀 평등에도 대찬성이고. 그리되면 매일 몇 번이고 목욕탕에 다녀서 마을 경제에 공헌할껄 약속하지. 난 구두쇠도 아니고 마음은 넓으며 경제 공헌도 하고 게다가 상냥하다. 이렇게 작업복으로 파티에 출석해있는 아저씨한테도 불평같은건 안한다. 그렇고 말고. 자유야말로 다이쇼 데모크러쉬다. 「작업복?」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작업복은 아니지. 군의 상급 장교들까지 와있는 파티라구. 무례하다고해야하나, 예의가 아니라고 해야하나. 구멍뚫린 더러운 목장갑에, 목에는 수건이라니, 밭갈고 돌아가는 차림인가, 그건? 「남자가 남 앞에서 울지 말라고.」 코웃음치며 중얼거린 나루미는 남은 위스키를 삼켰다. 뭐, 뭐야?! 뭔가 대각선 방향에서 덥쳐왔어…. 둔청색의 날개같은 그게…, 매처럼 급강하해서… 작업복의 몸을 빠.져.나.와. 연미복 남자의 목을 잡아채더니… 「뭐, 뭐야….」 「무슨일이…」 이야길 나누고 있는 사람들 중 한쪽은 낡은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그 윤곽이 희미하게 비쳐보이고 있었다. 단편적으로 강하하는 둔청색의 박쥐의 날개가 윤곽이 비쳐보이는 인간을 꿰뚫고 그 대화상대인 예복입은 자들을 절단해나간다. 「죽은자….」 나루미도 겨우 깨달았다. 「뭐… 이런…, 도망치라고 당신들. 박쥐같은거한테 죽임당하잖아. 왜 죽은 사람이랑 차분히 얘기같은걸 나누고 있는거야.」 나루미는 달렸다. 「바보냐.」 멋대로 하라지. 나루미는 생각했다. 어딘가의 죽은 자랑 얘길 나누고 싶다면 그래줘. 그것도 “자유”다. 난 사양이지만. 뭐가 어찌된건진 모르겠지만 36계 줄행랑이 상책, 군자 위험한 곳엔 발을 들이지마라고 했다. 어디선가 단말마가 울러퍼지고, 테이블 위의 접시가 이어 깨지는 소리가 겹쳐진다. 오케이. 별다른 문제는 없다. 이 회장의 넓이, 많은 인파. 거기에 비해 적은 한 마리. 고작 한 마리 갖곤 이 많은 사람 전부를 덮칠 수도 없고, 넓은 만큼 도망칠 공간은 여유다. 하얀 턱시도의 남자는 사라져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뇌장을 흩뿌린채 하늘을 보며 쓰러진 군복의 남자에게 합장한뒤 나루미는 순금의 전함 토사를 움켜쥐었다. 안개처럼 떠도는 스모크. 연단은 출구와는 반대방향이고,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이쪽을 보지 않는다. 봤다고해도 신경쓸 여유는 없겠지. 전함 어디라도 좋으니 잡아떼기위해 혼신의 힘을 담는다. 하지만 포탑도, 함교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순금이니까 칼날로 깎을 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나이프는 지닌게 없다. 「부러져라!」 대좌를 차서 토사를 연단위로 떨어뜨렸다. 「애송아!」 거기에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 나루미의 바로 옆에 문양이 들어간 하카마 차림에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가 서있었다. 「수, 숙부… 옛날 옛적에 뒈졌을텐데…. 어떻게… 있는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할머니. 나, 여성 해방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서…」 뒤쪽에서 마찬가지로 죽은 자와 얘길 나누고 있던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일자로 절단됐다. 뿜어져 나온 대량의 피가 무릎꿇은 타에의 발치까지 흘러왔다. 「할머니. 좀 더 얘기하자.」
「애송아. 뭐냐, 그 서양물든 경망스러운 차림은.」 반론하면서도 나루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입은 움직이지만, 사지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자들과 얘길 나누고 있는 자들이 조각상처럼 서있는건 이.때.문.인.가. 「넌 옛날부터 그렇게 겉멋만 신경쓰지.」 나타난 백령은 각자의 혈연이다. 그리운 얼굴, 목소리. 콧구멍은 상대의 의복 냄새조차 놓치지않는다. 누구나 움직일 수 없는건 과거 사랑했던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겠지. 일종의 정신적 주박. 선인이 되기 직전이었던 두자춘이 무슨일이 있더라도 말하지 말라는 금기를 깨고 신라전 앞의 모친에게 말을 걸어 버린것처럼. 그 사람만은 무시할 수 없다. 냅둘 수 없다. 얘길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망할. 다리가 안 움직여. 나도 인간의 자식이란 건가. 「알겠나, 애송아. 사나이주제에 중요한 내실을 소홀히하다니,」 「위험해…」 움직이지 않는 인간들을 차례차례 절단하고 있는 박쥐의 날개가 연단을 향해 선회한다. 숙부의 말투는 자신과 똑같다. 나루미는 멍하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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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떠있는 서양 어린애 잠옷같은 망토를 쥐었다. 「이 돔에서 탈출해라.」 「이건 함정이라긴보단 내 발을 묶어두기위한거다.」 「우리를 “뭔가”에 접근시키지 않으려하고 있다. 잭 랜턴, 그걸 찾아라. 너만이라면 탈출할 수 있다. 사이가가 있는 곳을 밝혀내.」 칼과 칼이 부딪혀 푸른 불꽃이 튄다. 「히~호~」 뭔가를 말하려 하는 잭 랜턴에도 아랑곳않고 그 망토를 크게 휘두른다. 「가라, 돌아보지마!」 통로 안쪽으로 작아져가는 망토를 향해 외치며 라이도우는 쳐들어올린 무라마사를 일섬해 쿠라마텐구를 쓰러트렸다. 머리위로 날개짓 소리가 울러퍼진다. 또 증원인가. 대각선 위, 시야끝 벽면에 움직이지않는 도아마스의 모습이 비쳤다. 등에 칼이 몇 개나 박힌 모습으로 정면은 건물 파편에 처박혀있다. 「아테루이.」 옅은 수은색의 금속관은 아직 열리지 않은채, 비취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아테루이를 소환할 수 없었다. 상공과 좌우에서 폭풍처럼 칼날이 엄습한다. 라이도우는 달리며 무라마사를 휘둘렀다. 적의 칼끝을 재빨리 후려치며 사각을 노려 칼날을 휘둘러올린다. 순순히 따를지 말지 몰랐다곤하나, 악로왕의 거구를 방패로 하는 책략은 이미 못쓰게 됐다. 권총은 잭 랜턴을 도망치기위한 탄막을 친다고 총알을 다 쓴 상태로, 다수의 검의 달인들을 상대로 탄창을 갈고 있을 여유는 도뮤지 없었다. 11대 1. 동료악마는 없다. 무기는 손에 든 이 한자루 칼 뿐이다. 학생복 여기저기가 찢어져 핏줄기가 흐른다. 그래도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라이도우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할미새 꼬리처럼 휘둘렀다. 몇 개의 검은 점이 허공에 흩어진다. 예비 탄환이다. 그게 흩어진 영역은 라이도우의 사면. 그냥 던져 맞추는건 의미가 없다. 애당초 탄환만으론 쓸모도 없다. 라이도우는 검은 점의 무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균열음이 이어진뒤 초연과 화약을 흩뿌리며 도탄(跳彈)이 튄다. 실포 탄환은 저부의 뇌관을 두드리면 내부의 화약이 폭발, 그 폭발의 추진력으로 선단의 탄두를 발사한다. 라이도우는 휘두른 검으로 뇌관을 때린 것이였다.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대도 허공에 뿌린 모든 탄환의 뇌관을 때릴순없고, 총신을 지나지않은 발사론 방향도 정할 수 없으며, 콜트 라이트닝으로 쏘았을때처럼 높은 가속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적은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어 효과는 충분했다. 일섬과 함께 초연과 폭발염을 튀기며 대량의 탄두군이 비상한다. 라이도우가 빠른 발소리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탄피 소리가 겹쳐지고, 이어 천과 살, 뼈를 가르는 소리가 이어진다. 탄환을 피한 쿠라마 텐구가 칼에 쓰러지는 소리였다. 「살아있나, 도아마―…」 벽면의 개악마에게 말을 걸려하다 등뒤의 기척을 느꼈다. 이 세계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의 아군이다. 「죠헤이(錠平)」 「어머니」 돌아가신 어미의 모습. 그 목소리를 곁에 두고, 라이도우는 경직된듯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천장의 독수리 조각에서 다시 쿠라마 텐구 여덟이 진을 짜며 나타난다. 정지해있는 라이도우를 노리고 각자 무기끝을 겨누고 일직선으로 급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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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올려다보는 3층 부분의 층계참에서 하얀 턱시도 차림의 사이가는 대각선으로 펼친 두 팔을 서서히 들었다내리고 있었다. 그 앞으로 몇 개의 반투명한 빛줄기가 날아올라간다. 윤곽선은 희미하지만 그들의 빛은 여실했다. 내부에 섬광을 담은 안개라 형용해야할까. 보이지 않는 강을 흐르는 피륙인양. 남쪽 돔의 천장으로 사성수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이어이어 빨려들어간다. 「파티는 대 성공이군.」 사이가는 옅게 웃었다. 회장 “호우라이 실”에서 죽은 자가 죽은 자를 데리고 이곳으로 흘러 들고 있다. 그야말로 호국초혼(護國招魂)이다. 그래, 파티장의 이름 “호우라이”, 봉래(蓬莱)는 불로불사의 선경이라 칭해지는 영산, 거길 찾은 인간들은 불필요한 육체를 벗어던지고 영원히 쇠할일 없는 존재가 되어 제도 수호를 위해 이끌려온다. 「그를 위한 도관(導管)은 깔아뒀다.」 오늘밤 중으로 도쿄역의 팔각수호문은 일찍이 없던 거대한 결계의 중심이 될것이다. 회장의 백령들이 모두 모이면 분명 임계점을 돌파한다. 팔각수호문은 단숨에 제도 전체를 수호할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후 그 어떤 마력도 이후의 제도에선 무효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막.을. 수. 있.다.」 천장을 향해 백령이 모여들며 남쪽 돔 전체가 옅고 아름답게 발광하는 피막으로 뒤덮여간다. 「무슨 일이지?」 쿠라마 텐구 한 마리가 후방 통로로 날아들어오고 있었다. 층계참까진 다가오지 않는다. 다가올 수 없다. 아르카드가 드나들 수 없었던것처럼, 돔의 빛이 닿는 장소에서 악마는 활동불능이 되고 만다. 「뭐냐. 북쪽돔의 침입자가 어떻다고…, 라이도우…!?」 사이가는 턱수염에 손을 얹었다. 「질리지도 않고 야타가라스가 보내온 “청소부”라고만 생각했다만… 그 젊은이… 대체 어떻게 깨어난거지…. 이렇게나 빨리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층계참을 등지고 하얀 턱시도는 보고를 계속하는 쿠라마 텐구에게 다가갔다. 「뭐라? 이미 2소대가 괴멸이라고? 아무리 사역하는 동료 악마가 있다해도 데빌 서머너 하나에게 16마리나 당하다니… 용맹과감하며 검술의 명수로 알려진 텐구의 일족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나?」 질타하는듯했지만 사이가는 웃고 있었다. 「제 14대 라이도우, 좋은 눈을 하고 있었지.」 하얀 턱시도가 내딛는 역 주위는 마치 묘비 밑에 있는것처럼 정숙했다. 그러한 세계의 지배자가 사이가였다. 「소대는 얼마든지 북쪽돔으로 파견해라. 만전을 기해. 하지만 아무리 라이도우라해도 슬슬 한계겠지. 내 결계안에선 사람들의 등뒤에 있는 죽은 자들은 모두 그 앞에 나타난다. 물론 라이도우 역시 산 자인 이상 예외는 아니다. 그리운 죽은 이를 눈 앞에 두고 움직일 수 없게 되게 되던가, 그렇지 않데도 치명적인 틈이나 방심이 생길거다. 죽이기엔 아깝지만 그 젊은이의 사명역시 제도 수호. 재회한 죽은 자와 함께 백령(魄靈)이 되어 팔각 수호문의 힘이 되는 것도 바라던 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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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훌륭해졌군요.」 「사랑스런 얼굴과 이렇게 마주할 수 있어 어미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아니 위장은 아니다. 그리 생각게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검, 무라마사의 저주베기라면 어미를 없앨 수 있습니다.」 학생모에 질풍이 닿는걸 느끼고 라이도우는 손을 들었다. 대량의 예비탄환을 공중에 뿌리면서도 고개는 어디까지나 정면의 어머니를 향한채로, 칼을 머리위로 일섬한다. 폭죽의 몇배는 되는 폭발음이 이어지고, 쿠라마 텐구의 비명과 파열음이 이어졌다. 탄피와 피, 살의 파편, 불꽃에 휩싸인 야마부시 옷의 끝자락이 쏟아진다. 「어째서 어머니를 없앨 필요가―…」 라이도우는 초연 너머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금지된 술법에 의해 당싱의 배후에서 소환된 모양입니다.」 「하지만 죽은 백령의 극히 일부일터. 사람들에겐 반드시 누군가의 혼령이 붙어있단건 알고 있지만, 그건 생전의 누군가의 극히 일부이며 파편이고, 의식도 말도 없으며 그 사람이 지닌 빛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을터. 생전의 모습 그대로 등 뒤에 서있는건 마물이나 악마 뿐.」 「파티.」 「사이가가 한 짓이로군요.」 머리위에서 다시 날개짓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적 한 마리가 푸른 기모노의 등뒤에서 칼을 휘둘러들고 있었다. 「어머니, 무사하십니까.」 「라이도우.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창끄트머리를 무라마사로 베어 떨구고, 홀로 남은 창대를 발로 찼다. 「이 어미가 아무리 베이든 찔리든,」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호흡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이를 세게 악물고 있는걸 깨닫는다. 「어미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는 몸이 아니고, 무기 역시 전부 몸을 통과해버리고 맙니다.」 「라이도우. 아직도 모르는 겁니까.」 등 뒤의 어미가 말한다. 「알고 있습니다.」 세 마리의 쿠라마텐구가 오른쪽에서 돌진해온다. 「어머니.」 푸르게 물들인 기모노를 베어넘기려드는 쿠라마 텐구에게 칼을 투척한다. 「필요 없습니다. 어미를 지키려해선 적의 책략에 놀아날 뿐입니다.」 무라마사에 가슴이 꿰뚫린 쿠라마 텐구가 털썩 바닥에 쓰러진다. 「지킵니다.」 「헛된 행동입니다, 제 14대 라이도우. 그 이름에 맹세한 소임을 무시하고 환영인 어미에게 정신이 팔리다니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지키겠습니다.」 라이도우는 모친의 정면에 장벽처럼 서서 무라마사를 오른손에 들고 쿠라마텐구와 불꽃튀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지키겠습니다.」 빈 공간인 왼쪽, 정면, 그리고 바로 위에서 쿠라마 텐구가 질주해온다. 주머니의 탄환을 검지 손가락으로 튕겨 투척했다. 왼쪽 손의 적 안면 안구에 명중해 적의 속도가 극단적으로 둔해졌다.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상대에겐 다리를 세게 들어올려 옆구리를 걷어찼다. 자유로워진 무라마사를 머리위의 적에게 투척한다. 셋방향의 쿠라마텐구를 순식간에 물리쳤다. 남은 정면의 적을 향해 탄환을 던지려하던 라이도우의 눈에 그늘이 진다. 안된다. 늦고 만다. 적이 빠르다. 탄환을 투척하는것보다 빠르게 칼끝이 닿는다. 무라마사는 머리위의 쿠라마텐구를 꿰뚫은채 아직도 허공. 이쪽은 빈손이다. 방어할 방법이 없다. 칼날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바로 뒤엔 어머니가 있다. 칼을 피한다는건 그 칼이 어머니를 꿰뚫는다는걸 의미한다. 정면의 검풍이 학생복의 전신을 뒤엎는다.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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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뒤엎던 바람이 갑자기 흐트러지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고우토」 『어이, 옆에서 또 온다.』 몸을 젖힌 쿠라마텐구의 얼굴에서 검은 고양이가 짧게 뒤돌아본다. 『나원.』 양손 발끝을 질척하니 피로 적신 고우토가 바닥에 내려선다. 『그 무슨 짓이냐, 아무리 도검에 찔려도 문제없을 백령(魄靈)을 지키기위해 자신을 방패로 삼다니. 14대째는 바보랄까. 아니, 그게 14대째의,』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는 모친을 향해 목을 갸릉거리며 고우토가 말을 이었다. 『그게 14대의 강함인지도 모르지.』 「고우토. 야타가라스의 사자를 만났나?」 『이거야, 이리 되버려선 기다렸다해도 마찬가진가.』 라이도우는 작은 의뢰주의 이름을 불렀다. 『그 아이들이 본 어미는 원래부터 죽은 자였겠지. 사이가는 진재(震災)로 죽어간 자들 중 아직 카론의 인도를 받지 못해 명부에 도달하지 못한 백령(魄靈)들도 모으고 있던 모양이니까.』 남아있던 쿠라마 텐구들이 노도처럼 창을 찔러온다. 라이도우는 검을 휘두르며 물었다. 『제물이야. 사성수의 먹이지. 전생(轉生)도, 수호령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채 소멸하는 제물.』 발톱을 빛내며 고우토도 반대쪽의 쿠라마텐구를 향해 뛰어들었다. 살이 깊이 패이는 소리와 무라마사의 절단음이 울러퍼지며 마물들이 무방비하게 옆으로 구르며 바닥을 낮게 진동시킨다. 『사이가는 조금씩 죽은이들을 모으고 있던 모양이지만, 근소한 수라 야타가라스도 묵인했던거겠지. 제도의 문이 강해지는건 나쁜일이 아냐. 허나 모은 백령(魄靈)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다 이유도 밝히지 않고. 극비리에 마의 대군세를 도쿄역에 집결시켜뒀다. 이래선 모반이라 생각해도 별 수 없지.』 천장에서 집요하게 쿠라마 텐구의 무리가 나타난다. 외투 소매에서 라이트닝 볼투의 회전 탄창에 실탄을 장전하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고우토가 토해내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문제인거다! 사이가는 계획을 서두르고 있는 모양이다. 야타가라스의 클레어 보안즈[賢視]로도 봤지만, 여기와서 확신했다. 이제까진 이미 죽은 자들의 백령(魄靈)밖에 모으지 않았던게 지금에 와선 마침내 산자로부터 백령(魄靈)을 뽑아내려하고 있다. 라이도우의 어머니가 그 증거다. 인간의 등뒤에서 수호령까지 소환하다니』 천장에서 훼치는 대집단은 때를 엿보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쪽이 내보일 일순의 틈을 노리고 있다. 고우토도 그것은 알고 있겠지. 목소리는 내면서도 움직이려하지않는다. 섣불리 행동하면 일제히 강습해온다. 수를 모았단건 학익진(鶴翼陣)이나, 부채진등, 텐구 필사의 전술을 준비했음이 틀림없다. 아테루이의 “관”이 있는 장소는 이미 확인해뒀다. 허나 그 장소까지 달려가 “관”을 주워들 유예가 있을진 모르겠다. 안개가 흐트러졌다. 천장의 쿠라마 텐구 집단이 원추형으로 낙하해온다. 거대한 드릴이다. 무수한 칼날과 창을 들이민 대회전이 바닥으로 엄습해온다. 라이도우는 아테루이의 “관”을 향해 달려갔다. 윤곽이 투명한 모친이 뒤를 잇는다. 계속 떨어지려 하지 않는건 소환명령이기 때문이겠지. 라이도우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머니가 있어준다. 그 상냥한 손에 닿고 싶어 견딜 수 없었지만, 손을 맞잡기 위해선 그 자신도 백령(魄靈)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건 알고 있다. 그게 사이가가 노리는 것이란 것도. 파티회장에선 분명 어머니와 같은 백령(魄靈)들이 인간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손을 쥐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요시오.」 하지만 잡을 수 없다. 맞잡을 수 없다. 미소하는 어머니의 윤곽이 일그러지고, 반투명한 빗줄기가 되어 사라져간다. 라이도우에게 비통함은 없었다.
***
분진 투성이가 되어 낙하한다. 「닷샤~」 떠도는 연기 너머로 장신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닷샤~」 뭔가 커다란 것을 끌면서 찾아온다. 바로 눈 앞에 보일텐데 진로를 전혀 바꾸려 들지 않는다. 「방해다.」 일부러 부딪쳤다는 게 옳겠지. 「비켜.」 가시 돋친 목소리가 울린다. 「웃,」 단순히 어깨가 닿은것 뿐인데 이정도로 자세가 무너지다니. 발치로 검은 고양이가 착지한다.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발치의 검은 고양이가 깊은 한숨을 쉰다. 『마을의 무뢰배, 이 통칭 정도는 들어본적 있겠지.』 하얀 기모노가 딱하고 멈춰섰다. 쿄지가 노곤하니 돌아본다. 「그렇게 숨어서 소곤소곤 떠들어대면 이 몸 악담이라도 하나해서,」 멋대로 뻗은 앞머리 사이로 어른거리는 두 눈은 작열하는 태양볕에 번뜩이는 창칼을 연상시켰다. 『숨었다니. 그저 뒤에 있었을 뿐이다.』 고우토가 서있던 바닥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남자가 한쪽팔을 내밀었다. 그 손목 부분에 감은 천 틈새로 “관”끝이 보였다. 뚜껑이 열린 상태다. 팔을 뻗어 순간 마물을 소환했다. 그 마물 때문에 불기둥이 만들어진것 같지만―… 「게다가, 뒤라는 건 등이잖아. 배후지. 보이지 않잖아. 그건 숨어있는거 아니냐고, 이 바보.」 검은 외투의 그늘 자락에서 고우토가 한숨 섞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까~」 팔꿈치를 들어올린 것뿐인데 쿠라마텐구의 안면이 함몰됐다. 「아직 이 몸께서 떠드는 중이잖아.」 한번도 돌아보지않고, 하얀 기모노의 남자는 맨.손.으로 마물을 쓰러트렸다. 「죽인다, 어이.」 「그게 아니지.」 하얀 기모노가 다시 팔을 휘두른다. 다시 또 불기둥이 치솟았다. 목표는 고우토로, 어깨에 얹고 있는 라이도우도 함께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몸은 쿄지다.」 완전히 간파했다고 생각했지만, 불꽃의 일부가 어깨를 핥으며 피어오른다. 「데빌 서머너 초대 쿠즈노하 쿄지다!」 외투를 벗어 소화를 위해 회전시켰다. 「그 손엔 몇 개의 “관”이 숨겨져 있지?」 라이도우는 물었다. 「눈치챘나. 눈만은 좋은 모양이군, 14대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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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공격당해 봤으니까.」 간파해냈을텐데도 불기둥은 그를 쫓아왔다. 그 보통이 아닌 힘은 현생에 대한 고별인사, 단말마의 힘이 낳는 기술이겠지. 음양의 마법술로 “관”을 봉인하여, 마물이 해방되면 바로 마력을 펼쳐 멸하도록 통제되어 있다. 「터무니없는 소환이군.」 팔을 휘둘렀다. 나타난것은 살이 타 문드러진 해골검투사다. 「통상 소환도 하는건가.」 쿄지가 등을 돌린다. 「잠깐만, 쿄지. 힘을 합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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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32마리, 하늘을 나는 군세다. 14대 라이도우는 그걸 순식간에 쓰러트릴 만한 악마를 소환가능하단거냐.」 사이가는 턱수염에 손을 얹었다. 「이거 “청소부”치곤 방심할 수 없겠군. 상급 주술사 혹은 법사, 암살 임무에 있어선 우수한 자들의 모임이니 말이야. 하지만… 4개 소대를 단번에 전멸시킬수있는 “청소부”라니 들어본적이 없어. 그래서야 마치 실무 전투 부대가 아닌가. 그런자가 지금의 야타가라스에 있기라도 한단건가.」 문득 멈춰서서, 사이가는 귀를 기울였다. 착각일까,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뭐라? 벽을 파괴해서 돌입했다고?!」 사이가는 미간을 찌푸리고, 왼쪽에 떠 있는 쿠라마 텐구를 바라보았다. 「어리석다. 그렇게 억지로 결계를 돌파하면… 내 결계는 현실 세계와 표리일체……. 실제 도쿄역에도 어떻게 파괴의 영향이 미칠지도 모르거늘. 정말 “청소부”인가. 남몰래 암약해야하는 야타가라스의 규범에 반(反)하지 않느냐.」 진동음이 울러퍼졌다. 「뭐…? 야타가라스의 “청소부”가 1층과 2층 진영과 마력 방벽을 돌파했어?」 사이가는 자신의 말을 의심했다. 「대체 누구냐. 아니지, 우선은 무너진 결계를 재림(再臨)해야만해…. 새로이 소환할 필요도 있고…. 좋아, 3층까지 물러나라. 가장 넓은 곳은 “호우라이 실”이다. 이 타이밍에 돌입했단건 사람들을 구출하러 온거겠지. 설령 내 말살만이 목적이래도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선 싸울수 없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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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을 끌며 계단을 올라온 쿠즈노하 쿄지는 붉은 주단 좌우를 보며 그 오른쪽에 한가득 주차되어있는 오보로구루마의 모습에 입술끝을 비틀어올렸다. 「거기를 지키고 있는거냐. 그렇군, 그래. 과연 차는 바보야. 굳이 길을 안내해주다니.」 횡으로 줄지어 늘어선 오보로구루마에 시동이 걸린다. 정면으론 2대밖에 보이지않지만, 그 뒤로 3대 혹은 4대가 밀접해 줄지어 서 있겠지. 엔진음이 전방에서 접근해온다. 「바보냐.」 뒤에서 접근해오던 가샤도쿠로의 대군이 뿜어져나온 화염 속에 차례차례 탄화되어 화장터에서 나오는 뼈의 파편처럼 무너져내린다. 「그래 갖고 이 몸을 함정에 빠트렸다고 생각하는거냐. 오보로구루마의 소음에 섞여 다가올 셈이였겠지만, 통로 한쪽만 경비가 단단하고 다른 한쪽이 텅 비어 있으면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몸의 절반만이 불탄 가샤도쿠로가 기울어지면서도 낫을 든 왼팔을 치켜들며 다가온다. 「생각.하.잖.아, 하고 물었다고.」 쿄지는 왼손을 뻗어 가샤도쿠로의 팔을 어려움없이 뿌리째 잡아 부러트렸다. 불꽃이 내달린뒤 남은것은 좌우의 벽을 따라 구르는 런던 택시 “블랙캡”의 잔해였다. 그 중앙엔 쿄지가 충분히 걸어갈 수 있을 만한 길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었다. 「비키라고 했어.」 관통을 걸다 아직 왼손에 가샤도쿠로의 낫을 쥐고 있단걸 깨달았다. 한쪽팔은 완전히 탄화되고, 다른 한쪽도 뜯겨져나간 해골 악마가 그런데도 쿄지의 뒤를 노리며 그를 물어 뜯으려하고 있었다. 「돌려주마.」 손에 든 낫으로 가샤도쿠로의 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후려친뒤, 쿄지는 걷기 시작했다. 「닷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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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갛게 짓무른 두 손을 축 아래로 내리고 아테루이는 그대로 엎어져 앉았다. 거대한 나무 망치를 휘두른듯한 진동이 바닥위로 길게 이어졌다. 「아테루이, 고마워.」 라이도우는 손끝으로 인(印)을 맺어, 거한의 입에 채워진 족쇄를 벗겼다. 「라, 라이도. 손이 탈 것 같아.」 라이도우는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 간신히 서있는 도아마스에게 말했다. 「뭐, 뭐야, 라이도우.」 백과 흑. 두 색의 체모엔 아직 덜마른 피가 점점히 들러붙어있고, 한쪽 눈꺼풀의 붓기는 전혀 가라앉은 기색이 없었다. 「아테루이의 두 손에 물을 뿌려줘.」 라이도우는 말했다. 「소중하니까, 도아마스.」 붕. 「내, 내가?」 「지금은 아테루이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고 있어줘.」 개악마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그, 그런 소릴 하면서 나한텐 언제나 잡일만 맡기는걸.」 「가, 가끔은 라이도우의 방에서 소환해도 조, 좋아.」 「손이 탈 것 같아.」 「라이도는 내 입의 주박을 푼채로 갔어.」 돔 출구에서 도아마스가 짧게 돌아봤다. 「우리들 전원을 해방한 채로.」 도아마스의 목소리는 안개가 떠도는 통로 안쪽에서 울리며 들려왔다. 「이런건 처음이다…. 서머너로선 기피해야할 행동이야…」 이젠 개 악마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셋다 “관”에 넣지도 않고 적지로 가다니. 그래서야 뭐가 데빌 서머너냐, 라이도…. 수족 하나 없이 어떻게 싸울 셈이냐.」 아테루이는 목에 늘어진 족쇄를 향해 시선을 떨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을 셈이냐…, 라이도.」 소환주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가 사역하는 마물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만 “관”에 봉인되어 있는 상태에선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손이 탈 것 같아.」 아테루이의 목소리가 북쪽 돔 내에 울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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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타이어를 태운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아지랑이처럼 백연이 떠돌고, 통로 한편엔 탄화된 가샤도쿠로 무리가, 다른 한편엔 용해된 다수의 오보로구루마의 파편이 양 옆으로 연이어져 있다. 「쿄지인가.」 발치에서 고우토가 수긍한다. 『그렇겠지. 녀석이 쓰는건 소돔의 불꽃. 아무래도 “관”에는 소돔 화염계의 악마만 봉인되어 있는것 같군. 그건 그렇고 소돔(sodom)의 불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힘과 센스는 실로 굉장하군. 쿠즈노하의 이름을 칭하는 건 그저 겉멋만이 아니야. 이쪽은 오보로구루마 한 마리에도 고전을 금치 못했는데. 여기엔 몇 대나 되는군. 이런, 8대인가.』 명백하게 “길” 이어진 마차의 잔해방향으로 나아간다. 「쿠즈노하 쿄지는 몸에 두른 천에 “관”을 숨기고 있는 모양이다.」 전방의 벽을 무너트리며 쿠라마 텐구가 통로로 뛰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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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쥔 직도, 칠성검을 휘둘러 맞은편에서 날아오는 쿠라마 텐구 두 마리의 몸을 절단한다. 검을 휘두른 기세로 몸을 선회시켜, 한쪽 팔을 굽혔다. 팔꿈치에 감긴 천 사이로 숨겨진 “관”이 섬광과 함께 발한 불꽃의 창이 그 앞의 모든 것을 불태웠다. 셋타가 착지한 장소는 누군가의 머리위였다. 마물인지 인간인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봤자 할.일.은 매.한.가.지.다. 바닥에서 막 날아오르던 쿠라마텐구 무리의 머리가, 가슴이, 몸이 그 불길에 꿰뚫려 꼴사납게 젖혀졌다. 테이블과 백령(魄靈). 연미복의 남자들이나 드레스 차림의 여인 몇몇도 뻗어나온 불길에 함께 꿰뚫린다. 「닷샤~」 쿄지는 개의치않는 안색이였다. 「너무 쪘잖아.」 흐르는 피의 원류, 쓰러져있는 살집 좋은 연미복 남성에게 칠성검을 찔러넣는다. 「조심하라구, 돼지. 발이 미끄러질뻔했잖아. 피가 많다고, 피가. 조금 줄여. 줄여주지, 어이.」 닷샤~하고 숨을 쉰뒤, 쿄지는 접근하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든다. 「아아아아아아, 너, 넌 인간이지? 그렇지? 우릴 구해주게.」 쿄지가 칠성검을 날카롭게 휘둘렀다. 오른쪽의 군인이 세로로 갈라지더니 좌우로 쩌억 벌어지며 쓰러졌다. 칠성검은 그 등뒤로 다가와있던 쿠라마 텐구도 함께 갈랐다. 「사사사사사사―……」 왼쪽의 군인이 어린애처럼 엉거주춤 쿄지를 올려다본다. 「사?」 쿄지는 귀를 파며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검끝을 군인의 이마에 밀어넣었다. 칠성검을 턴 뒤, 눈앞의 군복으로 피거품을 닦는다. 쿄지가 뛰었다. 연단 위에서 하얀 턱시도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백령(魄靈)과 얘길 나누던 누군가의 목덜미를 잡아들어 그 몸을 방패로 삼았다. 사이가가 쏜 기(氣)의 응집체가 방패가 된 인간의 내장을 파헤쳤다. 살이 도려나가고 뼈가 깨져 방패는 점점 작아져간다. 「닷샤~」 쿄지는 바닥으로 구르자마자, 대량의 눈물을 흘리며 웅크려앉은 드레스 여성을 들어올렸다. 새로운 방패를 전면에 내세우고, 단상을 단숨에 뛰어오른다. 「네가 이번 “청소부”인가. 누구냐.」 쿄지는 눈깜짝살 사이에 너덜너덜해진 드레스녀를 자못 구리다는듯 내던졌다. 바로 눈앞에 백령(魄靈)과 대치해 정좌하고 있는 카멜 슈트의 남자가 있지만, 역시 게의치 않는다. 죄다 베어낼 뿐이다. 「사람들을 구할 맘은 없는건가.」 그러는 사이가가 손끝을 들었다. 「늦어!」 쿄지는 칠성검으로 사이가의 어깨죽지를 그어내렸다. 쿠즈노하?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남자는. 라이도우의 혈족같은건가? 피투성이의 여자인형―설마 진짜 인간인건 아니겠지―을 내던진 남자가 나루미 바로 옆에서 대형 직도를 휘두르려 하고 있다. 어, 어이. 하지마. 나한테 맞잖아. 농담이지. 맞는다구. 어이, 잠깐만. 그런 칼 여기서 휘두르지마. 위험하잖아! 섬광을 발하는 칼날이 카멜 슈트를 엄습해왔다. 「비켜, 라이도우.」 도와 검을 맞댄체, 두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횡이동한다. 칼끝은 상대에게 겨눈채다. 「바보가! 아직도 모르는거냐, 14대 애송이. 사이가는 백령(魄靈)을 모으고 있어. 여기 손님들도 모두 죽여서 죽은자로 만든뒤에 이송(移送)할 셈이라고. 그럼 먼저 죽이면 되지. 이 몸의 칠성검이나 네 무라마사 둘다 저주 베기의 힘을 지니고 있어. 우리들 칼로 목숨을 끊으면 백령(魄靈)이 방황할 일 없고, 사이가가 끌고 갈 일도 없어. 녀석의 계획은 좌절된다.」 두사람이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검풍의 격돌만으로도 단상위엔 아지랑이 같은 공기의 휨이 일어났다. 쿄지가 침이라도 내뱉는듯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진짜 바보구만, 14대째는! 여긴 사이가의 결계야. 적이 어디에 숨어있을지, 어디서 나타날지도 몰라. 이 방에서 나가봤자 복도에서 죽거나 계단에서 죽어버리면 사이가의 뜻대로다. 그럼 여기서 죽여두는게 좋잖아. 그쪽이 더 안심이지. 사이가가 백령(魄靈)을 모을 수 없게 되는건 확실해지니까. 여기서 전부 죽이자구.」 두 사람이 휘두르는 검풍이 대기를 찢어가른다. 라이도우와 쿄지는 순간 이동같은 속도로 간격을 좁혔다. 칼끝이 그리는 하얀 유선이 교차한다. 격돌하는 도와 검에서 격한 빛의 포말이 분출한다. 힘겨루기가 되려하는 순간 쿄지가 대담하게 웃었다. 「잘가라.」 팔에 감긴 천에 끼워넣어진 “관”이 발광한다. 쏟아져 나오는 불길이 라이도우의 가슴께에 직격했다. 크게 젖혀 허공에 떠오른 라이도우를 향해 쿄지가 무릎을 든다. 이번엔 “관”에서 화염이 불어닥쳤다. 검은 외투가 홍련에 감싸여 멀리 튕겨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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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잃었던건 극히 몇초였다. 그걸 체내 시계가 가르쳐주었다. 회장은 정숙 속에 가라앉아, 백령(魄靈)도 마물의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그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덤으로 나루미에게 물었다. 「에, 아, 숙부 말야? 날아왔던 네 몸에 붙은 불길에 닿으니까 사라졌어.」 그런가. 이 몸의 “관”엔 전부 주술 봉인이 되어있다― 쿄지가 발생시킨 불이라 거기에 닿은 죽은이는 돌아가게 된건가. 별수없다. 「그건?」 요시오의 턱시도 윤곽선이 묘하게 반짝거리고 있는걸 알았다. 「헤헷. 내 나름의 생각한거야. 옷 윤곽선에 꿀이나 버터를 칠한다음 사카린을 뿌려뒀어. 사령들은 윤곽만 빛나잖아? 그거랑 비슷한 느낌으로 보이니까 텐구들도 제법 속아 넘어갔어.」 연단 밑을 내려다보자, 요시오와 마찬가지로 옷 윤곽에 사카린을 뿌린 어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중 하나, 동그란 안경을 쓴 신사가 입을 연다. 「요시오군의 아이디어는 굉장해. 꼭 다음 작품에서 쓰고 싶군.」 라이도우는 무심코 질문했다. 어디선가 들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며 단상에서 몸을 일으킨다. 쿄지가 돌입해온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아니, 쿠즈노하 쿄지는 데빌 서머너기 때문에 들어올수 있었을 확률이 높다. 일반인들이 통과할 수 없다면 그 북쪽 돔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건 역으로 위험하다. 라이도우는 뭔가 생각난듯 고개를 기울여 요시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2층 1등 귀부인 대합실로 가라. 네에도 거기에 있어.」 쿠즈노하의 결계를 쳐뒀다. 사이가의 결계 내에서 어느 정도 수호력을 유지할 수 있을진 불명이지만, 쿠즈노하의 결계를 완전히 무효화하는건 불가능할 것이다. 요시오가 곤란한듯 말했다. 「나루미씨.」 「라이도우, 난 조금 더 여기 있을까하는데.」 그 시선은 단상위를 구르고 있는 금색 전함 모형을 향해있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구출하기 위해선 역시 사이가를 쓰러트릴 수밖에 없다. 「아르카드!」 라이도우는 무라마사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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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샤~」 관통을 끄는 쿄지는 남쪽돔을 앞에 두고 셋타의 걸음을 멈췄다. 「뭐야, 파티회장의 백령(魄靈)들이 일제히 흘러나가기에 이미 계획완성인가 싶어 쫓아왔더니 이 몸을 함정에 빠트릴 덫이란건가.」 공간 안쪽의 돔 입구에 사이가의 모습이 보였다. 「거의 완성이다. 이제 조금만 더 백령(魄靈)이 모이면 팔각 수호문의 결계는 임계점을 돌파한다.」 홰를 치는 소리가 교차하고 상공 전후좌우, 그리고 머리위로 쿠라마텐구와 가샤도쿠로 대집단이 모습을 보였다. 「엄청 시시한 덫이구만.」 날개짓소리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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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빛은?」 연단에서 칼을 쥔채로, 라이도우는 나루미를 돌아봤다. 「카본 아크등이야. 태양광선과 가장 가깝다던가?」 라이도우는 고개를 돌려 바닥을 구르는 금색 전함 모형에 총을 쐈다. 「요시오, 다른 한쪽 라이트도 박쥐에게 향하게 해.」 라이도우는 나루미에게도 조작을 부탁했다. 하지만 반사범위내에 아르카드를 묶어 두는게 어렵다. 하지만 두 방향에서 비쳐드는 빛을 두려워해 함부로 공격해오지않는다. 라이도우는 허공에 금 파편을 던져, 이어 폭압탄으로 금을 산산조각으로 분쇄했다. 다시 나루미가 비명을 지른다. 「키, 키이익!」 아르카드의 날개에, 몸에, 금가루와 파편이 들러붙는다. 비행하는한 몸에 붙고 만다. 금가루는 카본 아크등을 반사해 라이트의 빛 범위를 벗어나도 거대 박쥐를 빛나게 한다. 표적의 움직임이 이어 둔해지고, 나루미도 요시오도 박쥐에게 빛을 비추는게 쉬워졌다. 「키기기기기기긱」 비행하는 아르카드가 비명과 함께 줄어든다. 태양광에 가장 가까운 범위의 파장, 그 빛의 조사(照射)는 뱀파이어에겐 태양 그 자체다. 다만 몸은 황금색이다. 상대는 불사다, 현 상태에선 어차피 쓰러트릴 수 없다. 섣불리 공격해서 금 파편이 벗겨지는것보다 이대로 이쪽의 위협이 안될 상태로 놔두는게 낫다. 불사의 적을 지나치게 몰아넣어봤자 시간 낭비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피난시키는게 선결이겠지.
폭풍이 소용돌이친다. 「3방향이 한계라고?」 쿄지는 웃었다. 「사이가, 이런거냐. 야타가라스에 필적하는 힘은 이정도로 무력한거냐? 좀 더 있겠지, 좀 더 하자구. 이 몸와 야타가라스한테 말라비틀어질때까지 싸우라고.」 관통을 끌며 쿄지가 남쪽돔으로 나아간다. 거대한 2개의 원기둥이다. 「실로 감탄하고 칭찬할만하군. 허나, 지금의 전방위공격으로 “관”은 전부 사용해버린게 아닌가?」 「히호」 「히호, 히호호, 히」 따라오려하는 호박머리를 흘긋보며 후방을 가리켰다. 「북쪽 돔에 도아마스와 아테루이가 있다.」 잭 랜턴을 통로에 남기고, 라이도우는 남쪽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닷샤」 과연 무겁다. 뚜껑이 튀더니, 검은 천이 풀려나왔다.
아르카드를 손에 쥐고, 나루미는 기쁨에 덩실댔다. 「어쨌든 순금이니까.」 라이도우바보녀석이 토사를 산산조각내버렸다. 참나, 아깝기짝이없게. 발버둥치는 아르카드를 테이블 위에 억지로 밀어붙인다. 「버둥대지마, 난 적이 아냐. 네가 악마든 뭐든 아무래도 좋고, 위해를 가할 맘도 없어. 오히려 구출자라고. 이 금, 몸에 들러붙은 녀석, 방해잖아? 방해지? 내가 캐내줄테니까」 손끝으로 박쥐의 피부를 긁는다. 「긁어내면 간단히 떨어질거라 생각했는데.」 나루미는 테이블위의 이쑤시개를 손에 쥐었다. 「조용히 해. 날뛰면 위험해. 이걸로 금을 벗겨낼뿐이야.」 이쑤시개를 핥은뒤, 피부에 다소 찔러넣어 긁어낸다. 튕겨져 나오자, 약간 강하게 밀어넣는다. 금가루가 흘러떨어졌다. 「오케이, 오케이. 이 방법이면 되는구나.」 박쥐가 격하게 발버둥쳤다. 「그러니까 가만있으래도. 찔린다구. 뭐 악마니까 조금 찔려도 괜찮겠지만. 어이, 날뛰말라고 말하잖아, 모르겠어? 위험한건 너라고. 난 금을 가져가고 싶을 뿐이야.」 푹. 「아 미안. 찔렀다.」 아르카드의 가.슴.에서 이쑤시개를 뽑아낸다. 「에?」 그 먼지가 흩어진다. 금가루도 함께 날아간다. 나루미는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회수하는건 불가능했다. 「뭐, 뭐야……. 뭐야 대체…….」
블러드 3세(제페슈)가 소환해, 드라큘라의 모델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박쥐악마 아르카드, 선대 쿠즈노하 라이도우도, 14대 쿠즈노하 라이도우도 쓰러트릴 수 없었던 불사신을 자랑하는 그 악마는, 허나 나루미 탐정 사무소의 소장 나루미에 의해 심장에 “목제” 이쑤시개가 찔려, 지금 절명했다.
남쪽돔 앞에서 라이도우는 쿄지가 소환한 악마를 보고 있었다. 그 악마, 고모라가 대텐구를 먹고 있다. 「여어, 라이도우.」 거대 악마의 배후에서 쿄지가 돌아다본다. 「이게 끝나면 살아남은 녀석들을 죄다 죽이러 갈테니까 이제 방해하지마.」 「사이가를 쓰러트리면 돼.」 라이도우는 무라마사를 뽑았다. 「무슨 짓이야.」 「고모라!」 「안봐준다고 했잖아.」 「웃기지마!」 검은 외투가 느닷없이 돌아선다. 라이도우는 남쪽 돔 내로 뛰어들었다. 「무슨 속셈이냐.」 답하듯 라이도우는 칼을 버렸다. 「검이 아닌 걸로.」 쿄지가 다리를 들어 바닥을 내리찍자 셋타가 타일 바닥을 깨트렸다. 「소문의 14대째가 이정도로 바보일줄이야.」 학생복의 라이도우는 콜트 라이트닝을 쥐고 있었다. 「뭣?」 그 이상 뭔가 말하기전에, 라이도우는 트리거를 당겼다. 「네, 네노―――――오오옴――――――」 탄창이 회전하더니 다시 탄환을 쏜다. 「아, 우, 이, 몸의, 머, 리, 아오아오아오오오―――――――」 콜트 라이트닝의 햄머가 다시 움직이려하자,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이가.」 라이도우는 벽을 박차며 뛰어 올랐다. 발로 벽을 차 3층까지 단순에 달려오른다. 목덜미를 잡힌다. 라이도우는 층계참 안쪽에서 뻗어져나온 사이가의 한쪽 팔에 목이 죄인 상태다. 「라이도우, 14대 라이도운가.」 응집체가 라이도우의 두 팔을 쏜다. 「앞으로 곧이였다. 조금만 더. 그랬더라면 이 팔각 수호문의 결계는 제도 전체를 뒤덮을 터였다. 유감이야.」 두 팔을 들 수 없다. 「사이가. 적이란 뭐지.」 발딛을데가 적다. 상반신은 물론이고, 정신히 완전히 돔 밖으로 밀려온채, 하얀 턱시도의 팔 하나로 지탱되고 있는 상태다. 「유감이군.」 응집체가 학생복을 찢는다. 학생복의 어깨가 도려져 나가고, 외투가 허공에 흩날렸다. 「누구와 싸우려했었지?」 검은 외투가 마치 나비처럼 돔 안으로 떨어져내려간다. 「뭐가 오지.」 얼마후, 사이가를 깊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함이 일어나 제도를 유린한다.」 「난 제도를 지키고 싶었다.」 학생복이 찢어지고 돔 안으로 찢겨져 날아간다. 중얼거리던 사이가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건, 혼간지의,」 「난, 올바른, 일을,」
턱을 내려 목언저리를 본다. 카메라 스트랩이 내 목걸인가.
그래도 좋다. 아니, 이게 좋다. 난 이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언젠가 반드시 일류 기자가 되어 자서전도 집필해서 여자라도 할수 있단 사실을….
「자, 잠깐만.」
손을 잡아 당기는 턱시도를 불러세웠다.
「오케이.」
나루미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듯 고개를 끄덕인뒤, 손에 든 모자의 주름을 꼼꼼히 폈다. 난 뭘 하려는 거지? 이 외제 고급품을 발치에 내던지려고?! 바보같긴. 한때의 짜증으로 바닥에 내팽개쳤서 더럽히다니, 바보중의 바보. 냉정한 명탐정인 나답지 않다.
짜증난게 아니다. 명탐정은 알.아.버.린것 뿐이다.
두뇌와 감이 너무 좋아 생긴 폐해라고 해야하나.
「내 쪽이 더 멋진 남자잖아.」
아치 너머, 안개가 떠돌던 밤의 어둠속으로 여급 키쿠에와 그 오라비는 사라졌다.
「어딜 봐도 내 쪽이 더 멋진 남잔데!!」
오라비가 아니다.
그 두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손을 꽉 쥐고, 포옹직전까지 전신을 맞대고 뜨겁게 서로 응시했다. 주위에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접문까지 했겠지.
선물을 잔뜩 보내고, 가게에서 엄청 주문하고, 그 다음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뒤, 택시로 여기까지 보내주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갈때의 택시비까지 사전에 건네줘 버리고….
터널처럼 이어진 벽돌 아치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나루미는 옆쪽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후려쳤다.
코웃음치며 벽을 등진다.
메이센(銘仙)의 기모노 여성이 순간 부끄럽다는듯 캉캉모를 쓴 남자와 잡고 있던 손을 땐다.
「아직 덜 마셨어.」
***
도쿄역의 와복 차림 엘리베이터걸은 우아미려하기로 유명하고, 엘리베이터 그 자체도 아직 진귀한 것이기도해서 낮엔 구경만이라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찾아든다. 허나 지금은 소문의 ‘걸’이 아니라 깃을 세운 철도원 제복을 입은, ‘보이’라 불리기엔 다소 지나치게 나이를 먹은 남성이 핸들을 조작해 승강기를 움직이고 있었다.
승강기가 덜컹덩컬 울리는 사슬 소리를 머리위로 들으며 타에는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버스 여 차장은 어떨까.
바닥이 강하게 진동하더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이어 문과 인접한 플로어 층의 문이 열리자, 타에는 스테이션 호텔 3층에 발을 내딛었다.
넓고 긴 복도에 붉은 주단이 깔려있다.
파티회장인 호우라이실을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들, 복도에서 앞서가는 남녀 모두가 한 곳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담소가 메아리친다.
「제 2차 대지진도 벌써 5년인가요.」
「군부의 요인이나 재단 총사도 와 계신 모양이에요.」
옆에 나란히 선 턱시도와 손을 잡고, 타에도 그 흐름을 뒤따랐다.
복도가 갑작스레 넓어지는 곳에 거대한 여닫이 문이 있고, 그 앞에 새하얀 천이 깔린 접수용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었다.
초대권을 내민 타에를 보고 호텔의 보이가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에의 손을 잡고 있던 요/시/오가 강한 눈빛으로 접수원을 쏘아봤다.
보이가 실없는 웃음을 띈다.
「뒤쪽이 기다리잖아. 얼른 가자구, 타에짱.」
「타, 타에짱이라니. 친한척 하지마. 그리고 이제 손 놔.」
「그건 안돼. 라이도우형이 제대로 옆에서 손잡고 있으라고 했단말야.」
「또 부모자식사인줄 알면 곤란하다구…. 그 보이 정말 열받아. 왜 내가 엄마로 보이는건데. 진짜. 예복을 준비한다더니, 라이도우군, 이 아이를 말한거라면 먼저 좀 말해주지.」
「어이, 타에짱. 이방 엄청 넓다~」
「고구마 맛탕이다.」
라이도우는 테이블 위에 종이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선전하고 있지. 만약 마실게 부족해지면,」
라이도우는 무릎꿇고 앉은채, 구석 화장실을 가리켰다.
이 뒤엔 야행 열차 운행밖에 없기 때문인지 검은 외투와 작은 원피스 모습말곤 대기실에 아무도 없었다.
네에가 물었다.
「요시오는 일하고 있다.」
「라이도우가 하는일, 돕는거였지?」
탐정 사무소에서 요시오가 오랫동안 밖을 바라보고 있었던건 풍경을 즐기고 있던게 아니라 은앵각 빌딩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네에를 염려했기 때문이였겠지.
「이 방에서 나가지마.」
라이도우는 검지 손가락 끝을 가볍게 깨물어, 베어나오는 피를 주먹에 손바닥에 비벼 테이블에 찍었다. 검지 손끝으로 무라마사의 가드를 쓸어내리며, 인을 맺는다. 외투가 크게 펄럭였다.
「?」
「괜찮아. 부적이 있으니까.」
「나는 일이 있다. 돌아올때 데리러 오마.」
「다녀와.」
배웅하는 목소리에 라이도우는 입구 언저리에서 고개를 돌렸다.
「데리러 오는건 요시오나 타에란 언니가 될거다.」
「에? 라이도우가 아니야?」
「데리러 온 사람과 같이 돌아가.」
「라이도우는 안 와줄거야?」
답하지 않고 검은 외투는 문 손잡이를 밀어 복도로 나갔다.
아마 네에를 데리러 올 순 없겠지. 살아있다손쳐도 사지멀쩡할거란 보장이 없다. 동귀어진 정도면 잘한 셈이다.
「잭 랜턴. 탐염등으로 사이가가 있는 곳을 찾아내라.」
히~호~하고 부유하는 목소리 아래로, 개 악마 도아마스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라, 라이도우. 다행이다, 무사하구나. 나 언제 귀환됐던거지?」
「움직여줘.」
「물론이야. 뭘 하면 될까.」
「제도 수호. 사이가를 멸한다.」
「어머 무서워라. 그 빨간 망토 뭔가요.」
「놀랍게도 밤에 제도를 활보하고 있는것같아요. 단순한 주정뱅이겠죠.」
잘 차례입은 손님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파티회장내에 흐른다.
타에는 쭉 옆에 서있던 요시오를 노려보았다.
「라이도우 형과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약속했으니까 이 손 못 놔.」
「차암. 손을 잡는건 회장에 도착할때까지면 충분해. 그게 의뢰니까.」
「그래?」
「그래. 자, 먹을건 잔뜩 있으니까 실컷 먹어.」
요시오가 차례차례 요리를 날라오는 보이들을 둘러본다.
「그, 그런가. 그렇구나. 먹는것도 일이구나.」
요시오가 겨우 손을 때준다.
타에는 어금니를 깨물며 지나가던 보이의 트레이에서 플루트형 글래스를 집어 들었다. 향으로 보아 샴페인인 모양이다. 입술을 축인뒤 단숨에 들이킨다.
마시지 않을수가 없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옆 테이블에서 살찐 중년남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경거리를 쳐다보는 눈이였다.
「보자, 에도가와 선생님은…」
육중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머리위로 흘러나온다. 거대한 스테이지 위에서 군복 차림의 남자가 열심히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연설을 듣고 싶은 자는 들으면 된다. 먹고 싶으면 먹는다. 웃고 싶으면 주위를 신경쓸 필요없이 웃는다. 모두가 마음껏 살수있는 세계다. 최소한 이 파티회장 안만은,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그런 이상향이 되어 있다.
타에가 걷기 시작하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사들이 솔선해서 길을 열어줬다.
『몸을 내바쳐 제도를 지키는 그 의기, 마음가짐, 근성이 있다면,』
「어머, 남작은 과연 사나이다우세요.」
「어라, 저기 계신 멋진 군인님은 확실히 남작의 지인이신…」
「육군의 무나카타 소장입니다. 오자마자 바로 인사는 나눴습니다만… 이런 벌써 돌아가시는건가. 지금부터 주빈의 세레모니가 있을텐데. 바쁘신 분이니 별수없군.」
「세레모니?」
「놀랍게도 주빈께서 군에 막대한 기부 및……」
종업원실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며 나루미는 방향을 확인하려했다.
붉은 주단이 좌우로 쭉 이어진 남쪽동의 이층 객실구역이다.
전방에 인파가 있기에 나루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가갔다.
계단 입구로 이어진 넓은 공간이다.
풀칠해 뻣뻣한 제복을 입은 호텔 종업원이 접사다리가 붙어있는 라이트를 나르고 있었다. 그 주위로 드레스 차림의 중년 여성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이제 슬슬 운반해야합니다.」
제복 차림의 종업원이 말한다.
렌즈면은 위를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섬광이 터져나와서 등뒤에 있던 나루미도 무심코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빛속에 중년 여성들의 교성이 겹쳐진다.
「긴자의 가로등으로도 쓰이고 있는 카본 아크등이니까요.」
종업원이 다소 자랑스러운듯 말했다.
「여기에 쓰이는 메탈 할라이드 램프는 유럽에서 발명된 것으로 태양광과 가장 가까운 파장을 방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양복 옷깃을 다듬으며, 나루미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삼층에 도착하자 바로 눈앞에서 보이가 요리가 실린 와곤을 밀며 지나간다.
그 앞에는 서서 얘길 나누고 있는 화사한 차림의 몇몇이 보인다.
턱시도에 비만한 몸을 구겨넣은 남자가 성급한 걸음으로 내린뒤, 기름진 얼굴을 붉히며 통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진중한 구두소리가 다가오자, 나루미는 기세 좋게 몸을 내밀었다.
화장실로 꺾어들어온 비만의 턱시도남과 격하게 부딪힌다.
「그건 나도다. 어린애처럼 뛰쳐 나오다니」
「다치신덴 없으십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참으로 실례했습니다. 이.러.한 짓.을 하.게 되.어.버.린 것. 마음 아프기 짝이없습니다.」
나루미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으, 음. 젊은것치곤 상당히 예의바르군.」
「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음. 제도의 청년이 모두 자네처럼 솔직하고 상대에 대한 경의를 지니고 있다면 좋겠군.」
「네.」
붉은 주단이 깔린 복도로 돌아간다.
「히호?」
의미는 안다.
주위엔 옅고 새하얀 안개가 떠돌고 있다.
일렬로 나아가는 한 사람과 두 마리의 앞으로 북쪽 돔으로 가는 입구가 보였다.
도쿄역 1층의 넓고 긴 중앙통로로, 라이도우의 검은 외투 좌우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다.
아직 운행종료 시간 전이다. 내객이 역안을 걸어다니고 있대도 이상하진 않다. 허나 오가는 그들 인영에게는 발소리가 없으며 윤곽이 모두 반쯤 투명했다.
죽은자… 생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백령(魄靈)의 무리다.
「전에도 사이가의 이계(異界)에 들어간적이 있지만…」
「라이도우. 좀전부터 같은 통로를 왔다갔다하고 있어.」
「그렇지만, 그렇지만도 않아.」
「에?」
개악마의 의문을 뒤로하고, 검은 외투가 전방을 향한다.
「하, 함정이야, 라이도우. 꾀어들이는거라구.」
「그렇겠지. 돌파하면 돼.」
「사령의 냄새밖에.」
「잭 랜턴은?」
「히호호~」
「탐염등에도 반응이 없나.」
1층부터 3층, 팔각 천장까지 훤히 뚫은 높은 고층 건물이다. 북쪽 개찰구가 옆쪽 안에 보이지만, 지나가는 건 역시 죽은이들 뿐이였다.
어둡진 않게 주위 일대의 조명이 두루 미치고 있다.
평온한 공기와 빛이 소리도 없이 쏟아져내린다.
저 멀리 머리위로 팔각 천장의 그 여덟 귀퉁이에 새겨진 독수리의 조각이 보인다.
독수리 조각은 날개를 펼친 자세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일제히 홰를 칠것만 같다.
날개소리가 들린다.
실제로도 홰치고 있다.
독수리들이 내려온다.
광풍과 함께 쿠라마텐구로 그 모습을 바꾼 그들이 급강하하며 라이도우를 덥쳐왔다.
**
주위에 울러퍼지는 박수의 파도에 이끌려 타에는 스테이지를 바라보았다.
회장의 조명이 꺼졌다.
뭔가가 시작되는거라고 생각했다.
어둠속에서 무수하다고 볼수있는 인파가 단상위를 바라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린단건 알았지만, 군인의 이야기를 직립 부동한채 듣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이어 말을 잇던 누군가의 연설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이크 조정음이 흐른다.
눈부시게 강한 빛이다. 분명 메탈할라이드 램프, 카본 아크등이겠지. 긴자의 가로등을 취재한것도 있으니 틀릴 리가 없다.
발광하는 찬란함에 회장이 술렁인다. 그건 타에도 마찬가지였다.
카본 아크등의 빛에 놀란게 아니라, 그것이 비추던 것의 눈부심에 놀란 것이였다.
뭐야, 이 파티는?! 절대로 파티같은데 참석할것같지도 않은 고지식한 상급장교까지도 보인다. 편안한 모습으로 보아하자니 현장돌입으론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군특고(軍特高)나 특무부의 간부까지 어디있는게 아닐까. 그러면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도 높으니까…
군부에 주다니 아깝잖아. 금이라고 금. 그녀석들 진짜 헛된 낭비한 해댄다고.
「과연…」
즉 이건 당당한 로비쇼란거다. 군이 금을 녹여 달리 쓸거란건 이미 광고 완료. 군부로서도 금덩어리로 살금살금 건내받는것보다 뒤가 구릴일도 없고. 어디의 사업가 영감인진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군과 강력한 커넥션을 쌓고 싶은 모양이다.
왜이래…, 내 동체시력이…. 시야 안쪽이… 둔한걸. 회장의 조명을 꺼놓은데다 스모크라고 흘려내보내고 있는건가. 설마 안개가 여기까지 들어올리도 없고.
주위의 손님들은 공기의 변화를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난… 사양하겠어」
**
단상을 올려다보며 타에는 둥근 턱에 손가락을 댔다.
어딘지 뭔가가 이상한 질문이다.
위화감 중 하나는 “선인들이 목숨을 내던져 제도를 지키기위해” 건이다. 언.제.적, 무.슨. 일.을 가리키는 걸까.
에도막부 붕괴라면 그건 “지킬 수 없었던” 것이 된다.
사람들이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제도를 지켰다…. 위기…. 다이쇼 7년의 미국 소동인가. 다이쇼 10년의 하라 타카시 수상 암살. 다이쇼 17년의 금융공황…. 작년의 하마구치 오사치 저격 사격…. 전부 큰 사건이긴했지만, 단상위의 남자의 얘기에 부합된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건배의 신호음과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명이 꺼진 어두운 회장에 메아리친다.
왜 현재형?
지진 피해자들에게 바치는 거라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위하여”가 옳은 용법이잖아.
그녀처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나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장서서 몸 바칠것을 호소하는 목소리. 목숨을 걸고 임하는 귀중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 남자들의 자랑과 설교. 거기에 맞장구치는 여자들의 웃음짓는 모습밖에 들리지 않는다.
잘못 말하는건 누구에게나 있는일이니까. 일일이 신경쓸 필요도…….
노부인이다. 조금전까진 없었다. 입식 파티장이니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이동하든 상관은 없지만, 기묘한 것은 그 부인이 목면 기모노 차림이란 것이였다. 실례긴하지만 케케묵은 서민의 평상복이라 파티회장에 입고 나올만한 옷은 아니다.
「하, 할머니…?!」
「그치만 건강해 보여서 안심이야.」
돌아가셨을 조모가 바로 옆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화살깃 무늬의 기모노 윤곽이 반쯤 투명한 채로.
**
초연과 하얀 안개가 함께 떠돈다. 코를 벌름거리던 도아마스는 몸을 돌림과 동시에 등뒤에 떠있던 잭 랜턴의 후두부를 손바닥으로 힘껏 후려쳤다. 유선형을 그리는 창끝이 조금전까지 잭 랜턴이 떠있던 공간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창끝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뒤 창을 꺾어내기위해 무릎을 수직으로 들었지만, 그 기세 그대로 허공에 떠오르고 말았다.
높이 쳐들어올린 긴 창 선단 부분에 개 악마가 딸려있는 상태다. 수실이 검은 손톱과 손을 얽어 꿈틀대며 준동해서 손목을 포박해버린다.
대열이 무너진다. 라이도우와 등을 맞대고 그 사이에 랜턴 도령을 배치해서 도령은 두사람의 등에서 두사람을 언제나 원호하는 것…이였을텐데. 내가 빠져버리면 라이도우의 후방은 빈틈 투성이다. 랜턴 도령만으론 완전히 커버할 수 없다.
매의 조형에서 새로이 출현한 쿠라마 텐구의 무리다.
손에 든 각등에서 몇줄기의 빛줄기를 천장으로 내쏜다.
섬광의 줄기가 금방이라도 도아마스를 덥치려하고 있던 상공의 쿠라마 텐구들의 얼굴에 직격, 그 달개비색 날개의 움직임을 어지럽히고 둔화시킨다.
「히호오~」
「모, 모처럼 도와줬는데? 시끄러. 이런건 아무것도 아냐. 냉큼 밑으로 돌아가.」
호박머리에게 화내고나서 수실에 묶인 손목을 냅두고, 도아마스는 남은 손발로 창자루 부분을 붙잡았다. 요는 창두 아래를 꺾어버리면 된다. 그럼 해방된다.
장창이 메트로늄처럼 기울었다.
순간 몸을 뒤틀었지만 정면이 부딪히는것을 피했을 뿐으로, 도아마스의 후두부와 등은 가차없이 돔벽에 부딪혔다.
바닥위에서 창을 쥔 쿠라마 텐구가 다시 두팔을 휘둘렀다.
크게 휘두른 장창과 함께 등에서 먼지를 흩날리며 개악마의 몸이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좌우에서 풍압이 밀려든다. 달개비색 날개를 펄럭이는, 증원해온 쿠라마 텐구다. 잭 랜턴의 섬광을 쬔 여운으로 아직 시야는 흐린 모양새지만 손에 든 칼날의 날카로움까지 함께 둔해졌을린 없다. 둥둥 큰 북 울림과 함께 도아마스는 묶여있는 창을 중심으로 선회했다.
비명을 지르는 쿠라마텐구를 발판삼아 허공에 반원을 그리며 반대쪽 텐구의 등에 올라탔다. 그와 동시에 자유로운 팔로 올라탄 텐구의 날개 한쪽을 뿌리째 잡아 뜯는다. 달개비색 깃털이 불꽃처럼 흩어지는 와중, 장창이 크게 기울어지자 도아마스의 몸도 기울어졌다. 열풍이 전신을 핥고, 벽이 눈 앞으로 접근해온다. 무릎을 접어 발바닥으로 벽면에 착지하려하자, 충격이 옆방향에서 엄습해왔다.
이어, 등을 베였다.
갑자기 회장에 사람이 늘었다.
조명은 꺼진 상태고, 안개같은 것이 떠돌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판단할 순 없지만, 펼쳐진 암흑속에 흔들리는 인간의 그림자는 얼추 2배정도로 늘은게 아닐까 싶다.
저도 모르게 연거푸 잔을 비우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나루미는 바로 옆의 연미복 사내와 마주앉은 작업복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잡한 옷 윤곽이 희미하게 비쳐보이는건 취했기 때문일까.
그 작업복과 마주한 연미복의 사내가 푹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순간 도수 높은 알코올 액체가 위에서 역류할뻔했다.
눈앞의 연미복 남자의 목이 떨어져나갔다.
캬멜 양복이 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반사적으로 빠르게 물러선다.
귓가에 비명과 절규, 그리고 크고 작은 뭔가가 구르는 소리, 발걸음 소리가 소용돌이치며 닿아온다.
넓고 어두운 회장안을 거대한 박쥐형의 날개가 질주하고 있다.
그 아래 사람들의 움직임은 통일성이 없었다. 어디로 도망칠까 헤매는 자도 있으나, 가만히 서있는자도 있다. 또한 느긋이 얘길 나누는 자도 있다.
윤곽이 불투명한 그림자들은 이 세계에 존재치않는 인간들이다. 실체가 없다. 그러니까 박쥐의 날개가 태연히 빠져나간다. 돌연 회장에 사람이 늘었다고 생각했던건 백령(魄靈)이, 죽은 자들이 대집단으로 나타났기때문이였다.
반 이상의 턱시도, 군복, 드레스, 예식용 기모노도 나루미와 마찬가지로 필사적인 모양새로 달려나가고 있다. 허나 동상처럼 우뚝선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움직이려하지 않는 그들은 각자 죽은 자들과 마주해 뭔가를 상담하고 있다. 열심히 얘길 나누고 있다. 얘기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나루미는 내달리는 속도를 떨구지않고 연단위로 뛰어올라갔다.
그 격돌음이 회장의 테이블이 옆으로 뒤집어지는 소리와 섞여 종소리처럼 귀를 때린다.
「변함없군. 애송이놈. 넌 어린시절이랑 변한게 하나도 없어.」
「수…, 숙부…?」
죽은 자다.
하카마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다.
「아아, 할머니.」
타에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바로 머리위로 둔청색의 박쥐의 날개가 빠져나간다. 기장이 긴 클로슈 모자가 찢어져 어둠 저편으로 날아갔다. 바닥에 무릎꿇지 않았더라면 날아간건 모자가 아니라 머리 그 자체였을 것이다.
허나 타에 자신은 그런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 차림 어울리는구나.」
「진짜? 정말로?」
타에는 행복했다.
「숙부…. 지금부턴 멋지게 양복 차림으로 나서는 시대라구.」
「그런 설교를 듣고 있을때가 아냐, 숙부. 주위를 잘 보라고.」
「애송아. 넌 그렇게 바로 얘길 돌리려들지. 변함없이 입만은 달변이라니깐.」
「그러니까… 그러니까말야. 알아. 어린 시절 날 진지하게 꾸중해주고 설교해준건 숙부뿐이였어. 그건 잘 알아. 그치만 이 상황에서 태연히 기어나와도 곤란하다고.」
소음과 비명으로 가득찬 회장은 잔물결처럼 낮은 소리로 변해가고 있었다. 도망치던 사람들도 지금은 전부 죽은 자들과 마주하고 있다. 혹은 죽은 자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애송아. 어이, 애송아. 잘 들어.」
「히호?」
잭 랜턴이 괴이한듯 돌아본다.
질주하는 쿠라마 텐구의 칼날을 피하며, 라이도우는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랬다.
무라마사로 칼날을 튕겨내며 몸을 선회했다.
「히호홋?!」
「그래, 혼자서다.」
「뒤에 아무도 없어도 무섭지 않다. 잭 랜턴은 누구도 두려워하지않는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히호!」
「내가 가지 못한다면 사이가가 있는 곳의 마킹은 고우토에게 전해라. 아니면 15대 라이도우에게다.」
검은 외투를 선호시켜, 원심력을 최대한 이용해 호박머리의 악마를 멀리 날린다. 돔 출구를 향해 유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잭 랜턴의 주위에 골드 라이트닝으로 탄막을 친다.
적은 하늘에서 새로이 여덟마리. 바닥에 아직 남아있는 세 마리. 합이 열하나. 간단히 물리칠만한 숫자가 아니다. 우시와카마루에게 검술을 가르쳤다는 설화는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텐구의 검술은 쿠즈노하 마을의 사범대리에 필적한다.
라이도우는 마지막 “관”을 소매에서 꺼냈다. 노래하게 하지도 않은채 돌려보낸 지난번 소환에 화를 내지 않고 순순히 따라줄련지…. 하지만 그러한 걱정은 너무 일렀다. 동시에 세 방면에서 육박해오는 칼날이 뻗으려했던 학생복의 왼쪽팔에 크고 작은 찰과상을 그린다. 라이도우의 피가 튀며 손끝에서 “관”도 날아갔다.
불꽃을 튀며 가중탄, 충격탄, 화염탄이 주위의 쿠라타 텐구를 쓰러트린다. 옆에서 주춤하는 쿠라타 텐구를 베어 넘어트리고 라이도우는 몸을 반전시켜 다시 탄환을 허공에 뿌렸다.
그 사선 하나가 학생모의 바로 옆을 스쳤다.
그야말로 도탄(跳彈)이라 어디로 튈지 모른다. 허나 어디로 튄다해도 주위엔 적밖에 없다.
돔내에 안개와 초연이 떠돈다.
살기를 띈 기척이 아니다. 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조용히 누군가가 이름을 불렀다.
이미 버린 이름이다. 고우토조차 그 이름은 모른다. 쿠즈노하 마을에서 라이도우 후보가 된 어린 시절부터 이미 수행용 암명(暗名)을 사용했었다. 본명을 아는 자는 없다. 이 세계에 살아있는자는 아닐텐데.
「죠헤이. 아니, 14대 라이도우.」
그리운 목소리에 천천히 돌아본다.
푸른색으로 물들인 명주 기모노. 모란 문양 띄, 등색(橙色)의 입술연지가 부드럽게 미소한다.
「라이도우.」
대량의 백령(魄靈)이다.
야타가라스의 힘에 의한 보이지않는 기(氣)의 길이다.
사이가는 펼친 두 팔을 아래로 내렸다. 남은건 그가 이끌것까지도 없다. 순국지사들의 백령들은 여기로 몰려온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날개소리에 사이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지금은 제 3진을 투입했단건가.」
소리없는 통로엔 사이가의 발소리밖에 울리지 않았다.
「제 4진까지 보낼까 말까라……. 소모전이군……」
도쿄역은 죽음의 세계다.
마물과 죽은 자가 설쳐대는 곳으로, 여기서 살아있는 자의 숨은 차례차례 끊어져간다.
라이도우는 칼끝을 내린채였다.
의식도 못하고 미간을 찌푸린다.
가짜. 환각. 혹은 마물의 둔갑인가.
「어째서?」
「신경쓰지마시고 어서 저를 베세요.」
마주선 등색의 입술이 말한다.
「내 배후?」
「들어보신적은 있겠지요. 친근한 이의 백령(魄靈)은 산 자들을 언제나 그 등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말.」
「수호령.」
모친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미가 마물이라 한다면,」
「어머니는 아닙니다.」
라이도우는 강하게 말했다.
「마물이잖습니까. 제 14대 라이도우. 베세요.」
안개와 초연이 소용돌이치며 흐른다.
「왜그러는 겁니까. 어서 베세요.」
「어머니는 벨 수 없습니다.」
「약한 소리.」
등색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푸른 색의 기모노가 다가온다.
「어미는 이미 마물이나 마찬가지.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베어야만 합니다.」
「왜, 어째서…」
「금기된 술법에 의해 소환되었다 일렀습니다. 수호령으로 존재하는 희미한 단편에서 백령(魄靈)그 자체를 끄집어낸겁니다. 예컨대 머리칼 하나를 끌어당겨 전신을 건져올린것과 마찬가지.」
「여기에 초혼되신 겁니까?」
뇌리로 파티 초대장에 적혀있던 "호국초혼(護國招魂) 제2차 지진부흥5기축하"라는 검은 문자가 떠오른다.
라이도우는 낮게 숨을 토했다.
「누군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백령(魄靈)역시 악마와 마찬가지로 소환초혼된 이상 부른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과 이렇게 얘기하고 내 의사를 전할 수 있는건 쿠즈노하의 마을에서 수행한 몸이기 때문. 허나, 동시에 이 회화는 소환주의 의향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하는 것이?」
「얘기해서 상대를 꾸짖고 타이르고, 칭찬한 다음 일체화해서 이끈다.」
「어디로?」
「여기엔 기(氣)의 도관(導管), 보이지 않는 길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끌어 가는건 그 앞입니다. 종착점이 어딘진 모르겠지만 백령(魄靈)인 이 몸에겐 “멋진 곳”이라 느껴집니다.」
「어머니. 그리 생각게하고 있는것 뿐입니다.」
「분명히 그렇겠지요. 허나 저항할 수 없습니다. 거기로 가야만합니다. 둘이 함께.」
「파티에서도 백령(魄靈)들이 같은 짓을?!」
쿠라마텐구들의 하강음이 들린다. 라이도우는 탄환을 허공에 뿌렸다.
허나 적은 이미 그 행동을 간파, 대처법도 강구하고 있었다.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켜 달개비색 날개로 질풍을 일으킨다. 용권이 낙하하며 허공에 흩뿌려진 탄환을 사방으로 흩날린다.
칼을 휘둘러도 바람을 벨 뿐이다.
흔들리는 바람과 함께 쿠라마 텐구가 덮쳐온다.
검은 외투의 등이 바닥위에서 미끌어진다.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 어미의 옆에서 뛰어올라 칼을 휘두르는 쿠라마텐구를 순식간에 베어냈다.
「어미는 이미 죽어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을 지키겠습니다.」
모란 문양의 허리끈 그늘진 곳에서 장창이 뻗어나온다.
「그렇겐 못합니다.」
「어머님에게 겨눠지는 칼을 보고만 있을수 없습니다.」
기모노의 어깨죽지에서 칼끝이 다가온다.
구두밑창이 닳도록 힘껏 모친의 배후로 돈다. 휘둘러 든 칼자루로 다가오는 칼날을 옆으로 후려쳤다. 재빠르게 손목을 뒤집어 무라마사를 바로 잡은뒤 축을 뒤틀어 전방을 바라본다. 쿠라마 텐구의 얼굴은 횡으로 반쪽나 있었다.
「아뇨.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미와 얘기하고 있는것자체가 이미 적의 책략. 백령(魄靈)들은 산 자에게 말을 걸게끔 소환된 겁니다. 라이도우, 가야만하는 곳이 있지않습니까. 어서 어미를 베세요. 어미가 있으면 갈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벨 수 없습니다.」
「어미를 지키려해선 쓸데없는 움직임이 늡니다. 빈틈도 생깁니다. 그게 적이 노림수입니다.」
외투자락을 유선으로 휘날리며 라이도우도 돌진했다. 칼을 휘두르는 쿠라마 텐구의 바로 앞에서 마치 걷어차인 공처럼 등을 굽힌다. 불의의 장해물에 걸려 넘어지는 쿠라마텐구들을 밀어내듯 라이도우는 무릎을 폈다. 그대로 수직으로 뛴다. 손에 든 무라마사가 날카롭게 적 한 마리의 목을 베어올린다. 치켜든 칼을 아래로 거두자 남은 두 마리도 피를 뿜는 존재가 됐다.
「명백하게 죽은 자입니다. 베여도 고통은 없습니다.」
「어머니를 베게 할 순 없습니다.」
쓰러진 쿠라마 텐구로부터 검을 뽑아냈다.
「제도도, 어머니도 지키겠습니다.」
쿠라마 텐구의 검이 엄습한다.
몸을 젖혀 적의 검풍을 피하고 무라마사를 휘두른다. 검을 튕겨낸뒤 일직선으로 적을 걷어차 날린다. 검은 외추가 크게 나부꼈다. 모친의 대각선에서 그 푸른색 기모노와 함께 통째로 라이도우를 베려하는 칼날과 무라사마가 격돌해 불꽃이 크게 튄다.
「이 어미를 베고 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명은 다할 수 없습니다.」
라이도우는 두 팔을 옆으로 펼쳤다.
칼을 쥔 쿠라마 텐구가 경련하며 몸을 젖히고 있다.
그 안면에는 피보라가 튀었고, 검고 커다란 털뭉치가 달라붙어 있었다.
라이도우는 도약했다. 낙하 도중의 쿠라마 텐구한테서 무라마사를 뽑아 총알 때문에 외눈이 된 좌측방향의 적을 공중에서 내려친다. 쿠라마텐구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떠도는 백연의 흐름이 흐트러졌다.
「고우토 동자로군요.」
아직 살아남은 쿠라마 텐구 몇몇이 돔쪽에서 자세를 갖추고 있다.
『뭐, 지금의 위기엔 늦지 않았다만 때는 이미 늦었다고 해야하나. 문제가 있어.』
「뭐가 어찌된거지? 사이가는 대체 뭘 꾸미고 있지?」
『아무것도 모른채 돌입한거냐. 최소한 내가 돌아올때까진 기다려.』
검은 고양이의 비취색 눈동자가 모친의 백령(魄靈)을 바라본다.
「설명해줘.」
『사이가의 목적은 도쿄역의 팔각수호문을 전부 해방하는것 같다. 죽은 자들을 흡수해 그 영력으로 수호문의 핵인 사성수의 결계를 극한까지 활성화 시킨다. 즉 에너지원으로 백령(魄靈)이 필요한탓에 밤이면 밤마다 죽은 자를 채가고 있던 모양이다.』
「그게 도쿄역을 걷는 죽은 자의 정체인가」
『그런 모양이군.』
「요시오.」
「팔각수호문에 흡수된 죽은 자는 어찌 되지?」
「뭘 위해 수호문의 결계를 증대시킬 필요가 있지.」
『모르지.』
이번엔 연거푸였다. 여덟마리가 뛰쳐나오자, 이어 바로 또 여덟마리가 모습을 보인다. 그 뒤에도 여덟마리. 끊임없다.
크게 메아리치는 날개의 퍼득임 아래로 고우토가 괴로운듯 말했다.
『계획 중지 요청 및 죄를 묻기 위해 파견된 야타가라스의 “청소부”는 죄다 돌아오지 않았다.』
「많군.」
「뭐가. 사이가를 멸하고 통제당하고 있는 죽은 자들을 해방하면 된다.」
라이도우는 떨어트린 “관”을 눈으로 찾고 있었다.
「그런건 알고 있어.」
「빨리 말해, 고우토. 쿠라마텐구의 대군이 언제 내려올지 몰라―…」
『어쩔 수 없이 야타가라스는 사이가를 도쿄역에서 강제 배제하기로 했다.』
『옛 불가침 조약을 깬 결단이다.』
『야타가라스는 “청소부‘를 파견했다.』
「이해가 안가. 그런건 지금까지 몇 번이나 파견했지만 사이가에게 모조리 패배했다고 했을텐데.」
『라이도우. 이번 “청소부”는 문제다. 사이가의 계획같은것보다 그 자체가 진짜 문제가 될지도 모를 남자다.』
강한 힘에 의해 공기가 압착된다.
끌어안고싶다. 쭉 얘길 나누고 싶다.
함께 있고 싶다.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드릴의 열풍 옆으로 강풍이 격돌했다. 검은 외투가 낙엽같은 움직임으로 허공에 떴다. 셀수없을 정도로 많은 파편이 튀며 동시에 쿠라마 텐구도 흩어진다. 흔들리는 시야속에서 빛의 입자로 뒤덮인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무심코 팔을 뻗는다.
기모노를 입은 어머니도 팔을 뻗었다.
이 빛은 무라마사의 저주베기와 같았다.
어머니도 돌아간다. 사이가의 초혼(招魂)에서 해방되어, 어딘가, 언젠가 자신도 가야할 세계로. 그 빛의 파편은 언제나 등뒤에 남아있다.
폭염이 밀려들었다.
귀울임이 낭랑히 울러퍼진다.
흔들려 부연 시야 끄트머리에 무너진 벽면에서 흘러 떨어지는 도아마스의 모습이 있었다.
흑연과 백연이 또아리를 틀며 세계를 지배했다.
라이도우는 갈라진 바닥에서 간신히 낙법을 취했다. 그래도 튕겨져나간 기세는 죽이지 못해 몸이 바닥을 구른다. 엉청난 충격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저주 베기의 빛이 일었다는건 적이 아닌건가? 돔 전체가 아직도 진동하고 있다.
하카마를 걸치지않은 간편한 하얀 기모노차림이다. 아니 그 하얀 기모노의 옷자락과 소매 부분에 주인(呪印)인 갈고리 문양이 새겨져 있다. 게다가 기모노 허리에 말려있는건 허리끈이 아니라 건밸트가. 발은 셋타[雪駄].
목엔 마후라처럼 길게 자른 검은 천을 두르고 있었다.
적은 아닌것 같다.
사이가의 부하라면 바닥을 구르는 자신을 앞에 두고 손을 쓰지 않을리도 없고, 저주 베기의 섬광― 폭발을 터트린 남자라 생각하는게 타당하겠지.
자잔한 파편을 떨구며 일어선 라이도우에게 하얀 기모노의 남자가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그대로 어깨와 어깨가 부딪혔다.
어깨를 어깨로 내리찍자, 라이도우의 몸이 반회전하더니 옆으로 튕겨나갔다.
체술, 호신술 역시 숙달되어 있다. 쿠즈노하 마을에서는 언제나 상위. 동세대의 그 누구보다도 빼어났다. 그렇지 않다면 라이도우의 이름을 계승할 수 없다. 아니지, 14대 쿠즈노하 라이도우를 어깨 하나로 튕겨낼 수 있는 남자라니, 대체 뭐지.
「고우토?」
『그러니까 저게 문제의 “청소부”다.』
「누구지,」
두터운 밧줄로 끌고 있는건 통모양의 관이다.
바퀴같은건 없는데도 갈라진 바닥위를 태연히 끌어가고 있다. 새하얀 기모노의 등으로 “칠성검”과 묵흔(墨痕)되어 있는 장방형의 칼집을 짊어지고 있다.
「쿄지(狂死)」
「여어, 이 몸은 남몰래 내 얘길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구.」
기모노 아래로 천을 감고 있는게 보인다. 면인지 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게 셔츠나 바지처럼 몸과 사지에 밀착되어 감겨있다.
「이 몸께서 얘기하는 중이잖아!」
라이도우는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소환된 마물은 어디에 있는걸까.
『나원』
『내가 아니였다면 불기둥에 휩싸였을거다. 위협치곤 지나친거 아닌가.』
「살아있었던거냐. 칫.」
『어이, 그 “칫”은 대체 뭐냐.』
「구려~, 고양이~.」
하얀 기모노의 바로 뒤쪽에서 칼날의 빛이 반사됐다.
살아남은 쿠라마 텐구가 분노한 얼굴로 칼을 휘둘러 든다. 검술의 달인이란건 명백했다. 칼과 팔은 하나의 유선을 그리며, 그 뒤로 등뒤의 풍경조차 보인다. 라이도우와 고우토가 말을 던질 틈조차 없었다. 아득히 낙뢰를 웃도는 속도로 백광의 칼날이 기모노 어깨위로 떨어진다.
『이미 죽어 있어.』
「네놈한테 얘기한게 아니잖아, 바보!」
『어이, 쿄지. 진정해.』
고우토가 선 장소에 다시 불기둥이 치솟아 올라 라이도우도 무심코 몸을 물렸다.
『뭐, 뭐가?』
검은 외투의 어깨위가 고양이의 형태로 변했다.
「실례야. 남 이름 정도는 똑바로 불러.」
『쿄지가 아니면 무뢰배냐?』
『뭐라? 쿠즈노하의 이름과 데빌 서머너의 역무를… 음양도인 네가……?』
「야타가라스가 인정했어. 이제부터는 라이도우의 신도(神道)만이 쿠즈노하가 아니라구.」
『하지만 음양의 술은 신도(神道)보다 소환능력이 떨어질텐데.』
「뭐라고? 죽어볼테냐, 고우토.」
쿄지가 팔을 들어올린다.
「사역 하는 악마는 한번 쓰고 버리는건가.」
「호오, 잘도 거기까지 알았군.」
쿄지가 낮게 웃자, 긴 앞머리가 불규칙적으로 흔들린다.
「아는척 떠들지말라고, 14대. 네가 변변찮으니까 내가 굳이 온거잖아.」
「조력은 감사한다. 허나 제도 수호는 내 임무다.」
「변변찮다고 말했잖아. 방해라고. 게다가 이건 “청소부”의 일이야. 애송이는 찌그러져 있어.」
『쿄지. 그 관통에 사이가를 넣어 연행할 셈인가?』
「구~려~, 고양이. 이 몸이 말하는 중이잖아!」
이번엔 불기둥이 아니다. 허나 다량의 불꽃을 흩뿌린다.
2m에 이르는 강건한 신장, 뼈로 된 몸 여기저기에 불꽃을 뚝뚝 떨어트리며 불타오르는 검과 방패를 손에 들고 있다.
「남 얘길 안듣는 너희는 소돔과 여기서 놀고 있어. 이 몸이 돌아올때까지 살아있으면 칭찬해주지. 이 몸이 칭찬해준다고. 기쁘지? 웃어.」
「이 몸은 “웃으”라고 말했다고, 바보.」
「나도 간다.」
「가. 지옥에 말야. 안녕, 이 몸은 그런덴 안가지만.」
「같은 쿠즈노하다.」
「언젠간 쿠즈노하 쿄지가 쿠즈노하 라이도우를 대신할거다.」
닷샤~하고 기묘한 구령소릴 내며 쿄지가 관통을 끌고 간다. 해골 검투사 소돔의 불꽃검이 라이도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북쪽돔의 4대 소대가 순식간에 괴멸?」
붉은 주단이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를 걸으며 사이가는 좌우에 물었다.
하얀 턱시도의 양 옆에서 부유하는 쿠라마 텐구들이 인외의 목소리를 발한다.
「아니야? 야타가라스의 “청소부”가 온건가.」
이 세계는 무음이다. 파티 회장의 살육음이 아무리 크다해도 통로까진 닿지 않는다. 북쪽돔의 전투음도 마찬가지다. 확고한 결계가 쳐져 있다. 모든건 백령(魄靈)들이 나아가야할 정숙의 길을 위해서…….
아래층에서 화산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통로가 흔들린다.
바로 앞으로 쿠라마 텐구가 날개를 펼치며 비행해왔다.
「닷샤~ 닷샤~」
「비켜.」
어깨를 으쓱이듯 쿄지를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움켜쥔 두 주먹, 그 손가락 사이에는 각기 3개의 “관”이 끼여져 있었다.
쿄지가 반신을 뒤틈과 동시에 왼쪽팔만 뻗었다. 접근해오는 땅울림과는 반대, 등쪽 방향을 겨누었다.
왼쪽 손가락에 끼워져있던 “관”이 해방된다.
겁화의 굉음속에 무수한 비명과 뼈와 뼈가 부닥치는 소리가 울러퍼졌다.
땅울림 소리와 엔진의 진동음이 쿄지에게 급 접근한다.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3개의 “관”이 섬광을 발했다. 연이어 세 번 분출된 불꽃이 바닥위를 내달려, 이열횡대한 오보로구루마의 무리를 후벼판다.
사면 쪽에 뭉개진 해골 검투사 소돔의 파편이 연기를 피우며 흩어져 있었다.
「타고 있어.」
한쪽 어깨가 다소 처진 개악마는 상처입은 게같은 걸음으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움직일 수 있겠어?」
「물론. 라이도우랑 같이 갈꺼야.」
「뭐, 뭐야. 나 또 그런 잡일이야?」
「여기서 아테루이와 쉬고 있어.」
「싫어. 라이도우랑 같이 갈래. 이번엔 건물에 박히지 않을게. 힘이 될게. 나 절대로 도움이 되어보일게, 그러니까…」
「안돼.」
「왜. 나 그렇게 못 써?」
「동료는 소중해.」
라이도우의 발치로 고우토가 다가왔다.
「지금은 아테루이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고 있어줘.」
「라, 라이도우. 다시 한번 말해줘.」
붕붕.
「그게 아니라 그 전 꺼.」
「동료는 소중해.」
「라이도우, 심술 부리는거야?」
「상처가 나으면 다시 힘을 빌려줘, 도아마스.」
「아, 알겠어. 나 이런 몸으론 거추장스럽지. 방해가 되고.」
「거추장스럽다거나 방해라고 생각한적은 단 한번도 없어.」
붕.
「그런가. 청소나 세탁같은 잡무를 부탁한 적은 없는데.」
「뭐, 뭐어. 정 부탁하고 싶다면 청소나 세탁도 해줄 수 있어.」
붕붕붕.
돔 바깥, 백연 안쪽으로 사라지는 검은 외투와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며 아테루이는 아직도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는 도아마스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타고 있으니까.」
「물이 필요해.」
「알아. 라이도우한테 부탁받았으니까. 확실히 할거래두.」
한쪽 어깨가 처진 개악마가 한쪽 다리를 끌며 상처입은 게처럼 걷기 시작한다. 얼마잖아 앉아있던 아테루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잘됐네. 뭔가 실컷 노래하고 싶어했잖아.」
「그러네.」
정숙으로 가득차 있다.
라이도우는 붉은 주단 좌우를 바라보았다.
『틀림없이 “수”로 대항하는거겠지. 음양도의 악마소환은 모든 면에서 라이도우의 신도(神道)계의 소환보다 뒤떨어져. 그걸 보완하기위해 그를 웃도는 “수”에 기대는 거다. 사역하는 마물을 쓰고 버리는걸로 그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것 역시 당연 지사. 유파마다 각각의 장점이 있듯이, 음양도는 소환술은 뒤지지만 법력이나 신물(神物)같은게 있지.』
무너진 벽면에서 갖가지 음향이 흘러나와, 지금까지 아무런 소리도 없었던 통로를 미약하게 진동시킨다.
크고 작은 무언가들이 쓰러지는 소리. 연잇는 폭발음. 발자국 소리와 비명. 노성. 영문모를 울부짖음. 올려다보는 고우토와 얼굴을 맞출것도 없이, 라이도우는 뚫린 벽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닷샤~!」
쿄지는 테이블을 걷어차 날렸다.
발목의 반동을 살려 막 착지한 목을 꺾으며 다시 비상한다.
허공에서 무릎을 굽혔다.
좌우의 무릎에 감긴 천에 끼워넣은 “관”에서 두줄이 불화살이 낙뢰처럼 뻗어나온다.
외려 웃고 있다.
바닥에 내려서다 흐르는 피에 셋타가 미끄러지자, 얼굴이 굳었다.
군복 차림의 두 사람이 굳은 얼굴로 달려온다.
「카, 카카카칼을 갖고 있는건가. 좋아. 그 괴물들을 어떻게 해줘.」
쿄지는 한쪽 눈썹을 내리며 둘을 바라봤다.
「너흰 군인이잖아. 왜 스스로 싸우려 안하지?」
「내내내내, 뒤에, 텐구가.」
「이몸께서 얘기하는 도중이잖아!」
「사사, 살, 살려, 줘………」
「뭐야, 노래라도 불러주는줄 알았더니.」
「살, 려줘……」
「좋아.」
「이걸로 이제 모든 고뇌는 사라졌겠지.」
밀려드는 강렬한 “기”에 쿄지가 칼날같은 두 눈으로 돌아봤다.
백령(魄靈)들이 흔들리는 그 앞쪽, 연단위에 하얀 턱시도의 모습이 보인다.
「사이가!」
테이블 위를 달린다.
사이가가 물었다.
「초대 쿠즈노하 쿄지.」
「쿠즈노하? 사람을 구하긴 커녕 방패로 삼다니. 쿠즈노하의 이름이 부끄럽군.」
「바보냐. 그 방패를 응집체로 죽인건 사이가 너잖아.」
단상에서 정좌한 나루미는 숙부의 설교는 대체 언제쯤 끝나는건가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장엔 텐구까지 나타났다. 불꽃이 튀고 섞이고, 눈매 나쁜 기모노 남이 날뛰고 있다. 빨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백령(魄靈)인 숙부 앞에선 아무래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눈매 나쁜 남자가 단상으로 뛰어올라온다.
연마된 칼과 칼이 격돌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검은 외투가 펄럭였다.
무라마사가 칠성검을 중간에 가로막았다. 나루미의 목 바로 옆 위치였다.
「쿄지.」
「사이가가 도망치잖아. 이 몸이 아니면 사이가를 쓰러트릴순없어.」
「왜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죽이지. 단순한 흉인(凶人)인가.」
「이 몸의 목적을 위해서다.」
「사람을 죽이는게 목적인가.」
두 사람의 칼날이 소리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거둬진다.
검은 외투와 하얀 기모노가 연단 위에서 서로 대치한다.
「사람들을 도망치게 하면 될텐데.」
「물론 “관”을 통한 마력이래도 상관없어. 이번 임무를 위해 이 몸의 “관”을 죄다 주술 봉인해뒀다. 데빌 서머너의 힘이라면 손님을 얼마든 쳐죽여도 상관없어. 어쨌든 방황하는 죽은 자를 만들지 않는다. 사이가의 예정대로 백령을 모을 수 없게 되지. 그걸로 계획을 뭉갠다. 간단하잖아.」
「좀 더 간단한게 있다. 사람들을 여기서 도망치게 하면 돼.」
「난 사람들을 지킨다. 살아남은 전원을 여기서 데리고 나간다.」
「이 몸의 최우선 사항은 사이가의 계획을 묻어버리는거다. 방해가 되는건 전부 죽인다.」
연단위, 그 끝에 드러누워있다.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상반신을 일으키려하자 바로 정면에 무릎을 굽힌 나루미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들여다보는 요시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루미씨, 그러고보니 왜 여기에.」
연단으로 뛰어올랐을때부터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쿄지와의 대결 때문에 질문할 겨를이 없었다.
「사건이 있는곳에 명탐정이 있는 법. 내 조수면서 오는게 늦어, 라이도우.」
「죄송합니다.」
「쿄지는?」
「그 눈매 사나운 녀석이라면 어느새 사라졌어. 뭐 없는편이 낫지만.」
사이가를 쫓아간걸까.
「백령(魄靈)으로부터 해방되신 겁니까.」
외투를 뒤덮었던 불꽃은 사그라져 있다. 과연 쿠즈노하 마을의 사문석(蛇紋石)과 각섬석(角閃石)으로 만든 방화섬유다.
몸을 일으키려하자, 외투 안쪽에서 다 타버린 수리검이 흘러떨어진다.
목제 수리검이다. 대 아르카드 전 때 아르카드의 심장에 박아넣기 위해 준비해둔 숨겨둔 무기지만 쿄지의 불꽃 때문에 못쓰게 된 것 같다.
무릎을 굽혀 요시오를 바라본다.
역시 모친의 백령(魄靈)과 만날걸까. 이미 죽었단걸 깨달은 걸까.
「당신은?」
「에도가와라고 합니다.」
조용하다.
사람들을 도망치게하려면 지금뿐이다.
「가는건 좋지만. 라이도우형, 타에짱이 기절해서 움직이지 않아.」
타에의 간호와 선도를 부탁할 생각이였지만, 탐정 사무소 소장은 말을 흐릴뿐이였다.
「어째섭니까?」
「사후조사라고해야하나, 뭐랄까 명탐정의 감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아 모두 함께 가는 편이 좋습니다. 여긴 위험합니다.」
큰 미닫이 문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호응하듯, 팟하고 기세좋게 그 문이 열렸다.
둔청색의 날개가 뛰쳐들어온다.
개찰구앞 넓은 공간, 한쪽엔 매점이 줄지어 서있고, 머리위엔 철골, 천장까지 약 2층 이상의 높이가 있다.
그 하얀 턱시도의 양팔을 벌린다.
「돌파안해. 이 몸이 있는한.」
「쿠즈노하 쿄지는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다. 이제 충분히 알겠다. 살려둬선 결계 완성 후에도 안심할 수 없다. 결계는 인간의 움직임까진 봉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쿠즈노하 쿄지를 “인간”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헛소리는 됐어.」
「여기가 쿠즈노하 쿄지의 무덤이다.」
「목소리가 떨리는걸로 들리는군. 아무리 강한다해도 대처가능한 적진방향은 2방향, 애써서 3방향이 한계다. 모든 방향에서 공격이 들어왔을때 사각이 생기지않는 자는 없다, 결코 있을 수 없지. 팔은 2개밖에 없고, 눈은 앞에만 붙어있으니 말이다. 반드시 그것들이 닿지않는 뒤가 생기고 만다.」
빛을 계속 발하고 있던 연단의 라이트가 거대박쥐를 비춘것은 나루미가 라이트의 다리에 걸린 우연이였다. 재빨랐던 아르카드의 움직임이 급속하게 둔해진다.
「태양광.」
어찌된 영문인지 나루미가 비명을 지른다.
무시하고, 파편이 된 모형을 손에 쥐고 확인했다. 진짜 금이다. 반사가 강하다.
라이도우는 모형의 파편을 던져 총탄으로 깨트리는 것을 반복했다.
회장에 금가루와 자잔한 금 파편이 튄다.
몸에 묻은 금 파편이 수축되어가는 피막이나 체모에 끼여, 파고든다. 박쥐는 작아짐에 따라 점점 더 금색화해간다.
라이도우는 권총을 홀더에 넣었다.
회장안을 도망쳐다니듯 날던 아르카드는 저녁무렵 둑이나 공원에서 자주 보이는 극히 평범한 박쥐 사이즈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이걸로 됐다, 라이도우는 생각했다.
「닷샤!」
쿄지의 전신에서 불화살이 쏘아져나왔다.
사각은 없었다.
손목, 목, 몸, 감겨져 있던 천에 끼워넣어져있던 “관”을 일제히 해방하는 전방위공격이다.
거대한 불꽃의 뱀이 쿠라마텐구들을 차례차례 또아리채 감아튼다. 열과 연기로 뒤덮는다. 일렁이는 섬광이 표적을 노린다.
모든 적은 세탁기에 던져진 인형으로 화했다.
광풍에 휩쓸린 비명과 절규가 폭열음에 반사되어 거듭 메아리친다.
목적하는 방향, 하얀 턱시도 바로 앞에 기둥이 내려떨어졌다.
기둥이 내려 떨어져 땅을 울리는 소리에 섞여 사이가의 목소리가 닿는다.
「바보, 네놈같은건 맨손으로도 죽일 수 있다고.」
「이 녀석도 말인가?」
2개의 기둥이 움직였다. 쿄지를 향해 다가온다.
10미터는 쉬이 넘을법한 대텐구의 발이였다.
격한 땅울임소리에 고개를 든 라이도우의 눈에 섬광이 들어왔다.
눈부시고도 익숙한 빛이였다.
잭랜턴이 남쪽입구 방향에서 다가왔다.
「저쪽엔 마물은 들어갈 수 없어? 사이가는 남쪽돔인가.」
「히호」
「잘했다.」
쿄지는 끌고 있던 관통을 들어올렸다.
어깨에 짊어지고, 뚜껑에 붙여져있던 음양의 봉인을 벗긴다.
「뭐가, 대텐구냐, 바보냐.」
계속 끌고 다니던 관통은 거대한 “관”이였던 것이다.
「고모라!」
쿄지는 고대의 도시를 멸망시켰다는 전설의 악마를 소환했다.
***
테이블 밑에서 소리없이 손이 뻗어나왔다.
제비를 능가하는 속도로 손끝이 움직이더니, 와인병 사이에 숨어있던 박쥐를 움켜쥔다.
「해냈어, 해냈다구」
피난은 했지만, 혼자 파티에 슬그머니 돌아온건 이 금색 박쥐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금가루라도 이만큼 모으면…」
극히 흐릿한 가루가 떨어질뿐이였다. 몸 색은 전혀 변함이 없다. 즉 금을 벗겨내지 못했단 뜻이다.
억눌려있던 악마가 버둥댄다.
순간, 박쥐의 몸이 먼지로 변했다.
**
색은 칠흑. 형상은 거미를 닮았다. 등뒤에 몇 개의 해골같은 혹을 지니고 있으며, 강모로 뒤덮인 절지(節肢)의 끝은 2개로 갈라져있다. 몸의 크기는 아테루이의 4배 이상, 절지(節肢)의 끝까지 포함하면 거기서 또 2배가 된다.
「사람들을 도망치게 하면 돼.」
「이 몸께서 좀전에 얘기했을텐데. 전혀 이해를 못한거냐.」
닷샤~하고 쿄지가 한숨을 쉰다.
「넌 무리야.」
「쿄지는 왜 안하지?」
「안한단 소린 안했어, 바보! 사이가를 죽이는데 시간끌다 그 사이에 녀석이 백령(魄靈)을 죄다 모아버리면 어쩔거야. 그러니까 모으고 싶어도 모을 수 없게 만드는게 먼저라고 말했잖아. 말했지. 안들은거냐?」
「널 막는다.」
「헛수고야. 좀전에도 졌잖아. 말해두지만 이 몸은 이제 안봐줄거다.」
라이도우는 질풍으로 화(化)해 내달렸다.
악마의 거대한 절지(節肢)가 낫처럼 라이도우를 향해 내려떨어진다.
낙하하는 절지에 의해 바닥이 회전하는 불꽃처럼 날아갔다.
라이도우도 뛰었다.
쿄지를 향해.
쿄지가 칠성검을 치켜든다.
도와 검이 불꽃을 튀기고 섬광이 흩어졌다.
쿄지가 그 뒤를 쫓았다.
「바보냐, 너. 바보 기둥받침 친단 말 알아? 바보같은 소릴 한단뜻이야. 체술로 이 몸을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거냐?」
칠성검을 아래로 내던졌다.
「좋다고, 라이도우. 주먹질하고 싶겠지. 해. 해봐.」
「주먹이라곤 말하지 않았어.」
가중탄이 쿄지의 오른손을 날렸다.
쿄지의 측두부가 깨지더니, 혈육이 석류처럼 뿜어져나왔다. 찢어진 두개골과 뇌장(腦漿)마저 엿보였다.
『어이어이, 머리는 곤란하잖아.』
검은 고양이, 고우토가 돔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뇌를 조금이라도 깎아두는게 좋지 않아?」
『하지만 머리는 말이지~. 일단 같은 쿠즈노하고.』
「고우토는 이전에 사.소.한 것.에 일일이 신.경.쓸.필.요.없.다고 말했어.」
『말했나?』
「말했어.」
『하지만 입장상 동문을 죽여버리게 되는거고, 머리는 역시.』
「그럼 팔로 하지.」
날아간 오른쪽 팔꿈치 부분에서 초연이 튀고 쿄지의 포효가 이어졌다.
위쪽에서 기(氣)의 응집체가 보였다.
하얀 턱시도가 3층 층계참에서 보인다. 무너진 벽면엔 튀어나온 곳이 많아 발을 내딛는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별다른 고생없이 2층 창에 도착했다. 응집체는 내려오지않는다.
층계참의 철책 위에서 팔이 뻗어나왔다.
사이가였다.
칼이나 총을 들어 올리려했지만, 사이가가 다른쪽 손으로 응집체를 내쏘아 건벨트를 튕기자, 콜트라이트닝은 홀스터째로, 무라마사는 칼집째로 1층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이가.」
「대체 뭣과 싸우려했지.」
「유감이야.」
「정체는 모른다. 허나, 머잖아, 바로, 지금 당장이라도 온다. 강대한 “적”의 태동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
「그건 “초력(超力)”을 지닌자들이다.」
「그 자들은, 어디에 있지?」
「그것까진 나도 현시(現視)할 수 없었다.」
응집체가 날카롭게 라이도우의 복부를 도려냈다.
「유감이야.」
드려난 라이도우의 복부에 부적이 붙어있는게 보인다.
사이가의 팔에서 힘이 빠진다.
라이도우는 철책 틈새로 간신히 자유로워진 다리를 차올렸다.
사이가의 밸런스가 무너지더니 그가 철책밖으로 몸을 내던진다.
내밀었던 팔에서 힘이 급속히 빠짐과 동시에 두 사람은 한꺼번에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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