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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당에 놓여진 조리에 화급히 발을 걸치고 타와라다 후요코는 가지런히 정돈되어있던 주변의 신발을 흩으며 어두운 밤길로 뛰쳐 나갔다.
「아, 아버지!!」
기세가 지나쳐 크게 고꾸라진다. 그런데도 넘어지지 않고 어찌어찌 상반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언뜻 본 인영이 진짜이길 바라는―기도하는― 후요코의 필사적인 마음이었다.
질질 땅을 끄는 신발 때문에 피어오른 먼지가 검은 상복 소매에 들러붙는다.
몇번이고 눈을 깜빡인다. 눈꺼풀 밑 안구의 수정체에는 가스등의 유황빛이 비쳐들 뿐.
아무도 없다. 세계는 축축한 어둠에 잠겨 있다. 제도(帝都)라고해도 밤은 어둡기만 하다. 번화가도 아닌 이곳이야 하물며 덜 할까.
길을 걷는 인영같은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
후요코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호흡을 고르면서 주변을 돌아본다. 착각도 이만저만한게 아니다. 바깥을 걸어 다니실리 없다. 막 뛰쳐나온 식장 입구, 그 안쪽에 신사마냥 호화롭게 차려진 제단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저곳 관안에 계시니까….
장례식에 이리 화려한 제단을 차리게 된 것은 극히 최근, 더욱이 제도에서만의 이야기라고 숙부께 들었다. 후요코가 알고 있는 장례식은 관, 그리고 관 머리맡에 위패나 향로등의 극히 간단한 제구를 놓을 뿐인 단촐한 것이었다.
짧게 고개를 내젖는다.
피로감과 공허함이 양 어깨를 짓눌렀다.
숙부님의 뜻에 이견은 없다.
『네 아비는 훌륭한 분이셨다. 거기에 걸맞게 성대하게 보내드려야지.』
허나, 후요코는 아버지에게 서양의 풍습이나 관습을 강요하는것만 같아서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듯한 위화감을 씻어낼 수 없었다.
이 검은 상복 역시 마찬가지.
흑(黑)은 서양의 관습이다. 일본의 상복은 고래로부터 백(白)이었다. 그리 이야기하던 아버지의 험악한 얼굴이 떠오른다.
메이지 천황의 장례식 때, 해외에서도 많은 조문객이 찾아왔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복식을 갖추고 있었다. 문명 개화로부터 50여년이 지나 세계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색은 흑(黑)이라는 것을 일본인은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예절을 차리는 건 옳다. 서양의 장례식에 참례할 때엔 실례가 되지 않도록 검은 색을 입는 것이 좋지. 하지만 일본인이 일본땅에서 검은 옷으로 사자(死者)를 배웅하는 것은 옳은 일인지. 서양의 껍데기만 흉내내서 사자를 배웅하는 것― 그것은 명백한 모독, 더 나아가 국욕(國辱)이라 생각치 않느냐.』
말하자면 아버지는『낡은』사람으로, 시대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관습에 대해서 언제나 노골적으로 눈썹을 찌푸리셨다.
이 시대― 다이쇼 이십년 ― 과거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검은 상복’도 상당히 보급되었다. 하지만 후요코는 입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공양이라 생각했다.
『바보놈.』
하지만 장례식을 준비하는 숙부는 그를 꾸짖었다.
『타와라다 가의 체면이 있지. 예식에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 메이지 시대의 낡아빠진 장례식이여서야 남의 비웃음을 사게 돼. 그것 뿐이더냐, 남들이 공동묘지에 묻는걸로 끝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네 아버지는 확실히 화장한뒤에 매장할 셈이다. 아직은 삼할 정도밖에 그리 하지 않는다지만 이름난 명사나 명문가는 모두 그리 하고 있어. 두번의 대진재(大震災)를 넘어 지금 제도는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다. 타와라다 가(家) 역시 그리될테지. 상복은 확실히 검은 색으로 정해뒀으니 여자는 쓸데없는 생각말고 따르기만 하면 돼.』
서양 문화가 녹아든 새 시대, 다이쇼 리버릴리즘[大正 Liberalism]. 아무리 그리 칭송 받고 있다해도 여성의 사회적 입지는 별반 다를게 없었다. 집안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고, 의견이나 의지는 극히 간단히 무시당한다. 후요코는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듯한 길을 바라보았다.
어둡고, 아무것도 없다. 명부(冥府)까지 이어져 있다.
실제로도 명부로 이어진 길이다. 내일 여기에 명부로 관을 보내는 영구차가 온다. 아버지의 유체는 가마에 실려 나가는게 아니라 자동차로 옮겨진다. 사람이 자동차의 속도를 따라갈 순 없으니 장례행렬은 필히 없을 것이다.
이후의 시대에는 ‘장례행렬’이라 불릴만한 것이 사라지게 되는 거겠지.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미간을 험악하게 구기고 분노인지 탄식인지 모를 말을…….
아니, 오히려 길을 바라보고 있던 후요코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드리워졌다.
「…?!」
가스등의 희미한 불빛을 받아 무명 홑옷이 흔들리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윤곽이었다.
「아, 아버지…」
마치 바다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양새로 이십오미터 정도 앞을 걷고 있다. 아니, 십사 간(間) 정도 앞이라고 해야하겠지. 아버지는 10년전, 다이쇼 10년에 제정된 미터법을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
「자, 잠깐 기다려주세요.」
척관법(尺貫法) 쪽이 확 와닿는다고, 그리 이야기하시던 분이다.
「아버지!」
조금만 더 그녀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어디로 가시나요!」
꾸짖는 말이래도 좋다.
「아버지….」
보고싶다.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새 후요코는 내달리고 있었다. 죽은 자는 아니었다. 지금 바로 앞에서 걷고 있다. 착각도 아니다.「아버지, 가지 마세요!」 조금 더, 좀 더. 후요코의 곁에 계셔 주세요.
내달리면서 손을 뻗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은 없다. 습한 바람이 후요코의 얼굴을 때리고, 어둠은 무거운 장막이 되어 상복에 달라붙는다.
좀 더 빨리. 날듯이 빠르게.
「아버지…!!」
조리와 지면이 부딪히는 마찰음만이 밤길을 울린다. 있는 힘껏 팔을 뻗자, 후요코는 아버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암운이 드리워진 어두운 하늘로 검은색의 상복이 높이 높이 치솟아 올랐다.
***
바람이 보이지 않는 지휘봉을 휘둘러 울타리에 얽힌 나뭇가지들의 노래를 지휘한다.
「어쩔셈이야~.」
이어서 어둠 어딘가에서 뼈마디가 딸각 딸각 소리를 낸다.
「어이~~ 어쩔셈이야아~~.」
아니, 소리를 내고 있던 것은 그야말로 뼈, 그 자체였다.
어둠 속에서 금녹황색의 백골 ― 가샤도쿠로가 모습을 보였다. 골격은 상반신만 남아있다. 바람에 떠밀리듯 판자울타리 정도 되는 높이에서 부유하며 거듭 혀를 찬다.
「어쩔 셈이냐고오~. 어이~ 너도 뭔가 말 좀 해봐~.」
가샤토쿠로의 새까만 눈구멍이 아래를 비스듬히 내려다본다. 다홍색의 두건이 나란히 지면을 내달리고 있다. 분을 두텁게 바른듯한 얼굴, 마찬가지로 새하얀 사지― 네비로스의 움직임은 노인이 걸어가는 품새였지만 그 속도는 달리기 선수 이상이었다.
가샤도쿠로는 대답이 없는 네비로스를 향해 혀를 차고서 어둠 뒤쪽으로 눈구멍을 돌렸다.
「어쩔 셈이야, 그 여자~.」
상복 차림의 후요코가 담벼락보다도 높은 곳에 떠있다.
바람과 공기를 이불삼아 마치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복에서 청록색의 피막같은 날개가 뻗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작 중요한 날개의 주인은 어둡고 두터운 구름밑에 녹아서 찾을 수 없었지만.
「살아있는 여자. 데려오란 명령은 없었잖아~.」
후요코 바로 밑에선 그 아비가 얼음 위를 미끌어져가듯 걸어가고 있었다.
「괜찮은거야? 우리들 명령 받은건, 모아야 되는건 죽은 사람들 뿐인데~.」
어둠에 파묻힌 밤거리를 상복차림의 여성과 이형의 그림자들이 나아가고 있다.
「어이~ 듣고 있는거야?」
「키익.」
상복에서 뻗어져나온 날개가 웃었다.
「키키킥. 곧 죽은 사람이 될거야. 아무 문제 없어.」
「어이, 잠깐~ 그런거 되는거야? 저기저기 걸어다니는 인간을 죽이고 ‘여기, 죽은 사람입니다~’하는거 되는거야?」
「죽은 자의 피는 맛이 없어. 키긱. 가끔은 생피를 빨고파.」
「그러니까~ 되는거야, 그런거~?」
가샤도쿠로가 갈코랑이 같은 손톱으로 두개골을 긁는다.
「너어~ 동료 악마사이의 ‘화합’이라는거 생각하는거야? 악마 역시 협조성은 소중하잖아. 모두 사이좋게 즐겁게~ 인간의 혈육을 짜내는 것도 내장을 긁어내는 것도, 두개골을 으깨는 것도~ 인간을 죽이는건 화기애애하게~ 할것. 그치만 소환명령에는 따를 것. 그치, 이게 기본이잖아~. 나도 인간을 썰고 싶지. 특히나 부자지간이라던가 연인 사이라던가, 이렇게 같이 있던 녀석의 목이 잘려서 높이 튀어나가면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쪽 녀석이 멍한 얼굴을 하다가 걸레 찢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기라도 하는 날엔 아우~ 살아있길 잘했다. 심장은 없지만 가슴이 따땃해진다구. 그리 돼. 그렇게 하고 싶어. 그치만 말야, 소환된 자로서의 역할이 있잖아. 그걸 깨고서 혼자서면 얌체같이 쏙 빠져서야, 되는거야? 그런거 되는거야?」
다홍색의 천이 가샤도쿠로의 눈앞에서 크게 펄럭였다.
「인간이….」
분을 칠한듯 새하얀 얼굴이 전방을 향한다.
가샤도쿠로는 고개를 작게 갸웃거렸다. 길은 석유를 퍼부은듯 어둠에 검게 녹아있어서 움직이는 것은 전혀 찾아볼수 없다.
「인간~?」
해골의 새까만 눈구멍이 한밤중의 심해 속에 흔들리는 해초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주정뱅인가~? 길 한가운데 서있어~. 건드려볼까나~ 어차피 우리 인간들에겐 보이지 않잖아~.」
가샤도쿠로는 팔을 들어올린다. 그 끝에는 날카로운 손톱이다. 금녹황색의 선을 그리며 상반신 뿐인 해골이 돌진한다.
「나 역시 썰고 싶어, 썰꺼야. 되는거지, 절단해도 되는거지~?」
칼날같은 섬광이 밤공기를 내찢는다.
내던져진 파리잡이끈마냥 잘려져 나간 한쪽 팔이 회선을 그리며 높이 치솟는다.
「절단 성공~.」
가샤도쿠로가 잇몸이 없는 앞니를 달각달각 맞무르며 말한다.
「라고는 했지만 아니잖아. 이건 아니지~ 내가 절단되어서야 어쩔꺼야~.」
한쪽 팔을 잃은 해골의 앞에 칠흑의 외투가 나부꼈다.
「네, 네놈. 인간… 내가 보이는 거야~?」
잇몸이 없는 가샤도쿠로의 입에 꽂히는 새하얀 검의 반짝임이 그 답이었다. 일직선으로 입안을 꿰뚫은 칼끝은 후두부에서 튀어나온다. 가샤도쿠로는 눈구멍을 꿈틀대며 입에 물고 있는 모양새가 된 칼표면에 파도치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칼날의 물결무늬는 위를 향하고, 칼등은 아래로 향해 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 어이~.」
이대로 칼을 쳐올리면 위턱부터 두개골이 두동강난다.
「잠깐 인간. 내가 보인다는 건 잘 알….」
칼날에 드리워진 파문의 반짝임이 급상승했다. 두개골이 두쪽나자 가샤도쿠로가 원성의 신음을 흘린다.
「자, 잠깐이라고 했잖아. 아, 우, 잠깐이라고….」
칼날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급강하해, 해골전체를 일자로 내리가른다. 파문의 섬광은 그대로 멈추지 않고 가로로 내달려 가샤도쿠로의 몸을 완전히 분쇄하고 있었다.
지면에 와르르 쏟아져 내리면서도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아랫턱부분이 아직도 말을 잇는다.
「어, 어째서, 어째서 몸이 재생되지 않지, 네, 네놈. 그, 그거. 단순한 칼이 아니잖아….」
「무라마사(霧螺魔叉)……―」
새하얀 검을 움켜쥔 칠흑의 외투가 어둠속에서 찬찬히 걸어 나왔다.
「무라마사(村正)가 무라마사[村正]를 베기 위해 두드린 검이다. 불길함과 저주[呪詛]를 베지.」
「도쿠가와 가의 저주의 요도를 벤다는 그건가. 네, 네놈은 도대체… 아갸갸갸갹….」
넉넉한 외투 자락 사이로 뻗은 검고 긴 바지. 그 끝의 검은 가죽 구두가 지면에서 신음하는 해골의 아래턱을 가차없이 짓밟아 으깬다.
「쿠즈노하…―」
그 발치를 향해, 칠흑의 외투가 이름을 밝혔다.
이름을 물은 상대는 이미 원형을 잃고, 탁음 섞인 목소리는 완전히 침묵해 있다. 그런데도 굳이 그 질문에 답한 것은 칠흑을 몸에 두른 남자의 계율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단순히 바보라 해도 좋을 정도의 정직자(正直者)이기 때문인걸까.
「쿠즈노하 라이도우.」
혹은 순수하게 싸우기 전에 이름을 밝힌 것에 불과했던걸까.
「야타가라스의 명에 의해― 사악한 마(魔)를 처단하는 제도 수호에 임(任)하고 있다.」
**
칠흑의 외투자락이 검은 호랑나비처럼 회를 쳤다. 바람이 하늘에 드리워진 암운을 걷자 드문드문 내비치는 달빛이 그 모습을 선명하게 했다.
「그림자 기관, 야타가라스의 첨병인가. 키이익, 라이도우라고?」
외투 아래 역시 검은색 일색이다. 정확하게는 깃을 세운 남학생 복이기 때문에 검다.
같은 색의 학생모가 머리에, 그 차양 아래로 엿보이는 얼굴은 옷과는 대조적으로 백련마냥 새하얗다.
「마단진(魔斷震)으로 인해 생겨난 ‘틈’을 방황하다 나온 악마들인가.」
아이라인을 칠한듯 뚜렷한 눈매. 입술역시 검게 칠해져 있는것 같다. 선이 바른 콧대, 도자기를 연상시키는 뺨, 그 뺨에 예각으로 자라 달라붙어있는 귀밑털, 홍안의 미소년이 아니라 백안의 미소년이라 하는게 보다 어울리는 용모였다.
「상복의 여자와… 거기 데리고 있는 죽은 자를 건네라.」
「키기긱. 쿠즈노하 라이도우인가. 웃기는군.」
후요코를 허공에 띄우고 있던 날개가 토해내듯 말한다.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군.」
학생복 차림의 소년의 한쪽 팔이 가슴께로 향했다. 검은 색의 옷에는 보사(步射)에서나 쓰여질 법한 흉갑이 장착되어 있었다. 단순한 흉갑과 다른 점은 거기에 건홀스터의 카트리지 루프와도 닮아있는 작은 주머니들이 이어져 있고, 거기에 실탄이 아니라 칠척 정도 길이의 은백색 ‘관(管)’이 꽂혀져 있다는 점이었다.
「네비로스. 주살 주문을. 키기긱. 이 애송이는 칼을 쓴다. 단순한 검은 아닌 모양이지만 간격안에 들지만 않으면 두려워할만한게 못 돼.」
「알겠다.」
다홍색의 두건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먹을 셈이었던 것 같다만…」
소년의 가슴께에서 ‘관’이 뽑혀져 나온다.
「죽은 자와 사이좋게 산보라니, 취미인건가. 이해할 수 없군.」
「뭘~ 금방 이해할 수 있을꺼야, 금방.」
청록의 날개가 크게 회를 친다.
「너도 금방 죽은 자가 되어서 끌려 갈테니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소리는 진동파가 되어 공기를 일그러트렸다.
휘어진 공간은 사선이 되어, 학생복을 입은 소년을 엄습한다. 검은 외투가 옆으로 긴 잔상을 남기며 움직였다. 일그러진 공간은 그 잔상을 내찢고 거칠게 지면을 꿰뚫는다. 허나 소년의 횡이동은 메뚜기의 도약보다 민첩했다.
「내 음파를 피해내다니, 키긱. 하지만 주술영창은 피할 수 없을껄.」
청록색의 날개 아래, 두건을 두른 네비로스가 멜로디를 붙여 주살시(呪殺詩)를 노래한다. 소년의 손끝에서 관이 흔들렸다.
비취색의 빛이 번쩍였다.
그 빛속에서― 관속에서 탄환처럼 이형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키익, 놈! 서머너였던거냐아아아아!!」
악마소환사, 외래어로는 데빌 서머너(Devil Summoner). 평소 봉마구인 ‘관’에 마물을 기르며, 그를 수족으로 사역하는 자를 이야기한다.
‘관’의 재질은 제각각이지만 제철 기술이 전래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주로 죽통을 사용했다. 각지에 전해지는 ‘이즈나 술사’는 그 설례였다. 소매에 들어갈 정도로 가는 죽통 속에 영력을 지닌 요호(妖狐)를 키우며, 술자의 신통력으로 그를 부린다며 경외시되었다.
이즈나 술사란 실로 데빌 서머너 그 자체로, 우에스기 겐신, 또는 호소가와 마사모토 등의 무장은 이런 ‘이즈나 술법’에 뛰어났다고 전해져, 죽통 속에서 이나리다이묘진[稲荷大明神], 야차 다키니텐까지 소환해냈다는 일화마저 남아 있다.
데빌 서머너는 옛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데빌 서머너를 주축으로, ‘마(魔)’로부터 일본을 지켜온 ‘그림자 기관’이 전승 상에 이름이 남아있는 환상의 삼족오, 야타가라스인것이다.
「라이도우.」
비취색의 빛속에서 뛰쳐나온 그림자가 검은색의 우아한 꼬리를 흔든다.
「도아마스!!」
개과의 악마였다.
「여어, 라이도우. 죽여야 되는건 어느 쪽?」
흑과 백의 체모. 균형잡힌 사지. 강철제의 목띠에는 철퇴에 박힌 돌기 같은 가시가 박혀있다. 머리에는 클로즈 헬름의 바이더를 연상시키는 강철의 이마보호구를 장착하고, 그 좌우로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칼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터치팝― 고데도, 파마도 하지않고 머리칼을 귀에 걸치듯이 컷한 네덜란드 풍의 단발머리였다.
「뭐, 뭐야. 이 노랜.」
이마에서 두 눈, 그리고 우아한 콧등까지 걸쳐져 있는 검은 라인은 파티용 아이 마스크를 연상시키고, 가슴께 새하얀 가슴에 드리워진 검은 모피는 마찬가지로 무도회용 드레스를 생각케했다.
「도아마스, 스턴 하울링(Stun howling)을.」
개과의 악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게 칠해진 입술을 열어 높이 부르짖었다.
네비로스의 두건이 흔들렸다.
노래로 전해지던 주살의 시가 악마 도아마스에 의해 가로막힌다.
「큭, 하지만 봉해졌을 뿐이다.」
네비로스는 후퇴하며 손가락 끝으로 인을 맺었다.
「애송이도, 개도 결국 근접기뿐일터. 그렇다면 멀리서 ‘삼분(三分)의 마맥(魔脈)’으로….」
다홍색의 수건이 진홍색으로 젖어 비산했다.
머리가 있던 부분에서 백연이 떠돈다. 아메리카의 희극배우 해롤드 로이드마냥 네비로스가 쓰러졌다.「아앙? 먼 곳에서 뭐라고?」
도아마스가 지면에 쓰러진 네비로스를 향해 코웃음을 친다.
도아마스의 뒤쪽, 검은 외투에 학생복 차림의 소년이 뻗은 팔에는 초연을 피어올리는 회전식 권총―리볼버가 쥐어져 있었다.
「가중탄인가. 키기긱. 건슬링거이기도 했다니…. 애송이, 네놈은 누구냐.」
하늘에서 날개가 펄럭인다.
「이름은 이미 이야기 했을텐데.」
「사칭은 그만두시지. 정보통인양 거드름피우는 악마들이라면 그 이름―라이도우도 통할지 모르겠지도 모르겠지만.」
「저 날개녀석.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개과의 악마, 도아마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도아마스, 여자를.」
「죽여?」
흑백의 얼굴에 희색이 떠오른다.
「주워―――」
그 말과 동시에 소년의 손끝에서 탄환의 총구화염[Muzzle Flash]이 튀었다.
화탄은 허공에 띈 상복을 꿰뚫고, 그 등에 밀착해 있는 날개까지 튀었다.
「아아앙~ 거추장스러운 인질을 죽일거라면 라이도우 나한테―.」
「재차 말하진 않겠어.」
「그치만 라이도우. 하늘에 있는걸 어떻게 주워? 게다가 라이도우 이미 쏴버렸고…. 저 여자, 줍고 자시고 할꺼없이 이미 죽어버렸을걸.」
청록의 날개가 기울어지며 급상승하더니 쓸모없어진 증조 탱크처럼 후요코를 떨어트린다. 아니 그것은 지향성의 폭탄에 가까웠다. 검은 외투 차림의 소년을 목표로, 상복 차림의 후요코가 가속도를 붙여가며 낙하해간다. 총구는 위를 향하고, 다시 화염이 튄다. 사선은 가차없이 후요코를 꿰뚫고… 아니, 기모노 섶, 가랑이 사이를 꿰뚫고 선회도중이던 날개에 폭염을 흩뿌린다.
몸을 젖힌채 추락하는 후요코의 소매에는 첫번째 탄에 의한 탄흔이 보였다. 모든 탄환은 상복을 관통했지만 그 옷자락만을 상하게 했을 뿐이었다.
「떠, 떨어지고 나서 주워도 될까? 그래도 돼? 어쩔려나.」
지면으로 하강해오는 검은 상복을 향해, 개과의 악마 도아마스가 새하얀 발끝을 걷어내차며 내달려갔다. 그 방향에 서있던 학생복의 소년은 길 안쪽으로 길게 도약하고 있었다.
*
도약하면서 발사된 화탄이 급강하[Power Dive]하는 청록색의 날개를 꿰뚫는다. 상처를 입음에도 불구하고 고속으로 육박해오는 날개가 키킥하고 웃었다.
「애송이, 거기까지다. 격철을 다시 당길때 쯤엔 이미 죽어 있겠지!!」
리볼버는 격철을 잡아 당기는 콕킹(Cocking) 동작을 행하지 않으면 탄환을 발사할 수 없다. 엄지손가락으로 격철을 잡아 당기던가, 총을 쥐지 않는 쪽의 손바닥을 이용하던가. 어찌됐든 트리거를 당기기 전에 격철을 당기는 일은 총알을 발사하는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행동이고, 거기엔 한박자 이상의 틈이 필요하다.
질풍은 학생복의 소년에게 급작스럽게 접근해왔다.
청록색의 날개 이외에는 전혀 빛을 반사하지 않는 탓에, 극히 가까운 곳에 이를때까지 그 형상은 분명치 않았다.
「키키긱.」
커다란 박쥐였다.
바르게 말하자면 박쥐형의 악마(Bet Devil)이겠지. 체구는 인간과 유사하다. 양팔 대신 피막 같은 거대한 날개, 서양의 투구 스컬캡을 연상시키는 머리, 깊게 패인 눈. 그리고 크게 벌어진 입안에는 송곳니만이 줄지어 서있다. 소년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하는 그 어금니 안쪽에서 무겁고 습한 호흡이 새어나왔다.
박쥐의 목구멍에 닿은 총구가 빛을 발했다.
「키이익…, 민첩하군. 허나…….」
숨을 내뱉는게 아니라 초연을 내뱉으며, 이빨은 더더욱 빠르게 육박해온다. 격철이 탄환 저부의 뇌관을 때리는 소리가 연속해서 이어졌다. 화약이 이어져 폭발하고, 탄두가 총구에서 연사된다. 그 강렬한 반동으로 총신이 크게 튀어오르고, 밀착직전이던 박쥐의 몸은 더더욱 크게 튀어 올라 후방으로 밀쳐져 나갔다.
「키, 키긱…. 어, 어떻게 계속 쏠 수 있지….」
「콜트 라이트닝.」
목제 그립을 고쳐쥐고 실린더의 장탄구를 연다.
실린더를 돌리며 한발씩 탄피를 꺼내고 장탄을 행하며, 라이도우는 땅에서 꿈틀대는 큰 박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키익, 라이트닝 리볼버… 빌리 더 키드가 애용했다는….」
격철을 당길 필요가 없는 더블 액션 타입의 권총이다. 즉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총탄을 연속해서 발사할 수 있다. 빌리 더 키드의 그 전설적인 속사에는 라이트닝 타입을 쓰기 때문이라는 일설도 있다.
「질문에는 답했다. 이번엔 내 질문에 답해 주실까. 죽은 자를 어찌할 셈이었지?」
「하지만… 가중탄에 칼은 무라마사라…. 네놈은… 캬아악.」
말꼬리에 비명과 총격음이 뒤섞였다.
「그런건 묻지 않았어.」
표적을 겨냥한 총구에서 초연이 길게 피어오른다. 학생모 아래의 두 눈동자가 냉철히 박쥐를 응시하고 있다.
「키, 키긱…. 나를 죽일 셈인가.」
「그것도 묻지 않았어.」
다시 총탄이 발사된다.
「키아아악! 나는 불사신이다, 죽일 수 없을걸.」
「묻지 않았어.」
발사되는 화탄에 몸을 일으키려하는 박쥐의 혈육이 튀었다.
「아갹…. 키이이익. 네놈같은 애송이는 무리다. 진짜 쿠즈노하 라이도우조차 날 죽일 수 없었어.」
「선대와 싸운 적이 있는건가.」
그 말과 동시에 다시 총성이 울린다.
「키아아악…, 뭐, 뭐라… 선대…라고?」
「제 14대 쿠즈노하 라이도우.」
총격음과 함께 다시 소년이 이름을 밝힌다.
「아갹…, 14대라니… 라이도우를 계승한건가. 그 망할 13대째는 뒈졌나, 키이익. 이런 애송이놈이 라이도우라고 나서다니, 야타가라스도… 한물갔군.」
「묻지 않았다고 했다.」
탄창의 잔탄이 모두 박쥐 악마의 몸에 틀어 박히고, 짙은 폭연이 피어오른다. 피어오르는 연기속에 청록의 날개가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켜, 라이도우의 학생모를 향해 쏜살같은 빠르기로 엄습해온다.
「나는 불사신이라고 이야기했을…텐데!!」
정면이었다.
일렬로 선 이빨이 라이도우의 안면에 격돌한다. 그 직전, 학생모가 뛰어올랐다. 풍압으로 날아간게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뛰쳐나간것이다. 허나 기묘하게도 없어져야했을 모자는 아직도 라이도우의 새하얀 얼굴위에 얹어져 있었다!
뛰쳐나간 것은 검은 고양이였다. 학생모 위에 있었던것일까, 아니면 검은 외투 어딘가에 숨어있다 모자를 도움닫기 발판 삼았던걸까.
검은 털자락이 앞으로 구른뒤 비상하여 박쥐의 두 눈에 손톱을 세운다.
「키이익!!!」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비명을 머리위로 한 채, 발을 앞으로 내딛은뒤 라이도우는 몸을 굽혔다.
「키…아아아악….」
박쥐의 몸 바로 아래에서 섬광같은 빠르기로 팔을 들어올려 그 심장을 칼로 꿰뚫었다. 그런데도 청록색의 날개는 홰를 친다. 몸이 상승하자 절로 박쥐의 가슴께에서 피에 젖은 칼날이 뽑혀져 나간다.
부양하는 힘을 더해 날아오르려 한다.
「부, 불사신이다. 키이익. 이 아르카드님은 죽지 않아!!!」
『이거 굉장한걸.』
라이도우의 발치에서, 검은 고양이가 녹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저만큼 총을 맞은데다 눈은 다치고, 심장마저 꿰뚫렸는데도 아직도 움직일수있다니.』
「키기긱. 어둠은 나의 태내. 과연 날 찾을 수 있을까.」
박쥐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녹아사라졌다. 라이도우는 외투를 걷어 올려, 가슴께의 관에 손을 얹었다.
『큰 것은 부르지마.』
「걱정마. 고우토. 작은 쪽을 부르도록 하지.」
『그쪽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만…』
카트리지 루트의 작은 자루에 수납되어있던 백은색의 관. 개 중 하나는 이미 도아마스를 소환했기 때문에 뚜껑이 열려 있었다. 봉마의 인이 떠올라 있는 관은 남은 2개. 그것은 즉 14대 쿠즈노하 라이도우가 사역가능한 악마의 수를 의미한다.
「잭 랜턴!」
비취색의 빛 속에서 호박머리의 작은 악마가 날아올랐다.
「히호――」
호박 그 자체에 조각된 동그란 눈, 삼각형의 코, 톱날같이 삐죽삐죽한 커다란 입. 원추형의 마녀모를 쓰고, 한손에는 오렌지색 빛을 발하는 랜턴을 들고 있다. 목 아래 전신에는 서양의 어린애 잠옷을 연상시키는 망토차림이었다.
「잭 랜턴. 탐염등(探焰燈).」
「힛호―」
랜턴의 오렌지색 광원이 빛줄기를 드리운다. 길게 꼬리를 끄는 가는 빛줄기가 쏘아올려진 폭죽처럼 연속해서 하늘로 흩어졌다. 그 중 하나가 검은 길 뒤쪽으로 도망치듯 날아가는 청록색의 날개를 포착했다.
「마킹해.」
「히호호홋―」
호박머리의 악마, 잭 랜턴이 자신의 역할을 깨달았는지 랜턴을 들어 어두운 길을 나아가기 시작한다. 라이도우는 그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군. 쫓을 수 있을까?』
발치에서 나란히 달리는 검은 고양이 고우토가 울었다.
「쫓을 수 있어.」
『그 13대조차 쓰러트리지 못한 상대라… 조금 성가시게 됐군.』
「역대 라이도우들을 지켜 봤을텐데. 그 박쥐가 선대와 싸울 때엔 같이 있지 않았던건가?」
『13대째는 ‘요괴와 싸우는 완고한 투인(鬪人)’이었으니까. 언제나 단독행동을 즐긴 탓에 조언은커녕 따라가는것조차 고생이었다. 야타가라스에 보고조차 없이 남모르게 싸운 악마의 숫자라면 틀림없이 라이도우 으뜸이라 할 수 있겠지.』
공중에 뜬 잭 랜턴이 옆길로 나아가자, 라이도우도 그 뒤를 따랐다.
「그 박쥐― 아르카드에 대해선 아무 말도 듣지 못한건가?」
『그래. 다만 그 이름은 신경쓰여. 설마라곤 생각하지만 그 이름의 배열…』
잭 랜턴이 성벽과도 같은 울타리를 돈다. 라이도우와 고우토도 뒤쳐지지 않게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거기서 급 정지했다. 담에 바짝 달라붙은 듯, 검은 그림자 속에 두건을 쓴 여성이 서있다. 어두운 검은색의 기모노다. 머리는 두건으로 가려져, 코 밑 이외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어, 어째서 여기에…』
뭐라하기 힘겹게 우는 검은 고양이의 소리에 응하듯, 라이도우는 낮게 중얼거렸다.
「야타가라스의 사자(使者)…」
**
야타가라스의 사자는 야타가라스로부터 내려받는 임무, 지령을 전달하는 대리인이다. 그녀와 만나는 장소는 제도 교외에 있는 이름도 없는 신사로 정해져 있다. 신사에서 만난다고는 하지만 박수나 종을 울리는 횟수 등, 암호로 전해진 ‘참배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마을 안에서 만나는 일이 있을리 없을텐데.
「물러나 주십시오.」
사자(使者)의 연보랏빛 입술이 움직였다.
라이도우는 답 없이 멀어져가는 잭랜턴의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잠깐. 이건 어찌된 일이지?』
고우토가 녹색의 눈동자를 빛냈다.
「부디 물러나 주십시오.」
사자(使者)가 거듭 입을 열자, 라이도우는 그에게 시선을 옮기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어이― 잠깐, 라이도우. 아니, 아니아니. 야타가라스의 사자여. 이건 도대체 어찌된…』
「언제나 만나던 시노다(志乃田)의 사자는 아니군.」
「네.」
연보랏빛 입술이 답했다.
『자, 잠깐 기다려. 어느 지구(地區)를 담당하는 사자인줄은 모르겠지만 제도를 책임지고 있는건 라이도우다. 어떻게 그걸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아니 도망치는 악마를 앞에 두고 추격을 중지하라니, 자네 정말로 야타가라스의 사자인건가?』
「고우토 동자에게는 후일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눌러쓴 두건의 여성이 고양이를 바라본다.
『에, 에잇! 후일같은 미적지근한 소리가 아니라, 지금 알고 싶은거다. 어떤 연유가 있어서 악마를 추격하는 것을 막는거지?』
「불가침 조약이…」
『악마에 대한 불가침?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야타가라스와 야타가라스 사이에 고래로부터 전해지는 맹약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릴…. 어이 라이도우, 너도 뭔가 말해… 라이도우?』
검은 외투의 소년은 이미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감사드립니다.」
사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반발없이 들어주셔서 실로 감사하기 짝이없습니다. 어디의 고양이와는 달리 깨끗이 돌아서시는 그 늠름한 태도, 이제부터는 ‘순박늠름의 왕자, 14대 쿠즈노하 라이도우’라고 일컬기에 충분하겠죠.」
「생각해두지.」
돌아보지도 않고 답하는 검은 외투의 소년의 발치에서 언짢음 그 자체인 울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고우토 동자를 보고 ‘어디의 고양이’라니.』
「히호―, 히호호홋!!!」
나란히 걷는 인간과 고양이의 머리위로, 오렌지색의 빛이 부산스럽게 달려온다.
「히오, 히호홋!」
잭랜턴이 랜턴을 흔들며 우는 소리로 호소하고 있었다.
『어두운 길을 혼자 보내놓고서 왜 따라오지 않았냐고? 라이도우에게 물어봐.』
「히호?」
「어두운 길에 혼자라서 무서웠었나?」
학생모가 머리위의 빛을 바라본다.
「히호호호호호!」
분개한듯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그래, 뒤에 아무도 없어서 조금 놀랐을뿐이구나. 무서울 리가 없겠지. 잭 랜턴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히―호~」
허공에 뜬 소악마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편다.
「수고했어.」
검은 외투에서 ‘관’을 꺼내자, 머리위의 악마가 그 안으로 귀환한다,
『사실은 무서웠던 주제에.』
검은 고양이가 코웃음을 치며 독설을 내뱉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이지. 야타가라스의 사자의 말을 이리도 순순히 따르다니. 어찌된 일이지, 라이도우? 그 말도 안되는 제지가 조금 의문스럽지 않던가?』
「않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리 즉답을.』
「사자의 ―――가 ――――를 닮아서.」
가는 밤바람이 라이도우의 낮은 중얼거림을 어둠 속으로 쓸어가버린다.
『응? 잘 안 들렸다만?』
「사자의 입가가―――」
『그 연보라색 입술이 뭐가.』
발치에서 걷는 검은 고양이가 작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닮아서.」
『라이도우?』
「어머니와 ――――많이 닮아서.」
「라이도우도 참!!!」
전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학생모 아래의 낮은 중얼거림을 긁어가버린다.
「이봐, 라이도우! 어찌된 일이야. 나보고 여자를 주으라고 한 뒤에 그대로 내팽개치고 랜턴꼬마에 고양마(魔)랑 나란히 박쥐같은걸 쫓아가버리다니!!」
상복차림의 후요코를 어깨에 걸친 개과의 악마, 도아마스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라이도우 역시 보폭을 크게했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도아마스의 뺨에 붉은 색조가 비쳐들었다.
「그, 그… 나는 딱히 화난게 아니라, 거야. 모처럼 불러내놓고선 바로 떨어져야해서 쓸쓸해하는 맘은 알겠지만… 고양마도 있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두 팔을 벌리는 도아마스를 향해 라이도우 역시 두 팔을 좌우로 크게 펼쳤다.
「느, 느닷없이 끌어안다니…, 그 내게도 마음의 준비라는게… 아, 아앙…, 라이도우….」
허벅지를 비비꼬는 개 악마의 곁을, 라이도우는 몸을 반쯤 비틀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에, 에엣?」
몸을 선회시킨 기세를 실어 라이도우는 칼을 뽑아 우두커니 서있는 사자(死者), 후요코의 아버지를 향해 그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었다.
「당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칼끝이 섬광을 발하는 순간, 죽은 자의 윤곽은 일그러지고, 반투명한 빛줄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진다.
『호오, 육신 없이 그저 생전의 모습을 취하고 있던 혼령이었던가.』
검은 고양이가 울었다.
『무라마사의 능력으로 방황하던 혼령은 성불한건가?』
「아니, 악마에 의한 통제를 끊었을 뿐. 이 사령(死靈)은 아직 카론의 인도를 얻지 못했어. 명부에 도달하지도 못한 모양이야.」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린가』
카론은 삼도천, 스튁스의 뱃사공으로 죽은 자의 혼을 배에 싣고 명부까지 안내한다고 일컬어진다.
『이 세계에 머물러 지박령이 되지 않으면 좋을텐데.』
「걱정할 필요는 없을것같아. 소중한 사람의 곁을 떠나려하지 않아.」
학사모의 차양이 도아마스를 향하자, 검은 고양이도 그쪽을 바라본다.
「어, 어이, 라이도우?」
도아마스가 걸쳐 맨 상복에서 반투명한 빛줄기가 일었다.
『혼령은 저 상복입은 아가씨의 부친인가?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카론의 인도를 얻기도 전에 박쥐 악마 일행이 먼저 데려가 버리려 했던 모양이군… 설마 생전 모습 그대로 혼령을 부릴 줄이야, 평범한 악마의 념(念)이나 힘으론 불가능할텐데…. 애초에 혼령을 데려가 뭣에 쓸 셈이었던건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라이도우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도아마스, 상복입은 여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와줘.」
「어, 나?」
『어이, 라이도우. 박쥐 악마의 목적에 대해 생각친 않는거냐?』
「생각하면 알 수 있는건가?」
학생모의 소년이 짧게 말했다.
『거야, 그렇겠지만. 어째서 이처럼 이해불가능한 짓을…』
「어째서 내가 그런 걸 해야되는건데.」
『어이, 개악마는 조금 조용히 하지 못하겠나?』
「고양마야말로 좀 조용히 해. 라이도우, 뭐야. 나를 불러내서 시키는 일이라곤 여자를 줍는 것뿐이더니, 이번엔 옮기라고? 겨우 그걸로 끝?」
치솟은 흑백의 체모에 검은 외투가 소리도 없이 다가간다.
「도아마스.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확실히 주은 모양이군.」
「그런 소리가 아니라!」
「잘 했어.」
붕.
「뭐, 뭐어. 떨어지기 전에 줍는거야 당연하지. 라이도우의 지시라면 척하면 척이니까.」
「여자의 집은 냄새를 더듬어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겠지.」
「거야, 간단하지만…. 나는 싸우게 해주지도 않고 물건을 줍게 한다던가 가마 대용으로만 쓰는거 너무하잖아.」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
붕붕.
「그, 그런 소리한데도, 안 되는 건 안돼. 라이도우는 언제나 말뿐인걸.」
「진심이야.」
붕붕붕.
「이, 이번엔 특별히 옮겨주겠지만! 다음부터 나한테 이런 잡일을 시키면 절대로 간단히 넘어가지 않을테니까!!」
「도아마스.」
내달려가는 도아마스를, 라이도우가 불러 세웠다.
「뭐, 뭐야?」
「고마워.」
붕붕붕붕.
「시, 시끄러. 소환명령이니까 어쩔수 없이 따르고 있는 것뿐이야. 굳이 하나하나 고맙다고 하지 마. 바보. 바보 라이도우. 가끔은 자유소환 해 줘.」
끊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개과의 악마 도아마스가 제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흘러가는 구름 떼가 다시 달에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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