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스샷입니다. 스샷은 추후 여튼여튼. -----------------------------------------
76. 구미호 (1)
타카노와 이야기를 끝마치자, 벌써 저녁이 되었다.
그는 폐관 시간까지 도서관에 남아 있을 거라고 해서
먼저 돌아가기로 했다.
「…….」
도서관에서 나눈 이야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몸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니.
갑작스러운 부름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은 있었지만.
「하아…….」
교문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추욱 어깨를 떨군다.
요괴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에 관한 전승을 조사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 사람들의 과거사를 멋대로 헤집는 것 같아서.
거북하다랄까…. 알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료 군.」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역시 타마모 씨였다.
그 얼굴을 보고 떠오르는 것은,
역시 오늘 도서관에서 보았던 문헌이나 삽화 같은 거….
거기서 생각하는 걸 관두고, 나는 눈을 내리 깔았다.
「데리러 왔어. 같이 돌아가자.」
「오늘은 몸이 좀 괜찮으신가요…?」
「푹 자면 괜찮다고 했잖아. 신경 쓰지 마.
그럼, 갈까.」
역으로 가는 귀갓길을 걷고 있자니, 타마모 씨가 멈춰선다.
고개를 들자, 눈이 반짝반짝하고 있다.
「저기, 료 군. 저 상점가에 가 본적 있어?」
「에? 저런 가게가 있었네요…. 처음 봐요.」
「잠깐 들렸다 가자.」
77. 구미호 (2)
「안돼요…. 타마모 씨 아직 몸도 안 좋은데.
또 머리가 아파지면 어쩌시게요?」
「두통 정도는 별 거 아니래두.」
나는 말이 막혔다.
타마모 씨의 몸이 안 좋다는 건 알아도,
그 이상은 아는 게 없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료 군은 걱정이 많네.」
타마모 씨는 어깨를 퐁하고 두드리며 상점가로 향한다.
내가 입을 다물어서, 신경을 써주신 거겠지만.
「정말로 잠시만 눌러 보는 것 뿐이에요. 오래 있진 않을 거고요?」
「알겠어~.」
「무슨 살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
「아니. 없는데? 알지? 전에 료 군이랑 같이 갔던 상점가.
거기랑 분위기가 비슷하다 해서.
그래서 잠깐 둘러 보고 싶어.」
행복해 보이는 웃음에, 찌잉하고 가슴 속이 아릿했다.
(그 때의 타마모 씨, 엄청 즐거워 보였는데.
어쩌면 꽤나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던 걸까.
그럼 좋겠다.)
통통 뛰면서 멀어져 가는 등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내 몸을 빼앗으려 하다니, 말도 안 된다.
타카노가 했던 말이나, 도서관에서 조사했던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맘은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지금에서도,
타마모 씨와 함께하는 것에
아무런 위기감을 느낄 수 없었다.
저녁놀 진 거리를 걸으며….
나는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78. 구미호 (3)
「응. 설명할 테니까 이 책을 보면서 들어 줘.
이거 타마모마에 전승에 대해 적혀 있는 첵인데.
나는 타마모마에에 대해서는 지식이 조금 있으니까
너한테 경고할 수 있었던 거지만.
너는 아직 그에 대해서 잘 모르지?」
(어라…? 나, 타마모 씨가 여우 요괴라는 이야기 했었나?
타카노는 영감이 있다고 했으니까, 느낀 건가?)
건너편 자리에 앉자,
타카노가 테이블 한 가운데에 두터운 책을 펼친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타마모마에는 원래 여우 요괴로
미녀로 변해 덴노를 유혹하여, 나라의 권력을 수중에 넣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손에 의해 궁정에서 쫓겨난 다음에도…
원념이 돌이 되어, 다가온 인간이나 동식물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이런 전승이 있었다니… 전혀 몰랐어….」
(타마모 씨가 여우 요괴라는 건 왠지 모르게 알았지만….
전에 변신했을 때에도 여우 귀가 달려 있었고….)
79. 구미호 (4)
「구미호. 백면금모구미, 달기, 타마모마에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전부 같은 요괴…라는 설이 유력한 것 같아.」
「에? 하지만 달기는 분명 중국 은나라 시대의….」
「맞아. 그 뒤는 인도라던가….
타마모는 여러 나라의 국왕 가까이에 있었어.
절세의 미녀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자들을 유혹하여
제 뜻대로 조종했던 거야.」
(타마모 씨는 남자지만, 유혹할 수 있을 정도의 미모임은 틀림없지….)
「그렇다는 건 일본으로 건너 온 거겠네.」
「각지에서 악행이 들통날 때마다, 퇴치 되긴 했지만
간신히 도망쳐서 다음 나라로 옮겨 다닌 거겠지.
그것을 거듭 반복하다, 견당사의 배에 올라타 일본으로 왔어.
그리고 덴노에게 붙으려 했던 것을 발견해서
아베노 야스나리(阿部泰成), 혹은 아베노 세이메이에 의해
퇴치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엣?!」
무심코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다급히 입을 막자니, 타카노가 얼굴을 가까이 대왔다.
「미안. 뭔가 놀라게 했어?」
「괜찮아. 신경 쓰지마.」
(아, 아베노 씨한테 퇴치 당했다니….
잠깐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지만 생각해도 전혀 모르겠다.
이 건은 일단 제쳐두고, 뒷이야기를 재촉한다.
「여기에 적혀 있는, 원념이 돌이 되었다는 건 뭐야…?」
「어라? 몰랐어? 살생석이라고 하는데.」
80. 구미호 (5)
「그건 나스 고원에 있는 그 바위 말이야…?」
「응. 퇴치된 타마모마에는 바위 모습이 되었지만,
그게 병을 뿌린다고 스님에 의해 3개로 쪼개졌어.
그 중 하나가 나스 고원, 사이노가하라(賽の河原)에 있는 돌이야.」
그때 떠올린 것은, 타마모 씨가 전에 말했던 『저주』.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상대가 병에 걸린다고 말했던 건…
어쩌면 살생석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내가 제일 신경 쓰이는 건 말이야.
이 바위가 된 타마모마에가
어떻게 또 모습을 드려냈는가 그거야.
그러니까… 너와 타마모 씨…, 굉장히 사이가 좋아 보이고.
이런 말,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응….」
「그러니까, 화내지 말고 들어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억측이고,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에 불과하니까.」
「알아…. 고마워.」
내가 웃자, 타카노도 안심한 듯 표정을 풀었다.
「나는 타마모마에가 너를 속이고 이용해서
뭔가 좋지 않은 짓을 꾸미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
「…….」
「미안. 기분 나빴지?」
웃음으로 답했지만, 시선이 쳐진다.
역시 소중한 친구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기분 좋지 않다.
(타마모 씨라면 남을 유혹하는 건 간단하겠지만.
전승으로 듣는 타마모마에라면 몰라도
내가 아는 타마모 씨가 뭔가 목적을 위해
남을 유혹하고 그럴까…?)
처음 함께 잤던 그 날, 타마모 씨의 절실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사실은 쓸쓸하고 괴롭다고 말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이 사람은 계속 함께 있어 주지 않을까하고, 기대하고 말아.』
타마모 씨의 목소리에서 전해져온 감정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눈물샘이 풀린다.
그런 사람이 나를 이용하다니, 그런 일….
1. 있을지도 모른다. 2. 절대로 없다. (호감도 5up)
3.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 절대로 있을 리가 없어.
그 타마모 씨가, 그런 짓을…….)
그 대답을 내놓지 못한 채, 타카노와 헤어진 다음.
나는 지금 타마모 씨와 함께 상점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