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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케이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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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너는 언제쯤 쇼콜라데를 준비할 셈이냐?」
「네?」

 


 겨울 오후.
 달칵달칵 거리는 주전자 증기로 따뜻해진 실내. 예술품 같은 입술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한 마디에 나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둔한 반응에 기분이 상한 거겠지. 발드는 나를 응시한 채, 스윽 눈썹을 치켜떴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벌써 2월도 열흘이 지났다.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하지 않으면 당일에 늦는 거 아닌가?」

 


 그 말에 그제야 짚이는 게 있었다. 쇼콜라데란 즉, 초콜릿을 말하는 건가? 2월 중순에 있는 초콜릿 관련 행사라고 하면, 성 발렌타인 데이밖에 없다.
 확실히 세상은 이미 그런 시기였다. 피와 초연으로 자욱한 삶을 보내서 그런지, 요즘은 아무래도 그런 일들에 소원했다.

 


「그보다 발드 씨? 남자끼리 발렌타인 데이고 뭐고가 어디 있어? 나이를 좀 생각해 주실래요?」
「경사에 나이는 상관없는 법. 우리 둘이 연인이 되어, 이 땅에 정착한지 처음으로 맞이하는 사랑의 축제다. 조금도 축하할 기분이 들지 않는가?」
「말은 그렇지만, 그냥 댁이 과자를 먹고 싶은 것뿐이잖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실로 당당한 발드의 말에 어이 없어 하면서도, 과거를 떠올렸다.

 


 ……발렌타인 데이, 발렌타인 데이라…. 별로 좋은 추억은 없다. 그저 떠오르는 것은 여자아이와의 달콤한 추억이 아니라, 그저 형한테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전락했던 비참한 시절.

 고급 초콜릿을 주면서「고마워, 쿠도 군! 아, 답례로 이거 줄게!」 하고, 비교조차 되지 않는 싸구려 초콜릿을 받는 것이 고작이었지, 그래.

 

 그리고 《소각 공양》이라면서,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을 뜰에서 태우던 형의 모습도 절로 떠올랐다.
 형 몰래 감춰둔 의리 초콜릿도 강제 압수, 같이 불타사라진 기억도 있지. 도대체 무슨 원한으로 형이 그런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형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불현듯 뒤에서 끌어안겼다. 오니는 기척 하나 죽이는 일에도 그 보낸 세월을 알 수 있는 존재. 이렇게 쉽사리 등 뒤를 허락하다니, 정말 심장에 안 좋다.

 


「뭐야, 왜?」
「지금, 내가 아닌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바보 놈, 입술에 웃음이 걸려있었다」

 


 삐졌냐고. 발드가 마치 벌을 주듯, 뒷덜미를 가볍게 깨물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이 질투왕의 눈의 속일 순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알겠어. 장보러 가면서 케이크든 초콜릿이든 사줄게」

 


 토닥토닥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충 대충 말하자, 으르렁거리던 긴 머리 공주(라푼젤)이 삽시간에 내 몸을 조여올렸다.

 


「으아아악아아악!! 이러다 떨어져, 떨어진다고!!」
「나는 네가 직접 만든 것을 원한다. 그걸 시판 제품으로 떼우려 들다니, 어이가 없구나! 나는 단호하게 케이크를 요구한다! 네가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 생각해라!」
「가정 폭력 금지이이이이이!!」

 

 


 쿨럭이면서 발드의 팔을 때려가며 항복 의사를 밝혔다. 이런 이벤트마다 죽임당할 뻔 해서야,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하다.

 

 


「아야야야야… 알겠어! 알겠다고! 그 뭐냐… 독일의…? 자하… 어쩌구 하는 케이크. 그거 만들어줄게!」

「흠, 자허토르테 말인가」
「네, 네. 그거」
「진스케여, 말해두겠는데 자허토르테는 독일 디저트가 아니다」
「뭐?! 자허에 토르테인데?! 완전 독일어 느낌인데?!」

 


「크카카카카, 공부가 부족하구나. 자허토르테의 발상지는 빈, 즉 자허토르테는 오스트리아의 과자다. 주방일을 하면서 이런 것도 몰랐다니 한심하기 짝이없는 줄 알거라」
「저기요? 네 600년 가까운 지식 용량이랑 비교하지 말아줄래? 이쪽은 안 그래도 가로 쓰기에 약하구만…」

 


 투덜거리면서도 냉큼 Pc를 켠 후,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검색했다.
 다 집에 없는 재료들 뿐이었다. 이거 재료부터 사러가야겠네. 그렇게 한참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이미지 하나에서 손이 멈췄다.

 


「발드, 이거」
「왜 그러지?」
「데빌스 푸드 케이크래. 같은 초콜릿 케이크니까, 이건 어때? 악마의 먹거리…. 이름부터 너한테 딱…… 으아아아아악!! 자허!! 예정대로 자허로 가겠습니다!」

 다음날.
 집사람이 시끄럽게 굴기에, 나는 일찍부터 발렌타인 케이크 제작에 착수해야 했다.
 재료와 조리기구를 준비하고, 바로 팔을 걷어붙였다. 그건 그렇고 버터랑 설탕을 이렇게 많이 쓰다니, 몰랐던 일이라지만 정말 무섭구나. 이 정도면 다이어트 중인 여자아이들이 케이크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도 이해가 간다.
 밀가루를 체로 치면서 뒤에 있는 발드에게 물었다.

 


「야, 발드. 너무 달지 않는 게 좋을까? 원한다면 설탕을 줄일게…」
「진스케여, 과자는 달기 때문에 과자인 거다. 달지 않은 과자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애초에 설탕을 줄였다간 반죽이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

「아, 그래…?」

 

 

 과연 서양인. 딱 부러지게 말씀하시는군요.
 음, 건강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설탕을 적게 넣는 게 더 좋지만…… 뭐, 어때. 어차피 9할은 발드 배 속에 들어갈 건데..
 버터를 넣어 하얗게 될 때까지 반죽한 생지에 정량의 설탕을 넣었다.

 


 그 동안에도 왕님은 턱을 괸 채 완전 뒹굴 모드로 케이크 제작에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을 히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심심하면 달걀흰자로 거품 좀 내줘도 완전 괜찮을 텐데?」
「바보 같은 소리. 여기서 내가 손을 대면 의미가 없지. 사랑하는 반려가 날 위해 땀 흘려 만들어 주기에 가치가 생기는 법이다. 아, 오해하지 말도록. 결코 게으름을 부리는 건 아니니까」
「물어본 제가 바보였네요」

 


 그렇게 투닥거리며 반죽을 부은 케이크 틀을 작업대에 내리쳐 공기를 뺀 후, 오븐에 넣었다.
 케이크 만들기는 익숙하지 않아서 주뼛주뼛 오븐 안을 지켜보고 있자니, 서서히 달콤한 향기가 감돌았다. 따뜻한 방과 케이크 향기. 실로 알기 쉬운 행복의 상징이었다.

 

 


「진스케, 옷 솔기가 터졌다」
「뭐? 진짜?」

 

 


 난데없는 지적에 당황해 팔을 들자, 확실히 스웨터 옆구리가 찢어져 있었다. 원래부터 늘어져 있었는데 달걀 거품을 친다는 등의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을 계속해서 찢어진 거겠지.

 

 


「원래부터 항상 같은 옷만 입었지? 이 기회에 새 옷 한 두 벌 정도는 사는 게 어떠냐?」
「괜찮아. 수선하면 입을 수 있어」
「이거 원, 욕심이 없는 것도 큰일이로구나」
「너한테 그런 소리 듣는 거 진짜 아닌 거 같거든, 이 탐욕 마인」

 

 


 어쨌든 왕을 먹여 살리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아무렇게나 입고 있는 검은색 스웨터는 최고급 캐미시어 제품. 하룻밤에 비우는 와인 가격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뭐, 실질적으로 발드가 돈을 벌어 오니까 상관은 없지만.
 나 역시 발드한테 최대한 맛있는 걸 먹이고 싶고, 좋은 걸 입히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자기는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뭐 그렇다고 무리할 생각은 없지만.
 여하튼——

 


「이거 되게 손이 많이 간다. 어엿한 육체 노동인걸?」

 


 당연히 케이크는 반죽을 굽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식힌 스펀지 케이크를 세 조각으로 자르고, 럼주로 적신 후 살구잼을 발랐다. 그리고 전체를 초콜릿으로 코팅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케이크를 만드는 날 향해, 발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제왕의 풍격으로 대답했다.

 

 

「기호품이란 원래 그러한 법 아닌가? 본디 살아가는 데 불필요한 <유희>이기 때문에 노고와 집념이 발생하는 법이지. 확실히 비효율적이지만, 그 수고로움이야말로 삶을 화사하게 치장하는 거 아니겠나?」
「네가 좋아하는 사냥이랑 마찬가지로?」
「과연 내 반려. 잘 알고 있구나」

 

 


 항상 늘어놓는 궤변을 흘려 들으며, 끓인 퐁당을 케이크 전체에 뿌려준다.
 익숙하지 않은 작업과 많은 공정에 애를 먹으면서도 어찌어찌 그럴싸한 게 완성된 것은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코팅이 굳은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바로 커피를 준비했다.

 



「발드, 케이크 다 됐——」

 


 케이크의 완성을 고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니, 왕님은 테이틀 위에 긴 머리를 드리운 채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무심코 힘이 빠졌다.

 


「너도 참… 간식을 기다리다 지쳐 잠들다니, 어린애냐? 자, 발드 씨. 애타게 기다렸던 케이크야」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들자, 발드는 엎드린 채 작게 코웃음 쳤다. 이 자식, 자는 척 한 거냐고.

 

 

「정말이지 흥취란 게 없구나. 공주는 왕자의 입맞춤으로 일어나는 법, 아닌가?」
「마을사람A의 키스로 일어나는 마왕이라니 들어본 적 없는데」

「나는 자는 중이다. 고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키스를 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렇게 되면 자기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태산처럼 요지부동인 게 바로 발드윈 슈바르첸베크란 남자였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가볍게 소리를 내어, 흠잡을 데 없는 뺨에 키스했다. 예상대로 발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어린아이 같은 몸짓이 왠지 모르게 귀엽다.

 

 


「심히 유감이다」
「이렇게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로 일본인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케이크나 먹어」
「흠, 먹으마」

 

 


 토닥토닥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왕님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작게 자른 케이크 옆에 휘핑한 생크림을 곁들였다. 참고로 발드의 접시는 준비하지 않았다. 케이크 받침이 바로 이 녀석의 접시니까. 유리그릇에 담은 생크림을 통짜로 옆에 놔뒀다.

 


「뭐,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많이 먹어」
「잘 먹으마」

 


 발드는 혀를 핥으며 포크로 케이크를 크게 잘라내더니, 그것을 입가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케이크를 씹는 모습을 군침을 삼켜가며 지켜봤다. 처음 만드는 요리를 내놓을 때는 항상 불안했다. 요리사는「맛있다」는 한마디가 있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 존재인 법.

 

 


「어때?」
「흠, 과연 나의 반려. 처음 만든 것치고는 잘했다. 다만 나로선 좀 더 술맛이 강한 게 취향이다만… 그말은 삼가마」
「이미 말했으면서. 어쨌든 칭찬해주시다니 영광이네」
「다행이구나, 진스케. 너의 그 갸륵한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지 않아서」
「바보냐, 너」

 

 


 흠, 흠. 다음에 만들 땐 럼주를 좀 더 많이 넣기로 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도 포크를 집어들었다.
 완성된 자허토르테는 케이크 치고는 꽤 묵직한 식감을 자랑했다. 맛에 까다로운 왕이 불평하지 않는 모습을 보아, 원래부터 이런 디저트인 거겠지. 으음, 그건 그렇고 달다.

 

 


 결국 나는 한 조각만 먹었고, 나머지는 전부 왕님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니,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몸인지.

 


 세 시간 가깝게 만든 케이크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약간의 공허함을 느끼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음?」
「아니, 저기요? 그래서 너는 나한테 뭔가 없어? 받아놓고 답레도 없는 건 너무하지 않아?」

 

 


 뭐, 원래 기대한 적은 없지만. 여기서 뭔가 선물 같은 게 나오면 오히려 놀랐겠지.
 내 농담 섞인 비아냥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한 덜까. 발드는 잠시 사색하더니, 이내 실로 징그럽게 활짝 웃었다. 은빛 속눈썹 이 드리워진 눈동자가 마치 고양이처럼 가늘어졌다.

 

 


「흠… 이러한 답례는 어떠냐?」

 


 채 뭐라 말하기도 전에 턱을 붙잡혀, 그대로 입술을 깊숙이 빼앗겼다.
 놀라 움츠러든 혀에 혀가 닿더니, 이어 얼르듯이 감긴다. 나는 바로 몸의 긴장을 풀고서, 발드한테 몸을 맡겼다.
 혀끝에 남는 달콤함을 충분히 맛본 다음에야 겨우 풀려났다. 달아오른 뺨에 자못 싸늘하게 느껴지는 손가락이 완전히 숨이 가빠진 나를 희롱하듯 떨어져나갔다.

 

 


「어떠냐. 실로 하늘에라도 오를 법한 맛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단 건 별로라고 했는데……」

 

 


「호오? 표정은 심히 마음에 든 것처럼 보였다만? 좀 더 달라고 조르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거 참… 내 착각이었나?」
「우윽」

 

 


 이런 답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발드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세속적인 금전이나 물품 같은 게 아니라, 오직 이 남자뿐이라는 것을. 그저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것에 관심이 없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내 목을 비틀 수 있는 손가락이 귀 뒤쪽을 부드럽게 더듬어왔다. 그 움직임에 욕정이 치밀어, 저도 모르게 눈압의 입술에 입술을 갖다 댔다.

 


 달콤한 것은 초콜릿일까, 아니면——.

「이런 걸론 한참 부족해. 좀 더, 배부르게 먹여 줄래? 왕님?」
「좋다. 진스케여, 네 노력에 걸맞는 답례를 네가 원하는 만큼 하사하도록 하마」

 

 

 


2011/01/29
2012/08/26 재업

 

 

Posted by 111243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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