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본편]
파라다이스 (12-2)
▶마실 물을 만든다


다들 제각기 자기가 할 일을 정한 모양이었다.
마츠다는 산나물에 대한 지식이 있는 듯 산나물을 캐러,
시마다 씨는 타카라와 함께 강이나 거기 사는 생물을 찾기로 했다.
지식이 있다는 건 존엄한 일이다.
그럼 나는 완전 무익한 미츠기와 같은 조를 짜는 것이 무난한 선택 같아 졌다.
왜 무익하냐면… 이 녀석, 집이나 건물 밖에 모르잖아?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하기 위한 노하우라고 할 순 없다.
단순한 아르바이터이며,
아무런 서바이벌 지식도 없는 나도 그 비슷한 수준으로 무익하단 걸 알고 있으니까
제일로 간단해 보이는 식수 제작에 동참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아즈마]
“……그럼 나도 미츠기랑 같이 마실 물을 만들래.”
[미츠기]
“뭐…?!”

[아즈마]
“별수 없잖아…. 나랑 너는 무익한 존재라구….”
아냐? 집 매니아랑 아르바이터라구.
무익하잖아…?

[미츠기]
“무익…?!”
당연하지만 미츠기한테는 당연히 전해지지 않은 거 같다.

[미츠기]
“시비 거는 거야? 딴데로 꺼져.”
[미츠기]
“나는 마실 물을 만들면서 집중해서 저걸 해석하고 싶어.”

[미츠기]
“네가 있으면 꽥꽥 시끄럽기만 할뿐이야.”

[마츠다]
“둘이 힘을 합쳐 힘내라구.”
마츠다가 척하니 그렇게 말했다. 미츠기는 그걸로 입을 다물었다.
[아즈마]
“예입……”
[미츠기]
“큭…….”
[아즈마]
“시마다 씨, 강으로 가기 전에 물 만드는 법 자세히 가르쳐 주세요.”

[시마다]
“응…. 그게 말이지.”
시마다 씨가 방법을 가르쳐 주는 동안, 나와 미츠기는 서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자
그대로 미츠기는 씩씩거리며 터벅터벅 그 자리를 떠났다.
도구 준비를 하러 간 모양이었다.

[마츠다]
“…모쪼록 사이좋게 해라.”
[아즈마]
“아마, 무리.”
[아즈마]
“하지만 무익하니까 같이 마실 물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우리—”
위로하는 걸까. 팡하고 등을 세게 두들겨 맞았다.

모두가 없어진지, 몇 분 후.
미츠기는 캠프 광장에 의자를 끌고 와서, 메모장과 펜을 손에 든 다음, 바로 그 책을 펼쳤다.

[아즈마]
“……갑자기 독서야?”
[미츠기]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라고 했잖아. 마실 물을 만들면서 하겠다고.”
미츠기는 꺼내온 도구를 늘여 놓기만 했을 뿐, 그걸 사용해서 뭔가를 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즈마]
“물 안 만들잖아.”
[미츠기]
“지금부터 네가 해. 재료는 거기 있잖아.”

내가 만든다는 부분은 일단 흘러 넘기고, 쌓여있는 아이템을 손에 들어 보았다.
미츠기가 턱짓한 장소에는, 폐허가 된 방이나 창고에서 조달해온 블루 시트와 녹 투성이가 된 냄비.
그리고 골조와 오렌지 색 천…. 아, 텐트인가.

[아즈마]
“텐트? 이런 게 있었구나.”
[미츠기]
“마츠다가 낚시할 때 쓰려고 갖고 온 거.”
[아즈마]
“흐응.”
[미츠기]
“냄비 좀 씻어. 그리고 바닷물을 떠와서 끓여.
그리고 블루 시트 가운데를 눌러서, 그 중앙에 물이 고이게 만들면 돼.”

[미츠기]
“시마다한테 설명 들었지? 얼른 해.”
[아즈마]
“뭐?! 설마 나한테 다 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미츠기]
“나는 감시 겸 해독 담당. 너는 실무 노동. 무슨 불만 있어?”
[아즈마]
“너무 불공평하잖아! 텐트을 세우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게다가 저 냄비. 녹을 빼려면 엄청 힘들다고!”
[미츠기]
“하아….”

미츠기는 뭔가 생각하듯 허공을 바라본 다음,
한숨 섞어 읽고 있던 책을 조용히 덮고서,
발을 고쳐 꼬고 앉아, 나를 보았다.
뭔가를 꾸미는 듯한 표정이라, 절로 경계하게 된다.

[미츠기]
“공짜론 못 도와주지.”
……그리고는 어린애 같은 소릴 했다.

[아즈마]
“뭔가 달라고?”
물어 보지만, 미츠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엄청 욱하는 기분이었지만, 폐허 수색의 동지로서 챙겨둔 사탕을 주머니 안에서 꺼내 내밀었다.

[아즈마]
“줄게.”
[미츠기]
“필요 없어.
네 망할 주머니안에서 네 망할 체온에 끈적하게 녹아버린 사탕 같은 거
기분 나빠서 건드리고 싶지도 않아.”

[아즈마]
“너, 너무한 거 아냐? 안 녹았다구.”
[미츠기]
“필요 없다면 필요 없어. 그래서? 다른 건?"
[아즈마]
“단물 다 빠진 껌?”
[미츠기]
“장난 치지 마.”
[아즈마]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뭐야~?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아즈마]
“공짜론 안 도와주겠다는 건 즉
조금이나마 도와줄 마음은 있다는 거지?”

[미츠기]
“없어.”

[아즈마]
“있지?!”
못 들은 척하면서 억지로 밀어 붙였다.

[아즈마]
“이제 됐으니까 같이 하자.
일단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그 뒤엔 책을 읽어도 좋아. 거기까지만 같이 해. 진짜~.”

[미츠기]
“내 의욕 여부를 네가 정하지 마.
……뭐, 어쨌든. 좋아.”
[미츠기]
“나는 진심으로 저걸 해독하는게 앞으로를 위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진짜 도중까지만 돕는다.”
[아즈마]
“아, 물론~ 그래도 좋지~~. 네, 네.”
저 목석 같은 녀석이 도와준다는 말을 꺼내 준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었으니까,
나는 확실히 타협하여 작업에 힘썼다.

[아즈마]
“다, 다 됐다…! 오레 걸렸지만…!”

냄비를 빡빡 닦고, 겨우 텐트를 완성했다.
미츠기는 텐트를 펴는 걸 좀 도와준 뒤, 당연하다는 양 책을 해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냅뒀다.
남은 건 바닷물을 떠온 다음 불을 붙이고….
텐트 안에 블루 시트를 까는 것뿐인데….

[아즈마]
“…불공평 하잖아. 아직도 일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데.”
[미츠기]
“그럼 네가 이걸 해석할래?”
[아즈마]
“무리. 옛날에 적은 거라며.”

[미츠기]
“진짜 바보구나, 너.
평범한 일본어니까 해석할 수 있을 걸?
외국어도 한자도 아니니까 어떻게든 돼.”
[미츠기]
“실제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있어.
너무 낡아서 상태가 엉망진창이긴 해도.”

[아즈마]
“헤에. 어떤 느낌이야?”
미츠기에게 다가가 그 뒤에서 책을 들여다 보자, 미츠기 녀석, 보기 쉽게 책을 세워줬다.
뭐야. 센스 있긴.

[아즈마]
“…땡큐.”
[미츠기]
“흥.”

[아즈마]
“..............”
어깨 죽지에서 고개를 내민 자세가 되어, 좀 안절부절 못한 감이 있다.
이 녀석이랑 이렇게 가까워진 적이 없으니까 긴장한 건가?

[미츠기]
“…….”
하지만 미츠기 녀석도 아무 말 없으니까, 암묵적으로 OK겠지?

[아즈마]
“음…….”
불현 듯 뭔가 좋은 향기가 났다.
백단향? 향수 같은 건가?”
[아즈마]
“………”

[미츠기]
“이 페이지엔 당시의 가게 주소 같은 게 적혀 있어.”
조금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미츠기의 황금색 머리카락이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아즈마]
“…….”
아, 역시 이건 향수구나.
무인도까지 와서 향수 같은 걸 쓰는 건가?

[아즈마]
“…….”
하지만 좋은 냄새. 마음이 편해진다.
왠지, 졸리다.
백단 냄새는 좋아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냄새라고 해야하나….

미츠기의 체취가 섞여서 그런가?

[미츠기]
“이 근처에는 주민들의 이름…. 두꺼운 글자로 적혀 있는게
아마 당주 같은데….”

[아즈마]
“…….”

[미츠기]
“어이.”
[아즈마]
“……응?”

[미츠기]
“가까워.”
[아즈마]
“어?”

저도 모르게 정신이 멍해졌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니, 바로 옆에 있는 미츠기는 불쾌한 듯 목을 한계까지 뒤로 젖히고 있었다.

[아즈마]
“……그렇게까지 떨어질 필욘 없잖아.”
[미츠기]
“아니, 너무 가까워. 당연히 떨어질 거리지.”

[아즈마]
“뭐야. 싫지만 않으면 문제 없는 거리 아니야?”
[미츠기]
“게다가 서서히 얼굴을 갖다 댔어.”

응? 그랬나?
…아, 좋은 냄새가 나서 그런가?
하지만 입이 찢어져도 ‘좋은 냄새가 난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이 녀석을 칭찬하다니 완전 사양.

[아즈마]
“떨어지면 되잖아, 떨어지면.”

[미츠기]
“…….”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뺀 다음,
나머지 작업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미츠기의 반응이 없음을 깨달았다.

[미츠기]
“…….”
녀석은 아주 약간이지만,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피부가 하얘서 바로 티가 났다.

[아즈마]
“뭐야, 쑥스러워? 고작 좀 그만큼 붙었다고?”

[미츠기]
“시끄러워. 물 만드는 일로 돌아가. 냉큼 꺼져.”
[아즈마]
“아니~. 얼버무리지 말고 대답하라구. 쑥스러웠어? 응?”

나지만 이건 진짜 짜증일 거 같다.
예상대로, 미츠기는 험악한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미츠기]
“까불다가 불알 터진다. 얼른 꺼져.”

[아즈마]
“네엡~. 그럼 이만.”

내게 주어진 작업은 산더미처럼 남아있었지만, 의외로 경쾌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데 시간을 너무 잡아 먹어서,
텐트 안에서 불을 피우기도 전에 모두가 돌아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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