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본편]
파라다이스 (8-1)

이왕 도울 거라면 편한 일이 좋다.
카레 만들기 보다는 그릇 옮기는 게 간단해 보였기에, 작업 중인 사람한테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접근한 시점에서 깨달았는데.

[아즈마]
“저거, 미츠기잖아.”
정장이 아니라 사복 차림이라서
금발 바가지 머리 군이랑 착각했다.

미츠기는 테이블 위에
귀찮은 듯 식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행동 범위가 좁은 일이니까,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일할 상대가 아닐 경우엔 지옥이겠군.
사이좋게 공동작업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선 얌전히 카레 만들기에 끼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한마디 정도는 하게 해다오.
단번에 다가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아졌을 때,
인기척을 깨달은 미츠기가 뒤돌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탕하고 녀석이 작업하고 있는 테이블에 손을 짚고서, 힘껏 파이프 의자에 걸터 앉았다.

[아즈마]
“머리 잘라.”
[미츠기]
“시끄러워.”
미츠기는 바로 내게서 시선을 뗐다.

역대 최고로 쌀쌀맞았다.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아즈마]
“적어도 묶든가. 식기에 떨어지잖아.”
[미츠기]
“……….”

반응 없음.
미츠기는 이블 건너편에 앉아,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에서 그릇을 꺼낸 다음,
그것을 뒤로 뒤집어 가면서 살피고서—

[미츠기]
“칫….”
작게 혀를 차고서, 두 부류로 나누어 분리해 쌓아올린 그릇의 산 중 한쪽 위에 그릇을 올렸다.

…대체 뭐하는 거야…?

[아즈마]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빠?
작업이 재미 없어서 그래?”
[미츠기]
“시끄러워. 너도 도와.”

[아즈마]
“뭘 어떻게 도와.
뭘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데.”
미츠기의 색소 옅은 눈동자가 날 비춘다.

[미츠기]
“안 물어보니까 모르지.”
[아즈마]
“뭐하는데?”

[미츠기]
“안 가르쳐줘.”

[아즈마]
“…….”
미츠기가 훗하고 웃었다.

…뭐야, 내가 상대라도 이렇게 평범하게 웃는구나.
[아즈마]
“그럼 못 도와주지.”

[미츠기]
“쓸만한 그릇이랑 아닌 그릇을 구분 중이야.
마지막에 사용한 게 언젠진 모르겠지만, 엄청 더러워.”
이거 보라면서, 눈 앞으로 그릇을 한 개 내민다.
흙먼지투성이에, 뒷면에 수수께끼의 얼룩이 있다.

[아즈마]
“……이거 어디서 꺼낸 거야?”
[미츠기]
“창고에서.”

[아즈마]
“누가 썼던 건가?”
[미츠기]
“그렇지 않겠어?”
[아즈마]
“이걸 구분하는 게 일이야?"

[미츠기]
“테이블에 올려 놓는 게 일이었는데.
아직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어.”

미츠기가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하늘을 바라보자, 방금 전까지 머리 꼭대기에 있던 태양도
이 녀석처럼 지친 건지 미약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아즈마]
“이 상대론 밥이 다 돼도, 담을 게 없겠네.”
[미츠기]
“그러니까 씻어 와야지. 그거부터 갖고 가라.”

[아즈마]
“어느 쪽 녀석을 씻으면 되는 데?”
[미츠기]
“둘 다.”

[아즈마]
“…응? 그럼 지금은 대체 뭘 구분 중인데?”
[미츠기]
“이가 나간 거랑 아닌 거.”
다시 눈앞으로 내밀어진 접시는
가장자리에 작은 흠이 가 있었다.

[아즈마]
“…….”

[아즈마]
“……부지런하네.”
나라면 그냥 쓸 텐데, 아마.

[미츠기]
“뭐야, 또 불만 있어?”
[아즈마]
“응?”

내가 말없이 접시를 들여다 보고 있는 걸 보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아즈마]
“신경질적이긴.”
턱을 괸 미츠기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미츠기]
“흥.”
욕설을 내뱉듯, 다시 접시 한 장을 던졌다.
별수 없으니까, 씻어다 주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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