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白露)의 괴이/전기/9월 25일] 무료할 때

** 무료할 때 **

한가하고 한가해서 견딜 수가 없는 키요하루.

그런 키요하루의 심심풀이 상대는 그게 싫어서 견딜 수가 없는 소우시.

평소에는 나쁜 꿍꿍이 속에도 금방 장단을 맞춰주는 소우시지만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나른나른해지는 모양입니다. 

[키요하루] 아, 아아, 아아아아……….

[소우시] 뭐야……. 한가하면 밖에서 놀고 오시는게 어떻습니까.

[키요하루] 조금 쯤은 더 듣기 좋게 말할 수도 있잖아, 소우시.
                한가한게 아니라, 뭐랄까. 그 뭐냐…….
                텐션이 이상한 거래두!! 

[소우시] 하아?
             네 텐션은 항상 이상하잖아.

[키요하루] 우와, 우와~. 소우시 차가워…….
                그보다, 게임 하면서 대화 하는거, 그만둬 주실 수 없습니까?

[소우시] 아니……, 무리.
             지금 엄청 좋은 부분이야.

[키요하루] ……………….
[소우시] ……………….

내가 일절 상대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하자
겨우 포기한 걸까,

멋대로 남의 방을 뒤져
옛날 애니메이션 DVD를 꺼내 보기 시작한다.

뭐어, 집중해서 봐준다면야 손도 안 가고 편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공략 중인 게임을 진행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대강 다 본 걸까,
테이블 위에는 산 더미 처럼 쌓인 DVD 케이스가.


[키요하루] 나말야, 나 말야.
                이 시리즈 엄청 좋아했었지.

[키요하루] 그, 중학교 때 쯤에 했었지?
                그 나이댄 말이지,
                이렇게 후덥한 거에 괜하게 불타오른단 말야~!

[소우시] 그렇지요…….

일단, 키요하루는
내가 얘길 듣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는 결론에 이르른 모양이다.

[키요하루] 뭐랄까, 거칠어진 세상 속에서 홀로 싸워 나간다!
                그거 말이지, 세상에 저항하는 사나이의 등이라고 하나?

[키요하루] 아아~, 동경하게 된다니깐~.

[소우시] 그래. 그런 세상이면
             이렇게 맘 편히 게임을 할 수도 없을테니
             나는 살아갈 희망을 잃었을 거야.

[키요하루] 소우시는 게임을 너무 많이해.
                너 진짜, 항상~~ 게임이라니깐!

[소우시] 안 그래.
             변덕삼아 키요하루도 상대해 주잖아.

[소우시] 애니메이션 같은 것도 꽤나 보는데?
             그 DVD도 내 거고.
             그래서, 다 본 다음엔 게임을 재개하고.

[키요하루] 또 게임으로 돌아가 있잖아!
                이제 됐어. 료타 부를래.
                그 녀석이 지금의 내 유일한 구원이야!

느릿느릿 바닥을 기어, 던져 놔뒀던 가방을 잡아 당긴다.

갑작스럽게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대체 뭐야, 이 녀석.
아니, 뭐. 항상 있는 일이지만.

가방 안을 뒤집을 기세로 부스럭 부스럭 뒤진다 싶더니,
목적했던 물건을 찾아낸 모양이다.

이미 한 쪽 귀에 대고 있다.

[키요하루] 여보세요. 료타.
                지금 한가해? 한가하지?
                나 지금 소우시네 집에 있는데………,

기분 좋게 얘길 시작하나 했더니, 서서히 목소리는 약해지고…

마지막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풀죽은 음색으로
응, 알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키요하루] …………….


[소우시] 료타는 오늘, 아르바이트지?

[키요하루] 그런건……, 처음부터 말해…….

[소우시] 하아……. 오케이. 알겠어.
             상대해 줄테니까. 그렇게 풀 죽지마.

[키요하루] 오, 진짜?!


알기 쉬울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키요하루는 폰을 가방 안에 던져 넣는다.

[키요하루] 그럼 말야, 밖에 놀러ㅡ…

[소우시] 각하!

[키요하루] 하아……?

[키요하루] 에……. 어째서?

[소우시] 나른히. 밖은 덥고.

[키요하루] 하아……. 정말…….
                최근 젊은 애들은 이러니까 말이지~.

[키요하루] 천진난만하게 밖을 뛰돌아 다니던
                소년 시대를 떠올려 보라구!!

[소우시] 그 시절부터… 이런 느낌이였잖아.

[키요하루] 큭………………!!
                그랬, 었지………!!

[키요하루] 타인에게 덫을 놓을 때만 기이하게 의욕적이였으나,
                내 제안은 깡그리 각하해 왔던 유소년기!!

[소우시] 너 말야……. 그렇게나 한가해?
             연기하니까 즐거워?

[키요하루] 쪼끔…….


[키요하루] 그치만 말야~~.
                평소라면 조금만 더 제대로 놀아 줬을텐데~.

[키요하루] 오늘 이 기이하리만큼 나른나른 느낌. 대체 뭐야?

[소우시] 에………. 딱히, 깊은 의미는 없는데.

[소우시] 내가 너를 적당히 다루는 것도.
             내 기분이 좋을 때만 상대해 주는 것도, 새삼스런 일이잖아?

[키요하루] 소우시는 가끔 귀찮다니깐.

[소우시] 아니, 너랑 호각 아닌가?

적당히, 나를 대하는 방법, 익숙해지면 될텐데.

아니, 익숙하긴 하지만 접어주질 않는 건가.

뭐, 어때.


[소우시] 그래서……. 어쩔까나.
             농담은 놔두고, 오늘 기온은 장난 아니고.
             밖은 좀 봐줘.

[소우시] 왠지……, 단 거 먹고 싶지 않아?

[키요하루] ! 먹고 싶어!

[소우시] 뭐어, 심심풀이 방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뭔가 만들까나.

[키요하루] 아, 나 말야. 나~.
                지금 엄청 파르페 같은게 먹고 싶어! 듬뿍!!

[소우시] 음……. 재료가 있으면…….

먹을 걸로 단 번에 기분이 좋아진 듯한 키요하루는,
나를 넘어, 당장 부엌으로 향한다.

뭐어, 기분이 풀렸으니 다행이네,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