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눈꺼풀 위로 쏟아져내리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맨보이는 찬찬히 눈을 떴다.
시야에 퍼지는 순백. 그 눈부심에 기나긴 속눈썹이 흔들린다.
커튼 틈새로 비쳐들어오는 빛이, 그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오른손등으로 미간을 가리며, 자극을 완화시킨다.
「벌써 아침인가」
한숨을 쉬며 베개를 끌어 안고, 창문을 등진다.
기상을 재촉하듯, 갈색의 등뒤로 햇살이 닿아왔다.
침대를 벗어나면 현실이 시작된다.
그럼……, 이대로 계속 자야할 할 것인가.
「바보같은 생각 할때가 아닌가」
건실한 그에게 무단결근은 불가능. 애당초…, 이곳은 창관(娼館)의 수면실이다. 농성해봤자 결과가 눈에 선하다.
가는 신음을 흘리며, 맨보이는 상체를 일으켰다.
맨살에 시트가 스치는 느낌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잠들었단걸 깨닫는다.
어젯밤, 굉장히 피곤했던 거겠지.
더렵혀진 옷은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다.
(일을 끝내고 저택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수면실에 비치된 예비 셔츠를 걸치며, 어젯밤의 일을 떠올린다.
「틀렸어……, 생각이 안나」
일의 내용은 똑똑히 생각났지만, 그 이후의 일은 기억을 잃은 것마냥 새하앴다. 저택, 이 방으로 돌아온게 마치 기적같다.
그만큼 어젯밤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곤했었다.
동료에게 모닝콜을 부탁하지도 않고, 잘도 스스로 일어났다. 자신이 감탄스러웠다.
신체에 눌러붙은 노예근성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지지만.
키와 엇비슷할 정도로 커다란 거울 앞에서 연미복을 단정히 한뒤, 나비 넥타이를 묶는다. 거울속의 그는 예의바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울에 비춰지는건 껍질에 틀어 박히려하는 남자가 아니라,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위해 필사적으로 가다듬은 성실한 청년의 모습이였다.
어느쪽이 진짜고 어느쪽이 가짜―, 그런건 없다.
그것은 표리일체. 둘다 그다.
그는『맨보이』라는 가명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렇게 분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언동을 제 3자적으로 직관함으로서,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의 이름을 아는 자는 적다. 그것을 입에 담는 자는 더 더욱 적다.
맨보이는 타인을 자신의 영역내로 결코 들이지 않는 남자다.
창관(娼館) 복도로, 맨보이가 밀고 가는 카트 소리가 울러퍼진다.
이른 아침의 창관은, 관전체가 잠든듯 조용했다. 줄지어선 유리창 너머로, 맨보이가 관리하고 있는 정원이 보였다.
하늘은 밝은데,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져 화초를 적시고 있었다.
(이상한 날씨)
맨보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업무가 하나 준것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그의 일은 경리일부터 시작해서 종업원의 스케쥴 및 근무태도 관리 등등,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할 일이 주는건 단순하게 기쁜 일이였다.
복도 제일 안쪽에 있는 은색 프레임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문.
카트를 세운뒤, 문 앞에 서서 똑똑 2번 노크했다.
「깨어나 계십니까, 도리안 그레이님」
문너머로 방 주인의 목소리를 확인한 다음,「실례합니다」하고 말한뒤 문 손잡이를 돌린다. 끼이익하는 작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복도의 불빛이 방안으로 침입한다.
방안 창문엔 진홍의 두터운 커튼이 쳐져 있어서, 햇빛은 일절 들어오지 않았다.
각곳에 놓여진 양초의 불빛이, 방안을 요사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좋은 아침, 맨보이」
창관의 주인, 도리안 그레이는 옷을 갈아입던 도중이였다.
장롱 서랍에 정연히 늘어서 있는 스카프를 내려다보고 있다.
맨보이는 침대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짙은 보라색 가운을 힐끈 본 다음, 카트를 실내안으로 밀어넣었다.
주인이 애용하고 있는 테이블 옆에 세운뒤, 카트위의 요리를 내려놓는다.
「아침 식사를 대령했습니다. 메뉴는 어제 분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정말이지 열심이군」
도리안 그레이는 카트로 다가와 유리접시에 깔끔히 담긴 과일을 향해 손을 뻗은뒤 맨보이가 눈치채기도 전에, 오렌지 한조각을 입에 넣었다.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후훗, 실례」
도리안은 오연히 웃으며, 카트위에 얹힌 신문을 들어 의자에 걸터앉는다.
요리를 다 내려놓은 맨보이는 침대로 다가가 도리안이 벗어던진 가운을 집어들었다.
「오늘은 우천입니다. 외출은 삼가시는게 좋을것같습니다」
「그런가. 사뭇 실망이겠군」
「실망? 제가 말씀이십니까?」
맨보이는 가운을 개면서, 고개만을 주인을 향해 돌렸다.
「그래. 비오는 날엔 아름다운 사람이 와주지 않잖아?」
찰나, 맨보이의 뇌리에 한 사람의 소녀가 떠올랐다.
벚꽃색 머리칼을 지닌 쾌활한 소녀, 후카.
저택이 창관이라는걸 모르는 그녀는, 그저 맨보이의 얼굴을 보기위해 이곳을 찾아온다. 가련한 청년은 자신을 만나러 와주는 그녀에게 적으나마 호의를 품고 있었다. 동시에…, 불안도.
「그건……. 그런것 바라지도 않습니다」
「진심인가?」
「네……」
절반은 참이다.
맨보이는 자신의 일이 남에게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란걸 자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를 멀리해주면 좋을텐데.
허나 그의 바램도 덧없이, 그녀는 그의 영역내로 발을 들여넣으려 한다.
하지만, 절반은 거짓이다….
후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메마른 땅에 물이 스며들듯, 뭔가가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딱 한번만 더 그녀를 보고 싶다.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다.
(하지만, 이대론 안돼……)
아름다운 창관은 나비를 꾀어들이는 독의 꽃.
발을 들여놓으면, 결국 빠져나갈 수 없다.
그녀는 사로잡혀, 날개를 뜯기고 말겠지.
(들키기 전에……, 그녀를 저택에서 때놔야해)
주인의 오만한 웃음을 등뒤로 느끼며, 맨보이는 새로이 결의했다.
유마스 : 공략 대상인 창관 트리오에서 도리안 그레이와 맨보이입니다. 창관의 주인이면서 신부(神父)이기도 한 도리안과 마찬가지로, 맨보이 역시 2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둘의 본성도 체크해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