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은 극한 곤란에 빠져 있었다.
눈앞 책상엔 오리온과 감각을 공유하는 소녀가 엎드려 잠들어 있다.
눈꺼풀에 짙은 피로의 색, 새하얀 피부엔 부자연스러운 홍조가 드리워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두피엔 송글송글 땀이 베여있다. 열이 있는 것이다.
아르바이트가 끝날때까지는 어떻게든 미소를 지었지만, 피곤을 참으며 옷을 다 갈아입은뒤엔 기력이 다한 듯 쓰러져 버렸다.
그 이후 오리온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없고, 눈조차 뜨지 않는다.
집까지는 갈거라 판단한 자신의 미스, 오리온은 그리 생각했다.
『우~… 누가 안오려나.』
폐점한 가게 안쪽 사무소엔 도와줄만한 사람의 기척도 없다.
조금전까진 그녀의 친구인 사와와 미네가 있었지만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단건 눈치채지못하고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가버렸다.
그때 도움을 청하도록 어드바이스를 했어야했다.
이제와 생각하는것도 늦었지만, 오리온은 너무 후회됐다.
오리온은 정령.
본디 이 세계와는 다른 장소에서 사는 존재이며, 인류에게 간섭할순 없다. 닿을 수 없고, 대화할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사물을 움직이는것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녀와 동화하고 말았다.
이 사고같은 동화현상은 그녀로부터 기억을 앗아가버려서, 그녀는 최저한의 일반상식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그녀는 혼자서 생활하는데다, 주위에 있는 지인들은 죄다 만만찮은 존재라, 솔직히 의지하는것도 다소 꺼름측했다.
책임감을 느낀 오리온은 기억이 없는 그녀의 조언자 역할을 자청했다.
지금의 오리온은 그녀에게만 보이는 그녀를 위한 정령.
믿음직한 인간이 누구인지 모를 상황속에, 불안해하는 그녀의 유일한 아군으로서, 그 나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가 의식을 닫아버리면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오리온에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저기, 잠깐만 일어나볼래?』
잠든 그녀에게 말을 건다.
『어쨌든 누군가한테 도움을 청하다. 조금만 힘내서, 휴대전화를 잡고, 3번정도만 누르면 되니까. 전화만 한번 걸고나서 자자! 전화 한번! 응?!』
하지만 그녀는 반응이 없다.
『아앗! 불이다! 큰일이야, 전화해야해!! 아아, ………이건 무린가.』
이대로는 괜히 더 상태를 악화시킨다.
알고 있는데도 오리온은 그녀를 부르는것말곤 할 수 있는게 없다.
정말로 어찌할바 몰라 당황하고 있을때 가게와 연결된 문이 열리고, 기억에 있는 키큰 인물 둘이 사무소로 들어왔다.
『잇키! 켄트!』
담소를 나누며 들어온 두사람은 아르바이트 동료.
아직 제복을 벗고 있는걸 보니, 남아서 뒷정리라도 한 모양일려나.
『봐봐! 이 얘 좀 봐줘!』
넓진않은 사무소니까, 쓰러져 잠든 그녀는 눈에 띈다.
당연히 두 사람의 눈에도 들어온 모양이였다.
「어라? 이런데서 자는 얘가 있어.」
잇키는 걸음을 멈추고, 켄트도 힐끔 그녀를 바라봤다.
오리온은 필사적으로 어필했다.
『자는게 아냐! 몸이 안좋은거야! 집까지 데려다줘!!』
물론 잇키나 켄트에게 오리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데다,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그들의 눈에 드는 일도 없다.
「그러고보니, 휴식시간에도 피곤한 모습이였다. 자게 내버려두는게 어떠냐.」
『아아아아앗! 켄트! 쓸데없는 소릴!!』
「흠, 그러네. 그럼 조금 잡게 냅둘까나.」
『잇키!! 납득하지마!!』
흥미를 잃은건지 켄트는 바로 탈의실쪽으로 향한다.
그걸 지켜보던 잇키는 장난스런 웃음을 띄우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잘자렴.」
켄트가 안보는걸 확인한다음, 그녀의 머리칼을 어루만진다.
오리온은 무심코 잇키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 변태! 손대지마!!』
인류를 건드릴 수 없단건 당연히 알고 있으니, 기분만으로.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장난이 그녀를 구한 모양이다.
「어라?」
이마에 손을 댔던 잇키는 그녀의 열기를 눈치챈 모양이였다.
「뜨겁네……」
재차 손바닥으로 열을 측정한다음, 눈썹을 찌푸린다.
「혹시 자는게 아니라 몸이 안좋은건가?」
『맞아, 그래!』
잇키의 말이 들린걸까, 탈의실로 들어가려하던 켄트도 걸음을 멈추고 돌아왔다.
「몸이 안좋다고?」
「응, 그런걸지도. 열이 굉장히.」
두 사람이 그녀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한다.
괜찮다. 이걸로 두사람이 그녈 도와줄거다.
겨우 안심이되서, 오리온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행이다―…』
잇키 덕분이라고 말하는건 울컥하지만, 도움이 된건 확실하다. 나머진 둘에게 맡기면될거다. 장난을 좋아하는 둘이긴하지만, 몸이 안좋은 그녀를 두고 분별없는 짓은 하지 않겠지.
「안 일어나네.」
잇키가 곤란한듯 중얼거린다.
「음……. 어쩌지, 우리집으로 데리고 갈까나.」
전언철회. 역시 물에 빠진 그녀를 건져올린건 문제있는 사람이였다.
「잠깐. 어째서 너희집이지? 여성을 데리고 갈만한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맞아맞아, 켄트. 좀 더 혼내줘』
「그치만 나, 이 얘의 집 모르는걸. 켄도 모르지?」
「뭐, 모르지만.」
「그녀도 혼자 살고 있을테니까 가족한데 기대는건 불가능하고. 우선 우리집으로 데리고가서 보살펴주는거 말고 별수없지않아?」
『별수없지 않아!』
둘에겐 보이지않는단걸 익히 알면서도 오리온은 소중한 그녀를 지키듯 그녀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이 아이 집은 말야! 가게를 나와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1구역 정도 지난다음 골목을 돌아 잠시 고가도를 걷은뒤 건널목을 건너 주택가를 서쪽으로 얼마 더 간곳에 있는 깨끗한 맨션이라구! 내가 알아!!』
하지만 그런걸 설명한다해도 들릴리 없다.
잇키와 켄트는 얼굴을 맞대고 고민하고 있다.
「잠깐. 네 집에서 깨어났을때 그녀가 입을 정신적 쇼크가 크겠지. 어쩌면 신변의 위험을 느낀탓에 발산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상태가 더 악화될지도 모른다.」
「너, 날 뭐라고 생각하는건데?」
「여성에 관해서는 실로 신용할 수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너희집이라면 괜찮아? 하지만 양친과 동거중이니까, 신경쓰이지않겠어?」
「혼자 사는 남자 집이라면 신경쓰이지 않을거라 생각하는거냐?」
「켄의 언짢은 얼굴보단 훨씬 낫지.」
「네 호색한 시선에 노출되는것보단 낫겠지.」
엉뚱한 방향으로 싸우기 시작한 둘을 향해 오리온을 책상을 치며 항의한다.
『그런걸로 싸우고 있을 때야?! 정말 둘다 유치하긴!!』
오리온의 말이 닿은것도 아닐텐데 켄트가 작게 기침하며 헛된 논의를 끊어냈다.
「아니, 얘길 되돌리지. 누구 집으로 데려가도 문제다. 이런 경우 보통은 보호자를 호출해야하는거 아닌가?」
「보호자라……. 분명 멀리있단 소린 들은것같은데. 해외였나?」
「그럼 보호자를 대신하고 있는 존재의 긴급연락처다. 가게의 고용표에 기입하는 란이 있었을텐데. 점장에게 물어보면 보여주지않나? 」
「아아, 그런게 있었지.」
겨우 제대로된 제안이 나왔다.
『제발, 좀 부탁할게……』
오리온은 한숨을 쉬며 어깨의 힘을 뺐다.
어쨌든 이걸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것같다.
긴급연락처를 알수 있게 된건, 뜻하지않는 부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점장은 아직 계산대일려나.」
켄트에게 그 자리를 맡기고, 잇키가 플로어쪽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이 기회에 고용표 같은걸 살펴보면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리온은 점장에게 말을 걸기위해 사무소를 나가는 잇키의 뒤를 남몰래 따라갔다.
***
그녀의 긴급연락처로 지정되어있던것은 토마의 친가였다. 연락을 받은 토마는 바로 달려와 축늘어진 여동생같은 존재를 들쳐안아 택시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맨션 앞에선 신이 약봉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온 모양새였던 토마였지만, 오기전에 약을 부탁해두는걸 잊지 않은 모양이다. 둘을 맞이한 신은 주저없이 그녀의 가방을 열어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여러모로 할말은 많았지만, 비상시라서 별수없는걸로.
익히 알고 있는 남의 집이란 분위기로 집안의 물건을 뒤진것도 비상시라서 하는수없다. 오히려 그런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는건 오리온과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토마……. 너 언제까지 그녀석 옆에 들러붙어 있을셈이야.」
능숙히 유동식을 만들고 있던 신이 그 동안 내내 머리맡에 붙어있던 토마에게 질린듯 말을 건다. 방으로 그녀를 옮겨와 이불을 걸쳐주고난 이래 토마는 그녀의 손을 전혀 놓지 않고 있다. 이 이상 끈적끈적 달라붙지 않도록 눈을 부라리며 망을 보고 있던 오리온은, 당연 보이지 않겠지.
「사와가 이쪽으로 온단 연락도 있었으니, 우리는 돌아가자.」
「에.」
「에가 아냐, 우리들이 있으면 쉴수가 없잖아.」
「뭐, 사와가 올때까진 괜찮잖아.」
「적어도 손은 놔. 어린애도 아니고, 남자가 손을 잡고 있는데 맘편해질거라 생각해?」
「알아. 아아, 너한테 설교받는 입장이 될줄이야.」
떯은 모양새로 손을 놓은 토마는 신이 머리맡에 놓아둔 메모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데……, 넌 이런 쪽지를 남기고? 내 눈을 훔쳐서 뭘할 셈인데.」
메모에는『몸이 악화되면 나한테 연락해』란 신의 글이 들어가있다.
「눈을 훔쳐서라니 무슨 의미야. 단순히 우리집이 제일 가까워서 그런것 뿐이야.」
「사와한테 맡기는거 아니였어?」
「사와가 돌아간 다음 몸이 급변할 경우도 있잖아.」
「사와가 돌아간 다음? 잠들어 있는 여성의 집에 혼자서 들어가 앉을 맘? 상식을 생각하라구.」
「잠들어 있는 여자의 손을 쥐고 있는 녀석한테 상식 운운 듣고싶지않아.」
「이상한 소리 하지마. 이건 어린애 간병 같은거야.」
「나도 마찬가지. 이상한 눈으로 보지마.」
말없이 서로를 쏘아본 끝에, 결국『나한테』하는 문장에 두줄을 그은 다음『토마네 부모한테』로 고쳐썼다.
「이럼 되겠지……?」
「됐어.」
미묘한 긴장상태가 풀린다.
상황을 지켜보고있던 오리온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아, 진짜!! 잇키든 켄트든, 죄다 이 아이의 간병권을 두고 싸우는건 관두라구! 간병해주는건 고맙지만!!』
해주고싶은 말은 둘에겐 닿지 않는다.
오리온에게 할 수있는것은 언제나 지켜보는 것 뿐이였다.
***
그리고 오리온은 겨우 평온한 마음으로 그녀의 곁에 앉아있다.
약이 들은건지 그 후 몇시간정도 지나자 그녀의 몸상태는 매우 진정이 됐다. 깨어나 죽을 조금 먹은 다음엔 열도 미열정도가 됐고, 신이나 토마가 나간 직후 찾아온 사와도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가버린 지금은 일단 단 둘로, 평화롭고, 안전하다.
『저기, 너…… 오늘 큰일이였지.』
잠든 그녀에게 오리온은 찬찬히 말을 건다.
『하지만, 모두가 도와줬어. 네가 잔다고 장난을 쳤던 괘씸한 녀석도 있긴했지만, 네 몸이 나쁘단걸 알자 굉장히 걱정했었어.』
오리온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를 걱정하는것 뿐, 그녀를 들쳐 안아 집까지 옮겨나르긴 커녕, 도움을 요청하는것조차 할 수 없었다.
인류와 관계할 수 없는 오리온은 오늘같은 일이 있을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어난 그녀에게 보고 있었던걸 보고할순 있다.
『내 얘길 들으면 넌 어떻게 생각할까. 녀석들 중 누군가한테 기억상실을 밝히고 싶어할려나? 깨어나면 상담해보자.』
의지할대 없어 보이던 그녀의 경우지만, 이렇게 엉킨 실을 풀어나가면 끈이 보인다.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보인다.
그러한 판단을 내리기위해 정보를 모아가는것이 오리온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네가 조금 신경쓰고 있는 녀석에 대해도 나 봤어. 깨어나면 본것 들은것 전부 가르쳐줄게.』
기억을 잃어버린 그녀의 곁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에게 풀죽어버리는 일도 있다. 지켜주고싶을때 지켜줄수없어서 답답해했던적도 있다. 하지만 불안속에서 깨어난 그녀가 오리온을 보며 안도한듯 웃을때, 오리온도 조금은 안도하게 된다.
이런 자신이라도 할 수 있는일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것이다.
『잘자. 내일 봐.』
잠든 그녀에게 속삭이며,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습을 감춘다.
그녀가 잠들어 있는 동안 생긴 이 사소한 일은, 믿을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 두 사람에게 분명 멋진 이정표가 되어 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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