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SS]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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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오늘 몇 번째냐. 이 진심으로 짜증남을 숨기려고도 않는 한숨을 듣는 것은.


 총총히 레저 시트를 깔면서 올려다본다.

 모자에 포니테일,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을 한 백설 콩나물 금발 미츠기 자식을.


 "모처럼 바다에 왔는데 조금 정도 즐거운 표정 못 지어?"

 "못 지어."


 칼 같이 쳐내는 말에도 쫄지 않았던 것은, 이런 반응이 올 거란 걸 사전에 예상했기 때문에.


 뭐어, 됐어. 냅두자. 그렇게 시트 구석에 작은 파라솔을 꽂고, 간이로 그늘을 만든다. 그러자, 돕지도 않았던 주제에 미츠기는 냉큼 그 그늘 자리에 진을 쳤다.


 "뭐어… 거의 억지로 끌고 온 거니까."


 내 중얼거림은 바다를 즐기는 젊은 이들의 환성에 휩쓸려, 미츠기에겐 닿지 않았겠지.


 그렇게 준비를 계속하며 떠올리는 것은, 어젯밤 일이었다.


 

 "최근 줄곧 집에서 뒹굴거리는 코스였잖아? 하지만 계절은 여름이니까. 한 번 정도는 여름다운 일을 하자."

 "싫어. 더워. 휴일날 바다는 사람이 우글거리잖아. 상상 만으로 피곤해. 소금물 같은 거에 들어가서 뭐가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소리 말고! 제발!! 난 여름의 추억이 필요하다고!"

 "……."

 "제발, 미츠기! 미츠기 님!! 부디 자비를!"

 "망할…. 합당한 대가는 반드시 받을 거다."


 기적적인 OK의 대가는 간단했다. 앞으로 1주일 간 미츠기의 집에 다니며 밥을 만들 것. 목욕탕 청소와 빨래와 쓰레기를 대신 버릴 것. 즉 가사 전반을 도맡을 것.


 고작 바다에 놀러가는 것 갖고 일을 떠맡게 될 줄은 몰랐지만, 뭐 미츠기 성격으로 치면 상당히 타당한 편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정말로 싫어 보였으니까. 바다에 오는 게.

 지금도 부모님 원수 쳐다보는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 바로 헤엄치고 올 건데… 넌 어쩔래?"

 "여기 있을래."

 "계속…? 바다에 온 의미가 사라지잖아."

 "시끄러. 의미란 스스로 창출하는 거야. 네가 정하지 마."

 "아~ 그러셔요~"


 언짢음을 감추려고도 않는 미츠기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갖고온 듯한 잡지를 가방에서 꺼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완전히 놀 마음 없는 그 태도에, 조금 울컥했다. 하지만 말해도 들을만한 상대가 아닌 건 잘 알고 있었다.


 "흥. 나중에 헤엄칠 걸 그랬다며 후회해도 늦는다."


 힐끗 돌아봤지만, 미츠기는 나를 쫓아내듯 쉿쉿하고 손을 흔들었다.


 혼자서 철퍽철퍽 헤엄치며 첨벙첨벙 신을 내다, 차가워진 몸을 조금 데우고자 파라솔로 돌아온 나를 맞이한 것은….


 "쿠울… 쿨…."


 얼굴 위에 잡지를 얹은 채 푹 잠든 미츠기의 모습이었다.


 "말도 안 돼…."


 완전히 기가 빠져 그 자리에 쭈그려 앉는다.

 솔직히 같이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조금 정도는 뭔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다.

 미츠기는 결코 남에게 맞춰 움직이는 편이 아니었다. 마이 페이스에 유아독존, 자기 의사가 지나칠 정도로 확실한 녀석이다. 하지만 조금 정도는 나한테 맞춰줘도 되잖아. 그런 마음이 있었다.


 왠지 엄청 허무한 기분에, 햇살에 탄 건지 조금 붉어진 팔을 휙휙 흔들었다.

 미츠기는 의외로 바로 눈을 뜨더니, 눈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보았다.


 "일어나. 어이. 일어나, 미츠기."

 "………, …… 뭐야… 망할 꼬맹이…. 후아아아아아암…"


 "뭐하는 거야. 그렇게 심심했어? 바다."

 "별로. 졸려서 조금 낮잠 잤던 것뿐이야. 그래서… 이제 만족했냐?"

 "……."

 "입은 왜 삐죽여. 네가 문어냐."

 "문어는 아무래도 좋아. 나 근데 같이 놀고 싶은데…."

 "아, 그래그래. 여기서 놀아주지. 뭐가 좋아? 끝말잇기? 같이 책이라도 읽을래?"

 "나는 바다에서 놀고 싶다구. 물놀이나 비치 발리볼을 한 다거나, 같이 먼 데까지 헤엄을 친다거나!"

 "싫어."


 하지만 미츠기는 휙하니 고개를 돌렸다. 너무나도 완고한 태도에, 너도 무심코 큰 소리를 냈다.


 "어째서!"

 "어째서고 자시고, 싫은 건 싫어."

 "모처럼 바다에 온 건데, 조금 정도는 뭔가 바다에 맞게 들떠 보는 것도 좋잖아!!"

 "끈질기게 굴지 마."


 타악. 그런 소리가 들린 기분이었다.


 완전한 셧아웃에 슬퍼져서, 비틀비틀 힘없이 일어섰다.


 "이제 됐어…."

 "……."

 "그만 돌아가자. 내키지도 않는데 억지 써서 미안."

 모처럼 즐거운 해수욕인데, 이 이상 싸우고 싶지 않은 기분이 컸다. 그렇게 말하며 귀가 준비를 하고자 파라솔을 접으려고 손을 뻗었을 때, 하아… 하고 평소처럼 커다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헤엄 못 쳐."

 

 내던지듯 들려온 무뚝뚝한 목소리에 몸이 굳었다.


 "뭐?"

 "몇 번이나 말 시키지마, 망할 자식. 헤엄 못 친다고, 나…."

 동시에, 바다 쪽에서 꺄핫~하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수영, 가르쳐 줘?"

 "필요 없어."

 "사양하지 말고~. 헤엄을 못 치면 여차할 때 큰일이잖아." 

 "됐다잖아. 참 나. 이죽대기는…."


 돌아가는 길.

 무진장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나와, 가방 하나 차림의 미츠기의 그림자가 모래사장 위에서 흔들렸다.

 이유를 알았으니 됐다. 헤엄을 못 치니까 바다가 즐거울 리 없지. 그런 거였다.


 "바다 같은 거 질색이야. 두 번 다시 안 가."


 놀리는 것처럼 신이 난 나를 곁눈질하며, 미츠기는 심히 언짢은 듯 중얼거렸지만.


 "약속한 대로 착실하게 가사일 할 게. 오늘은 고마워."


 그리고 햇살에 탄 뺨에 쪽하고 뽀뽀를 했더니, 영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던지라…

 뭐어, 좋은 추억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분명.




 






Posted by 111243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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