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SS]
Resusc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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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7시.

 문이 열린다. 안에 불길한 것을 감추고 있는 문이.

 

 "여어."

 

 섬에서 지냈던 며칠간을 넘어 어찌저찌 본토로 돌아온 후로, 나는 정기적으로 미츠기의 방을 방문했다.

 미츠기의 일이 다망한 시즌에 들어서자 만나는 빈도는 줄었기에, 오늘은 1주일만의 자택 방문이다.

 

 조금 긴장한 것은… 뭐 오래간만에 만나기 때문이다.

 

 동시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실은 전에 만났을 때 방을 대청소 했기 때문에,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방이 어질러져 있을지를 상상해보니 마음도 무거워진다.

 

 "여업."

 "어."

 

 인사라고도 할 수 없는 인사를 나누고, 바로 거실로 돌아가는 금발을 뒤따른다.

 

 그러자… 미츠기는 쓰레기에 파묻혀 있었다.

 

 "아… 역시나……"

 

 어서와라, 쓰레기방. 오늘은 뭐할까? 타는 쓰레기? 안 타는 쓰레기? 아니면…… 집먼지? 뭐 이런 느낌. 아니 이렇게 되었을 줄은 상상했지만, 1주일 만에 이렇게까지 더러워지는 것도 이젠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 쏘아보니, 미츠기는 내 항의의 시선을 무시하고서 턱짓하며 쓰레기 위를 손가락질했다.

 

 "멍하니 있지 말고 앉지 그래."

 "저기 말이야.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앉을 장소가 대체 어딨는데?"

 

 "그럼 밥."

 "그럼은 무슨. 하아… 어차피 부엌도 장난 아니겠지…. 금방은 무리야."

 

 "시간은 신경 안 써."

 "밥 만드는 동안 적어도 테이블 근처는 좀 청소해 둬."

 

 그렇게 말했더니 마지못해 꾸물거리는 녀석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구부러진 새우등은 그야말로 동면에서 깨어난 거북이다. 거북이가 동면을 하는진 모르지만. 부스럭부스럭 뭔가를 하는 소리를 등 뒤로, 오는 도중 사온 식재료 봉투를 두 손에 들고서, 예상대로 쓰레기투성이인 부엌에 섰다.

 

 집에 왔을 때 먹였줬던 돼지고기 김치 볶음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최근엔 그것만 요청한다.

 이젠 내가 지겨워져서, 오늘은 돼지고기도 들어간 탕두부다.

 

 

 

 그렇게 됐지만 미츠기 녀석은 배추도 돼지고기도 두부도 잘 먹었다.

 트림과 함께 젓가락을 내려놓자니, 새삼 더러운 방의 오염 상태가 신경쓰였다.

 깨끗한 것은 일시적으로 정리한 테이블 근처뿐이다.

 

 

 

 "내일 청소할 거야. 무작정."

 "그래."

 

 

 그렇기로 했으면 이야긴 빠르다. 설거지를 위해 부엌과 거실을 오가는 김에, 자잘한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봉투에 버린다. 내일은 나 혼자 청소다. 지금 이때 조금이라도 작업량을 줄이고프다.

 

 

 그랬더니 주위 쓰레기들이 전부 신경 쓰여서, 손이 멈출 수 없게 된다. 요컨데 클리닝하이다.

 

 "조금 전부터 무슨 짓이야."

 "사전정리 비슷한 거?"

 

 부스럭부스럭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버리는 내 옆에서, 밥먹자마자 소파에 쭉 뻗어 있는 미츠기는 태산마냥 꿈쩍도 않았다. 느릿하게 시선만을 움직여, 양 손에 자잘한 쓰레기를 들고 있는 나를 흘긋 본다.

 

 "밥 먹은 다음엔 좀 쉬자고."

 "시끄럽게 안 할게. 조금만."

 "소리는 신경 안 써. 촐랑촐랑 움직이는 게 정신 사납단 말이야. 청소는 내일이잖아. 도와줄 테니까 지금은 얌전히 있어."

 "뭐? 도와? 돌아온 다음?"

 

 심히 나른해 보이는 한숨을 쉬며, 미츠기는 태만히 등을 돌렸다. 낮은 위치에서 대충 묵은 머리카락이, 말꼬랑지마냥 소파 바닥을 때렸다.

 

 "유급 받았어."

 "뭐?!"

 "마침 일이 일단락 되어서. 하루 정도는 쉴 수 있어. 바로 다음 안건이 시작되겠지만."

 

 내가 올 타이밍에 휴가를 받다니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들고 있던 걸레를 잡아 뜯고 싶어졌다.

 건축설계사들은 대체 언제가 한가하냐고.

 

 별수 없단 건 안다. 이 녀석의 사무소는 소수정예랬고.

 

 하지만 모처럼 두 사람의 휴일이 겹쳐졌는데 청소라니…. 청소 데이트란 말 들어본 적도 없다.

 

 그렇다는 것은, 내일 자유롭게 놀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중으로 청소를 끝내야 한다.

 

 미츠기는 일 때문에 피곤할 테니, 아마 지금은 못 움직인다. 그 증거로, 이미 눈초리가 흐늘흐늘 위험한 느낌이다.

 

 그러면 오늘은 나 혼자 어찌할 수 밖에…!!

 

 "해치워주마!"

 

 갑자기 쓰레기봉투를 짊어지고 엄청난 기세로 청소를 시작하는 나를, 미츠기가 따지듯이 바라본다.

 

 "소리는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 건 시끄러워."

 "참아. 모처럼 휴일인데 내일 하루 종일 청소만 하다 끝내긴 싫어."

 "난 아무래도 좋아. 청소든 외출이든."

 "난 싫어. 놀러가고 싶단 말이야."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마치 젠가처럼 허물어트리는 내 손에, 거무스름해진 회색 복서 팬티가 닿았다.

 이거 쓰레기다. 버리자.

 

 이어 표지에 커피로 보이는 갈색 얼룩이 묻은 파일이 나왔다.

 펼쳐보려했더니 설탕으로 안이 끈적끈적 들러붙어 펼쳐지지 않는다. 버리자.

 

 쓰레기에 쩔어있는 영양식품은 쓰레기니까 쓰레기봉투에.

 포장지만 찢어져 있는 복사지는 모아서 책상 위에. 쓰지 않는 메모장은 먼지를 털어 책상 위로.

 

 책상 위에 두터운 책 한권을 발견하고 들어본다. 얇게 먼지는 쌓여있지만, 다른거에 비하면 꽤 깨끗했다. 책장에 쑤셔둘까 싶어 돌아본다.

 

 "그거, 내놔."

 

 소파위에서 늘어져있던 미츠기가, 내가 들고있는 책을 향해 나른한 양 손을 뻗었다.

일어나 건네주자, 미츠기는 옆으로 몸을 뒤척인 다음, 표지의 먼지를 꼼꼼히 털어내기 시작했다.

 

 "소중한 거야?"

 "남한테 주게."

 

 "선물로?"

 "어."

 

 번개같은 충격이 내 몸을 꿰뚫었다.

 이 녀석이 남한테 선물?

 

 밤 11시.

 속끓는 기분을 원동력 삼아, 열심히 청소한 덕분에 방안은 눈깜짝할 사이에 깨끗해졌다. 다소 난잡한 데는 있지만 어쨌든.

 

 미츠기가 딱 한 번, 졸리고 싫은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서 "도와줄까?"하고 물어봤지만 거절했다. 선물 운운해서 속이 끓었던 탓도 있지만, 피곤하니까 쉬게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내가 멋대로 이런다는 자각도 있었다. 미츠기는 '아, 그래'하고 말한 다음, 그 뒤로 쭉 잠들어 있다.

 

 "…."

 

 미츠기한테도 교우나 사회생활이 있을 테고, 남한테 선물을 줄 일도 있겠지. 그건 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 미츠기는 항상 마이페이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 일거수일투족 깊게 생각해버리는 일이 많았다. 미츠기한테 선물 같은 걸 받는 그 녀석은 미츠기한테 특별한 녀석일까? 멋대로 그렇게 괜한 생각을 하고 만다. 너도 좀 질투해 달라고.

 

 "나도."

 "어?'

 "오기노한테 뭔가 선물해 줘야하나? 평소 신세지고 있으니까."

 

 커피를 테이블 위에 놓자, 미츠기는 누운채 고개만 돌렸다. 나는 주의 깊이 미츠기의 변화를 살폈다.

 

 "오기노? 예전 알바 동료랬나?"

 "응. 자주 놀아."

 

 일어나 커피컵에 입을 대는 미츠기의 건너편에 걸터 앉았다. 미츠기는 헤에~하고 맞장구를 친 다음, 컵을 든 채 선선한 표정으로 잡지를 펼쳤다.

 

 "신세지고 있으면 제대로 감사해야지."

 

 커피의 김에 닿는 미츠기의 태연한 시선은, 잡지의 페이지에 실려있는 사진을 향해있다. 완전히 태연했다.

 

 알고는 있었다. 이 녀석, 질투 같은 거 안 할 거 같고. 하지만 아직. 아직 포기할 순 없다. 부엌 선반에 들어있던,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하던 과자를 테이블 위에 뿌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직장의 사무직 여성한테 과자 받았어. 엄청 귀여운 애야. 나한테 신경도 잘 써주고."

 

 후룩하고 커피를 마시며 미츠기는 고개를 까닥이며 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단 걸로 줘."

 

 "이거… 짭짤해."

 "응."

 

 놈이 내민 손바닥에 개별 포장한 벚꽃 모양의 감씨과자 봉지를 놓아준다. 미츠기는 봉지를 찢어 과자를 꺼낸 다음, 으적으적 씹으며 잡지를 읽었다. 감씨과자랑 커피 조합, 괜찮나?

 

 "그래서 뭐? 직장이?"

 "요, 요전에 직장의 사무직 여자애한테 과자 받았다고!"

 "그거 좋았겠네."

 

 뭔가 자포자기에 빠진 텅빈 컵을 테이블 위에 내리친다.

 

 "다음에 친구랑 같이 다른 지방에 몇박 잡고 놀러 갈까나!"

 "놀러 가?"

 

 미츠기가 스윽 고개를 들었다.

 

 "그, 그래! 다른 지방에서 몇박 며칠 정도!!"

 

 

 걸렸다.

 나는 릴을 감는 낚시꾼마냥 몸을 내밀었다.

 

 미츠기는 괴이한 표정으로, 감씨과자 봉지를 하나 더 뜯었다.

 

 

 

 "누구랑 어딜?"

 "친구랑 온천!!"

 

 "친구가 있어?"

 "…."

 

 "뭐, 됐어. 모처럼이니까 국내 말고 해외 여행은 어때. 가까운 데는 그렇게 돈 안 들어…. 여기라던가…."

 

 형태 좋은 손톱이 펼쳐진 페이지 사진을 가리킨다.

 홍콩의 야경이 뭐 어쩌고, 가게 순례가 최고라는 둥이 적혀 있었다.

 

 

 격침당했다.

 

 

 0시 40분.

 

 "하아아아…."

 

 엄청 커다란 한숨은 목욕탕에 자욱한 수증기에 녹아 사라졌다. 욕조 끝에 걸친 팔에 턱을 얹었다.

 

 "역시 질투 같은 거 안 하겠지."

 

 그 녀석은 나랑은 다르다. 세세한 것을 신경 쓰는 녀석이 아니다.

 

 한심하게 가라앉는 기분을 달래고자, 물을 떠 얼굴을 씻자니, 인터폰 소리가 작고 흐리게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자, 거실에 있던 미츠기가 탈의실 건너 복도를 지나 문쪽으로 나간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택배라도 온 건가? 어쨌든 나랑 상관없는 손님일 테니, 느긋히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타월을 걸치고서 거실 문을 열었더니… 미츠기 말고 다른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 녀석이 돌아본다. 청결한 느낌의 아저씨였다. 나를 보자마자, '오옷!'하고 큰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다가와서——

 

 "오오, 네가 최근 빠져 산다는 남자가 이 녀석이야?!"

 "윽."

 

 아저씨는 내 팔을 쥐고서 휘익하고 뒤로 밀치는가 했더니, 빠안히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턱밑이나 뺨을 주물주물했다. 뱀 같은 미소를 띠고서.

 

 "뭐야, 뭐야. 멋진 남자 잖아! 응?"

 "윽, 저기, 그… 그, 그만 하세요…. 미, 미츠기. 이 분은?!"

 

 이런 건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뿌리칠 수 가없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미츠기에게 도움을 청했다.

 

 

 

 "…."

 

 시선이 부딪친 순간, 은색의 입자가 튀는 듯 했다. 그 눈동자는 얼음 같았다.

 

 "이 녀석은 사장이야."

 "사장…."

 

 과연. 성격 나빠보이는 이 나이스 미들이 미츠기의 상사. 과연 엄청 납득이 갔다. 사장이라는 말에 말단 아르바이터인 나는 조건 반사적으로 얌전해질 뻔했지만, 그보다 먼저 사장이 손을 떼줬다.

 

 "이거 근처를 지나가던 참에 사달라고 했던 책을 가지러 온 거였는데."

 

 안심했던 것도 찰나, 전신을 끈적끈적 만져와서 깜짝 놀랐다.

 

 

 "어어어어어어어?!"

 "음. 몸 좋네.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은? 체력도 괜찮아 보이고, 얼굴도 잘생겼고. 영업에 딱일 거 같은데."

 

 

 

 

 

 사장의 얼굴은 흥미진진해 보였다.

 간지러워서 몸을 비비꼬며, 다시 한 번 미츠기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청하자, 녀석은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났다.

 

 "가."

 "이런.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마. 그냥 스킨십이잖아."

 

 팟하고 손을 떼고서 항복하듯 두 손을 든 사장이 나를 흘긋 바라본 다음,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예의 그 책을 부둥켜 안고서 웃으며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럼 이번엔 방해해서 미안. 네가 즐거운 생활을 보내는 거 같아서 안심했어." 

 "그래? 됐으니까 가."

 

 내 바로 뒤에서 평탄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츠기의 대답은 매우 쌀쌀맞았다. 사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렇게 대놓고 쫓아내려고 하지 마. 방해해서 미안하다니깐….. 동거인 군도 다음에 봐."

 "아, 네…."

 

 "수고했어."

 

 문이 닫히자, 미츠기는 맨발로 현관앞까지 다가가 재빨리 문을 잠궜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아직도 멍청히 서있는 내 멱살을 힘껏 움켜쥐었다.

 

 "켁."

 "망할 자식."

 "어? 뭐야? 왜? 그리고, 나 숨, 쉬기 힘든데…."

 "뭘 멍청히 희롱이나 당하고 있어. 그 정도쯤 피하지도 못해? 이 둔탱아!"

 

 "피하다니…."

 

 사장한테 당하고만 있었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이 녀석. 그래서 이렇게 언짢나?

 

 "그건 희롱이 아니라 단순한 스킨쉽이라고…."

 "똑같다고."

 

 

 "뭐가 똑같아…. 그보다 숨쉬기 괴로우니까 나…."

 "똑같은 거라고. 그런 표정 짓는 이상."

 

 그런 표정? 그런 표정? 무슨 의미인지 몰라 시선으로 뜻을 묻자, 미츠기는 혀를 차며 못을 박듯 속삭였다.

 

 "나 말고 다른 녀석 앞에서 그런 표정 짓지 마."

 

 

 그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항상 냉정한 이녀석 답지 않게, 노골적으로, 치졸하게.

 

 단순한 나는 그를 보고 한가지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녀석, 곤란해하거나 울상인 내 표정을 남한테 보이고 싶지 않다.

 그건 즉 그거잖아. 그거, 내가 원했던 그거.

 

 

 "질투나니까."

 

 

 미츠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오히려 내가 사과하고 싶어질 정도로 당당하게 말했다.

 문 너머로, 휘이잉하고 밤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네 질투 너무 한 점 저격 아냐?"

 "내 알바 아니지."

 

 

 현재는 밤 1시 언저리. 침몰 이후 기적적인 기사회생.

 결과에 만족한 내가 히죽임과 동시에, 미츠기 역시 영 싫지는 않은 듯 '망할'하고 중얼거렸다.

 

 

 

 

 

 

 

 

 

 

 

 

 

 

 

 

 

Posted by 111243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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