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SS]
클로저 스토퍼 락
동거를 시작한지 몇개월, 나는 가끔 점심용 도시락을 2인분 만든다.
예전엔 점심 스타일이 각기 달라서 마츠다는 주로 회사 식당을 이용했고, 나는 빵과 주먹밥을 주로 먹었다.
그러지 않게 된 것은 저녁 반참이 남았을 때 '담아 줄 테니까 도시락 갖고 가는 게 어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츠다에게 제안했던 것부터 시작된다.
깜짝 놀란 다음 '부탁할게.'하고 대답한 녀석의 표정에 심장 직격 당해서
나는 가볍게 도시락을 만들게 되었으나, 그 과정은 꽤 험난했다.
나는 편식파.
절대로 야채를 먹고 싶지 않다. 아니 가끔은 먹지만.
한쪽은 밸런스파. 반찬의 밸런스에 은근 시끄럽다.
슬쩌기 내 도시락에서 야채만 빼고 마츠다의 도시락에 집어 넣으려 했더니, 마치 매복이라도 한듯 발각 당해서 설교를 먹었다. 척하니 세운 검지를 붕붕 흔들면서 '두 도시락의 내용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기회에 나의 뿌리깊은 편식을 교정하고자하는 오지랖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
그래서 가끔씩 도시락을 만들게 된 것이 반달 정도.
평일 아침 10시. 부엌에 깜빡 방치되어 있는 도시락 앞에서 나는 전라로 얼어 붙었다.
"마츠다 자식… 두고 갔냐."
모처럼 만들었는데. 별수 없으니 갖다 줄까? 그렇게 생각하던 내 머리로 일말의 불안이 스치고 지나갔다.
남자와 동거하고 있다는 말을 남에게 했을까? 만약 이걸 갖다 주면 '어라, 남자가 도시락을 만들어줘요?'하고 이상한 시선을 받는 거 아닌가? 마츠다가 직접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대다수겠지만, 만의 하나가 있잖아.
관두는 게 무난하려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동시에 도시락을 받아들었을 때의 그 어린애 같은 표정이 눈꺼풀을 스쳤다.
"일단 갖다 줄까…."
마츠다의 직장은 내가 보통 가지 않는 오피스 촌이었다.
SNS으로 나눈 대화는 '도시락 깜빡했더라. 점심 시간때 갖고 갈게. 12시면 돼?' '미안. 도중에 눈치챘지만 가지러 돌아갈 시간이 없어서, 집에 가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시간이면 괜찮아. 로비에서 기다려.'라는 식의 대화.
그냥 건네주기만 할 거니까, 전달은 눈에 띄지 않고 끝나겠지.
그랬어야 했는데….
"너희들 말이지~ 됐으니까 밥먹으러 갔다와."
"아니, 그래도 마츠다 씨의 동거인이잖아요? 흥미있다고요."
"하하하하…."
지금 나는 마츠다를 포함한 5여명의 남녀들에게 애워싸여 있었다.
도시락이 들어간 종이 봉투를 한손에 들고 서있는 날 눈치채고서 분연히 다가온 정장 차림의 마츠다의 그 쭉뻗은 다리가 진심 멋있다고 생각했더니, 어느 사이엔가 포위당해 버렸다 그거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회사 동료들과 맞딱트리고 말았다. 갑자기 도망치기도 눈에 띄고, 마츠다도 묘하게 침착하니까, 일단 상황을 살피고 있자니.
"뭐, 그것도 그렇지. 보통 흥미가 생기지."
"룸 쉐어를 시작했단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름이 뭔가요?"
"어, 저기… 어… 아즈마라고 합니다…."
"아즈마 군이라. 귀여워라~"
분위기가 뜨겁다. 마츠다는 태연한 표정이고, 나는 허수아비처럼 서있다.
집에 가고 싶다. 비슷한 또래의 술자리라면 얼마든 실없이 굴 수 있겠지만, 지금 그래선 안 된다는 것만큼은 알겠다. 농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건 엄청 부끄럽다. 나한테 있어선 손발이 묶인 거나 다름없다.
"게다가 잘생겼네. 좋겠다~ 집에 가면 힐링 될 거 같아~."
"그렇지? 귀엽지? 귀엽고, 놀릴 보람 있고, 귀엽고 참 좋은 녀석이야. 그리고 귀여워."
"마츠다 씨가 놀려먹는 모습 상상이 가요~"
"이 녀석 반응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들떠버린단 말이지, 아하핫."
"………"
아하핫은 뭐야. 뭘 태평하게 환담 중이냐고.
마츠다는 묘하게 기분 좋아 보였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애 같은 웃음이다.
그렇기에 나의 기우… 그 이상한 오해를 받는게 아닐까 싶었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우로 끝날 것 같았다.
"저기저기, 아즈마 군. 여자친구 있어?"
"저기 그게… 하하핫."
어찌 대답할 바를 몰라, 돌아가고 싶다고 은연중에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더니, 마츠다는 강철처럼 진지 표정으로 내 시선을 찰싹하고 튕겼다.
동시에 대답하라는 양, 강렬한 파동을 보내오기까지.
바보냐. 결단코 실수로라도 사실을 밝힐 맘 없다. 그러니까 여기선 도망치는 걸로.
타이밍을 봐서 입을 열었다.
"저기…, 죄송한데 슬슬 아르바이트가 있어서요…."
"잠깐만! 조금만 더! 저기, 다음에 마츠다 씨랑 같이 다함께 어디 놀러 안 갈래?"
그리하여 제일 대답하기 곤란한 화제가 날아왔을 때.
"좋아, 거기까지.'
마츠다가 끼어들어와서, 절로 몸에 힘이 빠졌다.
마츠다의 말에, 동료들이 입을 다문 지금이 찬스다. 잽싸게 몸을 빼고서, 도시락이 들어간 종이 봉투를 마츠다한테 내밀었다.
"고마워."
마츠다는 짐짓 의미심장하게 종이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그 입가에 옅은 웃음이 들러붙어 있는 것을 보고… 굳이 말 안해도 될 일을 일부러 말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왜냐면 저거, 절대로 변변찮은 생각을 하지 않을 때의 표정이다.
다 끝난 순간 갑자기 안쪽 깊이 찔러 올 때랑 같은 표정.
"미안. 모처럼 네가 만들어 줬는데 깜빡해서. 매일 고마워, 땡큐."
아, 역시나. 아니 예상대로랄까. 삼인삼색의 기묘한 반응이 그 자리를 지배했다.
이거 분명 오해 샀다. 아니 일부러 오해하게 말했다, 이 자식. 내 반응을 즐기는 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마츠다에게 답답함을 품은 채로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밥을 만들었더니 오기노한테서 전화가 들어왔다.
술 마시지 않겠냐는 권유의 전화였다. 오래간만에 어떻냐고.
몇분 정도 지나 마츠다가 돌아왔길래, 전화를 끊었다.
"전화? 누구야?"
"오기노. 예전 아르바이트 동료…. 어서와."
"다녀왔어. 아직도 연락하고 지냈구나."
"응. 그래서 내일 같이 술 마시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옷을 다 갈아입고 장롱 문을 닫던 등이 뒤돌아 보는 것을 기다렸다.
"뭐 어때. 다녀 와."
왁스로 정돈한 머리카락 사이로 흐트러진 앞머리카락을 흔들며, 뒤돌아보자 마자 마츠다가 웃었다.
"다녀왔어어어~"
"하하하. 엄청 마셨나보군."
마츠다가 웃고 있다.
오기노한테 기댄 나를 향해. 일본주 5잔, 맥주 3잔, 소주 3잔으로 흥이 올라 완전히 술에 취해 네온으로 휘황찬란거리는 귀갓길 내내 오기도의 어깨에 기대여왔던 나를 보며.
"웅… 오기노가 계속 권해서~"
"하하핫, 정말로 엄청 취했는걸."
"그보다 선배, 동거인이 계셨네요."
"어라~? 말 안했나아~? 응. 룸쉐어 메이트가아아아."
나를 부축하고 있던 오기노가 힐끗 이쪽을 보는 기척. 마츠다가 너그럽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래서? 네가 오기노 군?"
"네. 오기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
"마츠다라고 해. 항상 아즈마가 신세를 지고 있지?"
"아뇨아뇨, 저야말로 선배한테 항상 신세지고 있으니까요."
"아니, 이렇게 되었는데 일부러 데려다줘서 미안. 역에서 여기까진 멀었을 텐데."
흐물흐물한 해삼이 되어버린 나를 건네받고자 마츠다는 두 팔을 내밀었지만, 왜인지 오기노는 응하지 않았다.
순간 떨어진 침묵 후, 오기노가 그 특유의 마이페이스로 말을 이었다.
"택시를 타고 와서 괜찮았습니다."
'……, 그렇군. 하하핫. 그럼 아즈마를 바닥에 내려줄래? 택시비 낼게."
"아뇨, 괜찮습니다~. 항상 선배한텐 신세지고 있는 몸이니까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아, 그렇군. 그럼 뭐냐. 아즈마 선배는 무겁잖아. 계속 서있는 것도 그렇지 않나?"
"괜찮습니다. 안 무거워요."
마츠다와 오기노, 완전히 둘이서만 대화하네.
내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술기운에 흔들리는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선배 방 어디에요? 제가 방까지 날라다 드릴까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변함없이 두 팔을 내민 자세로, 나를 건네받으려 하던 마츠다의 장딴지에 쩌적하고 힘이 들어간다.
마츠다가 빡쳤다. 그를 깨달은 나는, 쭈뻣쭈뻣 고개를 들어….
"괜찮아. 내가 챙겨줄게. 동거인이니까."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마츠다의 얼굴을 확인한다.
큰일이다. 이거 완전 짜증났네. 틀림없이.
오기노 너 얼른 돌아가는 게 좋을 걸. 절대로.
옆에서 스윽하고 숨을 들이킨 오기노가, 어깨를 으쓱였다. 토해낸 숨결은 한숨마냥 길었다.
그리고 '읏차'하는 소리와 함께 발이 들리더니, 오기노가 질질 쳐져있던 몸을 다시 부둥켜 안았다…고 생각했는데니 난폭하고 두터운 팔팔에 이끌려 탄탄한 가슴팍에 얼굴을 박았다.
친근한 냄새가 나는 가슴팍에 키스를 하며 숨을 들이키자 ,안에서 들려오는 고동소리가 스윽하고 조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썰물처럼.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 다음에 봬요."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미안… 과음했어…."
"그런 거 같군."
고릴라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마츠다가 내 신발을 벗기더니, 난폭하게 방으로 옮기고서, 침대위로 내던졌다.
"푸훕."
침대에 던져진 충격으로 토할 뻔했지만, 담담히 이쪽을 내려다보는 마츠다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집어 삼켰다.
이 느낌. 어쩌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각오는 했다. 하지만 마츠다의 손은 여전히 펴져있었다.
"이런 말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 마시면 못 써."
"응…."
"그보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밀실에서 같이 지내지 말라고."
"밀실…?"
"택시 같은데."
"택시 운전수는 왜 빼…."
"그건 그렇지만, 운전수는 거의 공기잖아."
마츠다는 이번엔 거실로 사라졌다. 탁탁하고 발소리를 내며 돌아왔을 때엔, 물이 든 페트병과 컵도 같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야. 너한텐 말이지, 자각이 부족해."
"미안…… 웅…."
누워있는 내 등 뒤로 팔을 비집어 넣고서 내 몸을 일으켜준 마츠다의 얼굴은 역시 화가 나 있었다.
사과하려고 했더니 컵을 기울여 주기에, 물을 맛나게 마셨다.
"그보다, 자각이라니 무슨 소리야?"
"얼굴은 잘생겼는데 빈틈이 많다는 소리라고!"
채 못마시고 입술 끝에서 흘러넘친 물을 닦아준다.
"아, 고마워…."
"그렇게 빈틈이 많은 데, 남들이 그걸 노리면 어쩔꺼야?!"
짜증을 감추려고도 않는 어조인데, 양말을 벗겨준 다음, 얇은 솜이불을 걸쳐준다.
"잘 들어. 이성애자 남자라도 말이지, 네가 이렇게 술에 취해 머엉해진 모습을 보면 아찔해질 수도 있다고. 야해서! 야함에 당해버릴 지도 모른다고! 야하단 말이야, 넌!"
"하아…."
"하아는 무슨! 진지하게 들어! 안 추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봤다니, 곱게 개켜진 양말이 방금 벗겨져 나간 벨트 옆에 놓여있다.
"안 추워…."
"그럼 됐고! 물 더 마실래?"
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조금 전보다 더 신중한 각도로 물을 마시게 해준다.
"무슨 일 생겼다간 늦는다고! 가지라고! 위기감을! 좀 더!"
"응…"
다 마셨더니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준 다음,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려준다.
"친구인지 지인인지 쫄따구인진 모르겠지만, 사람은 언제 달라질지 몰라. 언제 덥쳐질지 모른다고…!
방이 어디냐니, 집안으로 들어올 마음 가득찼더만!"
"응…."
증오를 섞어 혀를 찬 마츠다는, 거실로 이어진 문 옆에 섰다. 훅하고 불이 꺼졌다.
"반성했어…?"
"했어…. 엄청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츠다는 문손잡이를 쥔 채, 빤히 나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더는 과음하지 마…. 과음은 내 앞에서만 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가, 문이 살며시 닫히려는 것을 눈치챈 나는 다급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마츠다."
"뭐야."
닫히려던 문 틈새로 얼굴이 살짜기 엿보였다.
"질투…했어…?"
"했어."
이번엔 마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낮에 회사 동료들이 너한테 놀러가자고 말했던 때도."
문이 다시 조금 닫힌다.
"오기노랑 전화하던 모습을 봤을 때도."
문은.
"오기노한테 기대어있던 널 봤던 때도."
제발 닫히지 말아줘.
머릿속에 어제의 정경이 떠올랐다.
저녁 식사후, 둘이서 느긋히 TV를 보고 있던 때였다.
"이 사람, 멋지다."
남자가 반할만한 날카로운 표정에, 발랄한 태도가 호감가는 중견 배우. 최근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사람이다.
별 생각없이 중얼거린 말에, 그렇다느니 응이라느니 하는 맞장구를 기대했던 나는, 전혀 들리지 대답에 의아해 하며 마츠다 쪽를 보았다.
"……"
마츠다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밤은 묘하게 격했다.
어림풋히 깨닫곤 있었지만, 요컨데 이런 것이다.
<마츠다는 엄청 질투심이 강하다.>
"미안…."
"알았음 됐어."
문에 절반 이상 가려진 고개가 처지더니, 이어 안쪽으로 쑥 사라지고 만다.
천천히 소리조차 없이 닫히는 몇 밀리의 문 틈새로, 나는 목소리를 비집어 넣었다.
"마츠다."
"뭐야."
문은 닫히지 않고 나를 기다려준다. 나는 미덥잖은 손놀림으로, 그를 손짓해 불렀다.
"술냄새는 좀 나지만… 같이 자자. 이쪽에서."
자신에 대해 뭘 아냐고 말했던 네 기분을, 말을, 나는 알아 주고 있는 걸까?
같이 살면서 커지기 시작한 내 마음, 이 말은, 너에게 전해졌을까?
도시락통에 반찬을 담아 채우듯, 거듭 되는 내 말은 너의 빈틈을 채워가고 있는 걸까?
문이 열리고, 마츠다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좁은 침대에 한 사람 몫의 자리를 만들며, 나는 두 팔을 벌려 너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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