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판 시작~ 오프닝까지
어떻게 작업해야할지는 좀 고민 중입니다.
VNR 왜 망햇을까..
내 방에는 시계가 없다.
TV도 잘 안 보니까
시간이나 날짜를 알고 싶을 땐 폰을 열어본다.
오후 9시 반.
곧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간이다.
“후아아아암….
졸려…. 망할 졸려….”
난잡한 침대 위에에 앉아,
팔을 뻗어 반쯤 걷혀있던 커튼을 마저 연다.
혼자 살기 시작한지 어연 몇 년.
지은지 15년 된 아파트 1DK, 월세 5만.
햇빛도 잘 안 들어오는 방이지만
날씨가 맑으면 새하얀 빛이 들어온다.
잠에서 깨어나 오늘 하루도 힘내자는 그런 기특한 기분이 드는 것은, 으레 이런 날뿐이었다.
“나른해….. 진짜 나른해….”
“채비할까….”
의욕없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향한다.
아르바이트는 주휴 3일, 6시간 노동이 좋으나
그러면 내야할 돈을 못 내게 되니까 결국 주5일, 8시간 노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는 건 편하지 않았다.
입에 풀칠하는 게 고작…인 건 아니지만.
사치를 부릴만한 돈은 남지 않았다.
“가난이 몸에 들러 붙었다니깐….”
그렇다. 나는 어쨌든 가난했다.
얄팍한 지갑과 어플리케이션이 잔뜩 깔린 스마트폰을
청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언제나처럼 머리를 셋팅하고,
며칠전과 같은 옷을 입은 다음
밥은 빼먹고 집을 나선다.
나른하기 짝이 없었지만 참았다.
일단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이것이 일하기 위해 살아있는 나의 루틴 워크다.
아르바이트 하는 편의점은 근처에 있으며,
자전거를 타든, 걸어서 가든 반드시 상점가를 지나가야한다.
상점가 다음부터는 기분에 따라 길을 바꾸고 그러지만,
잡다하고 걷기 힘든 이곳을 지나는 것은 좋았다.
빠칭코 가게, 꽃집, 게임 센터, 휴대전화 가게,
교복 입은 학생, 고로켓, 중고 옷가게, 고기밖에 없는 도시락.
그렇게 생활감 넘치는 장소에 있으면
왠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변함없이 아침부터 떠들썩하네.
아… 가스비 내는 거 깜빡했다.”
“뭐, 어때. 오면서 내자.”
역 근처에 지하 백화점이 생겼을 땐
여기도 문을 닫는 가게들로 가득 차버릴 거라 생각했지만,
상점가는 오늘까지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번성할 이유라면 가격이 싼 점 정도?
어쨌든 한때 내려섰던 ‘쇠퇴’라는 이름의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모양으로
오늘도 평온하게 상점가 특유의 떠들썩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싸다.”
정육점 앞에서 멈춰섰다.
닭다리살이 100그램당 60엔. 이건 싸다.
반드시 손에 넣어야할 싼 가격이다.
“어서와. 오늘의 특가 상품은 이거야. 지금부터 아르바이트 가나?”
정육점 아저씨가 언제나처럼 싹싹하게 말을 걸어준다.
매일 자취하는 건 아니지만, 이 가게엔 자주 들리니까 완전히 얼굴을 기억해주시게 되었다.
“응. 저녁때까지 남아있을까?”
“아, 그거라면 문제없어. 잔뜩 들여왔거든. 뭐 불티나게 팔리면서 모를 일이지만.”
“하하핫, 그렇게까지 성황하는 모습 본 적도 없구만. 그럼 내 거 좀 남겨줄래? 일 끝나고 사러 올게.”
“안 돼~. 다른 손님들의 문의도 전부 거절했다고. 지금 사가. 편의점에도 냉장고 정도는 있잖아?”
“있긴한데 다들 주스밖에 안 넣는다구. 옆에 생고기라도 넣어봐, 분명 뭔소리 들을 걸?”
“하하하핫! 그럼 별수 없지! 얼른 일 끝내고 사러 오라고?”
“그럴 수밖에 없겠네….그럼 나중에 또 올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아저씨의 배웅을 받으며 그 자리를 뜨자, 몰려든 주부나 학생들의 인파 속에 닭다리살의 가격표는 바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몇시간 뒤,
별일없이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귀로에 들었다.
“아~ 피곤하다…. 얼른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
같은 시간에 끝마친 아르바이트 동료인 오키노가 한 잔 하자고 불렀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거절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남이랑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닌지라, 오키노도 ‘그럼 다음에 봐요.’하는 한마디로 끝났다.
그 녀석은 왠지 내가 마음에 드는 지, 자주 어디 가자느니 놀자느니 말을 건다.
며칠 전엔 캠프에 가자는 말도 들었다.
이번에 친구들이랑 가는데 아즈마 씨도 어떻습니까? 하면서. 물론 거절했지만.
“남자한테 인기 있어 봤자지 뭐.”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육점을 들여다보니, 대량으로 진열되어 있던 고기는 확실하게 조금 남아 있었다.
“수고가 많았어. 닭다리살, 아직 남아있다.”
“얏호. 그럼 거기 있는 거 전부 줘.”
“좋아. 그건 그렇고 꽤나 많이 사네. 전부 2kg는 넘는데. 친구랑 전골이라도 해먹게? 아니면 냉동실에 넣어둘 거야?”
“아니, 카레에 넣어서 혼자 전부 먹게.”
“이, 이렇게 많은데? 보통은 전부 다 못 먹지.”
“다른 건 안 넣을 거니까 문제없어.”
그래도 이틀은 갈 테고.
카레는 독신 생활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한다. 이거 은근 진심.
“야채 좀 먹으라고.”
“야채 싫어.”
“여자친구보고 맛있는 야채 요리라도 해달라고 하지 그래.”
“여자친구 없거든.”
아저씨는 나 참…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엄청 불쌍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형씨…, 잘생겼는데 참 아깝기도 하지.
혼자 고기 카레를 만들지 말고 연인을 만들어.”
“시끄러워. 자, 얼른 계산 좀 해줘.”
“이 아저씨 눈물이 나 다네…. 불쌍하니까 우지 1개 덤으로 준다.”
필요없어.
하지만 호의는 고맙게 받아들이자.
어쨌든 1000엔짜리 지폐 2장을 건네주고,
고기가 든 비닐 봉투를 건네 받았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얄팍한 종이조각을 1장 건네준다.
무슨 티켓 같은데.
“응? 이거 뭐야?”
팔랑팔랑한 종이조각이 내 손끝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뽑기권이야. 500엔마다 1장씩 주거든. 상점가 북쪽, 남쪽 끄트머리에서 돌려볼 수 있어.”
“500엔에 1장?”
그럼 계산이 안 맞지 않나?하고 말을 이으려 하니
아저씨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형씨는 잔뜩 사줬으니, 실은 몇 장 더 줘야하는 데 말이지.
미안, 이제 그거 밖에 안 남아 있거든. 일단 운이라도 시험해 봐.”
“상점가 구석이라면… 꽤 멀잖아.
됐어. 마지막 한 장이라면 다른 사람한테 줘.
난 뽑기 같은 거에 흥미 없거든.”
“그거 1장만 남아둬봤자 소용없거든.
내일이 되면 또 새로운 뽑기권을 주고.
그런 말도 있잖아. 남는 것엔 뭐 어쩌고~. 일등이 나오면 꽤 좋은 걸 받을 수 있다더라.
“뽑기 담당이 사람이 엄청 열심히 영업했어.”
“흐음……. 알겠어. 고마워.”
“천만에. 또 들려줘. 야채도 먹고~.”
“정육점에서 할 말이 아니잖아, 그거.”
힘내~하며 손을 흔드는 아저씨한테 꾸벅하고 인사한 다음, 일단 상점가를 빠져나가는 길을 나아갔다.
“아아~ 어쩌지? 진짜 거기까지 걸어가야 해?”
솔직히 뽑기 한 번 뽑아보려고 몇백미터나 되는 길을 이동하는 건 피곤하다.
고민하려던 참에, 아저씨가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뭐에 당첨되는지 설명 같은 건 없나?”
싼티나는 뽑기권을 뒤집어 보니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잘 생각해보니 상점가 끄트머리엔
특산물 가게랑 찻잎 가게밖에 없지 않나…?
음… 별로 가본 적 없었지.”
“그 근처 어떻게 되어있으려나….”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는지라, 갑자기 흥미가 솟았다.
“가보자.”
결론은 쉽게 나왔다.
빨리 돌아가봤자 카레 만드는 일밖에 할 일도 없으니,
산책 겸 가보기로 한다.
몇분 걸어 도착한 텐트 아래 추첨회장에는 손님이 없어서, 핫피를 입은 스탭들이 철수 준비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저녁시간 때니까 나름 사람은 있을 텐데, 쇼핑을 마친 사람들은 뽑기에 참가하는 모양새도 없이 그저 담담히 스쳐지나가기만 했다.
작업중이던 스탭 형씨가 멀리 멈춰서 있던 나를 눈치채고서, 붙임성 좋게 손짓해 부른다.
“아, 혹시 뽑기하러 오신 겁니까?
괜찮습니다. 아직 이쪽에서 하는 중입니다.”
“아, 그럼. 실례할게요.”
돌아갈 채비 중인데 방해하는 것도 미안했기에, 안 들켰으면 아무말 없이 돌아갈 생각까지 했는데
그 가벼운 대응에 그런 배려 같은 게 아무래도 좋아졌다.
“그럼 뽑기권 보여주시겠습니까?’
“네, 여기요. 한 장 밖에 없는데 괜찮나요?”
“한장이라도 뽑기는 뽑기니까 괜찮습니다.”
그 말이 맞다. 가벼워 보이는 녀석이지만, 하는 말은 의외로 제대로 되었네.
“그럼 바로 가볼까요. 이거 돌리는 법, 아시죠? 한 장이니까 한 번 돌려주세요.”
그 가벼운 남자 스탭은 종을 손에 들고서, 나보고 기계를 돌리라며 재촉했다.
“그럼….”
기계 손잡이를 적당히 돌린다.
뭐든 좋으니 빨리 돌리고 집에 가자.
이어 데굴하고 금색의 구슬이 나왔다.
“오, 나왔네.”
금색이라. 좋아 보이는 색인데, 과연 뭘까.
뭐 티슈든 뭐든 상관없지만.
“금색, 이거 몇 등인가요?”
티슈를 받을 생각으로 한손을 내밀면서, 구슬색과 경품이 적힌 표를 눈으로 살펴보려 했다가, 그 전에 스탭의 이변을 눈치챘다.
그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구슬을 들여다보더니, 퍼뜩 고개를 들고서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종을 울렸다.
“1등~! 1등 당첨입니다!!”
“하아?”
“어? 잠깐만요, 반응이 좀 둔하지 않나요? 좀 더 기뻐해주셔도 되는 데요? 이거 엄청 대단한 거거든요? 1등이라고요?”
“지, 진짜? 앗싸!!”
설마했던 1등 당첨에 무심코 승리 포즈를 취하고 말았는데….
“……….”
그제야 눈치챘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꽤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뭐 이만큼 소란을 부렸으면 신경 쓰이긴 하겠지.
하지만 엄청 거북하다.
동행이라도 있다면 신바람을 냈겠지만,
혼자 외출했을 때 이런 일을 만나면 어디까지가 멋있는 대응인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그래, 나는 허세쟁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단.
승리 포즈는 천천히 풀고서, 적당적당히 웃으며 적당적당히 기뻐하기로 했다.
“헤에…. 하하하, 그거 잘 됐네요.”
그때 스탭 뒤에 있는 표를 보니, 확실히 금색 구슬은 1등이라 적혀 있고, 옆에 있는 관련 경품란에 ‘토가지마(砥鹿島) 5박 6일 여행”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행…?”
다른 데를 보고 있던 내 시야로, 즉시 스탭 형씨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보셨습니까? 토가지마 5박 6일 여행입니다!
팸플릿과 선박 티켓이 안에 들어있으니까 절대로 둘 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일정이나 사전 준비 같은 것은 팸플릿에 대략 적혀 있으니까, 당일까지 꼼꼼하게 봐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쪽에서 뭐 깜빡하고 온 게 생각나고 그러면 큰일이잖아요.
그보다 이거, 좀 텐션이 올라가지 않나요? 공짜로 섬 여행이라고요?!
그렇게 밋밋하게 반응하시다니 아깝잖아요."
<1등상>이라고 적힌 낙인이 찍힌 커다란 봉투를 반쯤 떠넘겨받듯이 건네받았다.
“하하하… 고마워.”
“그리고, 이거.”
“어라? 뭐 더 있어?”
“네. 이 용지에 이름이랑 전화번호, 주소 좀 적어주시겠습니까?
뭐라더라 뽑기 주최자인 여행 회사 사람이 여행 일정에 대해 연락을 드리고 싶다더라고요.”
“하하, 과연…. 그런 거구나.”
용지에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적는다.
“만약 여행을 캔슬하게 될 경우, 직접 회사 사람에게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알겠어.”
지저분한 글자로 채워진 용지를 스탭 형씨에게 건네주자, 용지를 확인한 그는 OK입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이만 슬슬…….”
“넵.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가벼운 남자 스탭은 내 인사말을 듣기도 전에, 후딱후딱 뒷정리를 하러 돌아가버렸다.
“여행이라….”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피하며, 한손에 생고기를 든 채 봉투를 빤히 바라본다.
봉투 표면에는 상세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설마 당첨될 줄이야. 앞으로 몇 년간의 운을 다써버린 건 아니겠지?”
가볍게 흔들어 본다.
팸플릿이 들어있는 법한 무게였다.
”음……”
아케이드 대신 나타난 하늘을 올려다보자, 낮까지 자욱했던 두터운 구름이 걷히고, 아름다운 저녁놀로 바뀌어 있었다.
“여행이라…. 최근엔 아르바이트만 했었지.”
“마지막으로 여행을 갔던게… 고등학교 친구랑 졸업기념으로 간 게 끝이었던가.”
“섬 같은 거 좀처럼 갈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이 참에 한 번 가보기로 할까…?”
여행경비가 공짜라면 달리 필요한 돈은 소액으로 끝나겠지.
뭐어, 아르바이트를 줄인 탓에 생기는 1주일간의 생활비 마이너스는, 저금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귀여운 여자애랑 만나고……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더니 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오, 왠지 단번에 머릿속이 리조트가 되었어!”
일단 아르바이트 일자를 조정해두자.
“아, 여보세요. 오기노? 나야……. 응 수고많아.
오늘? 아니 아무일도 없었어. 그냥 좀 부탁할 게 있어서. 갑자기 이런 말 하는 거 정말 미안한데…
다음 주 알바, 나랑 통으로 바꿔주지 않을래?
뽑기로 여행 당첨 됐어…….
진짜야. 일등이었어. 상점가에서 하는 거. 5박 6일짜리.
어, 알아? 너도 했냐? 진짜냐? 티슈 나왔어. 안타깝게 됐네.
응, 점장이 다른 사람이랑 교대하는 거면 된다길래. 아니… 다른 녀석한테도 물어볼 생각이긴 했어.
아무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무리라면 진짜 괜찮아. 일단 물어보기만 하는 거야.
뭐? 진짜? 그래도 돼?
얏호!! 응. 하하핫. 선물은 2배 말이지? 알겠어. 그럼 다다음주 아르바이트는 너랑 전부 바꾸기면 되지?
오케이. 정말 고마워. 진짜 살았어. 응, 응. 그럼 잘 자.”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던진다.
점장의 허가를 받은 다음, 비교적 사이가 좋은 오기노한테 상담해봤는데.
“설마 진짜로 OK해줄 줄은 몰랐어. 진짜 다행이다.”
전화기 너머로 “치사합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하면서 볼멘 소리를 하긴 했지만, 흔쾌히 허락해줬다.
“아차… 카레 깜빡했네.”
전화를 걸기 전에 불위에 올려둔 냄비를 보러가보니, 닭다리살밖에 안 넣은 카레가 순조롭게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식욕을 돋구는 좋은 냄새가 방안에 충만했다.
“밥은 했으니까, 이제 곧 먹을 수 있겠네. 그 동안 여행 정보라도 볼까….”
일정 부분만 보고 전화했기 때문에, 다른 항목은 전혀 본적 없었다.
거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아, 티켓과 함께 봉투에 들어있던 팸플릿을 펼쳐본다.
“보자… 흐음흐음.”
작은 폰트로 적힌 문구는 이랬다.
대자연과 접할 기회!
자급자족도 체험할 수 있을지도?!
토가지마 탐색 투어~!
일정 : 5박 6일
집합시간 : 아침 7시
집합 장소 : 아미오키 2호 아사나기 앞.
여기까지는 봤다.
“그보다, 토가지마가 어디야?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인데…. 뭐 관광할 만한 데라도 있을까?"
"앗, 쫄았네…."
섬에 대한 안내가 실려있지 않을까 싶어 페이지를 넘겼을 때, 휴대폰 착신음이 울려퍼졌다.
등지고 있던 침대위의 스마트폰을 잡자, 모르는 번호였다.
“뭐지,이 번호…?”
아르바이트 관련 번호도 전부 등록해둔 건 아니니까, 아마 그거라고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누른다.
“네.”
“이번에 토가지마 5박 6일 여행에 당첨되신 것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아, 앗! 그 여행….”
“네.! 니라이카나이 투어즈 타나베라고 합니다.”
“상점가 당담자로부터 연락을 받아, 급히 연락드렸습니다! 밤중에 죄송합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팸플릿에 기재되어 있는 여행 회사 이름과 담당자 이름이 같은 것을 확인하고, 경계심을 풀었다.
뽑기 담당 형씨, 캔슬할 거면 여행회사에 직접 부탁하라고 했었고.
사전 연락이 필요한 거겠지.
“지금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여행에 앞서 필요한 수속이 있어서요.”
“이렇게 말하는 것도 팸플릿을 봐주셨으면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이번 여행은 투어식으로 되어 있어서.”
“아, 네.”
팸플릿은 흘끗 보기만 했지만, 그런 게 적혀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일정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형편이 좋지 않으시다면 참가는 다른 분께 양도 되는 형태가 됩니다~.”
“아,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휴가를 잡을 수 있게 되어서요.”
대답하면서 카레 냄비를 휘저으러 간다.
“그러십니까? 다행이네요! 그럼 아즈마 님은 참가인 걸로 문제없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음, 잘 익었네. 엄청 맛있을 것 같군, 고기온리 카레.
“네, 고맙습니다! 이걸로 아즈마 님은 여행 명부에 등록되셨습니다!”
“그럼 무슨 일 있으실 경우, 타나베 앞으로 연락 주십시오.”
“넵. 당일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니 딱 카레가 먹기 좋게 완성된 참이었다.
“자아, 먹자. 배터지게.”
냄비 불을 끄고,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밥에 엄청나게 뜨거운 루를 뿌린 다음 스푼을 꽂는다.
TV도 켜지않고, 폰을 만지작거리며 밥을 먹는다.
고기뿐인 카레는 역시 굉장히 맛있었다.
크루저로 출발한 다음, 5시간 정도 크루징을 타게 됩니다.
그 뒤 토가지마에 도착, 체재하게 됩니다.
토가지마는 현재 무인도입니다만,
체류용 로그하우스나 설비가 존재합니다.
구조도는 별도 페이지를 참조바랍니다.
또한 섬에는 레스토랑 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식사는 모두 함께 준비하셔야 합니다.
재료는 이틀치 정보, 로그 하우스 냉장고에 존재합니다.
추가 재료는 3일째에 배로 날라드립니다.
바닷향기 속에서 녹음을 바라보며
우아한 식사를 즐겨주십시오.
6일후 귀가할 때, 크루저로 마중을 나갑니다.
불명확한 점은 안내원에게 질문해 주십시오.
“무인도.”
“무인도…?”
그런 말 못 들었다고.
나는 맥이 빠져 그 자리에 걸터 앉았다.
“아 망할…… 당했네…….”
여행 회사에 전화한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나는 당일날이 되어 겨우 팸플릿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크루저를 앞에 두고 이제 승선만을 남겨둔 상황 하에서.
여행이 결정난 후로는 조금이라도 수입을 얻기 위해 일찍 출근하거나, 잔업을 더 하는 등등 다망한 날들을 계속 보냈다.
시프트를 바꿔주기로 한 오기노에 대한 감사를 대신하여, 같이 술자리를 가지거나 밤늦게까지 놀기도 했다.
비교적 기대하고 있던 여행이었데, 인터넷으로 섬에 대해 조사하는 것조차 깜빡한 데다, 어젯밤이 되어서야 다급히 준비하는 게 고작.
꿈에 그릴 법한 여행을 실현시키기 위한 소도구를 가방에 채워넣을 여유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소지품은 갈아입을 옷이나 세면도구, 타월 등의 생활필수품만 넣은 백팩 하나라는, 상당히 불안한 장비가 되었다.
“큰일인걸. 이거 절대 부족할 거야. 좀 더 이것저것 챙겨와야 했는데. 진짜.”
“그보다 무인도라니…….”
상상되는 것은 서바이벌 나이프나 텐트지만, 일단 로그 하우스엔 있을 것 같으니 그렇게 까지 원시적인 생활은 보내지 않아도 되겠지?
“뭐 투어니까 안내원이 같이 머물러 줄 거야. 분명.”
그건 그렇고 무인도.
하와이나 괌 같은 남국 이미지가 단번에 서바이벌스러운 뭔가로 바뀐다.
“여자애들은 어떻게 되지? 무인도에서 생활할 수 있나?”
“그보다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진짜냐?!”
“공짜니까 불평은 못 하겠지만.”
반짝이는 지평성, 청아한 물결,
파문에 흔들리는 새하얀 크루저.
그것들을 멍하니 물가 벤치에 앉아 바라보며, 옆에 둔 백팩에 팔꿈치를 얹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은 새하얗게 빛나는 저 배뿐.
상상했던 것보다 깨끗하고 큰 것이, 셀레브 친구라도 만들지 않는 한 아마 두 번 다시 인연이 없을 물건임이 틀림없다.
오늘을 대비해 준비 만전의 상태로 임하지 않았던 것이 절절히 후회된다.
처음부터 전도다난이었다.
“저기… 좋은 아침입니다. 아즈마 씨… 맞으시죠?”
갑자기 옆에서 걸려온 목소리에 제정신을 되찾아 보니, 눈 앞에 댄디한 아저씨가 서있었다. 손에 커다란 파일을 들고 있었다.
생긴 건 신사인데 캐주얼한 정장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분위기다.
“그런데요…. 그보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시는지….”
대답하자, 아저씨의 웃음이 진해진다.
“말씀 드리는 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투어의 안내인으로 여러분과 함께하게 될 니라이카나이 투어즈의 혼고라고 합니다.”
“아, 안내인이셨군요.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갑자기 죄송합니다.”
꾸벅하고 고개 숙여 사죄하는 것에 쭈뻣쭈뻣 앉은 체 답하니, 혼고 씨는 들고 있던 파일을 닫고서 옆구리에 낀다.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욘 없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의식주를 함께할 사이니까까 사이좋게 지냅시다.”
웃으니 눈가에 진 주름이 한층 더 댄디함을 더한다. 살가운 신사구나.
“넵.”
“아, 나 질문 하나 해도 돼? 안내인은 혼고 씨 혼자야?”
네. 소규모 투어인데다 로그 하우스에 묵을 수 있는 인원수 문제도 있어서요.”
“흐응……. 나 말고 몇 명 더 있어?”
“8분 더 계십니다.”
“헤에, 은근 많네. 저랑 마찬가지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아니요. 개 중엔 그런 분도 계시겠지만, 이번 여행은 어디까지나 투어인지라 개인적을 신청해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맞장구를 치고, 항구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았으나, 아직 아무도 올 기미가 없었다.
스마트폰은 출항시간 40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시 너무 일찍 온 거 같다.
“저기, 내 또래도 있어?”
“네. 참가자들 전원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나잇대였습니다.”
옆에 있는 혼고 씨는 나랑 마찬가지로 바다 쪽을 보며, 다시 천천히 파일을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다행이다. 또 로그 하우스는 한 채야?”
“아니요. 로그 하우스는 전부 10채로, 한 분 당 한 채씩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작은 로그 하우스인지라, 널널하게 사용하시는 건 힘드실지 모르겠지만요….”
“갑갑함을 느낄 정도로 좁진 않을 겁니다. 침실엔 물론 침대도 있고, 나무 벽도 제법 흥취가 있는지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방입니다.”
한 채를 전원이 공동 이용하는 게 아니구나.
그 말을 들으니 의외로 호화로운 기분이 든다.
“흐응. 그럼 여자애들은 몇 명 있어?”
“그게 5박 6일 무인도 여행인지라, 갖가지 안전 문제를 생각하여 여성 분들은…….”
거기서 답이 끊겼다.
“…….”
없는 거구나.
보이 미트 걸을 살짝이나마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오히려 엄청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표정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하하핫, 그렇게 유감스러운 표정 짓지 마세요. 남자들끼리 마음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멋지지 않습니까.”
“응…. 그렇지. 응……….”
혼고 씨가 욱 쳐진 어깨를 쳐주니,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낙담이었지만.
오래간만의 여행이란 멤버가 어쨌든 역시 좀 기대되는 것이었다.
그때 대로쪽에서 배기가스 소리가 다가오더니, 정류소에 고속 버스 같은 게 멈춰서는 게 보였다.
혼고 씨와 함께 몸을 내민다.
"그러고 보니 아즈마 씨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전차. 중간부터 걸어왔어."
"헤에~ 역에서 여기까지는 꽤나 먼데…"
아무래도 버스비를 아끼고 싶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 좋게 웃은 나는 얼버무리듯이 멀리 보이는 버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내린 사람의 8할은 항구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나머지 4명의 남자가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전원 아는 사람인지, 버스 안에서 알게 된 건지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듯 했다.
"저 분들도 참가자인 모양이로군요.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파일을 확인한 혼고 씨는 급히 그쪽으로 향했다.
어떤 녀석들일까 싶어 목을 빼며 지켜보고 있자니, 슈트 케이스를 끌고 오는 작은 체구의 소년이 도로에서 항구로 내려오는 계단에 애를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저 녀석도 투어 참가자 맞지…?"
평소엔 남을 돕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여행을 앞에 두고 마음이 너그러워진 것도 있는지라 도우러 가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짐을 손에 들고 바닷바람에 삭은 잡초가 돋아나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무거워?"
아래에서 말을 걸자, 역광이 드리워진 소년의
그림자의 어깨가 움찔 흔들렸다.
"………."
"도와줘?"
아, 굳이 물을 거 없이 도울 걸. 남자가 그런 말을 듣고 솔직하게 '그럼 부탁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응…, 잘 부탁해."
녀석이 있구나. 다행이다.
"좋아. 잠깐 기다려 봐."
그의 솔직함에 구원을 받은 기분으로 계단을 올라, 슈트 케이스의 손잡이를 힘겹게 쥐고 있던 손바닥을 떼내고서 그를 앗아챘다.
"흡……."
여유 부리며 한손으로 들려했더니 상상외로 묵직해서, 계단 끄트머리를 딛고 있던 한쪽 다리가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윽……."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줄 알았지만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참은 나를 칭찬해줘도 좋다.
"저기… 괜찮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려했던 걸, 눈치채인 모양이다.
"………."
하지만 나는 한 손을 들어 소년을 제지했다.
도와주러 온 체면상, 이 정도로 굴할 순 없지. 허세다.
"괘, 괜찮아…. 아, 이거 대체 뭐가 든 거야? 엄청 무겁네……."
"어? 옷 같은 걸 챙기면 이 정도는 되지."
"그리고 또 이것저것 챙길 게 있었거든. 그보다 같이 드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신경써준다는 게 절절히 느껴졌다.
도우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조심스럽게. 손잡이 근처에서 손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데 그 증거다.
"물러나 있어……. 괜찮으니……까……!"
"………."
코피 나겠네.
불안한 시서 속에서, 신중하게 한 단 한 단 계단을 내려갔다.
"너도 토가지마 투어 손님이지……? 지금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저 크루저 뿐이고…."
"으, 응………."
"그렇구나. 친절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내 이름은 타카라야. 잘 부탁해."
"나는 아즈마야. 나야말로 잘 부탁해……."
타카라는 커다란 눈을 감고서 싱긋싱긋 웃었다.
조금전부터 표정이 풍부한 녀석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왠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몇 살이지? 누가봐도 연하로 보이는데….
나이를 물으려 했더니, 타카라의 등 뒤에서 새로운 인영이 성큼성큼 내려오는 게 보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줄어들었다.
그녀석도 커다란 짐을 들고 있는데다, 이 계단은 사람이 지나기엔 조금 좁다.
그렇게 판단하고 최대한 구석으로 비키려 했다.
"아……."
하지만 대놓고 부딪쳐오는 상대에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우, 우와아아앗!!"
"!!"
안색이 달라진 타카라가 나를 향해 순간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자력으로 난간을 잡아 , 어떻게든 추락을 면했다.
"하아…… 다행이다…. 굴러 떨어지는 줄 알았어…."
타카라는 실로 안도한 듯 내밀었던 손으로 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고 나는.
"어이, 잠깐 기다려……."
나몰라라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녀석의 등을 쏘아보았다.
확실히 계단 한 가운데 서있는 녀석이 방해고, 잘못이긴 한데 말이지.
"부딪혀 놓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 않냐?"
계단을 내려가는 구두 소리가 멈췄다.
"………."
그 녀석은 백금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성가신듯 나를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빠안히 내 얼굴을 바라보며 가볍게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
"…………."
사과를 기대했는데.
'흥…."
그 녀석은 결국 아무말도 없이 입술을 비뚜스름하게 틀었다.
뭐야, 사과 안 하냐?
"내 말 들었어? 아니면 안 들렸냐? 한 번 더 말해?"
안 들렸다면 다시 한 번 말해주지.
그렇게 생각한 내 귀에 닿은 것은….
"하아……."
실로 나른해 보이는 한숨과…
"너도 사과한 적 없지 않아? 그럼 피차일반이지."
비난어린 말이었다.
"피, 피차일반?!"
겨우 입을 여나 했더니 사과는 커녕 피차일반? 내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게 어딨냐.
나는 확실히 비켜주려고 했다고.
"흥……."
장발 자식은 나를 올려다보며 짐짓 고개를 기울여 턱을 들었다.
그 얼굴을 봤더니 왠지 울컥 열이 뻐쳤다.
싸움은 전혀 못 하지만, 뭔가 한 소리 해주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릴 거 같았다.
"너 인마… 나는 확실히 비키려고 했……."
내 말을 가로막듯, 장발이 말했다.
"실제로 비키지 못했으면 마찬가지 아닌가? 시답잖은 걸로 사람 불러 세우지 마."
뭐… 뭐라고…?
지금 뭐랬지? 뭐야, 이 자식.
너무나 뜻밖의 태도에 말을 잃고 제자리에 멈춰선 내 얼굴을 빠안히 바라보던 금발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나 참…. 네가 대체 뭔데?"
심지어 '너'라고 막말.
"너야말로 대체 뭔데? 어?"
"짜증나는 꼬맹이로군."
혈관이 끊어질 것 같은 상황이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너, 너, 너… 너 인마……!"
분노에 머리가 들끓어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는 나를 경멸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장발 자식은 휙하니 등을 돌렸다.
"더는 말 걸지 마. 시끄러우니까."
그러면서 척척 계단을 내려가버렸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말을 남기고서.
"저, 저, 저, 저 자시이이익………"
분노로 목소리가 떨렸다. 들고있는 걸 냅다 던지고, 지금 당장 저 금발한테 달려가서 주먹질을……
"자, 잠깐만. 화내면 안 돼."
타카라는 떠나가는 남자를 힐끗 바라본 다음, 험악한 분위기를 내는 내게로 다가와 소리 죽여 말했다.
"뭐야, 말리지 마. 자칫 추락할 뻔 했다고, 난."
"심지어 짜증난다느니 말걸지 말라느니, 시끄럽다느니…. 말도 안 되지 않냐?!"
"그, 그 기분은 이해하는데….
저런 커다란 짐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분명 저 사람도 같은 배에 탈 사람일걸? 싸우면 분명 나중에 껄끄러워질 거야.
남일 처럼 말해서 미안한데, 아무일도 없었으니 다행이잖아. 불평했다가 역으로 성가신 일이 생기면 싫기도 하고."
"………."
뭐, 맞는 말이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신랄한 폭언을 던지는 녀석이라니, 분명 개차반일게 틀림없다.
성가신 일이라도 생겨서 귀찮아지면 곤란하다.
화는 나지만 앞으로 접근만 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주먹질 어쩌고 하는 말은 했지만 사실 싸움은 특기도 아닌데다, 남을 때려본 적도 손꼽아볼 정도다.
"후우……."
"괜찮아. 이제 진정했어."
"그래? 그럼 다행이다……."
"짐을 맡겨놓고 이런 말 하는 거 사실 굉장히 그렇긴 한데…."
"자칫 굴러떨어질 뻔했던 거엔 나도 오싹했지만, 여기선 참고 넘기는 게 제일이야."
어때?하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시선을 조심스러운 제안처럼 선보이며, 타카라는 대답을 기다리는 자세에 들어갔다.
"그러게…. 지금부터 즐거운 여행인데 일부러 분쟁키기도 그렇고."
"응응, 맞아. 그게 좋아."
자신의 대응이 어른스럽지 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나, 타카라가 안심한 모양새니까 된 걸로 치자.
그런데 화제의 장발남은 뭘하고 있나 싶어 돌아보니, 이미 크루저 앞에 도착해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또 울컥했다.
응……. 좀 전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건데
저 녀석 엄청…… 젠체한다!
기분 나쁘다! 열받아!! 이제 절대 접근 안 해! 결정!
"저 녀석도 진짜 같은 여행이냐……."
"그렇지? 역시 풍파를 일으키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러게……."
그 탓에 우리 발치 저 멀리, 계단 제일 아래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이~ 거기 있는 사람들~"
크고 시원시원한 목소리를 던져온 그 남자는, 우리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파도에 흔들리는 크루저를 엄지로 가리켰다.
"당신들도 투어 참가자야?"
"만약 그렇다면 이제 곧 출발이라더라고. 그런 데서 수다떨지 말고 얼른 내려 와~."
그 말에 우리는 다급히 계단을 뛰쳐내려갔다.
발걸음을 둔하게 하던 무거운 짐은 일단 둘이서 들기로 했다.
손잡이가 작은 것, 계단이 좁은 것, 보폭이 하나도 맞지 않는 점 때문에
괜히 더 걸음만 느려졌는지도 모르겠지만.
크루저는 나와 타카라가 올라타자 곧 출발했다.
먼저 탑승해 있던 녀석들은 전부 한손에 짐을 들고 갑판에 머물러 있었던 듯,
제각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타카라는 짐을 날라준 것에 감사한 다음, 객실로 향한 모양이다.
배를 타본 적이 거의 없던 나는 내부의 호화로움과, 수면과 가까운 거리,
의외로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신기해서
어수선하게 갑판을 어슬렁거리며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았다.
파도 소리가 주위를 채움에 따라
선명한 육지는 안개로 흐릿해져갔다.
"잘 있거라, 본토여."
앞으로 6일 동안,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개운하면서도 어딘지 매달리고 싶은 그러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오늘, 토가지마 5박 6일 여행에 참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갑판 중앙에 선 혼고 씨의 목소리에 모두가 주의를 기울인다.
"앞으로 몇시간 동안 배로 여행, 오후 3시간 경 토가지마에 상륙할 예정입니다.
선내에는 가벼운 음식이나 음료를 준비해뒀습니다. 또한 담화실 및 갑판의 휴게 스페이스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으며, 교류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한때를 보내주십시오."
혼고 씨의 인사를 끝으로 떠도는 해산 무드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붙잡아세웠다.
조금 전에 나와 타카라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였다.
"해산 전에 제안할 게 좀 있는데."
"네, 뭡니까?"
"짧은 시간이라고 하지만 소수잖아? 섬에서 함께 지내게 될 사이기도 하고. 처음에 자기 소개라고 해두는 게 앞으로 즐겁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녀석은 의견을 구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괜찮네."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가
목에 건 카메라를 어루만지며 먼저 답했다.
"무슨 볼일이 있을때 거기 당신하고 말을 거는 것도 뭣하고. 다시 또 모여서 자기소개하는 것도 좀 뭣하잖아?"
"뭐 그런 고로. 내 이름은 시마다.
보다시피 일로 사진을 찍으러 왔습니다. 잘 부탁해."
입가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띠우고서, 시마다 씨는 일안렌즈 카메라를 들어보였다. 프로 카메라멘인가?
입고 있는 옷과 세련된 헤어스타일, 심지어 직업까지 그렇다니
왠지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 같아졌다.
어쨌든 나는 복권에 당첨되어 여행을 온 것뿐인 가난한 아르바이터니까.
"아, 나이는 24살입니다.
이런 느낌으로?"
"오오, 좋네. 그런 느낌.
별달리 반대 의견도 없어 보이니까, 이대로 다음 사람으로 넘겨도 상관없겠지?"
어디선가 "좋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된 거면 뭐. 나는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며 나 역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아즈마라고 합니다. 가난뱅이 아르바이터입니다. 취미는 카레 만들기입니다.
무인도 생활을 즐기고 싶습니다~ 잘 부탁해요~."
드문드문 "잘 부탁해"하는 말이 들려왔다.
남자들 뿐이라 낮은 목소리가 파돗소리에 쓸려 사라지는 점은 뭐 애교로 넘어가기로.
내 뒤를 이은 것은 타카라였다.
"아, 음……. 그럼 다음은 저. 타카라라고 합니다. 취미 같은 거 말해야 하나요…?"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나야 그냥 가볍게 말한 것뿐이니까. 고개를 저어 보이자, 타카라는 안심한 듯 미소했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좋아. 내 이름은 마츠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야. 27세."
스포티한 차림의 그 사람은 조금 큰 체구에, 옷 소매 사이로 엿보이는 손이나 다리가 근육으로 뒤덮여 있는 게 잘 보였다.
목소리도 크고, 웃는 얼굴도 눈부시고, 전체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투어에 참가한 이유는 낚시. 이 섬에서는 대어가 잡힌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뭐야…, 낚시 바보인가?"
"바보는 뭐야. 뭐, 맞는 말이지만."
마츠다 씨는 하하핫하고 웃으며 청결해 보이는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낚시라면 저런 차림인데 이해가 갔다.
그보다 27세라…. 미안하지만 조금 더 연상일 줄 알았는데. 왠지 모르게.
"너…… 이름이 아즈마랬지?"
어딘지 모르게 불온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었더니, 눈을 가늘게 뜬 마츠다 씨와 떡하니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네?"
"방금 좀 더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하는 표정 지었지?"
"………!"
뜨끔했다.
어떻게 알았지?
하지만 뭐 그렇게 생각한 건 틀림없고, 숨겨봤자 소용없으니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좀 더 연상인 줄 알았습니다."
"역시나. 그런 말 자주 듣거든. 늙었다고."
마츠다 씨는 껄끄러운 듯 뒷덜미를 긁었다.
어딘지 느긋해 보이는 그 모습을 보니, 의외로 농담이 통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40세 정도인 줄 알았습니다."
"10살보다 더?!"
"죄송합니다. 거짓말은 안 좋다 싶어서…."
"흠…. 그렇군. 거짓말은 안 좋지. 하지만 원활한 인간관계에는 원만한 표현이 몹시 중요하지 않을까…?"
"무슨~ 농담이에요. 끽해야 30세 정도겠구나 싶었다고요."
"하핫, 안심했어…."
역시. 농담이 통한다. 나도 모르게 흥이 올라 순진한 연상을 놀리고 말았군.
여기서 살짝 화제를 바꾸어 점수를 따두기로 할까. 좋아.
"그런데 마츠다 씨. 저도 낚시를 해보고 싶은데요. 보통 낚은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요리해 먹는 게 보통 맞죠?"
"보통…인 건 아닌데…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는 건 확실해."
"진짜요? 막 낚아올린 신선한 물고기. 마츠다 씨가 팍팍 낚아주실 거 맞죠? 기대되네~ 아, 엄청 배고파졌어."
"너…… 연상한테 아부를 잘 하는 타입 맞지?"
날카롭네.
아부를 넣어 얼버무리려 했던 게 들통난 모양이다.
"하하핫. 설마요~."
그렇게 고개를 저어 얼버무리려했더니 마츠다 씨는 웃으며 말했다.
"반말해도 돼. 이름도 그냥 불러. 편하게 가자구."
"그럴게……."
마츠다가 괜찮다면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엄청 대하기 편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하면서.
"토가지마가 그렇게 좋은 낚시 장소인가요?"
"우왓…… 너 대체 언제 온 거야?"
조금 전까지 떨어진 장소에 서있던 타카라가 바로 옆으로 와있었다.
"뭐어,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일껄? 그러니까 오히려 더 노다지 아니겠어?"
"헤에~ 그렇구나. 아즈마 네가 낚으면 나도 같이 먹어보고 싶네."
"그래, 물론이고 말고. 전신 공복 상태로 기다리라고?"
"그러고 보니 아즈마 군과 타카라 군은 몇 살이야? 이 여행엔 왜 참가했어?"
"앗, 저는 20살이요. 복권을 뽑았더니 이 투어 티켓에 당첨됐어요."
"20살이라니……."
안 보여.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보, 복권…?! 뭣?! 너도 복권에 당첨 된 거야?!"
"응? 뭐야, 혹시 아즈마 너도?"
"응. 나도 상점가 뽑기로 이 여행에 당첨됐거든. 우와 엄청난 우연인걸?"
"뭐야~?! 그래?! 아즈마도 그랬다니, 왠지 기쁜걸?!"
"응. 나 말고도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타카라 네가 그랬을 줄이야."
"그리고…… 네 나이가 20인것도 의외로… 아니 상당히 깜짝 놀랐어. 미안. 중학생인 줄 알았어."
"아… 그런 말 자주 들어서 익숙해. 동안인 것은 내 챠밍 포인트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그건 그렇고 중학생은 너무하지 않아? 나 그렇게까지 꼬마는 아니잖아. 적어도 고등학생 정도로 해달라구!"
"하하핫. 다음부턴 그러도록 할게."
"다음 같은 거 없거든?!"
뜨거워지는 타카라를 한손으로 진정시키며, 시마다 씨가 나를 돌아본다.
"하하핫. 과연. 경위는 잘 알겠어. 그래서? 아즈마 군은 몇 살?"
"저는 22살이요."
"과연……. 다들 나이차가 별로 안 나서 다행이네."
"세대격차 같은 걸 여행지에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좀 안심했어."
그렇지?하며 농담하듯 동의를 구하는 시마다 씨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츠다 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마다 씨도 그런 걸 느껴? 유행에 민감해 보이니까 젊은 녀석들과도 말이 통할 것 같아 보였는데."
"너무 젊은 애들이랑은 정말 무리야. 헤에~ 그렇구나~하고 맞장구 치는 게 고작이지."
"어떤 내용이든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유익하긴 하진 말이야."
"실로 훌륭한 발상인걸. 나도 본받기로 할까."
"그렇게 거창할 것까진."
웃으며 고개를 젓는 시마다 씨가 문득 뒤편을 바라본다.
거기엔 갑판 난간에 기대어 서류인지 종이다발인지를 바라보고 있는, 예의 장발이 있었다.
저 녀석 진짜 협조성 없네.
"거기있는 형씨는 자기 소개 안 해?"
파도 소리를 타고 목소리가 들렸던 걸까.
그 자식은 고개를 들어 젠체하는 얼굴로 우리를 일견한 다음…
"아, 죄송합니다. 잠깐 손을 뗄 수가 없어서……. 음… 자기 소개였나요?"
종이다발을 서브 백에 쑤셔넣고서 싱거이 다가왔다.
장발 자식은 구두 소리를 크게 내면서, 웃는 얼굴은 아니지만 묘하게 허물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츠기. 나이는 25세. 일 때문에 왔습니다."
"……."
일단 나보다 연상이라는 게 가볍게 쇼크였다.
좀 전의 일에 그렇게까지 앙심을 품고 있던 건 아니지만, 싫은 녀석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녀석한테는 무엇하나 지고싶지 않았다.
"일이라면 무슨 일?"
"건축설계사요. 뭐어 건축 디자인 등등 여러모로 이것저것 하고 잇긴 하지만요.
"이것저것 하다니…. 건축설계사란 게 그렇게 이것저것 다할 수 있는 거였어?"
"필요한 스킬만 있으면요."
시마다 씨는 굉장하네~하면서 칭찬했다.
마츠다도 과연~하며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기는 붙임성 좋은 미소를 띠우고 있다.
싱긋싱긋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나는 얼어붙었다.
뭐야, 이 녀석. 내 생각이랑 캐릭터 다르잖아?
나쁜 녀석은… 아닌가?
그럼 좀 전의 그건 대체 뭐였지?
거기서 문득 미츠기가 내 시선을 눈치챘다. 찰나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미츠기는 싸늘히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내 존재를 무시하듯 시마다 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뭐야. 내가 싫냐?
말 걸지 말랬던 건 진심이었다 그건가?
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겠지만!
좋아!! 나도 너 같은 거 딱 질색이거든!!
"조금 전부터 왜 그래? 조금 전부터 안절부절."
"잠깐 좀… 화가 났다고 해야하나. 상심 했다고 해야하나…."
"흐응~? 아즈마 넌 복잡하구나~."
재미있어 하는 타카라의 목소리 너머로, 나머지 사람들의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미츠기의 태도에 열받아서,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미안했다.
"맞다. 모처럼이니까 기념촬영 어때? 이것도 뭔가의 인연이잖아."
"기념촬영? 시마다 씨가 찍어 줄 거에요?"
"물론이지."
시마다 씨는 방그레 웃고서, 카메라를 살짝 들었다.
"좋네. 나는 참가. 혼고 씨는?"
"그럼 그 말에 기대어, 저도 참가토록 하겠습니다."
"우와~ 아, 그쪽에 있는 분들도 같이 기념 촬영하시는 건 어떠세요?""
신이난 타카라가 4인조에게 말ㅇ르 걸었지만, 우린 됐다며 거절당했다.
"그럼 미츠기 씨는요?"
으엑. 미츠기 자식한테도 말 거냐.
"뭐어, 난 딱히 상관없어."
"우와~."
심지어 찍냐. 저주받은 사진이 되지 않으면 좋겠군.
시마다 씨는 바로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있었다.
배가 흔들리니까 큰일인 듯 했다.
혼고 씨와 마츠다 씨가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며 괜찮은 위치에 선다.
"이쯤이면 되려나?"
"응. 좋아. 다들 그쪽에 서줄래?"
"동료에 넣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혼도 씨, 그렇게 섭섭한 소리 마세요."
"아, 나는 아즈마 옆에 서도 돼?"
"일일이 묻지마, 서먹서먹하잖아."
"……."
"어이~ 어때? 전부 다 나오나?"
"응. 완벽해."
"좋아. 타이머도 설치 완료. 5초뒤에 찍는다."
그렇게 말하며 시마다 씨도 줄에 낀다.
"3."
"2."
"1."
나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누구나가 포로가 되어버릴만한 멋진 내가 찍혔겠지.
"후훗……."
직전 곁눈질로 나를 본 타카라의 웃음 소리 같은 게 들린 것 같았다.
완벽한 사진을 찍었음을 확인하고, 우쭐해하던 나였지만…… 그 후 배가 흔들렸다.
방심했던 지라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모처럼 멋진 표정이 엉망이 될 정도로, 꼴사납게.
모두가 웃고. 나도 웃었다.
왠지 그때,
최고로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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