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stortedCode/SS]토보시 남매의 일상
이것은 아직 토보시 남매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엔 이미 중학교로 올라간 마미야 키미아키(間宮仁章)와 소홀해진 상황이었으나, 그 이외엔 아무런 변함없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춘기를 맞이한 남매치곤 드물게 싸움 같은 싸움도 하지 않는 친구 같은 사이였다.
각자의 교우 관계로 하교는 달리 했으나, 아침이면 같이 집을 나와 도중에 친구와 만나지 않으면 그대로 둘이서 등교했다.
방과후에도 집으로 돌아와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잘 때까지 거실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
하야토가 부활동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드물게도 미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귀가부였기 때문에 대부분은 먼저 돌아와, 하야토의 귀가를 기다리듯 Tv를 보거나 숙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항상 그렇다곤 할 순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없는 게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쌍둥이 특유의 제6감 같은 거였다.
하지만 일부러 방을 찾아가 확인할 만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자기도 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녁 시간이 되었다.
식탁에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한 4명이 모였다.
학교나 이웃 이야기 등등, 소소하고 화목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어머니가 미오에게 교우 관계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약간 얼굴을 흐렸다.
부모님은 알아차리지 못할 미약한 변화였으나, 그녀와 제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하야토는 그 변화를 똑똑히 캐치했다.
미오가 뭔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것도 직접 말을 꺼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그 내용이 신경 쓰인 하야토는 식후, 부모님이 큰방으로 돌아가는 타이밍을 노려 캐물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지?」
직구였지만, 항상 그랬다.
서로가 서로의 제일 가는 이해자인 남매는 상대의 안색을 살펴가며 에두르게 물을 필요가 없었다.
자기가 싫은 일은 상대도 싫고, 자기가 괜찮은 일은 상대도 괜찮다.
그리고 미오의 상태를 보아 남에게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은 아니나,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내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응, 좀……」
미오는 곤란한 양 고개를 끄덕였다.
눈썹을 축 떨구고 왜인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렇게 어물어물해? 나라도 괜찮으면 들어줄게」
그렇게 말하며 들어줄 자세를 취하자, 그녀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최근 친해진 아이가 속한 그룹에 남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랑 안 맞는 거 같아」
「……혹시 뭐 불쾌한 소리라도 했어? 아니면 무시해?」
「그건 아니고. 날 엄청 신경 써주고, 이것저것 말도 걸어주는데……」
그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고 생각이나 좋아하는 게 하나도 안 맞아서, 이야기 할 때마다 엄청 피곤해」
「거리를 두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니야. 그게 아니라….」
미오는 말을 고르듯 우물거렸다.
하야토에게 어떻게 전해야 좋을지 망설이는 듯 했다.
「평범한 친구로 지내고 있어」
「미안, 좀 더 확실히 말해주면 좋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생각이 읽혔다.
「미안. 음… 얼마 전에 그 아이한테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았는데, 나는 그냥 같은 그룹 지인 정도란 인식이었고, 마음이 맞는 것도 없으니까 앞으로도 좋아할 일은 없을 거라고 거절했어.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면서, 대신 평범한 친구로 있어줄 거야? 하고 묻더라고」
그것은 상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완전히 이해했다.
「이 뒤의 전개를 맞춰볼게. 승낙했더니, 친구로 있어줄거라는 약속을 방패 삼아 네 마음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여기저기 참견하게 됐다. 이거지?」
「너무 따지는 견해라고 생각하지만, 대충 맞아. 나는 다른 아이들이랑 비슷한 관계로 있고 싶은데, 교실에 있으면 줄곧 말을 걸어오고 같이 집에가고 싶어하고… 휴일 날에도 둘이서만 놀고 싶다고 하고…」
「그거 거절했어?」
「응, 겨우겨우. 그런데 『나랑 노는 건 싫어?』 하고 묻잖아――」
「또 바보 같이 단 둘이 있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둥, 솔직하게 말해버린 거야?」
「…………」
미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쓸데없이 더 들러붙게 되었다?」
하야토가 한숨 섞어 말하자, 그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미야 군과 함께 논 적은 있고, 앞으로 오래 알고 지내게 된다면 언젠가 같이 놀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건 호인(好人)의 발상이다.
딱 잘라 거절하지 않으면 흑심이 있는 인간은 제멋대로 해석하고 끈질기게 들러붙는다.
그것이 거리를 두는 행위란 게 눈에 뻔한데, 제멋대로인건지 첫사랑인건지 뭔가 멋대로 들뜬 건지… 어쨌든 여동생은 성가신 상대의 호감을 산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미오는 그 애랑 친해지고 싶지 않지?」
「친하게 지내곤 싶어. 하지만…….」
아직도 상대를 배려하려 드는 미오의 태도에 하야토는 약간 세게 말했다.
「네가 말하는 친해지고 싶다는 건 얼마만큼이야? 같이 놀던 시절의 키미아키랑 비슷한 수준?」
「그건……」
긍정할 수 없는 시점에서 그녀한테도 답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단둘이 있어도 어색해지지 않는 거리감 정도. 얼굴만 아는 사이, 아니면 친구의 친구.
남보다 친하지만 항상 같이 있고 싶은 상대는 아니다.
「미오의 지금 생각을 솔직하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세상에는 미움받지 않는다=괜찮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녀석도 있으니까. 싫으면 싫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계속 자기 멋대로 해석할 걸, 그 녀석」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더 노력해서 전해볼게. 고마워」
하야토와 이야기를 나누어 마음의 정리가 된 걸까, 미오의 얼굴은 개운해져 있었다.
미오는 하야토의 어드바이스대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그걸로 어떻게 해결될 거 같진 않았다.
「저기, 내일은 교실까지 같이 가도 돼?」
「걱정할 필요 없어. 마음이 맞지 않는 것뿐,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같이 가고 싶은 거야. 단순히 내 착각이고 실은 엄청 좋은 녀석일지 모르잖아? 그러면 마구 욕한 걸 사과해야지」
「뭐? 본인에게?」
「아, 마음속으로. 이건 내 개인적인 사고방식이지만, 악의란 입밖으로 말하지 않으면 세이프라고 생각해. 생각만 하는 거라면 나 말고는 실존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말하면 사실이 생겨나니까 아웃」
「그럼 하야토는 그 사람을 마음 속으로 마구 욕했다는 소리야?」
「하하, 그건 말할 수 없군. 아까도 말했듯이 말하면 아웃이니까」
「엉터리 논리」
「하지만 평화적인 사고방식이잖아? 그러니까 미오도 그 녀석을 싫어하는 걸 갖고 자기혐오할 필요 없어」
「하야토……」
그가 하려는 말을 이해하자 미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상대에게 악의가 없고, 오히려 호의적인데 그를 거북하게 여기는 자신이 성격나쁜 인간처럼 느껴져 줄곧 고민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한 죄책감 때문에 우호적으로 대하면, 상대를 그것을 호의로 파악하고 점점 더 선을 넘으려 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의에 의한 것.
그렇기에 무시할 수도 없고, 꺼림칙하게 여기고 싶지도 않다.
그것을 『싫다면 싫다고 해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보통』이라고 긍정해준 하야토는 역시 그녀의 제일 가는 이해자였다.
어머니였다면 이렇게 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상대의 부모나, 선생님께 연락이 간다.
그렇기에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하야토는 그녀에게 대신 용기를 준 거였다.
「고마워. 내일 제대로 이야기해볼게」
「정말 괜찮겠어? 세게 나갈 수 있겠어?」
「내 생각을 확실히 전달하면 괜찮아. 다른 친구들이랑 함께 보낼 시간도 필요하니까, 너무 끼어들지 말라고 확실히 말할게」
「그래? 미오는 상대를 신경 쓰느라 애둘러 말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그 정도로 대놓고 말하는 게 좋겠어. 어차피 본인 앞에서 또 말이 순해지겠지만」
「마지막 말은 사족 아니야? 어쨌든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
「응, 힘내」
하야토는 부드럽게 웃으며 미오를 격려했다.
다음날.
하야토는 말했던 데로 미오의 교실까지 같이 왔다.
거기서 상대의 얼굴을 가볍게 보고 끝낼 줄 알았는데, 거침없이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의 남학생 쪽에게 다가가―――
「하, 하야토?!」
미오가 다급히 저지하려 했다.
는 줄 알았으나, 그는 미오의 자리를 넘어 2줄 뒤에 있는 남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아침. 전에 말했던 약속했던 책, 찾았으니까 갖고 왔어」
「책……? 아, 그거! 전혀 안 갖고 오니까 까먹은 줄 알았어」
「아하핫, 미안. 실은 깜빡했는데, 어제 동생이랑 이야기하다가 너랑 약속했던 게 떠올랐지 뭐야」
그렇게 말하며 싱글싱글 말하는 오빠의 모습을 미오는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 반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 들은 적 없었다.
「미오한텐 말 안 했는데, 하야카와랑은 같은 위원회 소속이야」
「처, 처음 들어」
「소개할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거든」
「너무하네! 하지만 뭐, 위원회 때 이야기 좀 한 거랑, 한 번 같이 돌아간 거 정도니까 그럴만도 한가」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짓는 남자아이는 확실히 조금 어색해 보였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미오를 포함해 잘 부탁해」
「아, 아니. 토보시 양은 너보다 더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야기 하는 게 처음이야……」
「처음엔 다들 그래. 억지로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아니잖아. 마음이 맞을 것 같으면 친하게 지내줘. 하지만 마음에 맞는지 아닌지는 이야기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그러니까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모습이 보이면 말을 걸어줄래?」
「무슨 소외 아동 보호 캠페인 같은 거냐고……. 그보다 같은 반이니까 매번 보지 않나?」
「아하하, 맞는 말이네. 강요하는 건 아니고. 우연히 같이 귀가할 때라든가, 그럴 때 말이야. 그럼 난 교실로 가본다. 이 책 다 읽으면 미오한테 반납해줘」
그렇게 말하며 하야카와의 책상에 책을 두고서 하야카와는 교실을 나갔다.
남은 건 실로 미묘한 분위기의 2사람과…
질투 어린 눈으로 하야카와를 쏘아보는 남학생, 무라세의 모습이 있었다.
그날 방과 후.
미오한테 확실하게 거부의 뜻을 전해받은 무라세는 친구들과 같이 놀 기력도 없이 홀로 멍하니 교실에 남아 있었다.
대각선 2자리 앞에는 미오의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미오의 모습은 없었다.
그녀는 친한, 자기가 함께 있고 싶어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교하여 지금 교실에 남은 것은 무라세뿐이었다.
동아리 활동이 있는 학생들도 제각기 자기 동아리로 이동해서, 그만이 교실에 혼자 남겨졌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랑도 같이 있고 싶으니까 일방적으로 내내 말 걸어 오고 그러면 곤란해』
무라세는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문장의 의미를 필사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무라세가 바라는 호의적인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미오가 말하는 『다른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에 속하지 않은 다른 여자아이였다.
그녀들은 입학식 때 임시로 50음도 순으로 자리에 앉았을 때, 미오와 자리가 가까웠던 학생들.
대부분의 경우 자리 배치가 바뀜에 따라 서서히 소원해지지만, 마음에 맞는 건지, 미오의 무던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지금도 교류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자신들과 함께 지냈다.
정확하게는 같은 그룹에 있는 아야(彩)라는 여자아이가 상대였지만, 일단 제일 친한 친구가 소속되어 있는 그룹을 멀리하려 드는 이유를 모를 정도로 무라세는 바보가 아니었다.
억지로 밀어붙였다는 자각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혼자 고뇌하고 있는 거였다.
미움받았을까?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머리 한 구석에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 계속 남아 있었다.
지금 자신이 발을 빼면 그 자리에 들어서는 건 하야카와 아닐까?
하야카와는 미오의 오빠와 면식이 있다. 심지어 오빠로부터 직접 친하게 지내달라는 말을 들었다.
싫다.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미움받은 거라면…….
「…………」
무라세는 조금 망설이면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화면에는 메시지 앱 채팅 화면. 상대는 미오였다.
『오늘은 미안』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읽음 표시가 뜨지 않는다.
『그 뭐냐…… 널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어』
변명하듯 1줄 더 추가했으나 여기에도 반응이 없었다.
역시 미움받은걸까?
아니, 지금은 하교 시간이다.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해서 눈치채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로 미안. 이제 몇 번이고 말을 걸러 가고 그러지 않을 테니 용서해주지 않으래?』
「…………」
역시 대답은 없었다.
「…………」
잠시 기다린 후, 무라세 제 안에 조건을 세웠다.
만약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대답이 없으면 미오를 포기하기로.
지금은 아직 하교 중이라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그가 집에 도착했을 무렵이라면 그녀는 확실히 귀가했을 터.
귀가한 뒤에는 스마트폰을 보겠지.
그리고 그녀처럼 상냥한 성격이라면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대답을 준다. 읽씹 같은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읽씹까지 할 정도로 미움받은 거라면 더는 상관하지 말자.
그 대신 대답이 오면…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기회가 있다면….
「………!!」
느릿한 동작으로 귀가 준비를 하고 있자니, 가방에 넣어둔 스마트폰에서 익숙한 진동음이 들렸다.
다급히 꺼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미오의 아이콘이었다.
그녀의 대답이 알림창에 도중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좋았어! 그녀의 대답이 왔다!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그에게는 내용보다 대답이 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미오의 성격상 상대가 누구든 알아차린 시점에서 대답을 했겠지만, 무라세한테 그것은호의적으로 해석할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였으면 무시했겠지. 그러니까 괜찮아. 지금은 그저 반 친구에 불과한 사이겠지만, 친해지면 분명 달라진다.
그런 혼자만의 희망으로 기분이 들뜨던 그때였다.
「응? 너 혼자 남았어?」
의식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미오의 오빠인 하야토가 교실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아, 음……」
「아하하, 갑자기 말 걸어서 미안. 나는 이 반에 있는 미오의 오빠, 토보시 하야토라고 해. 너는 미오의 친구 맞지?」
「네, 넵! 그렇습니다! 미오랑은 항상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무라세는 자신을 좋게 보이고 싶어서 순간 거짓말을 했다.
「그렇구나. 그 애는 집에서 학교 일을 전혀 말하지 않으니까 누구랑 친한지 전혀 모르겠단 말이지. 하지만 확실하게 친구가 있는 거 같아서 안심이야」
하야토는 숨을 쉬듯 거짓말을 했다.
미오의 교우 관계는 본인한테서 들었고, 그녀가 어떠한 부류를 좋아하는지도 파악하고 있다.
물론 무라세와는 최악의 상성이라는 사실도.
「미오는 항상 어떻게 지내? 다른 애들이랑도 친하게 지내?」
「아, 넵. 사이가 나쁜 상대도 딱히 없고, 항상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흐응. ……그럼 너뿐이네」
「……?」
목소리 톤은 똑같은데 공기만이 스윽 차가워진 것에, 무라세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자기가 무슨 해선 안 될 말이라도 한 걸까?
아니, 미오의 평소 상황을 전한 것뿐이다.
조금 전의 허세와 달리 이것은 진실이었다. 전부 진실이고, 하야토가 기분을 상할 일도 아니었다.
「미오랑 친하게 못 지내는 아이, 너뿐이야」
「네?」
하야토가 가만히 이쪽을 본다.
목소리도 표정도 변함없을 텐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힐난하는 듯한 느낌이라 불편해졌다.
「미오가 널 어떻게 여기는지 가르쳐줄까?」
「어, 그게…… 뭔가 기분 상할 말을 한 거라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미오 양과 친하게 지내고 싶을 뿐,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 일은 절대로――」
덜컹.
시선 끝에서 책상이 큰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 시야 한가운데에 하야토가 있었다.
하야토가 책장을 밀어젖히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어온 것이다.
「왜, 왜 이러시죠…?」
갑작스러운 행동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조금 전까지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소설의 장면이 바뀐 것처럼 그의 태도도 분위기도 싹 달라져 있었다.
「에를 들어 말인데.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하면 어쩔래?」
「………네?」
「상대를 상처입히지 않고 거절하고 싶으니까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 적 없어』라고 대답하겠지?」
「…………」
하야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바로 이해했다.
그가 자신이 여동생에게 품은 감정을 좋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상상이 갔다.
하지만 딱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다.
그의 눈에 분노가 경멸 같은 감정이 없는 것이었다.
있는 것은 오직 사랑에 빠져 있는 것처럼 뜨겁고 촉촉한 눈동자였다.
「엄청 처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앞으로도 친구로서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친구로 있을 수 있겠어?
자신을 그런 식으로 보는 상대랑?」
「그건…… 그렇지만……」
「”친구로 있는다”는 약속만 지킬 수 있다면 문제없다고? 정말로?」
장난을 치는 것처럼 희열 어린 웃음.
그것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하야토를 밀쳐냈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로 상대를 밀어내봤자 반동으로 자신이 쓰러질 뿐.
무라세는 조금 전의 책상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면서 의자때로 뒤집어졌다.
등뒤로 커다란 고통과 충격이 일고, 순간 눈 앞에 별이 튀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워서 고통은 느낄 수 없었다.
어째서. 거짓말. 있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무섭다.
갖가지 감정에 오싹 소름이 돋아서, 어느새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면서, 하야토는 말을 이었다.
「지금의 나는 미오를 보는 너야. 미오 눈에 너는 이렇게 보여. 동성에 체격도 별 다를 바 없는 나 상대로도 이 정도잖아? 미오가 지금 이상으로 널 무서워하리란 거, 이해가 가겠지?」
타이르기 보다는 책망하는 듯한 말. 하지만 그 눈은 축축하고 뜨거운 것이… 마치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동성 운운 이전에 하야토와 무라세는 전혀 면식이 없었으니까.
같은 학교이긴 하지만, 중학교 생활이 시작된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공통된 지인도 없고, 동아리도 다른 상대를 인지하고 있을 리 없다. 호의라면 더더욱.
그런데…….
자신을 협박하기 위한 연기란 건 알지만, 순간 밀쳐내지 않으면 순간 키스당할 거란 착각에 빠질 정도로 눈앞의 그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전에 없이 두렵게 느껴졌다.
「너, 나랑 친구가 될 수 있겠어? 나와 미오는 같아. 그러니까 나랑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미오랑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방긋 웃는 그의 얼굴에는 조금전까지의 열기가 싹 빠져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소년」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한낮의 일상의 한 컷이라면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을 법한, 극히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무리지? 너는 내가 무슨 짓을 하진 않을까 줄곧 겁에 질려 있어. 미오도 마찬가지의 감정이야. 상대는 자신을 친구로서 보지 않아. 그런 상황에서 평범한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지?」
「……읏」
무라세는 두려움에 뻣뻣해지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가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서워 하지 마.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랑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미오랑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니깐.
네가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다면 나도 너랑 친하게 지낼게」
그렇게 말하며 몸을 웅크린 하야토는 쓰러진 무라세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 눈동자에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광기가 깃들어 있어서…….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친구 같은 거, 도저히 무리였다.
조금 전까진 미오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하야토에 대한 감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그렇게 무라세의 사랑은 끝났다.
한심한 비명과 함께 그는 교실에서 도망쳤고, 하야토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그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교실을 뒤로했다.
「아, 겨우 왔네! 동아리 활동도 안 하면서 대체 왜 이렇게 늦었어?」
하야토가 현관 앞에 도착하자, 조금 피곤한 기색을 한 하야카와가 불평하고 싶은 듯 다가왔다.
「"친구"랑 이야기 좀 나누느라. 그보다, 나한테 무슨 볼일 있어?」
「어. 중요한 볼일이 있어. 오늘 아침 나한테 동생이랑 같이 잘 부탁한다고 했잖아. 그거 말인데……」
「곤란한 거 있어?」
「곤란하다랄까… 그 뭐냐, 나는 토보시 양이랑은 친하게 지내지 못할 거 같아」
「흐응? 어째서,?」
「어째서냐니, 그건……」
「츠타 양을 좋아해서?」
「아, 아는 데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야?! 그녀 앞에서 다른 여자애랑 친하게 지내라니――」
「50음도」
「응?」
「입학 초에는 50음도 순으로 앉았잖아? 그래서 미오는 츠타 양과 사이가 좋아. 최근엔 좀 소원해졌지만, 뭔가 계기가 있었던 건지 다시 친하게 지내더라고. 그러니까 그녀를 좋아하는 하야카와한테 은혜를 좀 팔아두려고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민폐였을까?」
「!」
「지금이라도 좋으니 동생한테 다시 말해둘까? 하야카와는 너랑 친하게 지낼 마음 없는 거 같으니까 가까이하지 말라고」
「아, 아니, 아니. 그건 됐어. 네 마음은 잘 알겠어! 그 마음 감사히 받도록 할 테니까, 너는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어」
「그래? 그럼 여동생을 잘 부탁한다」
「그건 상관 없지만…… 그녀가 내게 호감을 품을 가능성은……?」
「없으니까 안심해」
「어떻게 그렇게 확실히 단정할 수 있는 건데?」
「미오는 나랑 똑같거든」
「……뭐?」
「너는 미오 취향이 아니란 소리야」
다음 날부터 무라세는 미오한테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그와 거리를 두기 위해 그룹에서 벗어난 덕분도 있겠지.
하지만 교우 관계에 변화가 있더라도 그녀의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미오의 제일 가는 이해자는 가족인 하야토다.
가족이란 관계는 줄곧 변치 않는다.
사이 좋은 오빠와 여동생. 평화로운 매일.
그것이 토보시 남매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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