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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versary Yodoshima

(1주년 기념 ss 한자x키리쿠)

 

1주년 기념 ss 특설 페이지

 

1주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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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도바시의 불빛은 언제나 미묘하게 흐렸다.
대로의 유동 인구도 적고, 뒷길은 언제나처럼 한적한 조용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에 발을 들어 넣자 마자,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처럼 몸이 멋대로 기대에 부풀어 오른다.
그 정도로 이 길은 언제나 특별하고 당연하며,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거다.
한자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왔다.
오늘이 그날이란 사실을.

 


아니, 솔직히 보고나 사전에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부분은 의외로 단순한 성미로, 기쁨이나 즐거움을 바로 입 밖으로 꺼내거나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편이었다—


요컨대 결코 비밀주의자는 아니란 뜻이다.
오히려 팍팍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조금 고생했다.
바로 옆에 가장 먼저 ‘털어놓고 그 감정을 나누고 싶은’ 상대가 있으니까.
오늘까지 매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입이 근질근질해서 매일 필사적으로 앙다문 입술이 찢어질 뻔했다.
그래서——

 

「늦었네」
「……」
「뭘 히죽대? 설마 내가 ‘오늘’을 잊기라도 할 거 같았어?」

 

펜스 앞에 한자가 서서 웃고 있는 것을 보며, 정말이지, 지금도 총알처럼 튀어나오려 드는 말들을 애써 참은 보람을 절절히 느꼈다.


「그거야 너인걸, 잊을 리 없다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아무 말 없을 수 있었지. 길고도 괴로운 매일이었어」
「아…… 최근 2주일 내내 종종 엄청 이상한 표정을 짓고 그럴 때가 있었지. 그거 혹시 오늘 일을 말하려던 걸 참던 표정이었어?」

 

「물론이고말고. 말해버리면 의미가 없잖으니까 필사적이었다. 이렇게 매년 치러진 역사 있는 의식의 경우 굳이 누가 선언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행해져야 하는 거 아니겠어?」
「역사라니…… 십수 년 정도뿐이잖아. 뭐——」
한자가 뭔가 말하려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듯 눈을 끔뻑이더니, 이어 뭔가가 우스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고작 십수 년이래도 확실히 어마어마한 날이긴 하지. 오늘은 ‘우리가 처음 만난 기념일’이니까」

 


어린 시절.
한자와 처음 만날 날을 기념일로 삼고, 특별한 놀이를 하자는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처음 생긴 친구.
너무나도 소중한 벗.
성격도 마음도 이야기도 잘 맞았다.
기나긴 인생,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내일 한자가 갑자기 해외로 이사 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기념일을 만들어 두면?
설령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더라도 반드시 또 여기서 만날 수 있겠지.

 


어린 내게는 그러한 심산이 있었다.
그 정도로 한자가 좋았다.
한자와 함께인 게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얄팍한 발상이긴 했으나——

운명은 언제나 우릴 지켜봐 주었기에.

 

 

나와 한자는 지금도 줄곧 함께 있다.
분명 그것은 평생 변함없겠지.

 

 

「그럼 오늘은 특별히 뭘 하고 놀래?」
「글쎄…. 흠… 여태까지 해본 적 없는 걸로— 그렇지!」

 

한자가 흥미롭다는 듯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서로 만져보는 건 어때? 우리는 줄곧 펜스 너머로 바라봐야만 했잖아? 장년에 걸쳐 축적된 감정을 지금 여기서 해소해주는 건 어떠냐?」

 

「그거 완전히 건전한 걸론 안 끝날 거 같은데」

「문제없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말이야」

 

한자가 웃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내게 다가왔다.

 

 


나도 손을 뻗었다.
커다란 몸과 조금 뜨거운 체온은 순식간에 내 일부가 되었다.

 


내년 기념일에는 같이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한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웃음담긴 한자의 숨결과 작은 끄덕거림이, 목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Posted by 111243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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