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눈을 뜨고, 폰을 본다.
휴일이라면 일찍 깨어난 거고, 일이 있다면 지각했을 시간.
오늘은 전자. 휴일이다.
귀를 기울이자 아래층에서, 약간 들뜬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어쩔까나…….」
이불 안에서 발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한다.
일어날까, 좀만 더 잘까.
「일어나자…….」
자고 있어봤자 할 것도 없고.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운동복 차림 그대로, 1층으로 내려가서……, 힘껏 문을 열어 젖힌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 몇몇이 나를 맞이했다.
「조, 조, 좋은 아침, 오빠.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났네.」
「응. 눈 뜨고 바로 일어났어.」
「마유, 아직 준비 못했어.」
「어이어이, 그건 비밀이잖아.」
「앗.」
쓴웃음 섞인 테츠야의 지적에, 마유가 입을 손으로 가린다.
그걸 보자 굉장히 흐뭇해져서,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텟페이군. 지금건 아무것도 아냐.」
「응응. 난 암 말도 못 들었어.」
옹색한 단독 주택. 생활감 넘치는 그 거실이 년에 몇 번 화려한 파티회장이 된다.
오늘은 그 몇 번 중의 하루다.
5월 6일.
내 생일.
연례대로였더라면 상냥한 오빠는 파티 준비가 다 끝날때까지 2층에서 자는 척을 하거나, 일하는 중 혹은 외출했던가 하나를 골랐겠지만.
오늘의 오빠는 매너 위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준비가 다 끝나기 전에 파티장에 불쑥 얼굴을 내밀어 보았다.
별거 아닌 장난기로. 왠지 들떠서..
자아. 아무리 그런 장남이라도, 여기서 준비를 돕겠다고 말할 정도로 촌스럽진 않다.
못본척 못들은척 암말 없이 거실 비품으로 화(化)하는건 가능하겠지만.
그래선 거추장스러울테니까 저녁까지는 외출했다가, 부모님이 돌아올 때에 맞춰서 집으로 돌아왔다.
초밥, 고등어, 케이크, 병 콜라.
가족의 웃음 소리와, 직접 만든 선물 한가득.
「오빠! 생일 축하해!」
행복과 평온을 곱씹으며, 시계를 보자.
이제 곧 오늘 하루도 끝나버릴 시간이 되어 있었다.
거기서 나는 퍼득, 뭔가를 떠올렸다.
「오빠. 왠지 얼굴이 파란데?」
「크, 큰일이 난 것 같아!」
「뭐, 뭐가?」
「자, 잠깐. 일터에 갔다 올게! 바로 돌아올테니까!!」
싹하고 안색이 바뀐 나를, 가족들은 말없이 배웅해 줬다.
「뭔가 또 저지른 건가.」 그런 의미가 담긴 침묵이였지만, 그건 뭐 됐다.
직장까지 택시로 전력 질주, 좀처럼 목적지에 도달할 기미가 없는 엘리베이터에 안달복달하면서 20층 이상을 뛰어 올라간 계단 앞.
오피스의 불빛이 켜져 있었다.
「우와…….」
있다.
아직 돌아가지 않았다.
일이 쌓여 있다고 말했었지.
하지만, 뭔가 도울게 없냐고 물어봐도 방해라며 쫓겨 난다.
나를 포함해, 다른 사원들도.
정말이지 잘났기는.
「뭐, 실제로도 혼자 다 해버리니까 말야, 그 사람.」
덧붙여 이 말, 동료 전원의 의견이다.
그 사람 하나가 있으면, 우리들은 전부 필요 없다고.
그런 식으로 다망하니까, 나도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말해봤자 뭐 이렇다할 것도 없어 보였지만……, 일단 그, 그거다.
이러 그러한 관계고, 그.
「하아…….」
무거운 감정을 담아 한숨을 쉰다.
몸을 움츠리며, 천천히 문을 넘었다.
넓은 사무소에 한 사람…, 마키씨가 항상 있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어.」
「좋은 아침입니다.」
「기합이 잔뜩이로군. 12시간 먼저 출근인가?」
「그, 생각난게 있어서 말입니다.」
「자료라면 수정 완료 했고, 발주는 캔슬해 뒀어.」
「……….」
「새삼 반했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수고를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돌아가. 방해야.」
마키씨가 귀찮은 듯 마우스를 클릭하며 내뱉는다.
퉁명하기 짝이 없는 느낌의 이 말투는 회사에 있을 때의 말투.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마지막으로 슬쩍 뒤돌아 본다.
「……….」
마키씨는 마지막까지 내게 시선 하나 보낼 맘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딱딱하게 고개를 숙인다.
「뭔가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클릭.
「없어.」
클릭.
클릭.
「마키씨!!」
「하?」
마침내 나는 내달려, 마키씨의 의자 등받이를 잡아 내 쪽으로 돌린다.
내 이런 행동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마키씨는, 평상시와 다름 없이 태연한 얼굴이였다.
「왜 전부 혼자 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빨라서지.」
「욱…….」
「반론할게 없으면 냉큼 돌아가. 아직 도중이다.」
탈력해서, 얌전히 그러려고 했던 그 순간.
컴퓨터 화면이 보였다.
스파이더 카드놀이였다…….
「뭡니까, 그거…….」
「보면 알잖아.」
「왜 혼자 남아서 그걸 하고 계신겁니까…….」
「그런 날도 있지.」
「일…, 바쁘시잖습니까.」
「별로.」
「이, 일이 잔뜩 있다고….」
「그냥 하는 말이야.」
「어째서…….」
「별 이윤 없어. 그 쪽이 편해서.」
「무슨 뜻입니까, 마키씨…….」
「일일이 일이 끝났느니 안 끝나느니, 얘기하는게 성가셔서.」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는 말없이, 마키씨의 의자를 원위치 시킨다.
떨떠름하게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려 하던 그 때.
「그리고. 생일이였지. 너.」
마키씨가 오늘 처음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놀이 클리어 축하 음이 들린다. 트럼프 들이 화면 가득 춤춘다.
기억해 줬던 걸까. 멍청히 입을 열려 하자, 마키씨가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나한테 던졌다.
「우왓……. 뭡니까, 이거.」
「보고도 모르나?」
「루빅 큐브로군요…….」
「조금만 더 똑똑한 남자가 되라구.」
「루빅 큐브 갖고……?」
「루빅 큐브로.」
마키씨가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일어선다.
고개를 갸웃하는 내 앞을 스쳐 지나 냉큼 돌아가려고 하니까, 나도 즉시 오피스의 불을 끈 다음 다급히 마키씨의 뒤를 쫓았다.
후일, 겨우 겨우 다 맞춘 루빅 큐브를 보고, 나는 무심코 헤실했다.
하얀색 부분에 사인펜으로 쓴 지저분한 필체로,「축」하는 단어가 적혀져 있었다.
「재작년?」
쿠루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재작년. 작년엔 제대로 파칭코에 갔어.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갔다가……, 터졌지. 그래서 과자랑 교환해 갖고 돌아갔고. 긴 양말에 들어가 있는 빨간 그거 있잖아. 크리스마스거. 알지? 과자가 잔뜩 들어 있는거. 그걸로 교환했어.」
「계절이 다르잖아, 그거. 모두들 기뻐했어?」
「일단 테츠야랑 마유는.」
「그렇겠지.」
쿠루스가 한껏 웃는다.
5월이라고 해도, 훗카이도는 역시 춥다.
간만에 전원을 켠 탁상난로.
싸구려 테이블 위에 술과 술안주. 편의점 케이크.
지금의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그런 것들과, 목조 아파트 벽과, 쿠루스.
「좀 더 화려하게 축하해 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뭐랄까, 한껏 호화롭게.」
「그건 좀 사치지.」
「집에서는 호화로웠던 주제에.」
쿠루스가 힐끔 나를 보았다. 죄악감이 있습니다~하는 얼굴이다.
별 수 없어서, 웃음을 거둔다.
「미안. 가족 얘기는 관둘게. 그런 의미가 아니였어.」
「역시 연락을 취하고 싶다던가….」
꺼질 듯 작은 중얼거림.
입술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모르겠다.
「말해 두지만, 널 탓하고 그러진 않아.」
「알야.」
「그럼 됐잖아.」
「그런 식으로 딱 잘라 낼 수 있는게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며, 쿠루스가 시선을 피해 TV를 본다.
「뭘 삐지고 그래.」
「암 것도 안 삐졌거든요.」
「삐졌어. 삐진거 다 보여.」
「안타깝게도, 긴 팔이라서요. 삐져 나올게 없네요.」
「긴 팔이랑은 상관없지. 기장 문제니까.」
「시꺼.」
「입술도 삐죽하고.」
「안 삐죽 하고요.」
「어디, 마시러 가고 싶었어?」
「당연하잖아.」
몸을 동그랗게 말고, 색 빠진 다다미 위에 꼬옥 앉아 있는 갈색뭉치.
방을 정할 때에도, 끝까지 플로어링이 좋다고 고집을 부렸던 이 녀석이.
엄청 추운데도 도시인양 얇은 옷을 고집하는 이 녀석이.
사실은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지금도 실은, 보고싶지도 않은 프로그램을 그냥 보고 있는 것 뿐이란 것도.
맥주보다 와인.
마른 안주보다도 치즈.
편의점 케이크 같은 것보다, 정식으로 초밥을 대접하고 싶었던 쿠루스는.
지금도. 훗카이도에서도. 나한테도.
멋져 보이고 싶은 거다.
「쿠루스 짱.」
「그런 목소리로 불러봤자 헛수고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깨가 움찔하는 거,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치만, 나 말야…….」
자근자근 쿠루스를 향해 손을 뻗어 움직인다.
「괜찮아. 이거라도.」
미끼에 낚인 물고기처럼, 쿠루스의 초점이 다가온다.
겁쟁이인 이 녀석이, 다시 도망치지 않도록. 신중하고, 성실하게 말을 잇는다.
「이것저것 많았지만 말야.」
「……….」
「그건 이미 끝난 일이고 말이지.」
「목하 진행중입니다만…….」
「지금 현재 어떻게 되고 있으니까 괜찮아.」
「태평해.」
「시비 걸 거야?」
「그런 계절이라구!」
「겨울이?」
「훗카이도가!」
「그건 생트집이지……….」
「다, 다다미가!!」
곧 있으면 냉장고 때문이란 말도 꺼내겠다, 이거.
달래듯, 목소리를 낮춘다.
「좁은 방이래도 말야, 행복하고 말이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너랑 같이 있는게 말야, 난 좋아. 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젠장할, 콘노!」
「옷……….」
쿠루스가 탁상 난로를 뛰어 넘는다.
간신히 안아 붙들었지만, 둘이 나란히 바닥에 넘어졌다.
도중에 후두부를 직격할뻔한, 뚜껑 없는 세탁 세제를 주워 신중하게 세로로 세운 다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절대 안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응응. 그래.」
「아아아, 콘노! 왜 넌 그런건데?!」
「그런거냐니, 뭐…….」
내 가슴께에 얼굴을 파묻은 코 멘 소리가, 꾹 등을 끌어 안는다.
움켜쥐고 있던 세제를 다다미 저 멀리 내려놓고, 그 손으로 쿠루스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다음엔 내가 축하해 줄게. 와인도, 치즈도. 회전 초밥도 없지만.」
가슴팍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생일……, 정말 축하해…….」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스런,
이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그 때, 자동차 경적 소리가 밤을 찢어 갈랐다.
집안에 있는데도 들려와서, 가족들이 웅성거린다.
「뭐, 뭐야?!」
「아, 나. 저입니다. 저랑 관련된 사람입니다.」
적당히 요리를 입안에 쑤셔 넣고서, 일어선다.
「미안. 잠깐 나갔다 올게. 최대한 빨리 돌아올테니까. 미안.」
조금 슬퍼 보이는 동생들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아프다.
간만에 돌아온 집이니까, 가능하다면 좀 더 느긋이 보내고 싶었다.
「별 수 없지. 일이잖아……?」
「응. 갔다 올게.」
「하지만, 한 번 돌아와 줄거지? 마유, 기다릴게.」
「응. 돌아와서, 나머지 먹을게.」
「다녀와…….」
마유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웃옷을 걸친 다음 현관을 나선다.
집 앞 길가에 서있는 것은 눈에 익은 리무진.
검게 스모킹된 창을 두드리기도 전에, 문이 작게 열린다.
「기다려서 미안….」
「늦잖아, 구데기.」
사이키는 당연 몹시 울컥한 모양이였다. 팔짱을 낀채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다.
일단, 매도를 무시하고 옆자리에 앉는다.
사이키는 그 이상 아무말도 없이, 턱으로 차량을 발진시켰다.
「몇 분 지각이야? 대답해 보시지, 쓰레기.」
「얼추 5분 정도.」
「7분 반이야, 아앙?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 근성도 좋군.」
나는 짐짓 차창을 보고서, 진저리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얼굴을 바로 보여주면 이 욕설이 30분은 계속될거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아, 무능하기는. 어이, 가는 도중에 심심하니까 가족이랑 어떻게 지냈는지 감상이라도 늘어나 봐.」
「심심풀이는 안 될거라 생각하는데.」
「정하는 건 나야.」
「뭐어……, 평소랑 똑같아. 별 다를 일도 없고.」
「즐거웠나?」
사이키의 얼굴을 빤히 본다. 진지한 얼굴이였다.
사이키는 자주, 나와 가족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이 질문을 듣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이유도 알고 있다.
이 녀석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솔직히 대답해 주자.
내 생각 전부를, 숨김 없이.
「엄청 즐거웠어.」
「그거 축하할 일이로군. 차라리 사이키 그룹에서 손을 때는게 어때?」
「얼굴, 가까운데.」
위압적으로 얼굴을 갖다대는 사이키한테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턱을 잡혀서 원위치 당했다.
이런 광경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다.
사이키는 몇 번이나 같은데에서 화를 내고, 같은 데에서 나를 밀쳐 낸다.
키워드는 『가족』으로, 사이키의 하나 뿐인 도화선이였다.
사이키가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유일한 것.
그리고, 밀쳐날때마다 나는 돌아온다.
사이키의 곁으로.
그걸 이 녀석이 바라니까.
「사이키 그룹에서 손 땔 맘은 없어. 몇 번이나 말하게 할 셈이야.」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럴 맘, 전혀 없어.」
「오늘 밤부터 어디서 뭐가 있는지…, 알아?」
「알아.」
「호오. 그럼 말해봐, 어이.」
「호텔에서 식사.」
「뭣 때문에……?」
「차기 총재님께서 직접 측근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잖아? 누차 말했지만, 너보다 가족을 우선한게 아니니까 안심해.」
「하아?」
「너한테서 손을 땔 맘, 일절 없어.」
눈을 보고 즉답해 주자, 사이키의 뺨에 순간 열이 오르는게 보였다.
정곡을 찔려서 당황해하는 얼굴이였다.
우와, 엄청 진귀한 것을 봐버렸다……. 남몰래 감개에 빠진다.
따스하고 화목한 가정에 굶주려, 그 편린이라도 맛보기 위해 나를 집을 돌려 보내놓고서.
그것은 역시 자신의 손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며 몇 번이나 깨닫고, 몇 번이나 상처 입는다. 그런 얼굴이다…….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몇 번이고 부정해 주자.
「그럼 후딱 돌아와야 하는게 보통이잖아! 이딴 소리까지 해야겠어?!」
「뭘 화내는 건데. 어쩌다 한 번 있는 귀성인데, 잠깐 정돈 괜찮잖아.」
「지각하는 측근, 필요 없어.」
「내가 없으면 또 이상한 게임같은거나 벌일 테니까, 똑똑히 감시해 줄 생각인데.」
「시끄러. 죽여버린다?」
머리를 세게 얻어 맞았지만, 하나도 안 아프다.
으르렁거리며 화내는 차기 총재님을 달래면서, 나는 몇 번이고 이 녀석의 행복이나, 이 녀석의 밝은 미래를 바랬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생일날 빈 소원 정도쯤은 들어 주지 않을까ㅡ 하는 생각을 하면서.
「위험….」
「뭐가?」
「이거 위험해.」
시즈카의 질문에 대답하지도 않고, 나는 불 붙은 듯 요리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시즈카가 그런 나를 멍청히 바라보고 있다.
「우걱우걱. 우우우웁, 웁웁!」
「잠깐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잘 먹었어! 그럼, 갔다올게!」
「에엣?! 지금부터?!」
「위험해. 친구를 세워뒀어!!」
친구를 위험하게 기다리게 만들었단 의미지만, 뉘앙스의 문제였던 걸까, 안색이 싹 바뀐 시즈카나,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생, 부모님을 놔두고 총알처럼 집을 뛰쳐 나갔다.
「망할! 전활 안 받아!!」
무쓸모한 폰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전차에 뛰어 들어, 폰 중독자처럼 몇 차례나 폰을 확인하는 동안 역에 도착해서, 쏜살같이 목적지로 향한다.
어제, 오오히라랑 싸워서.
네 생일 같은거 몰라! 하는 말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네 축하같은거 필요 없댔는데.
헤어질 때, 그 녀석이―…….
9시 반에, 역 앞에 있을게!!하고 외쳤다.
역앞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짚이는 장소로 가봤다.
역 주위나 역 안도 돌아다녀 봤지만, 안 보인다.
대로로 나가자, 차나 인파에, 지각한 것까지 더해져서.
오오히라를 찾는 것은 난항 그 자체였다.
「어디 있는 거야, 이 자식은……!」
땀으로 축축한 속옷을 통풍시키며, 폰을 본다.
연락 없음…….
빈 깡통을, 오오히라 마냥 걷어찬다.
통통 튀면서 사라져가는 캔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웅크려 앉았다.
거야, 나도 어른이고 말이지.
어딜 어떻게 생각해도 지각한 내가 나쁜 거고.
계속 싸우고 그러고 싶은것도 아니고.
『그거』도 있는데, 골이 더 깊어지는 짓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시간도 일단 외우고 있었고.
자기 전까지는……….
「우오오오오오오오. 나란 녀석, 바보!!」
피곤했다고 말하면 믿어주려나.
하지만, 만약 진심으로 축하받고 싶어하지 않는거라고 생각 되면?
그럼 난 언제 그 녀석한테 아직 말 못한 말을 해야 되는 거지?
수그리고 있던 시야에, 뚜벅하고 신발 끝이 들어왔다.
눈에 익은 신이였다…….
「미안. 기다렸어? 연락, 몇 번이나 들어왔던데.」
「너……, 어딜 갔었어.」
「어디라니. 저기.」
빙글 턴한 손가락이, 세련된 양과자점을 가리킨다.
「이거 사고 있었어. 줄 서서. 이런 시간인데. 모두 돌아가서 먹으려나? 사이즈도 괜찮으니까. 나 때처럼 나중에 샴페인 사서 마시자. 아, 맥주는 샀어. 자, 받아. 생일 축하해.」
어이없어 하고 있는 내 눈 앞으로 상자가 쑥 나왔다.
깔끔하게 랩핑된 새하얀 작은 상자와, 축하받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기뻐 보이는 얼빠진 얼굴.
공기를 쥐든 멍청히 펼친 내 두 손 위로, 상자가 살짝 내려선다.
「너, 언제부터 있었어.」
「9시 반.」
「전혀 안 늦었네!! 나지! 늦은건!!!」
뭘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오오히라의 눈썹이 아래로 쳐진다.
「별 수 없잖아. 어제 그렇게 헤어졌으니까.」
「그, 그치만 말야. 이건 일단 화내야 하는거, 아냐…?」
「이상하긴. 혼나고 싶어? 네 생일인데.」
그렇게 말하며 태평하게 웃으니까.
왠지 이제 나는,
왠지……, 진짜.
「밖으로, 나가자.」
「아아, 사람도 많으니까.」
일어선 내 뒤를, 오오히라는 무방비하게 따라 온다.
네가 그러니까.
뭐랄까, 나는 말야.
지금까지 당했던 일이라던가.
네가 한 짓이라던가.
네가 쌓아둔 말이라던가.
그런거,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구.
「코…」
인기척이 없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오오히라의 가슴을 세게 밀쳐 으슥한 곳으로 밀어 넣고서, 키스했다.
그 때 비쳐든 것은 달빛과.
마(魔)로.
감동에 겨워 우는 얼굴이 눈 앞에 있는걸,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우선 한 방 때려 줬지만.
「……….」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굉장히 행복한 꿈을 꾼 듯한 기분이지만, 기억 나진 않았다.
낯선 천장.
낯선 공기.
낯선 방.
자세히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길 바랬다.
잠에서 좀 깨어나 보니,
여기는 틀림없이 얼마전 막 이사해 온 방이였다.
당분간은 일하지 않더래도 먹고 살 수 있는 돈은 있지만,
어쨌든 몸을 움직이는게 더 마음 편했다.
오늘은 일용직 아르바이트.
준비를 한 다음, 식사는 거르고 집을 나선다.
역에 있던 달력을 보고서, 오늘이 내 생일이란걸 떠올렸다.
그 날 이후 계속, 내게 중요한 것은 모두의 기일이였으니까.
생일같은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시계를 본다.
아직 시간은 좀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역 지하의 가게로 들어섰다.
봄.
가게 내부는 죄다, 싹이 튼 것 마냥 선명했다.
그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
주위를 장식한 원색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윈 얼굴.
우울한 남자가, 우울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여위었다고 생각한다.
입는 것도, 옛날 이상으로 새카만게 많아졌다.
음식 취향이 변했다.
콜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담배는 늘었다.
맥주가 아니라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왠지, 내 기호는 변해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아무도 지적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계속 몰랐던 것 뿐이지만.
케이크를 샀다.
작은 거.
마유가 좋아했었지.
딸기는, 아사미가 좋아했었지.
시즈카는, 테츠야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뭘 좋아했었더라.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은 케익 상자를 들고 가까운 공원으로 가려 했다.
거기서 상자를 비운뒤, 일을 하러 갈 생각이였다.
「…….」
그 순간, 금색 머리칼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만으로도 내 머리는, 발작처럼 새하애진다.
잘못 봤다는 것을 알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
잘못 본 것이길 빌었다.
그것을, 몇 번이나 거듭했지만.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거듭했지만.
지금, 저기를 지나간게.
자세히 살펴보자.
금발로 보인 것은, 금발이 아니고.
심지어 장발도 아니였고.
큰 키에.
푸른 눈에.
이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오는 기억에, 감정이 쓸려 내려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소나마 옅어진 후회나, 증오가,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것이 목 위로 솟아 올라온다.
「이―…………」
부르다 만 이름이 눈물에 가로 막혔다.
뭘까, 이거.
무슨 눈물인지 모르겠다.
마치 피처럼 끈적끈적했다.
나는, 어쩌고 싶지?
이름을 불러서?
붙잡아서?
하지만, 그건 누구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손을 거두고, 말없이 떠나.
그게 가족을 위해서이며,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기도 하니까.
「…….」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그래, 확인하고 싶은게 있다.
「너는, 행복해 졌어?」
어떤 대답이 돌아 온데도, 나는 분명 만족하겠지.
어떤 대답이 돌아 온데도, 나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남자는, 복잡한 인파 너머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나는―……
1. 떠나간다.
2.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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