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K 신설 서유기]
오토메이트
공식홈
수면이론(睡眠理論) : PS2 SYK 신설 서유기 발매기념 SS 원문링크
성가시다.
뭐가 성가시냐니, 그걸 설명하는 것도 성가시다.
일단은 이야기해두자면 지금의 상황이라고 할까.
머리가, 아프다.
이것은 지병인 두통때문이 아니라, 명백하게 다른 종류의 것이 원인이다.
「오, 뭐야. 아직 안자잖아,」
풀을 밟는 소리에 돌아보자 화려한 차림을 한 남자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된 이후에도, 아직 이 상황에 익숙치 못한 자신에게 있어서, 이 남자의 첫인상은 ‘옷’이다.
다른 녀석들이 뭐라할 정도로 기괴한 차림이라곤 생각하진 않지만, 확실히 드문 옷차림엔 틀림이 없다. 옅은 복숭아색의 웃옷에 크고 훌륭한 꼬리― 본인이 말하길, 가방이라고 한다―에 수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발. 출신지가 다른걸까, 멀리서 봐도 단박에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차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지금부터 잘 생각이었어.」
「흐응, 초조함에 잠 못 들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는데.」
「…………」
묻지도 않고 멋대로 옆자리에 앉은 남자, 팔계를 향해, 오공은 작게 혀를 찼다.
그 말이 정곡이기 때문인지, 그의 오지랖이 기분나빴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래서, 어떻게 사과할지 생각했어?」
「하아? 어째서 내가 사과해야하는건데.」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그래서야 공주님이 가엽지.」
기가 찬 듯한 시선에서 눈을 돌린다.
오늘, 점심시간, 일상다반사처럼 오공과 현장이 말다툼을 했다. 솔직히 그 내용은 오공에겐 너무나도 시시한 일이라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확실히 언제나처럼 불섭생(不攝生)이라던가, 생활태도를 운운하며 시끄럽게 쏘아붙이더니, 이윽고 천축(天竺)에 도달하기 위한 마음가짐 어쩌고하는 이야기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여행을 시작하고나서 흔히 있던 광경이긴했지만 너무나도 성가셨기 때문에 오공은 조금 심한 말을 던졌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른 침묵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때부터 현장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주님 자신의 생각이 무르단 사실쯤은 알아. 하지만 보고도 못본척 할 수 없는거지.」
「녀석은……, 몰라.」
「어째서 그리 생각해?」
「사람을 도우기 위한 여행이 아냐. 눈앞의 잡일에 시선을 빼앗기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흡사 앞으로 어찌될지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군.」
「나 역시, 몰라. 그치만 그런 예감이 들어. 천계가 녀석에게 맡기려하는 일은 단순히 남을 도우는 일이 아니라는거.」
「그건 오공이니까 알 수 있는 거잖아?」
「뭐, 그렇군.」
「그럼, 그걸 공주님께 강요하지마. 너 공주님께,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전부 설명할 수 있어?」
「…………」
그건 무리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억은 아직도 애매하고, 본능적으로 이 여행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지만, 결정적이라 할만한 정보도 없다. 그저 현장이 물러터진 생각으로 여행해 나간다면 분명히 후회할거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
애매한 기억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현장에게 가르쳐줘봤자, 어중간한 지식이 될 뿐이라는것쯤 눈에 훤이 들여다보인다.
― 그래,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어슴푸레하나마, 어떠한 사실을 현장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뭐 공주님도, 오공에게만 완고한 데가 있지만.」
팔계의 말이 멀리 들려온다.
시야가 흐려져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머릿 속이 녹는듯한 감각이 엄습해온다.
「졸려…….」
「어, 어이. 모처럼 남이 상담해주고 있는데.」
「부탁한 기억 없어. 녀석이니까 내일쯤엔 아무일도 없다는듯 행동하겠지. 」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팔계가 아직도 뭐라 말하고 싶은듯이 입을 열더니, 뚝 멈췄다. 난폭하게 땅을 박차는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오공은 또 성가신게 왔다 생각했다.
「여어, 팔계! 오공은 아직 깨어나있어?」
「어, 오정.」
장발이 나부끼며, 달빛을 반사한다.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해낸듯한 반듯한 차림을 한 청년이 거기에 있었다.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온 청년, 오정은 눈썹을 치켜뜨며 오공을 내려다본다.
「오공, 내가 이러저러 할말은 아니지만,」
「예예, 알았어. 현장에게 사과하란 말이지?」
「두사람의 다툼인데 내가 어느 한쪽에게 사과하란 말을 할 수 있을리 없잖아.」
「오, 오정. 어른스러운데? 오늘 무슨 날이야?」
끼어드는 팔계를 쏘아보자, 팔계는 어깨를 으쓱였다.
작게 한숨을 덜은 오정이 다시 오공을 돌아본다.
「네가 현장님을 생각해서 그런 쓴소리를 하는것쯤은 이해하고 있어. 허나 다소 단어를 골라서 사용하란말을 해주고 싶을 뿐이야.」
「귀에 딱지가 않을 말이군. 별로 현장을 위해서 한말도 아니야.」
「변함없이 솔직치 못하긴.」
「시꺼. 하아, 너희들도 한가한 녀석들이구만. 녀석은 이러니저러니해도 신경이 두터워.」
현장은 굉장히 진지하다. 물론, 오정과는 다른 의미로.
오정은 뭐든 지나치게 순순히 받아들이기 문제가 있는 ‘진지함’이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진지함’이었다. 그렇기에 설교뿐인 자신조차 미숙하다 평가하며 다잡는 것이다.
즉 왠만한 일이 없다면 다음날은 평상시대로. 진지하기 때문에, 앙금이 남는 일조차 없는 것이다.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현장이기에 무슨 말을 들어도 간단히 주저앉지 않는다. 그것은 오공 자신도 질릴 정도로 알고 있다.
(성가신 녀석…….)
울면서 포기하는 녀석이었다면 오히려 편했을테지.
― 그리고 그런 녀석이었다면 아무리 부탁받았더래도 결코 여행에 동참해주지 않았을 거다.
억지로 사람을 잡아 끌어낸 장본인인 현장이 여행을 포기한다는 것은 오공에게선 [말도 안되는]일이다.
「어이, 오공. 자지 말래도.」
「아ー……?」
「정말이지…. 뭐 수면부족으로 쓰러지면 곤란하기도 하니까. 내일 확실히 현장님과 이야기하기야?
팔계와 오정의 목소리가 들린것같았지만, 오공은 이미 수면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흔들흔들 흔들리는 수면처럼, 수마가 엄습해 온다.
「…………읏?!」
「꺄으!! 뭐, 뭐야!! 물?!」
「차가……. 이, 이건….」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빛이 튀었다. 냉수를 끼얹은듯한 감각에 오공은 벌떡 일어났다. 옆의 팔계와 오정도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자 그대로, 물벼락을 맞은 모양이다. 앞머리칼에서 뚝뚝 물방울이 떨어져서, 눈으로 들어온다. 난폭하게 손으로 닦아내고서야, 이미 옷도 흠뻑 젖어 있단 것을 알았다.
불길한 예감에 서서히 고개를 들자, 역시 거기엔 익히 아는 얼굴이 있다.
「오룡?!」
「역시 당신이……! 아니, 어째서 우리들에게 물을 끼얹은거야?!」
「어쩐지.」
「아, 그러셔…. 그럴거라고 생각했지만.」
새하얀 옷을 몸에 두른 청년이 메마르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팔계는 탈력했다. 무기질과 같은 음색인데도 그가 두르고 있는 힘은 너무나 위압적이다.
「아ー…… 망할. 차거.」
오공이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불평을 토했다. [어쩐지]라는 이유로 물벼락을 맞아서야 견딜수 없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서늘하니 딱 좋을지도 모르지만, 이쪽은 사활이 달린 문제다.
감기라도 걸리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랄까, 오룡. 현장님을 혼자 두고 온건가?」
오정이 놀라 묻자, 그 자리의 시선이 오룡에게 쏠린다.
「사람의 기척……, 없어서. 요괴도.」
「그렇지만 당신이 공주님을 혼자 두다니. 별일도 다 있군.」
「법사님이 계신 곳에선, 말할 수 없어. 오공에게, 할 말, 있으니까.」
「너도냐……. 현장을 상처 입히지 말라고?」
이제 질렸다.
졸리지, 옷은 젖었지, 성가시다.
전부, 이것저것 다, 성가시다.
세 사람의 내방에 오공은 크나큰 한숨을 쉬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한가한 놈들뿐이다.
「아니.」
하지만 오공이 쉬이 상상했던 오룡의 내방 의도는, 즉각 부정당했다.
「법사님은, 오공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고 하셨다. 단순한 화풀이였다고.」
「녀석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걸 오공에게 말해두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뭐야 그건…….」
드물게 염려하듯 눈을 흐리는 오룡에게 질린 시선을 던진다. 팔계도 오정도, 오공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듯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오지랖쟁이에, 호인(好人). 오룡은 잘 모르겠지만 현장 한정으로 호인(好人)―이면 의미가 붕괴되지만―이라고 해둘까.
자기 외의 전원이 [현장을 위해] 위험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현장이 자기만을 닥달하는 것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오공만이, 스스로 원해서 이 여행에 참가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뭐, 녀석이 내게 시끄럽게 구는것도 그 때문인가…….」
「아, 오공. 뭔가 이상한 착각했지?」
「앙?」
작게 중얼거린 오공의 말을, 팔계가 주워올린다.
「공주님은 말야, 당신이 여행에 적극적이지 않으니까 그렇게 구시는게 아냐.」
「뭔 소리야. 어째서 그렇게 단정하는건데.」
「남자의 감.」
「하아?」
「팔계의 감이야 어쨌든 나도 그리 생각해. 현장님은 네게 억지로 강요하고 싶은게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이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뭐냐. 머리를 부여잡고 싶어진다.
― 허나 오공은 금새 깨달았다.
그들이 오공에게 신경을 쓰는것은 현장을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것.
사소한 말에서부터 전해져오는 것은, 오공으로 동료로서 받아들이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귀찮게시리……)
평상시에도 질서라는게 없고, 제멋대로인지라, 자기뿐만 아니라 전원 현장을 곤란하게 하는 주제에. 이런때에만은 결속력이 터무니없이 높아지니까, 성가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현장의 인덕인거겠지.
― 확실하게 성가신 사태다. 하지만 왜인지 기분 나쁘진 않았다.
「아ー……, 귀찮아. 알겠어, 알았으니까 너희들 돌아가.」
「알아 들은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귀찮다고 말하는 시점에서 말야ー」
「오공, 고집, 부리고 있어?」
「안 부려. 현장을 이대로 냅두면 또 쓸데없는 생각이나 해댈거잖아. 녀석이 혼자 이것저것 생각해내는 것 중엔 변변찮은게 없으니까말야.」
오공의 말에 팔계 일행이 얼굴을 맞댄다. 부정할 수 없다, 라고 하는 표정이다.
「알고 있어. 녀석은 바보같을 정도로 진지할 뿐이라는거. 이쪽도 기나긴 안목으로 지켜봐주지……」
다소 표정을 풀며 말하자, 오지랖쟁이 동료들은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뒷모습을 간신히 배웅하고나서 오공은 느긋이 눈을 감는다.
주변은 정적. 어느새 밤이 깊어져있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전까진 자신의 주위나, 사고, 세계는 거듭 조용했었다.
그것을 소란스러운 일상으로 끄집어낸 것이 ‘녀석들’이다.
번잡한 것도 번거로운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지만―,
밤이 되면, 반드시 정적이 일깨우는 두통.
그것이 지금, 어느 정도 누그러든 것만 같은 것은 틀림없이 기분 탓이 아니다.
성가신 일을 생각할 할 짬이 없을 정도로 성가신 일에 휘말린다.
이것은 기뻐해야할 일인가, 통탄해야할 일인가.
(뭐, 아직 갈 길은 멀었고……)
어쨌든 그닥 그것을 싫어하진 않는 자신이, 제일로 성가셨다.
'여성향 > S.Y.K 신설 서유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SYK.신설 서유기/FD] 광우소공(光雨宵空) (0) | 2011.11.18 |
---|---|
[SYK.신설 서유기/FD] 홍련(紅蓮) (0) | 2011.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