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SS]
Case 2. 마츠다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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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고개를 숙이고서 적당한 타이밍에 고개를 들자니 딱하니 눈이 마주쳤다.

 사마야 씨는 방긋하는 의태어 그대로 웃음을 짓는다.

 이 회사에는 몇 여번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찾아왔으나, 이 얼굴은 처음이었다. 듣자하니 막 입사했다고 한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였다. 쳐진 눈에 작게 오므린 입술 등, 남이 경계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마츠다 씨 혹시 낚시 하셨지요? 타케오한테서 들었습니다."

 "아, 네. 얼마 되지 않는 취미 중 하나입니다…."

 

 어느샌가 담당이 바뀌게 된 듯, 전임 타케오 씨한테 소개를 받아 지금에 이르렀으나.

 

 "실은 저도 낚시를 좋아합니다. 최근엔 바빠서 좀 처럼 하러가진 못했지만요."

 

 처음 만나는 담당에겐 배려를 기울인다. 자신이 소속한 회사가 아래라면 더 더욱.

 하지만 그런 걱정을 개의치 않고, 이 새로운 담당은 실로 호의적이며, 긍정적이었다. 조금 허술할 정도로.

 

 

 "바다 낚시 파? 아니면 강입니까?"

 "바다요. 강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요."

 

 낚시대를 잡아 흔드는 제스쳐가 의외로 각이 잡혀 있다. 이거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 꽤나 하는 모양이다.

 

 "저도 바다입니다. 강은 보통이고요. 배낚시 혹은 여유만 있으면 트롤링도 하고 그럽니다."

 "오오! 본격적이시군요! 과연 마츠다 씨!"

 "아뇨, 뭐…… 하하핫."

 

 프레젠테이션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런 상태였다. 뭐가 그의 심금을 건드렸는진 모르겠지만 상대는 그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는 모양이었다.

 

 뭐 앞으로 거래가 쉬워진다면 아무래도 좋지만.

 

 "이거, 그만큼 본격적이라면 추천드릴 장소가 있습니다."

 "오, 고맙습니다."

 "흑돔들이 몰려 있는 장소라더군요."

 "네? 정말요?! 어디인가요?!"

 

 흑돔. 흑돔은 낚시꾼의 로망이다. 흥미진진하게 몸을 내밀자, 사마야 씨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웃었다.

 

 "어느 무인도 근처입니다."

 "무인도……."

 "네. 지금까진 개인적인 크루징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던 섬이었는데요……."

 

 

 

 

 

 단골 거래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이제 곧 귀가만 남은 상황. 그럼에도 곧장 돌아가지 않고 이 배팅 센터에 들리는 것은 일과 같은 것이었다. 최근엔 좀처럼 시간이 안 났으나, 오늘은 들려보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오래되어 덜컹덜컹 거리는 유리문을 고생해 열었다. 순간 눅눅한 니코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게에 들어서면 바로 존재하는 카운터에는 손님을 보는 척조차 않는 아저씨가 담배를 물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 전혀 변함없다. 내가 어릴 때부터 줄곧 같은 풍경이다.

 

 "아저씨, 배트 좀 줘."

 

 

 말을 걸자 겨우 이쪽을 보는 아저씨는, 뭔가 불명료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이더니 뒤쪽 선반에 검은 수염 위기일발 마냥 엉성하게 꽂혀 있는 배트 중 하나를 꺼낸다.

 

 "200엔."

 "여기."

 

 주머니에서 꺼낸 잔돈으로 지불한 다음 건네받은 배트는 굉장히 더러웠다.

 평소라면 손대는 것도 망설여지겠지만 기이하게도 이곳에선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단 말이지. 어릴때부터 줄곧 다니던 가게라서 그럴까. 이 더러움 속에는 내 손때도 스며있다.

 

 "조정 중"이라 적혀있는 종이투성이의 게임 코너를 빠져나간다.

 

 아직 저녁인데도 어린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들은 커녕 어른들 모습조차 없다. 마치 대절한 듯한 상태다. 경영 상태가 걱정인걸.

 

 시들시들한 풍경에 딱 어울리는 빈약한 화음을 들으며 아무도 없는 홀에 도달한다.

 타석에 서기 전에 일단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낡은 벤치에 앉아 불을 붙였다.

 

 "후우………."

 

 슬슬 본격적으로 금연해야할 텐데. 흡연자들이 설 곳이 좁은 시대다.

 제대로 연기 냄새를 죽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데도, 담배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리는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피운 담배를 재털이에 버리고, 줄 지어선 배터 박스 문 앞에 섰다. 덧붙이자면 2번이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장소다.

 

 타석에 서서 피칭 머신의 단말을 조작한 다음, 배트를 거며쥔다. 오래간만이니까 공은 느리게 설정했다.

 

 잠시 지나 날아오는 속구를 때린다. 휘두르는 배트에 무거운 감촉이 있었다. 볼은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뭐야…… 파울이냐.

 

 "최근 안 온 탓에 실력이 떨어진거 아니냐, 어?"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철책 너머로 아저씨가 서있었다. 이렇게 말을 걸어 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원래부터 야구는 특기가 아니라서 그래. 좋아하긴 해도. 그리고 일하느라 바빴고."

 "하아? 바빠? 너도 어느새 그런 말을 하는 나이가 됐냐? 깔끔한 정장까지 빼입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방진 코찔찔이 애송이였는데."

 

 공을 친다. 이번엔 상당한 비거리였다. 홈런까진 아니었지만.

 

 "저기 말이지. 나도 이제 27살이라고. 아저씨 시계는 멈춘 거야?"

 "그런가…. 벌써 27살인가."

 

 때린다. 녹색 마운드에 새하얀 공이 늘어난다.

 단말에 동전을 넣고 조작한 다음, 공의 속도를 좀 더 올렸다. 어중간하게 느린 탓에 제대로 못 때리는 걸지도 모르니까.

 

 "많이 컸구나. 초등학교 때는 쫄따구들을 거느리고서 자기가 대장이라는 표정으로 여기서 자주 놀았는데."

 "그랬나? 그런 옛날 일 기억 안 나."

 "젊은 주제에 좀 더 뇌세포를 쓰라고. 추억은 소중한 법이야."

 

 때렸다. 또 파울이었다. 속도 때문이 아니었군. 역시 꾸준히 다니지 않으면 바로 실력이 떨어지나보다.

 

 "회사에서도 잘난 척 으시대고 있냐? 부하들 거느리고서."

 

 무심코 뿜었다. 그런 골목 대장이 어느 회사에 있겠냐고. 아니면 아재 개그인가?

 

 "아저씨. 나도 이제 어른이라고. 성실하고 진지하게 출세가도를 걷고 있다고."

 "뭐야 너, 성적 좋아?"

 

 "뭐 일단."

 "헤에…. 사람은 변하려면 변하는 법이로군."

 "어릴 때랑 비교하지 말래도."

 

 조작 패널을 만져 공의 구속을 바꿨다. 아저씨는 팔짱을 끼고 거드름을 피우는 자세로 먼곳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약간  쓸쓸해 보여서 신경 쓰였다.

 

 "그보다 조금 전부터 내내 옛날 이야기뿐이네. 대체 왜 그래?"

 "아…, 그게…."

 "

 아저씨가 한 번 코를 훌쩍였다.

 

 "장사 접기로 했어."

 

 철책과 네트에 공이 부딪쳐 카앙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

 "소일거리 삼아 했던 가게긴 했지만 이제 슬슬 몸도 버거워져서. 죽을 때까지 경영할 생각이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옛날엔 좀 더 체격이 좋았던 이 아저씨는 완전히 야위고 빈약해졌다.

 카운터 안에 있는 모습밖에 못 본 탓에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아닌가.

 내가 제대로 보지 않은 것분이다.

 

 줄곧 변하지 않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별수 없지……. 몸이 제일이니까."

 "그래. 몸이 말을 안 들으니 별수 없지. 여길 팔아 장만한 돈으로 조용히 살 거야. 딸아이 부부가 같이 살자고 하더라고."

 

 "그래? 잘 됐네."

 

 카앙. 대화를 끊어 놓듯이 다시 소리가 들렸다.

 

 "이번달 말쯤에 닫을 거야……. 그때까진 꾸준히 다녀라."

 "이번달 말이라니…, 1주일도 안 남았잖아. 너무 촉박해."

 "꾸준히 찾아오지 않은 네 잘못이지."

 

 

 "난 내일부터 출장이라고."

 "그럼 내일이면 안녕인가? 이 박정한 자식."

 

 

 "막날에 올게……."

 "당연하지. 하지만 마지막 날엔 공 못 쳐."

 "알겠어."

 

 카앙. 등을 돌린 아저씨와 나 사이로 공이 다시 철책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좀 더 할 말이 있을 거 같은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은 변한다. 어른이 된다. 나이를 먹는다. 사회에 순응한다. 사고방식이 달라진다.

 풍경이든 사물이든 변한다. 있었던 것들이 없어진다. 망가진다. 팔린다. 사라진다.

 

 무엇 하나 줄곧 똑 같을 순 없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내가 서있는 타석도, 쥐고 있는 배트도, 들이키던 공기도, 사야마의 얼굴도, 동료의 웃음도, 조금 전의 담배 맛도, 언젠가 추억으로만 맛볼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그건 알고 있다.

 

 "………"

 

 가방 안의 팸플릿 문구를 떠올렸다.

 

 무인도 체험 투어. 5박 6일 여행.

 사야마 씨한테 받은 투어 여행 전단지다.

 

 "모처럼이니까 가볼까……."

 

 중얼거리며 자세를 잡고서, 다시 공을 때렸다. 이번엔 혼신의 힘으로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두손 두팔에 무거운 충격이 전해져왔다. 순간 나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까앙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공은 크게 호를 그리며 날아간다.

 

 "오."

 

 모든 것이 변해버리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은 전부 해두자.

 

 어쨌든 이것이 최후의 홈런이 될 것 같다.

 

 

 

후기

평소엔 모두의 조정자이며, 배려를 잘 하는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마츠다입니다만,

흡연자에 어릴 때에는 골목대장이었다던가 하는 일면도 갖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 주셨다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111243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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