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Paradise/SS]
Case 1. 아즈마의 하루
잡지 기사는 공식홈에도 뜰 거라 생각하니까 일단SS. 사실 쓰다가 날려먹어서.. 얼마 안 되는 텍스트지만 날려먹으면 아주 귀찮아 지는 게 사실이라고 합니다.. 무인도x남탕이라니 아 상상만으로도 인간 세상의 어둠이 보일 듯 하군요..
"아즈마 선배. 오늘 미팅 안 가실래요? 미팅요!"
하라미 제과의 포테이토 스낵을 진열장에 전시하고 있던 내 손이 멈췄다.
번뜩 옆을 보자, 마찬가지로 상품을 진열 중이던 후배 오기노가 히죽히죽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마치 탐관오리 같은 웃음이다.
"미……팅."
"네. 미팅요!"
"미………팅."
"네, 네. 상대는 여대생임다. 세이란 여대 학생이요~"
새우전병 봉투를 선반에 쑤셔 넣은 오기노가 까닥까닥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제 친구가 참가할 예정이었는데요~ 갑자기 급한 볼일 때문에 못 오겠다지 뭐에요. 인원이 부족하면 상대한테도 실례잖아요?"
"미……팅."
"그렇게 충격적이십니까?"
"앗."
미팅이라니 몇년 만이냐. 여대생이라니 진짜냐. 여대생 우호옷! 하고 생각하느라 단순한 반복 출력 기계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오기노의 의아해하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자세를 바로 잡고, 두 사람 사이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상자를 걷어찼다. 어차피 내용물은 다 진열해서 든 것도 없다. 통로를 쭈르륵 미끄러지는 박스를 시선으로 뒤쫓는 오기노의 옆에 쪼그려 앉아, 귓가에 얼굴을 갖다댔다.
"가겠습니다."
"과연 아즈마 선배심다!"
"몇 시부터야? 지금부터라도 좋아."
"아직 아무도 안 모였어요. 오후 8시부터임다."
"알겠어. 나 7시면 마치니까, 일단 집에 돌아갔다 올게."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던 그때,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와 손님 방문을 알리는 벨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나와 초침의 싸움이 시작된다. 정확히 7시에 일을 끝내려면은 1초도 낭비할 수 없다. 평소 2배 이상의 속도로 계산을 마치고, 배속으로 튀김을 튀긴다.
"아…… 아즈마 선배. 닭튀김 그렇게 빨리 튀기셨습니까~?"
"내가 진심을 보이면 이 정도라고."
"이 정도라니… 이거는 고기 없이 껍데기 뿐이잖아요…."
"괜찮아. 먹으면 몰라."
"그런 짓 했다가 점장한테 혼난 사람이 있는데. 전 모릅니다."
오기노의 충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미팅으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이렇게 열심히 일했으니,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기겠지. 그렇게 믿고 7시를 기다리다, 마침내 그 시간이 찾아오자 마자 타임카드를 찍고 가게를 뛰쳐나갔다.
뛰면서 청바지 지퍼를 잠구고서, 머릿속으로 혼자 패션쇼를 하는 동안 어느새 집이었다.
"하아…, 하아…. 씻고 싶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거실로 들어가, 열어젖힌 옷장 안 거울에 비친 나는 땀투성이었다. 항상 쿨하게 일하며, 우아하게 빈둥빈둥 집으로 돌아오는 내 메마른 얼굴이, 여자아이들이 놀랄 정도로 젖어 있었다. 이거 큰일이다.
"망할! 목욕!'
아직 시간은 있다. 당황하지 않고 수선 부리지 않고 씻자. 그렇게 생각했지만, 5분만에 샤워는 끝났다.
대신 꼼꼼히 멋을 부리자.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자애들에게 먹힌다 싶은 옷은 전부 세탁기 안이었기에, 일단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었다. 머리도 단정히 하고. 이도 닦았다. 자라지도 않았지만 수염도 깎았다. 손톱도 깎았다. 콘돔도 챙겼다.
"하아, 하아."
더 이상 멋부릴 데도 없다.
"아즈마 선배~ 이쪽입니다~."
역앞 어뮤즈먼트 빌딩의 네온사인이 보일 무렵,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림자가 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것에 바로 상대가 오기노임을 알았기에, 걸음을 늦추며 자연스럽게 고개 숙여 헛기침했다.
힐끔 시선을 들어 녀석의 주위를 바라보자, 여자아이가 4명, 남자가 3명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마지막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일단은 남자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인다. 사실은 지금 당장 여자아이들에게 말걸고 싶지만, 동성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놈들은 여자아이들에게도 미움 받는 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오기노한테 들어 알겠지만, 같은 곳에서 일하는 아즈마입니다. 잘 부탁해."
갈고 닦아온 영업 스마일의 힘도 있어서 그런가, '안녕하세요'하는 온화한 대답을 들었다.
"일단 자기소개는 뒤로하고 가게로 가요. 이 빌딩 위에 잇는 카라오케 예약해 뒀어요."
"카라오케? 술집 아니고?"
"어라? 노래하고 싶은 기분 아니신가요? 앗. 아니면 혹시 노래 잘 못하시나?"
"바보 자식. 잘 불러. 직접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아하핫. 아즈마 씨는 재밌으신 분이네요. 얼마나 잘하실지 노래 듣는게 기대 돼요."
여자아이 하나가 반응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고양이 같은 눈이 귀여운 아이다. 촉이 섰다. 정했다. 이 아이 건너편에 앉자.
카라오케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아이 건너편 자리를 사수했다. 가장 먼저 메뉴표를 손에 들고 여자아이들을 향해 화려하게 내밀엇다. 아기 고양이에게 호의를 보일만한 자세로. 호의.
"마실 건 뭘로 할래?"
메뉴를 들여다보는 아이들이 주문하는 것을 암기하면서…….
"그 아이는?"
건너편에 앉은 아기 고양이에게 웃음을 보인다.
"음……."
그녀의 시선은 메뉴표 아래로 내려가더니, 곤란한 듯 흔들렸다.
"술을 못하면 주스로 해."
"……."
마스카라로 쭈욱 세운 속눈썹을 깜빡이면서 나를 바라본 그녀가 살짝 미소했다.
"응…. 그럼 오렌지 주스로."
아, 망할 귀엽다. 얼굴이 풀린다.
"오케이. 나도 오렌지 주스로 할까나. 그쪽은 정했어? 이 김에 일단 이 안주를 시키자. 한 사람당 3개씩 돌아가니까 딱 좋아."
누구보다도 솜씨좋은 남자를 연출하기 위하여 남자들에게도 뭘 시킬지 물어보고서 서빙된 음료를 나눠준 다음, 앞접시를 나눠주고, 냅킨을 여자아이들에게 밀어넣어 준다.
자아, 아기 고양이. 지금 당장 내 가슴으로 뛰어들어오렴.
전차에서 내려 돌아가는 귀갓길을, 가로등 불빛이 마치 스포트 라이트처럼 비춰줬다.
딱 좋은 사이즈의 돌멩이를 발견해 걷어차자, 쓰레기통에 부딪쳐서 위에서 털을 고르던 검은 고양이가 도망쳤다. 미안한 짓을 했네.
아기 고양이는 볼일이 있다며 먼저 돌아간다고 말한 다음 돌아갔다.
나는 눈깜짝할 사이에 맥이 빠져, 거의 타성으로 탬버린을 휘둘렀다.
그리하여 결국, 이름만 미팅인 카라오케 대회는 막차 시간에 끝났다.
오기노가 "오늘 즐거웠습니다!, 아즈마 선배, 꼭 또 부를게요!"하면서 묘하게 즐거워 보였던 게 인상적이었다.
아기 고양이는 도망쳤지만, 오기노가 즐거웠다면 뭐 됐지.
"배고프다."
그러고 보니 식사 종류는 거의 안 먹었던 걸 떠올렸다. 샐러드 같은 것보다 고기를 먹고 싶었다고. 술에도 더 잘 어울리고. 야채 같은 거 그냥 풀이라고, 풀. 그 녀석들은 잘도 풀만 갖고 배를 채우는구나. 전생에는 토끼 같은 거였냐. 그거 귀엽네.
"응?"
작은 길에 외따로 걸린 제등에 "라면"하는 글자와, 바람에 흔들리는 주렴에 새겨진 '된장'이라는 글자. 작달만한 라면 가게의 등이다.
"좋아……."
맞장구를 치듯 배가 꼬르륵 울었다.
두터운 차슈. 맛이 잘 매인 계란. 씹는 맛 있는 파. 상상했더니 저항할 수 없다.
평소 열리는 모습을 본 적 없는 가게였는데, 제대로 영업하고 있었구나. 대단하다.
묘하게 감탄하며 문을 열고, 주렴을 넘는다.
"어서 옵쇼."
좁은 가게에 손님은 없고, 카운터 자리 밖에 없다. 그러면 한 가운데에 앉아주자.
내 동향을 지켜보던 암석 같은 얼굴을 한 아저씨가 머리띠를 다시 동여맸다.
"된장 라면 꼽배기요."
"알겠습니다."
메뉴는 안 봤지만 라면이라면 된장이고, 된장이라면 무조건 꼽배기다. 된장 라면 없는 라면 집은 없을 테니.
그슬린 벽에 들러붙은 TV에서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게스트의 웃는 얼굴이 종종 줌 된다.
5분 정도 지나가 나온 라면을 흡입한다. 맛은……… 없다. 달걀은 내 취향이었지만.
"맛있네요……."
손님이 나 하나뿐인 어색함을 어찌 달래보고자 작게 중얼거린다. 싱크대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던 아저씨가 고개를 들지만, 아무말도 않았다. 나는 멋대로 말을 이었다.
"라면 맛있네요."
"그래? 난 맛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저씨가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맛없는 걸 손님한테 내놓으면 안 되죠."
"맛없어도 먹는 녀석이 있는 한, 나는 이걸 만들 생각이야."
쓸데없이 멋진 소리 하네…….
몇초의 침묵 뒤, 나는 재차 중얼거렸다.
"저도 나중에 라면 가게나 해볼까. 이렇게 더럽고 안 벌릴 거 같은 느긋한 가게에서."
"이봐, 이봐. 젊으면 좀 더 큰 뜻을 품지 그래."
"큰 뜻에 뭐가 있는데요."
"파일럿이라던가 우주비행사를 노리라고."
"싫어요. 귀찮게시리. 좀 더 고요히, 사람들과 최소한으로 접촉하며 살고 싶어요."
"하아. 젊은 데 꽤나 염세적이네."
무심코 새어나온 본심을 듣고, 아저씨가 웃는다.
라면 국물은 짜고, 마늘이 너무많이 들어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전부 들이켰다.
"아, 장래의 꿈 생각났다."
"엉?"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거 참."
이런 손님의 혼잣말을 상대해 주다니, 얼굴은 딱딱하지만 실은 상냥한 사람이겠지, 이 아저씨.
만약 다음에도 문을 열면 또 오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슬을 먹고 살 수 있어야 겠네."
그러게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텅빈 그릇을 내려놓는다.
"잘 먹었습니다. 얼마죠?"
"850엔."
"비싸."
이렇게 맛없는데…. 사기 아니냐.
담담히 돈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가려 하자니, 마침 문을 닫으려던 걸까, 아저씨도 바깥까지 따라나왔다.
주렴을 내리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투박한 웃음을 띠운다.
"기운내라고."
"엄청 기운찬데요."
"거짓말 하지마. 무슨 일 있었지? 다 알아."
기운 차다니깐.
이게 다 전부.
"미팅 때문이야."
길을 걷고 있자니, 바람이 달아오른 뺨을 때린다. 배는 면으로 가득찼고, 지갑은 전철비와 술안주값과 라면 값으로 홀쭉해졌다.
나의 일상과 마찬가지. 팽창과 수축을 거듭할 뿐,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집에 도착해 우편함을 들여다보았으나, 눈에 띄는 우편물은 없었다.
후기
활달하면서도 음침하면서 얼굴은 좀 잘생겼으면서 귀차니스트에 말재주는 좋은 아즈마의 일상을 그려보았습니다. 조금 질이 다른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즐겨 주셨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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