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Paradise/본편]

파라다이스

마츠다 루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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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으로 향하는 도중, 옆 동 로그 하우스 창문을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비명 같은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샌가 저쪽 창문도 닫혀있었다.

화간 가능성이 높아졌군.



[마츠다]
「……괜한 걱정이었을려나」


[아즈마]
「……그러게」



일단 괜히 치한 짓을 하게 되진 않은 것에 감사하며,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현관으로 향했다.

 




[마츠다]
「여어, 좋은 아침」

녀석은 등을 쭉 펴고서, 막 떠오른 은색 아침햇살을 등지고 서있었다.

초목의 냄새, 조금 짠 안개. 발치에는 텐트를 비롯해 탐색해 필요한 중장비들이 널려있었다.

오늘도 마츠다는 상쾌했다.

 



그거 잘 됐구만.
……잘됐긴 했는데.



[아즈마]
「……좋은 아침」

눈을 비비는 척하면서 목을 틀었다.

어젯밤, 비틀 비틀한 발걸음으로 로그 하우스로 돌아가 바로 잠들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아가며

탐색 준비를 하면서 줄곧 생각했다.


내일 마츠다를 만나게 되면
일단 맨 처음 뭐라고 말해야할지를.

 



[마츠다]
「역시 일찍 일어나는 건 좋은 거 같아!」

아니, 확실히 그냥 서로 뽑아주기만 한 것뿐이긴 한데.
나는 그런 일, 완전히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지금도 다소나마 좀 껄끄럽다고.

 

 


[마츠다]
「이렇게 뭔가 오늘도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하하하핫!」

그런데 이 녀석한테는 그런 느낌이 티끌만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뭐냐고.
하하하가 아니지.

뭔가 좀, 허둥대고 그러지 않나? 보통은?


[아즈마]
「뭐, 그렇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2가지 정도.

실은 긴장했지만,
들키지 않도록 행동하고 있다거나—

정말로 아무 생각 없다거나.



[마츠다]
「왠지 기운이 없네. 졸려?」

…이건 뭔가 후자인 거 같다.

 



[아즈마]
「딱히」


[마츠다]
「지금부터 멀리 나가게 되니까, 조금만 더 기운을 내보라구」

허리에 손을 얹고, 변함없이 연상인 양 주의를 주는 구석이 열받을 정도로 평소랑 똑같았다.



[아즈마]
「하아….」



괜히 혼자 헛발질 하느라 쌓인 열을 한숨 섞어 토해낸 다음,

차분히 원래의 포지션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마츠다]
「한숨 쉬지 말래두. 복 달아난다」

복이랑 무슨 상관인데…하고 말을 꺼내려 했지만,

머릿속까지 근육이 들어찬 녀석한테 통할 말이 아니겠지.


 


[아즈마]
「미안, 미안. 일찍 일어나느라 몸이 피곤해서 그래」



그렇게 적당히 변명을 늘어놓으며 목덜미를 긁었다.

『뽑기만 한 것뿐』
——단순명쾌,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마츠다도 요런 태도고.
나 혼자 이런 상태라면 영 못 버틸 거 같았다.


그냥 신경 쓰지 말자.

 



[혼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전지가 있었습니다」

창고 쪽에서 혼고 씨가 달려와, 마츠다한테 단일 전지로 보이는 것을 몇개 내밀었다.


[마츠다]
「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갖고 온 손전등엔 이미 전지가 끼워져 있으니까, 예비 전지 보충 같은 거겠지?

마츠다가 사전에 말을 해둔 거겠지.

 



[혼고]
「아뇨. 또 무슨 일 있으면 말씀 주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즈마 씨」

쾌활하게 웃는 신사는 오늘도 건재했다.



[아즈마]
「응, 좋은……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서 미안」


[혼고]
「천만에요」


[혼고]
「한 번 더 발전기를 조사해 보면
또 새로이 알게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마츠다]
「그러면 좋겠군」



[마츠다]
「---그럼 일단 이후의 일에 대해 설명할게.
일단 혼고 씨가 발전기까지 우리를 안내해줘.
그 뒤에 나랑 아즈마는 섬 반대편 쪽으로 가볼 거야」


[마츠다]
「반대편에 도착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릴 지 모르니까,

그 동안 타카라와 키도 씨한테 이쪽에 남아서 식량을 찾아달라고 했어」


[마츠다]
「오늘 배급할 식량도 키도 씨한테 이미 맡겨놨으니까 문제 없을 거야.
타카라랑 둘이서 나눠줘」

 

 



[아즈마]
「진짜로? 벌써 저장고까지 갔다 왔어?」


[마츠다]
「어. 최대한 빨리 출발하고 싶었거든」


 

 


[아즈마]
「……」

내가 어제 마츠다의 방을 나온 것은 심야였고,

저장고에 들렸다 오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거기서 키도 씨한테 부탁까지 했다고?


 



……이 녀석, 거의 안 잔 거 아냐?



[마츠다]
「그리고 우리 몫은… 여기. 갖고 가서 건너편에서 먹자」

 



마츠다는 입구가 묶여있는 작은 비닐 봉투를 내게 건네줬다.


[아즈마]
「…어」


마츠다의 몫까지 챙겨서, 식량을 담는 봉투에 쑤셔 넣었다.

나한텐 태연하게 『졸려?』하고 물었지만, 이 녀석 절대 자기가 더 졸리겠지.

 



[마츠다]
「좋아, 그럼 갈까.
혼고 씨! 안내 좀 부탁할게」

 


눈을 떡하니 뜨고서 당당히 서있지 말고, 하품 한 번 정도는 해도 될 텐데.


[혼고]
「네, 맡겨주세요」

그러면 나 역시 좀 더 솔직하게 고생했다고 위로했을 텐데.

 

 




혼고 씨가 안내해준 것을 제외하더라도,

발전기가 있는 장소에 도착할 때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거 같다.



숲 어디 쯤인진 전혀 모르겠지만, 조립식 주택 같은 것이 3채 지어져 있고,

하늘에 깔린 전선들이 전부 여기에 몰려 있었다.



[아즈마]
「이게 발전기인가?
엄청 크잖아」

 

 



푸른 하늘 아래 쭉 늘어선 오두막을 바라보며, 짐을 수풀 위에 내려 놓았다.



[혼고]
「네. 그만한 전기를 조달하려면
이 정도 규모는 되야 합니다…. 보자, 열쇠가…」

마츠다와 나란히 서서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입구 안쪽을 들여다 보자, 엄청 사이버틱한 공간이 보였다.

엄청나게 기계!한 느낌이 들었다.

기계니까 뭐 당연한 거겠지만.



[아즈마]
「오, 오오… 뭔가 근미래적인걸」


[혼고]
「안에 들어가서 살펴 보시겠습니까?」



마츠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전등을 들고서
저벅 저벅 소리를 내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아즈마]
「너, 이런 거 잘 알아?」


[마츠다]
「아니, 전혀」


[아즈마]
「전혀 모르냐고」


전혀 모른다고 말했던 것처럼,

의외로 쉽게 건물 밖으로 나온 마츠다는 영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츠다는 똑같은 순서로 모든 발전기 건물을 확인 한 다음,

엄숙히 문을 닫고서 몸을 틀었다.

 

 



[아즈마]
「……어땠어?」



[마츠다]
「하나도 안 움직여」


[아즈마]
「……그걸 확인하러 온 거야?」


[마츠다]
「그게 아니라 발전기 세 개가 전부 멈춘 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혼고]
「…한번에 모든 발전기가 고장나는 건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즈마]
「…확실히 그럴 가능성은 낮을 거 같긴 한데」


[아즈마]
「그렇다고 0은 아니잖아?」


[혼고]
「네. 하지만 확률은 한없이 낮을 겁니다. 믿을 수 있는 메이커 제품이거든요」

 

 



[아즈마]
「혹시 누군가가 고의로 고장낸 거 아냐?」


[아즈마]
「……아, 물론 농담이야」



[마츠다]
「……」

 



농담이랬는데, 마츠다의 표정은 조금 험악해졌다.



[혼고]
「--저기」

입가를 손으로 누르고 있던 혼고 씨가 조심히 말을 꺼냈다.


[혼고]
「여러분께 괜한 불안을 끼치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혼고]
「분명 문을 잠궈뒀는데, 열려 있었습니다」

 

 




[아즈마]
「……여기 문?」


[혼고]
「네. 발전기는 위험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 출입하지 않도록 단단히 잠궈뒀습니다」


[혼고]
「그런데…… 문이 열려 있더군요」



[아즈마]
「……」


[마츠다]
「열쇠 관리는 혼고 씨가 했어?」

 


[혼고]
「아뇨. 섬엔 안 계신 업자 분이 갖고 있습니다.
발전기 정비도 물자 보충과 함께 이뤄질 예정이었고요」


[혼고]
「저도 이곳에는 출입할 수 없습니다」



[아즈마]
「원래부터 열려있었을 가능성은?」

 

 



[혼고]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발전기는 제 관리 밖이기 때문에, 정지하기 전까지는 이 근처를 둘러보기만 했거든요」


[아즈마]
「누군가가 일부러 발전기를 정지시켰을 가능성이

급작스레 떠올랐네」



하지만 가능성은 낮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다.

 



마츠다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복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츠다]
「설령 누가 정지시켰다 해도, 누가 뭣 때문에?」

 

 


맞다. 그거다.
발전기를 정지 시킨다고 무슨 득이 있다고?


오히려 정지시킨 녀석이 이 섬 안에 있으면, 오히려 자기까지 곤란해지잖아?

아니면 뭐냐?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고 싶은 건가?



[아즈마]
「아니, 그래도……」

 

 



우리에게 공통점은 없다.

섬에 온 목적도 다르다.
출생도, 성장도, 각자 살고 있는 환경도 다르다.


면식도 없었고, 먼 친척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중 누군가를 궁지에 빠트리고 싶은』 걸까?

 




[혼고]
「……」


[아즈마]
「……」

우리는 나란히 끙끙 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이것저것 가설을 세워 봤지만, 수수께끼는 깊어지기만 할 뿐.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마츠다는 머리를 긁었다.

 

 



[마츠다]
「——이 건은 일단 보류하자. 지금은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


[아즈마]
「……응. 슬슬 가야지」

나도 몸에서 힘을 뺐다.

괜히 어렵게 생각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뻔했기 때문에 살았다.

 




[마츠다]
「신경 쓰이긴 하지만, 일단 발전기를 확인한다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잖아?」

혼고 씨도 생각을 털어내 듯 고개를 들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혼고]
「네. 지금은 좀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혼고]
「아, 그리고….」

 



[혼고]
「일단 갖고 온 겁니다만, 어디 쓸데가 있을 지도 모르니 사용해 주세요」


[아즈마]
「오, 나침반이네. 고마워」

뭐 그래도 이런 거에 익숙할 거 같은
마츠다한테 주는 게 현명하겠지.



나중에 건네주자.



[혼고]
「오늘 중으로…… 돌아오시는 건 힘들 거 같습니까?」


[마츠다]
「그래. 섬은 넓어.
숲을 가로질러 종단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꽤 걸리겠지」

 



[마츠다]
「내일 쯤이면 돌아올 거 같지만,
만약 2~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찾으러 와줘」


[혼고]
「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혼고 씨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보충 설명해두자.



[아즈마]
「괜찮아. 텐트도 있고, 물도 있고, 식량도 있어. 부족하면 현지 보충하면 돼고」


[마츠다]
「맞아. 만의 하나의 이야기야.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 지도 모르잖아?」

 


마츠다가 분위기를 파악하더니, 명랑하게 동조했다.

 



[혼고]
「……만의 하나 그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찾으러 가겠습니다」

 


일단 분위기 전환엔 성공한 모양이다.

불안해하는 모습이었지만 ‘다녀오십시오’하고 깊숙히 고개 숙여 배웅하는 혼고 씨에게 손을 흔들며,

그 자리를 뒤로 했다.

 

 

 

 

Posted by 111243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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