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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칭코 용어가 은근히 어렵더라고요. 천장이 여기서 나왔구나. 오늘은 여기서 끗입니다 ^^!
눈을 번뜩이는 긴 집단이, 가게 입구에서 2번째 모퉁이까지 이어졌다.
“………….”
그걸 본 순간, 종종히 달리던 두 다리는 눈깜짝할 사이에 느릿해지더니, 줄 맨 끝에 섰을 무렵엔 이미 어깨까지 쳐져 있었다. 처진 어깨남 탄생의 순간이었다.
이 가게는 추첨이 아니라 정리권 입장이기 때문에, 먼저 선 사람부터 입장해야 한다. 즉 내 입장은 상당히 뒤가 되겠지.
당연히 의욕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뭐 일단… 그런 타성으로 앞에 얼마나 있는지 세어본다. 모퉁이 너머가 보이지 않아서 포기했지만.
어이, 어이. 이 숫자는 뭐야, 농담이겠지…? 그렇게 다시 정신이 아득해진 다음, 서서히 초조함이 솟구쳤다.
아, 진짜 망했다…. 좀 더 빨리 올 걸. 완전히 방심했다.
개점 전부터 이 가게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선 것은 과거 한 번도 없었는데. 변두리의 한적한 파칭코란 말이다. 언제 와도 손님은 듬성듬성했는데.
아니, 그래도… 잠깐만. 눈에 보이는 범위로 보면 늙은이들 뿐이다.
할멈, 할아범들은 보통 빠칭코를 많이 한다. 즉 슬롯 코너는 아직 다 안 찰지도 모른다.
좋아, 괜찮아.
할 수 있어. 앉을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나는 기합을 넣듯이 팔짱을 끼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모든 게 날 우선해 움직여야하는 날이다.
그렇게 믿고서, 할멈 할아범들의 뒷통수를 바라본다.
그래. 무엇을 숨기랴.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지금부터 전장에 나서게 될 거라 잊어버릴 뻔했지만, 실은 그랬다.
그래서 아침 일찍 총총히 집을 나왔다구. 있는 돈 없는 돈 죄다 챙겨 슬롯 머신을 돌리기 위해.
조금 전에 몇 안 되는 친구한테서 ‘생일 축하해줘?’하고 물어왔지만, 굳이 거절까지 해가면서.
왜냐면 할로윈이니까.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날이잖아. 게다가 생일. 이런 날은 반드시 터진다구.
나한텐 선물과 할로윈 과자를 받을 권리가 있다구. 둘 모두 ‘거며쥘’ 권리가 있다. 언제나 진탕 망했지만, 오늘 정도는 환원하란 말이야. 엉?
그렇기 때문에, 생일 파티 같은 걸 할 겨를이 아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입구 좌우에 대기한 점원이, 갓 따낸 오렌지 처럼 활짝 웃으며 맞이해줬다.
여기는 한적한 곳이긴 하지만 점원들이 정말 싹싹한 곳이라, 뭐 이렇다할 감상은 없었다. 언제나 처럼 ’엽’하고 한손을 들어 인사로 답할 뿐.
행렬의 주성분인 할멈 할아범의 태반이 1층 파칭코 존으로 향하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들 슬롯 머신조는 총총히 2층으로. 2층에 도착해 가장 먼저 목표로 하던 자리를 바라봤으나, 항상 와있는 망할 빨간 모자한테 뺏긴 상태였다.
어쩔 수 없으니까, 일단 제일 좋아했던 자리에 앉기로 결의했다. 이렇게나 애태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라 정도로 망하는 자리, 그럼에도 분투해 왔건만 언제나 참패. 이 일방통행적인 사랑에 절망해, 의도적으로 그 자리에 앉는 것을 피했던 기기에.
할로윈을 모티브로한 기기들이 눈 감짝할 사이에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을 스쳐 지나가며, 나는 곧장 좋아하는 기계가 있는 영역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낮.
이 시간이 되면 대부분의 머신은 1000번 정도 돌아갔을 무렵이라서, 슬슬 흑백이 확실해질 무렵이었다.
‘터지는 기계’와 ‘망하는 기계’가.
그리고 내 자리는 아직 한 번도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
이상하지 않나? 거동이…. 음…, 그래. 한 마디로 하자면 평소랑 똑같지만….
아무리 기계를 돌리고 또 돌려도, 현역으로 이 자리에 앉았을 때의 기억과 다를 바 없다.
요컨데 그 뭐냐…. 그거다. 망자리—―
“아니, 그럴 리 없지.”
뇌리에 떠오르는 그 무시무시한 말을 다급히 털어냈다.
아직 투자액은 그리 많지도 않은 데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다. 패배의 기억…. 아니, 참패의 기억에 절로 흐르는 식은 땀이었다. 일확천금의 꿈을 쫓아 혈안으로 돈을 쏟아 부었던, 그 날의 기억. 원숭이처럼 돈을 쑤셔 넣다가 최종 천장까지 가서 1개월 치 급료의 2/3을 날린 끝에, 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코인 밖에 돌아오지 않았던 그 날의 기억이다.
떨리는 손, 땀 때문에 투입구에 넣으려했던 코인을 떨어트려 심호흡했다.
진정해. 아직 이 기계엔 엔진이 걸리지 않은 거 같다. 지금부터, 지금부터라고. 자아, 그 전에 변소나 갔다오자. 변소. 그리고 커피 한 잔 더 추가. 담배도 빨고 싶네.
되도록 평정을 유지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멍청해 보이는 형씨의 뒤통수에 저주를 토해내며, 화장실로 향했다. 일부러 칸에 들어가 볼일을 본 다음 멍하니 있다, 벽에 힘껏 머리를 박았다.
점심 먹을 돈조차 아까워서 150엔짜리 캔커피로 배를 채운 다음, 벌써 몇 번이나 방문한 끽연실에서 담배를 한 개피 피고 나서―――
“좋아. 기합은 넣었어. 이제 괜찮아…. 조금 시간을 뒀어. 이걸로 흐름이 변했을 게 틀림없어.”
다시 의욕 넘치는 걸음 걸이로 홀로 돌아가는 것이다. 승리의 영광을 손에 거며쥐기 위해.
“……….”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안 터진단 말이지.
돈만 물처럼 사라지고 있다. 지갑 가득 넣어온 지폐가, 티슈 정도로 얇다.
앞으로 300번만 돌리면 2번째 천장에 도달한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 지옥이다. 지옥. 이게 바로 지옥. 이 자리는 지옥이다. 이 악마.
일단 할로윈인데, 이게 뭡니까. 뭐야, 이 참상. 알곤 있었지만 이 가게 혹시 사기 치나?
아니면 내 슬롯 센스가 쓰레긴가? 이젠 아무것도 믿기지 않았다.
담배꽁초랑 빈 커피캔만 늘어난다. 이젠 기분 나빠서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고, 빨고 싶지도 않았다. 토할 거 같았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으나, 이미 승패는 명백했다.
“실례합니다. 할로윈이라서 과자를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탁한 눈알을 굴려 그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장 차림한 점원이 웃으며 사탕을 내밀었다.
이런 사탕이라면 휴게실에 ‘마음 껏 드세요’ 코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잖아. 그런 건 됐으니까 코인이나 내놓으라고 멱살을 잡고 싶어졌지만, 참았다. 점원에게 죈는 없으니까…. 망가져야한다면 이 기계겠지….
“고맙습니다….”
내심을 숨기며, 받을 수 있는 건 받아두자는 정신으로 오렌지색 봉투를 건네받는다. 뭐 보통이라면 그 이상 점원한테 치근덕 거리진 않았겠지만….
“저기….
“넵?”
내 쭈글쭈글 메마른 입술 사이로, 무의식 중에 말이 흘러 나왔다.
“제가 오늘 생일인데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찍소리도 못할 정도로 망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희미한 기대가 담긴 목소리. 우와, 그러시군요! 생일 기념으로 설정을 6으로 해드리겠습니다! 그러한 대답을 기대한, 미약한 중얼거림.
“우와, 그러시군요! 축하드려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점원을 그렇게 말하고서, 싱그럽게 웃었다.
밤이 되었다.
밖은 이미 어두컴컴. 그렇게나 흘러넘치던 사람들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만큼 잔뜩 챙겨온 돈은 한 장도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은 하루였다.
터질 확률 95% 연출까지 나왔는데도 결국 터지지 않은 나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한계다.
줄곧 좋아했지만, 당분간은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다. 실제로도 당분간은 보러오지 못하겠지.
더는 무리, 헤어지자…. 너랑 같이 있어도 괴롭기만 할 뿐이야….
그렇게 일단 철수 준비는 제쳐두고, 잔액 1천엔짜리 패키 카드를 지불하고 돌아오는 길.
“음….”
그다지 인기 없는 기계만 있는 구역에서, 혼자 오래된 기계를 갖고 노는 영감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7이 안 나와서 곤란한 듯, 몇 번씩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있는 듯 했다.
저런 영감을 보고 있으면 생각난다.
내가 아직 슬롯 머신 초보였던 시절의 이야기.
슬롯 머신 꼬꼬마였던 시절, 그 날도 제대로 원하던 숫자를 모으지 못해 곤란하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지.
몇 번이나 실패하고 코인을 날리다가, 슬슬 남한테 도움을 청하려 하던 그때, 옆에서 슥하고 손이 나왔단 말이지.
뭔가 싶어 올려다보니, 헌팅캡을 쓴 낯선 영감이었다.
헌팅캡 영감은 아무말도 없이 사삭하고 7을 만들어 줬다. 그리고 슥하니 떠나갔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자 쫓아갔지만,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 뒤에 홀에서 그 헌팅캡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후로 슬롯 머신을 하는 할멈 할아범이 곤란해하고 있으면 돕기로 마음 먹었다.
헌팅캡한테서 받은 은혜를 본인에게 갚아줄 수 없으니, 다른 할멈 할아범한테 갚기로.
가까이 다가가, 영감의 어깨를 가볍게 찌른다?
“모아줘?”
“어엉?!”
엄청난 기세로 되묻는 말에 무심코 움찔했지만, 그렇지….
영감들은 가는 귀가 먹었으니까 납득한다. 손을 메가폰 대신 모아 다시 한 번 말했다.
“7 모아줘?!”
한박자 뒤에, 영감은 바지락 같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기쁜듯 고개를 끄덕인다.
“고맙네.”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잽싸게 7을 모아준다. 빅 보너스였다. 팡파레와 함께 머신이 격하게 빛을 발하더니, 폭음을 발하며 승리를 축복해준다.
“빅이네. 잘됐어.”
큰 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영감은 다시 한 번 나를 올려다보며 “정말 고맙네.” 하고 활짝 핀 웃는 얼굴을 대접해줬다.
뒷정리를 끝내고 변소에 가서, 지친 몸으로 소변을 보고서, 가게를 나서려던 그때 깨달았다.
영감은 이미 없었다.
(응…?)
이상하지 않나? 내가 볼일을 볼때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빅을 다 끝내고 냉큼 돌아갈 수 있나?
잽싼 영감이라고 생각하면서, 기계의 카운터를 올려봤더니… 돌아가지 않았다. 한 번도.
보통이라면 기계에 코인을 넣은 만큼, 카운터에 수치가 표시된다. 요컨데 이 기계는 아무도 쓰지 않았다는 소리다.
이럴 수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폐점 준비를 시작하려는 듯 점원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러세요?”
“아니. 이 자리에 영감 하나가 앉아 있지 않았어…? 뭔가 조개 같은 눈을 한, 귀가 안 좋은… 목소리 큰 영감.”
그 말을 하자마자, 점원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 여기. 나오는 곳이에요….”
“뭐?”
“……. 하하핫, 농담이죠. 오늘은 할로윈이니까 좀 그럴싸한 농담을 해봤습니다.”
점원은 웃었지만, 진위 여부는 불확실했다.
밤 11시. 귀가.
텅빈 배에서 들리는 꾸르륵 소리가 덧없어서 뭔가 먹을 걸 찾아 주머니를 뒤지던 손에, 좀 전에 받은 사탕이 굴러들어왔다.
오늘의 수확은 이것뿐이다. 허무함을 느끼며 입안에 던져넣었다. 호박 맛이고 의외로 맛은 없었다.
오늘은 전부 7만엔을 썼으니까, 이거 하나에 7만엔 짜리 사탕인가…. 흐응, 그렇구나…. 그저, 덧없고 허무했다.
할로윈이라서 그럭저럭 떠들썩하는 거리를, 나는 몸을 웅크린채 그저 유령처럼 걸었다.
이젠 두 번 다신 가면 안 되겠다고, 마치 염불처럼 중얼거리며.